노을지는 브레스트 항구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나는 기초군사훈련을 받기위해

툴롱에서 전출나와 브레스트 항에서 소규모 함대전술훈련을 연수하고 있었다. 



벌써 6개월째.. 노을이 예쁜 동네라 그런지

방파제에 앉아 노을을 구경하는게 유일한 낙이었다. 


"중위..?오늘도 나와있었네요 ㅎㅎ"

"여.. 가스코뉴"



자신의 뒤로 익숙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긴 은회색 머리가 잘 어울리는.. 훤칠한 키의 여자


방파제 위로 가볍게 뛰어오른 가스코뉴가 내 옆에 앉는다. 


"대서양의 노을은 아름답지요ㅎㅎ 물론 지중해 툴롱의 노을도 예쁘지만"

나는 대답없이 바다만 바라봤다


"중위는 나보다 노을이 더 좋나봐요?ㅋㅋ"


가스코뉴의 질문에 문득.. 그녀를 돌아봤다. 

왠지 어딘가 옷차림에 신경쓴 모습이다. 

이런 그녀를 무시하는건 예의가 아니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아니야. 미안해"




내가 이 지역으로 전속받은 6개월 전부터 많은 함선소녀들이 항구를 들락거렸지만 

여기서 상주하면서 한창 전투를 배우고있는 가스코뉴와 금새 친해질 수 있었다. 


서로 외지에서 생활하고있는데다가, 

아는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매일 저녁에 노을을 보며 하루의 일상을 교류하고 뒷담화도 나누고 하면서 

길다면 긴 시간... 6개월을 가까이 그렇게 보냈다. 



"중위는 오늘 신문 봤나요?"

"아아.. 봤지"

"정말 전쟁이 날까요?"

"글쎄... "


기지개를 켠 가스코뉴가 한숨을 크게 쉰다


"저.. 사실 다음달부터 지중해전역으로 갑니다"

"에? 뭐라고?"

"지중해전역으로 간다고요"


나는 가스코뉴를 한번 쳐다봤다. 


지중해라.. 거기는 사르데냐도 있고.. 로열 네이비도 있고..

여러 해상세력들이 몰려있는 분쟁지역이었다


"위험한 곳인데.."

"그래도 대서양의 혹한과 파도보다는 잔잔하지요"

"아니 자연환경말고ㅎㅎㅎ"


가스코뉴가 노을을 보면서 체념한듯 말한다


"함선소녀로 태어나 바다에서 죽는건 영광이지요"

"...."

"무수한 강자들이 많다고 하네요 지중해는"

"그..그렇지.. 근데 가스코뉴같이 실전경험이 없는데도 발령이라니."

"경험은 가서 쌓는거고요.. 무운이나 빌어줘요"

"아....운이 효과가 있나? 실력이 먼저지"

"중위는 T에요?ㅋ"


요즘유행한다는 성격검사에서 T형 남자는 인기가 없대나..


가스코뉴가 빙긋 웃는다. 




"그럼 전출은 언제..."

"벌써 명령서는 받았어요. 5일 뒤 이동합니다"

"그럼 내일이나 모레 같이 저녁이라도..."

"좋아요 중위. 그말도 안했으면 서운할뻔 했네요"


가스코뉴의 표정이 환해진다. 아마 그녀도.. 그녀 자존심에 먼저약속잡기는 

껄끄러웠던거 같고.. 

내가 먼저 밥먹자고 석별의 정을 나누도록 유도한 듯 했다. 




어느덧 5일의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저녁도  매일같이 먹고, 밤바다도 산책했다. 



"중위..?"

"응?"

"저.. "

"저...?"

"죽지마세요. 중위도 무운을 빕니다"

"ㅎㅎㅎ 너도. 잘할거야 가스코뉴"

"저는 그래도 최신형전함.. 중위는 초보지휘관...걱정이 되네요"


자연스럽게 내 팔을 잡는다. 


가스코뉴가 피식 웃는다. 


"5년뒤면... 계급이..?"

"대위니까 소형함대 지휘관정도 되겠지.."

"10년뒤면?"

"아마 작전참모? 아니면 함대 3~4개 이끄는 중형함대지휘관 정도?"

"15년은?"

"몰라 거기서부터는 운이야"


그녀의 질문에 나는 대충 얼버무렸다. 그제서야 가스코뉴는

품에서 반짝거리는 돌조각을 하나 준다


"이거.. 스타더스트에요.."

"오...?"

"운석 조각이라고 보면되는데.. 행운을 가져다준대요"

"근데 이걸 왜..."

"저 처음 진수했을때 운이 좋은 행운함이 되라고 함수에 붙여준건데.. 저보다는 중위에게 더 필요할거같네요"


나는 스타더스트를 품에 넣었다. 가스코뉴가 날 생각해주는 마음이 고마웠다. 


"지금은 말단 중위지만.. 5년뒤면 멋진 남자가 되어있겠죠?"

"지금은 별로인가보네 ㅎㅎㅎ"


파도소리가 들린다

"지금도 괜찮아요. 귀엽고, 젊고 활발하고.."

피식 웃었다. 가스코뉴가 나에게 팔짱을 끼며 앵겨온다


"중위는 가스코뉴 어때요?"

"귀엽지.. 예쁘고.. 활발하고"


방파제 끝까지 걸었다. 이 앞은 바다다. 

살짝 바람이 춥다

외투를 벗어 가스코뉴에게 입혀줬다. 

같이 밤바다를 보다가 내가 먼저 말했다


"가스코뉴 5년정도 나가있는거지?"

"아마도요.."

"그럼.. 나는 내년에 툴롱으로 원대복귀하니까..툴롱에서 보겠다"

"그렇겠지요?"

"그때 내 첫 함대의 첫 비서함..이 되줬으면 좋겠어"


너무 먼미래의 일 같다. 

그 말에 가스코뉴가 꼭 그렇게 하겠다며.. 약속했다


"약속의 증표로 뭐 안줘요?"

"음..."

나는 사관학교 졸업할때 주는 장교임관 반지를 빼서 줬다. 

가스코뉴의 손가락에는 맞지않는다

그녀는 엄지손가락에 임관반지를 끼운다.

마음에 드는지 이리저리 둘러본다. 




"이제 내일은 정말 갑니다. 아침 일찍 나가요"

"응..."

"6시에 출발합니다"

"응..."

"배웅나올거죠?"

"ㅎㅎㅎ 응"



가스코뉴의 말에..'나 6시에 떠나니 배웅나와라' 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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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로 떠나는날 아침.. 괜히 서운한 감정이 든다

신기하다. 별 마음 없는 사이인줄 알았는데

떠나는 그녀와 인사를 하고나니

마음속 어딘가에 애틋한 느낌이 든다. 


보고싶다는 생각..보고싶을거라는 생각..


마음속 어딘가 나는 가스코뉴가 자리잡고있었던걸까

마음이 먹먹해진다. 


안주머니에 들어있는 스타더스트를 꺼내봤다. 

아침이라 그런걸까 빛은 나지않지만 그냥..


이걸 나에게 준 만큼 가스코뉴는 날 좋아한건 아닌지..

내가 눈치가 없이 1년뒤에 만나자 한건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동트기전 항구에서 멀어져가는 가스코뉴와 다른 함선소녀들을 보며 기숙사로 돌아왔다






1달이 지났을까.. 


나와 가스코뉴는 멀리 떨어져있음에도 연락을 주고받았다. 

일주일에 3~4번은 연락이 될 만큼 그럭저럭.. 괜찮았다. 

덜 외로웠다


그녀도 새로운 부임지에서 잘 적응하는것 같았다. 


그 시기...즈음..


가장우려했던 전쟁이 터졌다. 





전쟁은 가혹했다. 선배지휘관과 장교들은 파리처럼 죽어나갔다.

작정하고 준비한 메탈블러드의 함선, 지휘관들의 역량은 상상초월이었다. 

당장 내 조국은 반토막이 나버렸고, 간신히 모항을 탈출하여 

로얄 네이비의 영역에 망명정부를 차리는게 전부였다. 


나는 스타더스트 때문인지.. 운이 좋았다. 구축함을 탔지만 어떻게 어떻게 임무완수를 하고, 살아남았다. 

선배들이 전사하자 진급공백이 생겨.. 벌써 소령까지 올라와버렸고, 

이제는 3~4척의 함선소녀들을 지휘하는 역할로 올라섰다. 



그리고 그때... 아이리스의 지중해 함대 전체가 연락이 두절되버리는 상황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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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후후..."


검은색 가죽제복을 입은 한 여성이 도크 안쪽 내갑거 안 건물로 들어왔다. 

괴소를 짓는 여성은 품에서 서류를 꺼내 본다



"이번에 생포한 아이리스의 함선소녀들인가.."

"예 그렇습니다"


옆에 있던 부관이 대답한다


"본관이 직접 만나도록 하지"


안내에 따라 건물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자 수조 안에 사슬로 묶인 채 얼굴만 남겨놓고 잠겨있는 수많은 함선소녀들이 보였다. 


메탈블러드와 사르데냐가 만들어서 운영하는 곳.. 

생포한 함선소녀들을 고문, 조교, 세뇌하여 비시아성좌의 배로 개조하는 곳이었다. 



"케르생은..어느정도 됐지?"

"맨처음 들어온 케르생은 곧바로 전장투입이 가능합니다"


부관의 말에 케르생이 갇힌 수조를 바라봤다. 물위에 족쇄정도만 달린채로 떠 있다. 


"이름이 뭔가"

"케르생..."

"호... 특기는?"

"어뢰전입니다.."

"본인의 임무는?"

"몰타 지역의 글로리어스입니다. 꼭 침몰시키겠습니다 "


여자는 만족한듯 하나하나 둘러보며 안으로 들어왔다. 



"지난주에 들어와서 아직도 고문에 저항하는 놈이 누구라고?그놈 낯짝좀 보자"

"예.. 가스코뉴라고.. 안쪽방에 있습니다"


여자는 부관의 설명에 이름을 되뇌였다


"가스코뉴.. 가스코뉴.. 아..! 기억났다. 아이리스 최신형 전함 아닌가"


설명을 들으며 안쪽으로 오자 수조에 묶인 채로 얼굴만 떠서 가라앉아있는 나체의 여자가 보인다. 


"얘가 가스코뉴?"

"네 그렇습니다"


수조 안쪽에는 병사들이 물에다 배터리를 풀며 전기고문을 가하고있었다

비명을 지르는 가스코뉴..


"잠깐 정지. 프린츠 오이겐님이 오셨다"


안에있던 병사들이 경례를 올리자 프린츠 오이겐이라 불린 여자가 손을 들어 경례를 받는다. 




"하던거 계속해"

"옙!"


오이겐의 지시에 병사들이 가스코뉴에 대한 고문을 재개했다. 

비명을 듣던 오이겐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부관에게 명령했다


"저 함선소녀는 반드시 무슨수를 써서라도 세뇌시키도록.. 중요전력이니까말이야.."

"예!"

"세뇌즉시 몰타, 수에즈 지역으로 보내서 로열네이비를 상대해야한다고..여기 책임자는 누구지?"

"도이칠란트, 그리고 마르코폴로님입니다"

"둘다 잘 하겠군.. 여기.. 명령서"


서류의 명령서에 세뇌작업지시서를 결재한 오이겐은 서류를 부관에게 넘겨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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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코뉴는... 갑작스런 모항의 항복으로 생포되어 세뇌수용소로 끌려오게 되었다. 

먼저 잡혀온 동료들.. 같이 잡혀온 동료들 모두 어디론가 끌려갔고.. 

자신은 지금 며칠째 지독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버티고있었다


손발이 묶여있어 자침도 못하는 상황이지만

어떻게든 탈출을 엿보는데도, 메탈블러드놈들은 지독하리만큼 꼼꼼하고 철저하고 무서웠다. 


간간히 밖에서 비명소리와 흐느낌, 신음소리들이 들리며 쪽잠을 잔다. 





그렇게 다시 수조로 돌아와 맨정신으로 회복중일때 

가스코뉴의 방문이 열리면서.. 누군가 들어왔다


"소개하지. 비시아의 마르세예즈야"


자신과 같이 잡혀온 마르세예즈.. 전과 다른 복장에.. 붉은 눈매..

가스코뉴는 그런 그녀를 보며 절망했다. 


"너의 임무는 뭐지?"

"저는 원수인 쉬프랑을 처단하는게 목표입니다.."

"ㅋㅋㅋ"


도이칠란트는 음산하게 웃는다


"엎드려"

"네"


마르세예즈가 엎드린다


"일어나"

"네"


마르세예즈가 일어났다


"너도 곧 이렇게 될거야..ㅋㅋㅋ그냥 포기하라고"


조소를 날리는 도이칠란트는 마르세예즈와 함께 나가버렸다

그렇게 정신력 강하고 단단하고 군인다웠던 그녀도 망가져버렸다


가스코뉴는 다리에 힘이 풀렸다. 무서웠다

처음으로 절망과 공포를 느꼈다


"누가 구하러와줘.. 제발.."

가스코뉴는 흐느끼며 수조에 박혀 울고있었다




다음날 바로 가스코뉴는 어디론가 이감이 되었다. 

수조가 아닌 넓은.. 바다를 막은 도크 같았다. 


도크에 던져지고.. 곧이어 도크가 열리면서

메탈블러드의 구축함들과 유보트들이 들어왔다


"여~ 아직도 전향을 안한 고집불통이 있다던데.. ㅋㅋㅋㅋ"

비웃듯 들어오는 여자는 도이칠란트.. 


"거 며칠이나 더 가나 보자고.. 시작해!"


도이칠란트는 가스코뉴가 갇힌 도크 앞에 의자를 갖다놓고 

고문을 지휘했다. 


구축함들과 유보트들이 들어와 

가스코뉴를 향해 어뢰를 계속 발사했다. 

묶인채로 전신을 두들겨 맞는다. 

맞을만 했지만 몸이 점점.. 버티기 힘들때... 묶인 사슬이 풀렸다


"그 어항안에서 열심히 도망치라고 ㅋㅋㅋ 이제부터 한대 맞으면 바로 뒤지는 어뢰니까ㅋㅋㅋㅋ"


악랄한 웃음을 뒤로하며 자신들을 괴롭히는 작은 유보트와 구축함들의 어뢰를 피하며 

도크안에서 몇시간을 도망치듯 다녔다. 



"헉..헉.. 힘들어.."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점점 가스코뉴는 몸이 둔해졌다. 먹은게 없으니 힘이 이제 더이상 나지않는다. 



"어떻게.. 자발적으로 전향할래?"

도이칠란트의 말에 가스코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가라앉아 죽을지언정.. '


그녀는 묵묵히 처분을 기다렸다. 그냥 바닥에 착저한채 죽어도 운명이라 체념했다


"내일 다시 오도록 하지. 잘 생각하고있으라고"


도이칠란트는 그런 가스코뉴를 두고 나가버렸다. 





얼마 뒤 구축함들이 다시 어뢰를 쏜다. 한발 두발.. 몸에 어뢰가 날아온다..

가스코뉴는 다시 무거운 몸으로 날아오는 어뢰를 피하려고 움직였다. 

하지만 어뢰가 호선을 그리며 자신의 옆구리를 따라온다



"아..유도어뢰인가."


뿌리칠수가 없다. 


처음으로 옆구리에 맞은 어뢰.. 근데 폭발하지않는다


"뭐지?"

자신의 옆에 달라붙은 어뢰가 갑자기 진동을 일으킨다

다리와 허리, 그리고 가장 은밀한 곳에도 어뢰가 달라붙는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각..

온몸이 저릿저릿해지면서 느낌이 이상하다

정신이 멍해진다. 



"ㅋㅋㅋㅋㅋ 고통은 참아도 쾌락은 참을수가 없게 돼있지"

"마자마자"

구축함들이 킥킥대며 가스토뉴 근처에서 비웃었다. 


몸이 통제가 안될정도로 좋다

이러면 안되는데.. 이 쾌감.. 건조이후 느끼는 생소한 감각이지만

너무 예민한 자극이라 버틸수가 없다


"흐으으응!!"


가스토뉴는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간간히 다른 방에서 들리던 그런 신음소리..

그 때 물속의 유보트들이 다가와 물에잠긴 자신의 몸 여기저기를 진동어뢰로 자극한다


쾌감이 뇌를 잠식해들어간다. 

점점 기분이 좋아지며 정신이 아득해져간다


문득 자신에게 무운을 빌어준 중위가 떠올랐다

'미안해요..중위..'


가스코뉴는 거품에 잠기듯 의식을 잃었다. 




기절한 가스코뉴는 어뢰로 매일을 조교당했다. 

신경이 예민해지는 약물을 주사로 맞았다.

메탈블러드의 생체기술은 세계제일이라던가..

가스코뉴의 감각들이 몇배이상 예민해졌다.

어뢰가 옆으로 지나가도 그 물살에 반응할 만큼 

섬세해진 몸에 끊임없는 쾌락이 주입됐다. 


강제절정으로 지친 가스코뉴는 마지막까지 정신을 잃지않기위해 버텼지만

그들은 집요했다. 


메탈블러드의 세이렌기술을 접목한 철제 괴수들에게 

성고문을 당하며 여자로써의 존엄을 유린당했고

이름모들 괴수에게 처녀도 상실당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전향하지도 않고, 정신을 유지하며 버텨냈다

아니, 차라리 생을 포기한듯한 태도였다. 




"끝까지 버티고있습니다만.."

"신형전함이라 그런가.. 제법이네요"


부관들의 보고를 받은 도이칠란트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었다. 


"하... 이 방법은 안쓰려고 했는데"

도이칠란트는 결국 오이겐에게 통신을 통해 개조수술을 집행해야겠다고 보고했다. 


허락은 매우 빠르게 내려왔다.

메탈블러드도 사실 전황이 박빙이라 국력과 자원을 최대로 끌어 몰타와 수에즈지역에

투입하고 있었다. 


전함 한대가 소중한 상황에 인격이 말살되는 개조수술도 마다않고 집행했다. 


척추와 경추 뒤에는 전기제어칩이 심어진 채 사지를 구속당한 가스코뉴는

곧 수술실로 끌려갔다. 


"날 죽여라 차라리.."

"안돼 안돼.. 배 한척이 아쉬운 상황이야"

"날 어떻게 할거지?"

"글쎄... ㅎㅎㅎ"



피로 범벅이 된 듯한 수술실..

옆에 비닐에는 누구의 피인지 모르는 혈흔이 낭자했다


"자.. 자자 ㅎㅎㅎ"

자신의 얼굴에 수면가스 마스크를 채우는 론.... 


가스코뉴는 숨을 참아봤지만 고간에 진동어뢰가 들어오자 입을 벌리며 신음소리를 내버렸다

이미 예민해진 몸은 가벼운 자극에도 느끼고있었다. 


그 사이 입과 코에 들어오는 수면가스로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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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알아 지휘관?"

"뭐..?"

"북대서양 유보트가 30%밖에 안남았대나봐"

"흠... "


나는 지휘부의 지도를 놓고.. 전황을 보고있었다. 

확실히 몇달전보다는 상선습격이 줄긴 했다. 


대서양 전투에서 승기를 잡은 아이리스, 이글유니온, 로얄네이비는 

이제 노스유니온까지 항로를 다시 연결할만큼 메탈블러드의 유보트 함대를 몰아내는데 성공했다. 


나도 그 북대서양 전투에서의 공적을 인정받아 중령으로 진급했다. 

빠른 진급이었지만 진급공백을 메꾸기위해 어쩔수없었다. 





"우리도 절반은 지중해 전역으로 이동할거같아"


오늘 아침 참모회의때 들은 내용을 이야기하자 비서함인 팽르베가 끄덕인다


"나도 항공기 셔틀하는건가 중령?"

"아니.. 아마 가서 남부의 툴롱 항구부터 탈환해야할걸"

"다행이군. 일러스트리어스처럼 항공기 배달할까봐 걱정이었네. 

거기에는 알제리, 장바르 등 과거 아군이던 전함들이 즐비하다던데.."


비서함이 내 책상에 비시아 세력의 정보를 올려놨다


"참나.. 진짜 어처구니없지않나 중령? 불과 2년전만해도 같은 모항에서 지내던 사이인데... 

쉽게 전향을 해버리고 조국에 포구를 겨누다니"


나는 이미 지중해와 중부대서양에서 활약하는 부역자들, 

그리고 부역중인 함선소녀들의 목록을 다 알고있었다. 


'가스코뉴는 아마.. 침몰했을까...'


나는 창밖으로 바다를 보며 상념에 잠겼다. 


'어디로 간걸까...'



매월 올라오는 정보동향에도 새롭게 업데이트 되는 비시아측 전함목록에도 가스코뉴는 없었다. 

이번 자료도 마찬가지였다. 


그날 저녁 작전부에서 최종적으로 지중해전역의 우세확보라는 전략목표가 하달되었다. 


나는 제 5진으로..다섯번째로 함대를 이끌고 지중해 해역으로 향하기로 명령을 하달받았다. 


출진까지 약 한달정도 남았다.


그 사이 모항에서 전술훈련, 상선호위등을 하며 파견날짜를 기다리고 있었던 어느날이었다. 



사무실로 비서함 팽르베가 들어온다



"중령. 도크로 나가볼래?"

"왜..?"

"가스코뉴가 나포돼서 돌아왔어"




...




사무실을 나와 도크로 향했다. 


도크에 덩그러니 방치된 채 사슬로 묶여있는 

가스코뉴가 보였다. 


"상태는"

"의식은 있는데.. 지금 많이 다치고 그래서 자는거같아. 

걷거나 움직이려면 조금 더 치료를 받아야하는 정도야"


옆에 기술정비관이 차트를 건네줬다. 


"중령. 그런데"

기술정비관이 주는 차트에는 가스코뉴의 몸을찍은 사진이 함께 있었다


"절반이 기계야.. 몸이.. 관절, 팔, 다리 모두. 척추신경은 그대로인데 두곳에 전기제어장치가 삽입되어있어"


나는 기술정비관의 설명을 들으며 차트를 읽었다. 

조금은.. 아니, 아주많이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어제 통신때 그렇게.."

"응.. 뇌에도 칩이 박혀있어. 저 귀같은 두개의 검정 판이 본부로부터

 명령과 지휘를 송수신받는 곳 같아. 라우터, 리시버 같은걸?"


투구라고 생각한 머리장식은 가스코뉴를 조종하는 수신기 송신기였다고 한다. 


"자아가 없는 상태야 가스코뉴는.."

"그럼 어떻게 하지? 고칠 방법은?"

"뭐.. 일단은.. 스크랩하는게 속편하지만.. 지금 함선소녀 한기 한기 소중한때니까..."


나는 정비관의 입술만 바라봤다. 마치 환자의 용태를 설명하는 의사의 처방을 기다리듯..


"당장 연료도 못먹으니까.. 링겔튜브 달아놨어. 죽지는 않을건데.. 어떻게 처리할지는 나도 생각좀 해볼께."

"고마워"

"근데 중령.. 내가 팽르베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응.."

"가스코뉴하고 예전에.. 가까운 관계였어?"

"어?"

순간 나는 당황했다. 나름 평정심을 유지하고 그랬는데.. 들통난 부끄러운 느낌이다. 귀가 화끈거린다


"아.. 뭐..그랬지.."

"그렇구만. 괜한걸 물어봤구만.."


기술정비관은 가스코뉴의 여러가지를 간략히 체크한 뒤 수리가능여부를 보러간다며 사라졌다. 

나는 혼자 도크에 남아 가스코뉴를 내려다봤다. 


만감이 교차한다


"가스코뉴"


나즈막히 불러봤는데.. 대답은 없다. 여기저기 그을린 흔적. 폭발에 휘말려 드러난 내부..

개조된 금속 팔과 다리... 울었던걸까.. 얼굴의 그을음에 눈물이 지나간 자국이 보인다. 


나는 손수건을 꺼내 그녀의 얼굴과 어깨를 닦아줬다. 전과 달리 노출이 심한 도장..

무리한 개장을 당한탓인지 무거운 주포를 달고다닌 덕분에 휘어버린 등이 눈에 들어왔다


그나마 반대쪽 손은.. 사람 손 같다. 손을 잡아봤다.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

개조당하면서 빼버린건지 내가 준 반지는 안 보인다. 


괜히 미안했다. 

빨리 구하러갔어야 하는데..


별별 생각이 다 들며 괜히 눈물이 난다


나는 품속에서 스타더스트를 꺼냈다. 


내가 중위 대위 초군반 시절 많은 전장에서도 살아남은게 왠지

이 스타더스트 때문인거같은데..

반면 가스코뉴는 이 스타더스트를 날 준 것 때문에 이런 불행만 겪는 느낌이었다


내가 2년간 지녔던 스타더스트를 가스코뉴의 가슴 옆에 달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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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코뉴...

하고싶은말이 많은데.. 

무슨말부터 해야할지 모르겠다


밤에 이슬을 맞지않도록 내 외투로 덮어둔 뒤 지휘관실로 들어왔다. 




기술정비관은 내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꽤 정성을 다해 가스코뉴를 수리했다. 

전투에 나갈수 있는만큼은 아니지만..꽤 멀쩡해졌다. 


포로로 잡힌 메탈블러드의 기술자들을 데려와 

여기저기를 고치고.. 마지막으로 척추와 뇌수에 박힌 제어칩을 모두 제어하고

회복용 연료와 냉각수를 가득 주입하고 수리를 마무리했다


"언제쯤 깨어날까.."

"글쎄... 내일쯤..? 지금 잠든 상태야"

기술정비관은 차트를 보며 그녀의 몸상태를 체크한 결과표를 보여준다


"험하게도 굴렸군.. 자궁 용골생식세포도 착취당한 흔적도 있구만.. "

"그게 무슨말이지..?"

"사람과 비슷한거지.. 배란해서 시험관 임신하듯 약물로 강제 큐브사출 당해서 함선소녀를 낳은거지.. 

보니까 많이 낳게하려고 막 뽑아낸거같아.. 제왕절개하듯 꺼냈구만.. 큰 순양전함급을 낳은거같아"


씁쓸하다는 듯 개복하고 꿰맨 흔적이 아랫배 여기저기 남아있다. 


"그럼 그 낳은 애들은... 메탈블러드가 데려가 키워서 또 전장으로"

"씁쓸하구만.."


차트를 덮은 기술정비관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깨어난다면, 의식이 남아있다면 잘 위로해주게 중령"

"고마워"



깨어난다면.. 그녀 특유의 눈동자 안 십자가 음영부터 보고싶었다. 

아니, 그냥 깨어만 나도.. 다행인 상황이다. 


치료가 잘 된걸까.. 그날 저녁 가스코뉴가 눈을 떴다. 

앞에 낚시의자를 두고 기다리는 내 옆에 비서함 팽르베가 양산을 들고 시립해 있었다. 


"중령. 가스코뉴가 깨어났어"

"으응..나도 알아"


눈을 비비며 두리번 거리는 가스코뉴..


"정신이 좀 듭니까?"


팽르베의 말에 가스코뉴가 고개를 들어 우리를 쳐다본다


'위치파악 불가능. 현재 하달된 임무 확인할수 없음. 대기지침 시행"


기계적인 대답을 한다


"그래.. 배는? 배고픈가?"

"공복 유압 정상. 현재 별도의 연료 및 음식물 섭취를 권장하지않음"

"음.... 원래 가스코뉴의 어투가 저랬나요"

"아니.."



나와 팽르베는 어색한 그녀의 말투를 두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기분은 어때?"

"입력된 지침이 없습니다. 대기합니다"



...




앵무새같은 말만 대답하는 가스코뉴를 지휘부로 옮겻다. 

모든 무장과 방어구, 장비를 해제한 상태라

큰 위협은 되지않았다. 



"흠..."


나는 가스코뉴 앞에서 커피를 한잔 마셨다. 

팽르베도 같이 커피를 마시며 눈치를 본다


"이 냄새도 못느낄까요?"

"글쎄..."


나는 잔을 내려놓고 물어봤다


"기억나는 뭔가가 있는가?"

"나는 비시아 성좌 소속의 신형전함 가스코뉴. 시칠리아 방위 임무를 수행중에 클레망소 구출명령을 수행하던 중, 적의 공격으로 무장해제 되었다"



"명령은 기억은 하나본데요"

"그러게.."


"그럼 주로 무엇을 하며 임무를 수행했는가?"

"출항 시 시칠리아 방위를 주요임무로 수행했음"

"모항에서는?"

"모항에서는 각종 실험지원 및 함선소녀 양산을 위한 임무를 수행했음"


아까 기술정비관이 말한 내용들이 생각났다. 


"지금 귀함은 아이리스 리브레의 세력에 나포된 상태다. 전향하겠는가?"

"전향에 대한 결정을 내릴 수 없음. 임무하달 받은 바 없음"

"귀함에게 명령을 내리는 자는 누구인가"

"메탈블러드 지중해함대 총 지휘관 힌덴부르크님이다"


"그 외 전투서열은 알고있는가?"


팽르베는 능숙하게 취조를 진행한다. 나는 옆에서 펜대를 굴리며 듣고있었다. 


조금 지루해질 무렵.. 나는 손뼉을 치고 일어났다


짝..


"그만. 오늘은 그만하지., 이제 막 깨어난 함선소녀에겐 많은 취조는 무리야"


팽르베가 노트하던걸 던지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일단 가스코뉴는.. 내 방으로 옮기도록 하지"

"하지만 중령.. 가스코뉴는 아직 비시아 소속..."

"아아.. 포로 심문 겸 데려갈거야. 그정도는 양해해줘라 좀.."


팽르베는 지휘관의 눈을 쳐다봤다. 

많은 고뇌가 느껴지는 눈이었다. 


한숨을 쉰 팽르베.. 나를 향해 슬쩍 던진다


"옛 추억의 함선소녀니까 그러는거죠?"

"뭐.. 그렇지..그 이유가 없다고는 말 못해"

"그 기억이.. 그녀에게 남아있을까...?"


팽르베는 자신의 지휘관이 늘 함교에서 쥐고 지휘하던 스타더스트가

이제는 가스코뉴의 가슴팍에 붙어있는걸 보고 포기했다


'이제 이 양반은 뭘 해도 못말리는 지경이구만..'



대충 취조하던 문서를 정리하며 지휘관인 나에게 이야기한다. 


"그럽시다.. 대신 내일은 가스코뉴를 나포해온 1함대에게 인계해야하는건 잊지마시고"


"알았어"



...



내 집무실로 가스코뉴를 옮겨와 앉혔다. 


간이침대에 앉아 그녀를 바라봤다. 회색의 눈동자에 은은하게 비치는 금색 십자가 동공이 보인다. 나를 피하지않고 바라본다. 


"물 마실래?"

"수분섭취 필요. 승낙한다"


기계적인 대답으로 물을 달라고 한다. 주전자에서 물을 따라 한컵 줬다. 

원샷을 하더니 컵을 들고있다. 


"컵 다시 테이블에 올려놔"


테이블에 컵을 두고 다시 자리에 앉는다. 


"졸립지는 않아?"

"기동 후 4시간 경과. 아직 기동 가능함"


안졸립다는 뜻이다.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나를 보고 앉아있는 가스코뉴를 바라봤다

오늘 정비관이 수리해준 팔과 어깨, 다리.. 모습은 그대로인데

정신은 아예 다른 사람이다. 


날 기억못하는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뭔가... 뭔가 기억을 되찾을만한게 있을것 같은데..



"가스코뉴.. 혹시 가슴에 붙은 보석 기억나?"


내 질문에 가스코뉴가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본다. 

노란 스타더스트 보석이 은은하게 별빛을 내고있다. 


"광물.. 알수없음"


나는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 스타더스트를 떼고 눈앞에서 설명해줬다


"이거는 스타더스트라고.. 별조각이거든.. 지닌 사람에게 행운을 선물해준대. 너가 나에게 2년전에 준 물건이야. 너는 이걸 태어나자마자 이 스타더스트를 받았다고 했어"


가스코뉴는 손에 쥔 스타더스트를 한참을 내려다 본다


그때 나는 과거 내가 중위이던 시절, 같이 가스코뉴와 찍었던 사진..

유일한 사진 한장을 꺼내 그녀에게 보여줬다. 


"이거는 내 생일에 가스코뉴가 축하해준다고 같이 밥을 먹고 식당에서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이야"



가스코뉴는 멍하니 스타더스트와 사진을 각각 양손에 든 채 나를 바라본다. 


"너는 옛날에 나와 친하게 지낸.. 음....."


"귀하와 본함은 친구 관계로 볼 수있다"


"그렇지..! 친구. 그래 친구야 친구. 친구라는 뜻 알아?"

"친구. 알고있다"

"그래 너와 나는 친구였어"


물건과 나를 한번씩 본 가스코뉴는 고개를 끄덕인다. 


"이 물건을 준 이유를 확인할 수 없음. 답변바람"

"이 보석과 사진을 보면 생각나는 느낌이나 기억, 정보 없니?"



내 질문이 뭔가를 건드린것 같았다. 가스코뉴는 연산을 하는 듯

한참을 앉아서 생각하는 듯 했다. 


반쯤은 기계화된 그녀의 몸에서 생각하느라 열이나는것 같았다. 

나는 복도끝 창고로 나가 냉각수 한통을 들고 왔다. 

방에 오니 계속 사진과 스타더스트를 들고 생각중이다. 


"한잔 해"


물을 마신 컵에 냉각수를 가득 부어줬다. 

세컵을 내리 마신다. 



"기억정보 접근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데이터가 있다는 것은 확인했다"


간신히 연산을 끝낸 가스코뉴가 대답을 마친다


"나.. 나는 지금 과도한 작동으로 휴식이 필요하다"

"그래 그럼.. 여기서 자. 가스코뉴"

나는 간이침대에서 일어났다. 가스코뉴가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는다. 


"잘자"

"임무 이행"


내 말을 듣자마자 잠을 잔다. 




...



내일 아침 지휘부에 헌병들이 찾아왔다. 1함대 소속이다. 


가스코뉴는 일어나서 창밖의 바다를 보고있다. 

손에는 스타더스트를 쥐고있다. 


뒤에서 내가 인기척을 하자 몸을 돌려 돌아본다


"가스코뉴. 나와 이제"

"임무 확인"


그녀는 밖으로 나왔다. 헌병들과 함께 1함대 본부까지 같이 걸어갔다. 


가스코뉴는 계속 손에 스타더스트를 쥐고있었다. 



"본함은..."

"응?"

"본함은 과거에 여기를 와 본적이 있는가?"

"아니 없어"

"그럼 귀하와 함께 바닷가를 걸은 적이 있는가?"

"그건 있지"

"알았다"


해변을 보며 그런 질문을 던진 가스코뉴는 사진을 본다


"이 여자가 본함인가?"

"맞아.. 너야. 지금은 머리스타일이 많이 다르지만.."


"정보 인지"


1함대 본부에 어느덧 도착했다. 나는 1함대 비서함인 로열네이비 소속 넬슨에게 가스코뉴를 인계했다. 


"지휘관 각하로부터 가스코뉴를 인수받았습니다"

"여어.. ㅎㅎㅎ 잘 조사해줘.. 원래 그녀는 우리 소속이었었으니까"

"조사 및 검사 후 알려드리겠습니다"


군례를 마친 넬슨을 따라 가스코뉴는 본부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뭐.. 어쩔수 없었다. 우리는 아직 브레스트항을 되찾지 못했고..

로열네이비 모항에 셋방살이중인거니까.. 


그들의 처분에 맞기는 수 밖에...




나는 넬슨에게 인계한 뒤 느적 느적 집무실로 돌아갔다



....



1함대 본부 안


취조실로 걸어가던 중 가스코뉴가 넬슨에게 말을 걸었다


"귀함께 질문 있음"

"뭐지?"

"종전 지휘관에게 받은 물건.. 돌려줘야 함"

"뭔데"

"스타더스트. 행운을 부르는 별조각임. 어제 지휘관에게 받았음. 돌려주지못함"


넬슨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가스코뉴의 손에 들린 노란 보석조각을 

내려봤다. 


"좋아. 지휘관 개인 물품이라면 돌려줘야지"


넬슨은 통신 단말기를 열어 지휘관에게 연락을 걸었다. 


"지휘관님. 가스코뉴가 돌려줄 물건이 있다고 합니다. 아직 근처면 1함대 본관 앞으로 잠시 와주십시오"


통신을 마친 넬슨이 다시 가스코뉴를 데리고 건물 입구로 되돌아나갔다. 





...





나는 넬슨의 연락을 받고, 다시 1함대 본관까지 돌아왔다. 무슨 물건을 준다는 거지... 하는 생각을 하고 왔는데


가스코뉴가 건물에서 넬슨과 함께 나왔다. 


"뭐 줄게 있다는 거지?"

"본함이 어제 받고 돌려주지않았던 스타더스트를 전달하고자 함"


내 질문에 가스코뉴가 대답을 하고는 계단을 내려와 내 앞에 선다. 


나는 손을 뻗었는데.. 가스코뉴가 내 손 위에 스타더스트를 준다. 

그 장면이 뭔가 아이러니했다..


"너는 나에게 이걸 두번이나 주는구나"

"..."


내 말을 들었는지 가스코뉴는 나를 멀뚱멀뚱 바라본다. 


"다 전달한거지? 다시 돌아간다"

"전달 완료했음"


넬슨이 그런 가스코뉴를 데리고 1함대 본관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몇걸음 뒤 가스코뉴가 걸음을 멈춘 채.. 다시 나를 뒤돌아 바라본다


"기억.. 기억봉인이 해제됨. 가스코뉴.. 가스코뉴는 2년전 중위에게 스타더스트를 선물했음.."


옆에서 동행하던 넬슨이 뭔일인가 싶어 가스코뉴를 쳐다본다. 

그녀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가스코뉴는.. 중위에게 반지를 선물받았음.. 임관 반지를 선물받았는데 분실했음.. 미안하게 생각.. 미안하게 생각함"


나도 그 장면을 보면서 멍하니 서있었다. 뭔가 기억의 단서를 찾은듯 했다. 


"어둡고 슬픈기억들이 가득함. 중위에게 미안함.."

그 말과 함께 가스코뉴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울먹거리려는 가스코뉴를 보자 나는 달려가서 그녀의 앞에 섰다. 


"가스코뉴..내가 그 중위야. 2년전 너와 같이 밥도먹고 바다도 걷고 그랬던 중위.. 혹시.. 기억이 조금 나?"


"가스코뉴..는....가스코뉴는.. "


본인을 3인칭으로 부르더니 갑자기 뭔가 생각이 난 듯 입을 손으로 막으며 눈물을 흘린다


"나.. 나는..가스코뉴야.. 나는 툴롱항이 점령되면서 납치되서 고문을 견디다 못해 강제로 수술대로 끌려갔어.."


거기까지 말한 뒤 가스코뉴는 엉엉 울며 주저앉았다. 


나는 그런 그녀를 일으키며 말을 걸었다. 


"나 혹시 기억나? 가스코뉴?"

"지휘관... 중위? 중위 맞지요?"

"응.. 맞아"


가스코뉴는 내 얼굴을 보더니 입술을 부르르  떨며 울먹거린다. 

그리고는 날 끌어안는다. 


"미안해요 중위... 중위... 연락도 못하고.. 너무.. 너무 무서웠어요"


날 끌어안고 엉엉 운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나도 미안해 가스코뉴.. 너무.. 나는 아무것도 하지못했어.. 널 구하러가지도 못했고, 찾지도 못했어.. 나도 미안해"


나의 울음에 가스코뉴도 더 서럽게 울었다. 


넬슨은 옆에서 그 모습을 보더니 나와 그녀의 손을 잡고 일으킨다. 


"자자.. 보는는도 많으니 안에 들어가서 웁시다"

넬슨의 배려에 나는 눈물을 닦으며 흐느끼는 가스코뉴를 데리고 건물로 들어갔다. 







...





그날 오후.. 우리의 신파극은 함대 내에 모두 퍼졌다. 

총사령관은 그 이야기를 듣고 어이없이 웃은 뒤 가스코뉴를 면담하고, 내 집무실로 보내줬다. 


옆에서 다과를 세팅하는 팽르베가 날 놀린다


"중령..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로열네이비 1함대 본관앞에서 기지배처럼 질질짜기나하고"

"시끄러...너도 그 상황 되면 눈물이 날껄"

"아아.. 아직 서약도 못해봐서 잘 모르겠네요"

"그거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지?"

"뭐.. 반은 맞고 반은 농담입니다만"


다과를 다 세팅한 팽르베가 피식 웃는다. 


"거 중령 책상서랍 안에 서약반지 그거..작년에 사둔거 가스코뉴꺼라는거는 

내가 처음부터 알고있었는데 뭐 내가 그 틈을 어떻게 비집고 들어가나요 ㅋㅋㅋ"


하더니 나에게 얼레리꼴레리 라며 놀린다. 


"비서함이 지휘관을 놀리기나 하고말이야.. 어휴.."

"가스코뉴가 오면.. 비서함 교체좀 해주시죠 중령?"


대꾸도 안하고 창밖에 서서 현관을 내려봤다. 차가 멈추는 소리가 들린다. 

차 안에서 가스코뉴가 내린다. 병사의 안내로 집무실까지 들어온다


"오랜만이야"

팽르베가 먼저 가스코뉴를 반긴다. 

"예 선배님. 오랫만입니다"


그녀의 웃음에 팽르베도 함께 웃는다. 

나는 그 둘을 보다가 팽르베가 접시를 든 채 손가락으로 문을 가르킨다. 

나가봐도 좋냐는 표시다. 내가 오케이 사인을 보내자 문을 닫고 나간다


"그럼 지휘관과 면담 잘 하도록"

"넵"


팽르베가 퇴장하고.. 적막이 흐른다. 테이블을 두고 가스코뉴와 내가 마주보고 서 있었다. 


"1년뒤에 찾아온다고했는데.. 너무 늦었죠 중위.. 아니 중령님.."

"아..아니야"

그녀의 말에 내가 당황하며 아니라고 했다. 


"나..나는 아직 가스코뉴를 좋아해.. 그 부임하는 첫날.. 용기내지못해서 널 좋아한다고 말도 못했어. 그게 항상 미안했어"

"그랬군요... 저도 그때는..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내가 많이 밉지..? "

"....."

"너 납치된거.. 실종된 동안 내가 찾지않아서.. "

"조금은.. ㅎㅎ 미웠습니다"



미안한 마음에 괜히 나도 머쓱했다. 


"이렇게라도 돌아와서 다행이야..다시는 떠나보내지 않을게"


내 말에 가스코뉴가 눈물을 글썽인다


"중령님. 말씀이라도 고맙지만.. 저는.. 저는"

그녀가 눈물을 닦더니 말을 잇는다


"저..같이 포로로 잡혀서 더럽힘을 당한 함선도 이렇게 잘 보살펴줘서 정말 감사합니다"


"으음..."

"죽기직전의 저를 고쳐주신것도 중령님 덕분.. "

"뭐.. 내가 고친건 아니고 기술정비관이 고친거긴하지만..."


가스코뉴는 울먹이면서 나를 쳐다본다. 


"그래도 이렇게 건강해졌잖아. 튼튼한 신형함이라 그런가 회복도 빠르고 ㅎㅎㅎ"


나는 그런 그녀를 끌어안았다. 

내 품에 안겨 흐느끼는 그녀의 손을 잡고.. 책상 앞으로 이끌었다. 

책상위에 서약반지가 있었다. 


"이거.. 가스코뉴 주려고 준비한거야"

내 말에 그녀가 울면서 고개를 가로젓는다. 


"정말 감사하고 죄송합니다만 중령님.. 저는.. 저는... 이미 더럽혀진 몸.. 

지휘관님의 서약함이 되기에는 자격이 부족합니다.."


손을 뒤로 빼며 주먹을 쥔다. 

반지를 끼울수 없게 만든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마음이 미어지는 슬픔을 느꼈다. 


"하지만..."

"..."

"하지만 나는 가스코뉴가 어떻게 되는 무엇이 되든.. 괜찮아. 

설령 세이렌에 감염되버리더라도 나는 가스코뉴가 아니면 의미없어"


"그러니 내 반지를 받아줬으면 해.. 그리고 내 옆에서 꼭 나를 지켜줘"


내 말에 가스코뉴는 눈을 질끈 감는다. 


나는 뒤로 감춘 그녀의 손을 잡아당겨 손가락에 서약반지를 끼웠다. 



"많이.. 사랑해 가스코뉴"



내 대답에 가스코뉴는 말없이 나를 끌어안았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