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토는 기대어 있었다.


함선소녀에게 가장 공포스러운 '그 존재'에게. 실내복을 입고.


'그 존재'는 지금 멍청하게도 소파에 퍼져 앉아 사쿠라 엠파이어의 애니메이션을 입을 반쯤 벌리고 보고있는 중이다.


령주 어쩌구 하는 내용이 나오는 애니인데 나가토도 관심은 없지만 옆에 앉아있으니 당연히 내용은 안다.


령주로 명하면 자신의 서번트가 원치 않아도 행동을 하게 된다니.


나가토는 웃기지도 않았다.


함선소녀 또한 큐브를 매개로 만들어진 존재인 만큼 령주 없이도 '큐브 적합자'인 '그 존재'의 명령을 들을 수 밖에 없는데.


그런 주제에 야마토급 함선소녀들, 고결한 로열의 항모들, 심지어 어머니같은 포스를 뿜는 그로세까지도 유혹을 시도해도 '야 짭선아 징그럽다~?' 하면서 머리를 쓰다듬거나,


벨파스트가 슬쩍 가슴 노출 높은 메이드복을 입고 어필을 해도 '우리 딸 다 컸네' 식의 반응.


아무렇지 않게 함선 소녀들을 강아지, 조카, 여동생, 딸 사이의 무언가의 취급을 하는 '그 존재'.


그건 서약 함선들 대상으로도 마찬가지라 함선소녀들 불만이 가득이다.


그의 스킨십은 딱 허그, 뽀뽀 쪽 수준에서 끝난다. 그마저도 자기가 먼저 하진 않고 먼저 들이 대야지만 마지못해 받아준다. 그리고 나서는 머쓱해 한다.


손을 잡는다거나, 백허그를 한다거나 하면 적절하게 다정한 반응을 보이지만, 그저 그 뿐.


먼저 손을 대는 행동은 머리 쓰다듬기 이상으론 절대 없다.


가슴이 빵빵하게 터질듯한 함선 소녀들이 바니걸 복장을 입건 수영복을 입고 고간에 다리를 슬쩍 밀어 넣으려 해도, 이마를 쓰다듬듯 밀어내며, 다정하게 거절한다.


여자로 보지 않고 딱 나이차이 나는 여동생이나 조카, 딸 대하듯.


삐지려고 하면 머리를 마구 쓰다듬고 손 끌고 매점 가서 맛난거 사서 같이 먹고 목적을 상실할 때 쯤 돌려보낸다.


물론 아침에 그의 예열된 주포를 생으로도 여러번 본 적 있는 서약함/비서함 나가토는 그가 고자가 아님 또한 알고있다.


자신이 조그마해서 무시하는게 아닌 모든 함선 공통으로 대하는 방식이기에 불만이 있지만 그저 여동생 취급에 만족 할 수 밖에 없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거리가 멀어질까봐 두려워 하며.


'큐브 적합자' 씩이나 되는 사람이. 인류에 단 한명뿐인 적합자가.


아마 누구라도 원한다면 힘을 쓰지 않고도 상호 동의 하에 범할 수 있을 것이고, 거절한다 해도 힘을 쓰면 범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정작 그런 자신이 힘을 쓰기는 커녕 령주니 뭐니 하는 게 나오는 내용의 판타지를 보고있다니.


관심 없는 애니메이션에서 시선을 거두어 시계를 보려고 눈을 돌리던 나가토는 문득 문에 시선이 갔다.


나가토에게는 운이 없게도 문이 열리며 시작되던, 지금 기대어 있는 '큐브 적합자' 의 별명이 무슨 뜻인지 눈으로 직접 봐야만 했던 기억이 강제로 재생되기 시작했다.


눈을 질끈 감고 기댄 머리를 더 꾹 파묻었지만 그 기억은 눈앞에 생생하게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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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 시끄럽잖아.. 뭐하는건데...?"


문을 부수듯 열고 들어온 론에게 지휘관이 말을 했다.


"그, 그치만 철벽 치는 지휘관님이 하아, 나쁜거랍니다? 후후"


헐떡이며 실실 웃는 론.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갑자기? 출격도 없는 날에? 의장을 차고 나오면. 허허"


지휘관이 황당하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다른 애들을 다 때려 눕혀서라도 지휘관과 끝까지 할거랍니다?"


이제 좀 숨이 골라지는 듯 한 론.


"아하 그래서 비서함들을 벌써 다 눕혀놓고 왔다는거네?"


"잠시 쉬게 해놨을 뿐이랍니다~ 지휘관? 후후"


"귀엽지만 귀엽지 못한 행동이야 론.  ...지금 지휘부에 너 밖에 안 남았는데 론을 막을 수 있을까?"


갑작스러운 질문은 마지막 남은 비서함이자 옆에 앉아 손에 서류를 들고 멍하니 구경하는 나가토를 바라보며 한 것이었다.


"이 몸은... 지금 의장도 없고, 칼 한 자루도 없다네 지휘관? 전함이지만 글쎄... 차라리 징계 전에 한번 자리를 해주는 건 어떻겠는가? 보스 잡는 장비를 싹 다 들고 온 저 소녀도 지휘관의 '서약' 함선이잖은가?"


"그래... 서약을 했지... 하...하하"


지휘관이 한숨을 쉬는듯 웃으며 다시 론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론? 비서함도 막는걸 포기했는데... 계속 할거냐? 일단은 진짜 그만했으면 좋겠는데?"


지휘관은 여전히 웃고있었다.


나가토는 알 수 있었다. 이건 '아직' 웃고있는 거다. 분명 웃음기가 줄어들었다.


"나가토씨는 역시 책임있는 자리에 계신 분 답게 똑똑하시네요? 더 다치는 친구들이 없게 잠시만 문 밖에서 망좀 봐주실래요? 후후"


'눈치없는 바보같은 아이구나. 귀엽지만 당돌한지고. 이 몸의 이 감정은... 아마 이건 부러운 감정일 것이다.'


"하아.. 그럼 이 몸은 탕비실에서 차나 마시고 있겠다. 끝나면 불러라 지휘..."


"그냥 있어 IJN 나가토."


"???"


'이 몸을? 지휘관이? IJN을 붙여서 불렀다?'


나가토가 반쯤 일어난 상태로 눈을 똥그랗게 뜨고 멈췄다.


처음 큐브에서 인격을 가진 함선소녀로 다시 태어났을 때나 한두 번 들어본 지휘부식 풀 네임이다.


아마 인간의 아이가 어머니에게 풀 네임으로 불리면 아주 큰일났다고 느낀 댔던가.


'아니 근데 이 몸은 잘못 한 것이 없는데? 왜 이 몸이 혼나는게냐?!'


딴지를 걸 틈도 없이 지휘관의 말이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KMS 론. 계속 하겠는가?"


"계속 하겠다면 막으실 수는 있으시구요?"


얼굴만 웃고있었다. 이미 웃음이 아니다.


나가토는 지휘관이 무언가를 결심한 것을 느꼈다.


'아이고 이 눈치없는 아이!'


론을 향해 다급히 소리쳤다.


"론 그만두거라! 자네 후회할걸세!"


"나가토씨는 나가있기로 했잖아! 이제와서!"


그 말을 듣고 이성을 잃은 론이, 아니 다른 비서함들을 무력화 시키기 전 부터 잃었을지도 모를 론이, 나가토의 얼굴에 주포를 치켜들고 스프링처럼 튀어나갔다.


고작 중순양함 주포다.


함선소녀는 그것으로 싸우지만 솔직히 한두대 맞아서는 아픈 수준이지 생명에 지장은 없다. 심지어 전함에게 중순양함의 주포 따위는.


그래도 얼굴로 날아오면 눈이라도 감을 법 하지만, 나가토는 눈조차 감지 못하고 론의 얼굴을 보고있었다.


시간이 급격하게 느려지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KMS 론. 멈춰."


지휘관이 말을 했다.


무언가 오라가 나온다거나 팔을 뻗거나, 지휘관의 눈 색이 바뀐다거나 하는 극적인 효과는 없었다.


그저 말을 들은 론이 말도 안돼는 급격한 정지를 하고 우뚝 섰을 뿐.


광기에 물든 론과 주포를 사이에 두고 눈을 마주친 채 맞기 직전이었던 나가토는 온 몸의 털을 쭈뼛 세운 채 론과 같이 멈춰버렸다.


주포에 맞을까봐? 화가 나서? 놀라서?


고작 그 따위 감정 때문이 아니었다.


론이 죽었다.


눈이 완벽하게 시체의 눈이 되어있었다.


표정따위는 없이 얼굴 근육이 풀어져 있었다.


세이렌 외의 생물이 죽는 걸 가까이서 본 적 없는 나가토지만 분명 나가토의 눈 앞에서 론이 죽었다.


그리고 서있었다.


시체의 눈으로 나가토를 보고 있었다.


공포.


세이렌과의 격전을 겪어도 죽은 함선소녀를 본 적은 없다.


지금까지 느껴본 중에 가장 큰 공포. 또는 죽음.


그리고 큐브에 의해 존재하는 나가토 또한 지휘관이 '그 힘'을 사용했다는 것을 느꼈다.


평소의 다정한 가족같던 지휘관의 느낌이 아닌, 오히려 세이렌 네임드에게서나 느껴질 법 한 느낌.


...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눈을 돌린다는 선택조차 잊은 채 론의 빨려들어갈 듯한 죽은 눈동자를 마주보며 시간 감각을 상실하고 귀와 꼬리의 털을 있는대로 쭈뼛 세운 나가토 옆에 있던 지휘관이 앞으로 걸어 나가며 말했다.


"론 이제 됐어."


'털썩'


론이 살아났다.


나가토는 분명 그렇게 느꼈다.


그와 동시에 론은 주저 앉았다.


눈동자에 생기가 돌아온다고 느끼는 순간, 론이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나가토는 본능적으로 지휘관 앞으로 튀어 나갔다.


하지만 주저앉은 론의 입에서 나온 그건 분노에 찬 소리나 전투의 함성을 지른게 아니었다.


일어나지조차 않고 앉은 상태에서 바닥조차 제대로 짚지 못하고 더 무너저 내리는 론은.


론은 울고있었다.


아기가 엄마를 찾듯 모든 힘을 다 해 울고있었다.


그렇게 나올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눈에서 눈물을 쏟으며.


지휘관이 나가토의 어께에 손을 얹고 살짝 밀어내며 앞으로 나아가며 말한다.


"아이고... 하지 말라니까.. 말을 안 들어서 거 참.."


슬픈 표정을 지으며 론을 안아주는 지휘관.


론은 이미 큰 소리로 울고 있었지만 지휘관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있는 힘껏 끌어안고 더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나가토, 비스마르크를 불러서 여기로 오라고 해. 그리고 밖에서 구경하는 벨파스트. 들어와서 좀 거들고 독방 준비 하라고 전해"


"예 주인님. 폭주 함선을 막지 못하고 쓰러진 죄에 대한 벌은 지시 이행 후에 받도록 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면서도 론의 옷을 잡고 지휘관에게서 떼어내려는 벨파스트는 왠지 삐져있는 듯 보이기도 했다.


떼어내기를 그만 하라는 듯 론을 안고있던 한 손을 빼서 손바닥으로 벨의 머리를 한대 통 친 지휘관이 말했다.


"얘가 세이렌 잡는 장비 들고 왔는데 니들이 맨손으로 뭔 수로 막겠니. 괜찮아.


독방 기간은 일주일이고, 종이 한 장 넣어주고 말 안들어서 죄송합니다는 절대 쓰지 말고, 다른 애들 패서 죄송합니다. 나가면 사과할게요. 딱 그 말만 써서 내라고 해. 모항 기록엔 남기지 않는다. 이상."


'아니 그래서 이 몸은 왜 같이 혼낼 것 처럼 한 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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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토는 자신의 머리와 귀에 얹어지는 손을 느끼며 기억 속에서 겨우 빠져나왔다.


이 몸이? 떨고있었나? 운건가?


그제서야 자신이 어떤 꼴을 하고 있는지 자각이 생긴 나가토는 훌쩍거리면서 '큐브 적합자'를 올려다 봤다.


"어디 아파?"


지휘관이 침착하려 애쓰는 말투로 물어본다.


그의 얼굴에서 당황이 숨겨지지 않는다.


'무사시가 다른 남자들은 우는 여자를 보면 꼴려한다고 하더니, 순 거짓말인게다. 이 남자가 고자이거나. ...아닌건 알지만.'


"그건 그대가 서약한 함선소녀를 방치했기 때문이다. 흥"


꼬리로 지휘관의 얼굴을 가볍게 찰싹찰싹 때리고 나가토가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대, 밥이나 먹으러 나가자꾸나"


"그랭! 머머글까?"


나가토는 어이가 없어서 힘이 쭉 빠졌다.


이게 내 남편인지 오라버니인지.








1. 끝


왜 철벽 치는지 이유나 큐브 적성을 사?용하면 함순이가 어떤 상태인지는 혹시 2편을 쓰면 나올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