짤 출처 : https://www.pixiv.net/artworks/110022207
어느 때처럼 집무실에서 서류와 씨름을 하던 지휘관은 느닷없는 소리에 눈을 껌벅였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니, 키어사지야.”
“나 랜섬웨어에 감염된 거 같아…….”
그렇게 말하는 키어사지는 시선을 사방으로 향했고, 양 볼이 발그레해져서는 두 손은 가만두지 못했다. 흐려지는 말꼬리도 그렇고, 평소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지휘관은 그걸 랜섬웨어의 증상으로 이해하진 않았다. 대신, 키어사지가 연기에 절망적으로 재능이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지휘관은 자기가 잘못 들은 게 아닌지 다시 한 번 더 물었다.
“랜섬웨어라고?”
“응…….”
지휘관은 몸을 집무의자에 기댔다. 랜섬웨어가 뭔지 알고, 키어사지가 어떤 존재인지 알지만, 그 둘과의 연결고리는 떠오르지 않았던 지휘관은 발생가능성보다도 동기에 주목했다.
얘가 갑자기 왜 이럴까. 모항 인트라넷에 이상한 걸 본 건가. 아님 힌덴부르크랑 어울려다니는 거 같더니만 이상한 걸 주워들었나.
그러나 슬며시 호기심이 생긴 지휘관은 태연하게 물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데?”
“어? 큰일나지…….”
“큰일? 무슨 큰일?”
“내가 갖고 있는 정보들이 모두 사라질지도 몰라.”
지휘관은 팔짱을 끼고서 고개를 과장스럽게 갸웃거렸다.
“무슨 정보? 전투 관련 정보 말하는 건가?”
“그것뿐만 아니라 더 소중한 것들. 내가 모항에서 지낸 기억이나, 나랑 지휘관과의 기억…….”
키어사지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고개를 숙이곤 우물쭈물하는 모습에 지휘관은 더욱 짓궂어졌다.
“아아, 그렇다면 어쩔 수 없네.”
“……뭐?”
지휘관은 체념한 듯 천장을 처다봤다.
“랜섬웨어에 감염되면 치료할 수 없잖아? 어쩔 수 없어. 안타깝다.”
키아사지는 당황해서 지휘관에게 다가갔다.
“아, 아니야. 치료 방법이 있어.”
“흐음. 랜섬웨어에 감염되면 결국 포맷해야하지? 그럼 키어사지는 아카시에게 맡겨둬야겠네.”
지휘관은 일부러 대놓고 일정표를 뒤적거렸다. 그리고 큰 목소리로.
“아. 오늘 일과 끝나고 키어사지랑 있으려고 했는데. 그럼 오늘은 누구랑 ‘데이트’를 할까?”
지휘관은 입가에 번지는 웃음을 참지 않았다. 반면 키어사지는 새빨개진 얼굴로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래, 랜섬웨어가 다 진행되면…… 아주 무서운 짓을 할지도 몰라.”
“무슨 행동?”
여전히 입가엔 미소가 남아있었지만, 그제야 조금 긴장한 지휘관이었다. 혹시라도 이 집무실에서 의장 전개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이제 슬슬 말려야겠다 싶을 때, 키어사지는 비장한 얼굴로 한 손을 들어올렸다.
“그, 그러니까. 검지랑 엄지로 이렇게…….”
“어어, 그건 안된다. 야.”
‘특정한 손동작’을 하려는 키어사지에 기겁하며 달려간 지휘관이 그 손을 막았다.
“다른 애도 아니고 네가 그러면 더 안된다, 그건.”
지휘관이 자기 손을 붙잡을 때 순간 눈을 크게 뜬 키어사지가 겨우 입을 열었다.
“……치료, 해줄 거지?”
지휘관은 아까와 달리 조금 긴장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키어사지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일단 몸을 편하게 해줘, 저기 소파에, 꺄앗!”
지휘관이 키어사지를 한 번에 들어올렸다. 체격차이는 그렇게 크지 않지만, 자기 온몸을 남에게 맡기는 건 키어사지에게 생경한 경험이었다. 응접용 소파에 편히 눕혀지고서도 방금의 상황에 놀랐는지, 지휘관이 물어볼 때까지도 아무 말 하지 못했다.
“그 다음은 뭘 해야 해?”
“그 다음으로는…….”
손가락을 꼬물거리던 키어사지가 간신히 말했다.
“동체가 과열되어 있으니까 냉각시켜야 해. 옷을 벗겨줘…….”
혹여나 지휘관이 물어볼까 조마조마한 키어사지였지만, 지휘관은 진지한 태도로 살펴볼 뿐이었다.
딱히 거짓말을 한 건 아니었다. 키어사지는 스스로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몸이 뜨거웠다. 지휘관의 손보다도 훨씬 더.
키어사지의 복장은 특히 몸을 가리는 부분은 아주 얇았지만, 어떻게 입는지가 난해한 복장이니만큼 벗기는 것도 쉽지 않았다. 목덜미와 팔에 걸쳐있던 집업 같은 부분, 두 다리의 부츠만 겨우 벗겨내고선 진전이 없었다. 당사자가 조금이라도 알려준다면 모를까. 키어사지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결국 지휘관은 한숨을 내쉬듯 말했다.
“랜섬웨어 때문에 상태가 많이 안좋은가봐, 지금 몸이 많이 뜨겁네.”
“으응…….”
“그러니까 옷을 찢을게.”
“뭐? 잠시만……!”
뒤늦게 말려보려고 했지만 지휘관의 말은 동의를 구하는 게 아닌 통보였다. 키어사지는 달라붙은 옷이 늘어나는 걸 느끼곤 황급히 두 손을 내저었지만, 그 신축성도 한계가 있었다.
쯔즈즉- 키어사지의 옷이 지휘관의 손으로 넝마가 됐다. 전체적으로 하이얀 살결. 한 손으로는 감싸지지 않는 유방이 탄력을 유지한 채 쳐졌다. 그 아래로는 매끈한 복근, 그 아래로는
“거, 거기까진 안해도 돼!”
하의까지 찢어내려는 손을 키어사지가 황급하게 말렸다. 지휘관은 여전히 엄격한 얼굴로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해?”
키어사지는 침착하려고 애쓰면서, 열심히 외워온 대본을 발표하듯 더듬거렸다.
“안정, 안정을. 이제 안정을 취해야하니까…….”
“그럼 뽀뽀해줄까?”
“……어?”
“아니면 키스? 포옹? 아니면…….”
문득 키어사지는 지휘관을 올려다봤다. 지휘관은 언제부터인지, 맨처음의 장난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언제부터?”
“처음부터. 키어사지 넌 연기에는 재능 없는 거 같다.”
키어사지는 여전히 얼떨떨한 상태에서 물었다.
“그럼 방금까지는……?”
“음. 끝까지 속아줄 걸 그랬나?”
키어사지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소파에 엉거주춤하게 누운 상태로, 손가락을 매만지고 발가락을 한껏 오므린 상태로 한참 있다가 겨우 말했다.
“……나빴어.”
멋쩍게 뒷머리를 긁적이던 지휘관은 옷을 찢은 건 어쩔 수 없었다고, 속인 게 누구냐고 되물으려고 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 그럴 수 없었다.
“지휘관과의 기억. 나한테 소중한 정보인데. 아무렇지 않다고 했어. 나빴어.”
“아, 그건…….”
“나를 고양이한테 넘기고 다른 여자랑 데이트하러 간다고 했어. 정말 나빴어.”
지휘관은 아둔하지 않았다. 변명이 쓸모 있을 때와 소용 없는 때를 구분할 줄 알았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과 토라진 듯 부풀린 볼. 지휘관은 고민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 키어사지 마음이 풀어질 수 있을까아?”
능청맞은 물음, 그리고 슬금슬금 가까이하는 손. 키어사지는 팔짱을 껴서 노출된 가슴을 가렸지만, 짓눌린 젖무덤이 되려 외설적이었다. 지휘관은 천천히 얼굴을 가까이했다.
“허어. 이거 큰일이네. 대답도 안 하고, 솔직하지 못한 거 보니까 진짜 랜섬웨어인가 본데? 정말 아카시를 불러야…….”
“……해 줘.”
지휘관은 귀를 가까이 댔다.
“뭐어? 안들렸어. 뭐라고?”
키어사지는 똑똑하고 분명한 발음으로 대답했다.
“사.랑. 해줘.”
그리고 지휘관을 자기 위로 잡아 끌었다.
“어엇?!”
“내가 기분이 좋아질 때까지.”
아직도 서운함과 냉랭함이 남아있었지만, 키어사지의 몸은 여전히 뜨거웠다. 요구사항을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지휘관은 잠시 가만 바라보다가, 아까 제지당한 부분. 몸체에 겨우 남아있는 옷을 가리켰다.
“……여기도 벗겨도 되지?”
키어사지는 말없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휘관도 키어사지를 따라 나신이 됐다.
그리고 지휘관은 키어사지를 달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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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꾸준히 안써서 그런가 분량도 잘 안나오고 재미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