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파스트는 여왕 폐하, 혹은 주인님의 부름에 즉각 대응하도록 자기 직전까지도 항상 메이드복을 차려입고 있었다. 그렇대도 자정에 가까운 지금의, 느닷없는 야간 호출은 벨파스트도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불 꺼진 집무실. 창밖으로 들어오는 조명만이 유일한 광원이었다. 그 호출이나 어두운 집무실보다도 더 난데없는 건 지휘관의 말이었다. 

 

  “고생 많았어, 벨파스트.”

 

  “……주인님?”

 

  벨파스트는 자연히 반문했지만 지휘관의 말은 그치지 않았다.

 

  “벨파스트가 보기에 내가 모자란 모습도 많았고, 또 가끔은 못볼꼴 보여주기까지 했을 텐데.”

 

  “저, 주인님?”

 

  “그동안 꾹 참고 견뎌줘서. 또, 옆에서 많이 도와줘서 고마웠어.”

 

  지휘관은 벨파스트가 끼어들 여지를 주지 않았다. 

 

  “그리고 미안해.”

 

  “……네?”

 

  “더 훌륭한 지휘관이 되어야 했는데, 그럴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아서.”

 

  “주인님,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지…….”

 

  의자에 앉아있던 지휘관은 가볍게 손을 들어 벨파스트의 말을 막았다. 벨파스트는 경황없는 와중에도, 친애하는 주인님의 의사에 따라 잠자코 듣기로 했다. 

  하지만 의문은 멈추지 않았다. 왜 이 밤에 갑자기, 그것도 자기만 따로 불러 이런 말을 하시는 걸까?

 

  벨파스트의 복잡한 머리가 정리된 건 지휘관의 다음의 말부터였다. 

 

  “가끔은 그런 생각도 들더라고. 내가 아니라 좀 더 훌륭한 사람이 지휘관이었다면 어땠을까.”

 

  벨파스트가 숙이고 있던 고개를 퍼뜩 들었다. 

 

  “그랬다면 우리 각 진영 함선소녀들, 그리고 벨파스트도. 좀 더 편하고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더라고.”

 

  말만 않았을 뿐, 벨파스트의 맑은 두 눈이 크게 뜨였다.

 

  “글쎄. 사실 지금 와선 너무 늦은 후회겠지?”

 

  그 말을 하는 지휘관의 시선은 방 한구석에 머물렀지만, 그 초점은 이 공간 너머 아득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도 다른 함선소녀들보다 벨파스트에게는 먼저 말하고 싶더라고.”

 

  벨파스트와 지휘관은 단순한 주종관계나 상하관계에 그치지 않았다. 로열 네이비의 메이드장이라는 직위 이상으로 지휘관을 따르고, 보필하며, 곁에 있어주던 벨파스트였다.

 

  “그동안 정말 고마웠고.” 

 

  그렇기에 벨파스트는 지휘관의 말로부터 언젠가 반드시 찾아올 미래, 하지만 전혀 상정하지 않은 순간을 떠올렸다.

 

  “정말, 많이 미안했어.” 

 

  이별. 

  지휘관이 모항을 떠나는 것.

  주인님이 다른 곳으로 가는 것. 

 

  “음, 좀 더 멋지게 말하고 싶었는데. 교양이 부족해서 그런가 뻔한 말만 반복하네.”

 

  멋쩍게 웃는 지휘관이지만 벨파스트는 따라 웃을 수 없었다.

 

  상부지시로 타 함대 발령? 모종의 일로 인한 불명예 전역? 혹은, 군 복무를 마치고 민간인으로 예편? 


  짧은 찰나에 벨파스트의 뇌리에는 적잖은 경우의 수가 스쳐갔다. 그리고 벨파스트는 피가 식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도, 벨파스트면 내 마음 알아주지 않을까 싶은데. 아, 지금 이것도 너무 기대고 있구나.”

 

  ‘지휘관의 전역’은 함선소녀 사이에서의 시덥잖은 농담거리였다. 납치해서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도망칠 거다. 출입문을 물리적이고 항구적으로 봉쇄할 테다. 정략결혼을 해서라도, 서류 조작을 해서라도 막을 거다 등등.


  당사자에 따라 과격하거나 감정적인, 때론 군법 위배 혐의가 다분한 행위도 있었지만 대체로 필사적으로 막겠다는 게 중론이었다. 벨파스트는 그런 화제에 굳이 끼어들진 않았지만, 자신의 생각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 벨파스트는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었다. 

 

  “벨파스트도, 안 그래도 메이드장으로서, 퀸 엘리자베스의 시중도 들어야하니까 한창 바빴을 텐데.”

 

  정말 가시는 거냐고 물어볼 순 없었다. 스스로가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걸 직감으로 알았다.

  애초에 벨파스트는 입을 열 수 없었다. 걷잡을 수 없는 비명이 터져 나올지도 몰랐다.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었다. 당장 지휘관을 억세게 붙잡아 버릴 것만 같았다. 

 

  “매번 티 타임 챙겨줬던 것도 그랬고, 서류 업무까지 보좌해주고, 시키지 않았는데도 청소까지 해줬고.”

 

  벨파스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저, 지휘관의 모습을 두 눈으로 남김없이 담아내는 것뿐이었다.

 

  “근무하는 날이 아닌 데도 나와서 이것저것 해주고. 음, 이 밤중에도 부르니까 바로 왔잖아.”

 

  주인님께서 떠나신다면 언제일까? 

  내년? 다음 달? 보름 후? 

  다음 주? 나흘, 글피?

  내일? …… 지금?

 

  “벨파스트의 그런 헌신, 절대 잊지 못할 거야.” 

 

  아니, 아닙니…….”

 

  벨파스트의 반사적인 대꾸는 미약한 신음에 가까웠다. 그 말은 지휘관에게 가닿지 못했는지, 지휘관은 차분하게 말했다. 

 

  “고마웠어, 벨파스트.”

 

  제, 제가 더…….”

 

  대답은 문장이 되지 못했고, 아무런 의미를 전하지 못했다. 그저 자신의 혼란스러움만 스스로에게 들려줄 뿐이었다. 

 

  벨파스트는 자타공인의 유능한 메이드였지만, 지금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았고, 그럴 일 없을 거라고 여겼던 상황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 수 없었다. 가시는 길을 의연하게 배웅해야 할지, 가지 말라고 뒤늦은 부탁을, 호소를, 애원을 해야 할지. 웃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아니면 슬퍼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벨파스트는 당연히 늘 함께 있을 거라 여겼던, 하지만 곧 떠날지도 모르는, 그리고 다시 못 만날지도 모르는 주인님의 마지막 모습을 두 눈에 오롯이 담아내고자 했다.

 

  “날씨가 많이 추우니까. 몸 관리 잘하고.”

 

  눈을 감을 수도 없었다. 그 잠깐 사이에 지휘관이 사라질까봐 두려웠다.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벨파스트는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없었다. 지휘관이 떠나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되는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음. 할 말이 많았던 거 같았는데. 막상 생각이 안 나네.” 

 

  지휘관이 하려던 말보다도 더 할 말이 많은 쪽은 벨파스트였다. 첫만남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휘관과 함께했던 나날들. 그동안의 일상들. 자신의 불찰로 인해 휘하 메이드가 저질렀던 크고 작은 실수들. 

  그리고 지휘관과 조금씩 가까워지며 품었던 좋았던, 친근했던, 끝내 연모하던 마음.

 

  “남은 시간도 이제 없고.”

 

  지휘관의 말은 벨파스트에게 그 모든 감정을 축약해서 전달할 것을 요구했다. 벨파스트는 딱 한 마디만 허락된다면, 지휘관에게  전하고픈 그 한 마디를 위해 애써 입을 움직였다.

 

  “저, 주인님. 저, 사ㄹ…….”

 

  “벨파스트.”

 

  벨파스트의 미력한 목소리는 지휘관의 부름에 묻혔다. 전달이 끝내 좌절당했다면, 그 마지막 모습이라도 아로새기려는 하는 벨파스트였다. 

  그러나, 왜인지 지휘관의 얼굴조차 이제 흐리게 보였다.

 

  “그러니까.”

 

  벨파스트는 불가능을 기원했다. 

 

  이대로 시간이 멈춰달라고. 제발, 주인님이 아무런 말도 하지 말아달라고.

 

  그 소망은 이뤄지지 않았다.

 

  뎅, 뎅- 

 

  모항 집무실에 있던 괘종시계가 자정을 알렸다. 그리고 지휘관이 말했다.

 

  “내년도, 아니, 올해도 잘 부탁할게!”

 

  짐짓 활기찬 지휘관의 어투였지만 대답은 즉각 돌아오지 않았다. 지휘관은 벨파스트를 올려봤다. 벨파스트의 대답은 평소보다 두 박자나 느렸다. 

 

  “……네?”

 

  “어, 그니까 작년 고마웠고 올해도 잘 부탁한다고…….”

 

  어두운 집무실은 서로의 표정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저, 정말입니까……?”

 

  그래서 지휘관은 벨파스트의 반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뭐, 그렇지?”

 

  “이 시간에, 저를 부르신 게…….”

 

  이어지는 내용도, 벨파스트의 말에 서려있는 물기도 깨닫지 못했다.

 

  “많이 도와줬으니까. 그래서 특별히 미안했고, 고마웠고, 앞으로 더 잘해보자고. 그러려고…….”


  지휘관은 당황 속에서 벨파스트를 찬찬히 바라봤다.

 

  “벨파스트?”

 

  “왜, 왜…… 지금, 이런 말씀을……?”

 

  “아니, 올해 마지막 날이었잖아. 그래서, 그런 건데…….”

 

  이런 면에 조금 둔감한 지휘관은, 벨파스트의 얼굴에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뒤늦게 발견했다.

 

  “벨파스트? 너 울어? 왜?”

 

  눈물이 들통난 벨파스트는 차마 말하지 못했던 걱정을 흘렸다.

 

  “저, 저는, 주인님께서 작별…… 떠나시려고, 말씀을 하시는 줄…….”

 

  그마저도 울음으로 흐려졌다. 지휘관은 뒤늦게 앞뒤 상황을 이해했지만, 이미 벨파스트의 울음은 터져 흐르고 있었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동안 날짜를 잊을 순 있지만, 그게 하필 한 해 마지막이었던 것. 지휘관이 일부러 분위기를 잡은 것. 서로의 오해는 풀렸지만, 잠시나마 최악을 가정했던 벨파스트의 눈물은 쉽게 그치지 않았다.

 

  그래서 지휘관의 새해 첫 일과는 울먹이는 메이드장을 달래는 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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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년 마지막을 기념하고자 짧게 써봤음.


 벽붕이들 모두 연말 잘 마무리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