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급은 너무 늦은 시기에 나와서 큰 활약도 없고 거의 바로 퇴역한 바람에 쓸 건 많이 없음


그래도 이번 이벤트의 상징인 알래스카급에 대해서 알아보자




우선 알래스카급은 통상파괴전 대비, 적 순양함 때려잡기 등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서 건조하기로 했음


당시 독일은 흔히 포켓전함이라고 알려진 도이칠란트급을 건조하고 잠재적 적국인 일본이 기존에 가진 중순에 더해서 독일처럼 포켓전함 비슷한 거 뽑으면 좆된다는 생각에 과학연구를 돌리기 시작함


이 때 돌린 미래에 알래스카급이 되는 연구는 전간기에 이루어진 미해군의 마지막 순양함 연구이자 미해군의 첫 무제한 설계이자 가장 조약형 설계에서 벗어난 배라고 할수 있음


순양함과 전함의 애매한 사이에 있는 게 알래스카급의 특징인데 워싱턴해군조약은 바로 그걸 가장 막고 싶어 했기 때문임



1938년 이루어진 연구는 12인치와 8인치급 중순양함에 대한 연구였는데 이 중 12인치만 가능성있다고 판단했음


왜냐하면 타 해군도 8인치급 이상 펀치를 내는 건 가지고 있고 10인치는 부족하기에 결국 12인치만 가치있다고 여겼기 때문임



1938년 해당 연구안이 승인됐지만 FY40에 12인치 순양함이 등장하지 않는 걸로 보아서는 취소된 걸로 보임


그렇지만 어쨋든 전함보다는 덜 비싸지만 중순양함보다 더 강력한 순양함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하고있었기에 해군위원회(General Board)는 순양함 프로그램에 CA2라고 명명한 대형순양함을 포함시킴


CA2가 포함된 리스트에는 CA1, CL, CLD가 포함됐는데 각각 다음과 같았음



차후 볼티모어급이 되는 개량형 위치타급이 CA1



클리블랜드급이 되는 1만톤급 순양함 CL



마지막으로 애틀란타급으로 추정되는 5/54로 무장한 방공순양함인 CLD


CA2는 1939년 말부터 각종 설계안이 나오기 시작했으며 CA2A~2I까지 총 9개의 안이 먼저 나왔지만 최종적으로 1940년 1월 CA2A~CA2D까지 이르는 4개 설계안이 보고됨

 


표를 보면 알수 있듯이 가장 가벼운 A안이 25,500톤이며 가장 무겁고 화력이 강한 D안이 38,700톤이었음


문제라면 배수량도 진짜 전함처럼 묵직하고 12인치도 12문이나 장착한 D안을 3척 건조한다면 아이오와급을 2척이나 건조할 수 있다는 사소하고 앙증맞은 찐빠가 벌어진다는 점이었음

 

그리고 가장 가벼운 A안도 진짜 전함인 뉴욕급이나 네바다급에 맞먹는 댇지라서 중간에 다른 대안을 연구하기 시작함

 

12인치 2연장 함포면 대강 8인치 3연장 함포랑 무게가 비슷하다→이러면 신형 중순양함에도 넣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논리 회로를 탄 해군위원회는 해군 건조수리국(BuC&R)에 “개량형 위치타급(차후 볼티모어급)에 함 8인치나 12인치 쑤셔박은 설계안 함 갖고 와라”는 지시를 내리고 여기서 또 다른 설계안인 1~4B안이 나오게 됨

 


1~4B안까지 나온 후 해군위원회는 CA2의 4가지 계획안과 새롭게 만든 조금 더 작지만 아무튼 12인치 달리는 설게안을 모두 통합하여 청문회를 40년 2월 21일에 열었음

 

그동안 대가리 굴린 결과물을 모두 모은 결과 A~R안(I안 제외 및 MM안 포함)까지 총 18가지 다양한 설계안이 모임


그리고 각 설계안 중 일부는 다음과 같았음


A~F안 : 8인치 12문으로 무장

H안 : 순양함으로 개장을 통해 12인치로 무장

M안 : 10인치로 무장하고 10인치에 대응방어

MM안 : 12인치로 무장하고 10인치에 대응방어

N안 : 기존 CA2A안

O, P안 : MM의 방호력을 12인치 급으로 상승

Q, R안 : 기존 CA2B및 CA2D안


청문회에 참석한 이들은 CA2 시제안 사이즈를 보고 놀랐으나 어쨋든 균형잡인 12인치 순양함, 균형잡힌 재래식 순양함 그리고 12인치를 탑재하지만 8인치까지만 방호되는 순양함 중 하나만 고를 수 있었음

 

의회가 CA2를 전함으로 간주해서 건조가 잘릴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참석했던 해군 병기국(BuOrd)이나 함대훈련부(Fleet Training Division) 모두 CA2를 선호했지만 전쟁계획부(War Plans Division) 혼자 12인치를 탑재하지만 8인치까지만 방호되는 순양함을 선호했음


그거니까 볼티모어에 12인치 올리길 원했다는 얘기임


스파링 개최자인 해군위원회는 M안을 선호했으나 아쉽게도 미해군에게 10인치가 없는 관계로 MM안을 기초로한 초안을 킹 제독이 승인했음

 

그러나 욕심 많은 미해군 때문에 배의 방호력이 바뀌는 대참사가 발생하게 되고 결국 상대적으로 균형잡히고 경제적이었던 MM안은 나가리 되고 CA2안이 다시 돌아오게 됨

 

킹 제독 주관으로 7월 3일 청문회가 다시 열리고 더 늘어난 설계안을 가지고 투표가 진행됐는데 대부분은 12인치 방호가 가능한 CA2B에 많은 표를 던졌으며 일부가 CA2C에도 표를 주기도 했음

 

하지만 CA2B나 CA2C모두 그돈씨이기 때문에 해군위원회는 타협으로 CA2G를 선택했음

 

12인치 2연장 및 3연장 포탑 각 1기가 선수에 그리고 3연장 포탑 1기가 선미에 있는 CA2G안을 바탕으로 드디어 1941년 1월부터 상세 설계에 들어감

 

그리고 6개월 뒤 완성된 설계가 나오기 전까지 몇 가지 변경 사항이 생겼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은 바로 기존 2연장 포탑을 3연장으로 교체했다는 점임

 

설계 당시 뉴욕 조선소에서 2연장을 3연장으로 교체하자고 건의했으나 BuShip(해군 함선국)이 배수량이랑 장갑탄약고가 더 필요할 것 같다고 거절했지만 설계가 끝날 때까지도 함 중량에 여유가 있어서 3연장으로 변경이 가능해졌음

 

3연장포탑 3기로 바뀐 후 CA 2는 CB로 지정됨


1940년 7월 19일 함대확장법(양대양 해군법)에 따라 알래스카급 6척이 건조 승인을 받았으며 동년 9월 9일 뉴욕 조선소에 6척 모두 수주를 맏겼음


그리고 6척은 순서대로 다음과 같이 명명됐음

CB-1 알래스카, CB-2 괌, CB-3 하와이, CB-4 필리핀, CB-5 푸에르토리코, CB-6 사모아


이후 1942년 4월 철강 부족 사태 때 1, 2번함만 건조 중이고 나머지 4척은 모두 건조 중지상태였으며 동년 5월 3번함만 작업을 진행하라는 명이 떨어진 후 나머지 3척은 6월 24일에 건조가 취소됨



은 확실히 늦은 시기에 취역한 배가 맞음


1945년 1월에 필라델피아를 떠나서 2월 진주만에 도착해 태평양 함대에 합류한 걸 보면 늦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음


가장 처음으로 배속된 부대는 58TF인데 그곳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배들이 많이 있었음






샌디에이고, 세인트 루이스, 인디펜던스, 엔터프라이즈, 인트레피드 그리고 요크타운까지


3월 13일 큐슈와 시코쿠를 향해 출발했고 3월 18일 큐슈와 시코쿠 일대에서 벽람 향우회와 함께 작전을 진행하다가 CV-13 프랭클린이 카미카제 공격으로 대파되자 화재 진압 및 부상자 구호 등을 행했으며 이후 대파된 프랭클린을 엄호하기 위해 자매함인 알래스카와 함께 3월 22일까지 기존 부대에서 잠시 빠짐


58.4TF에 합류한 괌은 오키나와 인근으로 이동했으며 3월 27~28일 미나미다이토 비행장을 포격한 후 5월 11일까지 난세이 제도에서 활동하는 항공모함을 엄호하는 임무를 맡았음


6월 9일에는 자매함 알래스카와 함께 오키노 다이토를 90분 동안 포격했고 이후 6월 13일 산 페드로만에 도착해 잠시 휴식을 취함


동년 7월 자매함 알래스카와 95TF를 구성해 동중국해와 황해를 깽판치는 임무를 맡았는데 해당 부대에는 역시나 익숙한 배들이 함께했음



클리블랜드, 컬럼비아, 덴버, 몬트필리어 그리고 9척의 구축함과 함께 7월 16일부터 8월 7일까지 동중국해와 황해 일대에 레이드를 실시했음


비록 큰 성과없이 종료된 작전이지만 종전 후 괌은 일종의 개선식을 동중국해와 황해 일대에 실시했음



1945년 8월 30일 : 오키나와를 떠나 황해 일대 초계 시작

1945년 9월 1일 : 칭따오 도착

1945년 9월 4일 : 대련 도착

1945년 9월 5일 : 옌타이 및 포트 아서 일대 항행

1945년 9월 8일 : 한국의 진센(현 인천)에 정박

1945년 9월 17일 : 한국 인천에서 1만 마일 항주 기념 행사 진행




인천에 정박한 9월 8일의 다음날인 9월 9일에 경성에 가서 해군을 대표해서 토마스 C. 킨케이드 제독이 그리고 맥아더를 대리해서 존 리드 하지 중장이 마지막 조선총독부 총독인 아베 노부유키의 항복을 받았음


이후 다시 본토로 돌아간 괌은 1947년 퇴역할 때까지 뉴저지에 머물렀고 모스볼 처리된 후 1960년 함선 목록표에서 제적됨으로서 함생을 마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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