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지휘관은 뭔가 이상하다.

겉보기에는 내가 보기에도 충분히 멋있다고 해야할까? 꾹 눌러쓴 군모 아래로 보이는 얼굴 형태만으로는 꽤 잘 생겼으며 거기에 동안이라고 부를 만큼 앳되보이기까지 하다. 다만 실제로 맨 얼굴을 본 자는 아무도 없다는게 이상할 따름이지만, 안보이는 부분에 흉터라도 진게 아닌가 하고 다들 굳이 이야기 하지 않는다. 굳이 지휘관의 역린일지도 모를것을 건드리고 싶지는 않을테니까.

큐브라는 것 때문일지는 몰라도, 대부분의 함순이들은 높은 확률로 지휘관에게 쉽게 푹 빠지며(아쉽게도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만. 아마도.) 어떤 함대에서는 매일같이 다양한 이유로 욕망을 이기지못한 함순이들로부터 어떻게든 살아남기위해 몸부림치는 지휘관도 있다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 함대는 이상하게도 지휘관과의 염문이라던가 그렇고 그런 핑크빛 분위기조차 안느껴진다.

지휘관 바라기인 다이호도, 모성이 흘러넘치는 그로세도, 사관학교부터 알고 지냈다던 뉴저지도,  심지어 비서함 다음으로 지휘관을 모실 메이드대 조차도 그 누구도 그와 '이러쿵 저러쿵 했다'는 소문이 이 모항에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간간히 모항의 함순이들에게 지휘관에 대해서 물어보곤 한다. 설마 내가 모르는 지휘관의 일면이 있는지. 이 절제된듯한 기류의 원인이라도 있는것인지.

"지휘관 말이냥? 그...나는 아무것도 알러줄게 없다냥! 아무리 돈미새라 불리는 아카시라도 넘지 말아야할 선은 확실히 알고있다냥! 이거는 돈이 문제가 아니다냥!"

"허니 말이지. 어지간한건 우리들보다 오래 알고지낸 네가 더 잘 알고있지않아? -------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모르는게 좋을걸."

"주의요망. 메트르를, 너무 깊이 알려하지 마십시오."

"지휘관에 대해 모르는 점? 부디 수수께끼로 내버려둬라. 기어코 캐고 싶다면 말리지는 않겠다. 그에 대한 댓가는 결코 싸지 않을거란건 알아두도록."

"계약자에 대해서라...미안해, 얘기해 줄 수는 없겠군. 그런 계약이 맺어졌으니 말이야."

다들 이런식이다. 분명 나는 모르는 무언가를 몇몇 함순이들은 알고있다. 하지만 나에겐 절대로 알려주려 하지않는다. 오히려 이 주제를 피하려고 하는것처럼 느껴진다. 소재가 소재인만큼 직접 알려줄 수는 없으니, 스스로 확인하라는 뜻인걸까.

이 함대의 지휘관은 확실히 유능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도 한명의 남자. 수백명의 함순이들이랑 부대끼면서 서로 분위기조차 타지않는게 말이 된단 말인가. 큐브 적성과 성욕을 맞바꾸기라도 한겐가. 아니면 알고봤더니 정말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못생기기라도 했단말인가? 의문만 늘어간다.


***


어느 날 저녁.

야간 업무가 시작되기 전, 메이드장에게 살짝 무리일수도 있는 부탁을 했다. 00시까지 집무실 근처에서 대기중일 메이드들을 오늘만 물러줄 수 있냐고. 지휘관과 비밀 이야기를 하고싶다는게 이유이다.

"정말로 괜찮겠습니까?"

메이드장이 묻는다. 그 질문의 의도는 내가 생각하던 것과 조금 다른것으로 보였다. 단순히 함대의 보안을 생각하는게 아닌, 정말로 '내가' 괜찮겠냐는 것.

아무래도 여왕 폐하나 지휘관에겐 알리지않은 행동이 될테니 그걸 신경쓰는걸까.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인댔던가. 그저 궁금증이 더 깊어지기전에 깔끔하게 해결을 보고싶을 뿐이다.

그렇게 대답하니 메이드장은 한참을 고민하더니 어렵사리 승낙해주었다. 비밀 유지가 가능한 범위내에서 다른 메이드가 아닌 자신이 직접 주변에 있는것을 조건으로. 메이드장만이라면 괜찮겠지.


모든 준비를 마치고, 업무를 위해 집무실 앞에 선다.

똑똑

"각하, 오늘의 남은 일정입니다만..."

"런던이구나. 들어오세요."

맑은 음색의, 하지만 무언가 불길한 느낌의 목소리가 집무실 안에서 들려왔다.

그가 이곳에 취임할 때부터 지금까지 비서함으로서 임무를 수행해왔다. 그럼에도 나는 항상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 불길함이 느껴지곤 한다. 보통은 기분탓인가?로 끝났고 큰 문제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신경쓰진 않는다만 오늘은 좀 더 그 느낌이 진하다.

"야간 순찰...은 오늘도 퍼시어스인가요. 슬슬 한번정도는 쉬게 해주시는게..."

"참고하도록 하지요. 주말전까지 밤에 활발한 함선 리스트를 부탁드립니다. 확인후 다음주부터 해당하는 분으로 재배치하도록 하지요."

"야행성이라...당장 떠오르는 분들이 몇 있기는 합니다만, 내일 오전 회의때 논의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왕 폐하의 서명이 떨어지는대로 보고드리도록 히겠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

"오늘의 일정은 이걸로 끝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각하."

"고생했어요. 오늘도 하루가 끝났군요."

시간은 어느새 23시, 늘상 하는 하루 마무리를 짓는 대화. 그러나 오늘만큼은 부탁한대로 집무실 근처에는 배치된 인원이 없다. 메이드장은 가능한 멀리서 대기하겠다고 했었으니 적어도 육성만으로 비밀 이야기를 듣기엔 최적의 순간이리라.


"...각하. 다소 외람된 질문입니다만, 각하께서는"

"런던,"

그 순간, 오한이 일었다. 목소리만으로도 오한을 느낄수 있다는걸 함생 몇년간 처음 알았다. 그에게서 나오는 말은 분명 '경고'였다.

"뭘 묻고 싶은지는 알겠습니다만 그 이상은 말로 꺼내지 않는게 좋을거에요."

"아니오, 이번만큼은 꼭 여쭤보고 싶습니다. 수 년간 비서함으로 각하를 모셔왔습니다. 이 곳의 유일한 남성이신 분이 그 정도의 시간동안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건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이상하다 생각했습니다."

"런던."


보다 강한 어조. 마지막 기회란 것인가. 그 앞으로 한 발 내딛는다.

"어째서, 그런 일이 가능한 것인지. 혹시 각하께서는"

그 말을 끝으로 나는 말을 더 이상 이어가지 못했다. 단순히 말이 잘린것이 아니었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지휘관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평소에는 항상 쓰던 군모가 지금은 책상 위에 올려져있었다. 대체 언제부터...?

그렇게 우연일지 필연일지 지휘관의 맨 얼굴을 본 순간, 그동안 품었던 의문들이 빠르게 풀리기 시작했다. 왜 아무도 '지휘관의 맨 얼굴'에 대해 모르는지 - 아니, 알아도 얘기할 수 없었는지. 어째서 그 누구도 지휘관을 덮치지 못했는지.


그 군모 아래에 가려졌던건,

세상 모든걸 다 겪은게 아닌가 싶을정도로 공허한 눈동자와,

그리고 그 눈동자 안쪽으로 보이는


나를 향한 수많은















"...ㄴ? 런던?"

".....? ......벨.....?"

정신이 희미하게 든다. 나는 아직 지휘관의 집무실이었고 쓰러진 나를 메이드장이 어느새 와서 부축해준 모양이다. 그 먼 거리를 그렇게나 빨리 왔다고? 메이드란건 대체 무엇인지.

정신이 아직 흐릿한 상태에서 지휘관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가 앉아있는 의자는 뒤돌아져 있었고 군모는 다시 그의 머리에 씌여져 있었다.

"...대답은 되었겠죠. 벨파스트, 런던을 숙소까지 부탁드립니다."

그 말을 끝으로 집무실엔 침묵이 이어졌다.

"...가시죠."

메이드장의 부축을 받으며 조용히 집무실을 나왔다. 극도로 확대된 알수없는 불안감과 두려움 때문에 다리가 후들거렸으나 어떻게든 발걸음을 옮겼다. 부축받으며 옆을 보니 메이드장은 식은땀을 흘리며 떨고있었다.

그랬구나. 그녀 역시 '봐버린 것'이었다.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나보다도 훨씬 오래전에. 어쩌면 한번이 아닐지도 모른다. 분명 아카기도, 뉴저지도, 론도, 조금이라도 호감을 품어버렸기에 지휘관을 습격했을지도 모르는 다른 함순이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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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 시작할땐 분명 고독한 초식 지휘관을 어떻게든 맛있게 따먹으려고 칼갈던 함순이들 이야기였는데?




아무리 고쳐도 뭔가 이상한게 생기는거보면 재주가 없는거같다 반성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