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있고 이별도 있고 눈물도 있네~!"


머나먼 타국 생활을 하다보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생기고 그것이 쌓이고 쌓이면 향수병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극도로 단련된 정신만 있다면 향수병은 걸리지 않는다!


"세상살이 모두 다 네박자 쿵짝~."


라고 생각했던 내 정신은 머나먼 타국 생활에 지쳐갔고 그러던 어느 날, 한계점에 달해있던 나는 우연히 알고리즘으로 뜬 트로트를 영접. 어릴적 차를 타며 듣던 추억과 그리움에 내 정신은 무너졌고 정신을 차려보니 내 재생목록에는 수많은 트로트들로 가득했다.


지우기도 뭣해서 노동요로 듣던 것이 가면 갈수록 입에 조금씩 붙더니 나중에 이르러서는 지금처럼 무의식적으로 흥얼거리는 수준까지 오게됐으니 얼과 혼이 담긴다 라는 말이 이런 뜻인가 싶다.


"사랑은 아무나 하..."

"질문, 주인이 가끔 흥얼거리는 노래의 정체가 알고싶다."


아무래도 나도 모르게 또 흥얼거리고 있었나보다. 비서함 업무를 하던 가스코뉴의 말에 그녀의 심기를 거스른 듯하여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자 가스코뉴는 고개를 좌우로 살짝 저었다.


"부정, 내가 듣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님. 주인이 방금 부르던 노래, 노래의 출처를 확인하고 싶을 뿐."

"노래? 아."


갑자기 트로트에 대한 건 왜 묻는거지? 역으로 내가 물어보자 가스코뉴는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특유의 멜로디와 가사가 감정을 고조시킴. 처음에는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였으나 어느덧 나도 동화됨. 그러니 이에 대한 해답이 필요."


아무래도 무의식적으로 부르던 것이 뇌리에 남았나보다. 눈빛을 반짝이며 대답을 촉구하는 가스코뉴의 반응에 머리를 매만진 나는 제목과 가사에 대한 의미를 짧게 설명해줬다.


"이해 완료. 주인의 나라에는 그런 노래들이 있다니. 가스코뉴, 매일 신의 뜻을 기리는 노래만 들어서 정보 부족했음."


리슐리외, 평일 주말 안가리고 찬송가를 틀어놓는 거냐... 그녀의 신실함과 경건함에 혀를 내두르자 가스코뉴가 내 손을 붙잡았다.


"주인, 그런 노래가 그것만 있을거라 판단하지 않음. 지금 당장 자료 수집에 응해줄 것을 요구."

"잠깐 가스코뉴, 아직 일과 시간 안 끝났어!"


당장이라도 내 손을 붙잡고 나가려는 가스코뉴를 진정시킨 나는 일과 후에 더 알려주겠다는 확답을 주었다. 도대체 애가 얼마나 흥에 고픈거야.


그렇게 나와 가스코뉴의 파란만장한 트로트 탐방기가 시작되었다. 비서함 근무 담당 날은 물론 휴일, 평일 개인정비 시간을 가리지 않고 나와 가스코뉴는 트로트를 부르러 모항 노래방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고 처음에는 익숙치 않았던 가스코뉴는 점차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일취월창한 실력을 뽐내었다.


그렇게 우리는 노래방 기기에 존재하는 모든 트로트를 섭렵하기에 이르렀고 우리가 모항 노래방에 상주한다는 걸 알아챈 아카시가 노래방 기기를 최신 기기로 바꾸기 전까지 가스코뉴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오죽하면 식지않는 열정을 불사르며 노래방 점수빵까지 할 정도였다.


"오, 97점이라니. 이거 이러다가 지겠는걸."

"긍정, 오늘 주인의 지갑은 가스코뉴의 것임. 지금이라도 패배를 인정하고 조용히 슈넬치킨을 헌납할 것을 요구함."

"어림도 없지. 97점, 가뿐히 넘어보이겠어."


그렇게 말하며 재생버튼을 누른 나는 흘러나오는 리듬에 맞춰 열창을 했고 결과는 97 대 96으로 패배했다.


"굴복할 줄 아는 것도 전략. 오늘도 감사히 맛있게 먹겠음."

"크흑, 한끗차이 였는데!"


의기양양한 가스코뉴의 뒤를 따르며 통장 잔고를 계산하고 있는 내 눈앞에 무언가 들어왔다.


"받아라 주인."

"이게 뭐야?"


가스코뉴가 건넨 것은 노란색 초대장. 이게 무엇인지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자, 가스코뉴의 설명이 이어졌다.


"아이리스에서 개최하는 축제의 초대장이다."

"오, 나 초대해주는거야?"


고개를 끄덕이는 가스코뉴의 앞에서 초대장을 뜯어본 나는 날짜를 확인한 후, 초대장을 집어넣었다.


"이 날은 스케줄이 없기는 해. 마침 할일도 없었는데 잘됐네."

"확인, 열심히 준비하도록 하겠음."


준비? 그녀의 실력이라면 웬만한 참가자들은 다다르지도 못할 경지일텐데 설렁설렁하지. 웃으며 설렁설렁해도 이길거라는 격려를 마치고 돌아서려는 순간, 가스코뉴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나를 꿰뚫었다.


"초대와 내기는 별개, 주인은 결과를 회피하지 말 것."


안 들킬 수 있었는데 아깝네.


*


"...이야, 본격적이네."


며칠 뒤, 아이리스 진영숙소에 도착한 나는 설치된 특별무대를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한쪽에 설치된 무대는 마치 고향의 몇십년 동안 주말 황금시간을 꿰찬 모 프로그램을 떠올리게 할 정도였는데 이정도면 아이리스 측에서 얼마나 이 축제에 기대를 하고있는지 알 수 있었다.


"열심히 준비해보았는데 어떠신지요?"


목소리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리슐리외가 지휘냥 하나를 안고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리슐리외의 쓰다듬을 받으면서 저 큰 가슴에 파묻힌 지휘냥을 선망의 눈길로 살짝 본 나는 이어지는 리슐리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가스코뉴가 주도하는 첫 축제인 만큼 최선을 다했답니다. 그 아이가 무언가에 그리 열중하는 모습은 처음이었거든요."

"가스코뉴가?"


내 물음에 리슐리외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자초지종을 듣자하니 처음으로 나와 트로트를 신나게 부른 날, 가스코뉴는 갑자기 리슐리외를 찾아가 축제 제안을 했고 몇 번이나 끈질기게 찾아와 제안을 건넸다고 했다.


"그 아이가 그렇게 열정적인 모습은 저도 처음봤어요. 혹시 지휘관님은 그 아이가 왜 그렇게 빠졌는지 알고 계신가요?"

"글쎄, 나도 잘 모르겠네."

"그러신가요. 심사위원으로 오신 지휘관님이라면 아실지도 모른다 생각했는데 지휘관님도 모르시는군요."

"그럼 당연히...뭐?"


리슐리외의 폭탄 발언에 깜짝놀라며 리슐리외를 바라보자 리슐리외가 몰랐냐는 표정을 지으며 초대장을 확인해보라고 하였고 나는 서둘러 초대장을 펼쳐보았다.


초대장에는 분명하게 나를 대회의 심사위원으로 초대하겠다는 내용이 분명 담겨있었다. 이런 중요한 내용을 이제 확인하다니.


"이게 무슨..."


내 허망한 중얼거림은 소음에 가려 사라졌다.


*


"지금부터 모항노래자랑을 시작하겠다냥!"


아카시의 선언과 함께 만쥬 군악대의 흥겨운 연주가 울려퍼졌고 이곳저곳에서 환호소리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심사위원 석에 앉아있는 나는 좌불안석이었지만 말이다.


"오늘의 심사위원이다냥. 모항을 위해 불철주야 일하는 지휘관이다냥!"


아카시의 소개에 맞춰 자리에서 일어나 관중석을 향해 인사를 하자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적당히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자 점차 박수 소리가 잦아들었고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아카시가 대회 진행을 이끌었다.


"첫번째 참가자다냥! 참가자는..."


그래 기왕 이렇게 된 것. 냉정하게 판단하고 심사해주마. 그리 다짐한 나는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실로폰 채를 붙잡았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왠만한 참가자들이 통과를 알리는 실로폰 소리를 받았지만 난 통과와 상관없이 열심히 기준점에 맞춰 점수를 매겼고 대회도 어느덧 마지막 참가자를 앞두고 있었다.


"오늘의 마지막 참가자다냥! 마지막 참가자는 가스코뉴, 노래는 '사랑의 배터리'다냥!"


익숙한 멜로디와 함께 무대로 올라온 가스코뉴는 여유로운 기색으로 반주 시간에 인사를 했고 박자에 맞춰 바로 노래를 불렀다.


"나를 사랑으로 채워줘요. 사랑의 배터리가 다됐나봐요! 당신 없인 못 살아, 정말 나는 못 살아. 당신은 나의 배터리~"


가스코뉴는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며 압도적인 실력을 뽐냈고 가스코뉴가 노래를 마치자 관객석에서 열정적인 환호와 박수 갈채가 쏟아졌다. 나 또한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채점을 매겼다.


*


"그렇게 좋아?"


우승 상품을 품에 껴안은 가스코뉴를 보며 나는 물었고 가스코뉴는 기쁜 기색을 숨기지도 않고 말했다.


"긍정, 이토록 기쁜 적이 손에 꼽을 정도임. 오늘은 가스코뉴 제 2의 탄생일이라고 봐도 무방."


그녀가 저리 기뻐하니 나도 괜시리 기분이 좋아졌다. 정말 알기 쉬운 녀석이라니까.


"그럼, 가스코뉴 우승 축하하고 난 이만 가볼게. 오늘 초대해줘서 고마웠어."


가스코뉴에게 축하를 해주고 돌아가려는 순간, 가스코뉴의 고운 손이 나를 붙잡았고 나는 가스코뉴를 돌아보았다.


"가스코뉴, 할말 있어?"


내 물음에 가스코뉴는 부끄러운 듯 우승 상품이 담긴 봉투를 내밀었고 봉투를 받아든 나는 내용물을 펼쳐보았다.


- 지휘관이 들어주는 소원권


내용물은 저렇게 적힌 종이 한장뿐, 당황한 내가 가스코뉴와 소원권을 번갈아보자 가스코뉴가 말했다.


"...오늘 노래 의도된 사항이야. '사랑의 배터리' 가사 잘 알지? 오늘 밤 잘 부탁해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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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가스코뉴의 추천곡은 '사랑의 밧줄'과 '사랑은 아무나 하나', '아모르파티' 입니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