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창의 고향은 진흙이 질퍽하게 펼쳐진 가난한 농촌이었다


그녀의 부모님은 기근이 들자 어린 환창을 떠돌이 악단에 팔았다


그리고 악단에서 기예를 배운 환창은 다시 항구의 극장에 팔렸고


그곳에서 무대에 오르는 기녀가 되었다




무대에서 기예를 선보여 손님을 끌어모으고


공연을 하지 않을 땐 환창을 보러 온 손님들에게 웃어주며 잡담 몇마디를 나누고 엽전 몇 푼 받아 챙기는 삶


팔려나간 시골 소녀의 삶 치고는 꽤나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생활이었다


적어도 몸이 아니라 웃음을 판다는 점에서 환창은 만족했다



하지만 환창의 짧은 행복은 금세 깨지고 말았다


세이렌이 영역을 확대하며 바닷길이 막히자 자연스레 항구엔 물건도, 사람도, 돈도 말라붙기 시작했다


환창이 일하던 극장은 개중에선 나름 오래 버틴 편이었으나 점점 가게가 기우는건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빚더미를 견디지 못한 주인은 가게를 내팽겨치고 한밤중에 도망치고 말았고


환창도 난리통에 동전 주머니 하나를 챙겨 떠날 수 밖에 없었다 


환창은 그렇게 느닷없는 자유를 얻었다




자유를 얻고 며칠 간 환창은 새 일자리를 찾기 위해 발이 아프도록 돌아다녀 보았으나


환창이 일할만한 극장이나 주점은 이미 문을 닫은지 오래였다


단순한 식당들 조차도 파리만 날려 접객에 사람을 구하지 않았다


아편굴과 매음굴에는 아직 가보지 않았지만


환창은 굶어죽더라도 그런 곳에 가고싶지는 않았다


그러는 사이 동전 주머니는 점점 가벼워져 오늘 밤 여관삯도 대지 못할 만큼 줄어있었다



그렇게 정처없이 걷던 환창의 눈에


함순이 모집소의 간판이 보였다


'숙식보장, 수려한 용모와 뛰어난 재색의 여인을 모집함'



환창은 간판에 적힌 노골적인 문구에 피식 웃고 말았다


만쥬들은 함순이들이 바다에서 세이렌과 싸우는 멋진 모습만을 홍보하지만


용모가 뛰어난 여성만 뽑아간다는 점에서 그 정체를 눈치채지 못하는 사람은 없었다






환창은 전에 함순이를 한 명 본적이 있었다


예전에 금발의 함순이 하나가 변검을 배우러 극장에 왔었다


기녀들과 견주어도 뒤떨어지지 않는 용모에 대단한 체력을 지닌 함순이는


매주 수요일마다 변검을 배우러 와서는


시간을 쪼개 환창에게 함순이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세이렌과 싸우던 이야기, 지휘관의 총애를 얻기 위해 변검을 배우고 있다는 이야기,


지휘관이 자신의 노력을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이야기...




환창은 그때 그 함순이를 떠올리며 생각했다


'모항도 사람 사는 곳이니까... 밥은 안굶겠지... 어쩌면 그 언니도 아직 있을지도...'


함순이가 되어 밤시중을 드는 것도 떳떳한 삶이라고는 하기 힘들었지만


길거리에 남아 비참하게 사는 것 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한 환창은 마음을 굳게 먹고 모집소의 문을 열었다





묘하게 닭장냄새가 풍기는 모집소 안에는 배불뚝이 만쥬 하나가 앉아있었다


작지만 통통한 만쥬의 몸은 쫄쫄 굶어 배가 등가죽에 붙어있는 길거리의 동황 사람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안녕하세요 저..."


"함순이 지원인가 쥬?"


"네..." 환창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무슨 일을 하는건지는 알겠지 쥬?"


"대충은요..."


"진짜 하는 일을 알고 있느냐는 뜻이다 쥬"


"알고 있어요, 전에 함순이를 만난 적이 있거든요"


"할줄 아는건 있냐 쥬? 남자 앞에서 내세울만한 장기가 있냐는 말이다 쥬"


"춤, 노래, 변검을 조금 할 줄 알아요. 얼마 전 망한 부둣가의 극장에서 일했었어요"



환창의 대답을 들은 만쥬는 환창의 몸을 위아래로 꼼꼼히 훑어보았다


남자들의 시선에는 익숙해진 환창이지만 이런 끈적한 시선을 받는게 유쾌하지는 않았다


"얼굴도 나름 반반하고... 몸매도 이정도면 후열이 되는건 어렵지 않겠다 쥬"


"경험은 있냐 쥬?"


"경험이요...?"


"남자랑 잔 적 있느냐는 말이다 쥬"


갑작스러운 질문에 환창은 깜짝 놀랐다


'잔 적 있다고 해야하나...? 경험이 없다고 솔직하게 말할까?'


환창이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면 경험이 풍부하다고 하는 편이 좋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고민하며 우물쭈물하던 환창을 본 만쥬는 삐약삐약 웃더니 말했다


"됐다 쥬, 반응을 보니 말 안해도 알겠다 쥬"


그리곤 만쥬는 서류를 보더니 '처녀' 라고 적고 서명을 한 후 환창에게 건냈다


"축하한다 쥬 너는 오늘부터 순양전함 환창이다 쥬"


"부두에 가면 널 데리러 나온 자폭선 하나가 있을꺼다 쥬 그걸 타면 모항으로 갈 수 있다 쥬"


"행운을 빈다 쥬"



환창은 그렇게 함순이가 되었다





과연 소녀 환창에게 행복한 미래가 기다릴지


아니면 비극적인 도크닦이의 미래가 기다릴지는


모두 시키칸 손에 달려있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