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 아일랜드가?"


내 의문에 요크타운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네, 요새 밥도 안 먹고 밤 늦게 뭘 그리 열심히 하는지... 다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랍니다. 저러다 쓰러지는 건 아닌지."


밥도 안 먹고 밤 늦게 무언가에 열중이라. 이거 완전 그거잖아?


"음, 이 문제는 내가 해결할게. 가서 다른 애들한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줘."


요크타운이 집무실을 나서자 나는 그대로 생각에 잠겼다. 요 말썽꾸러기를 어떻게 해야 하나...


늦은 밤, 나는 롱 아일랜드의 방을 찾아왔다. 문은 닫혀있었지만 틈 사이로 새어나오는 불빛은 아직 그녀가 잠에 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럴 때 쓰는 특효약은 따로 있는게 아니지. 그럼 전통의 방식으로 한번 가볼까?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은 난 일말의 시간도 주지않고 그대로 문을 박차며 외쳤다.


"FBI, open up!"


방 안 풍경은 예상대로 밤늦게 게임하는 겜창인생의 모습을 그대로 박아놓은 듯한 풍경을 띄고 있었다. 어두운 방, 여기저기 흩어진 과자 봉투와 음료수 병 그리고 화들짝 놀란 롱 아일랜드의 표정까지. 마치 나태라는 제목의 그림을 극사실주의로 그려내면 이런 풍경이지 않을까?


"우와악, 지휘관?! 이 오밤중에 여기는 어쩐 일로?"


갑작스런 등장에 롱 아일랜드는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고 나는 방안의 불을 켰다.


"끄아아악! 눈이, 내 눈이!"

"이 녀석아, 요새 출격이 뜸하다지만 군인이라는 녀석이 밤늦게 게임하고 밥도 안 먹고 뭐하는거야! 너 그거 전부 비전투 손실인거 몰라?"


눈을 비비며 고통스러워(?)하는 롱 아일랜드를 지나쳐 그대로 콘솔 기기에 다가간 나는 연결되어있는 선을 뽑으며 말했다.


"아무튼, 이 일로 민원이 들어왔으니까, 이 기기는 당분간 압수야."

"...이익."


뭔가 불만이 있는 듯 하길래 들어나보자는 심정으로 뒤를 돈 내 눈앞에 보인 건 한 손으로 패드를 세로로 잡고 내려찍는 롱 아일랜드의 모습이었다. 이야, 너무 완벽한 자세인데. 설마 대사까지 완벽하게?


"이 불경한 자가!!!!"

"아악!"


설마 했는데 진짜 대사까지 그대로 말하네? 패드에 찍힌 이마를 부여잡으며 뒤로 나자빠진 내가 무력화 된 틈을 노려 롱 아일랜드는 빠르게 콘솔 본체를 사수했다.


"남이야, 밤에 뭘 하든 말든 무슨 상관인데. 밥 같은 건 잘 챙겨먹고 있다고!"

"우린 방안에 쳐박혀 게임만 하면서 과자만 먹는 걸 '게임 중독'이라고 하기로 약속했단다. 빨리 그거 내놔!"


롱 아일랜드에게 콘솔 기기를 탈취하기 위해 달려들었지만 사람은 위기에 빠지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고 하던가. 롱 아일랜드는 평소의 그녀라면 낼 수 없는 속도로 내 포위망을 빠져나갔고 오히려 방안에 나뒹구는 과자 봉투에 미끄러진 나는 그대로 롱 아일랜드가 있던 벽에 얼굴을 박았다.


순간 눈앞에 별이 보이는 듯한 환상과 격통이 나를 엄습했고 그렇게 코를 부여잡고 몸을 웅크린 나에게 롱 아일랜드는 다가와 조용히 귓가에 속삭였다.


"느리구나, 쓰러지는 것 조차."

"크윽, 너 잡히면 가만 안 둬!"


롱 아일랜드를 잡기 위해 손을 휘둘렀지만 내 손은 허공을 갈랐고 이어지는 롱 아일랜드의 비웃음이 들려왔다.


"하하, 어딜 노리는 거야. 그건 내 잔상인데?"


비틀거리며 일어난 내 눈앞에 보인 건 티배깅까지 확실하게 하는 롱 아일랜드의 모습이었고 그 모습에 내 인내심이 드디어 바닥을 드러내며 내 속에서 무언가 끊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오냐, 지금 나랑 해보자는 거지?  내 기색이 변한 걸 눈치라도 챘는지 잠시 움찔거리던 롱 아일랜드의 표정이 굳었고 그렇게 나와 롱 아일랜드의 술래잡기가 펼쳐졌다.


*


"데샤앗, 지휘관이 각성한 데스웅! 잡히면 죽는 수준으로 끝나지 않는 데샤앗!"

"잘 알고 있네! 지금이라도 잡히면 적당히 혼내줄게! 볼기짝 500대만 맞자!"

"그 제안, 죽음으로 맛없는데!"


젠장, 콘솔 무게도 장난 아닐텐데 뭐가 저리 날쌔! 그렇게 나와 롱 아일랜드는 온 모항을 돌아다니며 죽음의 술래잡기를 펼쳤다. 숙소 복도는 기본이고 병영 식당, 모항 학교, 모항 상점, 집무실 등등 온갖 곳을 큰 소리를 내며 추격전을 펼쳤고 이내 모항의 출격 대기장소까지 나왔다.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다는 걸 깨달은 롱 아일랜드는 어쩔 줄 몰라하며 우왕좌왕거렸고 그런 그녀를 보며 나는 비열한 웃음을 지었다.


"네 녀석은 이제 독 안에 든 쥐야. 순순히 콘솔을 내놓는다면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야!"

"시..싫어, 난 그저 조용히 밀린 게임을 즐기고 싶었을 뿐이라고!"


그렇게 울부짖으며 자리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하는 롱 아일랜드를 보며 나는 괜시리 마음이 약해졌다. 물론 그녀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기 몸까지 버리면서 게임을 하는 모습은 주변 사람들이 봐도 걱정을 살만한 행동이니까. 나는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고 롱 아일랜드는 울음을 멈추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에휴, 게임도 좋지만 그렇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치면 어떡하냐."

"후엥, 지휘관?"


꼼짝없이 야단이 떨어질 줄 알았는지 눈을 질끈 감았던 롱 아일랜드는 내가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자 예상 외라는 듯이 나를 쳐다봤다.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며 나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말을 이었다.


"앞으로는 다른 사람들 걱정 안 하게 밥도 제때 먹고 잠도 푹 자고 그래라. 어차피 게임 할 시간은 충분하잖아."

"크응, 그치만."


아직도 미련을 못 버렸네. 그리 생각한 나는 한숨을 쉬며 그녀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제시했다.


"그럼 내가 좀 도와줄게. 이래 보여도 입대 전에 나도 불속성 효자 노릇 좀 했거든. 왠만한 게임은 무리 없이 가능하다고?"

"...지휘관!"


감격하며 나를 바라보는 롱 아일랜드에게 나는 손을 내밀었고 그녀는 들고있던 콘솔을 바닥에 내려놓고는 내 손을 잡고 일어났다.


"...지휘관 저길 봐. 굉장한 여명이야..."

"...아아 마치...!"


그렇게 우리는 한동안 어깨동무를 하며 떠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보았다.


*


"...으엥, 지휘관 나 힘들어~."

"참아, 그 난리를 피고 이정도로 넘어가는 거면 다행으로 여기라고!"


'갈등 끝에 서로 타협점을 찾고 모두가 행복해졌습니다. 메데타시 메데타시!' 라는 결말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온 모항을 돌아다니면서 시끌벅적한 추격전을 펼친 결과, 전 인원이 꼭두새벽에 잠을 깨는 불상사가 벌어졌고 결국 긴급 전투휴무라는 명목 하에 나와 롱 아일랜드를 제외한 전 인원이 특별 휴가을 가지게 되었다. 그냥 넘어가기에는 새러토가의 표정이 굉장히 무서웠거든. 맨발로 콘솔 본체를 아작내는 걸 보면 누구라도 무조건 수용하지 않을까?


"콘솔은 망가지고 일감은 터질 듯이 많고. 지휘관~, 나 좀만 쉴게."

"야, 롱 아일랜드! 하..."


그대로 응접용 소파에 누워 잠을 청하려는 롱 아일랜드를 급하게 깨워보았지만 이미 그녀는 꿈나라로 빠진지 오래였다. 꿈속에서 뭘 하는지 모르겠지만 행복한 표정을 짓는 그녀를 보며 해탈한 나는 그녀를 살짝 옆으로 옮기고 그 자리에 누웠다.


"그래, 자자. 어차피 날짜가 임박한 건 다 끝내놨으니까."


그렇게 그녀가 소파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롱 아일랜드를 껴안은 나는 그녀의 말랑말랑한 뱃살을 느끼며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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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가끔은 롱 아일랜드처럼 빈둥빈둥 생각없이 노는 것도 좋다고...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