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지휘관이 요리를 잘 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어두운 밤, 난간에 기대어 밤하늘을 바라보는 웨일즈가 말했다. 전장에서 우렁차게 울리던 기합과 다른 부드러움, 한껏 풀려있었다.  


이는 단순히 목소리에만 해당하는 사항이 아니었다. 적들을 향해 불타오르던  붉은 눈동자는 한 층 가라앉아 애욕이 가득한 붉은색으로, 평소 입고다니던 제복은 프릴이 인상적인 검정색 란제리로, 보다 인간적인 모습이었다.


“왜, 생긴거랑 안어울렸어?”


그 끝에는 한 사내가 있었다. 언뜻 보면 순해보이는, 하지만 잘 보면 이 모항에서 가장 흔들림 없는 동공을 가진 사내, 지휘관이었다.


“아니, 생긴 건 둘째치고, 처음에는 엄청 허둥댔잖아.”


큭큭, 웨일즈가 짧은 웃음을 그렸다. 놀리는 말이었지만, 반박하지 못했다. 응당 맞는 말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기에 즐거웠던 추억, 지휘관은 자연스레 과거를 그려내기 시작했다. 부임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힘든 일도 있었지만, 돌아보면 무심코 입꼬리가 올라가는 기억, 빛나지 않는 것이 없었다.


  “솔직히 나도 놀랐어, 네가 이런 눈빛으로 날 바라볼지는 몰랐거든.”


하며 부드러운 눈빛, 이번엔 웨일즈가 부끄러워 할 차례였다. 사랑에 빠진 여인은 기사라고 한들 다를 바 없었다.


  “...그럼 반대로, 지휘관은 나랑 이런 사이가 될 줄 알았어?”


살짝 상기된 얼굴을 한 그녀가 손을 뻗어 펼쳤다. 보이는 건 약지에 끼워져 있는 순백의 반지, 지휘관의 손에 끼워져 있는 것과 같았다. 


“노력하려 했지, 첫 눈에 반했으니까.” 


“....” 반격하려 했으나, 이번에도 당한 건 웨일즈였다. 큭큭, 이번엔 지휘관이 웃었다.


“하늘이 어두워.”


“당연하지, 밤이니까.” 


부끄러워 하는 그녀의 모습도 충분히 귀여웠지만, 지휘관은 웨일즈를 배려하고자 자연스레 주제를 전환했다. 웨일즈는 괜히 부끄러운 듯 시선을 피했다.


“그럼 반대로, 지휘관은 나한테 유독 기억나는 사건 같은 거 없어?”


“당연히 있지, 처음에 실수로 네 가슴을 만졌을 때 들은 말, 아직도 기억나.”


지휘관은 과거의 기억을 더듬었다. 서류를 넘겨 받으려다 실수로 그녀의 가슴을 만진 날 들은 한 마디, 그의 뇌리에 깊게 박혀있었다. ‘무슨 의미인지는 알고 있겠지.’ 말하며 살벌한 눈동자로 바라보는 모습, 그런 웨일즈도 멋있었는데, 지휘관이 생각했다.


“그때는…아직 당신에 대해 잘 몰랐으니까. 요즘은 뭐, 알잖아?”


서약한 지금도 그녀의 가슴을 만지면 같은 말을 한다. 허나 목소리 톤도 다르고,결정적으로 그녀가 말하는 ‘의미’는 그 시절과 아예 다른 것이었다.


덕분에 지휘관은 무심코 그녀의 가슴을 탐했다 스위치가 켜진 그녀에게 한 번 덮쳐진 적도 있었다. 물론 판정승을 거두긴 했다만 아무렴, 최근 들어 자제하는 중이다. 


“그럼 반대로, 너는 나한테 특별히 기억나는 에피소드 같은 거 있어?”


“음….”


웨일즈가 잠시 미간을 좁히며 사고를 거듭하기 시작했다. 딱히 그와의 특별한 추억이 없어서는 절대 아니었다. 함께한 순간 하나하나, 그녀는 행복한 시간으로 남겨두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역시, 가장 즐거운 기억을 꼽자면. 


“아무래도 처음으로 식사를 대접해준 날이지.” 


“아 그거, 솔직히 나도 긴장 엄청 했었어.”


그녀가 MVP를 받은 날, 지휘관은 특별히 식사를 대접해주겠다며 그녀를 부른 적 있다. 화려하게 차려진 식탁에 메이드대의 도움을 받았다 생각했으나, 손수 준비했다는 사실에 놀랐던 건 둘만의 추억이다. 


“솔직히 그때부터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지, MVP를 받은 게 대단한 일이라 해도, 그렇게나 성대한 대접을 손수 준비할 정도면 분명 무언가 있다고 생각했거든.”


“어, 뭐야, 알고 있었어?”


"그렇게 티를 내는데, 모를 리가 없지, 하지만 이게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역시."


하늘을 향하던 그녀의 시선이 지휘관으로 향한다. 애정이 가득한 붉은 눈동자, 호선을 그린다.


“나를 위해 이렇게까지 해주는 모습이 너무 멋있어 보였으니까.”


비추는 건 달빛, 입가에 만연한 미소, 다정한 목소리,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었다.  


지휘관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이내 하하, 또 한 번 웃었다. 완벽한 패배였다.


"결국 요리 잘한다는 칭찬이지?"


“그럼, 매일 아침 신세지고 있는데.” 


그의 취미가 요리였던 덕에 웨일즈는 매일 아침 신선하고 푸짐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대신 차를 내리는 등의 소소한 잡일은 그녀가 한다지만, 마음 한켠에는 약간 미안한 마음도 존재했다.


“그런 의미에서 내일 아침은 내가 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그렇기에 웨일즈는 다짐했다. 받은 만큼 돌려주자고, 그것이 내일이었다.


“오, 네가? 그것도 기대되는데, 어떤거야?” 


“오이 샌드위치.”


웨일즈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냥 내일도 내가 할게.”


“응? 왜?” 


“...그냥.”


지휘관은 웃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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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으 웨일즈 너무 꼴려 미치겠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