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평화로운 금요일 모항의 밤.



업무가 끝난 함선 소녀들이 자신의 진영으로 돌아가 지친 몸을 뉘여 휴식하거나 밀렸던 담소를 몰아 하는 시간.



모항의 금요일 밤은 일요일보다 더욱 평화로웠다.



로열 네이비도 다르지 않았다.



평소와 같이 지휘관과 티타임을 기대하고 있던 로열의 두 레이디는 점점 늦어지는 시간에 고개를 갸웃했다.





"벨파스트, 분명 지휘관께서 9시까지 오신다고 하셨지?"



"네. 아마 납품 업무가 늦어지시나 보군요. 조금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그러면서도 벨파스트 역시 계속해서 시계를 보고 있었다.



그때, 멀리 중앵 진영의 숙소가 갑자기 모든 불이 켜지더니 소란에 휩싸였다.



"정말이지, 또 소란이네요."



"그러게 말이에요."



허나 소란의 크기가 조금 많이 달랐다. 평소라면 무언가가 펑하고 터지거나 경마 내기에서 돈을 잃어 날뛰는 소란이었다면,



"저 소리, 의장 챙기는 소리 아닌가요?"



귀가 좋은 일러스트리어스는 알 수 있었다.



이것은 세이렌과의 전투, 그것도 대작전을 앞둔 비상사태의 소란에 준하는 혼란스러움이었다.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벨파스트가 뒤로 돈 찰나에, 멀리서 카리브디스가 달려오고 있었다.



"메이드장님, 중앵 진영에서 급보가!"



평소라면 뛰지 않았을 그녀 뜀박질에 벨파스트가 그녀의 눈가가 빛나는 걸 확인했다. 카리브디스의 눈가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무슨 일이죠, 카리브디스?"



"지휘관께서, 지휘관께서..."



그녀가 평정을 잃는 경우가 없기에 벨파스트 역시 급하게 종이의 글을 읽어내려갔다.



하지만 모두 읽을 수 없었다.



수년간 메이드장을 역임하며 충격받을 일은 다 겪었다 자부했건만 이번엔 그녀조차 냉정을 잃게 만들었다.



"벨, 벨파스트, 왜그러죠?"



포미더블조차 자신이 항상 쓰던 가면이 사라진지 오래였다. 허나 그녀를 탓할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탓 할수 없다가 맞겠지.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에 그 누구도 평정을 유지할 수 없었으니까.



"지휘관께서, 지휘관께서 세이렌에게 나포당하셨답니다..."






그 이후에 로열 진영은 그야말로 혼란에 휩싸였다.



"어서 지휘관을 구하러 가야해요!"



"상부의 명령도 없이 함부러 움직이는 건 무리가..."



당장 지휘관을 구하러 가야한다는 급진파와 일단 상부에게 알리고 가야한다는 온건파가 극렬히 대립하고 있었다.



서약함들의 의견마 갈리고 말았고 결론은 나지 않은채 소란만 계속되었다.





그걸 멀리서 지켜보던 임플레커블은 한숨을 푹 쉬었다.



로열 네이비는 그 어떤 진영보다 강력하다. 허나 그건 지휘관의 명령이 있을 때의 이야기.



그가 없는 로열 네이비는 그야말로 오합지졸이었다.



물론 그들에게도 지휘권을 쥔 함선 소녀, 퀸 엘리자베스가 있다.



허나 퀸 엘리자베스의 지휘를 믿느니 차라리 저기서 논쟁중인 헬레나나 벨파스트를 믿는게 더 안전했다.



지휘체계가 무너진 전장이 이런 느낌일까. 그리 분석하면서도 그녀 역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과부화가 온 뇌는 판단을 느리게 했고 신성모독을 일삼던 입은 어느새 신께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제발 지휘관이 무사하게 해주세요.'





결국 각 팀별로 행동을 달리 하기로 결정했다.



로열 메이드대와 레이디는 급히 의장을 챙겼고 나머지는 그들을 보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소란과 무질서, 혼돈과 갈등 속 혼잡한 상황을 깬건 익히 알지만 단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소녀의 목소리였다.



"모두 진정하고 정신 똑바로 차려라!"



퀸 엘리자베스의 고함에 모두가 그대로 멈췄다.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고



"여, 여왕님..."



입을 다물었다. 단 한번도 보지 못한 시선, 싸늘하기 그지 없는 시선.



좌중을 압도하는 무게감에 시선을 받은 이들은 흠칫 떨 수밖에 없었다.



절대적 우위. 정점에 선 여왕. 최고의 군주.



눈 앞에는 소녀는 그녀들이 알던 퀸 엘리자베스가 아니었다.



"난 너희에게 실망했어."



"허, 허나..."




처음보는 퀸의 무거운 분위기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침묵이 감돌자 퀸 엘리자베스는 전보를 받은 벨파스트에게 물었다.



"누구에게 납치당한거야?"



"세이렌입니다."



"누구랑."



"중앵의 카시노, 수송함입니다."



"상태는."



"무장 해제 상태일테지만 성정 신호가 반응한다는 것을 보아 무사합니다."



그녀는 눈살을 찌푸렸다. 분명 호위대랑 다니라는 권고를 애둘러 말했건만 결국 이 사달이 난것이다.



순식간에 상황파악을 마친 그녀는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구축함과 잠수함은 즉시 실종 인근 해역을 둘러싸 포위하고 수색해. 항모전대 전체  발진을 준비해서 앞 해역으로 이동해."



"네 여왕님."



급히 의장을 챙긴 함선들이 바다로 나가기 시작했다.



메타 의장을 챙기던 그녀는 벨파스트를 불렀다.



"벨파스트."



"명령하십시오."



"넌 메이드대와 남아서 여기를 안정시켜. 대령에게 연락해서 상부에게 보고하고 모든 세력에게 알려서 협조 요청해."



"여왕님은 어쩌시겠습니까."



이미 정해진 대답이었지만 그녀는 대답했다.



"감히 겁도 없이 여왕의 것을 건드린 대가는 치르게 해줘야겠지 안그래?"



그녀는 작게 입꼬리를 올렸다. 하지만 눈만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보이면 뭐든지 찢어 발길 눈빛이었다.



그 눈에서 시선을 땐 임플레커블은 워스파이트에게 다가가 물었다.



"오늘 여왕님의 모습이 조금 생소하네."



그 말에 워스파이트는 쓰게 웃었다.



"저게 본 모습이야."



어린애처럼 틱틱대던 그녀가 본 모습이 아니라고?


충격에 헤어나오지 못하는 그녀를 토닥인 워스파이트는 자신의 여왕을 눈에 담았다.



사실 그녀는 누구보다 냉정하고 빠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함선 소녀다.



저 작은 몸에 괜히 퀸 엘리자베스의 이름이 붙은게 아니었다.



이 거대한 로열의 최고 자리에 오름이 어색하지 않는, 아니 그녀보다 적합한 이가 없다 판단할 정도로.



"하지만 지휘관을 만났지. 그리고 여왕 전하는 생각을 바꿨어."



진중하되 무겁지 않다. 신중하되 자신감이 넘친다. 반성하되 후회하지 않는다. 계획적이되 융통성있다. 



그리고 냉정하되 따뜻하다.



그녀는 생각했다. 아, 저 사람이면 내 이런 면모가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신체에 맞는 정신연령을 연기했다.



어리광피우고 때쓰고 틱틱대며 오만하기 그지 없는 그 나잇대에 맞는 소녀로.



허나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지휘관의 부재는 일부러 숨겨두었던 그녀의 본성을 꺼냈다.



로열 네이비에 어울리는 냉정하고 진중하고 신중하고 계획적이며



"나의 하인을 뺏어간 간악한 적들을 찢으러 가자!"



광기에 잠식된 그런 지휘자로써.



"그렇기에 믿을 수 있어. 우리의 여왕님이니까."



워스파이트의 말에 임플래커블조차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저 모습은 그녀가 바라던 그런 여왕이었다.



작고 뭐고 그런건 모두 머릿속에서 날아갔다.



따르라. 여왕을.


오직 두 명령만이 머릿속에 남은 채 모든 로열의 함대는 자신들의 지휘관을 되찾으러 바다에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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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괜찮아. 그러니 벨파스트, 다이도 좀 데려가줘."



"그럴 수 없습니다."



짧은 헤프닝으로 끝난 이번 사태는 상부에서도 별 말 없이 넘어갔다.



"근데 누가 너희를 지휘한거야?"



그들이 있던 곳에 가장 빨리 도달한 건 뉴저지와 함께한 로열 메이드대였다.



허나 그들이 뉴저지의 명령을 따를 리는 만무하였고 오히려 뉴저지가 잡혀온 모양새였다.



아무리 보아도 그녀들을 지휘할 사람이 없는데?



허나 벨파스트, 메이드대는, 그리고 모든 함선 소녀들은 누가 지휘했는지 그저 함구했다.



약조했기 때문이었다.





절대 지휘관에게 자신이 지휘했다 말하지 말라는 한 함선소녀의 신신당부를 모두가 지켜줬다.



"하인! 왜 연락을 안 받아!"



문을 박차고 들어온 퀸 엘리자베스의 시선을 받던 지휘관은 멈칫했다. 로열의 지휘관이라면 그녀도 있지 않은가.



허나 그의 경험상 그건 아니라 판단했다.



'그럴리가 없지. 저리 철이 없는데.'



피식 웃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왕님의 응석을 들어줘야하니까.



그날 이후 퀸 엘리자베스는 언제나와 같은 땡깡피우는 소녀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녀를 어린애 취급할 수 없었다.


그런 모습을 봐버렸으니까.



물론 신체적 이야기로 돌아온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그럼에도 모두가 그녀의 철없는 모습을 원했다.



그녀가 그런 모습으로 모두의 앞에 나타난 것은 그리 좋은 상황이 아니란 뜻이니까.



모항의 모든 함선 소녀는 바랬다.




그녀가 정말로 분노한 상황이 오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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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원래는 명방 글 쓰고 있었는데 졸지에 벽함에 잡혀왔네요.


사실 자발적으로 끌려온거라 뭐라 할 말은 없지만....



이 글을 쓰게 된건 퀸 엘리자베스를 처음 만난 순간이었습니다.



사실 너무 애스러운 모습에 당황했거든요.



저딴게(?) 로열의 여왕? 지랄마



딱 이 기분이었어요.


그래서 상상했습니다.


그녀가 자신의 본성을 숨기고 지내다가 지휘관이 납치된다는 큰 사건이 벌어지면 그녀도 돌변하지 않을까.



제정신이 아닌 로열은 무서우니까요.




어쨌든 캐붕 그자체인 글인데 여기까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만약 시리즈는 계속 될것이며 벽붕이들의 요청을 최 우선으로 받습니다.



뭐, 꼴리면 야한것도 써올지도?



개추와 댓글은 이 시키칸이 자발적으로 군만두를 먹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