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을 올렸다 내렸다손가락을 쥐었다 폈다반복한다소비에츠카야 러시아는 의자에 앉아 이와 같은 행동을 지속하고 있었다.

 

마냥 의미 없는 행동은 아니었다그녀가 손을 쥐고피며 뻗은 대상은 다름 아닌 피아노였으니까

 

허나 어째서인지 5분이 흘러도, 10분이 흘러도그녀의 손가락이 건반에 닿는 일은 없었다러시아는 난감한 듯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이걸……내일까지…….”

 

불안에 떨리는 목소리음표가 빽빽이 들어찬 악보를 보며 그녀가 이마에 손을 얹는다난감한 감정은 행동으로 표현되었다.

 

그녀는 어째서 이런 행동을 반복하고 있는가시간은 일주일 전으로 돌아간다.

 

 

 

***

 

 

 

지휘관 동지지금 있는가?”

 

들어와.”

 

소비에츠카야 러시아의 고운 목소리와 함께 똑똑노크가 울리고그 대답으로 사내의 목소리가 울린다그녀는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다.

 

실례하지혹시 지금…….”

 

무어라 할 말이 있던 러시아였지만곧 그녀의 말은 멈춰버리고 말았다지휘관의 손에 들려있던 무언가를 발견한 까닭이다.

 

바이올린?”

 

그냥취미로.”

 

정체는 바이올린르네상스 시대부터 차츰 개량되어 현재까지도 가장 대표적인 찰현악기로 사용되는 그것러시아의 눈이 약간 커졌다.

 

지휘관 동지가 음악에 취미를 둘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말 그대로 취미 수준이라별거 없어, 사실 연주 하는 것보다는 연주를 듣는 걸 좋아하거든꽁꽁 숨긴 적은 없는데의외로 잘 모르더라고.”

 

호오그럼 내가 지휘관 동지의 은밀한 취미를 안 첫 번째 사람이 된 것인가마음에 드는군.”

 

아니처음은 그로세씨야.”

 

…….”

 

러시아는 약간 우울해졌다.

 

그래도 제일 좋아하는 음악가는 북련쪽 출신이거든,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알아?”


들어본 적 있는 거 같아.”

 

거짓말이다태어나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다행이다사실 그로세씨한테는 철혈 출신 음악가만 이야기했거든뭔가 눈치가 보인다고 해야 하나?”

 

아하그럴 수 있지.”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들이 참 많았어러시아도 이런 쪽으로 관심이 있어서 다행이야.”

 

……다행이네.”

 

거짓말이다매사 귀찮아하는 버릇이 심한 그녀가 그런 걸 찾아볼 여력이 있을 리가 없었다.

 

개인적으로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이라던가……쇼스타코비치도 빼놓을 수 없지.”

 

태어나 처음 듣는 이름의 향연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했다너무나 신난 그를 말리기 싫었던 탓도 있지만괜히 이런 쪽으로라도 점수를 따려 머리를 굴린 것이다.

 

혹시 러시아는 연주도 할 줄 알아?”

 

그렇지.”

 

때문에 그녀는 계속해서 긍정의 뜻을 전했다지휘관의 눈이 반짝인 것도 바로 이때였다.

 

정말그럼 한 번 보여줄 수 있어?”

 

……?”

 

평소보다 배는 신난 목소리그녀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은 것도 마찬가지로 이때였다.

 

내 방에 피아노 있거든혹시 지금 가능할까?”

 

순식간에 서랍을 뒤진 지휘관이 여러 악보를 꺼내 그녀에게 보여줬다빽빽이 들어찬 음표의 춤에 러시아는 순간 파르르 눈을 떨고 말았다.

 

할 줄 아는 건 맞는데……그래도 조금 시간이…….”

 

얼마든지 기다려줄 수 있어혹시 이거 괜찮을까한 장짜리니까 일주일이면 돼?”

 

새로 건넨 악보는 단 한 장짧았다평소 취미로라도 악기를 다뤄온 사람이라면 그리 어렵지 않게 연주할 수 있을 정도의 난이도.

 

…….”

 

그녀는 포함되지 않는 말이었다.

 

 

 

 

***

 

 

 

 

그리고 시간은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단순히 그의 환심을 사기 위해 꺼낸 말이었던 만큼 그녀는 악기 연주와는 거리가 멀었다일주일은커녕 이 주를 줘도 될 일이 아니었다.

 

……미칠 노릇이네.”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한탄한다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사실 다 거짓말이라고 할까차라리 그게 더 나을 거 같은데.

 

하하농담이었다네지휘관 동지!’


……러시아날 속인 거니?’

 

호탕하게 거짓말이었다고 고백하는 시뮬레이션을 그려봤지만그다지 좋은 결과가 나오지는 않을 것 같았다조용히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복잡한 상황목이 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러시아는 냉장고에서 보드카를 꺼내 그대로 목을 축였다.

 

하지만 갈증은 나아지지 않았다한 병두 병세 병그렇게 계속…….

 

 

 

***

 

 

 

……러시아?”

 

꺼윽……지휘관 동지…….”

 

모두가 잠에 들 시간지휘관실, 그곳에 갑작스레 난입한 러시아와 지휘관이 서로를 마주했다지휘관은 의문을 표했고러시아는 웃음을 그렸다.

 

여러 원인이 엮인 스트레스는 자꾸만 술을 불렀고지속해서 반복된 음주는 제아무리 강인한 북련 함선 소녀라 한들 취하게 했다잔뜩 상기된 얼굴이 이를 방증했다.

 

러시아취한 거 같은데 일단…….”

 

흐흐히……지휘관 동지다…….”

 

통제를 잃은 몸이 휘청이며그대로 지휘관을 향한다갑작스러운 상황에 지휘관은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고둘은 겹쳐진 채로 쓰러지고 말았다.

 

잠깐만러시아!”

 

결국 우당탕둘은 포개어지고러시아는 그를 내려다본다썩 좋지 않은 모양새였다.

 

러시아놀라지 말고 잘 들어너 지금 취했어그러니까 일단…….”

 

사내는 이런 와중에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그녀를 달래려 했다다정한 웃음이 그 증거였다.

 

허나 그것은 오히려 악효과를 낳았다술에 마셔 이성을 잃은 그녀에게저렇게나 무방비한 미소는 너무나 큰 자극이었으니까.

 

……지휘관 동지.”

 

후우진한 술 냄새가 풍기고지휘관이 표정을 찡그린다러시아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사실 나도 잘 부는 악기가 하나 있지……지금 같이할래?”

 

……뭔진 모르겠지만네가 좋으면 난 괜찮아.”

 

흐히히……다행이야그럼 보여줄게내가 잘 부는 악기는 바로…….”

 

우선 지휘관은 그녀에게 맞춰주려 노력했다그것이 취한 사람에게 있어 최선의 배려라 생각했고실제로 그게 맞았으니까.

 

품에서 꺼낸 물건의 정체는 다름 아닌 보드카라는 사실을 빼면.

 

병나발이야.”

 

잠깐!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지휘관의 입으로 술병이 기운다당황해 막아내려 했지만안타깝게도 그녀의 손이 더 빨랐다.

 

으읍!”

 

벌컥벌컥그녀의 우악스러운 힘에 붙들려 지휘관은 강제로 보드카를 들이켜는 신세가 되었다벗어날 수단은 없었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알코올 덩어리에 지휘관은 태어나 처음 느끼는 아찔한 감각을 느꼈다그는 북련 사람이 아니었고이렇게나 높은 도수의 술을 마시는 건 처음이었던 탓이다.

 

커흑………….”

 

결국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머리가 핑 돌고시야는 흐려지고그대로 의식은가라앉는다.

 

지휘관……지휘관 동지?”

 

톡톡조심스레 그를 건드려 보지만 반응은 없다그래도 단순히 취해서 잠들었을 뿐신체에 큰 이상은 없었다.

 

허나 지금의 사내는 무방비했고눈앞의 여성은 이성을 잃었다.

 

취한 거 귀엽네에……지휘관 동지.”

 

 

 

 

 

 

 

 

 


사실 병나발하면서 술병으로 대가리 깰라 했는데 그럼 ㄹㅇ 싸이코패스 같아서 걍 바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