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생각해 보자. 분명 더 나은 수단이 있을 거야.”
조용히 손을 치켜올린 지휘관이 낮게 읊조렸다. 흡사 전시 상황을 방불케 하는 진중한 태도, 아니, 그 이상이었다.
뒤로 한 걸음, 물러선 사내가 콧잔등을 주무르며 옅은 한숨을 내뱉었다. 갈 곳 잃은 시선이 참으로 처량했다.
“다른 곳 보지 말고, 여기 보세요.”
허나 그것도 잠시, 누군가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지휘관의 시선은 곧 한곳으로 고정되었다. 온화한 인상의 여인이 서 있었다.
여인은 객관적으로 보아도 미인이었다. 둥글게 휜 갈색 눈매, 보기 좋게 자리 잡은 코, 늘 머금고 있는 누그러운 미소.
붉은색 브릿지가 어울리는 로즈골드 색 단발이며,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외모며, 육감적인 몸매까지, 지나가는 남성의 시선을 한 번쯤은 사로잡을 미인이었다.
때문에 지휘관 역시 그녀에게 눈을 땔 수 없었다. 아름답지 아니한 자가 없는 모항이라지만, 그녀는 특출난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일단 나 밖에 두고 온 물건이 있어서, 그것 좀 가지러 가면 안 될까.”
“한 번 크게 안아주시면, 긍정적으로 고려해 볼게요.”
그녀, 론이 웃으면서 양팔을 벌렸다. 단순한 포옹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지휘관은 저 요구에 응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부 알고 있었다.
시뮬레이션을 굴린 14,000,605개의 미래 중 위험하지 않은 건 없었다. 때문에 지휘관은 이 상황을 안전하게 빠져나가기 위한 수단을 찾고 있었으나, 답은 도저히 나오지 않았다.
출구는 그녀가 등지는 상황이고, 공교롭게도 오늘의 비서함 역시 그녀였으니까.
“아아, 정말 섭섭해요. 아무리 그래도 2주간 저를 보러 오시지 않은 건 정말 너무하다고 생각하시지 않나요?”
“우선 미안하다는 뜻을 전하고 싶어. 하지만 현재 이 모항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만큼, 최근 들어 무진장 바빴거든, 식사도 제대로 한 게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나.”
“그렇다기엔 당장 어제 아야나미씨와 장장 4시간 동안 게임을 하셨다는 소문이 있던데.”
“보통 소문은 와전되기 마련이지.”
“그래서 사실확인을 했죠. 5시간이더라고요.”
“아차차.”
머리를 굴려봤지만, 가볍게 막히고 말았다. 싱긋, 그녀의 웃음이 한 층 짙어졌다.
“조금 서운해서 말이죠. 오늘은 정말 안 되겠어요. 자, 어서.”
말하며, 그녀가 한 걸음 다가왔다. 팔은 여전히 벌린 채로, 내 행동반경이 줄어드는 순간이었다.
어떡해야 할까. 어떡하면 이 끔찍하고도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대로 안긴다면 잠깐은 편안하겠지만, 뒤에 이어질 상황은 도저히 감당되지 않는데.
아마, 적어도 6시간은…….
“자, 지휘관님. 어서.”
생각하는 사이, 론은 어느새 지휘관과 한 걸음을 남겨두고 있었다. 그의 등이 축축해지고, 그녀의 미소 역시 더더욱 축축해졌다.
절체절명의 위기, 지휘관의 머리가 미친 듯이 회전했다. 빙그르르, 돌고, 돌고, 돌아서, 결국엔.
-쪽.
“……?”
평소의 그라면 절대 하지 않을 행위를 해버렸다.
론이 상황을 파악하는 데는 적잖은 시간이 필요했다. 어느새 다가와 자신을 내려다보는 그, 이마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온기.
또 태어나 처음 느끼는 이질적인 감정, 가슴 아래 올라오는 이상한 느낌, 전부 그녀의 것이었다.
“미안한 건 거짓말이 아니니까. 나중에 꼭 건실한 방향으로 벌충해 줄게, 알겠지?”
그녀가 굳어버린 지금, 마지막 기회라 판단한 지휘관이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조심스레 문으로 이동했다.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이마의 부드러운 감촉을 되뇔 뿐.
약간의 시간이 더 흘러, 론이 마침내 손을 움직여 자신의 이마에 가까이 대었다. 여전히 따듯했고, 마음도 그러했다.
“…….”
얼굴이 붉어졌다.
일방통행 공격력 max 여자가 방어력은 약한 거 개꼴리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