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의 팀컬러는 허슬과 기적, 그리고 낭만이었다.
그시절 두산 베어스는 승리를 위해 몸을 사리지 않았고
새로운 기적들과 기록들을 써내려갔으며
지고 있어도, 질 것 같다는 확신이 들지 않던 팀이었다.
그 시절의 두산은, 낭만이었다.
그러나 낭만은 언젠가 깨어지기 마련이던가
그 시절 두산을 상징하던 선수들은 하나 둘 두산을 떠나기 시작했다
모기업 두산 그룹의 자금난은 팀에 치명타였고
두산 팬들은 자신이 사랑하던 선수들이 떠나가는 모습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비즈니스의 세계란, 프로의 세계란, 낭만보다는 냉철함이 중요시 되는 곳이었다.
그렇게 두산의 낭만은, 베어스의 낭만은 하나 둘 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 한 선수가 있다.
1년차부터 빠른 발을 강점으로 잠실 외야를 뛰어다니며 신인왕 후보에 오른 귀여운 얼굴의 신인.
앞에서는 여자팬을 폭격하고 다녀 '잠실 아이돌'로, 뒤로는 아재들을 폭격하고 다녀 '아재 폭격기'로 불렸다.
수시로 바뀌는 타격폼, 장타따위는 버린 듯 극단적으로 짧게 잡은 배트.
타격 페이스는 기복이 심했지만 유독 가을만 되면 미친 활약을 선보이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타구를 잡기위해, 한 베이스 더 나아가기 위해, 그는 더 빨리 뛰고, 그라운드에 몸을 날렸다. 팀의 승리를 위해 3루까지 내달린 횟수는 현역 선수들 중 가장 많다.
그의 유니폼은 항상 흙투성이였다.
FA라는 기회가 찾아왔을 때는, 두산을 최우선 순위로 두었고, 두산에 남았다.
두산에 남기위해 에이전트까지 바꾸었고 타팀에서 온 더 큰 금액의 오퍼도 거절했다.
시간이 흐르고 전성기를 함께하던 팀 동료들이 하나 둘씩 떠나갔다. 같은 해에 지명되어 '90즈'로 함께 묶이던 친구들도 모두 팀을 떠났다.
그러나, 정수빈만은 여전히 두산 유니폼을 입고 있다.
정수빈의 나이도 어느덧 30대 중반에 들어서고 있다. 20살의 잠실 아이돌은 팀 내 유일하다 시피한 원클럽맨 프랜차이즈 스타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승리를 위해 몸을 던지는 허슬플레이를 하고 있고, 가을이 되면 맹활약을 펼치며 팀의 기적을 만들어가고 있다.
정수빈은, 두산의 전성기가 남긴 마지막 낭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