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 공주의 성에서 돌아오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변장을 푸는 것이었다.

더 이상 이즈의 모습을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기왕 바꾸는 김에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선택했다.



그리고 로스트 엠파이어의 최상층

옥좌로 가는 길에 

이즈가 있었던 장소에서 해골을 발견했다.


.....안 보인다 싶었더니 

결국 여기서 최후를 맞은 듯 했다.



여왕의 방

여기서 안개를 없애는 것으로 그의 세계를 구하는 사명은 끝이 날 것이다.

마수도 사라지고 진정한 의미의 평화가 돌아올 것이다.

적어도 알려진 것만 보면 그랬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잘못된 선택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대로는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지금까지 마희를 쓰러뜨리고

안개를 없애면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올 것이라고 계속 믿고 달려왔음에도 말이다.



머리 속이 뒤죽박죽 정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잠깐이라도 시간을 두고 생각할 시간을 가질 겸 도서관에 들리기로 했다.



동화책을 채우면서

보낼 생각이었다.



다름 아닌 앨리스가 마지막으로 그에게 부탁한 일이었기도 하니까.



이로서 남은 동화는 둘


하나는 짐작가는 구석이 전혀 없었지만

다른 하나는 무척 익숙한 이름이었다.


다름 아닌 인어 공주 휘하에 있던

포세이돈 호텔의 주인장의 이름이었다.


동화를 얻기 위해서는 

그를 죽여야만 했다.


마희의 부하라고는 하지만

백설공주와 신데렐라의 의미심상한 최후를 통해

'정말로 그들 스스로의 의지로 저지른 것일까'

라는 의구심이 들고 있었기에

적지 않은 죄악감이 몸 전체를 맴돌았으나



죽은 앨리스의 부탁이었다는 점이 보다 더 앞섰기 때문에 

결국 피노키오를 살해하기로 했다.



무기를 들고 전투 태세를 취하자

저항해오는 인형사 피노키오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끝까지 여유를 보이는 인형사였으나



힘은 자신감을 따라가지 못했던 터라



동화를 내놓은 채

금방 쓰러져 버렸다.



전투 자체는 짧았지만

피노키오 가 말했던

'인간 또한 누군가에게 만들어진 것'

'사실은 누군가에게 조종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라는 이야기는 어째선지 쉽게 떠나가지 않고

한동안 머리 속을 계속 떠돌고 있었다.



포세이돈 호텔의 2층


아래에서도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강대한 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에



안개를 지나

없애두기로 했다.



그 정체는 

그가 찾고 있는 마지막 동화의 주인공으로 추정되는

'왕자 신밧드'



이성을 잃어버리고

폭주하고 있는 것이

완전히 전형적인 마수의 모습이었고


이 경우 살려두어 봤자

서로간에 좋을 것이 하나도 없었던 만큼



앞선 전투와는 다르게 

망설임은 없었다.


이로서 무사히 모든 동화를 손에 넣을 수가 있었기 때문에



곧바로 도서관으로 가서

남은 빈자리를 채워 넣었다.



그럼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에

혹시라도 놓친 것이 있나 싶어

앨리스에게 확인해보았지만

틀림 없이 전부 채운 것이 맞는 모양이었다.



'책을 도서관에 채우는 행위'에 대한 의문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이어진 그녀의 말에 의해

그것은 후순위로 밀리게 되었다.



동화책을 모아온 것에 대한 답례로

그녀가 몸을 바쳐온 것이다.


이런 좋은 기회를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소녀의 몸은 인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척 따스한 것이 사람과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에게 옷을 벗겨짐과 동시에

몸을 밀어 넘어뜨려졌고



그대로 한동안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행위가 끝난 후에도




사랑하는 대상을 탐하고 싶은

감정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는 이것을 억누를 수 있을 정도로

인내심이 강한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에


잠깐이지만 두번째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그리고 진짜로 모든 행위가 끝난 지금


그녀는 진지한 표정을 하고

지금까지 숨기고 있는 것이 있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평소와 다른 그 모습이 귀여워서



잠깐 장난을 쳐보기도 했지만


반응을 보니 아무래도 중요한 내용인 듯 했다.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의하면 

책을 전부 되찾는 것을 트리거로 해서

재생할 수 있는

앨리스 01로부터의 메시지가 있다고 한다.


모든 책을 채운 지금이라면

그 조건을 만족했기에

이제와서라도 말해준 것 같았다.



잠시 마음의 준비를 한 뒤

곧바로 그것을 들어보기로 했다.



녹음된 내용을 정리하자면 이러했다.



'힘들고 괴로웠겠죠. 당신을 달래 주지도 못하고 래플리카에게도 나쁜 일을 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진실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이 세계를 없애 주세요'



'오직 당신 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행운을 빕니다'



'만약 당신이 저를 잊었다고 해도, 제가 죽었다고 해도, 저는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일까


그럼에도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를 마지막까지 믿고

이것을 남긴 것일까



그로서는 그녀의 각오가 어느 정도였는지까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적어도 그것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세계를 무너뜨린다'

그 방법이 떠오르지를 않아 고민하고 있던 도중



계속 옆에 있던 앨리스의 말에 눈이 뜨였다.

'안쪽의 문'

확실히 그런 것이 있기는 했다.

도저히 문고리를 잡을 수가 없어서 단념하고 있었지만.



지금이라면 열릴지도 모른다는 

그녀의 말에 다시 한 번 가보기로 했고



실제로 이번에는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하게 열리고 말았다.


어쩌면 바깥 쪽의 동화를 모두 채우는 것이

이 문을 여는 사전 조건이었을 지도 몰랐다.



내부는 바깥과 동일하게 책장이 나열되어 있었지만

공간 자체가 좁은 탓에

그 양은 훨씬 검소한 것이었다.



이번에도 군데군데 비어 있는 책장

여기에도 책을 찾아 꽂아 넣으라는 것일까 싶어 

빨리 끝내 보이겠다는 다소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빠진 곳의  제목을 살펴 보았는데


.....그 이름들을 본 순간 얼굴이 굳어 버리고 말았다.


거기에는 그가 무의식적으로 배제하고 있었던

끔찍한 현실이 그곳에 있었다.



'성냥팔이 소녀 엘마'



'산드리아의 성녀 카타리나'



'오를레앙의 성기사 잔 다르크'



'황금알을 낳는 거위 구스'



'빨간 망토'



'엘리자베스 바토리'



'마법사 도로시'



'앨리스'



......그것은 그보고 자신의 동료들을 죽이라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편 간단 요약

1. 앨리스는 자신의 죽음을 미리 예견하고 있었다. 

2.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동화책을 모두 채워야만 한다.

3. 그녀는 세계의 붕괴를 원하고 있었다.

4. 그것을 위한 동화책 중에는 지금까지 함께 해온 동료들을 죽이지 않으면 얻을 수 있는 것들도 존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