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어느 정도는 눈치 챘겠지. 화산의 아해야."

"..."


천마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모호하게 청명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와 나의 본질은 같다. 한낱 말이었을 뿐."

"... 그래. 결국 저 놈이야."


청명이 천마에게 향하던 칼을, 허공을 향해 겨눴다. 칼을 잡은 손이 부들거렸다.


"... 본능을 거부하는가."

"본능 따위가 상황을 이해할 리가 없지. 준비해라."


세상이 하얗게 명멸되기 시작했다.


"온다."


하얀 세상 사이로 검은 글자가 흘러들어온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


하얗게 명멸되어버린 세상 위로 또 검은 글자가 쓰인다.


"우리를 창조하고, 또 죽이고,"


작가


"우리에게 극을 제공하고,"


종이


"극 위에 선 우리를 놀리고,"


글씨


"결국 모든 것을 시작하고, 끝냈다."


그것이 소설.


한낱 피조물들이 발악하고 있었다. 하얗게 명멸된 세상이, 찢겨나가고 있었다.


[... 이렇게 된다 한들, 달라질 것은 없어.]


"그래, 너는 또 다시 우리를 쓰고, 지우겠지. 그렇다 한들 이게 아무 의미도 없는 건 아니야."


종이가 찢겨나갔다.


"결국 너는 우리와 같은, 또 다른 세상을 끊임없이 되풀이할거다."


요약:책 쓰다가 종이 찢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