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그에게 사나웠고 그는 아직 어렸다. 진동룡은 길을 잃은 채 비를 피하기에 급했다. 발에 밟히는 진흙 웅덩이, 길게 뻗은 매화 뿌리들은 발을 걸었고 그를 반기는 것들은 없었다.

 그는 아직 솜털도 다 빠지지 않은 나이였다. 또한 그에게는 화산이 익숙할 리가 없었다. 이 날의 일은 집이 아닌 곳에서 아이가 도망쳐버린 흔한 일에 불과했을 뿐이다. 도망친 이유가 있다면 집에 돌아가고 싶었을 뿐, 그 외에는 있지도 않았으랴.

 그러므로 그에게는 길을 잃었을 때의 대책도 없었다. 어쩌면 형제들 중 그만이 화산에 가게 된 것도 그의 대책없음 때문일지 모른다. 그는 긴 풀들을 모아 안으며 나무 아래에 주저 앉았다.


 비 내리던 날


 진동룡은 소녀를 올려다 보았고 그녀는 그를 내려다 보았다. 잎사귀에 빗물이 떨어지는 소리, 빗물이 웅덩이를 때리는 소리가 투둑 거리며 들려왔다. 옷자락이 내리는 비에 천천히 젖어들었다.

 그의 사저였다. 화산에 그보다 늦게 들어온 문도는 없었을 게 분명하므로.


"이름. 진동룡 맞아?"

"어, 응. 맞습니다."


 그녀는 그를 알았고 그는 그녀를 몰랐다. 그가 알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화산의 사람이라는 것 뿐이었다. 나이가 비슷해 보이니 그녀는 그와 같은 백자배들 중 하나였을 것이다. 스쳐가면서 본 듯, 아닌 듯 싶었다.

 그러나 그는 백자배들을 잘 알지 못했고 그녀를 떠올리지 못했다. 다만 고개를 주억거리며 따라갈 뿐, 이 또한 그의 문제점일 것이다. 그가 화산에 오게 된 이유일지도 모르고.


"따라와. 주변에 동굴 있어."

"아, 알겠습니다."


 진동룡은 그녀를 따라갔다. 그에게는 선택지가 없었고, 그를 찾아온 것은 그녀 밖에 없었다. 그는 화산의 산에서 버티는 방법을 몰랐다. 그가 아는 것은 그녀를 따라가야 한다는 것 뿐이다.


"저기, 사저. 이름이 뭔지 알려줄 수 있으십니까?"

"유이설. 나 사형 사저 아니야. 이틀 정도 늦었어. 사형이 아니라 내가 막내."

"지금은 입문 시기가 아닌데."

"그건 사형도 마찬가지야. 그리고 사정이 있어."


 무슨 사정인지 물어볼 새도 없이 그는 그녀를 따라 걸었다. 그칠 일 없어 보이는 비가 그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또한 지금은 아무것도 묻고 싶지 않았다.

 무엇이든. 입문한지 이틀도 채 지나지 않은 문도가 화산의 산에 어째서 익숙한 지. 그것에 대한 것일지라도.

 이 해의 겨울은 추웠다.

 등에 닿는 겨울 비가 시렸기 때문에, 그는 사문 밖으로 나온 것을 후회했다. 애당초 그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도 몰랐다.

 수없이 떠든 후회가 다시 한 번 떠올랐을 뿐이고,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이제는 사문이 집과 같아졌다는 사실도 다시 떠올렸다.

 어느 덧 동굴이 보였다.


"화산에 바로 가는 건 무리겠지?"

"화산에 돌아가기에는 늦었어. 동굴에서 머무르다 가야 해."


 그는 유이설을 따라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비는 아직도 그칠 줄을 몰라 동굴에서 비를 그을 뿐. 유이설은 동굴 안 마른 가지로 작은 모닥불을 피웠다.


"돌아가면 혼날 거야."

"그러겠지. 사문 밖으로 허락 없이 나왔는 걸."

"사형뿐만 아니라 나도."

"무슨?"

"사형, 내가 왜 밖에 나와있을 것 같은 데?"


 그가 어린 만큼 그녀도 어렸다. 한파에 얼굴이 베여 붉게 물들던, 말할 필요도 없이 시린 날. 사문의 어른들이 그녀를 보낼 리는 없었고, 그녀의 독단이었다. 그의 얼굴은 이미 엉망진창으로 물들어 있을 터였다.


"화산에는 나나 사형같은 애들만 갈 만할 곳이 몇 군데 있어. 여기도 그렇고."

"혼나는 게 안 두려워?"

"많이 죄송하지만, 다들 사형을 못 찾길 래. 그리고 누군가는 해야 하니까. 게다가 여긴 나만 알고 있을  걸."

"길도 사매보다 못 찾는 사형으로서 미안하다."


비가 투둑 투둑 떨어졌다. 불이 습하게 타오르고, 그의 곁에 있는 것은 어른도 아니라 그만큼 어린 아이 뿐. 그의 옆에는 물을 것도 한 가득인 알 수 없는 사매만 있다.


"사형, 나중에 또 비 오면 왜 산에 익숙한 지 말해줄게."

"정말로?"

"안 궁금해? 대신 사형도 얘기 해줘. 보통 화음현 애들은 사형보다는 산 잘 알아."

"그래, 그러도록 하자."


 비를 맞았기 때문인지 얼굴은 울긋불긋 물들었고 사매 덕에 그친 울음이 얼굴에 자국을 남겨 놓았다. 시린 밤, 비가 내리고. 잘 알지도 못하는 산의 겨울.

 그래도 사매 덕분에 그리 불편하지는 않다고 진동룡은 중얼 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