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그가 겪는 더위를 구별하지 못한다.

이런 것들은 느껴보지도 못한 듯이. 산적 같이 생긴 것처럼 둔하기 짝이 없었다.

청명은 발을 구르며 걸었다. 허수아비들을 수도 없이 베어 넘기기를 몇 번째. 해소되지 않은 채로 남은 분노가 피부 아래서 스멀거렸고. 이를 패악질로 승화시키려던 짓거리가 그녀가 망나니라는 사실을 다시 상기시켰다.

또한 알량한 망설임이 있다는 것은 그녀가 그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게 만들었다.


"아씨, 진짜!"


그녀는 그 때문에 그녀가 고생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그도 이것을 알아야 할 텐데!

그렇게 된다면 다정한 말은 못 들을 지라도 당황한 얼굴은 볼 수 있을 터였다. 최소한 내가 그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알게 될 테지.

그 정도라도 충분히 좋을 것이다. 거기까지만 해도 충분한 기적일 테니까.

그딴 것도 기적이라고! 청명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누가 그딴 아저씨를 좋아해!"


선선하게 부는 바람 때문인지. 청명은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는 것을 느꼈다. 예로부터 가벼운 광증에는 쉬는 게 약이라던데.

문제는 그녀가 걸린 것은 가벼운 광증이 아닐 게 분명하다는 점이었다. 오히려 가벼운 쪽이야말로 현실 부정이겠지. 그렇다면 정말로 내가? 그 아저씨를? 착각 따위가 아니라?

그녀는 청문에 대해 생각했다. 이립도 넘은 노총각인 주제에 애를 키우는 양 행동하지. 그리고 그 애가 바로 나고.

청명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로 미쳐버릴 것 같아서, 이런 식으로도 해소해야 했다.

아니, 정말로 그는 이성적인 호감을 느낄 건덕지조차 없는 데!

험상궂게 생겨서는, 무던하기 짝이 없고. 어울리지도 않게 혀 끝에는 타이르는 말들만 걸려 있어, 그 앞에 서면 짜증 한 번 내기도 어렵기만 한 아저씨.

그녀는 지금도 그가 그녀를 애 다루듯 취급하는 모습을 쉽게 그릴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그녀가 아직 망나니라는 것처럼 그도 변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 사실에 화가 났다.

산문 안팎으로 질 줄도 모르고 물씬거리는 매화의 향기. 봄 내음을 날라다 주는 선선한 바람. 여름이라고 해 봤자 봄의 끝자락을 겨우 따라잡는 이른 초여름의 날.

그가 뭐라고 말했던가. 여름이라서 주책맞게도 얼굴이 붉어진 것 같구나-라고?

뭐? 여름이라서 덥다고? 그렇게 얼굴이 붉어져 놓고 한다는 말이 고작 말 되먹지도 않는 거짓말 따위라고?

그거야 말로 사파 놈들이나 한다던 개짓거리가 아니었나?


"그렇게 티를 내는 데! 하나도 못 알아보고! 좀 반응이 있다 싶었더니 헛소리나 지껄이고! 진짜, 오늘은 못 참아. 대사형이면 뭐 어때. 기사멸조 좀 하고 말지, 응?"


청명은 청문의 처소로 이어지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분노와 흥분이 엉망진창으로 뒤엉켜, 그녀만이 아는 약간 미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늘은 그 양반 멱살이라도 잡고 말아야지. 그녀는 경공을 썼다. 기세 좋게 달린 지 몇 분째. 그녀는 청문의 처소가 있는 전각에 도착했다.

 속세에 가장 가까운 도가라는 말을 따르기라도 한 듯, 화려하고도 절제되어 있는 전각들은 높게 솟아 있어 하늘을 가렸다. 그 사이로 어두워진 하늘이 드문드문 보였다.

 초저녁에 불과한데도 어스름이 깔려 있었다. 뭐? 여름이라고? 웃기지도 않은 소리.

 청명은 처소의 문을 발로 걷어찼다. 하극상이지만, 멈추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는 이미 그 때문에 미칠 지경인데. 이 정도는 해야 공평하지.


"화가 많이 났구나, 청명아."


 꼴에 졸리기라도 한 듯, 그는 병풍에 기대고 있었다. 덥수룩한 머리카락을 굳은 살 배인 손가락이 갈랐고. 연보라색 하늘이 그의 얼굴을 비췄다. 약간은 지치고, 피곤하고, 당혹스러운 모습.

 당황스러운 모습을 보면, 그게 기적이라고 했던 게 언제였더라?

 쿵, 쿵.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겨우 그 목소리에 또 반했나? 하지만 그녀에게도 변명거리는 있었다. 그녀는 빠르게 달려왔으니까.


"그런 셈이죠. 대사형이 그런 말만 안 했어도 쳐들어 오지는 않았을 텐데. 이건 다 대사형 탓입니다, 제 탓이 아니라요."

"그래, 내가 잘못했구나. 어떻게 하면 네 화가 풀릴 것 같으냐?"


 그녀는 청문의 옆에 앉았다. 그녀의 손이 청문의 턱을 잡아당기듯 쓸었고. 청문은 그녀를 끌어당겼다. 그의 두꺼운 팔이 그녀를 감싸 안았다. 그는 머리를 그녀의 어깨 위에 올렸다. 숨결이 뺨에 닿았다. 벌써 여름이라는 거짓말을 하는 듯 뜨겁고, 그녀의 분노를 순식간에 녹여버릴 것 같고, 야살스럽기 짝이 없는 속삭임.


"이 정도면 만족할 테냐?" 부드럽고 긴 수염이 손 끝에 잡혔다. "아니면, 더 바라는 게 있느냐?" 탄력성이 있고, 까쓸까쓸하지는 않은 수염의 촉감. 지친 듯이 보이지만, 몇 배는 매혹적인 표정.

 정말로, 정말로 내가 아는 사람이 맞나? 그녀가 그를 잘 알기에는 그는 나이가 그녀보다 많았고, 숨기는 것이 그녀의 생각보다 능숙한 어른이었다.


"그런다고 제 화가 풀릴 듯 싶습니까?"

"그래, 부족하게 느껴진다면 더 해줘야겠지."


 속삭임이 멎자마자. 속살거리던 입술이 그녀의 목덜미를 물었다. 약간은 간지럽고, 생소하고, 부끄럽게 느껴지는 입술의 움직임.

 그의 입술이 목덜미에서 떨어지고, 그녀가 숨을 토해내기도 잠시. 이번에는 그의 입술이 그녀의 뺨을 눌렀다. 떨어졌다 붙여오기를 짓궂은 장난처럼 하기를 두 어번. 그는 이빨로 그녀의 아랫입술을 물었다. 순식간에 굵은 혀가 입속을 파고 들었고, 그녀는 그 혀를 받아들였다. 생각하던 것보다 거칠고, 묘하고, 독특한 촉감. 숨을 들이쉴 때마다 더욱 파고 드는 데 그게 불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숨이 가빠져 왔을 때, 그가 입술을 떼어냈다. 그의 입술은 젖어 있었고, 완전히 푸르게 물든 하늘이 묻은 것 같았다. 아쉽다는 생각에, 그녀는 그를 끌어당겼다.


"청명아?"


 그녀는 알아듣지도 못한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허락으로 받아들였는 지, 그는 그녀의 옷고름을 쥐었다. 순식간에 끈이 풀렸고, 그녀는 그의 옷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