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헤일로를 파괴하는 탄약>으로 카즈사를 없앤 레이사는 망연자실한채, 연구실을 헤메고 있었다.)


걷기 시작하고 얼마나 시간이 흐른걸까.


몇 시간 걸어다닌 기분이지만 아직 몇분도 안 걸은 기분인 것 같기도 하다.


피폐해진 몸은 이미 머리와 떨어져, 누구의 의지로 움직이는지도 모르겠다.


어스름한 연구소 안에서 뿌리를 잃은 부평초처럼 정처없이 떠돌고 있다.


시야가 희미해지고, 의식이 날아가려 할때마다 몸의 극심한 고통이 나를 다시 현실로 데려온다.


그것은 그녀가 쓰러지려 하는 나를 깨우는 것 처럼 느껴졌다.



이제 지쳤는데.



쨍그랑하고 가벼운 소리를 내며 땅에 무언가 떨어졌다.


소리가 난 쪽으로 눈을 돌리자, 두 동강이 난 머리장식이 쓸쓸해보이게 떨어져 있었다.

이 찌그러진 플라스틱 덩어리가 원래는 별의 형태를 하고 있을거라 그 누구가 믿어줄까.


[……깨져, 버렸네요.]


공허한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리곤 실이 끊어진 꼭두각시처럼 그 자리에 주저 앉아버렸다.


정적을 원하는만큼 지친 정신엔 자신의 옷이 스치는 소리마저 요란하게 들려왔다.



약속을 완수했다.

이제, 내가 해야될 일은 전부 끝났다.




주머니를 뒤졌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간이다.

조급한 마음이 진정되지않고 <그것>을 꺼내는데 애먹고 있다.


이윽고 주머니에서 검은 총신이 모습을 보였다.


슬라이드를 조금 비켜 놓고, 최후의 한방이 들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총구를 내 머리에 들이댔다.


죽음의 공포라 말하는 것은 생각보다 느껴지지 못했다.

방아쇠를 당기면 이 하찮은 생명이 끝난다. 그것뿐이다.


그것은 리모콘의 버튼을 누르고 텔레비전을 끄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그녀는 마지막에 <행복한 삶을 살았다>라고 말했다.


그럼 나는?

이런 오점투성이인 삶 속에서 있을지 모르는 행복을 찾아서 만족할만큼, 좋은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다행이다.

이 고통이 끝난다면 삐뚤어진 끝도 용납할 수 있다.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몇번이고 걸었던 방아쇠는 꽤 손가락에 길들여져 있었다.



텅텅 빈 껍데기 뿐인 정의에 목 메단 히어로의 최후는,

이기적이고 실로 무책임한 것 같다.




[우자와.]





들릴리가 없는 목소리로 이름이 불리자 제정신을 차렸다.

주변을 둘러봤지만, 당연하게도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대신 총을 꺼낼 때 같이 나온 것을 보이는, 그녀가 준 메모리가 발밑에 굴러다닌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맞아. 나에겐 아직.


[……………그렇……군요. 하하……… 아하하……..]


메마른 웃음이 터져나왔다.

한참동안 웃고 나는 메모리를 줍고, 대신 총을 바닥에 내던졌다.

총에 묻어 있던 피가 바닥에 선을 그리듯 퍼졌다.


[……쿄야마 카즈사.]


이제 더 이상 부를 일이 없을 이름이라 생각했다.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이번에도 환청이 아니였다면 얼마나 기뻣을까.

다시 한번을 눈을 감고 뜨면 거기에 그녀가 서 있을거란 기분이 들었다.


[전 역시, 외로운 사람인 것 같아요. 마음이 약하네요.]




결국 나는 마지막까지 과거로부터 도망치지 못했다.

아이처럼 무릎을 두 손으로 강하게 껴안고, 몸을 깨무는 듯한 고독과 자신의 나약함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작가


자살한다는 선택지도 난 좋은데 이렇게 감내하는 결말도 좋다 눈물 엄청 흘렸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