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

 

지퍼가 특이한 곳에 달린, 옷이라고 부르기에 다소 애매한 것을 걸친 학생이 외친다.

 

“부장?”

 

그녀의 시선 끝에는 어딘지 고고하고, 청아하며… 평소에는 그러지 않을 테지만, 지금은 다소 맹한 표정을 하는 소녀가 있었다.

 

“부장!”

 

“아! 네?”

 

“다행이네. 한 번 더 대답이 없으면 청력 검사를 시킬 거였거든.”

 

“제 청력에는 문제없어요. 언제나처럼 세상 모든 것을 올곧게 듣고 있죠.”

 

소녀는 퀭한 눈을 애써 숨기려는 듯 눈웃음을 지으며 커피를 집었다.

 

“그래서, 뭐 때문에 저를 찾으시는 거죠?”

 

“요즘, 뭐 하고 있어?”

 

“네? 그야 언제나처럼 데카그리마톤의 추적이나, 기타 초현상의 분석을…”

 

“거짓말.”

 

“예?”

 

“3일 전, 그러니까 월요일이었어. 평소랑 비슷했지만 엔카를 더 흥얼거린다던가, 데이터 분류를 더 빨리 끝낸다든가 하는 등, 묘하게 일에 속력이 붙었었지.”

 

에이미는 허공에 그래프를 띄우며 말을 이었다.

 

“문제는 2일 전부터였어. 평소보다 늦게 부실에 와서는 계속 전화만 힐끗거렸지. 덕분에 전날에 비해 3분의 2 정도밖에 못 끝냈고.”

 

“그건 그러니까… 치짱하고 데이트 약속이 잡혀서…”

 

“저녁이 다 될 때까지 부실에서 나가지도 못했으면서?”

 

딸꾹. 정곡을 찔렸다는 것을 히마리의 몸이 먼저 시인한다.

 

“어제는 아예 점심이 돼서야 들어오더니, 아예 쉬어 버리자면서 엔카를 켜 놓고 자버렸지?”

 

“누, 누구나 휴식은 필요한 법이니까요.”

 

“나도 놀랄 정도로 에어컨을 틀어놓고서?”

“…”

“그리고 오늘, 부장은 내가 10분을 불렀는데 반응을 못 하는 지경까지 왔어.”

 

에이미는 히마리의 손을 잡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내가 아는 부장은 3일 동안 서서히 망가지는 사람이 아니야. 가끔 우스꽝스러운 순간이 있긴 해도, 대부분은 밀레니엄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든든한 아군이지. 그러니, 털어놔줘. 무슨 일이야.?”

 

히마리는 애써 눈을 피하려 했지만, 손이 잡힌 상태에선 의미 없는 반항이었다.

 

“휴.”

 

얼마간의 침묵 후에, 그녀는 입을 열었다.

 

“선생님이…”

 

“선생님이?”

 

“선생님이 총력전에 불러 주시질 않아요…”

 

“에.”

 

“지난 대결전에서도 그러더니, 이번 총력전에서도 부르질 않는걸요…”

 

에이미는 한순간 그녀가 저지른 수많은 기묘한 장난을 마주할 때와 같은 것을 느꼈다.

 

“화요일에는 아직 높은 난이도가 나오질 않아서 굳이 부르시지 않는 배려라고 생각했어요.

 

수요일에는 목요일에 있을 제일 높은 난이도를 위해 연습을 하노라고 생각했고요. 그런데 그런데…!”

 

에이미는 히마리를 말없이 안았다. 여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그래도 그녀가 우는 모습은 마주하기 싫었기에, 에이미는 파묻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법한 자세로 그녀를 안았다.

 

잠시 후

 

“좀 진정됐어?”

 

“네… 덕분예요.”

 

히마리는 코가 막힌 목소리로 대답했다.

 

“진정됐으니 다시 물어도 될까?”

 

“대답은 아까 다한 것 같은데요… 그것도 꽤 추한 꼴로…”

 

히마리는 조금 전의 추태가 부끄러웠는지, 소파에 누워 고개를 돌렸다.

 

“나로서는 전혀 대답이 안 됐어. 총력전이든 대결전이든 못 불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건데?”

 

에이미는 천천히 책상 쪽으로 몸을 옮겼다.

 

“선생님과 함께 손과 발을 맞춰 적수를 쓰러뜨리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아시지 않나요?”

 

“말만 들으면 훨씬 효율적으로 격파할 수 있긴 하지.”

 

“단순히 그런 게 아니예요.”

 

히마리는 몸을 돌려 그녀에게 시선을 맞춘 채 말을 이었다.”

 

“키보토스의 모든 학생을 아는 선생님이 고르고 고른 6명의 학생들만이 총력전에 나갈 수 있죠. 그중에 제가 편성된다는 건, 나아가 지휘를 받으며 옆에서 싸울 수 있다는 건, 그 자체로 보상이예요.”

 

에이미는 조용히 휴대전화를 들었다.

 

“그러다 몇 달 전부터는 제자리에 수영복 입은 시로코씨를 데려오기 시작하셨어요. 같이 편성은 시키지 않으셨지만, 그래도 같이 싸울 동료가 늘어 기뼜죠.”

 

“그랬는데?”

 

“그랬는데 지난번부터는 총력전 기간이 끝날 때까지 저를 부르지 않으셨어요. 캠핑복을 입은 하레가 나왔던 그때 말이예요.”

 

“그렇게 말해도 난 모르지.”

 

“시로쿠로 때요. 3가지 속성 중에 아예 저를 빼 버리신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히마리는 싫은 기억을 털어 버리려는 듯 머리를 가로저었다.

 

“아아, 어떡하면 좋죠 에이미? 이대로 저는 선생님께 잊혀지는 걸까요? 더는 같은 전장에서 두 손과 입을 맞춰가며 춤을 추듯 화려하게 적을 유린하던 그날을 맞을 수 없는 걸까요?”

 

“아니, 입을 맞춘 적은 없는데…”

에이미는 어느새 영상통화로 바꾼 채 그녀를 촬영 중이었다.

 

“서, 선생님? 언제부터 듣고 계셨던 거죠?”

 

“듣고 있던 건 히마리가 총력전에 대한 감상을 말할 때부터, 보던 건… 귀여운 질투를 토로할 때부터.”

 

“에이미!”

 

“선생님, 잘 들었지? 부장 좀 말려 봐.”

 

“이번 주는 바빠서 주말에 몰아서 하려고 굳이 안 부른 거야. 나중에 허리가 휘도록 연습시킬꺼니까 각오해 둬.”

 

히마리는 조금 전까지 검게 꺼져가던 눈동자를 밝혔다.

 

“네! 이 초천재 병약 미소녀, 절벽 위의 한 떨기의 꽃, 유리처럼 투명한 1급수의 물인 저, 아케보시 히마리가 당연히 필요할 테니까요.”

 

“코맹맹이 소리로 그런 말을 해봤자 안 멋진데…”

 

“도발은 하지 마 선생님. 아, 이미 늦었네.”

 

히마리는 얼굴을 붉게 물들이더니, 손짓 몇 번으로 샬레의 전력을 차단했다.

 

작업 중이던 문서가 날아가 몇 번의 비명과 절규가 울려 퍼졌고, 히마리는 벌로 일주일간 샬레의 당번을 맡아야 했다.







옛날에 한섭에서 캠하레 나올 때 갤에 쓴 소설인데, 일섭에서 키사키 나와서 히마리 대체된단 이야기 있어서 챈에도 재업해봄.


그래도 다들 히마리 아껴줄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