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ac.namu.la/20240610sac/d533d7f78c8d0b822987cea5d7831c241c5136c75aa8cf399971699c7dcaaa6a.png?expires=1719795600&key=4fy0DCNS_l_DxjgtHJkvwA)
아! 하드보일드한 무법자란 무엇인가!
하드보일드한 무법자란, 항상 무언가에 쫓기면서도, 동시에 무언가를 쫓는 사람이다!
그는 누구보다 소탈하지만, 또 누구보다 갈망해야 한다.
그는 누구보다 자유롭지만, 또 누구보다 속박되어있어야 한다.
그는 결핍되어 있고, 사랑해야만 한다―
그것이 무법자이고, 그것이 하드보일드니까.
“하아, 하아...”
게헨나 외곽에서 하드보일드하게 의뢰를 마친 것은 좋았다.
그깟 헬멧단 놈들이야, 한 트럭을 데려와도 그녀와 흥신소 직원들한테는 상대가 안 되니 말이다.
카요코로부터 선도부가 출동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상황은 괜찮았다.
이곳은 게헨나 자치구에서도 외곽 지역, 얼른 상황을 정리하고 잽싸게 사무소로 튀었으면 될 일이었다.
다만.
‘우와~! 아루 짱, 오늘은 진짜 하드보일드한 무법자다운데!’
라는 무츠키의 말에.
그녀는 왠지 오늘 따라, 정말로 더 하드보일드하고 싶어졌던 것이다.
‘너희들이 도망칠 시간을 벌어주겠어.’
‘마침 게헨나에 온 김에 잠깐 볼일이 있어서 그래.’
‘아아... 맞아... 좋지 못한 ‘옛날’과 관련된 일이지...’
좋지 못한 옛날? 그런 거 없어!
아니, 오히려 좋았다면 좋았지!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으니까!
도망칠 시간을 벌어? 도망칠 시간은 충분했는데?
아니, 도망은 지금 내가 치고 있는 거 아니야?
어두운 골목 사이 실외기에 등을 기대어, 리쿠하치마 아루는 두 손으로 자신의 뿔 근처로 엉긴 머리칼을 잔뜩 헝큰다.
대체 내가 왜 그런 허세를 부렸지.
왜 또 이런 쓸데없는 허세를 부려서, 스스로를 이런 위기상황에 몰아넣는 거냐고!
“분명 이 부근에 있을 거다! 얼른 찾아내!”
하지만 지금의 그녀에게는 후회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또 다시 들려오는 선도부원들의 목소리에, 그녀는 앉은자리에서 펄떡 튀어올라 곧장 다시 골목 위를 달렸다.
쫓겼다가, 숨고, 쫓겼다가, 숨고.
이것이 무법자의 삶인가.
아냐, 조금 달라. 내가 생각하던 무법자의 삶과는.
무언가가.
-모모톡!
“!?”
그 순간 상큼발랄한 여성의 목소리가 골목을 울려, 분주한 기색을 내던 거리는 한 순간 정적에 휩싸인다.
하, 하하.
대체 누가 이런 절묘한 타이밍에.
아루는 떨리는 손으로 겉옷 주머니에 손을 넣어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었다.
[발신인 - 아사기 실장]
[어때? 선도부는 따돌렸어? 숨겨진 과거는 잘 해결했고? 우리 지금 사무실에서 과자랑 차 먹고 있으니까 얼른 와! 차 식겠다!]
장문의 메시지 아래로는 피스를 하며 카메라를 응시하는 무츠키와,
무심한 표정으로 차를 들이키는 카요코,
그리고 전병을 반 쯤 입에 넣은 채 안절부절 못한 표정을 짓는 하루카의 사진이 보인다.
이렇게까지 사장을 걱정해주다니.
정말 훌륭한 직원들이라니까.
타이밍을 정말, 엄청나게 못 맞추는 것만 제외한다면 말이야.
어깨 부근으로 총알이 날아오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자, 또 다시 도망칠 시간이다.
아루는 얼른 다리를 움직여 걸음아 날 살려라 골목을 내달렸다.
“이쪽이야! 이쪽에서 모모톡 알람이 들렸어!”
“쫓아! 얼른!”
무법자는 언제나 법을 수호하는 이들에 의해 쫓긴다.
무엇에도 구속당하지 않는 무법자는 계속해서 도망칠 뿐이야.
다만, 어디로?
얽히고설킨 골목 사이를 지나며, 아루는 속으로 그렇게 되뇌었다.
그녀가 선도부를 피해 자치구를 돌아다니는 동안, 키보토스에는 오늘도 석양이 내려앉았다.
그것은 이 골목 역시 마찬가지라, 이곳저곳을 부딪쳐 흘러들어오던 작은 볕마저 결국엔 모두 흩어지고 말았으니.
“......”
어둠은 그녀를 그림자 안으로 숨겨주었으나, 동시에 그녀로 하여금 일종의 비참함을 느끼게 만든다.
그냥, 고집부리지 말고 애들이랑 같이 돌아갔으면 지금쯤 맛있는 과자와 말차를 먹고 있었을 텐데.
그 생각을 하니 뱃가죽 안에서 뱃고동 소리가 울렸다.
배가 고프다. 날씨도 서늘하다.
그냥 어깨에 걸친 코트 안으로 팔을 넣을까.
아냐. 이것만큼은 무법자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이지.
그녀는 엉거주춤 움직이던 자세를 다시 바로잡았다.
택시를 잡아 탈 돈도 없고.
사무실까지 걸어가자니 정말로 동이 틀 때쯤 도착할 것 같은 느낌인걸.
이제는 정말로 어디로 가야 하지.
그 모든 소설과, 만화와, 영화에 나왔던 무법자들은, 모두 어디를 향해 도망치던 걸까.
-모모톡!
또 아까와 같은 전개가 펼쳐질까 싶어, 애간장이 떨어질 뻔한 그녀는 허둥지둥 스마트폰을 쥐고서 다른 골목으로 달음질을 했다.
아까 그런 일을 겪고도, 또 알람 끄는 걸 깜빡했었다고? 정말로?
자신의 허술함을 자책하며 실외기 뒤로 숨은 그녀는, 얼른 핸드폰을 쥔 오른손을 자신의 얼굴 앞으로 들이밀었다.
[발신인 - 선생님]
[아루. 지금 쫓기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어디야?]
어라. 이건 정말로 예상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카요코 정도일줄 알았는데, 선생님이 나에게 연락을?
선생님이. 그 선생님이 날 걱정해주고 있구나.
살짝 뺨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낀 아루는 화들짝 놀라 머쓱하게 스스로의 턱을 쓰다듬는다.
이게 선생님의 원래 업무잖아. 키보토스의 학생들을 케어하는 거.
제정신을 차린 그녀는 화면 위로 두 엄지손가락을 살포시 올려놓았다.
어쨌든 선생님이 계속 걱정하게 둘 수는 없다.
여기서는 여유로운 느낌으로, 조금 하드보일드하게...
[글쎄. 쫓기는 걸까? 아니면 약간의 여흥일지도.]
좋아. 아주 좋은 대답이었어. 아루.
의기양양해진 아루는 거만한 미소를 입에 품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돌아오는 답장은, 그 미소를 완전히 지워버리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오리가 말해줬어. 교외의 허락받지 않은 전투활동이라니. 이번에는 정말로 구속 후 장기간의 정학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뭐.
뭐어어엇―――!!!
구속이라고? 정학이라고?
그럼 흥신소 활동은? 내 직원들은?
아루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히기 시작한다.
[다만, ‘샬레’의 소속으로서 행한 치안유지 활동이었다고 하면 아무 일 없이 끝날지도 몰라.]
그, 그렇다고?
역시 선생님이야! 구해줄 줄 알았다니까!
다시금 그녀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져갔으나, 이번의 웃음은 완전히 천진하단 느낌이다.
신난 아루는 얼른 선생을 향해 감사의 답장을 보내기 위해 손가락을 놀렸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네 증언이 필수적이야. 부디 일단 자수한 후 선도부로 와주겠어?]
‘자수’, 라.
아루의 손가락은 그대로 멈춰버렸다.
지금의 그녀는 단지 눈썹 사이로 깊은 골을 만든 채, 선생이 보낸 마지막 메시지를 응시하고 있을 뿐이다.
아무리 선생님의 부탁이라고는 하지만.
일일일악을 삶의 모토로 삼은 키보토스의 무법자가 자수라니.
인정사정 보지 않고 고고하게 인외마경을 걷자는, 그 다짐을 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비굴하게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공권력의 가랑이 사이로 들어가는 비겁자가, 자신을 무법자라 칭할 수 있을까?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선생님의 제안을 거절한다면.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녀는 답장을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했다.
행여 마음을 정했다가 싶다가도, 전송 버튼 앞에서 손가락은 계속해서 망설인다.
고단한 몸과 무법자로서의 프라이드가 벌이는 끊임없는 충돌.
안 돼. 결정을 내릴 수가 없어.
멍해진 아루는 스마트폰을 무음모드로 전환한 후 다시 주머니 안에 넣었다.
이제 어디로 가야할 지는 모르겠지만, 걷는 것 외에 방도는 없다.
그녀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골목 사이를 걷기 시작했다.
“배고파...”
벌써 달은 환하고, 이제는 진짜로 뱃가죽이 등에 붙기 직전이다.
그렇다고 나가서 배를 채울 수도 없다.
아직도 곳곳에는 선도부원이 깔려 그녀를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있었으니까.
대체 선도부는 어떤 곳이길래 부원들이 저녁까지 저렇게 열심인 걸까.
하긴, 그 히나와 시선을 주고받고 나면 누구라도 자발적으로 야간당직을 서게 되고 싶어지겠지.
아루는 선도부원들의 심정에 공감하며 찬찬히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현재 아루는 게헨나 외곽의 주거구역을 걷고 있었다.
한 걸음 건너 한 명의 선도부원이 있는 상점가에 비하면 여기는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천국이라니. 이렇게 배고프고 힘든 천국이 어디 있어.
아까까지의 상황이 너무 급박했다보니 안락함에 대한 역치가 완전히 낮아져버렸다.
집중해, 아루. 얼른 포위망을 뚫고 사무소로 돌아가야지.
그렇게 다시금 마음을 다지는 그녀의 시선에, 갑자기 부자연스러운 불빛이 하나 튀었다.
빨간 불빛을 담은 등이 여럿 걸려, 그것은 수레의 형태를 하고 있다.
포장마차다. 흔히 주거구에 하나씩 자리를 잡고 있는, 옛날 방식의 포장마차가.
그쪽으로 가까이 다가갈수록, 아루의 코 안으로는 맛있는 냄새가 가득 들어차기 시작했다.
이건, 이건 참을 수가 없다.
아무리 평소에 가난한 그녀라지만, 지갑 안에 어묵 하나 사 먹을 돈 정도는 남았을 터.
설령 내일 체포당하더라도 오늘 어묵 한 조각을 씹으리라. 그것이 무법자니까.
아루는 잰걸음을 하여 포장마차를 향해 곧장 돌진했다.
“어서옵쇼―!”
수레의 겉 부분을 감싼 술들을 치워내니, 그녀를 맞아주는 것은 개 모습의 주인장이었다.
새삼 시바세키 라멘이 생각나는 그녀다. 갑자기 미안한 감정이 드는 걸.
이 포장마차는 폭발로 날아가는 일이 없기를.
속으로 짤막한 기도문을 읊은 그녀는 얼른 눈앞을 훑어 빈자리를 찾아 시선을 움직였다.
작은 의자가 여럿, 수레의 겉을 따라 ㄷ자로 줄지어 있다. 그 중 주인이 있는 의자는 한 개.
아무래도 낯선 사람 옆에서는 조금 눈치가 보이니, 그녀는 원래 있었던 손님으로부터 한 칸 떨어진 의자에 엉덩이를 떨어뜨렸다.
그 손님 역시 게헨나 학원의 학생인지, 그녀는 아루와 비슷한 모양새로 학원 교복에 포함된 재킷을 걸치고 있었다.
잠깐, 저 은발 장발,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아루는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곧 몰려오는 허기에 머릿속은 다시 어묵에 대한 갈망으로 채워진다.
“저, 어묵 하나…….”
“잠깐.”
그 들뜬 목소리가, 갑자기 난입한 다른 말에 가로막혀버렸을 때.
그녀는 진심으로 살짝 석이 나가, 짜증을 담은 눈빛으로 그곳을 향해 빠르게 고개를 틀었다.
“미안하지만, 당신...”
두 눈이 마주쳐, 서로를 알아본 두 명의 여학생은 순간 말문이 막혀 가만히 시선만을 주고받는다.
하지만 먼저 표정이 변하는 것은 아루였다.
아루는 그녀가 누군지에 대해서, 또 그녀가 게헨나 자치구에 떨치고 있는 악명에 대해서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미, 미식연구회의 하루나!? 당신이 왜 여기에 있는 거야?”
“그런 당신은 흥신소의 리쿠하치마 씨였던가요. 후훗. 이런 곳에서 뵈다니. 반가워요”
그녀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살가운 인사를 건넸지만, 아루는 그런 그녀에게 건넬 적절한 답인사를 생각할 수가 없었다.
‘맛이 없는 식당은 없어져야 한다’며 가게들에 폭탄을 설치하고, 온갖 곳에서 미식을 위해 테러를 저지르고 다니는.
그 미식연구회의 수장이 자신의 눈앞에 있다니.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꿀꺽 소리를 내며 침을 삼켰다.
“저야 뭐, 언제나처럼 미식을 하러 왔죠. 어쩌면 제가 찾는 그 맛이 이런 허름한 포장마차에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그, 그래서, 찾았어?”
“아, 안 그래도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려 했는데.”
그 선홍색 눈동자가 불꽃처럼 번뜩여, 아루는 무언가 불안함을 느끼고선 팔뚝 위로 돋은 소름을 쓸어냈다.
“참 운이 좋으시네요. 지금 이 가게에서 주문을 하시려던 참이었죠?”
“응. 맞는데.”
“정말 다행이에요. 그게.”
다행이라니. 대체 뭐가 다행인 것인가.
긴장한 아루의 앞으로 하루나는 뇌관이 연결된 스위치를 하나 꺼내 보여주었다.
“이제 막 이 포장마차를 철거할 참이었거든요.”
“아니아니아니아니 잠깐! 뭐?”
당황한 아루는 연거푸 그녀와 가게 주인을 번갈아 쳐다본다.
주인은 완전히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방금 전까지 자기 음식을 먹던 손님이 자기 가게를 폭파시키겠다고 하는데.
“어묵을 끓이는 국물은 무를 베이스로 해물로 감칠맛을 내려 했던 것 같은데, 비린내의 정도를 보니 해물 손질의 기본이 안 되어 있군요. 어묵도 쫄깃하기보다는 걸레짝을 씹는 느낌이었고요.”
다만 하루나의 얼굴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저 그녀는 아까와 같이, 은은한 미소를 입가에 감고 있을 뿐.
“이런 식당은 없어져야 마땅하죠. 그죠?”
“아니, 그래도, 식당을 폭파시키는 것은 너무하잖아!”
상식적으로 음식을 못 만드는 것은 폭발과 테러에 휘말릴 만큼의 중죄가 아니다.
그렇기에 아루는 손사래를 치며 열심히 그녀를 말리려 들었지만.
“어머, 리쿠하치마 씨가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네요.”
도리어 하루나의 입에서는 그녀가 상상하지도 못한 말이 튀어나온 것이다.
“제가 듣기로, 당신은 이 게헨나 안에서 누구보다도 극악무도한 무법자라고 들었는데 말이죠.”
아루는 살짝 멍해졌다가, 곧 다시 제정신을 차렸지만, 여전히 초점을 잃은 동공은 하루나의 눈을 향했다, 입을 향했다, 갈피를 잃은 채 흔들림을 반복한다.
“리쿠하치마 씨. 무법자라는 것은 그런 거잖아요? 세상의 상식에 얽매이지 않고, 고고하게 자신의 인외마경을 걷는, 그런 사람을 칭하는 말이 무법자죠.”
그는 누구보다 소탈하지만, 또 누구보다 갈망해야 한다.
그는 누구보다 자유롭지만, 또 누구보다 속박되어있어야 한다.
“옥죈다면 주먹을 휘둘러서라도 떨쳐내고, 누른다면 무릎이 박살나더라도 떠받치고 일어서, 자신이 원하던 그 단 하나의 길로.”
그는 결핍되어 있고, 사랑해야 한다.
“그렇게 무법자는, 세상이라는 거대한 폭풍을 이겨 내어, 그 인외마경의 끝을 쟁취해내는 사람이어야 하잖아요?”
그것이, 하드보일드한 무법자라고.
“그런 고로, 저도 일종의 무법자라고 생각해요. 이 쿠로다테 하루나의 길의 끝에 있는 것은, 궁극의 미식을 찾는 것이거든요.”
두꺼운 안경을 낀 채, 미적 요소라고는 조금도 없는 거친 단발을 가졌던 중학생의 아루가, ‘멋있는 하드보일드한 무법자’에 대해 내린 결론은 바로 그것이었다.
“누가 어떻게 방해하든 상관없죠. 저는 오로지 고고하게 저의 인외마경을 걸을 뿐이랍니다? 이 세상 누가 저와 미식연구회 회원들의 앞길을 막아도, 저는 제 꿈과 신념을 위해 모든 역량을 다 할 거예요.”
그리고 눈앞의 이 소녀, 하루나는, 그녀가 내렸던 그 무법자의 정의에 완벽하게 들어맞고 있었으니.
“그렇다면 리쿠하치마 씨. 이번엔 제가 당신에게 여쭤보죠.”
이제 아루가 만든 ‘멋있는 하드보일드 무법자’는 도리어 그녀를 향해 돌아온다.
마치 비수 같은, 아주 날카로운 질문이 되어.
“당신이 걷는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나요?”
과연 그녀는― 정말로 무법자인가?
“......”
아루는 선뜻 대답을 뱉지 못한다.
선도부원들을 피해 골목길을 헤매던 때처럼, 그녀는 또 다시 망설이고,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내가 걷는 인외마경의 길. 그 끝에는 무엇이 있는가?
그저 목적 없이, 정처 없이 도시를 배회하는, 그런 ‘무뢰배’에 가까운 인간이, 정녕 지금의 나의 모습인가?
“자, 이제 저는 폭탄을 작동시킬 테니...”
그 때 하루나의 손가락이 움직여, 정신이 번쩍 든 아루는 얼른 다시 입술 사이의 틈을 벌려내었다.
“아니, 잠깐, 잠깐! 기다려봐!”
“또 왜 그러시는 거예요? 이제 리쿠하치마 씨도 동의하신 것 아니었나요?”
“그, 그, 그래! 이 주변으로는 선도부원들이 쫙 깔려있다고!”
“선도부원들이요? 어째서죠?”
그야 내가 사고를 쳐서, 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창피해지는 그녀였지만.
어쨌든 눈앞에서 멀쩡한 가게가 폭발하는 것을 지켜볼 수만은 없었으니.
아루는 곧장 하루나를 향해 자신의 현재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의뢰가 좀, 엇나가서. 응. 엇나가서. 선도부원들한테 쫓기게 되었는데, 현재 이 일에는 선생님도 관련된 상태라고.”
“선생님이라면, 연방총학생회 샬레의 그 선생님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렇다니까!”
“...흐음.”
하루나가 잠깐 고민에 빠진 사이, 아루는 재빠르게 자신의 스마트폰을 주머니 바깥으로 꺼내었다.
선생님이라면 이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을 것이다.
선생님이라면 저 광인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핸드폰을 꺼낸 그녀는 얼른 그 잠금을 풀어낸다.
그 순간, 그녀의 시야를 메우는 것은 수많은 알림들이었다.
[부재중 전화 14통 - 선생님]
[모모톡 142개 - 선생님]
어, 아?
그 순간 아루는 떠올린다.
아까 핸드폰을 무음모드로 전환한 이후, 한 번도 다시 핸드폰을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녀는 서둘러 모모톡을 실행했다.
끝이 없는 메시지들의 대열이, 위쪽이건 아래쪽이건 그녀의 화면을 가득 채워.
[아루?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모두가 널 걱정하고 있어! 무사한 거지?]
그 글자 하나하나를 읽어나갈 때마다, 그녀의 눈은 서서히 커져간다.
[아루!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아루!]
문자에서 감정이 느껴지는 경험은 처음이다.
그 검은색의 글씨들은 살아 움직이는 듯, 자꾸 그녀의 심장박동에 맞춰 꿈틀거려.
[아루. 흥신소의 모두와 함께 너를 찾기 위해 출발했어. 곧 만날 수 있는 거지?]
그녀는 침수되기 시작한다.
가슴 밑으로부터, 턱밑까지. 무언가가, 울컥울컥.
[아루. 이제 선도부도 너를 체포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 이제 제발 숨지 말고 나와 줘. 아루.]
그녀의 노란 동공 밑으로 조금씩 차오르는 물은, 마치 석양이 내리는 바다의 모습과도 같았다.
그것은 빛난다.
어여쁘게 빛나, 그녀의 뺨에는 별이 하나 박혀 흐른다.
[아루.]
[아루!]
[아루, 제발.]
지금의 그녀는 결핍되어 있었고.
또 어쩌면.
사랑하고 있었다.
“...음, 다시 고민을 해봐도 그러네요. 선생님이라면 저의 이 열의를 이해해주실 거예요. 그러니까...”
“아니.”
그 단호한 선언은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말투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이에 놀란 하루나가 고개를 들어 올라자, 그 앞으로는 검은색의 총구 하나가 나타난다.
“그렇지 않을 걸.”
하루나는 당황한 듯 살짝 입가를 짓이겼다.
그야 당황할 법도 하지, 갑자기 내가 이런 태도로 나왔으니...
"혹시 울었어요?"
"아, 아니거든! 안 울었거든!"
젠장, 맞다, 다시 총구를 아래로 내린 아루는 재빠르게 옷소매로 눈물자국을 닦아내었다.
분위기가 어째 이상해졌다. 아루는 다시 왼손으로 총열덮개를 받치고서 그녀를 향해 총구를 들이밀었다.
"어쨌든, 난 용납 못 해. 아마 선생님도 그러실 거고 말이지."
그런 그녀를 지켜보던 하루나는 곧 다시 여유를 담은 미소와 함께 다시금 말을 이어나간다.
“꽤나 확신에 차신 목소리인데요.”
“그래. 그야, 네가 물어봤잖아. 내 인외마경, 그 길의 끝에는 뭐가 있냐고.”
이제야 영점이 잡힌 느낌이다.
남들이 가지 않는 고고한 길의 끝.
그곳에 선 한 명의 어른.
“그래서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그 사람이 싫어하는 일은 일어나게 두고 싶질 않아서.”
“그 사람이라면, 선생님인가요?”
“그래. 하루나. 너도 다시 생각해봐. 과연, 선생님께서 폭파된 포장마차를 보고서 너를 칭찬해줄까? 과연 선생님 앞에서 그것을 떳떳하게 자랑할 수 있겠어?”
“이미 한 적은 있습니다만......”
그라면, 이런 하루나를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기에.
아루는 자신의 총을 들어, 그 방아쇠 위로 자신의 손가락을 올렸다.
어쩌면 더 커다란 일이 될 수도 있다.
어딘가에 미식연구회 회원들이 숨어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흥신소가 이곳으로 향한다면 이는 곧장 하나의 전투로 이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선도부의 진압과 처벌도 더 규모가 커지겠지.
하지만 상관없어― 무법자는 그런 것을 상관하지 않아.
나를 걱정하고, 나를 찾기 위해 진심으로 애쓰는 그 사람의 뜻을 위해.
오로지 그 길만을 걷는다.
리쿠하치마 아루라는 무법자는.
두 무법자는 입을 다문 채 서로를 노려보고 있다.
황색과 적색의 시선이 가운데에 부딪쳐, 얼어붙은 공기가 그 사이를 격렬하게 휘젓고 있을 때 쯤.
“...좋아요.”
하루나는 그렇게 말하고선 곧장 두 발을 뒤로 돌렸다.
물러난다. 그 하루나가.
내심 엄청난 다짐을 품긴 했지만, 그렇다고 긴장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니.
쿵쾅대는 심장소리를 감추기 위해 아루는 최대한 의연한 표정을 연기했다.
그 순간, 하루나는 다시 고개만을 틀어 그녀를 바라본다.
헉, 소리가 입술 사이로 새어나올 뻔했지만, 어떻게든 그것을 삼켜낸 아루는 냉정한 얼굴을 연기하며 그녀의 시선을 받아쳤다.
“오해하지 마세요. 저는 제 신념을 굽힌 것이 아니랍니다.”
“그래?”
“네, 단지...”
잠깐 스스로 말을 끊은 그녀가 곧 보여주는 것은, 진심이 느껴지는 어여쁜 미소.
“새로운 무법자의 탄생이라는 경사로운 일에, 굳이 초를 칠 필요는 없으니까요.”
“...무슨 소리야. 나는 이미 무법자였다고.”
“그렇겠죠.”
다시 출구 방향으로 머리를 움직인 하루나는 그녀를 향해 작별인사를 건넸다.
“게헨나를 대표하는 불량서클들의 우두머리로서, 각자 힘내죠! 아무리 선도부가 우리를 가로막아도, 우리는 우리의 길이 있는 거니까요!”
그렇게 그녀는 바닥으로 드리운 술들을 걷어내고서, 점점 멀어져 간다.
아루는 그 모습을 노려보고 있다가, 곧 방아쇠에서 손을 떼고선 자신의 배를 문지르며 털썩 의자 위로 주저앉았다.
“...아저씨. 어묵 하나만 주세요.”
“...그럽죠.”
주인장은 그녀를 향해 어묵을 하나 내밀었고, 그것을 받아든 그녀는 와앙 소리를 내며 자신의 입 안으로 꼬치를 집어넣었다.
앙, 하고 입술 사이를 닫은 순간, 손바닥 정도 길이의 어묵은 전부 그녀의 이 안쪽으로 갇히게 되었다.
그 상태로 쭉, 꼬치를 뽑아낸 그녀는 우물거리며 그녀의 저녁을 음미한다.
‘...맛있기만 하구만.’
열심히 턱을 움직이며, 그녀는 방금 있었던 하루나와의 기묘한 만남을 곱씹었다.
새로운 무법자의 탄생이라.
...그러고 보니, 알고 보면 나 그냥 그 녀석한테 선생님을 좋아한다고 고백해버린 거 아냐?
생각할수록 부끄러운 일이긴 하지만, 일이 잘 풀렸으니 더 생각할 필요는 없다.
입 안의 내용물을 모두 씹어 삼킨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동전지갑을 꺼냈다.
“아저씨. 계산해주세요.”
“예엡. 한 개 드셨으니 50엔입니다.”
이에 아루는 그 안을 열어 손을 집어넣었지만, 느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라. 그녀의 손가락이 연신 꿈틀대었지만, 그럼에도 그 끝에 걸리는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저, 아저씨, 혹시 카드 되나요?”
“아이고, 곤란한 걸. 안 됩니다. 리더기가 없어요.”
“어, 그러면.”
그러면 얌전히 선도부나 선생님이 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하하. 어묵 하나 사먹을 수가 없는 신세라니. 진짜 궁상맞은 걸.
하지만 결핍된 무법자는― 사랑을 한다.
이거면 된 거지.
비록 내가 돈은 없지만서도.
그래도.
아루는 세상에서 가장 흐뭇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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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머릿속에서 샘솟아서 막 휘갈겨본 문학임니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