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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쌓여 있잖아요 (12.5)

 

 

 

 

 

46.

 

시야가 무너진다.

 

세상이 옆으로 기운다.

 

순간, 나는 이것이 죽음이라고 직감했다.

 

톡 치면 무너지는 젠가 탑처럼.

 

인간의 목숨이란, 그토록 아슬아슬하고 덧없는 것이다.

 

“……생님-!”

 

달이…….

 

오늘따라 유난히 아름답다.

 

너와 함께 올려보았던 달처럼.

 

고통 속에서도, 문득 그리움을 느낀다.

 

“괜찮아?!……이거……어떻게……!”


밀려오는 어둠 속에서 느껴지는 건 그리움.

 

차디찬 돌의 촉감. 

 

너의 울부짖음.

 

흘러나오는 피의 따스함.

 

마지막으로.

 

달이, 웃고 있었다.

 

 

 

 

 

47.

 

평소와 같은 아침이었다.

 

방은 늘 그렇듯 포격이라도 맞은 듯 엉망진창이었다.

 

어제 먹었던 고기 냄새에 기름 냄새가 섞여 내 코를 무자비하게 두들겨 팼다.

 

설거지는……잔뜩 쌓인 접시만 봐도 머리가 아프다.


“아……귀찮아…….”


나는 팬티만 입은 채 어슬렁어슬렁, 점심은 라면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누가 와서 끓여주면 좋겠지만, 한편으론 누가 오면 옷을 입어야하니 귀찮다고 생각했다.

 

인간이란 참 제멋대로다.

 

아니, 이 경우엔 내가 제멋대로인 것이겠지만.

 

“엉?”


그 때, 나는 유즈톡이 왔다는 알람 소리를 들었다.

 

이런 시간에 누가……아니, 벌써 11시구나.

 

하도 늦게 일어나서 지금이 몇 시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스토킹이라고?”


키보토스에서 스토킹이라니, 드문 일이다.

 

아니……나한테도 스토커가 몇 명 정도 붙어있긴 하지만…….

 

그렇더라도 치세한테 스토커라니, 확실히 이상했다.

 

“아니, 그렇지만도 않은가.”


치세는 생각보다 인기가 많다.

 

이유야 잘 모르겠지만……은근히 따라다니는 팬들이 많으니까.

 

그 중에 정신이 이상한 녀석이 끼어있어도 이상할 건 없다.

 

“경찰한테 가는 건 좀 그렇고……애매하군.”


고민하는 사이에, 나는 옷을 챙겨 입고 간단하게 씻었다.

 

경찰한테 신고해봤자 십중팔구 스토커는 잡히지 않을 것이다.

 

경찰이 무능해서 그런 건 아니다. 원래 스토커는 잡기 힘들다.

 

애초에 스토커는 잡더라도 범죄를 입증한다는 게 쉽지 않다.

 

이래저래 사람 귀찮게 하는 족속들이다.

 

“쯧.”


나는 곧장 택시를 타고 백귀야행으로 향했다.

 

 

 

 

 

48.

 

백귀야행 연합학원.

 

자주 오는 곳은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그리움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다른 곳보다 건물들이 낮아서 주위 풍경이 잘 보이고, 항상 어디선가 맛있는

 

냄새가 나는 동네였다. 길거리 음식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했고.

 

어쨌거나 나는 치세가 기다리고 있는 음양부 동아리실로 향했다.

 

“치세.”


“선생님, 안녕.”


치세는 다다미 바닥에 다소곳이 앉아있었다.

 

방에 다른 사람은 없었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치세는 서예를 하고 있었다.

 

“뭘 쓰고 있는 거냐?”
 
“음……그냥 연습…….”


“그보다 스토킹 당하고 있다면서?”


“아, 그랬지.”


치세가 흐느적흐느적 일어서며 말했다.

 

“까먹고 있었어.”


“……중요한 문제 아니었냐?”


“응, 맞아.”
 
“근데 까먹었다고?”


“그것도 맞아.”


아니, 생각해보니 치세는 원래 이런 녀석이었다.

 

개성적인 애들로 넘쳐나는 키보토스에서도 독보적으로 독특한 아이.

 

그것이 바로 와라쿠 치세다.

 

……가끔은 그냥 바보가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으음……어쩌면 좋을까, 선생님.”


“먼저, 스토커가 정말로 있는지 확인해야겠지.”


“오오, 그렇구나.”


“가끔 사소한 오해 때문에 스토킹 당한다고 오해하는 일도 있으니까.”


드문 일은 아니다. 원래 10대 소녀들이란 종종 그런 착각을 하니까.

 

치세가 그럴 거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흠, 스토커를 직접 만나거나 본 적은 있어?”


“없는 거 같아-”


“그럼 어째서 스토킹 당한다고 생각했어?”


“어……그러게……어째서일까……?”

 

“아니, 그걸 나한테 물어봐도 말이지.”


대화하기 힘들다. 진심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커뮤니케이션에 어느 정도 조예가 있는 나조차도 치세는 상대하기 어렵다.

 

“아무튼, 있는 거 같아. 스토커.”


“아무튼……인가.”


“응, 아무튼……이야.”


일단 치세가 있는 것 같다고 하니, 나는 믿어줘야 한다.

 

그게 오해나 착각이더라도 말이다.

 

“좋아, 치세. 이럴 때 방법은 하나뿐이다.”


“오오.”


“스토커가 나오도록 끄집어내는 거지.”


“끄집어내는 거구나. 낚싯대, 가져올까?”


“설마 낚싯대로 잡자, 그런 건 아니지……?”
 
“어……아니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녀석한테 괜히 태클 걸어봤자 나만 손해니까.

 

“우선 스토커의 심리를 이해해야겠지.”


“쫓아다니는 게 재미있는 걸까……?”


“스토커는 말이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애새끼’다.”


“애새끼……?”


“자기중심적이고, 애정결핍에, 겁쟁이지.”


성가신 성격만 고르고 골라 한 사람한테 몰아주면, 딱 스토커 같은 부류의 인간이 나온다.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시간낭비인 인간. 그게 바로 스토커다.

 

“그 녀석은 십중팔구 너를 자신의 애인이나, 우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다.”


“으음……어려운 이야기…….”


“너를 좋아하지만, 한편으론 네가 자기를 싫어할 거라고 단정 짓고 있을 테지.”

 

“왜?”


“……미친놈을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미친놈이지.”


그런 건 심리학자의 일이지, 선생인 나의 일은 아니다.

 

애초에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그런 기분 나쁜 인간 따위를 누가 이해하고 싶겠나.

 

“아마 널 자신만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나는 누구의 것도 아니야.”

 

“그 녀석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이 문제의 요점이지.”


그리고 거기에 해결의 열쇠가 있다.

 

“스토커는 집착이 강하고, 질투심도 심해. 통제력도 없지.”


“이상한 사람이구나.”


“이상하고 위험한 사람이지. 아무튼, 그런 성격을 역이용하면 되는 거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너구리를 끌어내려면, 굴에 연기를 피워야하고.

 

“치세, 오늘 시간 괜찮아?”


“시간이, 아파?”


“……아니, 시간 좀 내줄 수 있냐고.”


“아하, 응. 시간 많아.”


“좋아. 오늘 같이 데이트 좀 하자.”


“와아-”


조금 위험한 작전이긴 하지만, 아마 먹힐 것이다.

 

그 스토커가 정말로 존재한다면- 말이지.

 

 

 

 

 

49.

 

우리는 먼저, 사람들이 많은 거리로 나왔다.

 

여기라면 놈도 우리를 금방 발견하고 쫓아올 테니까.

 

스토커란 놈들은 쓸데없이 부지런하니……어쩌면 벌써 따라붙었을지도 모른다.

 

“이제 뭐해, 선생님?”


“흠……적당히 눈에 띄는 곳에서 시간을 보내면 충분하다.”


“그렇구나- 그럼, 구름 구경할래?”


“그럴까.”


우리는 나무 밑 벤치로 가, 나란히 앉았다.

 

“여기, 구름 잘 보여.”


“그러게…….”


“저 구름- 아저씨를 닮았어.”


“응, 아저씨를 닮았네.”


나는 저 하늘 높이 떠있는 구름을 보며 말했다.

 

사실 어느 구름이 아저씨를 닮은 건지도 모르겠지만…….

 

그나저나 그냥 하늘을 보면서 쉬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요즘 이래저래 바쁘기도 했고, 나야 늘 정신없이 사니까 말이다.

 

“구름은, 뭉실뭉실해.”


“뭉실뭉실하구나.”

 

“그리고 폭신폭신해.”


“폭신폭신……인가.”


“그리고……수증기야.”


“아니, 거기서 갑자기 현실로 돌아오면 어쩌자고?”


치세는 뭐가 그리 재미있는 건지, 싱글싱글 웃으며 구름을 보았다.

 

구름, 구름이라…….

 

물감을 쏟은 것 같은 푸른 하늘에, 눈덩어리 같은 구름이 굴러다녔다.

 

가까이서 보면 그냥 수증기일 뿐인데, 참 신기하다.

 

관점에 따라선 구름이 될 수도 있고, 수증기가 될 수도 있다.

 

만사란 그런 걸지도 모른다. 관점이나 시점에 따라 만물은 다르게 보일 수 있다.

 

그렇게 한참이나 구름 구경을 하다가, 치세가 벌떡 일어섰다.

 

“선생님, 배고파.”


“나도 점심을 안 먹었지……구름 구경하다가 까먹고 있었다.”


“뭔가, 먹을래?”


“좋지.”


우리는 거리를 돌아다니며 길거리 포차를 둘러보았다.

 

닭꼬치의 알싸한 냄새, 문어빵 특유의 기름 냄새, 어묵 국물의 짠 내…….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맛이 상상돼서, 배가 꼬르륵 울부짖었다.

 

“선생님은, 뭐가 좋아?”


“밀가루, 튀김, 고기. 몸에 안 좋은 것들은 전부.”


“그럼 방사능도-?”


“방사능은 먹을 게 아니잖아.”


“으음, 그럼 저거 먹을래?”


치세가 거리 모퉁이에 있던 분식집을 가리키며 말했다.

 

“분식인가……괜찮겠네.”


“나는 간장 라면-”


“그럼 나는 소고기 덮밥이라도 먹을까.”


우리는 가게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가게 안은 꽤 북적거렸다.

 

대부분은 백귀야행의 학생들이었고, 저마다 떠들고 먹느라 바빠 보였다.

 

“사장님, 주문이요.”


“주문-”


우리는 각자 덮밥과 라면을 시켜 먹었다.

 

맛은 그럭저럭이었다. 딱 소고기 덮밥의 그 맛이었다.

 

“그나저나 안 나오네- 스토커.”


“그러게.”


“으음- 스토커는 사실, 부끄럼쟁이 아닐까?”


“아니면 처음부터 없었을지도 모르지.”


“그런가…….”


사실 우리로선 그게 제일 좋은 일이었다.

 

스토커라니, 그런 수상쩍은 놈이 따라붙으면 얼마나 불편하겠는가.

 

……스토킹을 당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 불편함은 이해할 수 있었다.

 

“잘 먹었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거리로 나오니, 벌써 날이 저물고 있었다.

 

이거야 원, 하늘 구경을 너무 오래 했나…….

 

“이제, 어쩌지?”


“공원이라도 산책할래?”


“좋아-”


이번엔 방향을 바꿔, 공원으로 갔다.

 

저녁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은 많지 않았다.

 

아직 날이 추운 탓이어서 그런지 호수에는 물고기 몇 마리만 보였고, 나무에는

 

꽃봉오리만 몇 개 달려있을 뿐 꽃은 보이지 않았다.

 

“꽃님, 언제 나올까.”


“슬슬 나올 거다. 봄이니까.”


“봄은 좋아- 개구리 씨도, 뱀 씨도, 곰 씨도 나오니까-”


“곰은 안 나오는 편이 좋지 않아?”

 

아니, 얘들한테 불곰 정도는 별 거 아닐지도 모른다.

 

총알을 맞아도 멀쩡한데 곰이라고 별 수 있을까…….

 

“그나저나 선생님.”


“왜.”


“그냥, 이러고 돌아다니니까 즐거워.”


“그거 다행이네.”

 

“후후.”


우리는 공원을 몇 바퀴 돌다가, 슬슬 지쳐서 정자로 가서 쉬기로 했다.

 

시간도 꽤 많이 지나서……벌써 밤이 가까워졌다.

 

“결국 안 나왔군, 스토커.”


“결국 안 나왔어, 스토커.”


벌써 6시간 정도는 돌아다녔는데, 스토커는커녕 평소에 따라다니던 팬도 안 보인다.

 

역시 스토커는 없었던 건가.

 

아마 수줍음 많은 팬이 몰래 따라다니는 걸 치세가 오해한 모양이다.

 

“스토커, 없는 걸까.”


“아마 그런 것 같은데. 다행이네, 치세.”


“응……무사한 게 좋은 거야-”


내 옆에 앉아있던 치세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말했다.

 

“후아암-”


“졸리냐?”


“응- 조금. 그래도, 선생님이랑 산책해서, 좋았어.”


치세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이럴 때는 정말이지……하여간 귀여운 제자다.

 

나는 치세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돌아가면……하이쿠 지을까…….”


“오늘의 주제는 뭔데?”


“산책……아니……평화를 주제로 할까?”


“그것도 괜찮겠네. 아무튼, 슬슬 돌아갈까?”


“좋아-”


철컥.

 

불길한 소리가, 직감이, 울렸다.


“……치세, 떨어져라.”


“선생님?”


누군가가 가로등 아래에 서 있었다.

 

언제부터 저기 있었던 거지?


눈치 채지 못했다. 너무 조용하고, 은밀했다.

 

“치세 님한테서……떨어져……너……!”


여자 목소리였다. 그렇군, 스토커는 여자였나.

 

후드에 마스크, 선글라스까지 쓰고 있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키나 목소리를 듣자하니 아마 치세랑 비슷한 나이…….

 

……백귀야행의 학생인가.

 

“일단 진정해라. 그래, 이름이나 들어볼까?”


“너한테……들려줄 이름 따윈 없어…….”


나는 한숨을 내뱉었다.

 

이건 조금 위험할지도 모른다.

 

꿰어낸 건 좋은데, 설마 이렇게 대놓고 나타날 줄은 몰랐다.

 

게다가 저 녀석…….

 

……등 뒤에, 총을 숨기고 있다.

 

이 멀리서도 화약 냄새와, 총 특유의 불길한 느낌이 느껴졌다.

 

생존 본능이라고 할까. 나는 원래 총에 한해선 민감한 편이었다.

 

“원하는 게 뭐냐?”


“너. 치세 님한테서, 떨어져. 기분 나쁘니까.”


“그래, 그렇게 해주마.”


나는 양손을 든 상태로 치세한테서 떨어졌다.

 

여차했을 때, 치세가 총에 맞는 것만은 피하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총에 맞아도 무사하다지만- 그런 일은 막고 싶었다.

 

“됐지?”


“치세 님은, 너 같은 쓰레기가, 함부로 만져도 되는 분이 아냐……!”


“그걸 왜 네가 정하지? 그건 치세가-”


“닥쳐!”


스토커의 목소리가, 순간 격앙됐다.

 

위험하다. 너무 도발했나.

 

“이놈이고 저놈이고……! 치세 님은 나의 치세 님인데!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치세님의 위대함이나 멋짐을, 아름다움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는 주제에!”

 

“저기…….”


치세가 손을 들고 말했다.

 

“……너, 누구?”


“긋.”


“치세, 일단 얌전히 있어.”


나는 슬쩍 한 손을 내려, 비상 호출 버튼을 눌렀다.

 

이걸 누르면 여기서 가장 가까운 보안 부원한테 연락이 간다.

 

오는데 5분, 10분 정도 걸릴 테지만- 그 때까지만 시간을 벌면 된다.

 

“아무래도 서로 오해가 있었던 것 같은데, 나는 치세의 선생님이다.”


“그래서……?”


“딱히 아무 사이도 아니라는 거다. 선생과 제자, 특별할 거 없는 사이지.”


“그런 사이인데 하루 종일 붙어 다니면서 꽁냥거려……?!”


“딱히 꽁냥댄 적 없다만.”


“시끄러워! 너……너는! 치세 님한테 불손한 생각을 품고 있겠지, 남자니까!”


스토커가 권총을 꺼내, 나를 겨누었다.

 

“남자란 것들은 다 똑같거든! 치세 님한테, 그런 짓을 하게 둘 것 같아!?”


“……너는…….”

 

그 때, 치세가 말했다.

 

“왜……그러는, 거야?”


“네?”


“나는……다른 사람이랑 친하게 지내면, 안 돼?”


치세가 정말 궁금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좋아하는 건……내가 정하는 거야.”


“그, 그건……!”


“그걸 네가 멋대로 정하는 건, 싫어.”


치세의 말에, 스토커가 살짝 비틀거렸다.


“이…….”


“선생님한테, 나쁜 말하지 마……선생님은, 좋은 사람이야.”


“내, 내가 제일……내가 제일 좋아하는데……저, 저 놈이……아니, 치세 님이!”


위험하다.

 

나는 어느새, 치세를 향해 몸을 날리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아!”
 
귀가 터질 것만 같은 총성.

 

동시에 밀려오는, 고통.

 

“컥……!?”

 

“서, 선생님?”


배가, 아프다.

 

칼로 쑤신 것처럼……뜨겁고, 화끈거린다.

 

아…….

 

이건, 위험하겠는데.

 

시야가 무너진다.

 

세상이 옆으로 기운다.

 

순간, 나는 이것이 죽음이라고 직감했다.

 

톡 치면 무너지는 젠가 탑처럼.

 

인간의 목숨이란, 그토록 아슬아슬하고 덧없는 것이다.

 

“……생님-!”

 

달이…….

 

오늘따라 유난히 아름답다.

 

너와 함께 올려보았던 달처럼.

 

고통 속에서도, 문득 그리움을 느낀다.

 

“괜찮아?!……이거……어떻게……!”


밀려오는 어둠 속에서 느껴지는 건 그리움.

 

차디찬 돌의 촉감. 

 

너의 울부짖음.

 

흘러나오는 피의 따스함.

 

마지막으로.

 

달이, 웃고 있었다.

 

 

 

 

50.

 

…….

 

소독약 냄새가 났다.

 

알코올의 냄새는 어디서 맡아도 바로 알 수 있는 것이다.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니, 보건실이 보였다.

 

어두컴컴한 보건실 안에, 낯익은 분홍색 소녀가 보였다.

 

“선생님, 좋은 아침……이 아니라, 밤이네요.”


“오랜만이다, 세리나.”


스미 세리나.

 

트리니티 구호기사단의 부원이자, 나만의 스토커다.

 

“역시 보고 있었구나.”


“네! 저는 항상 선생님을 지켜보고 있으니까요!”


“그거, 고맙다고 해야 하나?”


나는 상체를 일으켜, 붕대를 감은 내 머리와 배를 만졌다.

 

“배는 멍이 좀 생긴 것뿐이에요, 방탄 양복 성능이 좋아서 다행이네요.”
 
“그것도 안 입으면 여기서 살아남을 수가 없잖아.”


“머리의 상처는 찰과상이에요, 이마라서 피가 많이 나긴 했지만요.”


하긴, 이마는 상처가 깊지 않아도 피가 많이 나는 부위니까.

 

“그보다 그 녀석은?”


“그 망할- 아니, 학생 말이죠? C&C의 메이드들이 처리해줬어요.”


“너무 거칠게 다루면 안 된다고 전해줘.”


“네? 저는 잘 모르겠네요. 알아서 하지 않을까요?”


역시 화났구나.

 

언제나처럼 방실방실 웃고 있지만, 목소리가 평소랑 달라서 알 수 있었다.

 

그나저나 그 스토커 녀석……공구리 당하지나 않으면 다행인데.

 

“치세는?”


“아……치세 양은, 일단 2층 교실로 올라갔어요.”


“다친 곳은 없지, 그 녀석?”


“없어요. 그 스토커, 쏘자마자 부리나케 달아나버렸거든요.”

 

다행이다……나는 한숨을 내뱉었다.

 

나 때문에 치세가 다쳤다면,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었을 거다.

 

“끄응…….”


“진통제는 괜찮으세요?”


“괜찮아. 살짝 따끔거리는 정도다.”


“다행이네요! 그럼, 혹시 제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기 전에 나타나서 도와줄 거잖아?”


“하긴, 그러네요.”


나는 세리나를 돌려보낸 뒤, 2층으로 올라갔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선생님……!”


거기서, 치세가 기다리고 있었다.

 

은색 달빛이 들어오는 어두컴컴한 교실 안.

 

빨갛게 부어오른, 치세의 눈을 보았다.

 

그리고 네가- 나를 와락 껴안았다.

 

“아야.”


“미, 미안…….”
 
“아니, 괜찮다. 살짝 까진 것뿐이니까.”


그래도 배에 총을 맞았으니, 아마 며칠 정도는 쭉 아플 것이다.

 

……구멍이 난 것보다야 훨씬 낫지만.

 

“괜찮은, 거야? 아프지 않아?”


“조금 아픈데, 괜찮다. 평소에 허리 아픈 거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다행이다…….”


치세가 우는 모습은 처음 봤다.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그런가.

 

치세도 결국엔, 평범한 여자애였다.

 

“걱정했어?”


“응.”


“미안하다, 걱정 끼쳐서.”


“아냐……나야말로, 미안…….”


“괜찮다니까. 너만 무사하면 된 거다.”


치세는 한참이나 내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그런 치세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하는 말도, 행동도, 이해하기 어려운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치세는, 그냥 조금 이상할 뿐이다.

 

조금 이상하지만, 정말로 착한 아이.

 

단지 그뿐이다.

 

“선생님이, 죽으면……싫어.”


“안 죽는다, 이 정도로는.”


“계속, 곁에 있어줄 거야?”


“있어주마. 선생님이잖아, 나는.”


“응…….”


한참이나, 정말 한참이나.

 

한참을 달래준 뒤에야, 나는 치세를 떼어놓을 수 있었다.

 

“혼자서 돌아갈 수 있겠어?”


“……조금만 더, 있다가.”


“그럴까.”


우리는 창가에 앉아, 달을 올려보았다.

 

그 날, 함께 보았던 달은, 여전히 거기 있었다.

 

“야밤의 학교.”


“단 둘이서.”


“함께 달을 올려보네.”

 

치세가 읊었고.

 

나는, 그저 달을 보고 있었다.

 

 

 

 

51.

 

벚꽂이 폈다.

 

사실, 나는 벚꽃이니 목련이니 그런 꽃 따위를 그리 좋아하진 않았다.

 

하지만 꽃이 필 무렵에는 또 무언가 새로운 것이 시작된다.

 

그래, 예를 들자면…….

 

“선생님.”


“아, 너였구나.”


멍하니 꽃을 보던 중, 치세가 말을 걸었다.

 

일이 있어서 백귀야행 학원으로 걸어오던 길이었다.

 

“다친 곳은, 괜찮아?”


“멀쩡하지. 훗, 나야 무적이고 신이니까.”


“그렇구나……그럼, 나는 선생교의, 교주야.”


“벌써 교단 이름을 정했어?”


마침 가는 길이 같은 것 같아서, 함께 가기로 했다.

 

“……선생님…….”


“왜?”


“……손, 잡아줘.”


“뭐, 어려운 일은 아니다만.”


치세가 손을 내밀었고, 나는 그 손을 덥석 잡았다.

 

“후후.”


“기분 좋아 보이네?”


“응……봄은, 새로운 거니까.”


“그렇구나.”


인연은 그저 인연으로 남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은 또 다른 마음을 낳는다.

 

그것에 이름을 붙이는 것이 나의 일은 아니지만.

 

…….

 

그래도, 이 마음에 이름을 붙이자면.

 

“설렘……인가.”


“응?”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치세와 손을 잡고, 조금 더 걸어갔다.

 

 

 

 

 

 

 

 

 

 

 

치세 야스를 쓰려고 했다...근데 아무리 생각해도...치세로 야스를 쓸 수 없어...

그런 의미에서 이번 편은 평범한 순애 문학이다

무지성으로 야스를 넣어도 되겠지만 그건 또 내가 추구하는 야함과는 다른지라...

이러니저러니 실력 부족인 탓이므로 욕먹어도 할 말은 없는데스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