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의전이라면, 워 게임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키리후지 나기사는 선생의 제안을 듣고는 홍차를 한 번 홀짝인 다음 잠시 고민하는 듯 하다가,


"좋아요, 그 제안을 수락하죠. 자세한 사항은 앞으로 협의를 해야겠지만, 잃는 것, 그러니까 예산이나 장비같은 것들보다는 얻는 것이 더 많겠네요. 게다가..선생님께는 빚을 하나 졌으니까요."


라며 의외로 흔쾌히 제안을 수락했다.


그 이후로는 잡담을 조금 더 하다가 일이 쉽게 풀린 것에 대해 안도의 한숨을 내 쉬며 티 파티 건물을 빠져나왔다.


몇 시간 전에는 게헨나에서도 동의를 받아냈으니 이걸로 이 건과 관련된 업무는 일단 종료다.


그런데 지금 갑자기 무슨 이유로 워 게임이니 모의전이니 하는 논의를 하고 있냐고?




"솔직히 말하자면, 선생님께서 저번 사태 때 '우리들이 에덴 조약 기구다' 라는 선언을 한 뒤로, ETO는 한 일이 없었습니다."


"하긴 그것도 그렇긴 하네."


"'그렇긴 하네' 라며 넘길 수준이 아닌 것 같은데요.."


오늘도 린의 매도로 시작되는 연방 총학생회 정기 보고.


물론 지금까지 계속 여러가지 일들을 겪으며 이런 것들에는 익숙해졌지만, 선생이자 연방 총학생회장의 대리인으로써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만은 여전했다.


머리를 써 보려고 해도 요새 며칠 동안은 계속 쳘야 업무를 해서인지 뇌가 마비되어서 아무런 아이디어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럴 때는,


"뭐 좋은 아이디어가 있을까?"


총학생회장 대리인이라는 직위고 뭐고 주위에 있는 똑똑한 사람에게 물어보도록 하자.


"..연방 총학생회장의 대리인이라면 조금은 생각이란 걸 해 주세요. 아무튼간에, 딱히 떠오르는 건 없네요. 몇 개 있다고 해 봤자 대부분이 실현 가능성이 낮은 것들이기도 하고요."


여기서 주목해야 할 문장은 '몇 개 있다고 해 봤자'와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었다.


아이디어와 가능성 자체는 존재한다는 말이 되니까.


"그 실현 가능성이 낮은 아이디어들은 뭐가 있을까?"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건 합동 전술 훈련 정도겠네요. 그렇다고는 해도 교리나 기저에 깔린 사상 또는 태도의 문제로 금방 와해될 것 같고요."


합동 전술 훈련이라. 역시 연방 총학생회의 부회장이다.


그러나 린이 말한 대로 교리부터 태도까지 완전히 상극인 두 학원의 무력 기관을 한데 묶어놓고 훈련을 시킨다는 건 파멸적인 결과를 초래할 게 뻔했다.


보나 마나 생활관이 총성과 폭발이 난무하는 전쟁터가 되겠지.


잠깐.


전쟁이라고?


전쟁, 실전, 그리고 훈련.


그래, 그렇다면..


"그러니까, 합동 훈련에서 싸움이 나는 건 확정된 결과라는 거지?


"그렇습니다만, 혹시 묘수라도 떠오르셨나요?"


"그러면 발상을 전환해서, 합동 모의전으로 방향을 잡는 건 어때?"


"모의전이라면..워 게임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래."


실전만큼 좋은 훈련은 없다고들 하지 않는가.


두 학원의 합동 훈련이 불가능하다면, 차라리 두 학교가 통제된 환경 속에서 실전을 치루게 함으로써 훈련을 진행한다.


내가 봐도 놀라운 발상의 전환이었다.


"간만에 괜찮은 발상이네요. 그 과정에서 물자의 손실은 있겠지만 두 학교 모두 서로의 강점과 약점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으니 참여하겠죠. 구체적인 룰은 ETO에서 정하면 되고.."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서로 싸우면서 친해지기도 하는 거니까 이 기회를 이용해 두 학교가 더 가깝게 교류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모종의 행복회로를 돌리고 있었다.


"그런데 장소는요?"


저 말이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일단 워 게임이라면 거대한 장소는 필수일 것이다.


단순한 전술 대회 경기장 수준으로는 택도 없을 것이고, 야전과 시가전 등의 모든 전투 요소가 있는 장소가 필요한 것은 당연지사.


이걸 간과하고 행복회로를 돌린 나는 꽤나 멍청한 놈이었다.


"..역시 생각하지 않으신 거군요."


싸늘하다. 가슴에 린의 매도가 날아와 꽃힌다. 그런데,


"그래도 해결책이 될 만한 플랜이 하나 있긴 합니다만..선생님께서 좋아하실 지는 모르겠네요."


해결책?


그 어느 학교도 자신들의 자치구가 전쟁 연습에 쓰이는 걸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트리니티든 게헨나든 장소를 쉽사리 내주지는 않을 것이 자명하다.


게다가 키보토스 어디를 둘러봐도 이 정도의 대규모 모의전을 치룰 만한 장소는 없을 터.


그리고 내 구미에는 당기지 않을 수도 있다는 듯한 말투.


그래도 일단은 들어보기로 했다.


그 결과, 린과 함께 가게 된 곳은..




"헤에- 총학생회까지 데리고 왔네. 그래서 이 아저씨한테는 무슨 볼일이야, 선생?"


아비도스 자치구.


물론 표기만 저렇고 사실상 카이저 자치구라고 읽는 것이 맞는 곳이다. 린은 무슨 생각으로 여기에 온 걸까?


무슨 말부터 해야 할 지 모르겠어서 잠시 침묵이 흐르다가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린이 선수를 쳤다.


"최근에 정식으로 조인된 에덴 조약은 아시겠죠. 본론부터 말하자면, 에덴 조약 기구의 합동 전술 훈련장이 필요합니다."


아.


연방 총학생회의 부학생회장이면 아비도스가 지금 어떤 상태인 지 분명히 알 터인데.


아픈 곳을 그런 식으로 무자비하게 후벼판 시점에서 이 협상은 실패겠지.


"연방 총학생회 정도면 우리가 어떤 상황인지는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말로 이런 걸 돌직구라고 했었나? 아니면 팩트 폭력?"


"그 사정은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해결책도 가지고 왔죠."


"해결책?"


해결책이라.


아비도스 자치구는 대부분이 카이저 코퍼레이션에 넘어간 지 오래다. 아무리 총학생회라도 정당한 거래를 무효로 돌릴 수는 없고, 대체 무슨 해결책이 존재한단 말인가?"


하지만 다음에 이어진 말은 린이 얼마나 철두철미하게 계획을 짜는 지 다시금 알 수 있게 해주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ETO가 아비도스의 사막 지대를 구매하는 겁니다. 그 곳을 아비도스에게 돌려주는 대신, 에덴 조약 기구의 전술 훈련장으로 쓸 수 있는 권리를 받는 거죠."


"헤에- 계획은 좋네. 그런데 카이저랑 이야기는 된 사항일까나?"


"카이저 코퍼레이션 측과는 이미 이야기가 끝났습니다. 아비도스 자치구의 버려진 사막 지대를 키보토스 평균 부동산 시세의 15분의 1에 판매하겠다고 하더군요."


"다른 수작은 없는 게 확실해? 그걸 그냥 받아들이기에는 이 아저씨가 지금까지 당한 일들이 너무 많단 말이지."


"정보부 분석에 의하면 카이저 PMC가 저지른 일련의 행위들은 정체불명의 세력이 배후. 그 세력이 카이저 그룹 자체에 영향을 끼치진 않는 것 같습니다."


호시노는 그 말들을 전부 듣고는 고심하는 듯 보였다. 아무리 달콤한 조건을 내건다곤 해도, 그녀에게 카이저 그룹은 자신을 산 채로 분해하려고 한 집단이자, 아비도스를 강탈하려고 시도한 자들이니까.


그녀는 그 이후로도 한참을 고민하다가 '우선 대책위원회와 논의해 보겠다'고 말한 뒤 아비도스 건물로 돌아갔다.




잠시 후, 긴급 소집된 대책위원회에서는 치열한 의견 대립이 발생하고 있었다.


"난 반대야."


"그렇다고 이 기회를 놓칠 셈이야, 선배? 15분의 1이라고, 15분의 1! 이런 기회는 두번 다시 없을 거야!"


"다들 일단 진정 좀 하고.."


호시노와 아야네가 어찌저찌 중재를 하면서 찬반 투표까지는 끌고 오는 데 성공했지만,


"일단 이걸로 반대 두 표에 찬성 두 표, 기권 한 표니까..노노미, 기권 말고 다른 생각은 없어?"


"저는 못 고르겠어요. 어느 쪽을 고르든 힘든 상황이 될 것 같아서..."


아야네와 세리카가 찬성, 호시노와 시로코가 반대, 노노미가 기권으로 투표 결과만을 보고 쉽사리 결정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렇게 한 시간이 넘도록 서로간의 입장 차이만 확인하던 도중에,


갑자기 부실에 설치되어 있던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안녕하십니까. 카이저 그룹의 총괄 이사입니다."


카이저 그룹 총괄 이사의 직접 연락. 그리고 목소리를 들은 호시노의 표정. 그것은 대책위 부실의 모두를 얼어붙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번엔 또 무슨 수작이야?"


"물론 카이저 PMC가 그들과 협력해 당신을 분해하려 한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들도 그저 도구에 불과하고, 실제로 연구를 진행하려 한 자들은 별개입니다."


호시노는 평소에 후배들에게 보이는 표정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며, 차분한 분노에 찬 목소리로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검은 양복과 카이저가 별개라고 해도, 이게 검은 양복이나 카이저의 개수작이 아니란 걸 어떻게 증명할 셈이지?"


"30분의 1."


"뭐?"


"전화를 통한 목소리만으로는 진심을 전하기에 무리가 있을 것 같으니, 행동으로 보여드리는 수밖에요. 원래 거래 조건은 15분의 1이었지만, 30분의 1로 더 줄이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호시노는 조금은 흔들리는 듯 보였으나 여전히 의심을 떨쳐내지 못한다는 투로 쏘아붙였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돈이 아니라 이게 함정이 아니라는 증거다."


카이저 이사는 곤란하다는 태도를 보인 뒤 잠시 침묵했다가 한 가지의 사소한, 그러나 중대한 영향을 끼칠 요청을 했다.


"혹시 스피커 폰 모드를 잠시 꺼주실 수 있습니까? 지금이라도 개인적인 사죄를 드려야 할 일이 하나 있어서 말입니다."


"개인적인 사죄?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해 봐."


호시노는 스피커 폰 모드를 끄고 나서 전화기를 귀에 꼭 대고 있다가, 카이저 이사의 말을 듣고는 방금보다 더 심각해진 안색을 띄었다.


그 모습을 본 시로코가, 평소에는 표정이 거의 변하지 않는 시로코가 당황을 숨기지 못하고 있고, 아야네와 세리카도 완전히 굳은 상태였다.


"..메..소중..비...유감을..니다."


수화기 너머로 무슨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대책위원회의 그 누구도 그것에 관해 물으려 하지 않았다. 묻는 순간 12게이지 산탄이 쏟아질 분위기였으니까.


"일단 알겠어. 결정은 총학생회를 통해 보내겠다."


전화를 끊은 호시노의 표정은 마치 죽은 사람이라도 본 듯한 표정이었다.


노노미도 상태가 심히 걱정되었는지 말을 걸어보려고 했으나, 호시노는 묵묵부답이었다.


그로부터 잠시 뒤, 어느 정도는 진정했지만 여전히 굳은 표정이 남아있는 채로 호시노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카이저는 진심이야. 여기에 함정은 없는 것 같아."


시로코는 아직도 의심을 떨쳐내지 못했다는 듯한 말투로 호시노에게 반박을 하려고 했으나,


"선배, 정말로 함정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또?"


이후 호시노의 표정을 보고는 바로 풀이 죽었다.


"그 이사가 언급한...아니다, 이건 몰라도 되는 이야기야. 잊어도 돼. 한 가지 확실한 건 카이저와 그 녀석들은 어느 정도 별개라는 거야."


그러자 세리카는 아직 긴장이 덜 풀렸지만 대책위의 회계로써 환영한다는 듯한 말투로 호시노에게,


"그러면 찬성하는 거 맞지? 그렇지?"


라며 물어봤고, 호시노는 평소와는 전혀 다른 목소리로 일단은 그렇다고 답한 뒤에,


"그러면 3대 1이니까, 찬성으로 결정인 거지?"


라며 회의의 결론을 내고는 아저씨 모드로 돌아가서 "으헤~ 너무 무서운 표정이었을려나? 후배들한테 이런 걸 보이면 좋지 않을 텐데.."와 같은 말로 평소대로의 호시노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게 휴일에 갑자기 모인 회의는 총학생회에 보낼 서신을 작성한 뒤 마무리되..는가 싶었으나,


"근데 워 게임이라고 했잖아. 전장 환경같은 것들은 에덴 조약 기구에서 담당할 거고, 그러면 우리는 뭘 해야 하지?"


시로코의 그 질문은 마음 속 의문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금전적인 의문이나 계략에 관한 것이 아닌, 순수하게 뭘 해야 하는 지에 대한 의문을.


"저희는 관리감독이나 그런 역할을 맡으면 되지 않을까요?"


아야네는 아야네답게 관리감독을 제안했지만, '어차피 ETO가 하겠지' 라는 세리카의 대답을 듣고는, '우리는 정말 할 게 없는 건가' 라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 시로코의 다음 제안은 대책위원회의 흥미를 이끌기 충분했다.


"마침 봄 방학 기간이고, 모의전이라고는 해도 결국 일종의 전술 훈련이잖아. 우리도 용병 자격으로 참가해서 같이 훈련하는 게 어때?"


그 말을 들은 대책위원회 전원의 반응은 이런 식이었다. '정말 쓸데없는 참전이고 힘과 시간의 낭비야. 당장 하자.'


그런데 여기서 또 의견이 갈렸다.


"이 아저씨는 게헨나의 풍기위원쨩이랑 인연이 좀 있어서 말이지~"


게헨나의 용병으로 참전하자는 호시노, 그리고..


"그래도 복면 수영복단의 파우스트..아니, 히후미 양이 있는 트리니티가 더 편하지 않을까요?


"그래! 그게 휠씬 편할 거야! 게다가 게헨나는 밥이 맛 없다고!"


트리니티의 용병으로 참전하자는 나머지 네 명.


그런데, 오늘은 시로코에게 대박을 치라고 만든 날인지는 몰라도, 시로코가 매우 적절한 제안을 또 해냈다.


"그러면 내전은 어때? 호시노 선배는 게헨나로 가고, 우리는 트리니티로 가고. 1대 4 정도면 충분히 할 만하다고 보는데."


호시노도 좋은 의견이라고, 충분히 해 볼만 하다는 반응이었다.


그렇게 되어서, 서류에 아비도스가 용병 자격으로 참전한다는 조건을 추가한 뒤 회의가 끝났고, ETO도 이 조건에 동의했다.


그 뒤로는 아비도스 사막 지역의 부동산 거래나 구체적인 전쟁의 규칙 설정 및 각 학교별 예산안 통과와 모의전 준비와 같은 지루한 내용들이니 딱히 말하진 않겠다.


그리고, 모의전 시작 날짜의 바로 전 날이 되었다.



저번 소설 쓴 게 의외로 반응이 좋아서 각 한번 잡고 장편 연재해보려고 합니다

2편은 언제 나올 지 몰?루

저도 이게 총 몇 편으로 끝날지는 몰라요 지금까지 구상한 스토리로는 2편이나 3편까지 찍어낼 분량밖에 안 되긴 하는데 그건 쓰면서 차차 생각하면 될 것 같고

여하튼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번에 썼던 단편소설 보실 분은 여기로 (에덴조약 스포 다수) -> https://arca.live/b/bluearchive/43029764?category=%EC%B0%BD%EC%9E%91&target=all&keyword=%EB%B3%B4%EC%B6%A9%EC%88%98%EC%97%85&p=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