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럼쟁이 소녀는 사랑을 한다 - 8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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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후미는 천천히 병실로 걸어들어와 침대 옆의 의자에 털썩 앉는 선생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이 순간을 위해 이 모든 난리를 피웠다. 지금이 아니라면 선생과 말할 기회가 없을 것이다. 원래 세계로 돌아간 자신은 여전히 겁쟁이에 소심한 어린애일테니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기 위한 단 이틀 간의 마법. 원래대로라면 사흘이지만 자신의 예상보다 세계가 너무 빨리 무너지기 시작했다.

애초에 이 꿈조차도, 우연히 만난 기연에 기댄 것. 정말이지 자신은 철부지 어린애였다. 

그렇지만 그런 철부지 어린애라도 발을 들어 선생님의 볼에 입 정도는 맞출 수 있지 않을까.


선생은 자리에 앉아 히후미를 진지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진지하다는 말 밖에 생각나지 않는 눈빛이었다. 

이 사람은 자신을 원망하지도, 자신에게 분노하지도 않는다. 세계에게 잊히고, 자신에게 놀아나도 결국 자신에게로 돌아와 꿋꿋하게 앉아있다. 그저 있을 뿐이었다.

그래, 이건 애초부터 그런 이야기였다. 멋대로 사랑하고, 멋대로 거절받아 멋대로 상처받는, 어린애인 자신의 투정. 히후미는 마음을 굳혔다.


"선생님, 첫 만남을 기억하시나요?"

히후미는 조용히 말을 꺼냈다. 첫 만남부터 엉망진창이었다. 블랙마켓에서 페로로 굿즈를 찾다가 불량학생들에게 걸린 자신을 아비도스의 학생들이 구해줬다.

그 때 히후미는 처음 선생과 만났다. 인질이 될 뻔한 자신을 구해준 학생들 사이에 선생은 파도에 쓸려다니듯 끌려다니고 있었다.

이런 이상한 사람이 선생이라니. 히후미는 속으로는 선생님이 꽤나 웃긴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이후에 빵봉투를 쓰게 되었을 때에는 자신이 감히 다른 사람을 웃기다고 생각했을까 자책했지만.

"후훗, 그 때 아비도스의 학생분들에게 끌려다니던 선생님은 꽤나 가벼워보였어요."

선생은 아무 말 없이 히후미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품행이 가볍다는 말은 다른 학생들에게서도 자주 듣는다. 그렇지만 권위적인 채로 교단에만 서 있는 선생이 오히려 잘못된 선생이라는 것이 선생의 신념이었다. 학생들이 자신에게서 배우는 만큼, 자신도 학생들에게서 배우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선생님을 점점 알아가면서 선생님이 얼마나 좋은 분인지 알게 되었답니다."

히후미는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웃음을 짓게 만들어주는 사람. 자신이 자책에 빠져 쓰러져있을 때 일으켜세워주는 사람. 가방에서 짐을 꺼내다 넘어져도 비웃기는 커녕 같이 주저앉아 짐을 주워주고는 무릎에 아무 말 없이 밴드를 붙여주는 사람... 물론 '밴드를 붙여줄테니 스타킹을 벗어라'라고 할 때는 좀 당황했지만.


"그런 선생님의 좋은 점을 알아갈수록, 저는 저에 대해 의문이 들기 시작했어요."

선생님이 주는 따스함이 늘어갈수록, 가슴 속의 따끔거림도 심해졌다. 선생님에게서 이렇게 사랑받을 자격이 있을까. 

친구들과의 약속과 페로로님 이벤트가 겹칠 때에는 친구들에게 사과하고 이벤트를 가곤 했다. 시험기간에도 페로로님 콘서트가 있으면 시험 당일에도 콘서트장에 갔었다.

선생님과 만나면 자신도 모르게 신나서 페로로님의 이야기를 늘어놓곤 했다. 반의 친구들도 한두번은 웃으며 들어줬지만, 히후미의 광적인 수집에 질린 친구들도 있었다.

'이상한 녀석.' '그게 그렇게 좋아?' '그 인형 예쁜지 모르겠는데, 히후미는 되게 좋아하네~' 


"저는, 너무 수수한게 아닐까요..?"

히후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히후미는 "아"하고 눈물을 닦으려 했지만, 한 번 흐르기 시작한 눈물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죄송해요, 이렇게, 흑, 중요한 순간인데도, 저는..."

히후미는 양 손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쉼없이 닦아냈다. 자신은 항상 실수투성이에 이상한 취미를 가졌다. 아름답지도, 매력적이지도 못하다. 울보에다가 자신의 마음조차 모르는 바보.

그렇기에 항상 열심히 했다. 매사에 진지하게 임했다. 모두의 앞에서는 밝게 있으려고 했다. 선생님이 볼 때에는 항상 쾌활하고 우수한 학생을 연기했다.

그렇지만 결국 진짜 자신은 그대로였다.

울보에 능숙한 일도 없고, 가방에 이상한 것도 잔뜩 넣고 다니고, 집에는 페로로 인형밖에 없는 머릿속이 꽃밭인 여자. 공부도, 운동도 평균인 평범한 학생.

선생은 조용히 셔츠 앞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히후미에게 건네주었다. 히후미는 아무 말없이 손수건을 집어들어 눈물을 닦았다.

선생은 히후미의 울음이 멈출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아하하, 흑, 죄송해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려서.."

히후미는 눈가에 눈물 방울이 맺힌 채로 억지로 웃었다. 손수건으로 다시 눈물을 찍어냈다. 이제 감정이 정리된 듯 호흡은 정돈되었지만 눈시울은 빨갛게 물들었다.

선생은 자신도 모르게 히후미의 얼굴에 양 손을 가져가 히후미의 뺨을 손으로 감쌌다. 따스한 온기가 손을 타고 선생의 마음에 전해졌다. 부드럽고 하얀 볼이 살짝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선생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히후미, 그렇게 생각할 필요 없어."

선생은 말을 이었다.

"모든 학생들에게는 잘하는 것이 있고 못하는 것이 있는거야. 모든 것에 능숙한 사람은 없어. 나조차도 뛰어난 선생은 아니라는 것은 자각하고 있어."

선생의 마음도 끓어올랐다. 히후미는 절대 평범하고 잘난 것이 없는 학생이 아니다. 


"히후미는 나를 어떤 어른이라고 생각해?"

선생은 히후미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히후미에게 질문했다. 히후미는 선생의 눈을 피하듯 고개를 살짝 돌리려했지만 선생의 손에 얼굴이 붙잡혀 있다는 것을 깨닫고 눈만 살짝 내려깔았다.

"...멋있고 믿을만한 어른이라고 생각해요."

세상에게서 잊혀지고 무시받고 경찰서에 끌려가고 샬레와 샬레가 쌓아온 이야기조차 부정당했지만 선생은 결국 이곳에 당도했다.

히후미에게 속았다고 히후미를 원망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모든 수단을 활용해 이야기의 끝에 도달했다.

선생은 그렇지 않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던 것은 모두의 덕분이야.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히후미가 자신을 수수한 학생이라고 한다면, 나는 수수하다는 말조차 어울리지 않을거야."


히후미는 무언가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선생은 히후미의 뺨에서 천천히 손을 떼 히후미의 손으로 가져갔다.

"히후미, 약속 하나 할까?"

선생은 다른 손가락을 모두 접고 새끼손가락만 내밀었다. 히후미는 선생의 의도를 모르겠지만 선생을 따라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앞으로 스스로를 탓하지 않기, 그리고 자신감을 가지기."

선생은 히후미의 새끼 손가락에 자신의 손가락을 걸었다. 히후미의 손가락은 아기의 손가락처럼 따뜻하고 부드럽고 작았다. 이 얇은 손가락으로 매일 같이 총을 쥐고 있구나.

"히후미, 사람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 같아?"


선생은 손가락을 마주 건채로 히후미에게 질문했다. 인체의 성분 구성비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 터였다. 히후미는 조용히 선생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사람은 모두 평범해. 히후미가 스스로를 평범하다 생각하는 것도 당연할지 몰라."

사람이 아무리 특별하다고 해도 결국은 한 명의 인간이다. 키보토스의 학생들도 마찬가지로 개개인이 아무리 강하고 특별하다 하더라도 많은 학생들 중 한 명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히후미가 세상의 모든 것들과 맺고 있는 관계는 평범하지 않아."

선생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페로로를 좋아하는 히후미, 수영복 복면단의 파우스트, 나기사의 친구 히후미, 보충수업부의 히후미, 트리니티의 상냥한 학생 히후미, 샬레 선생의 믿음을 잔뜩 받는 히후미..."

여기까지 말한 선생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 모든 특별한 히후미가 모여, 지금의 히후미가 있는거야."

히후미는 선생의 그 상냥한 웃음에 자신도 모르게 다시 울음을 터뜨려버렸다. 

계속 불안했다. 선생님은 자신의 취미에 질려버린게 아닐까. 다른 아름답고 개성 있는 학생분들에게 마음이 가는 것은 아닐까. 

자신과는 학생과 선생이라는 관계 때문에 억지로 어울리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만 이 사람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항상 피어있는 꽃처럼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흐트러지지 않는 꽃처럼 아름다운 사람.

히후미는 아직도 마주 걸고 있던 손가락을 풀어내고 몸을 기울여 선생을 껴안았다. 선생은 조용히 팔을 들어 히후미를 감싸안아주었다. 선생은 흐느끼는 히후미의 등을 토닥토닥 가볍게 달래주었다. 

아무래도 히후미가 울음을 멈추기까지는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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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노는 학교의 옥상에서 천천히 주황색으로 물들어가는 지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으헤~ 이것 참, 빨라도 너무 빠른게 아닐까."

지평선은 천천히 무너지고 있었다. 벌써 끝이 다가온걸까. 호시노는 바닥에 몸을 눕히고 하늘을 바라본 채로 기지개를 폈다. 하늘은 아름다웠다. 모래가 휘날리는 저녁노을이 아니라 이렇게 맑은 노을을 본 것이 얼마만일까. 가끔씩 바람이 약한 날에야 이런 하늘을 볼 수 있었다. 호시노는 쓴 웃음을 지었다.

"하다못해 사진이라도 남길 수 있으면 좋을텐데 말이지.."

푸르디 푸르게 변한 사막, 깔끔한 정원이 된 학교의 오래된 폐창고, 마음껏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숲길, 밤에 순찰을 돌지 않아도 될 정도로 평화로운 아비도스까지.

원래 세계로 돌아가도 계속 생각날 것만 같았다. 유메 선배가 있었더라면 사진을 찍어 보여주고만 싶었다. 당신의 꿈이 이루어졌었다, 라고.

그렇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곳은 호시노의 취향이 아니었다.

마음껏 무너지고, 마음껏 좌절해도 결국 다시 일어나는 청춘. 청춘이라는 이유 만으로 온갖 시험의 대상이 되고 고통받고 좌절하는 그런 청춘.

그렇지만 여전히 눈이 시릴 정도로 아름다운 청춘. 그것이 모두가 찾아준 호시노의 푸르른 꿈이었다. 

"...돌아가면 아저씨 말동무나 해준 아리스 짱에게 선물이라도 하나 해줘야겠구만~"

물론 자신이 기억한다면. 호시노는 으헤헤, 하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지평선에서 시작한 '끝'은, 이제 학교 건물에 도달하고 있었다.

이윽고 낙원에도 끝이 찾아왔다.


"으윽... 왜 지칠 생각이 없는 건가요, 츠루기 씨는!"

아리스는 레일건을 재장전하며 말했다. 벌써 츠루기와 치고받고 싸운지 2시간이 넘어가고 있었다. 해가 지는 속도가 기묘할 정도로 빨랐지만 아리스는 싸우느라 그런 것을 신경쓸 정신이 없었다. 레일건을 직격으로 맞은게 한 두번이 아닌데도 아직도 달려드는 츠루기를 피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키헤헤헤-! 좀 더 놀자고, 좀 더!"

전투광다운 츠루기의 말에 아리스는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분명히 싸움 초반에 아스나를 뛰어넘는 수준의 튼튼함이라고 했지만, 그 발언을 수정할 필요성을 느꼈다. 아스나를 뛰어넘는 수준이 아니라 같은 학생인지 의문이 들 정도의 튼튼함이었다. 

"신성한 데스매치에 체력 무한 치트라니요! 이건 무횹니다, 무효! 아리스는 이 싸움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아까 선생님한테 승리의 주문까지 받았는데도 진다면 더할 나위 없을 굴욕이었다. 아리스는 이를 꽉 물었다. 유즈의 특제 밤샘봉봉드링크를 마신다면 힘이 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당분과 카페인 부족으로 출력이 처음과 비교했을 때 너무나 떨어져있었다. 선생님이 용무를 보고 나오셔서 싸움을 중재해줄 때까지 버티는 수 밖에 없었다.

아리스는 전략을 버티기로 바꿨다. 애초에 타임아웃을 잘 활용하는 것도 격투가의 자질 중에 하나이다. 아리스는 일단 장전을 완료한 레일건을 갈기기로 마음 먹었다. 

"빛이여-!"

픽-

"어, 어라?!"

아리스는 꺼져버린 레일건을 다급하게 주먹으로 내려쳤다. 가냘프고 작은 손과 레일건이 부딪혔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큰 금속소리가 났지만, 레일건은 켜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런 때에 과부하라니. 전설의 성검도 과도하게 쓰면 버그를 먹는 것일까. 아리스는 고개를 들어 상대방의 상황을 분석하려 했다.

그렇지만 그곳에 츠루기는 없었다. 아리스는 그제서야 주변의 건물들이 모두 천천히 흩어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꿈의 끝'이 다가온 것일까. 선생님을 마지막으로 뵙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타임아웃까지 버티기는 했다. 아리스는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먼저 아웃당한 쪽이 지는 것은 국룰. 아리스는 레일건을 내동댕이 치고 팔을 하늘로 쭉 피며 말했다. 

"아리스의 승리입니다-!"

그리고 자랑스럽게 승리를 외치는 소녀도 '꿈'에서 사라졌다.


나기사는 하스미, 마시로와 케이크를 나눠먹고 있었다. 처음에 케이크를 사서 병실에 들어올 때만 해도 볼을 빨갛게 물들이며 진지하게 케이크 상자를 쳐다보던 하스미였지만, 막상 케이크를 꺼내놓으니 "저는 괜찮습니다."라며 사양하려 했다.

"저와 같이 드시는 게 부담스러우시다면, 두 분이서 나눠드셔도 괜찮답니다."

나기사는 정중하게 이야기했다. 하스미는 그게 아니라는 듯 허둥지둥 팔을 내저었지만, 이내 얼굴을 붉히며 뭐라 중얼거리기만 했다. 마시로는 그런 하스미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쉬며 하스미를 대변해줬다.

"다이어트 중이라 디저트가 부담스럽다고 합니다. 나기사 님의 호의를 거절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정말 위험한 수준이라 자제하고 싶다고 하네요."

나기사는 자신도 모르게 푸흡, 하고 웃을 뻔했다. 그렇게 엄격하고 냉정하던 하스미가 케이크 앞에서 이렇게 고민하고 망설이는 모습이라니.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기사는 "디저트는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라는 말이 있답니다?"라는 말을 하며 하스미가 좋아하는 쇼트케이크를 하스미 앞에 두었다. 하스미는 잔뜩 망설이다가 조용히 포크를 집어들어 쇼트케이크를 떠 입에 집어넣었다.

정말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맛을 음미하는 하스미를 본 나기사는 언젠가 정의실현부에 케이크를 선물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며 살짝 미소지었다. 그런 하스미의 반응을 본 마시로도 빙긋 웃으며 케이크 조각을 입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따스한 공기가 머무는 병실에도, '끝'은 찾아왔다.


이제 꿈 속의 키보토스에 남은 것은 해가 저물어가는 자그마한 병실 하나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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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음을 그친 히후미는 선생에게서 떨어졌다. 이전 같았다면 또 '울보 히후미'라며 자신을 탓했겠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히후미는 눈 끝에 눈물이 맺힌 채로 빙긋 웃었다. 앞의 억지스러운 웃음과 다른,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웃음.

"히후미,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뿔난대."

선생은 그런 히후미에게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정말, 선생님은! 이런 때는 달콤한 유혹이라도 하시는 거라고요?"

히후미도 웃으며 농담을 받아쳤다. 둘 사이에 약간의 정적이 흘렀다. 히후미는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으리라 확신했다.


"선생님, 사랑해요."

히후미는 따뜻한 미소를 지은 채 선생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다.

자신의 억지에도 웃어주는 선생님, 자신의 취미에 군말없이 따라와주는 선생님, 가끔씩 자신처럼 실수투성이인 선생님, 자신이 넘어질 때 팬티를 보고서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 애쓰는 선생님, 넘어진 자신을 일으켜세워주는 선생님.

자신의 꿈에 휘말려들어 세계에서 잊혀져도 무너지지 않는 선생님, 가장 가까이 있던 자신을 믿어주던 선생님, 모든 게 밝혀지고 나서도 자신을 원망하지 않는 선생님, 자신과 대화하려 자신을 찾아와 준 선생님, 자신을 위로해주고, 따스하게 안아주는 선생님.

"그 모든 선생님이 모여, 제가 사랑하는 선생님이 되었답니다."

히후미는 눈을 감고 양 손을 가슴에 모은 채 말했다. 입가에는 여전히 따스한 미소가 남아있었다.


이윽고 히후미는 눈을 떠 평소 짓던 쾌활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대답은 듣지 않아도 괜찮답니다! 이렇게 제 마음을 고백한 것만으로도 만족하니까요."

그렇게 말한 히후미는 아하하, 하고 웃었다. 평소라면 말을 꺼내지도 못했을 이 마음을 꿈에서나마 선생님에게 털어놓았다. 후련하고 개운했다.

선생은 뭐라 말하려다가 이내 포기하고 히후미를 따라 웃었다. 한바탕 꿈이라고 치기에는 너무나 슬프고 힘든 꿈이었지만, 새롭고 쾌활한 꿈이었다. 

어차피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결국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한참 웃던 선생은, 이내 꼭 해야하는 질문이 있음을 깨달았다. 현실에서는 할 수 없는 질문, 꿈에서 해야하는 질문.

"히후미. EX 쓸 때는 일부러 팬티를 보여주는 거-"

히후미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선생의 머리를 꽃병으로 내리치는 탓에 선생의 기억은 거기서 끊어졌다.

그리고 세계에는 '밤'이 찾아왔다.


히후미는 밤의 해변에 서있었다.

질리도록 온 해변이었지만, 밤의 해변은 분위기가 달랐다. 하늘에 떠있는 무수히 많은 별빛이 바다에 비쳐 바닷속에서도 빛나고 있었다.

그렇지만 히후미는 알고 있었다. 저 바닷속의 별들은 실제로 빛나는 별이라는 것을.

자신의 '꿈' 속의 밤하늘의 별들.

'꿈 속의 자신'이 아닌, '꿈을 꾸는 자신'은 이 곳에 있어야만 했다. 바다와 해변, 꿈과 현실의 경계에 꿈을 꾸는 자가 남아있었다.

히후미는 빙긋 웃었다. 정말, 마지막 대화가 그런 대화라니. 선생님도 가끔 엉뚱하다니깐. 아마 자신을 웃기려고 뱉은 농담일 것이다. 그렇지만 히후미는 선생이 굉장히, 전례없을 정도로 진심이었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이윽고 바닷속에서 '꿈'이 찾아왔다.

<꿈은, 만족스러웠는가? 소녀여.>

히후미는 아하하, 하고 웃었다. 엉망진창에 제대로 된 것이라곤 하나 없는 꿈이었지만, 더할 나위 없이 따스하고 행복했다. 히후미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는 잘 되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처음에 제안했을 때만 해도 성공할지 몰랐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가 만들어질 줄이야.>

상대는 무언가를 요구하듯이 히후미에게 팔을 뻗었다. 그것을 팔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앞의 상대는 실루엣 외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을 정도로 뿌연 증기 같은 존재였다.

히후미는 조용히 양손을 자신의 가슴에 가져다대었다. 이윽고 히후미의 가슴에서 나비 한마리가 상대방에게 날아갔다. 나비는 따스한 햇빛 같이 빛나는, 자신의 소중한 꿈이었다.


애초에 이런 계약이었다. 기억하지 못해도, 선생에게 닿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마음만을 고백하고 싶다는 꿈.

상대는 이 꿈을 현실로 만들어주었고, 자신은 그 꿈에서 행복했다. 그것이면 된 거다. 그것이면 된 것일텐데..

히후미는 자신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리는 것을 느꼈다. 그렇지만 울지 않았다. 히후미는 당당하게 눈물을 닦고 두 발로 섰다.

설령 꿈의 기억이 사라지더라도, 자신은 남아 있었다. 선생님의 사랑을 받는 자신, 트리니티의 학생인 자신, 페로로를 좋아하는 자신까지, 모두가 전부 '히후미'였다.

이윽고 '꿈을 위한 꿈'에도 끝이 다가왔다.


수평선에서부터 빛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별무리가 흩어지고, 달조차 자취를 감췄다. 파도소리조차 잠잠해지고, 이윽고 히후미가 발을 담그고 있던 해변조차 사라졌다.

히후미의 발 끝에 닿은 '끝'은, 이윽고 히후미를 현실로 돌려보내기 시작했다. 끝은 어느새 목까지 와 있었다. 그리고 이 백일몽의 끝에서, 히후미는 조용히 웃었다.

"다시 만날 때에는 꼭 진심으로 사랑을 고백할게요." 

히후미는 소리 없이 웃었다. 히후미의 말은 선생에게 닿지 않았지만, 애초에 닿을 필요조차 없었다.

'선생님을 사랑하는 히후미'는 그대로 히후미의 안에 남아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있었던 그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꿈의 주인은 사랑하는 이가 있는 키보토스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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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꿈을 위한 꿈'의 모든 것이 사라졌다. 텅 빈 공간, 관념과 이야기만이 존재하는 공간에 정체불명의 존재가 서 있었다. 아니, 그것을 서있다고 할 수 있을까.

'존재'는 히후미가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소리내어 웃었다. 누군가를 비웃는 웃음이 아닌, 순수하게 기쁨에 찬 웃음이었다.

자신의 존재를 건 도박이 성공했다. <키보토스의 기억되지 않은 이틀>이라는 이야기를 손에 넣었다. 이제 자신도 키보토스에 현현할 수 있으리라.

그런 존재의 웃음을 멈춘 것은 날카롭고 분노에 찬 목소리였다. 


"너는 누구지."

아무것도 아닌 공간에 분명히 서 있는 것은 아리스이면서 아리스가 아니었다. 바닥에 쓸리는 긴 회색머리의 꼬마아이였지만, 눈도 헤일로도 새빨갛게 물들어있었다. 해맑은 웃음을 짓던 얼굴은 적의와 분노로 가득차있었다. 

"다시 한 번 묻는다. 너는 누구지. 어째서 이런 일을 저지른 것이지."

'존재'는 당황했다. 어떻게 이 공간에 들어온 것일까. 분명히 이 공간에 들어올 수 있는 것은...

존재는 이윽고 답을 알아냈다. 아리스가 꿈에서도 멀쩡했던 이유이자 이 공간에 들어올 수 있던 이유.


"..창조된 신비여, 나는 너희에게 해를 끼칠 생각은 전혀 없다."

존재는 저자세로 이야기했다. 아직 자신은 실체조차 없는 불안정한 존재였다. <신비는 현실의 위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라는 말이 있듯이, 실체가 없는 자신은 너무나도 약한 존재였다. 게다가 '창조된 신비'이자 '인위적인 신비'인 자신의 근원과 동류인 아리스는 상성이 좋지 못했다. 아리스가 자신이 만들어낸 세계 안에서도 기억을 잃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리라. '존재'는 지금은 조금 굽히더라도 일단 위기를 벗어나기로 마음먹었다.

"아직 두 질문에 대한 답을 듣지 못했다."

아리스는 기계적인 어투로 내뱉듯 말했다. 붉은 헤일로에서는 심상치 않은 스파크가 튀기기 시작했다. 저것이 '청춘'을 저버리고자 마음먹은 아리스인가. 존재는 식은땀을 흘렸다. 

눈 앞의 자신이 키보토스에 위협이 될 존재라 판단되거나, 선생을 공격하기 위해 이번 일을 꾸몄다고 판단된다면 망설임 없이 자신을 공격할 터였다.

존재는 결국 사실대로 털어놓기로 했다.


"..마지막 이야기를 얻기 위해서였다."

자신은 도시전설 같은 무의미한 이야기가 키보토스의 학생들의 믿음 덕분에 '숭고'에 다다른 극히 드문 존재. 그렇지만 그것만으로 키보토스에 현현하기는 어려웠다. 게마트리아라는 자들이 자신에게 힘을 조금 실어주긴 했지만 여전히 부족했다. 

그 때 자신의 눈에 들어온 것이 홀로 해변가를 걷고 있던 한 소녀였다. 존재할 수 없는 꿈을 꾸는 소녀. 키보토스의 '기적'을 품고 있는 소녀. 

그런 소녀의 꿈이라면 자신을 완성할 마지막 이야기로 충분하리라. 

그렇게 존재는 그녀의 꿈에 매달렸다. 


'선생과 단 둘이 있고 싶다'라는 그녀의 꿈을 이룰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세계의 모두가 선생을 잊고 소녀만이 선생을 기억하는 세계는 만들 수 있었다. '아비도스의 모두가 푸른 초원을 볼 수 있게 해주고 싶다'라는 꿈은 덤이었다.

그렇게 그 소녀는 자신의 꿈을 이뤘고 그 꿈, 그 이야기를 자신에게 넘겨준다는 대가를 치뤘다.

그 덕분에 존재는 세계에 현현할 마지막 조각을 얻은 것이었다. 

아리스는 조용히 '존재'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수긍한 것일까, 이윽고 아리스는 발 끝에서부터 천천히 사라져갔다. 

앞의 존재를 해치우는 것보다 선생과 보내는 청춘의 시간이 더 소중할 것이라 판단했으리라. 존재는 내심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천천히 사라져가던 아리스는 문득 고개를 돌려 존재에게 질문을 던졌다.

"너의 이름은 뭐지?"

존재는 비틀린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리스가 이 이름을 듣더라도 자신을 기억하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페로로질라>다."


히후미의 꿈을 손에 넣은 페로로질라가 역으로 히후미의 꿈의 영향으로 거대한 페로로가 되어버린 것은 나중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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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아지나티 히후미는 천천히 눈을 떴다. 따스한 햇빛이 창문 틈새로 들어오고 있었다. 레이스 같은 얇은 커튼은 아침잠이 많은 자신이 지각하지 않을 수 있게 도와준다. 

방은 소녀답게 흰색과 핑크색으로 가득했다. 가구는 화장대, 탁자, 옷장 정도로 필요한 가구만 있었지만, 모모프렌즈 인형이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히후미는 조용히 이불을 옆으로 밀어내며 일어났다. 머리맡에는 베개 정도 크기의 흰색 페로로 인형이 놓여있었다. 

"에헤헤.. 오늘도 좋은 아침이에요, 페로로니임.."


히후미는 졸린 목소리로 페로로 인형에게 아침 인사를 건넸다. 다른 페로로 인형들도 소중하지만, 이 인형을 머리 맡에 두고 자는 이유는 간단했다. 

선생이 자신을 위해 줄 서서 구매해 선물해준 한정판 페로로 인형이었다. 

물론 선생은 한정판과 일반 페로로 인형의 차이를 전혀 모르겠다는 눈치였지만, 선물 속에 담긴 마음은 변함 없었다. 

히후미는 페로로 인형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이렇게 인형을 쓰다듬고 있다 보면, 선생님을 쓰다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얼굴이 화끈해진 히후미는 후다닥 침대에서 일어나 이불을 정리했다. 오늘은 선생님이 보충수업부를 방문하는 날이다. 

이렇게 늘어진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 히후미는 거실로 걸어나갔다. 

학생을 위한 단독주택이었지만 크기는 상당히 작았다. 3대 학원인 트리니티 학원답게 학생은 많고 땅은 부족했다. 

자신은 그나마 운이 좋아서 단독주택을 배정받았지만 맨션에 사는 학생들도 있었다. 물론 히후미는 티파티의 나기사가 히후미를 위해 주택배정 서류에 손을 쓴 것은 몰랐다.  


히후미는 흥흥 콧노래를 부르며 욕실로 들어갔다. 선생님이 보충수업부에 방문하는 날이면은 아침이 즐거웠다.

아침잠이 많아 아침이 괴로웠던 전과는 달리 요새는 아침에 기운이 넘쳤다. 콘서트 때문에 시험을 놓쳐 보충수업부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에는 큰일났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보충수업부 활동을 즐기게 되었다.

평소라면 만날 계기가 없는 친구들과 만나게 되었다. 코하루도, 하나코도, 아즈사도 이제는 모두 소중한 친구였다. 그렇지만 제일 즐거운 것은 선생님이 보충수업부에 왔을 때였다.

하나코의 곤란한 질문을 어물쩍 웃어넘기려는 모습도, 아즈사의 딱딱한 말투에도 웃으며 대답해주는 모습도, 코하루에게 짖궂은 장난을 치는 모습도 좋았다.

자신처럼 수수한 소녀가 아닌 빛나는 그녀들과 함께할 때 선생님은 즐거워보인다. 선생님도 빛난다. 히후미는 머리를 감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페로로를 좋아하는 히후미, 수영복 복면단의 파우스트, 나기사의 친구 히후미, 보충수업부의 히후미, 트리니티의 상냥한 학생 히후미, 샬레 선생의 믿음을 잔뜩 받는 히후미. 그 모든 특별한 히후미가 모여, 지금의 히후미가 있는거야.'

...어라. 누가 해준 말이었더라. 히후미는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은데, 어디서 들었는지 모르겠다. 선생님이 그런 낯부끄러운 말을 해줄리가 없다. 

히후미는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하고 고개를 내젓고는 머리를 마저 감았다. 오늘 아침 준비에는 자신도 모르게 조금 더 공을 들였다.


그렇게 집에서 나온 히후미에 눈에는 저 멀리 고개를 푹 숙이고 걸어가는 익숙한 인형이 들어왔다. 검은색의 작은 날개에 약간이지만 어깨가 드러나는 옷. 목에 있는 검은 줄까지.

히후미는 반갑게 어깨 위로 손을 들어 크게 좌우로 흔들며 인사를 건넸다. 아니, 건네려했다.

히후미는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몸을 타고 오르는 것을 느꼈다. 사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그립고, 그립다고 하기에는 너무 행복하며, 행복하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아쉬운 감정. 지금이 아니면 전할 때가 없을 것 같은 이 감정. 더 옅어지기 전에 내뱉어야 하는 이 감정. 

히후미는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학교의 반대방향으로 돌렸다. 히후미는 이윽고 지하철 역이 있는 방향으로 달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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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아침 햇살이 침실 커튼 사이로 새어들어왔다. 두껍지 않은 불투명한 커튼에 햇빛이 비춰 침실은 오랜지 색으로 물들었다. 

아이보리 색의 가구에 비친 햇빛이 가구를 오래된 단풍나무의 색깔처럼 물들였다. 

선생은 서서히 눈을 떴다. 넓은 침대에는, 선생 혼자였다. 늘 그렇듯이 선생은 손으로 머리맡을 더듬거리며 시계를 찾기 시작했다. 자명종시계는 시끄럽게 울리고 있었다. 

건전지가 들어가는 시계로 산 것은 자신의 취향대로였지만, 울리는 소리가 너무 크다. 선생은 시계 뒷편을 더듬어 알람을 껐다. 선생은 크게 하품을 했다.

항상 그렇듯 6시 반에 잘 일어났다. 부엌에서는 후우카가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있는지 달그락 달그락 소리가 났다. 선생은 오늘 일정을 머릿속으로 더듬었다.

트리니티 방문은 10시였지만, 10시 딱 맞춰서 학교를 방문하는 것은 사회인으로서 예절에 어긋난다. 선생은 빠르게 샤워를 하고 아침 준비를 마쳤다.


덜컥-

"좋은 아침, 후우카. 늘 고마워."

후우카는 한결같은 새댁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반겨주었다. 긴 검은색 머리가 뿔을 타고 흘러내렸다. 오늘도 항상 입는 흰색 에이프런을 입고 있었다.

"좋은 아침이에요, 선생님. 오늘 아침은 일식으로 준비했답니다!"

선생은 천천히 식탁으로 다가가며 후우카에게 물어봤다.

"도와줄거 있어? 그릇이라도 놓을까?"

..어라. 이 대화,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은데. 선생은 그대로 생각에 잠겨들었지만, '맛있게 드시기만 하면 된답니다'라는 후우카의 말에 조용히 식탁에 앉았다.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은데. 선생은 이 기묘한 기시감의 정체를 끝내 찾아내지 못했다.


후우카에게 이번주에 같이 레스토랑에 가자고 이야기한 뒤, 선생은 일찍 샬레를 나섰다. 트리니티가 워낙 넓기도 하고, 가서 티파티와 의견을 조율할 필요가 있었다. 

선생은 후우카가 갈아놓고 간 건강 드링크를 한 손으로 들고 마시며 다른 손으로는 싯딤의 상자로 업무를 확인했다. 아로나가 손이 바쁜 자신 대신에 업무리스트를 직접 넘기며 보여주고 있었다. 

선생은 문득 아로나와 너무 오랜만에 만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한 일이다. 분명히 어제도 업무를 했을텐데. 선생은 아침부터 드는 기묘한 감각을 내쫓고자 머리를 흔들었다. 

선생이 저 멀리서 뛰어오는 누군가를 발견한 것은 그 때였다.


그리고 히후미도 선생을 발견했다. 어째서 이렇게 반갑고 그리운 것일까. 히후미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더 빨리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고 달려도 마음 속에서 끓는 이 감정은 식을줄을 몰랐다. 어째서 이렇게 선생님이 좋고, 어째서 오늘 아침은 이렇게 아름답고, 어째서 자신답지 않게 말괄량이처럼 구는 것일까.

그렇지만 그것 역시 자신이었다. 선생은 자신에게 달려오는 히후미를 보고 깜짝 놀랐지만 히후미는 멈추지 않았다. 숨이 조금씩 차긴 했지만, 지금이 아니면은 이 감정을 전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지금이 아니면은 말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숨이 벅찰 정도로 내달린 히후미는 선생에게 뛰어들듯이 안겼다. 선생의 손에 들려있던 건강 드링크가 흘러넘쳤지만, 히후미는 개의치 않았다.

히후미는 선생이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발꿈치를 들어 선생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겹쳤다. 선생의 거친 듯 따스한 입술이 느껴졌다. 히후미는 발꿈치를 내리며 천천히 선생의 입술에서 자신의 입술을 떼고서는 행복함과 따뜻함에 감싸여 세상에 선언하듯 외쳤다.

"선생님, 사랑해요!"

따뜻한 아침 햇빛이 둘을 내리쬐고 있었다. 히후미는 세상에 자신만큼 행복한 사람이 없다는 듯, 태양같이 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부끄럼쟁이 소녀는, 오늘도 사랑을 한다.


- 부끄럼쟁이 소녀는 사랑을 한다 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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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첫 줄보다 엔딩이 먼저 떠오른 소설

처음 소설 쓸때는 일하면서 깔짝깔짝 썼는데 이제는 4시간은 우습게 잡아먹는듯

퇴고는 올리기 전에 잠깐 훑어보는 식이어서 오타나 오류가 있을수도 있지만 가볍게 넘겨주셈

이런 따스한 히후미 순애물이 보고싶었을 뿐임

좀 쉬다가 아리스가 선생 감금하는 단편으로 돌아올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