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https://arca.live/b/bluearchive/44452130

2화: https://arca.live/b/bluearchive/44588169


아비도스에서의 순찰과 헬멧단 소동을 마친 이후, 다음 일정을 위해 움직이기로 했다.


평소엔 집무실에서 서류를 통한 업무가 대다수이지만 이렇게 밖에 나오는 날에는 다른 야외 일정도 함께 진행하는 것이 효율이 좋은만큼 야외에서의 일정은 보통 하루에 몰아넣는 것이 내 방침이였다.


오늘은 오전에서 점심까진 아비도스, 그 이후로는 게헨나에서 일정이 있었다. 간단히 노노미가 사온 주전부리로 배를 채우고 이동하기 위해 옥상의 헬기에 올라타려는 순간, 호시노가 말했다.


"벌써 가는거야, 선생? 좀 더 느긋하게 있다가도 우린 완전 오케이인데~."


"다른 학생들의 일도 있으니깐 말이지. 오늘은 여러모로 고마웠어, 호시노."


"으헤~ 별말씀을, 선생에게는 평생 도와줘도 갚을 수 없는 빚을 졌으니깐 말이지.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라면 뭐든 부탁해도 좋다구?"


"평생이라니...딱히 그렇게 대단한 건 안했을텐데."


늘 느긋하고 게을러보여도 호시노는 나름 스스로만의 확고한 기준이 있는 학생이다. 신세를 지면 도와주고, 틀린 일이 주변에서 일어나면 분명하게 선을 긋거나 하는 등, 생각보다 행동에 심이 있다.


하지만 호시노가 자기 감정을 명확히 드러내는 말을 하는 경우는 많지않다. 기껏해야 아비도스나 대책위원회에 대한 이야기 정도, 그런 아이가 내게 이리 말해주니 솔직히 기쁘다. 그만큼 날 믿어주고 있단 의미니깐.


선생으로서는 가장 기쁜 순간이다.


"뭣하면 선생의 애인이라도 되줄까?"


"크흡!?"


방심하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놀라서 혀를 깨물었다. 나름대로 감정을 숨기는데는 자신이 있었는데 기분이 풀어져서 생각지도 못한 기습을 당한 기분이였다.


혓바닥이 얼얼하다.


"으헤~ 너무 뜬금없는 장난이였나? 미안해, 선생. 평생이란 말을 하는 김에 나도 모르게..."


"아냐. 조금 뜬금없는 장난이라 놀란거니 신경 쓸 것 없어. 아무튼 슬슬 가볼게, 호시노."


헬기의 운전석에 타서 목적지를 설정하고 헬기의 시동을 걸자 프로펠러가 힘차게 돌며 바람이 일었다. 호시노의 머리카락이 바람으로 흩날린다.


"다음에 봐, 선생~!!"


"그래! 호시노! 나중에 또 봐!"


"---!! ----!"


인사를 주고받고서도 호시노가 무언가를 더 말하는 것 같지만 내용은 들리지 않는다. 그녀도 그걸 알기에 말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헬기가 공중에 뜨고 게헨나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스쳐지나가는 풍경을 보며 들리지 않은 호시노의 말에 대해 생각한다.


사실 더 생각할 필요는 없겠지.


내용까지 완전히 유추할 필요는 없겠지만 대충 사랑고백이나 그에 준하는 무언가였으리라.


호시노가 내게 이성으로서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건 조금만 같이 있어봐도 안다. 


늘 졸려하고 귀차니즘인 그녀가 나하고 있을때는 구태여 잠을 자려고 하지 않는 점이라던가, 둘만 있을땐 이상하게 다양한 화제를 던지며 질문해오는 점이라던가, 유독 나를 보는 눈빛이 평소보다 소녀틱하다던가.


학생들을 보며 그녀들을 알아가는 사이에 이거 혹시? 하는 의혹은 시간이 지나면 더 확실한 근거가 잡히며 분명한 사실이 된다.


애시당초 알게 모르게도 아니고 대놓고 어필하는 요소도 곳곳에 있는데 이걸 눈치채지 못한다는 건 말이 안된다. 


하지만 선생으로서는 어른으로서, 교육자로서 학생들과 가까우면서도 적절한 거리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연심을 가진 학생들은 아마 나름대로 경쟁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기에 난 추가적인 진전이 없는 정도의 만남을 그들과 주기적으로 반복할 필요가 있다.


요는 적절한 유지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필요에 따라선 이성에게 건네는 그녀들의 호의를 둔감한 사람을 연기하여 제자가 스승에게 주는 호의로 포장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아는 입장에선 조금 양심에 찔린다.


나도 일단 남자다.


대놓고 좋아해주는 이성의 호의를 이런 방식으로 흘려보내는 행위 자체는 질이 나쁘다곤 생각한다.


허나 지금 키보토스에 생물학적인 분류로 인간 종족으로서의 남성은 나 하나밖에 없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내 외부 활동은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한창 젊은 나이의 여자아이들은 많은데 그 또래의 남자는 커녕, 인간 종족으로서의 남성은 없으니 내게 그 호기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내가 학생을 연인으로 했다가는 어떻게든 이건 확실하게 큰 소동이 된다.


자의식 과잉으로 보이겠지만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남의 호의에도 똑바로 마주하지도 못할 망정에 마음을 전해도 어른이란 위치를 통해 손이 안닿는 거리로 도망치기만 한다고 생각하니 위가 쓰렸다.


다시와서 생각해보면 호시노가 날 좋아해주는 계기는 그 날의 일이 아니였나 싶다. 


호시노가 나와 공범이 되어준, 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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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도스 자치구의 외딴 거리.


카이저 PMC '전' 이사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한밤중의 거리를 달리고 있었다. 가쁜 숨소리와 너무 뛰어 다리가 떨리지만서도 그는 멈추지 않고 달렸다.


지금 자신을 노리는 무언가에게 벗어나야 된다는 생각만이 등을 떠밀어주었다.


"헉, 허억...젠장, 젠장! 이 내가, 허억...! 대체 왜 이런 고생을...!!"


남자는 지금의 자신이 이렇게 되도록 만든 카이저 코퍼레이션과 밉고 미운 대책위원회가 떠올랐다.


카이저 코퍼레이션에서 대규모로 기획했던 아비도스 인수 계획. 회사 차원에서 기획된 이 프로젝트는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아비도스 자치구를 손에 넣어 키보토스에서 세력을 넓히는 거점을 만든다는 계획이였다.


비록 자연재해로 사막이 대부분인 자치구지만 결국 세력을 뿌리내리는 것이 목적인 그들에게 그것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거의 모든 구역이 개발을 끝내 땅을 인수하는 행위 자체가 막대한 금액이 오가는 키보토스에서 아무것도 없는 그 넓은 땅덩어리, 그것은 거대한 자본과 군사 기술을 가지고 있는 대기업들이라면 누구나 탐낼 물건이다.


먼저 아비도스에 막대한 빚을 지게하여 여지를 둔다. 시간을 들여 채무를 통해 천천히 땅을 사재기하는 것으로 계획은 문제없이, 조용하고 느리지만 확실히 진행되었다. 


아비도스 고등학교를 무너뜨리고 아비도스 자치구를 손에만 넣는다면 카이저 코퍼레이션은 곧 키보토스에서도 3대 학원 조차 손대기 힘든 세력을 갖출...예정이였다.


그러나 아비도스 고등학교는 끈질기게 물고 버텼다.


어떻게든 채무를 갚겠다며 매달 꾸역꾸역 이자를 갚으니 상층부도 슬슬 짜증이 났었는지 끝을 보자는 의견이 오갔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아비도스를 끝장내기 위해 앞장섰던 인물이 바로 카이저 코퍼레이션 소속의 용병업체인 카이저 PMC의 이사였던 남자다.


앞으로 조금 더 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아비도스를 몰아넣었지만 결국에는 실패하고 총학생회의 조사를 받으며 계획의 실태가 낱낱이 드러나자 이제껏 몸을 던지고 뼈를 깎으며 일했던 회사는 이사에게 모든 덤터기를 씌우고 그를 해고했다.


지명수배자라는 낙인이 찍히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순간에도 신경을 곤두세우며 다니는 나날.


이제까지 최고급의 삶을 구가하며 타인을 내려다보는 인생을 살아온 남자에게 있어서는 이는 그 무엇보다도 큰 굴욕이였다. 평생 이렇게 살아야된단 생각을 하면 앞이 막막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지명수배자가 된 자신이 도망치기 가장 좋은 장소는 아비도스 자치구였다. 가장 융성하고 부유한 학교의 자치구였음을 증명하는 드넓은 부지와 사막 지역 특유의 모래바람은 더없이 좋은 위장 수단이였다.


근처에 망한 가게에 가면 거진 몇십년은 가는 보존식도 있고, 나름대로 생존에 필요한 요소는 땅의 크기만큼 널려있다.


최소한 목숨을 이어가는데 문제는 없다.


하지만 남자의 야심은 사그라들 기색이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복수하리라 다짐한 마음은 더욱 확고해졌다. 자신을 잘라낸 회사에게, 물론 대책위원회에게도.


일단은 다시 힘을 얻을 기점이 필요했다. 당장은 추하더라도 이곳을 구르며 지내야만 했고 매일매일 텁텁한 보존식을 물도 없이 삼켜가며 지내왔다.


그런 삶을 보내던 중, 한밤중에 갑자기 위협 사격을 받기 시작한 것이 방금 전의 일이다.


여느 때처럼 근처의 보존식을 먹고있던 도중 갑자기 어디선가 총탄이 날아들었다. 


"뭐, 뭐야? 현상금 벌이인가?"


이런 일이 이제껏 없던 것은 아니였다. 지명수배자들을 잡아서 현상금을 챙기는 블랙마켓의 현상금 벌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그가 카이저 PMC 이사였던 시절에도 많이 들어왔던 기억이 있었다.


하지만 아비도스로 숨은 이후로는 습격은 커녕 누군가를 마주한 적도 없었다. 구태여 여기까지 온 녀석이라면 상당히 귀찮은 녀석임이 분명했다.


우선은 저격을 보니 지금 있는 건물의 구조를 알고있는 것이 분명하다. 당장이라도 나가야 한다.


쨍그랑!


"히익!"


창문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탄환이 날아들자 남자에게선 덩치에도 어울리지 않는 새된 소리가 나왔다. 


곧장 밖으로 뛰쳐가며 저격을 피해 달린다. 위험한 판단이지만 이대로 건물 안에 있다가는 폭탄을 통해 순식간에 생매장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그 나름의 판단이였다.


하지만 그게 지금 추적자의 진짜 목적이라는 점을 모른다는 것을 시인하는 마냥 그는 점차 추적자가 원하는 장소로 유도되고 있었다.


저격을 통한 총탄이 때론 거리의 벽을, 혹은 바닥을 맞추며 빗맞은 탄환을 절묘하게 연기했다.


사이사이 팔이나 어깨 등을 저격해서 아픔 탓에 자기도 모르게 방향을 틀게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자주 머물던 건물을 나와 유도되던 도중, 자치구를 돌아다니며 찾아뒀던 안전한 건물이 보이자마자 그는 재빨리 그 건물로 피신했다.


그림자 안에 숨어들었으니 알아채긴 어렵다고 생각했겠지만 저격으로 맞은 피탄 부위에서 떨어지는 기계 부품들이 그가 향하는 방향을 알려주고 있었다.


추적자의 눈엔 이미 외통수였다.


그는 아무리 독한 현상금 벌이라도 근래 수 개월을 이곳에서 보낸 자신보다 이곳의 지리에 빠삭할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곳곳이 폐허가 된 자치구라 숨을 장소는 넘쳐나도록 있다.


잡힐 가능성은 한없이 낮다.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이였다.


띠리링---!!!


"뭐야...전화...?"


발신자 표시 제한. 


반사적으로 꺼낸 휴대폰에 올라온 7개의 글자가 이리도 소름이 돋는 순간이 또 있을까?


받지 말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혹시...?


어쩌면 회사에서 걸어온 전화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분명 이 엿같은 생활도 드디어 끝나는 것이 아닐까?


사실 조금만 냉정히 생각해본다면 이는 있을 수 없는, 문자 그대로 의미없는 가정이였다. 그러나 이미 상류층의 삶을 맛보다가 밑바닥에 떨어진 인간에게 어쩌면 그 삶으로 돌아간다는 상상은 너무도 달콤했다.


아늑한 잠자리와 최고급의 차와 술, 그리고 온갖 사치들. 상상만 해도 마음이 채워지는 그런 감각에 그는 이미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받았다.


"여, 여보세요?"


"목소리를 들어보니 생각보단 건강하군. 꼴은 그래도 다행히 사는데 지장은 없는 모양이야."


음성변조가 들어간 것인지 목소리에 노이즈가 꼈고 톤이 높아서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이 안된다.


하지만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하는 듯한 멘트에 긴장이 풀려간다. 상상이 진짜일지도 모른단 생각에 한동안 굽히고만 다닌 허리가 꼿꼿이 펴졌고 목에 힘이 들어갔다.


일단 자신을 노리는 녀석의 배제가 우선이다.


"회사의 직원인가? 지금 나를 노리고 온 녀석이 있으니 당장 호위를..."


"날 말하는건가? 유쾌하군, 날 다른 누군가로 착각한건가?"


음성이 변조 되었음에도 알 수 있는 명확한 비웃음이 휴대폰 너머로 흘렀다. 그 비웃음에 심장이 내려앉고 등골이 서늘해지며 방금까지 하던 즐거운 상상이 헛된 망상임을 깨닫는다.


휴대폰 너머의 목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난 개인적인 원한은 없지만 네가 한 행동은 같은 어른으로서 용납이 안되거든. 아니, 네놈은 어른이라기도 좀 그렇군."


"같은...어른...?"


그 말에 떠오르는 사람은 단 하나.


대책위원회와 같이 있었던 인물, 그리고 다 무너져가는 아비도스를 기사회생으로 살려낸 가장 증오스런 원수.


"너 같은 놈이 어른을 자칭하지마라, 토할 것 같으니깐."


"선생...!!"


음성변조를 멈춘 선생의 목소리가 뚜렷하게 휴대폰에서 들려온다. 자신을 노리는 이가 선생이란 것을 알자 남자는 머리의 피가 솟구치는 느낌이였다.


자신을 잘라낸 회사와 대책위원회 이상으로, 선생이 없었다면 이런 꼴을 당할리 없었다는 분노에 시야가 좁아진다. 목에 다시 힘이 들어간다.


"이...개자ㅅ..."


"닥치고 손 들어."


철컥!


목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무언가 장전하는 소리, 그리고 관자놀이 쪽에서 느껴지는 피부가 서늘한 무언가와 맞닿는 감각.


방금 그 소리는 셀 수없이 들어왔다.


이래뵈도 카이저 PMC의 이사였다. 샷건이 장전되는 소리를 모를리가 없다. 머리에 맞닿은 서늘한 무언가가 총기임을 알아채는 것에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그리고 방금 그 목소리도 휴대폰에서 들린게 아니였다.


"손, 들라고."


"..."


옆에서 들려오는 선생의 경고에 그가 조용히 손을 든다. 남자의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오가기 시작했다.


어느새 들어온거지? 내가 여기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지? 지금 나 총에 맞는건가? 쏠까? 진짜로? 거짓말이지? 총에 맞으면 아픈가? 바로 죽는건가? 대체 뭐지?


여러 생각이 오가며 점점 두려움에 잠식되가는 모습을 선생은 냉정한 표정으로 내려다봤다. 평소에는 지을 필요없는 표정이다.


방금 전, 남자의 끓어오른 분노도 스스로의 비참함에 완전히 식었다.


절망감과 비참함이 가득 몰려왔다.


그것을 확인한 선생이 입을 열었다.


"지금 스스로가 비참하지? 그대로 있어."


오싹한 기분에 압도된다. 몸이 움츠러들고 머리에선 경종이 울린다. 당장 뭔가 제안을 하지 않으면 틀림없이 죽는다!


"ㅈ...!"


탕!!!


말할 여지도 주지 않겠다는 듯, 선생의 총이 불을 뿜었다. 기계로 된 신체에 탄환이 박히고 그로 인해 몸에 점차 금이 가기 시작한다.


이내 그것은 동작을 멈추었다.


"후."


선생은 정리가 되었음을 확인하고는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갑자기 무슨 일이시죠, 선생님...이렇게 늦은 시간에." 


총학생회 소속의 학생, 린이였다.


"아...그게 말이지. 요전에 조사를 받고 지명수배된 전 카이저 PMC 이사 있잖아."


"네, 그가 무슨 일이죠?"


"시체로 '발견' 되어서 말이지. 총학생회의 힘을 좀 빌렸으면 해."


"...알겠습니다. 위치 좌표를 지정해주시면 즉시 하겠습니다."


"고마워, 그럼."


전화를 끊은 선생은 아까부터 학생이 잠복한 것으로 추정되는 부근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사실 누군지는 안봐도 뻔하다.


호흡의 형태나 헤일로의 광원을 보면 더욱 확실해진다.


"호시노, 거기있지?"


내 물음에 대답은 곧장 나오질 않는다. 조금 기다리니 호시노 배시시 웃으며 걸어나왔다.


"으, 으헤...들켰구나. 언제 눈치챈거야, 선생?"


"호시노. 길게 이야기는 안할게, 방금 본 거 비밀로 안해줄래?"


"아저씨도 공범으로 만드려는거야? 조금 곤란한데..."


"부탁 좀 할게, 응? 어떻게 안될까?"


여유로운 말투로 부탁하는 것과는 달리 내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다. 학생에게 숨기고 싶었던 모습을 보여주고 말았다는 사실에 대한 당혹감에 내심 불안해졌다.


이번만큼은, 특히 호시노에겐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럼, 선생. 하나만 알려줘."


"뭔데?"


"왜 죽인거야?"


호시노의 질문에 단순 흥미 이상의 무언가가 전해졌다. 확고히 말해둘 필요가 있었다.


"내 학생들에게 피해를 줄지도 모르는 인간이니깐. 그래서 죽였어, 어디까지나 내 자의로."


"...선생, 혹시 눈치챘어?"


"뭘?"


내가 모른다는 듯이 싱긋 웃어보이자 호시노가 곤란하다는 웃음으로 답해줬다.


"으헤...치사하구나. 선생은."


"호시노, 넌 아직 학생이야."


그녀가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는 짐작가는 것이 있었다. 그녀를 구하고 아비도스에 돌아간 이후, 카이저 PMC의 이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순간.


호시노의 눈동자 깊은 곳에 서린 정체모를 독기를 봤다.


호시노는 어른을 믿지않는 아이다. 이제껏 당해온 것이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나마 나에 대해서는 믿어주고 있는 모양이지만 무의식적으론 어른에게 의지하려는 편린이 전혀 보이질 않았다.


그런 아이가 자신의 소중한 것을 건드린 어른이 지명수배를 당했단 것을 알게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지명수배자는 도망치다 모종의 사고를 당해 객사하는 일도 상당해 사체로 발견되도 큰 이슈가 되진 않는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곧장 그녀의 독기가 무엇인지를 눈치챘다.


살기.


그것만큼은 호시노 나잇대의 소녀가 가져도 되는 것이 아니다. 그녀가 또다시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죄는 내가 감당할게, 호시노. 너는 좀 더 학생답게 있어도 괜찮아.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다면 날 의지해주면 좋겠어."


이것만큼은 진심이다.


지금만큼은 허울도, 타산도, 뭣도 없다. 정말 순수한 바람을담아 그녀에게 전해진다면 좋겠다.


"...고마워, 선생. 그럼 오늘 일은 두 사람만의 비밀이네?"


호시노가 싱긋 웃었다.


늘 짓던 아저씨 같은 털털하고 능글맞은 웃음이 아닌, 호시노 같은 소녀의 나잇대에 걸맞는 앳되고 순수한 웃음.


이거다.


이걸 지켜주고 싶었다.


이미 한 번, 과거에 지켜주지 못했던 학생들의 웃음을 이번에야말로 지켜주고 싶다.


그녀들이 지금의 시간을, 지금의 순간을 한없이 소중히 여겨주면 좋겠다. 두 번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시간을 행복한 일로 채워간다면 좋겠다.


언젠가 시간이 지나서 과거를 다시 돌아보는 순간에 가슴이 따뜻해지는 추억이 되길 바란다.


그녀들이 아무리 강하다고는 해도 결국 10대 소녀니깐.


부디 내 소중한 학생들이 행복하길.


만약 진짜 신이라는게 정말로 있다면, 날 생지옥으로 던졌다가 이곳으로 끌어올려준 것이 신이라고 한다면.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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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좀 더 있으면 좋겠다


설정이라던지 이야기의 구성이라던지 짬내서만 쓰니깐 엉성하게 이야기가 나와서 속상함


이번 소설 소재는 아래 만화보면서 떠올라서 썼음 존나 센 슨상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