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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도부 B조, 아래로 내려가. 밀레니엄의 포병 부대, 지정한 좌표로 포격 준비. 15초 이후에 포격해줘."


교전의 양상은 점차 준비했던 모든 것들이 과하다고 말하듯이 쉽게 넘어오고 있었다.


유격대로서 최고 전력이 최전선이 아닌 바깥으로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선도부와 밀레니엄이 합친 전력은 놀라울 정도로 뛰어난 전투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선도부의 경우는 히나가 태반의 전력을 차지한다는 것으로 알게 모르게 그외의 부분은 평가가 떨어지는 분위기지만 사실 단순히 일개 부대로서 비교해보면 딱히 히나를 뺀 선도부가 약한 것은 아니다.


학생들 개개인의 레벨은 각자 평균치도 높고 전체적인 사기 또한 높다.


행동대장 역할의 이오리도 마찬가지로 히나와 비교해서 밀릴 뿐이지 다수의 학생이 있는 게헨나에서 전혀 밀리지 않을 수준의 강자이다.


그럼에도 선도부의 전력이 평가가 떨어지는 것은 지휘 체계가 다른 이들과 비교해서 뛰어나지 않은 것에 있다. 아코의 지략과 참모로서의 능력이 타교에 뒤쳐진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아코 수준의 지략을 가진 이는 다른 학교에도 있으며 심지어 그런 아코의 레벨에 따라오는 학생이 선도부에 더 없었을 뿐이다.


부대를 지휘하는 것에는 탁상공론만이 아닌 현장의 공기를 느끼는 경험도 필요하고 이는 부대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더더욱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밀레니엄의 전력은 C&C를 제외하면 게헨나에 비해 무력은 좀 떨어지지만 지략에선 확실히 앞서고 있음에도 그것을 수행하는 능력이 부족하기에 큰 주목을 받는 전력은 아니였다.


하지만 그것들의 장점을 하나로 합친다면 어떨까?


무력의 게헨나와 지력의 밀레니엄.


이 조합의 시너지는 그야말로 단순하게 강하다. 스포츠에서도, 총격전에서도, 더 나아가서는 전략 싸움에서도 사실 이상적으로 추구하는 바는 일맥상통한다.


아군이나 자신에게 오는 피해를 최소한으로 하며 적에게 보다 많은 피해를 주는 것.


단지 그것 뿐인 이야기다.


그것을 위해선 힘과 전략이 균형있게 갖추어질 필요가 있으며 지금의 게헨나, 밀레니엄 연합이 그러했다.


소탕을 위해 상당히 공을 들여서 상세히 계획한 작전이였지만 지금의 모습을 봐서는 큰 문제없이 소탕을 완료할 수 있다. 


적의 전력은 예상보다도 많았고 질도 높았지만 거기에 지지않을 정도로 이쪽의 시너지가 강했다. 유우카와 아코도 방심하지 않고 계속 지휘를 내리고 있는데다 이쪽의 피해는 적다. 완전한 승리라고 봐도 좋겠지.


여전히 상대의 저항이 강한만큼 계속해서 지금의 기세를 가지고 갈 필요는 있지만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조금 있으면 히나와 네루가 잔존 병력을 모아서 가운데로 보낼 시기였다. 생산 라인은 박살났다는 보고가 오고 시간이 조금 지났으니 상황 확인차, 히나에게 먼저 연락을 하기로 했다.


"히나, 선생님이야. 들리니?"


'아. 선생님, 이쪽은 거의 다 끝났어. 병력 자체는 거의 다 박살났으니 선생님이 내준 작전과는 조금 틀리겠지만.'


"고생 많았어, 역시 히나야. 정말 잘해줬어!"


'으, 음. 그렇게 똑바로 칭찬해주니 조금...부끄럽네, 응...'


"히나 쨩이 바라던 일이니깐. 혹시 싫었어?"


'싫은 건 아니지만. 그, 그리고! 지금 다들 거기 있는거 아니야?! 히나 쨩이라고 부르면 어떡해!'


상당히 당황한 목소리다.


직접 안봐도 빨간색으로 물든 히나의 얼굴이 떠오르자 나도 모르게 살짝 입꼬리가 올라갔다. 히나가 염려하지 않아도 주변의 학생들은 작전 수행을 위해 헤드셋을 끼고 있으니 안심하라고 전해주니 그제서야 히나는 조금 진정한 모양이였다.


'아무튼 본대와 합류할게, 선생님. 조금 있다 봐.'


그렇게 말하고 히나와의 통신이 끊어졌다. 다음은 네루인가.


"네루, 들리니? 거기는 어떻게 됐어?"


지직---지지직---.


통신기에서 들려오는 것은 대답이 아닌 불쾌한 노이즈였다.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서 통신 상태를 점검하려는 찰나, 통신기 너머로 폭발음과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펑!!!


폭발음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대체 뭐지? 아직 네루가 있던 방향에 적이 숨겨둔 병력이 모여있나? 그렇다고는 해도 시간이 이미 상당히 지났는데 네루가 그걸 처리하지 못했을리가 만무하다.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파악하면서도 난 히나에게 다시 통신을 보냈다.


"히나, 급한 안건이야. 포인트를 찍어줄테니깐 당장 지정된 위치로 가줘."


'...!! 밀레니엄의 에이전트에게 무슨 일이 있는거야?'


히나가 놀란듯이 질문을 던졌고 나 또한 적잖게 놀란 상황이였다. 진작에 전투가 끝났어야 되는 시간인데 폭발음이 들린다는 것은 예사롭지 않다.


"아직 상황을 완전히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함정일 가능성도 있으니 지정된 위치에 도착하면 다시 연락을 줘. 히나가 이동하는 도중에도 계속 보고를 보낼테니깐 일단은 부탁할게."


'알겠어.'


통신을 마친 후, 일단은 상황을 파악해야만 했다. 네루를 보낸 포인트 인근은 그녀의 전투 스타일에 맞도록 최대한 변수가 없는 평지에 더불어 이것저것 폭발할만한 요소는 거의 배치되지 않은 장소다.


그럼에도 그런 폭발음이 났다는 것은 적이 추가적으로 운용하는 병기일 가능성이 있었고 이는 부비트랩이나 혹은 특수하게 제작된 폭탄인 경우가 유력하다.


네루가 그런 수준으로 무너질 학생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녀의 자신감은 단순한 허세가 아닌 숙련된 강함이 원천이니깐.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통신기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지금 거기있어?'


네루의 목소리였다. 


"네루! 무슨 일이야? 바로 연결이 안되서 걱정했어!"


'하하, 미안해. 조금 까다로운 적이 있었거든, 지금은 끝장을 봐줬지만 말이야.'


"다행이네, 합류는 가능할 것 같아?"


'아, 그게 좀 어려울 것 같은데. 혹시 헬기를 좀 보내줄 수 없을까? 아까 때려눕힌 녀석의 건으로 선생님에게 직접 이야기할 내용도 조금 생겼거든.'


"그래...알았어. 곧 그쪽으로 갈게."


통신이 끊어졌다.


거울이 없어 직접 본 건 아니지만 표정이 굳는게 느껴졌고 손이 조금이지만 덜덜 떨렸다.


예전에 잠시 담배를 피우던 기억이 떠올랐다. 불안한 상황에서 손에 쥐고 불을 붙이는 것으로 떨림을 멈추는데 쓰고는 했지만 주변에 워낙 애연가가 많아 물자 문제로 끊게 되었다.


담배는 제법 귀중한 물자였으니깐.


이제와서지만 지금만큼은 조금 피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이런 위기를 마주하고 꽤 시간이 지난 탓인지 억지로 누르고 있던 서늘함이 발끝에서 기어오는 기분이 든다. 


먼저 히나에게는 간단히 지금의 상태를 말해둘 필요가 있겠지. 통신을 하다가 내는 소리로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는만큼 음성 문자를 보내두기로 했다.


아무래도 진짜 각오를 다져야만 하는 때가 온거겠지.


분명, 지금부터가 진짜다.


"아코, 유우카. 긴급사태야."


---------------


히나는 전력으로 지정된 위치로 향해 달리고 있었다.


선생님이 보낸 연락에 따르면 보통 일이 아니였고 혹시나 상상하지도 못한 일이였다. 하지만 최소한 이런 긴급사태에 선생님의 판단이 잘못되는 일은 없었다.


믿을 수는 없지만 그러리라고 생각할 수 밖에.


지정 위치에 도착하자 보이는 광경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다양한 공장의 시설이 자리를 가득 채우고 있어야되는 부지는 완전히 허허벌판이 되었음은 물론에다 근처에서는 폭발의 여파로 불길이 커져 이글거리고 있다.


벌집이 된 오토마타와 문자 그대로 산산히 부서진 전차는 물론에 팔 부분이 떨어진채로 바닥에 고꾸라진 파워로더까지. 피탄된 자국이 모두 동일한 것을 보니 네루의 작품임은 틀림이 없었다.


보고보다도 많은 수량의 전력에다 아예 내용에도 없던 파워로더도 꽤 많은 수가 망가져있다.


조금 더 가다보면 오토마타를 차곡차곡 쌓아만든 고철더미의 산도 보였다. 이런 광경을 재현할만한 학생이 자신말고 과연 이 키보토스에서 얼마나 더 있을까?


그런 물음으론 한편 더욱 믿을 수가 없었다.


"그 더블오가, 졌다라..."


선생님이 급하게 보내온 음성 문자의 내용은 간단했다. 네루는 패했고 정체는 모르지만 선생님에게 누군가 그녀의 음성으로 변조해서 통신을 걸어왔다.


선생님에게 직접 회수를 요청하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선생님을 노리고 있으며 혹시나 네루가 정말 졌다고 한다면 상대의 전력도 만만히는 볼 수 없으니 그것의 배제를 우선해야만 한다고.


다른 전력을 우회시켜 보내도록 할테니 전체적인 상황을 판단하도록 주변을 살피고 혹시 네루가 있다면 회수 요청까지가 선생님이 내린 지시였다.


하지만 막상 눈에 들어오는 더블오의 전과를 직접 눈으로 보게 된 히나의 입장에선 적을 경계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어쩌면 더블오가 지친 틈을 노리고 기습을 가했다고 한다면 적이 기습에 상당히 숙련된 베테랑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기에 더욱 경계를 높였다.


어디서 나오든 확실히 맞대응을 위해 걷던 도중. 저 멀리 벌판에 쓰러진 네루가 보이기 시작한 그 순간이였다.


"빈틈이 없구나, 정말."


"!!"


쉬익!


나이프가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가 동시에 귓가를 어루만진다. 곧장 뒤를 돌아서 총신으로 나이프의 검선을 막아냈고 금속이 부딪히는 특유의 소리와 함께 기습해온 적이 공중제비를 돌며 물러났다.


급작스런 기습이긴 했지만 산전수전 겪어온 히나가 기습을 허용하는 일은 이제껏 없었다.


많은 경험은 물론이고 신체적인 반응에서도 그녀는 키보토스에서 손꼽는 강자라는 것을 증명하듯 뛰어난 소질이 있다. 나이프와 맞부딪힌 총신에 난 흠집을 보며 히나는 적을 응시했다.


적은 방독면을 끼고 있어서 제대로 생김새는 확인이 되지 않는다. 전체적인 상황을 종합해본다면 네루를 쓰러뜨린 것은 저 녀석임이 분명하다.


무엇보다도 신경이 쓰이는 건 방금의 목소리. 그 순간엔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그럴리가 없다. 틀림없이 선생님의 목소리였다.


네루의 목소리로 선생님에게 통신을 걸었다는 이야기를 전해받지 못했다면 상당히 동요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한편, 히나가 재차 총을 겨눔과 동시에 적이 무언가를 공중으로 던졌다.


공중에 뜬 물체를 보자마자 히나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취해야할 행동을 파악했다.


순간적으로 날개를 펴서 스스로의 눈을 가리며 뒤로 물러났지만 총을 들고 있으니 아쉬운대로 귀는 다른 한쪽은 포기해야했다.


무언가 강한 빛이 일어나는 듯한 느낌이 날개를 넘어서 눈꺼풀 너머로도 전해졌고 동시에 포기한 오른쪽 귀에는 멍해질 정도의 소음이 찾아와 머리가 울렸다.


오른쪽 귀는 조금 울리지만 갑작스런 섬광탄에 대비하는 것으론 최적의 해답이였다.


히나가 섬광탄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받아냈다는 것을 모른채 적이 대놓고 사격을 가해오지만 히나 또한 지지않고 그에 응수하듯이 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총알이 총알을 뭉개고 적을 향해 올곧게 나아가지만 적도 만만치 않음을 증명하는 것 처럼 순간적으로 머리를 아래로 숙여 회피했다.


빗맞은 여파로 방독면이 위에서부터 금이 가며 부서졌다.


드러난 적의 모습에는 히나라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디.


금색의 눈동자가 섬뜩하게 빛나고 얼핏 보이는 눈동자는 히나의 목덜미를 조용히 응시하고 있었다. 그 시선을 느낀건지 히나가 자기도 모르게 옷깃으로 목을 가렸지만 놀란 표정만큼은 감출 수 없었다.


"선생님...?"


"...너도 날 그렇게 부르는구나."


외모는 선생에 비해 조금 앳되지만 얼굴의 형태나 눈매, 심지어는 목소리까지 선생을 빼다박은 소년이였다. 눈동자의 색깔은 다르지만 전체적으로 본다면 선생이 조금 어렸던 시절을 그대로 가져다 두었다고 해도 믿을 것 같다.


소년의 텅 빈 눈이 탁하게 빛나며 히나를 노려보았다, 그 조여오는 살기에 히나도 정신을 차렸다.


다른 생각을 할만큼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였다.


"너, 누구야? 왜 선생님의 모습을 하고있어?"


"...너도 저기 뻗어있는 년처럼 그딴 추한 어른과 나를 똑같은 모습이라고 하는거냐?"


그 말을 듣자 히나의 안에 늘 단단히 잡고 있던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지금 내 앞의 개자식이 무어라 말한거지? 내 귀에 문제가 없다고 한다면 선생님이 추한 어른이라고 지껄인건가? 누구보다 상냥하고 학생들을 생각해주며, 앞서 책임을 맡아주는 그 어른이?


추하다고?


철컥.


살기를 담은 장전 소리와 같이 히나의 기관총이 불을 뿜는다. 소년이 응시하던 눈앞의 광경은 검은 탄환과 보라색의 불꽃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용서를 바라지마."


짧고 냉정하게 지금의 심정을 내뱉은 히나의 총격을 가열차게 소년을 덮쳤다. 문자 그대로 총알이 비처럼 쏟아지지만 소년에게 그 총탄이 닿지는 않는다.


"...!!"


"총으로는 무리야."


분노가 앞선 감정적인 사격이였지만 조금도 흔들림이라곤 없는 정확한 조준의 사격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어디로 총탄이 온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총탄 사이로 소년이 히나에게 접근해온다. 방금 전, 총탄을 아슬아슬하게 피한 것이 거짓말 같은 움직임이였다.


그것을 직접 마주하는 히나의 표정에도 경악이 피어오르지만 동시에 냉정히 판단하기 시작했다.


히나는 즉시 사격을 멈추고 거리를 두기 위해 크게 물러나며 쓰러진 네루와의 거리를 좁혔다.


네루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었다.


"으, 윽."


직접 본 네루의 상태는 처참했다.


평소 자주 즐겨입는 스카쟌은 곳곳이 뜯어져서 넝마가 되어있고 다리의 붓기가 심상치 않은 것으로 보았을 때, 뼈에 금이 갔거나 심하면 골절로 보인다.


"정신이 들어? 미카모 네루."


"아아. 선도부장인가? 그래, 어떻게든. 윽!"


일어나려고 애쓰는 것 같지만 몸의 부하로 일어나지 못하는 모습이였다 네루를 아는 이들이라면 지금의 모습은 믿기지 않는 광경이겠지.


다행히 헤일로가 파괴되거나 더 큰 부상은 입지 않았다는 점이 불행 중 다행이였지만 네루 혼자서 지금의 자리를 벗어나는 것은 어렵다.


선생님의 증원이 오기 전까지 네루를 지키며 저 정체모를 소년을 상대하는 것이 지금의 과제라는 것을 히나는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


네루가 자신감 넘치는 평소와는 달리 조금 기가 죽은 목소리로 사과해왔다.


"젠장, 미안해. 선도부장. 발목을 잡아버렸어..."


"신경 쓰지마."


히나는 그 이상의 말은 건네지 않기로 정했다. 지금 이 상황에 누구보다 분한 것은 네루임을 확실하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를 갈며 힘이 들어간 네루의 주먹을 본다면 누구라도 알 것이다.


소년이 다시 나이프를 히나에게 겨눈다.


"너도, 죽어."


"누구 마음대로."


접근해오는 소년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신속.


이제까지 본 기억도 없는 속도로 접근해오는 소년을 보며 히나에게도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이런 속도로 움직이는 적이라면 확실히 총보다 근접 무기 쪽이 더 위력적이다.


기본적으로 특정 목적으로 특별하게 개발된 물건이 아니라면 총기는 근접 전투에서 무기로 운용하기는 어렵고 그것은 총기의 사이즈가 크다면 더더욱 그렇다. 히나가 근접 격투나 백병전의 소양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저런 움직임이 가능한 상대에게 근접전을 계속 허용하는 것은 위험한 흐름이였다. 심지어는 나이프의 칼질로 히나의 총기에는 데미지가 누적되고 있다.


아직까지 치명적인 손상은 없지만 누적이 계속된다면 필요한 순간에 총기의 작동이 불가할지도 모른다.


설상가상으로 히나의 기관총은 탄창의 총알은 물론이고 총기 그 자체가 일반적인 화기보다도 무겁다. 이런 속도에서는 고중량의 총기를 계속해서 움직이며 방어하는 것 자체만으로 체력을 잡아먹힌다.


"하아, 하아..."


"벌써 지쳤어?"


히나가 이를 악물었다.


다른 무엇보다 선생님의 모습과 똑같은 꼴로 선생님을 모욕한 저 소년에게 제대로 된 유효타를 아직 한 번도 먹이질 못했다는 점이 그녀의 자존심을 제대로 뒤집어 놓았다.


괴로운 상황에서는 그만큼 시간의 흐름이 느리게 느껴진다고 한다.


지금의 히나가 바로 그런 상황이였다. 지정 포인트에 돌입하고 교전을 시작한지 아직 10분도 지나지 않았다. 선생님의 증원이 오기 전까진 조금은 더 있어야한다.


저 소년의 속도는 총기를 다루는 것이 기본 베이스가 되는 키보토스의 학생들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천적에 가깝다.


기본적인 근접전의 소양도 없는 일반적인 학생들이 당해낼 정도로 물렁한 상대도 아닌만큼 증원이 오더라도 전멸할 가능성이 있고 그것 이전에 지금 져서 네루와 같이 인질로 잡힌다면 싸움의 양상이 나빠진다.


최소한 상대에게 피해는 주지 못하더라도 당하는 것은 피해야한다. 내가 이기지 못해도 선생님의 지휘가 있다면 분명 괜찮다.


선생님에게 통신을 걸려고도 해보지만 통신이 방해를 받도록 재밍을 해둔건지 연결이 되질 않는다.


각오를 다져야만 했다.


히나가 거칠어진 숨을 고치며 총의 조준을 맞추고 소년은 차갑게 웃으며 가소롭다는 듯이 달려든다. 


"소용없다고." 


계속해서 날아드는 총알의 비가 소년을 맞추는 일은 없다.


네루를 지키며 싸워야만 하는 지금에 이르러서 히나가 싸움에서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그렇지만 한정된 선택에서 옳은 답을 찾으며 조금이라도 열세인 지금의 상황을 바꿔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 가장 필요한 담력과 경험을 그녀는 가지고 있다.


어느새 소년은 총알을 피해 이제 바로 앞까지 히나와 거리를 좁히는데 성공했다. 공중으로 치켜든 나이프가 섬뜩한 빛을 내며 히나를 덮친다.


"뭣...!!"


소년의 무표정하던 얼굴에 놀란 기색이 감돌았다.


"크, 흑...!!"


히나가 허공을 가르며 다가온 나이프를 한 손으로 세게 붙잡았다. 늘 끼던 장갑을 넘어 나이프의 칼날이 히나의 피부를 배어내며 붉은 피가 흘러 히나의 제복을 검게 물들였다.


손이 불에 데인듯한 고통이 느껴짐에도 히나는 나이프를 놓치지 않는다.


속도는 대단했지만 완력은 밀리는지 소년은 히나가 나이프의 칼날을 붙잡은 완력을 뿌리치진 못했다.


하는 수 없다는 듯이 소년은 나이프를 손에서 놓고 물러나며...웃었다.


어느샌가 나이프를 쥐던 손에는 스위치를 들고 있었다.


"잘 가."


소년이 웃으며 스위치를 누르는 것을 본 히나는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감각을 느끼며 발 밑에서 무언가 째깍거리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이윽고 히나는 마치 모든 것을 잃어버린 표정이 되었다.


이 순간, 처음부터 끝까지. 


히나가 이 근방의 포인트에 도착하고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일이 저 소년의 계획임을 깨달았다. 


먼저 속도를 통해 자신을 위협하며 총격전으로 끌고가지 않는 것으로 나이프에 시선을 모으고 미리 제압한 네루 근처로 위치를 유도해서 방어적으로 맞서게 한다.


그리고 일부러 직접 붙잡을 수 있는 궤도로 나이프를 휘둘러서 목적을 위해 뺏으려던 나이프를 내주고 설치된 지점의 폭탄을 기폭.


폭탄을 순간적으로 눈치채고 피할 타이밍을 주지 않기 위해, 나이프를 붙잡은 자신을 보며 놀란 기색이 감돈 것 또한 연기라는 것을 알았을 때.


히나는 소름이 돋았다. 


실제로 잘 이루어질지 모르는 계획을 선생님은 언제나 성공시키고는 했다.


간단하지만 이렇게 된다면 좋겠다는 발상을 내고도 매번 그 계획이 성공한 것은 선생님이 매 순간마다 학생들에게 적절한 지시를 내려오며 직접 상황을 조성하는 계시와도 같은 지휘 덕분이였다.


지금 자신이 당한 것이 본질적으로는 같은 일이라는 생각에 왠지 몰라도 야속하게 느껴졌다.


그만큼 선생의 전략이 가진 본질은 잔혹하기 짝이 없었다.


'미안해, 선생님.'


폭발과 함께 히나의 의식은 그대로 끊어졌다.


---------------


증원 병력을 요청함과 동시에 곧장 네루와 히나가 향했던 포인트를 향해 헬기로 이동했다.


같이 합승한 카린과 유우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무언가 말을 해주었으면 하는 것이겠지만 그럴 기분이 아니였다.


연결되지 않다가 겨우 연결된 통신에서 날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네루의 목소리가 들렸을 때는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제껏 네루는 날 선생이라고 불러왔지, 선생님이라고 부른 적은 없었다.


알아챈 순간, 곧장 네루가 당했을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생각이 닿자 자연스레 어조를 평소처럼 유지하기 위해 애썼다. 정체모를 상대와의 통신 이후에 바로 증원할 학생을 골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실시간으로 아코에게 보고를 받은 바에 의하면 적의 주요 전력은 거의 괴멸 상태이고 기본적인 임무의 목적은 완수했다고 봐야겠지만 네루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빠르게 알아야했다.


히나가 포인트에 도착했다는 보고 이후, 히나하고도 연락이 되지 않는다. 네루의 경우도 그렇고 무언가 통신을 방해하는 기기가 적에게 있다고 생각하는게 자연스럽다.


사실 다른 무엇보다 본능적인 예감이 들었다.


이제까지의 적, 게마트리아 같은 위험한 녀석들을 만나는 것처럼 이번에도 그에 필적하는 무언가와 조우할 것 같다는 예감이 뿌리채로 박히고 있었다.


"선생님, 곧 포인트에 도착합니다."


유우카였다.


정신을 차린 나는 차차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유우카는 하강할 가능성이 있으니 준비해줘, 카린은 여기서 저격을 준비해주고."


뭐가되었건 간에 곧 이 불쾌한 감각의 정체도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각오를 다진 순간이였다.


퍼엉---!!!


약간 거리를 두고 들려온 폭발음에 헬기의 기체가 약간 흔들렸다. 저 멀리서 폭발로 일었던 불길이 조금 사그라들고 피어오른 흙먼지가 가라앉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비쳤다.


벌판이 되버린 공장지대의 구석에 엎드려 쓰러진 네루와 정신을 잃고 쓰러진 히나의 머리끄덩이를 붙잡아 들고 있는 누군가가 보였다.


늘 어깨에 걸친 제복은 땅에 떨어져 흙먼지를 뒤집어 썼고 높게 솟았던 뿔은 한쪽이 부러져서 바닥을 구르고 있다.


상대도 헬기의 존재를 눈치챈건지 뒤로 돌아 시선을 위로 돌리며 히나의 머리를 놓았고 히나가 힘없이 무릎을 꿇으며 쓰러졌다. 상대의 얼굴을 보자 카린과 유우카도 놀란 기색이였다.


나 또한 지금 이게 무슨 일인지 잘 모르겠다. 꿈이라도 꾸고 있는건가?


서로의 시선이 교차했고 저쪽에서 먼저 입을 열었다. 헬기의 소리 탓에 들리진 않았지만 입모양으로 무슨 소리를 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어서 와, 쓰레기가 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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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2~3화 남음


담부턴 전체적으로 더 자세하게 개요를 짜야겠음 쓸때마다 넣고 싶어지는게 많아지니 자꾸 이상해지네


그리고 지금 봤는데 대문 머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