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fter 1부 ] 아비도스 대책위원회 편
1화 2화 3화 3.5화


[ After 2부 ] 태엽 감는 꽃의 파반느 편

4화 5화 6화 6.5화 7화 8화 8.5화 9화 10화 


[ After 3부 ] 에덴 조약 편

제1장, 「키보토스 정상회담」

11화 12화 13화 14화 14.5화


제2장, 「여름의 끝, 선도부의 이야기」 - 메인 : 소라사키 히나  

*15화 - 소라사키 히나의 이야기



[ !!! ] 메인 스토리, 에덴 조약에 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른한 점심 , 자기 전 오후는 시청금지. (흐름 끊기면 재미없습니다.)

*파트마다 텍스트를 따로 사용하기에, 실수를 알려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일부 캐릭터와 스토리들은 공식 스토리와 연관되지 않음을 알려드립니다.

*ART MUG - 블락나베 / 해당 작가님 일러스트 판매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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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 뜨겁고 뜨거운 무더위 속에서, 드디어 내일!" 

"그 끝을 맞이할 절대적인 이벤트!!" 

"이름하여~~~" 

"「밀레니엄 로트 워터파크」입니다!!!" 



TV 속의 마이크를 들고 있는 한 학생은 

밀레니엄 지역에 있는 워터파크를 광고 중이었다. 



"자! 날마다 오는 게 아니죠?!" 

"각종 워터파크의 모든 기구가 포함되어 있는 곳이라, " 

"인기가 많아도, 너무 많기 때문에~" 

"여러분 여기 홈페이지에 들어가셔서, 당장 예약하셔야 합니다!" 



오늘은 8월 15일. 


여름이 끝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새벽만 되면 바람이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밀레니엄의 워터파크가 이렇게 

예약으로만 받는 이유는... 

각종의 기구들을 즐길 수 있다는 단 한 가지의 이유 때문이다. 


마키 말로는 너무 인기가 많은 탓에 

관리가 힘들기도 하고, 사건사고가 매번 터지는 지라... 

그래서, 여름마다 3일만 운영한다고 들었다. 



"그럼 다들 예약 힘내시고요!!!" 

"오픈 기간은 20일에서 23일까지!" 

"로트 워터파크에서 보는겁니닷!" 



하긴 여름이 끝을 다가간다고 해도, 

워터파크는 온수풀이 있기도 하고... 

아침 뉴스에 따르자면... 

8월 말까지는 31도 이하로 떨어지지도 않는다고 하니... 


뭐, 엄청난 인기가 있을 것 같네. 

학생들의 여름은 워터파크가 짱이 기도 하니까. 


그렇게 사무실 중간에 달려있는 TV광고를 보고 난 후, 

다시 앞을 향해 바라봤다. 



'타닥-', '타닥-' 


"......." 


"해... 킹, 범..." 


".................."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은 계획을 구성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내가 점심시간에 돈까스를 먹을 계획이라던가. 

돈까스를 먹고서 내가 행복함을 추구할 수 있는 1단계에서, 

기분 좋게 업무시간을 보낼 수 있는 2단계까지. 



'탁-', '타닥-' 


"오는 도중... 어깨... 부... 상..." 


"..........................................."



대대로, 인간은 자신이 구성한 계획을 목표치에 도달했을 때 

행복감과 만족감, 그리고 성취감까지 이룰 수 있다고 한다. 


아. 너무 혼자 떠들었... 아? 무슨 말이냐고? 

바꿔 말하자면, 나는 계획을 엄청나게 우선시하는 남자다. 

근데, 이제는 진짜로 포기할 생각이다. 



"... 너 타자 몇 나오냐?" 


"아마... 15였을 걸요?" 


"...?" 



아니, 잠시만... 키리노, 너 경찰이잖아? 

학생이지만... 경찰이잖아? 공무원이잖아? 

아무리 경찰학교의 소속 자라고 해도 말이지... 

이곳이 키보토스라고 해도 넘어갈 수준이 아닌데...?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타자 속도 300도 안 나오는 녀석에게 수사를 맞기는 거냐? 



"하하, 죄송해요 선생님!"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조금만... 이라 해도 벌써 30분이 지났는데?" 


"보고서는 마저 써야 하니까요!" 

"그럼, 5시간 정도 기다려 주시겠어요?" 


"...................................................................." 



아니, 그런 상쾌한 표정으로 

'5시간 기다려요!'라고 말하면 퍽이나 알아듣고 납득하겠다. 


키보토스에서는 아무리 사고뭉치의 학생들이 많다고 해도 

이 녀석은 구제불능이다...! 

나는, 구제불능의 경찰을 만나버린 거구나...! 


내가 더 이상 계획을 세우지 않고, 살게 된 이유는 단 하나. 


이곳 키보토스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일이 항상 벌어진다.













한참 전, 오후 12 : 52 - 트리니티의 구호기사단 진찰실





"어휴! 또 다치고 오셨어요?!" 


"아니, 이번엔... 진짜 불가항력이야." 



보다시피, 이번에는 왼쪽 어깨가 빠진 셈이다. 

그야 당연하다, 헤일로를 가진 이곳의 아이들은 

일반인의 10배를 뛰어넘는 힘을 가졌으니까 말이다. 


시로코와 히나는 양쪽에서, 내 팔을 당긴 덕에 

이렇게, 이런 꼴이 되어버린 것... 


그리고, 의도치 않게 세리나에게 또다시 잔소리라... 


분명, 오늘은 평화로운 하루를 계획했는데 말이지. 



"아야!" 


"참으세요, 찾고 있으니까." 



세리나는 내 어깨를 살포시 만져대고 있었다. 


찾고 있다니, 뭘...? 

어깨에서 빠진 뼛조각을 찾는 건가? 



"여기군요." 

"그럼 넣을게요." 


"...?" 



넣는다니? 진찰실에서 동심을 파괴해버리는 그런 단어가 있었나? 


세리나는 내 팔을 꽉 잡고서, 위로 밀어 넣었다. 



'우드드드드득---' 


"꺄아아아아아아아앍!!!!" 


"후우... 됐다!" 


"됐다가 아니잖아!" 

"... 어라?" 



왼쪽 팔이... 움직인다? 

아, 그렇구나. 세리나는 빠진 어깨를, 힘으로 밀어 넣은 거구나. 

어쩜 이 무시무시한 괴물들이 다 있냐. 



"하아, 이번 건은 물리치료가 가능해서 망정이지, " 

"정말로 조심해야 한다고요? 선생님은."


"응..." 

"그래도, 요즘은 사리는 중이야." 


"진짜로 조심해야 해요..." 

"운동 덕에 몸을 만드시는 중이라 다행이지, " 

"운동도 안 하셨으면 몸이 진작에, 쓰러졌을 몸이라고요?" 


"그 정도로... 허술한 몸이었나?" 


"아뇨, 그런 소리가 아니에요." 



세리나는 눈을 날카롭게 뜨고서 나를 응시했다. 

농담할 상황으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았다. 



"선생님은 여러 차례에 몸이 다쳤기에 때문에, " 

"더 이상의 재생력이, 몸을 따라가지 못해요." 

"만약, 어깨가 빠진 게 아닌, 총에 맞은 거였다면" 

"최소, 한 달은 입원하셨어야 해요." 


"어깨에 맞은 것뿐인데도?!" 


"사람의 몸은 그렇게 강한 게 아니라고요..." 

"하여튼, 조심해주세요." 



세리나의 말대로 조심해야겠다. 

확실히, 이번 저택 사건에서는 신체에 피해가 없었지만... 

이 앞으로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말이야. 


그렇게 세리나에게 다시 쓴소리를 들은 후, 

병원에 나와 벤치에 앉아있는 히나에게 다가갔다. 



"히나." 


"선생님, 어때?" 


"뭐, 잘 움직여." 


"다행이다..." 



나는 히나에게 왼쪽 어깨의 무사함을, 

어깨의 움직임과 동시에 말을 건넸다.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할게." 


"뭐, 그렇다 치고..." 

"그나저나, 시로코는?" 


"아, 노노미라고 했나?" 

"와서 데려가던데?" 



... 노노미 화났구나. 뭐, 그럴 만도 하지. 

아비도스에서부터 여기까지는 상당히 먼지역이니 

학교 등교도 하지 않고, 여기까지 온 걸 보면... 

연락도 없이 학교를 빠지게 된 셈이니까. 


확실히, 시로코가 저 정도로 찾아올 정도면 

정말로 서운하다는 건데, 나중에 같이 놀아줘야겠네.



"선생님, 이제 뭐 할 거야?" 


"응?" 


"... 으음, 그 뭐냐." 

"바쁘지 않으면... 나랑 같이..." 


"미안하지만, 오늘 일이 있어서 말이야." 


"아, 아?!" 

"자, 잠시만...!" 


"응?" 


"그, 그럼 주말!" 

"주말은?!" 


"주말은... 아마, 시간이 빌 텐데." 


"...!" 

"그럼, 시간 비는 날... 나랑 만나지 않을래?" 


"뭐, 만나는 거야 나야 좋지."

"하고 싶은 거라도 있어?" 


"으, 응!" 

"그, 그..." 

"그거 있잖아, 그거!" 


"그거?" 


"그 선생님이랑 나랑 저번에 백화점 가서 했던 거...!" 


"으음... 쇼핑?" 


"아니!!" 

"그, 그거... 그... 데... 데, 데, 데..." 


"...?" 



"데, 데... 데이트... 말이야" 


"아, 데이트구나." 

"좋아, 그럼 히나랑 데이트할...?" 


"... 응..." 


"예?" 


"그러니까... 하자고 데이트..." 


".........." 



다른 아이들과도 데이트는 수도 없이 많이 해봤지만, 

몇몇의 아이들 중, 히나는 피하는 편이다. 


그야 그렇지, 학생이 아닌 정말로 이성으로 보이니까. 

자칫했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잖아? 


안 그래도, 히나는 인기가 많으니까 말이야. 

길거리에서 데이트한다는 걸 들키면... 



"싫어...?" 


"아니, 그게 아니라..." 



히나는 복숭아처럼 달아오른 얼굴로 나에게 다시 한번 물어봤다.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은 저 표정... 

거절하면 나는 쓰레기가 되어버릴 것 같아... 

애초에, 나쁜 것도 아니잖아? 

학생이 선생에게 같이 놀고 싶다는데 거절할 수도 없으니까...!



"... 그래, 하자 데이트." 


"저, 정말?!" 


"응, 뭐... 괜찮겠지." 


"그, 그럼 나중에 전화할게!" 


"그래, 어서 가봐." 

"아코가 걱정하겠다." 



그렇게 히나는 매우 기분 좋다는 표정으로 뛰어갔다. 

아무래도, 이렇게 더운데 말이지... 

저렇게 뛰면 열사병이라도 걸리는 게...- 



"어?" 

"히나?!!" 



뛰어가고 있던 히나가 쓰러진 모습을 보자, 나는 히나에게 달려갔다.












오후 1 : 13 - 트리니티의 구호기사단 진찰실





"... 오버워크."


"오버워크?"



세리나는 쓰러져 의식이 없는 히나를 진찰하고서 말을 건넸다. 



"히나 부장은 평소에도 피로가 누적되어 있으니 말이죠..." 

"평소 쓰지 않는 몇 배의 힘을 분출해냈기에..." 

"이번에는, 피로들이 과도하게 누적돼서 쓰러지신 거예요." 


"... 직접 찾아오길래, 괜찮은 줄 알았는데." 


"뭐, 이럴 줄은 알았어요." 

"그렇게 간호사 분들 압박하시면서, 퇴원시켜 돌라고 하셨으니 쌤통이네요." 


"야, 야..." 

"너무 그러지 마, 세리나." 

"히나가 없으면 선도부가 돌아가질 않으니까..." 


"그래도 그렇지, 이건 정말 심한 거라니까요?" 

"나중에 1달, 2달이 아니라, 평생 쉴 수도 있다고요!" 

"이 어린 나이에!" 


"으음..." 



아니, 그게 아니라 세리나... 

그 원인이... 선생님인, 내 탓이라서 그래... 

히나는 나를 구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몸을 던졌으니까... 


사실은 히나의 몸 상태가 어떤지는 알고 있었다. 

구급 의학부인 세나에게 들은 게 있었으니까.





"아시겠습니까?" 


"으음... 한마디로..." 

"뭐, 레벨 업... 이런 거야?" 


"..............." 

"다시 한번 설명드리죠." 



때는 아침 7시, 출근하기 전에 세나의 전화를 받고서, 

히나의 몸 상태에 대해 듣고 있었다. 



"풍기 위원장은 현재 「신비」를 가지고 있는 존재입니다." 

"키보토스의 「신비」란 도달한 자만이 이룰 수 있는 현상이죠." 


"세이아에게 들었어, 울림의 뭐... 현상?" 


"... 트리니티에선 그렇게 불리고 있군요." 


"...?" 


"저희가 알고 있는 '신비'와 키보토스의 「신비」는" 

"아주 극적으로 다른 존재의 단어들입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풍기 위원장은, 키보토스의 「신비」를 도달했다고 볼 수 있죠."


"도달했다니?" 


"헤일로에 대해서는 알고 계십니까?" 


"응, 당연하지." 

"자신의 성격이나 개성. 즉, 지성에 따라서 생기는 고리잖아?" 


"그 점입니다." 


"응?" 


"지성... 뭐, 긍지라고 해도 좋습니다." 

"자신의 긍지가 심리에 도달했을 때 변하는 현상이죠." 

"그 현상이 일시적으로 나타난다면, 몸에 엄청난 변화 현상을 부르게 됩니다." 


"변화 현상?" 


"힘이 강해진다던가. 아님, 동체시력이 상승한다던가." 

"원래 가지고 있던 신체가 좀 더 성장한다고 보시면 되겠죠." 


"... 이걸 나에게 알려주는 이유는?" 


"풍기 위원장의 상태를 보다시피, 그다지 좋은 현상은 아닙니다." 


"음......" 


"헤일로의 힘을 빌려온다..." 

"아님, 자신의 신체를 제물로 힘을 극대화한다..." 

"정해진 가설은 없다만, 하나 확실한 것은 '표적이 된다'입니다." 


"표적이 된다고?" 


"게마트리아." 

"알고 계시겠죠." 


"...!" 

"검은 양복이구나." 



확실히, 신비를 갈구하는 녀석이니까 말이야. 

이런 현상이 검은 양복의 귀에 들어간다고 하면... 

그건, 그거대로 정말 큰일이네... 



"뭐, 그런 의미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말 입니다만..." 

"풍기 위원장을 곁에서 지켜주셔야 합니다." 


"엥? 내가?" 


"제가 임시로 선도부를 보고 있긴 하지만, " 

"여기 다른 부원을 보내기도 좀 애매해서 말이죠." 


"그 정도야, 뭐... 할 수 있겠지만..." 

"하나 질문해도 될까?" 


"네, 대답할 수 있는 거라면." 


"세이아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걸..." 

"세나, 네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 

"단순한, 논문을 읽었을 뿐입니다."





... 즉, 지금 히나의 몸 상태는... 

최악이며 노려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검은 양복에게 노려질 수도 있다고 하니까 말이지... 

거기다가 세리나의 말을 들어보면, 

히나는 지금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한계에 도달한 상태. 


말 그대로, 누군가 보좌해줄 사람이 필요한 거다, 



"......" 

"그럼 이렇게 하자, 세리나." 


"네?" 


"히나를 우리 집으로 데려갈게." 


"...?" 

"무슨 짓을 하시려고요?" 


"엥? 무슨 짓이라니?" 

"난 선생으로서 지켜야겠다고 생각해서 말이지." 


"...?" 

"그렇게 따지면, 이곳 구호 기사단 병원도 안전한데 말이죠." 

"설마, 이곳이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에이~ 그럴 리가, 그렇게 도움을 받았는데." 

"... 이번에는 조금 달라서 그래." 

"직접, 보살펴주고 싶고." 


"...... 뭐, 선생님이 곁에 계시는 거라면..." 

"심리적으로도 치료가 되겠죠." 

"봐주는 거야, 가까우니까 직접 가면 되고요." 


"응, 그럼 데리고 갈게." 



뭐 보다시피, 히나를 우리 집에서 돌봐주기로 결정되었다. 


히나를 집으로 대려가, 

편안한 잠을 이룰 수 있도록 눕히고 난 뒤... 나는...










다시 현재, 오후 4 : 47 - 발키리 경찰학원, 수사실





'타닥-', '타닥-'


"그... 러... 므... 로..."


"..................................................................."


"규... 정... 에... 따... 르는..."


"아! 진짜!!!!!"


"에엣?!"


"너무한 거 아니야?! 너무한 거 아니냐고?!" 


"뭐, 뭐가 말입니깟!?" 


"들어봐, 키리노!" 

"아침부터 두 학생이 팔을 당겨, 어깨가 빠지고!" 

"한 학생이 쓰러져서 우리 집으로 데려가고!" 

"거기다가... 여기서까지 이러면..." 


"하, 하핫!?" 

"죄송합니다, 선생님!" 

"4시간만 주신다면 빨리 적어볼게요!" 


"인생 그지 같다... 진짜로..." 



아까의 말을 이어서 말하자면, 

결국,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측을 못한다는 것... 


그래도 여기에 온 지, 몇 달이 흘렀으니... 

뭐, 조금은 적응된 것 같다. 


그건 그렇고 진짜로 4시간을 기다려야 하나? 


어제 하루 있었던 일들이 정말로 거짓말 같다. 

정말,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오늘도 새로운 일들에 휘말리고 있다. 



"오, 뭐야 뭐야." 

"선생님이잖아?" 


"응?" 

"아, 후부키구나." 


"와아~ 진짜 오랜만이네." 

"2달 만인가... 흐음~" 


"아, 아야..." 

"아퍼..." 



내 뒤에서 나타난 녀석은, 

키리노와 같은 부서인 네무가키 후부키. 


저번에 만난 적이 있는 사인데... 

어째서인지, 내 볼을 툭툭 건드려대고 있었다. 



"앗, 후부키." 

"아는 사이인가요?" 


"응, 당연히 알지~" 

"저번에 한정판 도넛 사러 갔다가, 아쉽게 놓칠뻔했는데..." 

"선생님이 하나 주더라니까?!" 

"그때, 완전 반해버렸잖아~" 


"... 아니..." 

"내 볼을, 왜 자꾸 찔러대는 거야...?" 


"그야~" 

"내 모모톡, 하나도 빠짐없이 안 읽었잖아~" 


"... 아?" 

"그건 바빠서..." 


"진짜로오?" 


"... 진짜로." 



후부키가 말하는 이야기는, 짧은 만남이었다. 

아이리가 부탁한 한정판 도넛 디저트를 사러 갔다가 

세상을 잃은 표정을 한채, 나를 응시하고 있었으니... 

후부키에게, 내 몫을 양보했다. 뭐, 그런 간단한 이야기다.



"흐음~"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선생님이 수사실에는 웬일이야?" 


"앗, 그게 말이죠..." 

"어제 일어난 SNS 해킹 사건의 범인이, 선생님이라고 자백하셔서..." 


"에엥?" 

"키리노." 


"넵?" 



후부키는 책상에 손바닥을 올리고서 

반대 편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렇게 생긴 사람이, 그런 짓을 할 것 같아?!" 


"... 내가 어떻게 생겼길래, 손가락질까지 하는 거야?" 


"앗, 실례~" 

"하여튼!" 

"이렇게 못 생기고, 가난해 보이고!" 

"돈 한 푼 없어 보이고! 말라비틀어질 듯하게, 생겨먹은 선생님이 그런 짓을 할 것 같아?!" 


"과연 후부키!!" 

"확실히 맞는 말씀입니다." 

"샬레의 선생님에다가 그렇게까지 생겼으면..." 


"....................................." 



아니, 아니... 납득하지 말라고!!! 

그렇게 생긴 게 죄냐? 돈이 없어 보이면 

오히려 범죄를 하는 게, 형식상 맞지 않냐고?! 


아니, 잠깐 나는 애초에 해킹 따위 하지 않았는데... 

내 얼굴마저 양파마냥 까이고 있는 상황에 

나 자신을 이렇게까지 처절하게 변호나 해야 하냐? 


... 그만두자 거짓말. 

마키를 위한 거짓말을 떠나서, 사실대로만 말하는 거야. 

나도 사람인지라, 이런 말들이 아프기도 하니까...! 



"하아... 사실대로 말할게." 


"네?" 


"역시, 범인이 아닌 거지!?" 

"그렇게 돈이 없어 보이게 생겨선...-" 


"아 거참!!!"





이 녀석들에게, 어제 있었던 일들과 마키가 해킹한 이유까지, 사실대로 말하게 되었다. 


후부키와 키리노는 '이번 만' 이라며, 마키를 풀어주게 되었다. 


뭐, 처음부터 솔직하게 말할 걸 그랬나... 

최악의 선생님이 돼버릴 뻔했는걸... 



"이야~ 선생님~" 

"고마워~ 이렇게 도움을 받으... 즈... 헤?" 

"아으으으----!!!" 



마키의 미소의 가득 찬 입으로 나를 부르자, 

나는 마키의 두 볼을 잡고서 당겼다. 



"우으...!" 


"......" 


"아하하핫!" 

"선생님은 거칠구나?" 


"... 하아." 

"다시는 그러지 마." 


"아하핫~" 

"너무 화가 나서 그랬어~" 

"미안해, 선생님." 



마키도 자기 자신이, 잘못을 한 것 정도는 알고 있는 듯했다. 

나도 학생들을 끔찍이 아끼는 것처럼, 

다른 아이들도 나를 끔찍이 아끼는 것을 

이번 일로 정말... 뼈저리게 알았다. 


한 선생님의 소문을 변호하기 위해 해킹에, 현피에... 


무서워... 무섭다고...! 

다음은 전쟁이냐...? 


이 방법들을 타피 하기 위해선... 조금은 사려야겠는걸. 



"아, 참." 

"선생님, 부탁 하나가 있는데 말이지." 


"부탁?" 


"요, 며칠 뒤에 열리는 워터파크 말이야." 

"선생님도 조금 도와줄 수 있을까?" 

"물론, 일당은 지급해줄게!" 



아까 수사실에서 봤던, 그 워터파크 말인가... 

음, 마키가 부탁하는걸 보아하니, 관리할 사람이 모자라나 보내. 



"으음... 밀레니엄만의 운영체제라면..." 

"내가 끼는 건, 조금 이상하지 않나?" 


"괜찮아~ 괜찮아~" 

"치히로 선배도 허락해줄 거고~" 


"... 음." 

"미안해, 마키."

"집에 돌봐야하는 사람이 있어서 말이지."


"아하... 아쉽네."

"자, 잠깐... 돌봐야한다고!?"

"서, 선생님 언제 애 낳은거야!?"


"뭐!? 뭐라는거야!"

"내가 미쳤냐!?"


"그럼 뭔데!?"

"도, 돌본다는건 역시 갓난아기밖에 없잖아!"



봉변당할 위기에서 구해줬더니, 이 녀석은 뭐라는거야!?

애를 낳다니 장난하냐!? 

너희들 처럼 피도안마른 애들한테는 관심 없거든!?



"게헨나의 한 학생이야!"

"내가 돌봐줘야하는 상황이라서 그런거고!"

"그러니까, 그렇게 큰 소리로 말하지마!!"


"앗..."



주위에 있는 발키리 경찰학교의 학생들은

마키와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아하~ 이거 실수~"

"후... 그래도 다행이구나."

"히비가 들으면 기절할 소문이였어."


"어이, 아니라고 했잖아."


"아핫!"

"어쨌든 못한다는거지?"


"응, 뭐 일이 여러가지로 겹쳐서 말이야."

"그래도, 꼭 필요하다면 불러줘."

"미안하게됐어."


"아냐, 아냐!"

"우리끼리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기도 하고!"

"오케이 그럼, 다음에 보자!"


"그래, 조심히 가."



솔직히, 도와줘도 별 문제는 없지만...

역시, 히나가 걱정되서 그런걸까.

옆에서 보고있어야 한다는 느낌이 계속해서 든단 말이지...











오후 6 : 13 - 집





"으음..."

"여긴..."



히나는 눈을 뜬 채로,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 이 허름함과, 낡음... 

어디서 많이 본 천장인데... 


히나는 고개를 돌려, 주의를 확인했다. 


-- 게다가 맛있는 냄새... 

찌게 냄새인가...? 엄청 그리운 음식 냄새야. 



"음... 좀, 짠가...?" 


"선생님...?" 


"오, 일어났구나." 



나는 주방에서 저녁밥을 만들고 있었다. 

아무래도 소리 때문인지 히나가 깬 모양이다. 



"미안, 너무 시끄러웠나?" 


"아니야. 오히려 냄새가 너무 좋아서 깨버렸어." 


"일어날 수 있겠어?" 


"응..." 

"그나저나, 나는 왜 선생님의 집에..." 



나는 이불에서 누워있던 히나의 몸을 일으키고서, 

차가운 물 한잔을 가져다주었다. 

뭐, 잠 깨는 데에는 물 한잔만으로도 충분하니까. 


그와 동시에, 히나가 쓰러지고서 우리 집에 온 이유를 설명하였다. 



"음... 그러니까." 

"한마디로 선생님이... 돌봐주겠다고?" 


"응." 

"히나는 직접 간병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거든." 


"... 왜?" 


"어... 그러니까..." 



세나와 나눴던 대화를 히나에게는 도저히 전해줄 수가 없었다. 

아픈 몸을 이끌고서 대비한다며, 훈련할게 분명하니까 말이지. 

히나의 성격상, 무조건 그런 행동을 취할게 뻔하다. 


적당히 둘러대기로 마음먹고, 히나에게 다시금 말을 건넸다.



"보답이야." 


"보답?" 


"나를 끝까지 지켜줬으니까." 


"... 그래도, 그건 제멋대로 한 행동인데..." 

"선생님에게 이렇게 폐를 끼쳐도..." 


"이 정도는 하게 해 줘." 

"선생님의 체면이랄까." 

"뭔가 미안하기만 하잖아."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됐고, 밥이나 먹자." 

"된장찌개랑 여러 가지 해봤는데, 입에 맞을지 모르겠네." 


"......" 



밥그릇의 하얀 밥알들과, 넓은 접시에는 구운 고등어. 

콩나물이라던가, 그런 잡다한 반찬과 함께 식탁에 대령했다. 


냄비에 있는 된장찌개를 어느 정도 담고서 히나에게 가져다주었다. 



"자, 잘 먹겠습니다." 


"응." 



히나는 먼저 숟가락으로 찌개를 떠서 입으로 향했다. 



"어때?" 


"짜..." 


"익..." 

"밥이랑 같이 먹어야지." 


"... 짜..." 

"... 그런데 맛있어." 


"... 응?" 


"뭐랄까, 마음이 따뜻해지네." 


"......" 


"이렇게 같이 먹는 건, 오랜만이라 그런지..." 

"따뜻해." 


"히나는 항상 혼자 먹어?" 


"... 응." 

"바쁘니까 말이지." 


"... 아코랑은?" 


"먼저 퇴근해버리니까..." 


"... 아하." 

"조금은 외롭겠네." 


"......"



따뜻하다라, 같이 먹을 때의 그 느낌 나도 잘 알지. 

히나는 보기보다 소심하고 서툰 녀석이지만... 

조금은... 많이 외로웠구나. 


바쁘다고, 밥을 늦게 먹는다는 이유로, 

같이 먹을 사람이 없다는... 그런 이유가 아닐게 분명하다. 

열심히 일을 끝내고서... 그 뒤를 돌아봤지만... 

아무도 없고, 쓸쓸하고, 차가운 그런 느낌일 테지. 


히나는, 과거 나와 조금 닮았다. 

과거의 나도, 그런 따뜻함을 느끼고 싶어 할 때가 많았으니까. 



"... 꼭 집이 아니더라도, 같이 먹자." 


"... 응?" 


"나중에 일 끝나고, 같이 먹자고." 


"어? 그런 의미로 말한 게, 아닌데..." 


"알아." 

"밥 친구나 하자, 이거지." 


"...... 엉뚱해." 


"기껏 용기 내서 말했는데..." 

"싫음 말고..." 


"... 싫은 건, 아니야." 

"... 그... 좋아, 나도." 


"솔직하지 못하네." 


"......" 





나와 함께 저녁밥을 먹은 히나는 

베란다로 나온 뒤, 아코와 잠시 통화하고 있었다. 



"오늘 별일 없었지, 아코?" 


'다, 당연하죠!' 

'의학부장도 도와주고 있어서, 걱정 없이 해결하고 있습니다!' 


"... 그래?"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도록 해." 


'네, 부장.' 

'푹, 쉬도록 하시죠.' 


'뚝---.' 


"하아..." 



히나는 통화를 끊고서,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히나는 자신이 빠진 게헨나의 선도부가 걱정되었나 보다. 


아코가 아무리 일을 잘한다고 해도, 히나가 일 처리가 보통이 아니니깐... 


분명히, 지금쯤의 게헨나는 혼돈의 상태에 빠진 게 틀림없겠지. 

히나만큼의 일처리가 빠른 학생은 달리 없으니까. 


걱정의 한숨을 힘껏 뱉어대는 히나에게 나는 물었다. 



"걱정돼?" 


"... 뭐, 아코는... 잘...-" 

"... 걱정되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아코랑 세나가 맡고 있다고 해도, " 

"내가 하는 업무량을 소화할 순 없을게 분명하고...-" 

"역시, 내일 가봐야겠어." 


"엥?" 


"... 맡겨선 안돼." 

"세나도 업무처리는 서툴러서, 제대로 못한단 말이야." 


"... 음." 



히나는 정말로 걱정되었는지, 유심히 고민을 하는 듯했다. 


선생님인 입장에서는 

히나가 안정에 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일 좋은 선택이다. 


세나와 한 약속도 문제지만... 

세리나가 말한 지금, 히나의 몸 상태는 나보다 심각할 정도니까. 


자칫하면, 평생 쉴 수 있다는 말도 있었는데... 

만약, 히나가 무리해서 내일 선도부에 들렸다가... 

쓰러진다면...? 영원히 눕는다면...? 

내가 말리지 않아서 그렇게 된 거라면...- 


...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 하아." 

"그럼 내가 대신 갈게, 히나." 


"음? 선생님이?" 


"응." 


"그렇지만, 선생님..." 

"이건 엄연히 내 문제기도 한...-" 


"히나의 문제니까, 내 문제라고 치자." 

"그럼 된 거지?" 


"뭐?" 

"무슨 그런 억지가...-" 


"일단은." 

"너, 지금 일어설 수 있어?" 


"... 그건..." 



그야, 못 일어날게 당연하지... 

그런 말도 안 되는 힘을 끌어내고서, 

몸이 최악인 상황이라고 말을 해줘도... 

입원 1일 차만에 간호학생들을 협박해서 퇴원한 건 히나니까... 


오버워크... 아까 인터넷에서 조사해본 결과,

몸이 고달플 정도로 지나치게 활동한 탓에 다가온 피로. 


즉, 저택의 싸움에서 생긴 상처들이 아물었다고 해도, 

몸에 남아있는 피로라던가, 활동력이라던가... 

아직까진 한계인 지점에서 움직인 탓에 찾아온 거겠지. 


그런 이 녀석을, 이미 쌓여버린 업무 지옥으로 보냈다가는... 

내가 세리나에게 혼날지도...- 

아니, 히나가 정말로 위험해질지도 모른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대신 가면 된다. 

업무처리 정도야, 나도 매일 하는 거니까. 

가끔은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되어야지. 



"......" 


"알겠지, 히나?" 

"내가 대신 봐줄게." 

"샬레도 린이 조금은, 쉬어두라고 연락이 와서 말이야." 


"...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그리고, 내일은 맛있는 거 해줄 테니까." 

"걱정 말고." 


"... 음." 

"뭔가 집에서 기다리는 애완견 같아." 


"동물 취급은, 뭔가 좀 그런데..." 

"하여튼, 얼른 자야겠다." 

"내일 게헨나에 연락도 하려면 일찍 자야지." 


"... 그나저나, 선생님." 


"응?" 


"어디서 잘 거야?"


"...?" 

"그야, 이불이..." 

"아." 


"내가 선생님의 이불을 차지해버린 것 같은데..." 


"아하... 그랬었지." 

"바닥에서 대충 자야겠네." 


"입 돌아갈 텐데?" 


"괜찮아, 바닥에서 자는 거 익숙하기도 하고." 


"음..." 

"같이 자자, 선생님." 


"그럴까..." 

"가 아니라." 

"그 발언은 좀 위험한 거 아니야!?" 


"음...?" 

"그러니까, 바닥에서 자는 건 좋지 않으니까..." 

"같은 이불에서 함께 자자고..." 



아니, 아니...! 히나...!! 밤이라고!? 한 지붕 아래라고!? 

이런 한밤 중에, 남성을 매혹하는 그런 단어는 그만둬...!! 


소라사키 히나 씨가 이런 말을 할리가 없는데...? 

분명, 내 집에서 간호해준다며, 

따로 여분의 이불을 준비하지 않은 내 잘못도 있지만...! 



"... 싫은... 거야?" 


"......" 



히나는 '날 내버려 둘 거야...?' 라며, 바라보는 길 고양이처럼 

어서 빨리, 승낙해 돌라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흐름상이라면 수락하는 게 맞으려나...? 

여기서 거절하면 울어버릴 것 같은 표정에다가 

거기다 쓰레기로 낙인찍힐 듯한 이 느낌... 


그렇지만... 거절할 수가 없어!! 

딱 잘라서, '싫어.'라고 말하기엔 체면을 깎아버리는 것 같고, 

'거절할게.'라고 말하기에는 상처를 주는 것 같고...! 

그렇다면... 역시, 승낙하는 수밖에...-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정신 차려라, 선생님인 나 자신! 

아무리 히나가 초 특급 팔방미인이라고 해도...! 

그래도, 이건 1차적으로 선생과 학생...! 

달콤한 말로 자극해도, 하면 안 되는 짓이 정해져 있는 거다! 


그래, 여기서는 '어, 그건 아닌 것 같아.'라고 딱 자르자! 

좋아, 샬레의 선생치고는 정말 최고의 답변이다. 



"어, 그건 아닌...-" 


"그렇구나... 싫은 거구나..." 

"선생님은... 나 같은 여자가..." 


"어?" 

"그런 게, 아닌...-" 


"역시, 선생님은 내가 싫구나..." 

"흐윽...-" 


"알겠어! 알겠다고!" 

"울지 마!!" 

"같이 자자!? 응!?" 


"응, 좋아." 

"같이 자자."



권유를 수락하자, 울고 있는 히나는 마치 거짓말처럼, 

한순간에 미소 짓는 표정으로 바꾸고서 나에게 말했다. 



"... 야." 


"응?" 


"너, 조금... 바뀌었다?" 


"기분 탓 일거야." 



어쭈, 간만에 나왔구만. 

키보토스의 아이들이라면 가지고 있는 이 뻔뻔함...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어찌 보면 가불기나 다름이 없다. 


자신보다 위인 선생님을, 

키 높이에 억지로 맞춰서 볼 수 있게 해주는 방법이랄까... 


요컨대 말하 지면 딱 하나 집어서 말할 수 있다. 

'거절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 



"얼른 자자?" 

"벌써 10시야." 


"... 응..." 



결국, 같은 이불에서 히나와 함께 누워버렸다. 

방안의 불은 꺼지고, 달빛만이 방안을 비추고 있었다. 


역시, 조금은 긴장된다. 

아무리 학생이라 해도, 한편적으로는 여자기도 하니까... 

같은 이불에서 잔다는 건, 이렇게 떨리는 거구나. 


20분쯤 흐르고서, 히나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선생님, 자?" 


"아니." 


"... 긴장돼?" 


"... 응." 


"사실, 나도." 


"같이 자자한 건, 너잖아..." 


"조금은 떨려." 

"남자랑 같이 자는 건, 처음이라서..." 



저기, 소라사키 히나 씨...? 

당신은 순수하신 거죠? 그렇죠? 

자극적인 단어들로, 저를 실험하고 계신 게 분명한 거죠? 


같은 이불에 누운 상태로, 그런 단어들을 뱉어대면 

선생님인, 제 입장도 난처해지지 않을까요...? 


이러다간... 잠도 못 자고서 새벽을 넘겨버릴게 분명하다. 

조금 화제를 돌려, 긴장을 풀어버리는 게 오히려 나을 수도...



"그 뭐냐..." 

"히나는 어쩌다가 선도부장이 된 거야?" 


"... 음?" 

"어... 그러게, 어쩌다가..." 


"... 뭐야, 그 자신도 모른다는 말투는." 


"너무 오래돼서 말이지..." 

"확실한 건, 존경심에 시작했어." 


"존경심?" 


"... 음, 선생님에게는 별로 좋은 이야기는 아닌데." 

"전 선도부장... 리츠코 마오를 존경했었어." 


"... 아하." 



오랜만에 들어보는 녀석이네. 

현재, 키보토스의 감옥에서 구속되어 있는 위험인물이며, 

카요코를 포함한 많은 녀석들에게 몹쓸 짓을 한 녀석... 


뭐, 히나가 그런 녀석을 존경했다는 건... 

그만큼, 이유가 있어서겠지. 


그렇지만, 히나도 몰랐을 거야. 

카요코의 친구마저도 그런 짓을 했는지도. 



"뭐, 어때" 

"이어서 말해줘." 


"... 응." 



- 1학년 때의 나는... 엄청나게 약했었어. 

어떤 임무에서도 민폐였고... 

나랑 같은 조원들도, 그걸 인지하고서 힘을 행사했었지. 



"그거 이리 내놔!" 


"... 이걸 가져가면, 나는 뭘 먹으라고?!" 


"그럼, 흙이라도 퍼먹어!" 


'퍽-' 


"읏!?" 



임무마다 보급해주는 전투식량을 매번 뺏기거나, 

민폐라는 이유만으로, 남의 배낭을 들어주거나... 

한마디로 약자며, 셔틀이었지. 


키보토스의 3대 학원 중의 하나인, 게헨나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욱더 치밀하고, 약육강식의 세계였어. 

그곳은 공부만이 아닌, 파견되는 임무마저도 성적이었으니까. 


그렇지만, 그렇게 약자 취급을 받아도... 

내가 여기서 포기해버린다면... 내가 진 거라고 생각했어. 

나 자신이 약하다는 이유로... 패배를 인정하고... 

고작, 패배했다는 이유만으로 인생을 만족하고 싶진 않았으니까. 


작은 것들마저 뺏겨도... 어금니를 꽉 깨물고서 

악착같이 버텨내며, 훈련하며, 이겨내며... 그런 생활을 보내왔어. 


그러던 어느 날, 선도부가 지시한 임무 수행 후... 

조원 중, 작전 이탈을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서 

선도부의 부실로 같은 작전의 조원, 모두가 집합했어. 


그리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봤었지. 

전 풍기 위원장, 리츠코 마오를...



"하아..." 

"다른 조는 작전 중에, 레스토랑을 가고..." 

"또 다른 조는 보급 중에, 캠프를 폭발시키고..." 

"거기다가... 더 심각한 건..." 

"작전... 이탈... 푸핫..." 

"푸하하하하하하하!!" 


"죄, 죄송합니다!" 


"대단해요!" 

"어쩜, 이런 상상을 할 수 있겠어요!?" 

"작전 이탈 후, 여기에 불려지다니..." 

"대체 무슨 생각으로 돌아왔을까요?" 


"죄송합니다아아아!!!"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녀는...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죄송... 하아?" 

"죄송하다고요?" 

"... 사과로 끝날 정도인가요?" 


"요, 용서만 해주신 다면..." 

"뭐, 뭐든 하겠습니다!" 


"뭐든지?" 


"ㄴ, 네! 뭐든...-" 


"그럼, 한번 죽도록 하세요." 


"네?" 

"그게 무...- 커헉!?" 



마오는 사과를 뱉어대던 그녀의 복부에 돌려차기를 꽂아 넣었다. 



"허억... 허어억...-" 


"그 냄새나는 주둥이..." 

"다물도록 하세요." 


"... 흐읍..." 



마오... 그녀는 당장이라도 죽여버릴 것 같은 살기를 내뿜은 채로 서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가서 한마디를 건넸다. 



"억울해요?" 


"흐으...- 아, 아닙니다!" 


"닥치라고 했죠." 


"흐읍...-" 


"그렇게 억울하면, 강해지세요." 

"저를 밟아버릴 정도로." 

"게헨나는 그런 곳이니까요."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나는... 

힘든 시절을 견뎌내며 강함을 추구하고 있던 나는... 

전- 풍기 위원장의 한마디에 이해해버렸어. 


'억울하면, 강해지세요.'


내가 이곳, 게헨나로 들어온 이상... 

나갈 수도, 벗어날 수도 없어. 

강함을 갈구하며, 강함만 있다면 약자를 밟을 수 있는 곳. 


강하다는 이유로... 모든 걸 누릴 수 있고. 

강하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내려다볼 수 있어. 


저게 만약... 나, 소라사키 히나가... 저 위치였다면...? 

저런 식으로 짓 밟히며, 살아갈 바에는... 

직접 밟아주겠다며, 다짐했었어.



"그게... 선도부로 들어간 계기였어." 

"그리고, 마오 부장이 사고 쳐준 덕에, 기록소로 이동되면서" 

"공적이 제일 많은 내가, 부장을 맡은 거고." 


"흐음..." 

"보기보다 게헨나는 엄청나게 독한 곳이었구나." 


"... 지금은 확실히 나아진 거야." 

"선도부장이 되고서, 하나만은 착실히 수행했지." 

"강자와 약자가 서로 공존할 수 있는 곳을 만들었어." 

"아무리 혼자 강하다고 해도..." 

"서로 합치지 않으면 이기지 못할 것도 있거든." 


"오... 뭔가, 히나다운 말이네." 


"뭐, 그런 이야기야." 

"사실은... 엄청나게 귀찮지만..." 

"사고 치는 숫자가 많아서 그렇지, " 

"밟고서 올라가는, 그런 문화는 사라졌으니까." 



확실히, 히나가 말해준 과거 그대로의 게헨나였다면... 

하루나가 음식점을 폭발시키고 다니는 것처럼,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지도 않았을 테지. 


좋은 학교...로 만들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구나. 



"선생님은... 어쩌다가 선생님을 한 거야?" 


"응? 나?" 

"나는... 어쩌다 보니까..." 


"... 붕 떠있는 대답이네." 


"하하..." 

"나도 그다지 좋은 이야기는 아니라서." 


"저번에도 그렇고... 말 안 해줄 거야?" 


"... 음." 


"치, 됐어." 

"말하기 싫어하는 걸, 억지로 끄집어내기도 좀 그렇고..." 


"... 삐졌어?" 


"안 삐졌어요." 


"삐졌구나." 


"... 안 삐졌다고." 



그렇게 얼굴을 마주 보다가 등을 돌리면, '나 삐졌어요.' 

라고 광고하는 것처럼만 보이는데. 누가 모를 것 같냐? 


아무튼 히나도... 성격이 많이 바뀌었구나. 

예전 같으면 이런 상황에서 신경조차 쓰지 않는데... 


소심하고 의지하지 않는 모습만 연상되었었는데,

지금은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 같단 말이야. 

살짝만 거절하면 어떻게든 어리광 부리고, 

조금이라도 가까이 있고 싶어 하고... 


뭐, 바다에서 서로 그런 짓을 했었는데... 

마음을 열어주는 것도 당연한 건가. 


... 나도 조금은 열어둘까. 

히나랑 단 둘이 있는 기회가 적기도 하고. 



"나는 히나에게 무심하게 대했었나?"


"몰라요." 


"마음의 문이라면 많이 열었다고 생각하는데..." 


"... 몰라." 


"흐음." 

"진짜 간단해." 

"간단해서 어이없을 정도인데..." 


"... 뭔데?" 


"공부를 못해서 되어버렸어." 



히나는 등을 돌려 다시 나를 마주 보기 시작했다. 



"......" 


"너무 그렇게 보지 마." 

"정말 사실이니까." 


"... 진짜 어이없어." 


"그치?" 


"그래도... 선생님 다운 이야기네." 


"... 나 다운 게 뭔데?" 


"바보 같은 거?" 


"야." 


"후훗." 

"그래도 뭐, 선생님은 철이 없지만..." 

"좋은 점은 분명, 많으니까." 


"어이, 내가 선생님이거든?" 

"학생이 선생에게 철이 없다니." 


"... 그런 식으로만 마음을 열어줘." 

"정이 많으면서도, 감추는 게 없는 듯이...-" 


"... 응?" 


"내일 게헨나에서도, 꼭 그런 식으로 학생들을 대해줘." 

"그렇다면 분명히 선생님도..." 


"...?" 


"............" 

"너무 늦었다, 자자." 


"그렇게 말하다가 말아버리는 거..." 

"진짜 화나는 거 알지?" 


"화났어?" 

"후훗." 


"... 야!?" 



히나는 바로 옆에 누워있는 나에게 다가와 

자신의 품속으로 내 얼굴을 집어넣었다. 



"이, 이거... 위험한데..." 


"괜찮아." 

"우리 둘 뿐이잖아." 


"아, 아니... 그게..." 


"... 이대로 자자? 선생님." 


"... 네..." 



결국, 심장이 쿵쾅거리는 탓에 한숨도 못 자버렸다.











==============


▣ 2.





다음날, 오전 6 : 13 - 밀레니엄의 공원





"자, 하나 더!" 


"으읏...!" 

"여얼......----- 세엣!!!" 

"아앗!?" 



철봉에서 턱걸이를 하고 있던 나는 

결국 팔이 버티지 못해, 밑에 깔려있는 모래에 널브러졌다. 



"... 하아... 하아..." 

"그, 그래도... 하나 늘었네." 


"굉장하네요, 한 달 만에 13개라니." 

"처음에는 1개도 못할 정도로 심했는데..." 


"뭐, 유우카가 도와준 덕이지." 

"- 아, 땡큐." 



유우카는 나에게 이온음료가 담긴 물통을 주며, 

계속 이어서 말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좋은 스승이 있어도, "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마음이 강해야죠." 


"... 자신이 좋은 스승인걸 파악하고 있구나." 


"물론이죠." 

"그야, 저도 운동에 있어서는 실력 파니까요." 


"그건 알고 있다만..." 

"저기, 유우카." 


"네?" 


"... 내가 만약 너처럼 운동을 배운다고 치면..." 

"헤일로를 가진 너희를 이길 수도 있을까?" 

"막, 복싱이라던가 유도라던가." 


"... 음." 

"불가능하죠." 


"... 역시나 그런 건 불가능...-" 


"그렇지만, 호신술 쪽에서는 가능할지도...?" 


"... 호신술?" 


"분명, 힘으로는 이기지 못하지만..." 

"기본적으로 사람과는 똑같은 신체 구조니까요." 

"예를 들자면, 음..." 

"한번 일어나 보세요." 


"아, 응." 



나는 철봉에 기대어있던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제 멱살을 한번 잡아보세요." 


"며, 멱살을!?" 


"괜찮아요, 예시니까." 


"이, 이렇게?" 

"- 우왓!?" 



유우카가 말한 대로, 아주 살짝 힘을 가해 멱살을 잡았다. 

그때- 바로, 유우카는 내가 멱살을 쥐고 있던 팔을 잡고서 주저앉았다. 


유우카가 앉아버린 탓에, 잡고 있던 팔이 끌림으로 인해, 

내 몸도 함께 유우카 쪽으로 당겨지고 있었다. 


그 틈에서- 유우카는 내 어깨의 옷깃을 잡고, 

왼발로 가슴을 밀어낸 뒤, 나를 날려버렸다. 


유우카가 있는 거리로부터, 2m 정도... 

내 몸은 날아가 바닥에 내팽개쳤다. 


멀리 있던 유우카는 천천히 나에게 걸어오면서 말했다. 



"... 아파..." 


"뭐, 이런 호신술이에요." 

"자신의 힘을 이용한 게 아닌, 무게와 반사성을 이용한 거죠." 


"뭔가, 유우카다운 계산적인 기술이네..." 

"이런 기술을 배운다고 해도, 효과가 있을까?" 


"... 가능성이 없다고 봐야겠죠." 

"다른 신체조건... 즉, 동체시력이라던지." 

"반응속도라던지, 그런 게 완전히 틀려먹으니까요." 


"시도도 못한다는 건가..." 



역시, 격투기 쪽은 포기해야 할까나. 

그렇다면, 총기 쪽을 배워보는 게 좋지 않으려나...? 


나는 조금이라도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었다. 

물론, 선생이라는 힘도 없는 존재가 이제 와서 뭘 배우겠냐고 하지만... 


그렇다고 할지언정, 내 몸 하나는 지켜야 한다. 

저택에선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에 그런 꼴이 되어버린 거니까. 

그리고... 언젠가는 학생들을 몸을 던져 지켜야 할 때가 온다. 

그거를 위해서라도... 최소한, 노력 정도는 해야지.


유우카도 어느 정도 내 생각을 눈치를 챘는지, 나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노력하는 건, 좋아요." 

"그렇지만, 안될 건 안되는 거예요." 


"... 아직 모르잖아." 

"뭐라도 해봐야지." 


"...... 하아." 



그 일이 벌어진 지 아직, 3일이 흐른 시점이니까... 

유우카가 대충 내가 무슨 생각하는지 예측이 되는 거겠지. 

터무니없이, 물어본 거기도 하니까... 



"가끔 보면, 선생님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네요." 


"... 어?" 

"갑자기?" 


"그야, 매번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이지만..." 

"이번 건, 불가항력이잖아요." 

"학생들도, 학생들만의 대처법이 있듯이." 

"분명, 선생님도 선생님만의 방법이 있을 거예요." 


"......" 


"한마디로, 선생님은 지휘만 해주셔도 충분하다는 거예요." 

"차라리, 다른 방법을 찾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 정도는 알고 있어." 

"그래도... 지키고 싶은걸." 


"... 그렇게나 학생들이 좋아요?" 


"... 사랑하는데?" 


"... 읏..." 

"뭔가 징그럽네요." 


"그래도 뭐랄까." 

"매번 노력해주는 녀석들이 가득한데..." 

"나라도 발악하지 않으면, 뭔가 치사하잖아." 


"... 선생님답네요." 

"철이 없는 게."



어이, 하야세 유우카. 

너도 히나랑 똑같은 소리냐? 

아니, 애초에 선생이 학생에게 철이 없다가 뭐냐...? 


아무래도 나는 이미 서열이 제일 낮아진 게 분명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저런 말들을 하는 게 성립이 되지 않으니까. 


그래도, 뭐... 악의가 없는 말이라는 건 알고 있다.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많은걸,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철이 없다며 추궁하는 거겠지. 



"그나저나, 히나 씨는 괜찮아요?" 


"응." 

"조금은 움직일 수 있다던데." 


"그래서, 어제 뭘 했는데요?" 


"...?" 

"뭘 했다니?" 


"분명, 히나 씨와 무슨 일이 있었을게 분명하잖아요." 

"한 지붕 아래에 남자와 여자가 있다면... 분명히...-" 


"아니, 아니... 딱히, 그럴만한 게..." 


"뭔가 있었나 보네요." 



평소대로 똑같은 말투라고 생각하는데...? 

대체, 유우카의 레이더는 어디까지 날카로운 거냐?

여자의 감각이라는 건, 매번 느끼지만... 정말 무섭구나. 



"... 된장찌개가 짜다고 했어." 


"생각해보니까, 선생님 이불 하나잖아요." 


"... 고등어 구이가 먹고 싶다고 했어." 


"그렇다는 건, 같이 잤다는 소리네요?" 


"아, 불고기도 좋아한다고 했어." 


"... 바닥에서 잔다고 해봤자, 히나 씨의 성격으로는..." 

"분명, 같은 이불에서 자자고 할 텐데." 



드라마에서만 보던 여자의 감각은 이런 거냐? 

이건 집착도 아닌, 정말 일방적인 광기잖아...! 

아무리 그렇지. 유우카, 날 너무 과보호하는 거 아니야? 


무서워, 엄청나게 무섭다고! 

내가 알던 유우카는 어디 간 거야!? 



"... 그럼 유우카!" 

"난 오늘부터 게헨나에 가야 하니까!" 

"샬레 업무처리, 잘 부탁할게!" 


"하!? 어디 가요!?" 

"아직 제 얘기 안 끝났어요!!" 

"거기 서라고요!!"









오전 7 : 51 - 집





나는 집에 돌아온 뒤, 씻고 난 후... 

히나와 함께 아침밥을 먹었다. 

계란 프라이와 어제 했던 된장찌개로 간단하게 해결했다. 


와이셔츠를 입고서 출근 준비를 마쳤을 때, 

히나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이거 가져가." 


"... 엥?" 



히나는 작은 메모장을 주고서, 나에게 말했다. 



"겸손하지 말 것." 

"엄격하게만 할 것." 

"절대로 다른 여자에게 찝쩍 되지 말 것." 


"......??" 



아니, 나... 여자에게 찝쩍 됐던 적이 있던가...? 

여자라고 해도, 주위에는 온통 학생들 뿐인데... 

히나 녀석은 대체 뭘 말하고 있는 거지...? 


나는 메모장에 적힌 것들을 읽기 시작했다. 



"어... 겸손 금지, 엄격할 것..." 

"여자에게 찝쩍 되지 않기..." 


"응, 완벽하게 숙지했네." 


"... 아니, 찝쩍 되지 않기라니..." 

"나 그런 스타일이 아닌데?" 


"하아?" 

"선생님 주위에는 얼마나 많은 여자가 있다고 생각해?" 


"아니, 여자라고 해도 다 학생들인데..." 


"하?" 

"그래서 내가 말한 것들을 무시하겠다?" 



히나는 보라색 눈동자로 나를 노려봤다.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너무 좋습니다, 히나 씨!" 

"꼭, 숙지한 대로 하고 오겠습니다!" 


"......" 



나는 현관문 앞에, 신발을 신고서 가방을 들었다. 



"잠깐, 선생님." 


"응?" 

"...?!" 



히나는 나에게 다가와, 두 손길로 넥타이를 정리해주었다. 

히나도 조금은 부끄러웠는지... 

붉혀진 얼굴로 겨우 참아내는 모습을 보였다. 



"... 그..." 

"선생님이랑 나..." 

"꼭, 신혼부부 같네." 


"... 무, 무슨!?" 


"후훗." 

"그럼, 다녀와 선생님." 


"... 아." 

"... 응!" 

"다녀오겠습니다!" 



나는 현관문을 열고서, 밖을 향해 나갔다. 

그리고 현관문을 닫기 전, 히나의 미소를 확인한 뒤. 

조금은 기쁜 표정으로 게헨나를 향했다. 



"다녀오겠습니다라..." 

"많이... 오랜만인걸." 



히나 덕분에, 오늘은 기분 좋은 하루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오전 8 : 21 - 게헨나 학원의 입구





"선생님...?" 


"안녕, 세나." 


"...... 분명, 지켜주신다고 약속했지 않았습니까?" 



이른 아침, 게헨나로 

히나를 대신해 오게 된 나는 세나와 마주쳤다, 


아침부터... 인상을 찌푸려서 보고 있는 이 녀석은, 

게헨나의 구급 의학부의 부장, 히무로 세나. 

조약 때 사건에서 총알 맞은 나를 구해준 녀석. 


아직 감사인사도 못한 상태인데... 

히나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기로 한 약속을 깨버린 탓인지. 

세나는 마치, 야생의 매처럼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 그게 말이지." 

"히나를 탓하려고 하는 건 아닌데..." 


"... 알고 있습니다." 

"분명, 풍기 위원장이라면 그렇겠지만..." 


"... 어, 응..." 


"하필, 제일 믿음직하지 않은 사람이 대리인이라니..." 


"...... 으음..." 

"미안하게 됐어." 


"........." 


"그래도, 히나의 대리인으로서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할 거니까." 


"맘대로 하시죠." 



세나는 나에게 한마디를 던지고서,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세나는 아무래도, 나를 싫어하는 것 같네... 

싫어할 만도 하지, 애초에 그 작전에서 

모두가 죽을 뻔한 건... 선생님인 내 탓이 맞으니까. 


그리고, 세나가 히나를 지킬 이유도 설명했는데... 

엄청나게 곤란하게 되었네... 제일 믿음직하지 못한다니... 



"하아...-" 



그래도, 뭐... 괜찮겠지. 

업무라면 나도 경력이 다양한 편이고... 

선도부에게는, 이미 히나가 전화로 설명을 마친 상태니까.


나는 계단을 밟으며, 5층에 있는 선도 부실로 향했다. 

선도 부실을 향해가고 있는 도중...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니까, 납득할 수 없다고요!" 


"......." 


"부장이 없는, 이 상황에 저희가 나서라고요!?" 


"학생회장이 내린 결단이다." 

"너희들이 거부할 권리는 없을 텐데?" 



나는 소리치는 목소리에 끌려, 5층으로 도착했다. 

선도 부실의 입구에서는 만마전의 한 학생과... 

선도부의 선임행정관의 아코가 서있었다.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괜히 너구리가 아니네요." 


"...... 3일 내로 보고서를 완성할 것, 이상이다." 


"저런 싹퉁바가지가...!" 


"아코 진정해." 



아코가 한 손으로 들고 있는 보고서로 앞에 있는 

만마전의 학생에게 휘둘려고 하자, 나는 그 팔을 잡고서 막아 세웠다. 



"... 선생님." 


"안녕, 아코." 


"... 놓으세요." 


"응." 



나는 아코의 팔을 천천히 놓았다. 

그러자, 만마전의 학생도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코는 무엇 때문인지, 상당히 화가 나있는 듯했다. 


뭐, 오늘은 히나 대신에 온 것도 아코가 아는 상태일 테고... 

조금은 대리인의 입장으로서 물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저기, 아코." 

"무슨 일이야?" 


"... 하아." 

"어제 있었던 회의의 내용 때문이에요." 


"회의?" 


"트리니티와 게헨나의 친목회...라고 해야 할까요." 

"각 학생 20명 정도를 뽑아서, " 

"함께 합숙을 하자는 내용이었는데..." 


"그런데...?" 


"... 선도부 전체가 가게 되었어요." 


"음." 



미안, 아코...! 진짜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좋은 건... 아닌가? 선도부는 여름 때 합숙을 다녀왔으니... 

잠깐, 합숙이라고 해도... 함께 합숙한다며? 

그럼 훈련이라던가... 그런 건 아니지 않으려나? 


아무래도 역시... 직접 물어보는 게 빠르겠지.



"... 뭐가 문제인 거야?" 


"네!?" 

"정말 모르는 거예요!?" 


"... 어... 진짜 모르겠는데." 


"괘씸하다고요." 


"괘씸해...?" 


"히나 부장이 없다는 걸, " 

"이용해서 저희를 몰아넣은 게 괘씸하다고요!!!" 


"......" 



역시, 그거냐...!? 

히나 콘 아니랄까 봐, 근본적인 합숙의 내용은 

말해주지도 않고, 거기서부터 화내는 거냐!? 



"합숙의 주제는 뭐였는데...?" 


"아, 그건 별거 아니었어요." 

"그저, 샬레의 선생님을 모셔서 특별 수업을 하자던가." 

"그런 별 의미 없는 내용이었어요." 


"아하, 샬레의 선생님을 모셔서 수업을 받는...-" 

"아니, 그거 내 얘기잖아?" 


"네?" 


"난 오늘 처음 듣는데?" 


"어차피 선택권 따위는 없잖아요." 


"아니, 아니... 그리고, 별 의미 없는 내용이라니." 

"나 이래 봐도, 수업 꽤 잘한다고?" 

"보충수업부를 3번이나 통과시킨...-" 


"네네~ 그러시겠죠~" 


"와, 진짜 짜증나." 



그건 그렇고, 트리니티와 게헨나의 합숙이라... 

조약 때 이후로, 이끌어 나가려고 다들 노력하고 있구나. 


저번에도 그렇고 다들 더 이상, 싸우거나 하지 않으니까 말이지. 


선생님인, 나의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좋은 시선이다. 

조약 전만 했어도 다들 물어뜯을 기세였는데... 

무너진 저택에서도 구하러 온건, 게헨나의 학생들이었으니까. 


그만큼... 조약의 건은 순조롭게 이어가고 있는 듯했다. 



"그나저나, 부장은 어때요?" 


"뭐, 오늘은 일어설 수 있을 정도로 괜찮아졌어." 


"처음에는 깜짝 놀랐다고요?" 

"갑자기 어떤 늑대 집에 부장이 있다고 들어서...-" 


"... 늑대라니." 

"난 선생님인데?" 


"... 하마터면 그 집을 폭발시키려고 했는데..." 

"의학부장이 막아서서 말이죠." 


"......"



고마워, 세나... 너는 날 싫어해도 

엄청나게 도덕적인 녀석이었구나...? 



"그건 그렇고, 이걸 확인하시죠." 


"... 이건 뭐야?" 



아코는 자신의 손으로 들고 있는 

보고서에서 종이 한 장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종이에는 수많은 시간들과 일정이 적혀있었다. 


'순찰 보고서 확인하기.', '의료물품 및 식량 재고 확인하기.' 

'만마전과의 합숙 회의.' 등등... 20개는 넘어 보이는 일정들... 



"아니, 잠깐... 이게 하루 일정이라고?" 


"부장이 아무 말도 안 해주셨나요?" 

"분명, 힘들다고 말씀드리라고 했는데..." 



와, 완전 빡세잖아...!! 

히나는 여태껏 이걸 해왔다고!? 

정말로 평범한 고등학생이 맞는 거냐고... 


9시부터의 일정에서는 순찰 보고서 확인과 

게헨나 학생들의 건의사항을 해결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10시부터는 만마전의 회의와 작전 보고서 확인... 

아니, 잠깐만... 그럼, 9시의 일정을 1시간 안에 소화해야 한다는 소리인가? 


나는 게헨나 선도부실에 있는 히나의 책상에서 

하얀 종이들이 쌓여있는 것을 확인했다. 



"아코... 저거, 설마..." 


"네?" 


"저기, 히나의 책상에... 저거..." 


"아, 순찰 보고서라는 거예요." 

"매일 800장에서 1200장 정도는 기본적으로 나오는...-" 



미쳤어...! 제대로 미쳤어...!!! 

천 장이나 되는 분량을 1시간 안에 다 읽어버린다는 거야? 

또 그거냐...? 헤일로!? 신체조건이 일반인보다 높으니까... 

아무리 빨리 넘겨도 동체시력이 글자 읽기에 따라간다는 거냐!? 


아코는 선도부실의 시계를 확인하고서, 기다렸다는 듯이 나에게 말했다. 



"그럼 시작하도록 하죠." 

"선생님." 


"조금은... 봐주라."












오후 12 : 21 - 게헨나 1층에 있는 'S'카페





"끄어어어어......-----" 


"우와, 선생님... 좀비 같아." 



게헨나의 1층, 급식실 바로 옆에서는 자그마한 카페가 있었다. 


그곳에서 이오리는 커피를 두 손으로 든 채, 

내가 엎드려 있는 테이블에 가져와 나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거라도 마시고 정신 차려." 


"으응... 고맙다." 



이오리가 테이블 의자에 앉는 모습을 보자. 

나도 한숨 돌릴 겸, 빨대를 통해 커피를 한 모금 삼켰다. 



"엑- 뭐야, 아메리카노잖아?" 


"응? 선생님이라면 당연히 아메리카노인 줄 알았는데." 


"아니... 오늘은 단맛이 당기네." 

"머리를 너무 써서 그런가." 


"헤에... 어른들의 최고봉 커피인 줄 알고 시켰는데." 

"선생님은 은근 어린이 입맛이구나?" 



나는 쿠키라던가 케이크라던가, 

그런 건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이번만큼은 단 게 먹고 싶었다. 

이럴 때야 말로 아이리가 아이스크림이라도 가져다줬으면... 


아메리카노를 다시 빨대를 통해 마셨지만, 역시... 아웃이다. 

오늘 커피는 단 게 아니면 도저히 먹을 수가 없겠는 걸. 



"음... 미안하지만, 딴 걸 마셔야겠어." 


"그렇게 해, 그럼." 

"그 아메리카노는 어쩌고?" 


"직원분에게 주던가 해야지." 

"갔다 올게." 


"응~" 



나는 테이블에 일어선 다음, 카운터에 향했다. 


그때- 카운터에서의 직원과 눈이 마주쳤다. 

어디서 많이 본 직원...- 아니, 학생이네.



"...... 뭐해?" 


"ㅈ, 주문하시겠어요 손님?" 


"...... 흐음." 

"벤티 모카 프라푸치노." 


"베, 벤티 모, 모카 프라푸... 치... 노!" 


"샷 6번." 


"샤, 샷 6번!" 


"모카 시럽 4번." 


"모... 카...-" 


"로우 슈거 12 펌." 


"자, 잠시만...!" 


"에스프레소 휘핑크림까지." 


"선생님, 시비 거는 거 맞지!?" 

"아무리 그래도, 이런 무리한 주문은 일반 카페에서 아니잖아!" 


"손님이 주문하겠다는데 이 정도는 해야지." 

"아님, 우리 무법자 씨께서는 이런 것도 못하시나?" 


"흐, 흥! 이 흥신소 68의 사장을 뭘로 보는 거야?!" 



아니, 애초에 어느 사장님이 남의 카페에서 일하고 있냐? 


내 앞에는 게헨나의 사고뭉치 중 한 명... 

흥신소 68의 아루가 카페 주문을 받고 있었다. 


또, 알바를 하고 있는걸 보아하니... 문제가 생긴 게 틀림없다. 



"그래서, 이번엔 카페 알바야?" 


"후, 훗! 미래를 위한 경제공부 중이야!" 


"경제공부...?" 


"그, 그게... 으음..." 

"커피가 잘 나가는 시대라면, " 

"모든 커피 원두 회사를 지배할 생각이거든!" 


"... 커피가 잘 나가고 할 게 있나?" 


"으음...! 그건...-" 


"그래서, 왜 돈이 없는 건데?" 


"에!? 어떻게 알아!?" 


"...... 표정에서 다 나오거든?" 


"... 사실은 말이야." 

"저번에, 에어컨 하나를 샀는데 말이지..." 

"초특급 세일하는 에어컨이었단 말이야!" 


"그게 왜?" 


"설치를 하고서, 작동시켰는데..." 

"주변 건물들하고 함께 폭발해버렸어..." 


"그래서 피해보상금을 벌고 있다... 이거구나." 


"... 그래도 나, 리쿠하치마 아루는 포기하지 않아." 

"무법자라는 야망이 있으니까!" 


".............." 



역시, 아루를 보고 있으면 소년 만화 같달까. 

어느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은 보기 좋다만... 

그 허당 끼는 도대체 언제 고칠 셈이냐?



"레몬에이드, 얼음 넣어서." 


"넵! 주문받았습니다!" 



오, 이럴 땐 바로 고객 대응 서비스야? 

리쿠하치마 아루, 굉장히 편리하네. 



"그런데, 선생님." 

"그 아메리카노 다 안 마시지 않았어?" 


"아 그렇지." 

"이거 너 마실래?" 

"난, 레몬에이드 먹고 싶어서 말이지." 


"저, 정말!? 마침 목말랐는데!" 



아루가 내 손에 있는 아메리카노를 지적하자, 

나는 아루에게 커피를 건넸다. 


아루는 커피를 나에게 받자마자 성급히 마시지 시작했다. 



"... 엄청 목말랐구나." 


"응, 덕분에 살았어. 선생님!" 

"어... 그런데, 이거..." 



아루는 두 손으로 잡고 있는 커피잔을 보고서 나에게 말을 건넸다. 



"음?"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서, 선생님이 마시던 거야?" 


"응." 

"문제 될 게 있나?" 


"으아---!?" 

"가, 간접키스잖아! 이거!" 


"아, 그렇네." 


"'아, 그렇네.'가 아니지 않아!?" 

"이런 건 사전예고를 좀 해 돌라고!" 


"뭐, 어때." 

"갈증 해소됐으면 그만이지." 

"세세하게 따지는 게, 아루답지 않네." 


".........."





나는 아루와 실컷 떠들고 난 후, 자리로 돌아왔다. 



"어라... 이오리?" 



내가 돌아온 테이블에서는 이오리가 보이지 않았다. 

테이블에서는 이오리가 늘 즐겨먹던 민트 초코 프라페가 놓여있었다. 


잠시 화장실 간 거겠지? 

그러지 않고서야, 이오리가 환장하는 

민트 초코 프라페를 두고 갈 리가 없으니까. 


나는 그렇게 테이블 의자에 앉고서 레몬 에이드를 한입 마셨다. 



"맛은 어떤가요?" 


"응, 달콤하고... 시원...-" 

"어?" 


"그렇군요, 달콤하고 시원하다라..." 

"에이드는 여름에 어울리는 미식 중에도 한 가지죠." 


"......!!!" 



나는 히나를 대신해 게헨나를 오기 전 간과한 일이 있다. 

다리를 꼬아 앉은 상태로 발로 툭툭 치는... 이 녀석을... 



"에이드는 과일의 향을 느끼기 위해서 만들어졌다고 하죠." 

"그 과일의 향 덕에, 저희는 이 상쾌함을 느끼는 거고요." 


"... 네." 


"선생님의 향기도... 분명, 상쾌하지 않을까요?" 


"그, 그게 무슨 말..." 


"선. 생. 님?" 



하루나가 바로 옆에서, 붉은 연기와 함께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몸속에서 살기가 하나씩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 녀석... 쿠로다테 하루나는 화났다...! 

분명히, 내가 잘못한 짓을 하긴 했지만...! 

이건... 죽이겠다는 공기잖아!! 



"... 죄, 죄송합니다!!" 


"어머, 왜, 무엇이 죄송한 거죠?" 

"하나, 하나. 또박또박." 

"말씀해주세요." 


"그, 그건..." 

"제가 통화도 다 무시하고... 모모톡도 차단해서...-" 


"아하, 차단한 거였군요?" 

"저번에는 바쁘다고 분명히...-" 


"아, 네! 네! 그렇죠!" 

"바빠서 그만...-" 


"조용." 


"흡...!" 



하루나는 내 얼굴을 어루만지며, 가까이 다가와 말했다.



"저는 정말 잘해줄 자신이 있는데 말이죠..." 

"왜... 항상 거절하는 걸까요?" 


".........." 


"말씀해보시죠." 

"왜, 항상 거절하는 걸까요?" 



게헨나의 사고뭉치, 미식 연구회의 

쿠로다테 하루나 씨가 이렇게 화내는 이유는 단 하나. 


나한테 술을 먹이고서, 혼인신고서를 멋대로 작성했으니까...! 

그리고서, 뻔뻔하게 결혼식은 잡아놓았으니 

꼭 오라는 협박의 문자와 통화들이 가득했으니까!! 

차단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잖아!!! 


하루나는 발로, 내 다리를 툭툭 치며, 다시 한번 물었다. 



"후후." 

"말해보시죠?" 


"아니, 그야..." 

"나한텐 하루나가 아까우니까." 


"... 이유는?" 


"금수저에... 건물주에... 미인이니까?" 


"그럼, 선생님에게 걸맞은 신붓감이네요." 


"왜, 얘기가 그렇게 되는 건데!?" 


"그야, 혼인신고서를 작성한지는 2달이나 넘어버렸고..." 

"이제는 정말로 식을 올려야 하니까요." 



물론... 돈 많고, 건물도 많고, 미인인 하루나에게서 

결혼하자고 하면 나야 땡큐지...! 


그렇지만, 이건 아니잖아. 

나도 돈에 욕심이 많은 사람이지만, 이건 낭만이 없잖아. 


사랑은 로맨티스트하게 가야 한다고! 

한 사람이 반해서 쓸개처럼 다 주는 듯한 플레이가 아닌... 

서로가 정말 좋아해서 이루어갈 수 있는 플레이로...! 



"하루나... 결혼이라는 건 말이지." 

"서로가 사랑하니까, 올릴 수 있는 식인 거야." 

"그러니까, 이렇게 서툰 행동은...-" 


"선생님은 제가 싫다는 건가요...?" 


"... 아?" 

"절대로 그런...-" 


"그렇군요." 

"저는 여태까지 선생님에게 혼자서..." 


"물론 좋아하지." 

"하루나가 좋아, 그렇지만 이건 엄연히 다른...-" 


"그렇군요... 후후." 

"선생님은 절..." 



아무래도 나는 말실수를 해버린 거 같다. 


어디서부터 실수한지는 몰라도... 

하루나의 스위치가 제대로 켜진 것 같은데... 



"... 저기... 하루나 씨?" 


"여... 여..." 


"... 여?" 


"역시! 선생님도 저를 좋아하셨군요!?" 


"... 엥?" 


"역시 서로 좋아한다면, 사귀는 거부터일까요!?"


"아니 잠깐만, 내가 좋다고 말한 건" 

"Love가 아닌...-" 


"뭐든 상관없어요!" 


"우왓!?" 



하루나는 내 두 손을 잡고서 폭주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말대로 결혼 전에는 합을 맞추는 게 중요하겠죠!" 

"집은 어디에... 그리고, 아이는 몇으로." 


"뭐, 뭐!?" 


"침대는 큰 걸로도 주문 가능하답니다!?" 

"오늘 바로 연습하는 것도...!" 



사귀다는 것만으로도 거기까지 가는 거냐!? 

아니, 그리고... 이 녀석 말귀를 전혀 못 알아듣잖아! 

내가 좋다고 말한 건, 남자와 여자가 아닌, 사람 대 사람의 마음이라고! 


주위에 있는 학생들이 폭주하는 하루나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이러다간, 게헨나에 들어온 지 하루 만에, 

아동청소년 범죄자 취급을 받을게 분명해! 

그러니까 화제! 화제를 돌리는 거다! 



"이, 일단... 그만하고오!" 

"아, 그래!" 

"다른 아이들은 잘 지내?" 

"준코랑 아카리... 그리고, 이즈미말이야." 


"후후, 매일 같이 만나서 미식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걱정하실 일은 아니라고 봐요." 



매일 같이 만나서, 미식을 탐구한다고? 

그 말은 즉슨, 매일 같이 음식점을 파괴하고 다닌다는 말 아니야?



"저기... 너 말이야." 

"음식점 파괴하는 건, 그만두지 그러냐?" 


"후후, 그런 농담도 선생님은 좋아하시군요." 


"......" 


"어이, 먹보." 

"그 자리에서 나오지?" 



그때- 이오리가 나타나, 

자신의 자리에 앉아있는 하루나에게 말을 걸었다. 



"... 어머, 이거야 원." 

"선도부의 에이스군요." 


"드디어 왔구나, 이오리." 



진짜로 늦었다고... 이오리...! 

네가 오지 않으면 끝나지 않을 논쟁이었어...! 

고맙다, 이오리! 최고다, 이오리...! 

이제라도 나타나 줘서 정말로 고마워! 



"나오라니까? 거긴 내 자리야." 


"어머, 자리라면 저쪽 의자를 가져오셔도 됩니다만?" 


"애초에 내 자리잖아." 


"자신의 자리에 질투를 하는 건가요...? 

"선도부의 에이스가?" 

"아니면, 혹시..." 


"... 왜 나를 봐?" 



하루나는 유심히 나를 지켜보며 이어 말했다. 



"흐음... 그럴 리가 없죠." 

"선도부의 에이스가 선생님을 상대로 질투를...-" 


"어이!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그딴 걸로 질투 할리가...!" 


"... 명중이네요." 


"애초에 먹보면 먹보답게, 먹을 것만 가지고 나가라고!" 


"어머, 그런 무식함이 있을 수가..." 

"미식이라는 건, 그 음식의 장소에서만 먹어야 최고의 미식이죠."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건 내 알바 아니야, 먹보." 


"그 말 상당히 짜증 나네요?" 

"선도부의 에이스, 이오리 쨩?" 

"아무리 그래도 제가 선배인데 말이죠." 


"아아~ 죄송하게 됐습니다." 

"먹보, 쿠도다테 하루나 씨." 


"......." 



나는 하루나와 이오리가 싸우는 틈을 타 빠져나갔다. 

아무래도... 이 논쟁은 끝나지 않을 셈인 것 같다.







오후 1 : 20 - 게헨나의 선도부실 





유일한 쉬는 시간인... 점심시간에 폭풍 같은 시간을 보낸 후, 

아코와 함께, 아침에 다 하지 못한 업무를 보고 있었다. 



"미안해, 아코." 

"아직 미숙해서 말이지..." 


"뭘, 이 정도 가지고." 

"얼른 끝내버리죠." 



아코와 나는 집중해서 아침에 밀려버린 

순찰 보고서의 확인 사인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순찰 보고서라면... 

원래 학생회가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예전부터 느낀 거지만, 게헨나의 선도부는 학생회 같단 말이지. 

뭔가, 다양한 업무를 봐야 한다고 해야 할까... 


선도부라고 하면, 모범이 되는 행동이라던가... 

바른생활모습으로 이끄는 부활동 아닌가? 



"저기, 아코." 

"선도부가 업무량이 많은 이유는, " 

"만마전에게 떠맡겨진 거라서 그런 거야?" 


"설마, 그럴 리가요." 

"그건 엄숙히, 히나 부장을 무시하는 행위." 

"제가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아, 응..." 

"그렇다는 건, 히나가 직접 하겠다고 한 거구나." 


"뭐, 그런 셈이죠." 

"담당이라고 해도, 히나 부장의 소화량은 엄청나니까요." 


"대단하네, 히나는." 


"... 대단하죠 부장은." 

"여기까지... 겨우 올라오신 분이니까요." 



그러고 보니, 아코는 어쩌다가 선도부에 들어온 거지? 

저렇게 말하는 걸 보면... 히나와는 깊은 관계로 보이는데. 



"아코는 어쩌다가 선도부로 들어온 거야?" 


"... 하." 

"그걸 말이라고." 


"...?" 


"당연히." 


"당연히?" 


"히나 부장, 하나만을 보고 들어온 거죠!" 

"귀엽잖아요? 멋지잖아요? 예쁘잖아요?!" 

"안 들어올 이유가 없지 않나요!?" 



아, 응... 결국 그거잖아. 

히나를 좋아해서 들어왔다... 

그래서 히나를 좀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다... 

안 들어도 뻔한 비디오식 멘트네... 



"뭐, 들어오게 된 계기는 완전히 특별하지만..." 


"특별?" 


"아, 선생님은 모르시겠죠." 

"예전의 게헨나를." 


"... 아, 응." 

"그러고 보니, 게헨나 자체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 없네." 


"선생님도 알고 계셔야 할 테니..." 

"말씀해드리는 게 좋겠죠." 



아코는 들고 있던 업무 보고서를 내려놓고서 

창문에 있는 화분에 다가간 다음, 나에게 말을 건넸다.



"옛날의 게헨나는 말이죠, 이렇게 불리기도 했습니다." 

"독재자의 소굴." 


"소굴...?" 


"강한 자만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런 곳입니다." 



아코가 말한 이야기라면 대충, 배경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다. 

과거 선도부가 그런 방향이었다고 히나에게 들었으니까. 



"강자는 약자를 짓밟을 수 있다." 

"한마디로 약육강식." 

"그런 곳이었죠, 분명." 


"......." 


"... 그 시초는, 선도부." 

"리츠코, 그녀가 풍기 위원장이 되면서 벌어진 일이었죠." 

"원래는 강자에게 혜택만 있었을 뿐." 

"짓밟을 수 있다는 설정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선도부장이 바뀌고서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했죠." 


"그게 독재자의 소굴이구나." 


"네, 하지만... 오래가진 못했어요." 

"정말로 다행이기도 한순간들이었죠." 

"「강자는 약자를 짓밟을 수 있다」" 

"라는 규칙을 만든 리츠코가 사라지지 전까진 말이죠." 


"음." 


"그녀가 사라지고 난 후, 공적에 의해 부장은 소라사키." 

"즉, 지금의 히나 부장이 된 거죠." 

"그리고서, 불만을 가진 모든 학생들이 히나 부장에게..." 

"그 잔혹한 규칙에 대해, 책임을 전가 하기 시작했죠." 


"... 그런..." 


"그럼에도, 자신이 바꾸어나가겠다며..." 

"그 수많은 학생들 앞에서 말했죠." 

"선도부의 남은 단 한 명인, 히나 부장이 말이죠." 

"그리고... 처음으로 만난 건...-"





--- 그날은 분명, 비가 오던 날이었습니다. 

게헨나로 가는 등교를 위한 언덕길... 


늦은 밤이 되고서 혼자, 집을 향해가고 있었습니다. 


그 언덕길에서. 

자그마한 한 사람이 노란 우비를 입은 채, 

낙하 방지용 울타리를 수리하고 있었습니다. 


'탕-.', '탕-.' 


가공된 목재를 서툴게 망치질하는 모습을 보자. 

우비를 입은 분에게 다가간 다음 말을 걸었습니다. 



"망치질 그렇게 하시는 게 아닌데..." 


"... 음?" 


"여기, 못이 다 삐뚤어졌잖아요." 


"... 아." 

"그냥 내려치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었어?" 


"... 푸훕." 

"그걸 말이라고." 


"...... 음." 



우비에 감싸 지고서, 얕게 비추어지는 백발머리. 

그리고, 비친 백발머리 덕에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 보라색 눈빛. 


그 두 눈동자가 마주치면서, 어둡다고 느껴지던 보라색이 

처음으로 이렇게나 예쁜 색이구나, 라며 감탄했습니다. 


그게 소라사키 히나, 부장과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2학년인... 소라사키 히나 씨죠?" 


"아, 응." 

"날 알고 있구나..." 


"뭐, 그 사건은 말도 안 되는 사건이니까요." 

"또, 같은 학년이기도 하고요." 


"......" 


"화나지 않는 거예요?" 

"모든 손가락질이, 당신에게 향했는데 말이죠." 


"... 화라면, 이미 머리끝까지 났지." 


"흐음, 그런데도 참으시구나." 


"......" 

"넌, 자세히 알고 있구나." 


"뭐, 그런 셈이죠." 

"뒤에서 욕하는 분들을 싫어하기도 하고요." 

"히나 씨는 그런 욕들을 불 품 없이 먹는데도, " 

"계속해서 학생들을 위해서 일을 한다라..." 


".........." 


"정말로 아무렇지 않으세요?" 


"... 초면인데 엄청나게 묻는걸." 


"어머, 실례." 

"궁금한 건 못 참아서 말이죠." 


"... 단지, 바꾸고 싶을 뿐이야." 

"이 말도 안 되는 환경을." 


"흐음..." 



다음날도 수리하고 있는 부장을 찾아갔습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계속해서 부장을 찾아갔습니다. 



"... 너 또 왔구나." 


"안녕하세요." 

"좋은 밤이네요." 


"... 너는 여태 뭘 하다가, 이제 귀가하는 거야?" 


"어머, 그건 저의 프라이버시." 

"묻는 건 반칙이라고요?" 

"히나 씨." 


"멋대로 이름까지 부르고..." 



'탕-.'. '탕-.' 



"후우...!" 

"이걸로 끝이네요!" 


"... 수고했어." 


"으그그극...----" 


"... 저 기말이야." 

"너는 왜 자꾸 날 도와주는 거야?" 


"동정심이에요."


"......" 


"농담입니다." 

"단순한 호기심... 정도가 좋겠네요." 


"... 호기심?" 


"피가 묻은 선도부에 남아있는 현 부장이..." 

"너무나도 궁금해서 말이죠." 


"음." 

"정말, 어쩌다가 된 걸 지도 모르지." 

"공적이 제일 큰 사람에게 물려줬으니까 말이야." 

"부장은 탈퇴 따위도 하지 못하고..." 


"어머, 후회 중이시군요?" 


"응, 후회 중이야." 

"그렇지만... 다르게 본다면, 이건 기회야." 

"게헨나를 바꿀 수 있는 기회." 


"...?" 


"드디어, 여기까지 왔으니까 말이지." 


"흐음..." 

"집념이 대단하네요." 

"그럼, 게헨나를 바꿀 계획인 거네요?" 


"... 뭐, 노력할 거야." 

"마음에 들지 않았거든, 이런 학교는." 


"후훗... 그럼." 

"저도 거기에 참전하겠습니다!" 


"뭐?" 


"역시, 1학년 때부터 봐왔지만, 대단한걸요 히나 씨는." 


"역시, 나를 알고 있었구나, 너는." 

"...... 도대체 도와주는 이유가 뭐야?" 


"히나 씨는 혼자 아닌가요?" 

"친구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는." 


"...... 그래서?" 


"제가 곁에 있어드릴게요." 

"히나 씨는 지금, 힘들진 않나요?" 


".........." 


"지치고 힘들 때, 곁에 아무도 없다는 건..." 

"정말 슬픈 일이니까요." 


"............ 그럴지도." 


"네, 그러니까." 

"저도 선도부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뭐?" 



그때의 저는 일주일 동안, 

계속해서 히나 부장을 지켜봤습니다. 

이 울타리도 분명, 학생들의 건의사항... 

학생회의 업무도 분명, 학생들의 건의사항. 


한밤 중, 달빛을 막고서 서있던 보라색 빛 눈동자. 

그 눈동자는 절, 더욱 끌어들이게 했습니다. 


정말로 학생들을 위해서, 선도부를 바꾸고 싶다는 이유. 

그 목적에 단념하여 최선을 다하는 히나 부장이 


너무나도 존경스러워서, 저는 아마 이끌어진 겁니다.



"최근 일주일간, 지켜봤어요." 

"처음에는 분명, 호기심이었죠." 

"낮에도 밤에도... 히나 씨를 지켜봤어요." 

"지금 하시고 계시는 일들... 전부 학생회의 일이잖아요?" 

"학생회의 일이지만... '학생들을 위한 일'이기도 하고요." 


"그걸 어떻게..." 


"이래 봬도 보고서 쓰는 건, 같은 학년 중 최고니까요." 

"그 정도를 파악하는 거야, 제겐 일도 아니랍니다?" 

"... 그러니까, 함께하고 싶습니다." 

"저도 마침 부활동이 없기도 하고..." 


"... 이름." 


"네?" 


"이름이... 뭐야?" 


"... 여태 제 이름도 모르고 계셨던 거예요!?" 


"... 미안." 

"내가 붙임성이 조금... 없어서." 


"... 아마우 아코입니다." 

"아코라고 불러주세요, 히나 부장." 


"... 음." 

"처음 들어보네, 부장이라는 말." 

"일단... 테스트부터 봐야지." 


"에, 엥!?" 


"선도부 면접은... 음, 실전이니까..." 

"지금 당장 겨루기라도 해볼까?" 


"자, 잠시만..." 



저와 히나 부장이 2학년을 끝마칠 무렵, 

선도부는 어느 정도 성장해가고 있었습니다. 


이오리를 포함해서 많은 선도부원들을 데리고 왔죠. 



"... 엄청나게 많아졌구나." 


"그렇죠?" 

"분명, 부장이 노력하신 결과예요." 


"... 아코." 


"네?" 


"그... 그, " 


"?" 


"고, 고마..." 


"... 오." 


"... 워." 


"오옷...!"





아코는 손바닥으로 히나의 책상을 치면서 소리쳤다. 


'투웅---.' 



"여기서가 하이라이트----------!!!!!!" 

"그 미소가...! 저에게 있어서 그 단 한 번의 미소가...!" 

"그 쑥스러움이 저를 이끌었다고욧!!!" 


"... 아하." 



그러니까, 아코 녀석도 처음부터 변태는 아니었다는 말이구나. 

매번 히나에 대해서라면 파고드는 녀석이 조금 깊은 사연이 있네. 



"뭐, 어쩌다 보니 끌렸다... 그런 이야기인 건가?" 


"그렇게도 해석되지만..." 

"제일 중요한 게 있죠." 


"음?" 


"그 울타리 수리... 제가 건의한 거라서요." 


"......" 

"진짜 엉뚱하네." 

"그런 걸로 반해버리다니." 



역시, 이 녀석들은 엉뚱하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좋은 녀석들이구나. 

좋은 사람 곁에는 좋은 사람만 남는다인가... 


이오리나 지나츠도 분명, 

히나의 모습에 이끌려 선도부에 들어온 거겠지. 


그런 처지인데도, 끝까지 만들어나가는 히나의 모습에 

아코도 결국 그 모습에 존경스러워서 시작한 거고... 


힘들 때, 곁에 아무도 없다는 건, 정말 슬픈 일이라. 

아코는 내가 생각한 거보다 정말로 좋은 녀석이었구나. 



"......" 

"... 아코, 너도 좋은 녀석이었구나?" 


"... 하아?" 

"그런 식으로 자신을 어필하지 말아 줄래요?" 

"저는 오직 히나 부장만 바라보니까요." 


"와, 너 진짜 짜증나." 



아코가 해준 이야기는 생각보다 감명 깊었다. 

나는 생각했던 것보다 히나를 모르고 있었구나...





오후 4 : 40 - 게헨나의 구급의학부실





4시의 일정은, 급식실의 재고 요청과 

구급 의학부의 의료물품의 재고 확인이 적혀있었다. 


다행히, 부실 안에는 세나가 없어서 다행이야... 

눈빛이 너무 무섭단 말이지... 


나는 의료물품들의 재고를 확인하며, 볼펜으로 체크 중이었다. 


갑자기 문특 든 생각이지만, 

세나가 날 싫어할 만 이유는 많다고 본다. 


조약의 건 때도 구해줬는데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 없고... 

저택의 작전 때도 나를 챙긴 건 세나였다고 하던데... 

감사인사 한마디를 못 전하고... 약속까지 어겼으니까. 



"하아... 걱정이네." 


"뭐가 말입니까?" 


"최소한 대화라도 해보고 싶은데." 

"대화도 못하게 노려보니까 말이지." 


"...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꽉 막힌 사람이군요." 


"... 그렇...-" 

"우와아아아악!?" 



내 옆에는 구급의학부의 부장인 세나가 서있었다. 



"세, 세나 언제부터!?" 


"... 5분 정도 된 것 같습니다만." 


"왔으면, 왔다고 말을 하라고! 놀랬잖아!" 


"그나저나,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분은 누구인가요?" 

"학생들은 선생님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만." 


".........." 



세나, 네가 말한 꽉 막힌 사람은... 아니. 

이런 생각을 해선 안된다. 

세나는 분명히 지금도 날 싫어할 텐데... 


그나저나,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잖아? 

... 한번 물어보는 것도 빠르겠구나.



"... 세나." 

"혹시, 너는 내가 싫어?" 


"네, 정말 싫습니다." 


"윽... 너무 빠르잖아...!" 

"각오는 했지만, 뼈가 아프네." 


"... 충고하겠지만." 

"지킬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하세요." 


"응...?" 


"늦어버리면, 그뿐인 겁니다." 

"시간은 돌아갈 수도, 넘을 수도 없으니까 말이죠." 


"... 무슨 말이야?" 


"충고입니다, 어디까지나." 



세나는 내가 들고 있던 재고 보고서를 가져간 뒤, 

아무 말 없이 옆에서 볼펜으로 체크하고 있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에, 

나도 그저... 가만히 세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오후 8 : 40 - 집





나는 게헨나의 업무를 모두 끝낸 뒤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6시에 끝내야만 했던 업무들을 겨우... 

8시나 되고서 업무를 마치고 말았다. 


히나 녀석도 참... 대단하단 말이야. 

이 엄청난 스케줄을 하루마다 진행한다니... 


아무래도 평소보다 많은 양을 소화하다 보니까, 머리가 아파왔다. 

계속해서 걷다 보니, 집으로 도착했다. 

나는 문고리를 잡고서 문을 열었다. 



"아, 선생님 왔어?" 


"... 오." 



히나는 내 티셔츠를 입은 채로, 앞치마 차림을 하고 있었다. 



"몸은 괜찮은 거야?" 


"응, 덕분에." 

"한 숨 더자고 일어나니까 괜찮아졌어." 


"... 그거 내 티셔츠 아니야?" 


"아, 응." 

"미안해, 멋대로..." 

"샤워하고 나서 입을 옷이 없어서 말이지." 


"아니, 그대로 있어줘." 


"... 응?" 



학생과 선생이라고 매일 당부하는 건 나지만... 

이건, 다른 의미로 최고잖아!? 

뭐냐 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두근거림은? 


내가 입던 옷을 여자가 입으면 이런 기분인가?



"... 그렇게 빤히 바라보면, 나도 부끄러운데." 


"아, 미안." 

"너무 잘 어울려서 말이지." 


"자... 잘 어울려?" 


"응, 최고야." 


"... 후훗." 

"뭔가 예상한 전개는 아니지만, 기분이 좋은걸." 



나는 와이셔츠를 벗고서, 

반팔로 갈아입은 뒤, 주방에 있는 히나에게 다가갔다. 


히나는 내가 늦은 이유 때문인지 저녁을 대신하고 있었다. 



"미안, 아무래도 너무 늦게 왔지?" 


"아냐, 선생님에게 해줄 수 있는 좋은 기회기도 하고." 

"이런 기회는 좀처럼 보기 힘드니까." 

"그나저나, 오늘 하루는 어땠어?" 


"... 어... 히나가 대단하다고 느낀 하루였어." 


"...?" 


"그런데, 뭘 만들고 있는 거야?" 


"딱 보면 알 수 있지 않아?" 

"카레야." 


"예?"



아니, 저기 소라사키 히나 씨? 

카레가 보통 갈색이거나, 노란색 아닌가요? 

뭔가요? 이 엄청난 보라색은...!? 


히나는 냄비에 담가진, 보라색 카레를 국자로 젓고 있었다. 


지, 진정하자... 어디까지나 요리는 외관상으로만 보면 안돼. 

맛...! 그래, 요리에 있어서 궁극의 목적지는 맛이니까...! 


재료! 재료를 물어보자! 그럼 맛 정도는 예상되니까! 



"재료는 뭐가 들어간 거야?" 


"으음, 카레라서... 감자랑 당근... 고기랑..." 



다, 다행이다! 다행히, 재료는 일반적...--- 



"닭다리랑 된장이랑... 쌍화탕이랑..." 


"......?????" 



뭐냐, 그건? 학창 시절, 축구를 해야 할 조원을 짜는데

하기 싫어하는, 나머지 애들을 모은 듯한 그런 재료는!? 


그나저나 카레에 닭다리가 들어간 건 그렇다 쳐도... 

된장은 뭐냐!? 카레의 색깔 때문에 들어간다고 생각한 거야? 

아니, 그리고 쌍화탕은 왜 넣는데!? 카레가 감기에 걸렸냐!? 



"히, 히나... 그거 먹을 수 있지?" 


"물론, 오늘 나를 대신해 수고해준, "

"선생님을 위해서 준비하는 거니까." 

"꼭 맛있게 대접할 거야."



히나는 활짝 웃으면서 말하는 게, 마치 여신 같았다. 


그렇게 예쁜 얼굴로 미소 지어버리면 거절도 못 하잖아... 

뭐든지 완벽해 보였던 내 기억 속의 히나를 돌려줘! 

돌려 돌란 말이야! 나만의 히나를! 


그리고, 내가 물어본 건 말이야... 히나... 

정말로 사람이 먹을 수 있냐... 이 말인데 말이지. 


그렇게 10분 정도가 흐르자, 

밥상에는 카레 한 접시가 대령되었다. 



"............" 

"오.........." 


"어서 먹어봐, 선생님." 

"진심을 다해서 준비했어." 



소라사키 히나 씨가 주신, 이 카레에는 생명보험이 들어있는 거죠? 

그렇죠? 안 그러고서야, 이 불완전한 카레를, 

웃으며 먹어보라 할 순 없는 거잖아요!


나는 보라색의 카레를 한 숟갈 들어 올렸다. 



"... 헐." 



숟가락에 들어 올려진 보라색 카레는... 

괴상한 표정으로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 


'키에에에엑...!' 


괴물 소리...!! 분명 괴물 소리가 났어!!! 

음식에도 소리가 나는 거야!? 

카레가 움직여서 나오는 소리 맞지!? 


아냐, 히나도 한입 먹어보고서 맛있으니까 대령해준 거겠지. 

책에서 본 적 있어, 이렇게 괴상하게 웃는 표정. 


그거다, 그거! 시뮬라크르 현상! 

세 개의 점이 있으면, 얼굴로 인식해버리는 현상! 


소리는 아마, 환청일 거야! 응!



"잘 먹겠... 습니다!" 

"하압!" 


"어때...?" 


"......?" 

"오, 은근 맛있네." 


"다행이다..." 


".............." 



응, 진짜 다행이야. 

사실은 죽었구나. 라며, 30번은 생각했거든. 


나는 숟가락을 놓고서, 히나에게 말했다. 



"잘 먹었습니다." 


"... 어라?" 

"한 입 먹고 끝이야?" 


"응, 다이어트 중이라!" 


"... 마저 먹어줘." 


"...... 놉." 


"열심히 한 건데... 안 먹어줄 거야?" 


"안돼, 살쪄." 


"치사해." 



어이, 풍기 위원장 씨. 

네가 제일 치사하거든? 선생님 특권으로 먹어준 거니까. 

한입 먹어준 것만큼으로도 감사하라고. 



"........" 


"........" 

"... 아, 진짜... 알았다고." 

"접시에 있는 거 다 먹으면 되는 거지?" 


"... 응!" 





그렇게 괴상한 웃음을 짓는 카레를 먹고 난 뒤, 

벽에 기대어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쉬고 있는 나에게 히나는 다가와 내 옆에 앉았다.



"뭐해, 선생님?" 


"영화 보고 있어." 


"으음?" 


"'뉴트리아의 보라색 동산 정복기'라는 영화야." 


"뉴, 뉴트리아?" 

"그 재해 동물...?" 


"시리즈별로 나오는데 은근 재밌어." 

"매일 올라가다 굴러 떨어지는 반응이 리얼하거든." 


"...... 이상한 취미를 가지고 있구나."


"그런가?" 



생각해보니까, 히나는... 

저번에 백화점에서도 데이트했을 때도... 

딱히, 좋아하는 게 없는 것 같았는데 말이지. 



"히나는 취미라던가, 그런 거 없어?" 


"... 가만히 누워있기?" 


"게으름뱅이 칭호에 걸맞구만." 


"나야, 혼자 있는 시간은 많지만... 놀 시간은 없으니까." 


"음... 책 읽기는 어때?" 


"그건, 보다가 잠든 적이 너무 많아서..." 


"흐음..." 

"영화는...?" 


"음... 챙겨보는 건, 딱히 있지 않은데." 


"최근에 본 것도 없어?" 


"... 응." 


"...... 히나는 사는 낙이 없겠는 걸." 


"여태 놀았던 거라고 해야 할까..."

"즐거웠던 건, 하나 있어." 


"오!? 뭔데? 어서 말해봐." 


"그... 저번에 갔던, 백화점..." 


"백화점...?" 

"어... 그때 아무것도 안 샀지 않나?" 


"... 아니, 그..." 

"그러니까..." 


"으음... 인형?" 


"... 선생님이랑 여러 군데 다니는 거." 

"그게... 정말 재밌었어." 


"...... 아하." 

"잘 모르겠네...?"


"... 데..." 


"데?" 


"데이트 말이야-------!!!!!" 

"데! 이! 트----------!!!!!" 



히나는 얼굴을 붉히며 나에게 큰소리로 말했다. 



"귀에서 피가..." 


"그러니까... 하자고, 데이트...!" 


"...... 나랑 논게 재밌었어?" 


"...... 응." 


"그냥 돌아다녔는데?" 


"... 응!" 


"...... 그래, 뭐." 

"히나가 꼭 완치한다면, 얼마든지 해줄게." 


"정말?" 


"약속할게." 



히나도 상당히 많이 바뀌었단 말이지. 

예전에는 이런 이야기도 부끄러워해서 마다하는 녀석이었는데... 


이제는 이렇게 용기 있게 소리도 지르고... 아으, 내 귀... 



"아, 그나저나 선생님..." 

"혹시, 22일 날 시간 될까?" 


"22일?" 

"아마, 시간이 빌게 분명하긴 한데..." 


"그때, 치나츠의 생일인데 말이야..." 

"모두랑 워터파크에 가기로 했어." 


"... 워터파크? 아, 밀레니엄의..." 


"응, 거기야." 

"예약을 한 자리 더 해버려서..." 

"자리가 남아서 그러는데... 같이 갈래?" 


"... 내가?" 


"응, 그리고 그전까지는 꼭 나을 테니까." 

"나랑 같이 수영복 사러 가자." 

"난 예쁜 거 잘 모르니까..." 


"...... 그건 좀..." 


"거절하는 거야?" 


"... 아니... 형식적으로 생각해봐." 

"여자 수영복을 사러 가는데 남자가 따라가면..." 

"그거대로 이상하지 않아?" 


"난 별로 상관없는데 말이지." 



나는 히나의 말에 반응한 나머지, 홍조를 띠며 말했다.



"아니, 아니... 내가 상관있거든!?" 


"그럼 수락한 거다?" 

"이만, 잘까." 


"어딜봐서 수락한거야!?"

"하아..."

"진짜, 적응 안 되네... 어쩌다가 바뀐 거야, 히나는?" 



역시 적응이 안돼... 

얼마 전까지, 쑥스럼쟁이의 히나가 맞는 거야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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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다시 올린 이유는, 14.5화 댓글 보시는게 빠릅니다.

더 이상 언급하기에는 진절머리 남.



밀린만큼 빨리 올릴 예정.

~ 4/3 안에 하나 더 올라감.


히나 편은 기존대로 아마 1~2편 더 올라갈 것 같은데.

써지는거 보고, 아마 정할 것 같네요.


즉석 소재라서 다음 편까지는 분량 별로 안 나올듯.


다음 편으로 바로 넘어가는 장면이라 

끊어진게, 조금 이상하게 보일수도 있음.


이번편은 해석 할만한게 딱히 없는 

일상 + 1장에 대한 히나의 이야기 편 + 3장 떡밥 편이라서

그저그냥 킬링타임 용으로 보시면될듯 

그 대신에 빨리 올리도록 노력하겠스.

+2,3일 정도 늦음. 

분량 합쳐서 나갈 계획이라 양해바람.

→ 목요일날 2개 올라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