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fter 1부 ] 아비도스 대책위원회 편
1화 2화 3화 3.5화


[ After 2부 ] 태엽 감는 꽃의 파반느 편

4화 5화 6화 6.5화 7화 8화 8.5화 9화 10화 


[ After 3부 ] 에덴 조약 편

제1장, 「키보토스 정상회담」

11화 12화 13화 14화 14.5화


제2장, 「여름의 끝, 선도부의 이야기」

15화 16화 16.5화


제3장, 「검은 상자 - 메인 : 히무로 세나 

*17화 - 용기와 고백의 실크로드



[ !!! ] 메인 스토리, 에덴 조약에 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른한 점심 , 자기 전 오후는 시청금지. (흐름 끊기면 재미없습니다.)

*파트마다 텍스트를 따로 사용하기에, 실수를 알려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일부 캐릭터와 스토리들은 공식 스토리와 연관되지 않음을 알려드립니다.

*일러스트 ART MUG - 블락나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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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롤로그」





조금만 지나도 떠올리며 아른거리는 이 기분, 

오늘도 좁은 방 안에 웅크려있는 나를 바라보고서. 


따스한 봄의 태양이 저무는 노을 아래에서 

조용히 사라진 그녀를 찾으며, 

목소리에 담긴 진심을 무시한 채, 나는... 



"... 놓으세요." 

"걸리적거리니까." 



팔을 잡고 있던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서, 



"... 그래도, 같이 가자." 



라고 말하는 그녀가 손을 다시 잡으며.



"... 세나..." 



진심을 전하기 무서웠던 나이. 

그렇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성숙하지 못했던 때. 


그곳에서 도망친... 저는... 사실...... 


나 자신만이 제자리에서 걸으며, 

쌓여버린 감정만 썩어가는 그때....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좋을 텐데 말이죠... 


돌아오고서, 1년이 흘러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썩어가는 소망이 있다고 아무리 외쳐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지금의 저는... 저 자신이 없었으니까요. 



"상관없잖아, 그딴 거!" 


"..........." 



빨리 죽여 돌라고 아무리 외쳐도... 이 남자는... 

솔직한 제 자신이 웃는 것처럼... 다시... 



"속죄라는 건 말이야... 살아서 하는 거야." 

"죽어버리면 속죄고 뭐고 없는 거라고―――!!" 



모자라며, 나약한 저 자신이 싫다며 소리쳐도 

결국 문을 열기 전 제자리로 돌아오는 시절의 저는... 



"... 미카..." 


"비켜, 선생님." 

"지금 당장 죽여버릴 거니까." 



그날의 봄이 다시 돌아오게 된다면, 

그녀가 잡았던 손을 떠나버리지 못하게... 다시...



"마지막 경고야, 비켜." 


"... 절대 안 돼." 


"... 비키라고." 


"... 싫어." 


"비키라고――――――!!!" 


"싫어――――――!!!!" 


"........." 


"...... 그 증오가 너를 만족시킬라고 생각해?" 


"... 닥쳐." 

"그저 나는... 복수만 하면 그만인 거야." 

"2년 전, 그 상자에서 살아 나온 단 한 가지의 이유니까." 

"그러니... 진짜 마지막 경고야." 


".............." 


"머리를 박살내기 전에, 비켜." 


"...... 싫어." 



이 사람은... 너무나도 빛나면서도 색이 뚜렷하다. 

회색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나에게 보이지 않은 것들이... 그 사람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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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끼룩~ 끼룩~'


갈매기들이 울어대는 동시에, 벽에 파도가 부딪치는 소리. 

파도와 함께 오는 바닷바람이 시원한 나머지 상쾌하기까지 했다. 


「8월 25일」 

오후 1 : 12 - 이에구사 섬. 



"와아! 파도다! 파도!" 

"나기 쨩! 저거 봐봐!" 


"역시, 섬의 파도는 엄청 크군요." 



미카와 나기사도 배에서 내리자, 

뒤에 있는 아즈사와 구급의학부도 내리기 시작했다. 


눈앞에는 파도가 몰려오는 풍경이 보이고 있었다. 

그 풍경을 잠시나마 감상하고 있을 때, 아즈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내가 왜 이런..." 


"... 하하, 뭐 어때 기분전환 겸 온 거기도 하고..." 



키보토스에 있는 이에구사 섬으로 온 이유는 단 하나. 


「에덴 조약」으로 이루어진, 

트리니티와 게헨나의 평화유지를 위한 「합동 합숙」. 


뭐, 쉽게 보자면 친목회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즈사는... 

세이아가 가기 싫다고 해서 대신 온 거라고... 


아무리 그래도, 세이아 녀석... 

평소에 잘해준 게 고마워서 넣은 건데... 이러기 있기냐? 


라고 생각할 때쯤, 미카가 나에게 팔짱을 끼웠다. 



"저기 봐, 선생님!" 

"파도 진짜 크다구!!" 


"알아, 그나저나 좀 놔줄래...?" 

"이상한 게 닿고 있거든?" 


"나 꿀릴 정도는 아닌데?" 

"후훗, 의식한 거야?" 


"이 녀석이..." 



키보토스의 여름은 하늘을 비추는 빛의 고리 때문에 

9월 중순까지는 28도가 유지된다고 한다. 


더위 속에서 미카도 답답했는지, 걸치고 있던 로브를 벗고 있었다.



"안 그래도 더운데... 이 변태가...!" 


"힝... 과격해라." 

"숙녀를 밀쳐내도 좋은 거야?" 

"막 이래!! 푸하핫!" 


"아악?!" 



미카는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내 등을 때렸다. 


이 자식... 평소에는 케이크 밖에 머리에 안 차있으면서, 

갑자기 나한테 이러는 이유가 뭐야!? 


이번 한번 만이 아니라, 배에서도 "막 이래!!" 라면서, 

나에게 10번은 넘게 풀스윙을 갈겼으니까 말이지... 



"..........." 


"오, 세나." 



미카가 다시 나기사에게 돌아가고 

때 마침, 배에서 나오고 있는 세나에게 인사했다. 



"...... 대체 무슨 생각입니까?" 


"엥? 뭐가?" 


"... 저희를 합동 합숙에 넣은 이유가..." 


"평소에 제일 고생하잖아." 

"그래서 넣은 것뿐인데?" 


".........." 


"뭐, 키보토스에서 제일 유명한 섬이잖아." 

"이참에 피로도 풀고 하는 거지~" 



세나는 나를 더 째려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사전예고를, '사전'을 빼고 해서 그런가... 

뭐, 세나는 평소에도 나를 싫어하니까, 별 수없나. 


원래대로라면 「합동 합숙」은 

트리니티의 티 파티와 게헨나의 선도부가 이루어져야 했다. 


그렇지만, 세나를 포함한 

구급 의학부의 3명이 선도부를 대신해 온 상태였다. 


그 이유는... 8월 22일 날 발견한 수첩 때문이었다.





「8월 22일」, 3일 전.

오후 8 : 23 - 집



일정만 가득한 하얀색 수첩에는 

「8월 29일 - 자살 예정일」이라고 적혀있었다. 



"29일이면... 앞으로 7일...?" 



이 수첩을 주운 것은 구급의학부실. 


나는 다음날 아침이 되자, 

바로 샬레로 출근하지 않고 게헨나의 구급의학부실로 뛰어갔다. 





「8월 23일」 

오전 9 : 14 - 게헨나의 구급의학부실 



"흐음... 수첩 말인가요?" 


"응, 일정을 수첩에 적는 버릇이 있는 학생...!" 

"그런 학생이 있을까?" 


"저로썬 말이죠... 으음..." 

"아, 그런 거라면 유마?" 


"... 유마?" 


"네, 저희 부원이에요!" 


"아니, 아니! 그건 알고 있고...!" 

"수첩을 일정에 기록하는 사람, 다 말해주라!" 


"... 제가 아는 거라고는 유마랑 키코... 정도일까요." 

"그리고... 부장?" 


"... 세나?" 


"요즘은 다 핸드폰으로 일정을 적기도 하니까요." 

"특별히 수첩을 적는다고 하면... 이 3명밖에 없겠네요." 



그 뒤로는 전혀 알 방도가 없었다. 

구급의학부실에서 물품 정리하던 유마라는 녀석에게도... 



"저기, 혹시 수첩 잃어버렸어?" 


"히익! 남자!" 


"...?" 



구급의학부실에서 보고서를 쓰고 있던 키코라는 녀석에게도... 



"... 수첩인가요." 

"아뇨, 수첩을 잃어버린 적은..." 


"... 아하." 



그리고 야간 순찰을 돌고 있던 세나를 붙잡아서도... 



"순찰 중입니다만." 


"... 허억... 너 왜 이리 빨라...?" 


"... 순찰 중입니다." 


"너 일부러 빨리 걸었지!?" 

"흐헉... 어우, 숨차." 


"하아..." 

"... 용건만 말하세요." 


"세나, 혹시... 수첩 잃어버렸어?" 


"...... 수첩?" 

"저는 수첩을 가지고 다니긴 합니다만..." 



세나는 주머니에 회색 수첩을 꺼낸 뒤, 보여주었다. 



"........." 


"........?"





「8월 23일」 

오후 8 : 12 - 집



"하아... 결국엔 찾지도 못했잖아." 



나는 이불에 누운 뒤, 하얀색 수첩을 들고서 생각했다. 


이렇게 주인을 찾는 이유가 있냐고...? 


그야 그것도 너무나도 당연한 게... 

자살을 일정까지 적어놓은 걸 보고서, 어떻게 모른척하냐고... 



"... 자살 말인가." 

"그러고 보니, 나도... 수억 번은 생각했었지." 



아마... 수첩의 주인은 쉽게 찾을 순 없겠지. 

자신도 그 내용에 뭘 적었는지 알고 있으니, 쉽게 나오진 않겠지. 


그렇다면... 6일 동안... 찾아야 한다는 건가. 


왜 그런 결심을 했는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는, 귀로 들어야만 납득되겠어. 


자살이라는 게 쉽지 않은 거라고는 알고 있다. 

물론, 나도 많이 해봤으니까... 자살에 대한 생각을. 


그렇지만, 이건 경우가 너무 달라. 

나는 내 편이 한 명도 없었으니까,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한 명도 없었으니까, 

그렇게 밖에 생각하지 못했지만... 이건 달라. 


물론 학생을 책임지는 건, 선생님의 역할이지만... 



"... 확실히... 뭔가 근본적인 대답을 할 수 없달까." 

"하아... 어렵구나." 



솔직히 말해서, 수첩의 주인을 찾는다고 해도 

막을 명분이 안된다고 생각한다. 


드라마 장면들처럼, '그러면 안돼!' 같이...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 말이야. 


자살은... 삶의 의미를 완전히 잃었을 때 생각되기도 한다. 

더 이상 살아갈 의미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생각되는 것. 


나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악착같이만 버텨본 나로서는 도저히 납득시킬 방법이 없겠는 걸. 


수첩의 주인을 찾아서 '자살은 안돼!'라고 외쳐봤자... 

그런 건, 일시적인 한차례의 대처법일 뿐. 

삶을 살아가는 의미를 다시 부여해주는 것 말곤, 방법이 없겠지.



"... 하아, 어둡구나." 



그래도... 그래도 말이야. 

이런 걸 본 이상은... 모른 척할 수는 없잖아? 


일단... 찾아내는 거야. 

그리고... 어떻게든 살아갈 이유를 깨닫게 해 주는 거야. 


반드시 찾아내는 거야... 29일 전에...! 





「8월 25일」, 다시 현재. 

오후 1 : 12 - 이에구사 섬.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하나. 


수첩을 가지고 다닌다는 후보 3명을 선도부를 대신해, 

「합동 합숙」을 참가시켜, 철저하게 알아내는 것. 


이에구사 섬에서 진행되는 합숙은 9월 2일까지. 

정말 3명 중에 한 명이라면, 29일의 예정대로는 할 수 없겠지. 


그러니까... 찾을 수 있어, 29일까지. 

아니, 찾아야만 해... 남은 시간까지... 


수첩을 가지고 다닐만한 사람은 3명. 

구급의학부원인 유마와 키코, 그리고 부장 히무로 세나. 


엄연히 말하자면, 이건 도박이다. 

구급의학부에서 주운 수첩이라고 해도... 

원래의 구급의학부원은 8명이지만, 3명만 오게 된 것. 


있기를 빌어야겠지... 지금 상황에서는...



'끼룩~ 끼룩~' 


"... 멀뚱히 서서 뭐 하시는 겁니까?"


"아, 응." 

"얼른 가자!" 



다들 호텔이 있는 곳으로 향할 때, 

세나가 가만히 서있는 나를 불렀다. 


일단은... 한 명씩 알아봐야겠지... 수첩의 주인을.





「8월 25일」 

오후 1 : 35 - 호텔



「합동 합숙」으로 오게 된 인원은 총 7명. 

트리니티의 나기사와 미카, 어쩔 수 없이 온... 아즈사. 

그리고 게헨나의 구급의학부 유마와 키코, 부장인 세나까지. 


나, 선생님까지 합하면 7명이 되는 인원이었다. 



"큼, 큼!" 



나기사는, 총 8일이 진행되는 「합동 합숙」의 리더를 맡았다. 

사실은... 내가 억지로 하게끔 만들었지만... 


나기사는 시간이 적힌 보고서를 

손에 들고서, 모두에게 일정을 말해주었다. 



"일단 올라가셔서 짐을 푸시고, 

2시 25분까지 로비로 집합하겠습니다." 

"그리고 2시 30분부터는 특별수업이 있을...――" 


"나기 쨩, 수업 진짜 하는 거였어!?" 


"미카, 제가 말하고 있잖아요..." 


"아니, 그래두우... 모처럼 여행인데" 

"여기까지 와서 수업받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안 그래, 선생님!?" 


"노는 거야 나도 좋지만, " 

"그렇게 해버렸다간... 샬레에 쓸 보고서가 곤란한데?" 


"그런 거야 날조하면 되잖아!" 

"여기 있는 학생들이 들은셈치고!" 



나기사의 옆에 있던 미카는 나에게 다가와 이리저리 소리쳤다. 


아니... 그래도 말이야, 샬레의 보고서는 내 생명줄인데? 

똑바로 쓰지 않으면, 내가 오히려 린한테 죽는 상황이... 


그때, 나기사는 미카에게 소리쳤다. 



"미카 양! 제가 말하고 있다고요!" 

"입 안에 초코 퐁듀 롤케이크를 쑤셔 넣어 버립니다!?" 


".........." 

"... 그렇지만, 나기 쨩도 신난 거 같은데." 


"... 맞아, 나기사도 선글라스에 하와이 패션이잖아." 



옆에 있던 아즈사도 미카의 말에 동요한 듯, 

나기사의 말에 반박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나기사도 많이 신나긴 했나 보다. 

선글라스에 하와이 그림 와이셔츠라니... 40대 아저씨냐고. 



"이, 이건! 기분 전환입니다!" 


"헤에~ 기분 전환인데, 캐리어를 5개나 가져와?" 


"... 나기사, 보기 흉하구나." 


"아즈사! 똑바로 회장 존칭을 붙이라고요!" 


"싫어, 여긴 학교가 아니잖아." 


"이이익...!!" 



지난 워터파크도 그렇고... 여기도 그렇고... 

요즘 학생들은 혈기왕성 하구나, 힘들어 죽겠네...



"자, 자... 다들 진정하고." 

"일정대로만 들어주면 자유시간은 줄게." 


"... 자유시간?" 


"응, 자유시간." 

"그 초콜릿 말고..." 



미카는 내 말을 듣자, 천천히 흥분을 가라앉혔다. 


내 말을 쉽게 알아들었나 보네. 

뭐, 이에구사 섬은 구경거리도 많고 하니까... 

다들 자유시간을 간절히 원하는 거겠지. 



"그럼, 각자 호실에서 짐 풀고 2시 25분까지 모이자."





「8월 25일」 

오후 1 : 42 - 701호



이에구사 섬에 있는, 평점이 4.8점인 

호텔에서 각 호실마다 2명씩 자리를 배치받았다. 


중요한 건, 나는 남자인 선생님이니까... 

701호실, 전체를 혼자 쓸 수 있어서 완전 편하다는 것! 


이건 나에게 있어서 휴식이나 다름없지!! 

최근 한 달 동안 엄청난 일이 있었는데... 드디어 휴식을... 



'쾅―――――――' 


"선생님!" 


"... 에?" 



아즈사는 문이 부서지지 않을 정도로 힘 조절을 한 건지, 

문은 저런 큰 소리를 냈음에도, 다행히 벽에 무사히 달려있었다. 



"... 문 좀 살살 열지, 그래?"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 그럼?" 


"나, 선생님이랑 같이 자고 싶어." 


"뭐!?" 



아니, 뭐야 아즈사 녀석!? 

대낮부터 밤을 유혹하는 듯한 그런 단어는 쓰지 말라고! 

그거냐? 너도 히나처럼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 거냐!? 


그런 생각과 동시에, 

아즈사는 내 생각이 아니라는 듯, 상황을 설명했다. 



"도저히, 저 녀석이랑 같은 방을 쓸 수가 없어!" 


"... 저 녀석? 누굴 말하는 건데?" 


"... 단발에 흰발 말이야!" 


"세나를 말하는 거야?" 



5분 전,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각자 방으로 들어갈 때, 

아즈사와 세나는 한 마디씩 대화를 주고받았다. 



"... 잘 부탁해, 히무로라고 했나?" 


"........." 


"... 어이, 말을 하면 듣지?" 


"...... 트리니티 학생은 원래 이런가요?" 


"뭐?" 


"그쪽은 열여섯, 저는 열일곱." 

"예의를 기재하면서 인사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닙니까?" 



――― 이 녀석... 짜증 나는 스타일이네. 

그래도, 참자... 히후미랑 사고 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니까.



"... 미안하군, 사과하지." 

"잘 부탁해, 히무로 부장?" 


"... 알아서 하시죠." 



그때 아즈사에게는 밧줄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 너 보기보다 성격 더럽구나?" 


"아리우스 분교에서 파견된 사람에게는 듣고 싶지 않네요." 


"... 뭐?" 



세나는 아즈사랑 나눈 대화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캐리어를 놓을 자리를 찾고있었다. 



"너 게헨나 학생이잖아." 

"... 나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거야?" 


"... 음." 

"제가 말실수를 한건 가요?" 

"그만한 일이 있었는데, 모를 리 가요." 


"........." 

"... 너 진짜 짜증 나는 녀석이구나." 



다시 현재로 돌아와, 아즈사는 선생님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아무튼! 난 그 녀석이 싫어." 


"아즈사... 너 말이야." 

"성인 남성이랑 같이 자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는 거야?" 


"......... 음." 

"확실히 나는 각오가 안 되어 있을지도." 


"... 그런데 아즈사." 

"원래 아즈사가 그런 걸 신경 쓰는 타입이었나?" 

"다짜고짜 이유도 설명 안 해주고 싫다고 하면, 나도 곤란해." 


".......... 괜찮아, 선생님." 

"난 아기를 가질 준비가 됐어." 


"......... 예?" 


"응?" 

"같이 한방에 자도 된다는 소리 아닌가?" 


"난 분명, 상황을 설명한 것 같은데..." 

"... 왜 그렇게 되는 거야!?" 


"하나코에게 들었어." 

"한밤 중, 같은 잠자리에 남녀가 모이면, 아기가..." 


"멈춰!! 멈춰―――!!!" 


"?" 



하나코 녀석... 뭘 가르쳐준 거야!? 

아즈사도 말이야... 그런 건 스스로 알고 있는 나이 아니냐고!? 


이, 이대론 안된다... 절대로 같이 잘 수 없어. 



"어쨌든, 나는 절대 허락 못해." 

"난 나 혼자 방을 쓸 거니까――!!" 


"... 욕심쟁이구나, 선생님은." 

"직접 뺏어야겠는걸."

"그러니, 내 주특기 중에 하나를 써야겠어." 


"... 주특기?" 



아즈사는 주머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그리고 기세 등등한 표정으로 나에게 보여주었다.



"이거." 


"... 너, 너...!" 

"그걸 어떻게!?" 



아즈사가 나에게 보여준 사진은, 

워터파크에서 거래로 이루어진 히비키의 바니걸 사진. 


어떻게 아즈사가 저걸 가지고 있는 거지...? 



"샬레의 사무실에 찾아갔을 때, 책상 위에 있더라고." 

"혹시 몰라 챙겨뒀었는데, 이렇게 쓰일 줄은..." 


"그, 그게 뭐냐아아~~" 

"야, 야하다아앙~~" 

"나는 모르겠네에에엥~~" 


"... 역시 그렇게 나오는구나." 

"그럼 이렇게..." 


'칙―――' 



아즈사는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히비키의 바니걸 사진을 태우기 시작했다. 



"자, 잠깐!!! 내 보물 1호 태우지 마!!!" 

"아니, 애초에 학생 주머니에서 왜 라이터가 나와!?" 


"탄피 관리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거야." 

"흡연 따위 하지도 않으니까 걱정 마." 

"어떻게 할 거야, 선생님?" 


"...... 지, 진짜로오...!" 



충고 삼아 말해두는 거지만, 

나는 절대로 학생에게 진 게 아니다. 


내 보물 1호를 지키기 위해서, 그저... 자존심을 판 거다! 



"선생님이 왜 여기로 오신 겁니까...?" 


"... 안녕, 세나." 


".........."





「8월 25일」 

오후 3 : 02 - 호텔 2층의 연수실



"편의성이라는 게 합리적으로 작용된 거기도 하고...――" 


"쿠울... 쿨..." 


"...... 미카 양! 예의는 지키라고요...!" 



나기사는 자신의 어깨에서 편히 골고 있는 

미카를 작은 목소리로 알렸다. 


호텔의 지하층인, 강의실에서 수업을 진행 중인 나는 

몇몇 아이들이 집중하지 못할 것을,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야, 당연하지... 누가 여기까지 와서 수업을 들어? 

애초에 이 수업을 제시한 장본인은 다 떠넘긴 상황이고...! 


지금 내가 진행하고 있는 수업은 「협동심」 

아무래도 평화 유지를 위한 합숙이니까... 

세이아도 그쪽으로 수업해주길 원했던 거지. 


그래도... 미카와 유마, 키코를 빼면, 

모두가 나를 향해 열심히 바라봐주고 있었다. 


나기사와 아즈사, 세나의 집중하는 모습이 한눈에 보이고 있었다. 



"... 그래서, 마음이 단단히..." 

"연결되지 않았다를 증명하는 거기도 한다..." 

"힘이 없는 사람들끼리 합쳐도, 그건 협동이라고도 하지만." 

"뭐, 현실은 결국 강한 사람만 남으니까 말이지." 


"... 그럼, 협동은 의미 없다는 것 아닙니까?" 


"왜 그렇게 되는 건데?" 



세나가 손을 들고서, 재차 나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강한 사람만이 남는다..." 

"그 말은 즉슨, 약자들이 모여도 강자에게 잡아먹힐 뿐이다." 

"이 말씀 아닌가요?" 


"역시 세나, 좋은 질문이네."



내가 모두에게 설명하고 있던 수업의 내용은, 

「링겔만의 줄다리기 이론 」. 


한 명, 한 명이 서로를 도와갈수록, 

개인마다의 서로에 대한 의존도와 기여도가 상승한다... 


이건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 상식'. 

여기서 말하고 있는 '링겔만의 상식'은 이렇게 되어있다. 


협동이라는 체제가 움직일 때, 

원래대로라면, 오히려 의존도와 기여도가 떨어지게 되어있다. 


쉽게 말하자면, 1:1 대결 구도에서 줄다리기를 했을 때, 

승리 욕심과 개인의 감정 때문에 100% 힘을 발휘하지만, 

다수가 참여한 줄다리기라면 힘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나 하나쯤이야, 내가 안 하면 누구라도 하겠지!'라는 

생각들 덕분에, 개인이 집단에 속해 있을 때에는 자신의 힘을 최대치로 내지 않는다는 것.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협동체제라는 것은 곧바로 무너지게 되어있는데... 


결국에는 이것도 초현실적으로 따져보자면, 

'나 하나쯤이야!'라는 쪽에서 강한 사람이 있으면 그만인 거다. 


팀 전투 훈련에서, 자신의 팀에 호시노가 있으면 

'이건 무조건 이겼다!!'...라는 느낌이라고 보면 된다. 



"강한 사람만이 살아남는 세상이라." 

"뭐, 강자가 살기 쉬운 세상인 건 맞지만."

"....... 애초에 강한 게 뭔데?"


"...... 네?" 


"똑같은 존재일 뿐이야." 

"약자가 있기에, 강자가 있는 거야." 

"약자라는 존재가 없으면 강자라는 존재도 없는 거고." 



세나가 질문한 것은... 아마도 

'강자가 있다면, 약자는 공존할 수 없는 건가?'라는 의미겠지. 


그렇지만, 세나의 질문은 조금 미숙했다. 

'약자가 있기에, 강자가 공존한다.'가 정답이기도 하니까.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읽고 있기에... 

즉, 모순 투성이의 정답에 불과하다는 거다.


서로 살아가는 건, 똑같으니까 말이지.



"... 제가 말한 건, 조금 다릅니다만." 


"... 응?" 


"... 약자와 강자가 공존하도록 서로 돕는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힘이 없는 자는 그 모습 그대로... 

섭리에 당해야만 하는지의 질문입니다." 


"오..." 



나는 세나의 질문을 다 듣고서, 조금은 감탄을 나타냈다. 

키보토스에서 많은 전투가 발생한다고 해도... 

17살, 3학년인 고등학생이 가지기에는 상당한 질문 수준이었다.


강자와 약자, 나눠진 의미를 알고서

당할 수밖에 없는 진정한 섭리에 대해 질문한 것이었으니까.



"세나, 네가 약자라면 어쩔 거야?" 


"... 제가 약자라면 상황마다 다르겠죠." 


"약육강식..." 

"강자가 약자를 취하는 것은 생존본능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약육강식은 끝나지 않는다...였나?" 

"...... 뭐, 조금은 웃긴 말이기도 해." 


"...?" 


"애초에 강자와 약자를 나누고 있으니까 말이지." 

"그럼, 약자는 모두 당해야만 하는가? 내 대답은 No야." 



세나는 내 대답에 다시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물론, 그걸 정하는 건 사람마다 다르니까 말이지." 

"하지만 강자와 약자, 그런 틀만 정해서는 살아갈 수 없어." 

"강자와 약자를 구별하기 전에, 존재를 알아보자는 거지." 


"존재... 말인가요." 


"그렇게 존재를 나눠봤자, 어차피 사람은 함께 살아가야 해." 

"그렇지 않는다면 삶의 의미가 사라지니까 말이지." 

"존재를 위해서라도, 강자와 약자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 

"강자는 약자에게 할 수 있는 일을, " 

"약자는 강자에게 할 수 있는 일을... 각각 맡아가는 거지." 

"이게 내가 생각하는 강자와 약자의 의미성이야." 

"조금은 질문의 해답이 되었을까? 세나." 


"...... 조금은 말이죠." 

"그래도 선생은 폼이 아니군요." 


"어이." 


"풉!" 



세나의 말을 듣고서 나기사는 작은 웃음소리를 날렸다. 


히무로 세나 씨... 그 말은 처음부터, 

제가 모자란 사람으로 보였단 말씀이잖습니까...! 



"어쨌든 협력이라는 건 살아가면서 있으면 좋다는 거야." 

"그걸 명심해두고, 잘 새겨놓도록." 


"... 좋은 수업이네요." 

"역시 보충수업부의 선생님일까요?" 



나기사는 나에게 조용히 웃으며 칭찬해주었다. 


매번, 보충수업부에서 했었던 강의방식이 먹힐 줄이야... 

사실은 나기사 덕분에 가르치는 실력이 늘었기도 하니까. 


조금은 뭐, 고맙다고 해둘까.



"그럼, 선생님." 

"약자 쪽에 강자가 없다면 어떻게 되는 거야?" 


"... 음?" 



그때 아즈사가 나에게 질문을 던져왔다. 



"... 약자 쪽에 강자가 없다... 라." 

"조금 날카로우면서도 매서운 질문이네, 아즈사." 


".........." 



강자와 약자, 사실상 우리 현대사회에서도 

이미 알려진 유명한 편 가르기 종목이기도 하다. 

구성원으로만 묶여있는 사회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아즈사의 질문은 강자와 약자, 편이 갈려지면 어떻게 되는가? 

... 일반적인 상식선에서는 분명히... 평화롭다가 맞겠지.


그렇지만, 이건 상식선이 아닌 현실의 시선. 

약자는 무조건 선하고, 강자는 무조건 악하다는 사회에서 

강자와 약자를 구분해버리는 우리들에게는 조금 어려운 수준이다.


하지만... 나는 '약자'로 살아왔다. 

한 곳에 위치해본 나의 대답은 충분히 전해줄 수 있겠지. 



"... 흔히 약자들은 배려의 대상이 되기 쉽고, " 

"강자보다는 약자에게 공감을 하도록 되어있지만..." 

"... 뭐, 거기까지는 자연스럽다고 생각해." 

"그렇게 되어있는 상황에서 약자만 남는 다라... 

오히려 강자가 생기는 현상이 발생하지 않을까?" 


"강자가 생긴다고?" 


"약자들 속의 강자 말이지." 


"음... 무슨 말이야?" 


"아까 말한 것처럼, 결국 존재를 나타내는 말이야." 

"서로가 있었기에, 서로가 있는 거지." 

"말 그대로 계속 이어나갈 수 있다는 거야." 

"물을 들어 올려도 줄어들지 않는 바다처럼 말이지." 


"....... 어렵구나." 


"... 그렇지만, 최소한 강자라는 입장에서는, " 

"약자들 속의 강자라면 기존에 있는 강자들과는 다를 거야." 

"옛날 말 중에, '오블리주'라는 말이 있는데..." 

"강한 힘을 가질수록, 책임을 가져야 하는 힘이라고 뜻해." 

"약자들 속의 강자라고 해도, 그 힘은 쓰기 나름이지." 


"... 오블리주... 프랑스의 단어구나." 


"알고 있구나? 아무튼..." 

"약자들만 있다고 해도 상황 나름이다... 너무 간단하려나." 

"생겨버릴 수밖에 없는 자연 현상이라고 해도 좋겠네."

"아즈사, 이해됐을까?" 


"응, 어렵지만... 조금은 이해되었어." 



아즈사는 조금은 납득한 표정을 짓고서 말했다. 


그나저나... 저 녀석들은 아직도 자는구만. 

BD로 수업하는 시대에, 이런 수업은 역시 무리 일려나. 



"이쯤 하도록 할까, 수업이 길면 재미도 없고 말이야." 


"그래도 의미는 있었답니다?" 

"이런 깊은 내용의 수업이라니, 저는 찬성이에요." 



나기사 녀석... 이럴 때는 내 편이 되어주는구나. 

착한 녀석들도 좋지만, 나기사 같은 모범생도 좋은 걸...





「8월 25일」 

오후 3 : 46 - 길거리



약속한 대로 아이들이 수업을 얌전히 들어주었으니, 

이에구사 섬에서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는 자유시간을 주었다. 


이에구사 섬은 보기보다 작은 섬이지만 구경거리는 

엄청 많다고 하니까, 혼자 여러 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 호오, 길거리가 조개로." 



조개껍데기로 잔뜩 꾸며놓은 길거리를 보고 있었다. 


햇빛에 반사되는 영롱함이 길거리에 

발을 내디딜 때마다, 기분은 조금 환상적이라고 해야 할까... 



"그건 그렇고... 여기는 구경거리가 많긴 하구나." 


"이에구사 섬은 확실히 예쁘니까." 


"그렇지? 그럼 시로코도 나랑 같이 걸을래?" 


"... 응, 좋아." 


"가 아니라!!!" 



시로코가 라이딩 전용 체육복을 입고서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아니, 잠깐... 애초에 시로코가 왜 여기 있는 거야? 

저 몸에 딱 맞는 사이클 저지는 왜 입고 있는 거고!? 



"... 시로코, 네가 왜 여기 있어?" 

"그리고 그 사이클 저지는 뭐야?" 


"픽업 기간이라서 말이지." 


"... 예?" 


"아, 응." 

"이건 말이지..."





「8월 24일」, 하루 전.

오후 2 : 14 - 아비도스 대책위원회실



"아야네 쨩~ 나 그만하면 안 돼~?" 


"누구 때문에 업무가 밀린 건데요!!" 

"애초에 미리 해두셨으면, 주무시게 내버려두는 거잖아요!" 


"으헤~ 엄격해~" 


"자, 시로코 선배도! 얼른!" 


"....... 응." 



오늘도 평화로운 아비도스 대책위원회실은 

땡땡이의 벌로 가득 찬 아야네의 불똥이 튀고 있었다. 


무더운 여름 속, 에어컨도 하나 없는 

대책위원회실에서는 호시노가 한탄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말이야~ 에어컨 하나는 살만하지 않을까아~?" 

"너무 더워서 말이야... 이 아저씨 진짜 죽는다고오~" 


"우리가 에어컨 살 돈이 어딨어!" 

"부채로 버티란 말이야 부채로!" 


"으헤... 그렇겠지...?" 

"세리카 쨩은 의외로 짠순이야..." 



호시노의 말을 들은 시로코는 

업무 보고서를 한참 바라본 뒤, 모두에게 입을 열었다. 



"바다... 어때?" 


"바다 말인가요." 


"오호, 시로코 쨩이 웬일이래~" 


"시로코 선배가 바다를...?" 

"그보다 아비도스에서 바다는 너무 멀지 않아?" 


"차라리, 여기서 가까운 이에구사 섬이 어떨까요~?☆" 



노노미도 기관총의 손질을 멈추고서 모두에게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자, 세리카도 무언가 떠오른 듯 입을 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선생님도 이에구사 섬으로 간다고 연락 왔던데."


"..........." 


"..........." 


"..........." 


"... 어라? 왜 이래?" 


"선배들...?" 



호시노와 시로코, 노노미는 세리카를 향해 노려보고 있었다. 



"... 아야네, 나 뭐 잘못한 거 있을까?" 


"... 저도 잘..." 


"그걸~" 


"왜." 


"이제 말하는 건데요!?" 


"우, 우왓!?" 



호시노와 시로코, 노노미까지. 

무언가 짜 놓은 듯, 세리카에게 차례대로 큰소리를 내뱉었다. 



"그, 그렇게 화낼 일이야!?" 


"... 으헤... 세리카 쨩은 선생님이랑 사귀는구나..."


"왜 그렇게 되는 건데!?" 

"그나저나 그런 변태랑 사귄다니, 절대 그런 일은 없거든!?"


"그럼, 여기서 세리카 쨩은 탈락!" 


"ㅁ, 뭐!? 호시노 선배에에에에...!" 


"... 부러워, 세리카." 


"그러게요, 저에겐 답장 한 번을 안 주시던데." 

"... 잠깐, 우리가 직접 보러 가면 되지 않을까요?" 


"... 노노미." 


"응응!" 


"좋은 생각이야."





「8월 25일」, 다시 현재.

오후 3 : 56 - 길거리



"그래서 시로코는... 여기 근처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 

"음료를 구입하려고 상가까지 내려온 거라고?" 


"하나 빼먹었어, 선생님." 


"... 응?" 


"같이 걷기로 했잖아, 하루 종일." 



뭔가 '하루 종일'은 내가 말한 기억이 없는데... 

나 기억상실증에 걸린 거구나? 그런 거지? 


하여간... 아비도스 녀석들은 집착이 심한 느낌이랄까. 

가깝다는 이유도 있지만, 내가 있다는 이유로 여기까지 오다니... 



"그렇게 만나 싶었으면 전화라도 하지 그랬냐...?" 


"... 난 전화했어." 

"선생님이 안 받을 뿐인 거지." 


"...?" 



허스키한 시로코의 목소리를 듣고서, 

주머니 안에서 핸드폰을 꺼낸 뒤 통화기록을 확인했다. 



"... 30통... 40통... 50통..." 


"응." 


"누가 이틀에 182통이나 전화하냐!?" 

"이건 그냥 집착이잖아!!" 


"선생님이 한 번이라도 받아줬다면, 나는 멈췄을 거야." 



어이... 모래 늑대 흰둥이. 

너는 일단 그게 문제야... 전화를 너무 많이 한다고! 


내가 시로코의 전화를 잘 받지 않는 이유는 딱 한 가지다.



―――`삐리리-♬♪` 


"여보세요?" 


'선생님, 좋은 아침.' 


"좋은 아침이야, 시로코." 

"시로코는 학교 가는 중이야?" 


'응, 이제 막 출발하려고.' 

'그러니까 끊을게 선생님.' 


"... 어?" 



정확히, 아침에 했던 전화 시간은 14초. 

그 뒤로도 질리지 않도록, 시로코는 계속해서... 



―――`삐리리-♬♪` 


"여보세요?" 


'응, 선생님.' 

'점심 먹었어?' 


"지금 먹고 있는 중이야." 

"시로코는 점심 먹었어?" 


'아니, 이제 막 먹으려고.' 

'그러니까 끊을게 선생님.' 


"...... 예?" 



뭐, 그 뒤로 무의미한 전화가 와도, 계속 받았지만... 

한 번은 업무가 쌓인 이유로, 못 받은 적도 있었다. 



"끄으아아..." 

"업무가 드디어 끝났네." 

"그나저나, 아까부터 주머니에 있는 폰이 울리... 헉!?" 


'위잉――――' 

'위이잉――――――' 


"포, 폰이 뭐가 이리 뜨거운 거야!?" 

"만질 수가 없잖아!" 

"어, 어!? 잠깐!? 바지에 불이 붙었잖아!?" 



뭐, 그 뒤로 수신 차단했다는 건... 시로코에게는 비밀이다. 



"아무튼... 시로코는 여기까지 와서도 자전거를 타는 거야?" 


"응, 여기는 섬이 이쁘기도 하고..." 

"바람도 시원하니까, 기분 좋아." 


"다른 애들은 어디에 있는데?" 

"그래도 모처럼이니 인사하는 게 좋겠는 걸." 


"........" 


"... 시로코?" 


"그건, 싫어." 


"... 응?" 


"선생님은 오늘 하루 종일 나랑만 걸어 다닐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허용할 수 없어." 



시로코는 자신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나에게 팔짱을 끼운 뒤, 이어 말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하루 종일 걷는 거야." 

"저기 위에 떠있는 태양이 저무고서도." 



아니, 아니... 스나오오카미 시로코 씨! 

그건 하루 종일... 아니, 평생을 같이 걷자고 말하는 거잖아요! 


위험한 이 녀석... 왜 눈이 돌아간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팔을 빼려고 하면 분명히 부숴버릴게 분명해! 

빼지 못하도록 힘 조절하는 게, 살기가 느껴진단 말이지...! 



"... 하아." 

"태양이 저물 때까지는 안돼." 

"1시간." 


"1시간 30분." 


"... 1시간 5분." 


"2시간." 


"... 1시간 10분." 


"5시간." 


"그러니까, 왜 늘어나는 거냐고!?" 


"하지만... 곁에 오래 있고 싶은걸." 


"........." 



시로코의 표정은, 길가에 버려진 강아지의 눈빛을 하고 있었다. 


불쌍한 게 아니라... 완전 초 예쁘다아...! 

예쁘면서도 목소리까지 허스키하니까, 

안 넘어갈 남자는 온 세상을 뒤져도 안 나오겠지만... 

더 이상 거절했다간 정말로 실망할 것 같고... 별 수 없나. 


나는 시로코의 투정에 한번 넘어가기로 마음먹었다. 



"... 저녁까지 만이야." 


"응, 고마워 선생님." 

"... 아, 그전에 잠시만." 


"응?" 


"... 숙소에 다녀올 테니까." 

"여기서 기다려야 해." 


"... 갑자기 숙소라니." 


"... 그, 냄새나니까." 

"어쨌든 금방 다녀올게." 



하여간... 의미를 알 수 없는 녀석이라니까. 

시로코한테 냄새 같은 건 하나도 안 나는데 말이지... 


나는 시로코도 기다릴 겸, 바로 앞에 있는 카페에 들어왔다. 


확실히 섬에 있는 카페인지라, 

'카라카라 오렌지 주스'라는 생과일류의 주스 메뉴가 있었다. 

나는 그 메뉴의 설명을 차근차근 읽기 시작했다. 


카라카라 오렌지, 빨간 과육의 오렌지. 

자몽이랑은 비슷하게 생겼지만, 신맛이 적고 톡 쏘는 맛이라... 


수업 때문에 살짝 피곤한 거 같기도 한데... 이게 좋겠는 걸.



"저기, 주문 좀 할게요." 


"네! 어서 오세... 엥?" 


"카라카라 오렌지... 주..." 

"얼라리?" 



내 앞에는 트리아가 또다시, 직원 역할을 맡고 있었다. 



"... 트리아." 

"너는 왜 항상 일하고 있는 거냐?" 


"후후... 운명의 장난도 참..." 

"뭐, 생활비는 벌어야만 하니까요." 


"일단...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여기 페이가 쌔서말이죠." 

"기본 시급의 2배이기에... 여기로 왔습니다." 



그런 간단한 이유인 거냐고... 

하여간, 마음에 안 들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녀석이다. 


이 녀석은 저택에서 만났던 공의회, 「제롬」의 일원. 

아리우스 분교에서 파생된 녀석이면서도, 트리니티의 적인 셈이다. 


저번 저택의 싸움에서는 없었지만... 

트리아... 대체 이 녀석은 무슨 생각인 거지? 

한 번도 빠짐없이 내 주변에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어. 


역시... 아즈사가 말한 대로, 내가 표적이라 그런 건가. 



"후후, 주문은 어떤 걸로 하시겠어요?" 


"... 카라카라 오렌지 주스, 2잔으로." 


"탁월한 선택이네요." 

"이에구사 섬은 카라카라 오렌지가 토산물이니 말이죠." 


".........." 


"... 무시인가요." 

"아니면, 다른 질문을 원하는 건가요." 



나는 트리아를 향해서 계속해서 주시했다. 

째려보거나, 노려보지는 않았다. 그저, 매번 학생들을 

보는 듯이... 일방적으로, 계속 주시하고만 있었다. 


그러자, 트리아는 한숨을 쉬며 나에게 재차 질문했다. 



"하아..." 

"검은 양복은 만나신 건가요?" 


".........."





「8월 23일」, 2일 전. 

오후 9 : 13 - 키보토스의 모처 



나는 문 앞에서 침을 삼키고만 있었다. 

하얀색 불꽃의 눈빛으로 바라보던 그 '공포'는 

아직도 내 등을 오싹하게 만들뿐더러, 긴장하게만 만들었다. 


나는 재차 숨을 몰아쉬고서, 문고리를 잡고... 내렸다. 



'덜컥――――' 


"오, 이게 누굽니까." 

"조약의 영웅... 선생님 아니십니까?" 


"... 헛소리는 그만두지 그래?" 


"... 섭섭하군요." 



아직까지도 오싹거리는 공포가 기억해내고 있었다. 

검은 형체에서 나오고 있는 하얀색 불꽃의 눈빛. 


그의 '의지'일까... 아님, 그의 '존재'일까. 


나는 고개를 양옆으로 돌려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서... 검은 양복에게 한 마디씩 내뱉기 시작했다. 



"트리아...라고 알려나?" 


"... 그녀를 말하는 거군요." 


"... 이 이름을 말하고서 물어보라고 하더군." 


"저번에 대한 빚이군요." 

"자신과 상관없는 사람에게 이렇게 넘기다니..." 

"뭐, 상관없겠죠... 그래서, 무슨 볼일이시죠?" 


"헤일로... 그것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어." 


"헤일로 말입니까." 

"선생도 어느 정도 아실 때가 되었죠." 

"... 좋습니다, 알려드리도록 하죠."



테이블에 앉아있던 검은 양복은 자리에서 일어나 설명하기 시작했다.



"... 지성,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특권." 

"그게 형체로 이루어진 것이 헤일로다... 

우리 게마트리아에서는 그렇게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헤일로가 가지고 있는 힘은... 

어디까지나 「상상을 초월하는 것」 정도일까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을 저희는 「신비」라고 부르죠." 


"... 그건 알아." 

"저번에 설명해줬으니까." 


"... 지난번에 말씀드렸던 「공포」는 말이죠." 

"어디까지나 저희의 관측론입니다." 

"호시노... 그녀를 삼으려고 했으만, 선생이 막으셨죠." 


"... 그래서?" 


"... 「신비」와 「공포」... 그리고 

아득히 넘어선 또 다른 것이 존재하죠." 


"... 또 다른 것?" 


"그건 바로 「울림」입니다." 


"...!" 



세이아가 말했던 것과 똑같이 말하고 있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채로 헤일로가 변하는 현상에 대해...



"헤일로에서 발견되고 있는 현상이기도 하죠." 

"기존에 쓸 수 있는 신비의 양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습니다." 

"다시 말해, 자신의 힘과 그릇은 정해져 있다고 보시면 되겠죠." 

"그런 자신을 한계 끝까지 몰아붙여,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또 다른 자신을 만든다... 그것이 바로 「울림」입니다." 

"몇 주전, 소라사키 히나와 미카모 네루가 그런 것처럼."


"........."


"아, 아, 걱정 마십시오." 

"이거야 원, 선생의 심기를 건드려버렸군요." 

"그런 표정으로 쳐다보지 말아 주십시오." 


"...... 계속 말해봐." 


"그런 효과가 일시적으로 나오는 것과 동시에, 

삼켜지기도 하는 겁니다. 마치, 「공포」에 휩싸인 것처럼." 


"... 무슨 말이야?" 


"부작용, 이라고 말하면 편하시겠죠." 

"자신만의 그릇... 그곳에 양이 가득 채워진다면 

발생하는 현상이지만, '나쁘게' 가득 찰 수 있다는 말입니다." 


"... 나쁘게?" 


"「신비」와 「공포」... 그것들과는 다르게, 

「울림」은 말 그대로, 자신이 이루자는 행동에 대답하는 것." 

"그것이 '좋은 면'인지, '나쁜 면'인지는 개인에게 달렸겠죠." 


"...... 그렇구나." 


"제가 아는 헤일로에 대해서는 여기까지 입니다." 


"... 그래, 더럽게 고맙네." 


"바로 가시는 건가요?" 

"... 너무 섭섭하군요." 



검은 양복의 말이 끝나자, 나는 문고리를 잡고 

나가려는 순간, 검은 양복은 다시금 나에게 말을 걸었다. 



"... 선생, 곧 악보가 완성될 겁니다." 

"쉽게 죽지는 말아주십시오... 당신은 제가 직접...―――" 


"――― 뭐라는 거야, 닭뼈 주제." 

"너랑 친해질 생각 없으니까, 다물지?" 


".............. 후후, 무례한 건 여전하시군요." 

"그래서 마음에 듭니다, 선생." 

"당신은... 그런 정신으로만 이루어낸 존재니까요."







==============


▣ 2.





「8월 25일」, 다시 현재.

오후 4 : 12 - 길거리



「신비」와 「공포」, 그것이 양립하고 있는 동안에 

헤일로에서는 「울림」이라는 현상이 발견되었다... 


그렇지만, 세나가 말한 것처럼

히나와 네루는 긍지의 한계를 이겨냈기에 나타난 현상...


헤일로의 힘이며, 미지의 힘인 것. 

즉, 자신들의 가지고 있는 「신비」를 도달했다는 소리다. 


검은 양복이 또 말한 것은... 

「울림」의 현상이라는 건, '좋은 면'과 '나쁜 면'. 


부작용...이라고 했던가.

자신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 같은데... 


솔직히... 신비고 공포고, 울림이고... 

나는 그런 걸 들어봤자 하나도 모르겠단 말이지. 


세이아를 한 번이라도 볼 기회가 있었다면, 

이 미스터리한 이야기도 마음껏 할 수 있을 텐데...



"선생님." 


"........." 



헤일로의 관한 것을 그렇다고 치고, 

얼른 수첩의 주인을 찾아야만...―― 



"선생님?" 


"... 아, 시로코." 

"수고했어, 이거 마셔." 


"응, 고마워 선생님." 



나는 카페에서 주문한 오렌지 주스를 시로코에게 건넸다. 

시로코도 무더위 속의 갈증 때문인지, 급하게 주스를 들이켰다.



"... 그런데 여기까지 와서 교복을 입어?" 


"응, 바로 출발한 거라서 옷을 준비해올 시간이 없었어." 


"뭔가 허전한 것 같은데..." 

"아, 목도리가 없구나." 


"응, 아무래도 이 더위는 나도 못 버티니까." 



시로코는 자신의 말이 끝나자, 바로 나에게 팔짱을 끼웠다. 



"저기, 너 말이지..." 

"... 아니다." 


"... 싫은 거야?"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최소한 부끄러운 줄도 알아야지..." 

"남자한테 겁도 없이 달려들어서 팔짱을 끼우냐." 


"선생님한테만 특별히 해주는 거야." 


".........." 



그러니까, 그거라고 그거...! 

최소한 왜 그렇게 되는지, 동사는 넣으라고! 


...... 그래도 이 정도는 봐줄까. 

저번에는 시로코 덕분에 정신을 차린 것도 있으니까. 



"... 이번만이야." 


"응." 



나는 시로코와 상가 쪽을 계속해서 걷기 시작했다. 

확실히 섬이라 그런지, 해물이라던가 회라던가... 

꼬치구이 집이라던가... 그런 것들이 계속해서 보이고 있었다.



"선생님." 


"응?" 


"혹시 연어 좋아해?" 


"연어...?"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것 같은데..." 


"이에구사 섬의 계곡에서 자라는 연어는 신선하다고 들었어." 

"같이 먹으러 가자, 선생님." 



시로코와 나는 횟집으로 들어간 뒤, 

테이블에 앉아 메뉴를 주문 후, 의자에서 기다리고만 있었다. 



"시로코는 회를 좋아하는 거야?" 


"좋아하는 편은 아니야." 

"섬에 있는 회는 무슨 맛일까, 궁금해서 말이지." 


"확실히 섬에 있는 회라면 맛이 조금 다르려나..." 


"그나저나 선생님은 무슨 이유로 여기 온 거야?" 


"트리니티와 게헨나의 합숙 때문에 와버렸지." 

"뭐... 일방적으로는 선택권 없이 불린 거지만." 


"... 그럼, 우리도 합숙으로 부르면 무조건 오는 거야?" 


"...... 어이." 



시로코 녀석... 대체 무슨 생각인지 알 수가 없네. 

보통 일방적으로 불렸다고 말하면, 

어떻게 그렇게 된 건지, 이유부터 물어보는 게 맞는 거 아니냐? 


나는 테이블에 앉아있는 채로, 여러 생각을 하는 도중.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는 시로코에게 입을 열었다. 



"저기, 시로코." 


"응." 


"조금은 갑작스럽겠지만..." 

"... 그, 뭐냐..." 

"... 고마워." 


"응?" 


"... 저번에 그... 뭐냐." 

"그거 있잖아, 그거..." 


"... 그거?" 


"... 많이 힘들었는데, 곁에 있어줘서 고맙다고." 


"아, 응." 

"결국엔 버리고 갔지만 말이야." 


"아직도 그 소리야!?" 


"그래도 기운 차려서 다행이야." 


".........." 



그래도, 단 둘만 있는 기회는 흔치 않으니까 말이지. 

이럴 때가 아니라면 언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겠어. 


세나에게도 감사인사를 전해야 하는데... 

... 그 녀석은 언제까지 나를 싫어하려나...



"그나저나, 요즘 아비도스는 지낼 만 해?" 


"응, 다행히 큰 문제는 없어." 

"그리고... 선생님." 


"응?" 


"... 나도 고마워." 



시로코는 10초 정도 가만히 테이블을 쳐다보다가, 

무언가 결심한 듯이 나를 똑바로 응시한 채, 이야기를 내뱉었다. 



"......?" 


"... 아비도스를 지켜줘서, " 

"내가 있을 곳을 지켜줘서..." 

"정말... 고마워, 선생님." 


"........." 


"어쩌면... 내가 사랑하는 곳을 지키고 싶었을지도 몰라." 

"만약, 선생님이 없었더라면... 다 부숴버렸을 거야..." 


"... 뭐, 어쨌든 잘 풀린 거잖아." 

"나야말로 다행히네, 시로코의 사랑하는 곳을 지켜냈다니." 



예전, 호시노에게 들었던 시로코는... 

거침없이 모든 걸 부숴버리려고 결심하기 직전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시로코를 앞으로도 부탁한다고 말했었고... 


그리고, 감사인사라니... 웃긴 녀석이네. 

진심으로 맞서 싸운 건 너희들인데 말이지. 



"정말... 진심으로 고마워, 선생님." 

"줄곧 전하고 싶었어." 


"...... 아니... 뭐, 별... 말씀을요." 



시로코는 정말로 안심되었다는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나는 그 미소를 보고서, 고개를 옆으로 돌린 뒤 시선을 피했다. 



"얼굴이 엄청 빨개." 


"... 조금 더워서 그래." 



그러니까... 너희는 그게 문제라고...! 

그 외모로 자꾸 웃어주면 나도 모르게 반한다니까? 


아무리 선생님이라는 친한 관계가 있어도 말이지, 

성인 남자는 그 순수한 외모에 다 넘어갈게 분명하다고!


'너와 결혼까지 생각했어.' 같은 거라던가, 

'100일에는 부모님 뵙기.' 같은 거라던가...! 

여자를 의식한 남자는 상상의 피날레가 되어버린다고!



"... 그나저나, 연어는 언제 나올려나." 


"선생님의 반응, 조금은 재밌구나." 


".........." 



그 뒤에 먹은 연어회는 확실히 맛있었다. 

섬의 계곡에서 자란 물고기라 그런지, 탱탱한 느낌이 강했었다. 

시로코와 함께 회를 먹고 난 후 다시 길거리를 걷고 있었다.



"너무 많이 먹은 것 같기도 하고..." 

"저녁은 굶어도 되겠는데?" 


"그냥 간식일 뿐이었잖아?" 

"똑바로 탄수화물은 섭취하도록 해." 


"... 4인분 정도는 된 것 같았는데." 

"뭐, 시로코가 그렇게 많이 먹을 줄은 몰랐으니까." 


"... 많이 먹는 여자는 별로야?" 


"그런 말은 아니지만... 굳이 말하자면, 오히려 호감이야." 

"나는 잘 먹는 여자를 좋아하거든." 


"... 응." 

"오늘부터 나는 대식가가 꿈이야." 


"...... 너무 명확한 거 아니냐?" 



시로코와 한참을 떠들다 보니, 어느새 호텔 앞까지 도착했었다. 



"... 가는 거야?" 


"벌써 6시인데... 시로코도 얼른 돌아가도록 해." 

"모두가 걱정하겠는 걸." 


"그건 신경 쓰지 않아도 돼." 


"... 무슨 말이야?" 


"선생님 뒤에 있거든." 


"...?" 



나는 시로코의 말을 듣고서 뒤를 향해 몸을 돌렸다. 



".........." 

"... 노노미 씨랑... 호시노 씨?" 


"... 선생.", "... 선생님." 


"....... 넹?" 



왜 둘 다 나를 째려보면서 열을 내는 거 같지? 

아, 그렇구나... 여름이잖아, 그럼 충분히...――― 



"왜!" 


"시로코 쨩이랑!" 


"같이 오는 건데!?", "같이 오는 건데요!?" 


"............." 


"치사하잖아요, 시로코 쨩!" 

"아까 다 같이 가기로 약속해놓고선!" 


"시로코 쨩, 이 아저씨보다 

선생님한테 앞서가는 건 용서하지 않는다고~?" 


"... 응." 


"... 일단, 진정...―――" 


"진정하게 생겼어요!?" 


"...... 넵."



이 장면도 어디서 많이 본거 같은데 말이야... 

이제 그만해주지 않으려나... 

주위 사람들이 다 쳐다보고 있는데... 


그때 호텔의 입구를 스쳐 지나가는 세나와 눈이 마주쳤다. 



"세나, 이제 들어가는 거야?" 


"...... 남들 다보는 시선에서 즐기는 행위라니." 

"정말, 소문대로 끔찍한 선생님이네요." 


"........." 



그러니까 어디서 그런 소문이 나는 거냐고!? 

일단 세나 말대로, 아비도스 녀석들을 말려야겠... 


그때 모두가 침묵한 채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또, 여자가... 늘었어요..." 


"으헤~ 선생, 너무 저질이야." 

"우리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거야?" 


"... 좀 더 욕심이 생겨 버리는 걸." 


".............."





「8월 25일」

오후 6 : 09 - 7층의 복도



나는 샤워룸에서 씻은 뒤, 701호실로 향하고 있었다. 


하여튼, 아비도스 녀석들... 너무 피곤하단 말이야. 

오랜만에 그리운 얼굴들을 봐서 당연히 좋지만... 

그걸 보상으로 시선으로 엄청난 수치심을 느껴버렸네. 


그나저나 7시에 저녁 식사시간이었지...? 

그럼 얼른, 다른 옷으로 환복하고 나가야겠구먼. 


나는 앞 일정 시간에 말리지 않도록, 신속히 움직였다. 


조금은 빠른 걸음으로 

내가 머무는 701호실로 도착한 다음, 문을 열었다. 



'덜컥――――' 


"...... 음?" 


"... 어라, 선생님?" 


"오, 아즈...―― 흐아!?" 



문을 열고서 눈앞에 비친 것은, 속옷을 입고 있는 아즈사였다. 



"미, 미안!!!" 


"..........." 


'쾅――――' 



나는 큰 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질 정도로 강하게 닫았다. 


ㄲ, 까먹고 있었다아아아...! 

머무는 방이 바뀌었다는 걸, 잊고 있었어...! 


그때, 701호실의 문이 작은 소리로 열렸다. 

아즈사는 문에서 내가 보일 정도로만 짧게 열고서 말했다. 



"... 선생님." 


"...... 네?" 


"... 봤지?" 


"...... 아니요." 


"...... 일단, 들어와." 


".............." 



나는 거부할 틈도 없이, 조용히... 아즈사의 뒤를 따라갔다. 

정적만 흐르는 방에서, 아즈사와 나는 정좌 자세로 앉아있었다.



"........."


"........."



어색한 침묵만을 주고받는 와중, 

아즈사는 때가 되었다는 것처럼 먼저 말을 걸어왔다. 



"저기, 선생님." 


"응?" 


"... 나한테 숨기는 거 없어?" 


"... 숨기는 거?" 


"물론 지금의 나는 진지해." 

"진실된 말을 하지 않는다면 조치를 취할 생각이야." 


"...... 딱히 없는 것 같은데." 


"... 진짜?" 



그렇게 유심히 쳐다봐도 말이지, 정말로 생각나는 게...――― 

――― 하나 있긴 하구나. 아즈사에게 비밀로 하고 있는 게. 



"........" 


"... 정말... 없는 거야?" 



트리아와 만났다는 건... 절대로 말할 수 없었다. 

왜냐면, 그녀가 비밀이라고 말했는 데다가... 

그 비밀을 지킬 이유는 검은 양복 건이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적군이든 아군이든 호의를 베풀었기에, 

나도 그녀... 트리아와의 약속을 쉽게 깨드릴 순 없었다. 



"... 없는데?" 


"...... 정말이야?" 


"응." 



이미 아즈사에게 비밀로 하기로 했던 건, 오래전에 결심한 일. 

그렇기에, 그 결심에 대해서는 이미 생각에도 없었다. 



"... 그럼 됐어." 


"......" 



아즈사가 뭘 물어보려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솔직히 트리아의 건이 아니라면 딱히 숨기는 것도 없단 말이지. 



"그럼, 그 녀석에게는 아기가 생겨도 괜찮다는 거구나." 


"... 예?" 



아니, 잠깐만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애초에 그 녀석이라니? 그 녀석이 누군데?



"...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선생님, 나랑 아기가 만들고 싶어서 온 게 아니야?" 

"... 그러지 않고서는 방으로 들어올 일이 없으니까." 


"...... 방을 헷갈린 것뿐인데." 



아즈사는 내가 전한 말을 듣고서, 

얼굴이 토마토처럼 빨개지기 시작했다. 



"자, 잠깐. 그럼, 왜 훔쳐본 거야?" 


"... 말 그대로, 헷갈렸으니까." 

"아니... 애초에 그런 생각을 왜 하는 거야...?" 


"분명, 하나코가 그랬어." 

"관심 있는 남자는 먼저 찾아오는 법이라고..." 

"그리고, 같은 방에 있으면 아기는 태어나는 법이라고..." 



하나코 이 음란마귀, 그 자체인 녀석...! 

실제 천사랑 다름없는 순수 그 자체의 아즈사를 이렇게나... 


역시 그 녀석은 입에 지퍼가 달려야만 속이 풀릴 것 같아. 

안 그래도 보충 수업 때 당한 것만 해도 수백 개니까...! 



"... 어쨌든, 나는 헷갈린 것뿐이야." 

"......... 아즈사?" 


".........." 

"... 자세히 생각해보니까 말이지." 

"선생님과 아기를 만든다면 그건 나름대로 괜찮을 것 같아." 


"........????" 


"선생님은 늘 책임감 있고, 성실한 사람이니까 말이지." 

"그런 선생님이랑 아기를 만든다면, 얼마든...―――" 


"아니, 그러니까!! 스탑, 스탑!!!" 


"?" 


"엄청 문제잖아! 문제!!" 

"다른 건 부끄러워할 것만 다 부끄러워해 놓고, 

이제 와서 아무것도 아닌 척 담담하게 아빠로 만드는 거냐!?" 


"... 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남자랑 자본 적이 없으니까 말이지." 

"그것에 대한 부분은 상상만으로도 엄청 부끄럽지만..." 

"그렇지만, 아이를 만드는 것에 관해서는 아무렇지도 않아."


"...... 그냥 다물고 있어라." 


"?" 



하나코 녀석이나, 아즈사 녀석이나... 

둘다, 돌발상황의 끝판왕 성격인 건 여전하구만. 


미래를 위해서라도 세나랑 같이 자야겠어... 

이 녀석이랑 같이 잔다면, 분명히 보충수업부의 아이들에게 

'나, 선생님이랑 같이 한 방에 잤어.'라는 시답지 않은 소리를 할게 분명하니까! 



"선생님, 가는 거야?" 


"응, 너의 그 성드립엔 못 어울려주겠다." 


"?"



그나저나 10대 중반 정도밖에 안 되는 녀석들이, 

20대의 선생에게 성드립이라니... 

기울어져도 너무 기울어졌잖아... 키보토스는. 


나는 701호를 나온 뒤, 

다른 방으로 머물기로 했던 704호의 문을 열고 있었다. 


분명, 세나는 방금 들어왔으니까 샤워실에 있겠지. 

아즈사랑 같은 데자뷰가 일어날...――― 



'덜컥――――' 


"오셨군요." 


"..................." 


"마침 잘 오셨습니다." 

"이거, 어떻게 사용하는 건가요?" 



분명, 물에 빠진 생쥐나 다름없는 녀석인 것처럼 

방금 전까지만 해도 성드립의 폭격을 받았던, 나. 


뭐, 그 점에 대해서는 딱히 할 말도 없는 입장이다. 

하나코에게 평소에 성드립을 많이 당하고는 하니까. 


704호실의 문을 열자 꽁꽁 얼어있었다. 

그 이유는... 호텔의 2인실에서 17살이라는 여자아이가 

하얀색 팬티만 입고서 그 자리에 서있었기 때문이다.



"... 선생님?"



온통 속옷 차림만이라면 모를까, 위에는 완전히 아웃이었다. 


보통, 이쯤이면 나는 소리를 지르겠지. 

그렇지만... 이건, 엄격히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백지와 동등할 정도의 하얀 목덜미를 감출 듯, 말듯이 하는 

은빛의 머릿 결과 평소에 입고 있던 두꺼운 간호복 때문에 몰랐던, 

목덜미와 똑같은 하얗고 하얀 피부와 얇고도 가느다란 몸매. 


여, 역시... 간호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지? 

드라마에 나온 것처럼, 예쁜 누나들만 하는 거지!? 



"... 뭘 그렇게 빤히 쳐다보는 겁니까." 



뭘 그렇게 빤히 쳐다보냐 라...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름답다보다도 더 좋은 표현의 단어는 없는 건가...' 

라고 생각되는 장면이 내 앞에서 비치고 있었으니 말이다. 



".........?" 

"... 안색이 붉으신데, 괜찮으신 겁니까." 



세나는 나에게 다가오면서, 한치의 부끄러움도 없이 

평소처럼의 진지한 톤으론 나에게 이어 말했다. 


걸어오는 사이에 보이는 세나의 몸... 즉, 여자의 몸...! 

내 손보다도 훨씬 더 커 보이는 가슴, 매끈해 보이는 다리...! 


TV에서만 드러나 봤던, 예술적인 몸매라는 게 이런 걸까나... 

키보토스에서 본 그 여자보다도 더...!



"... 선생님?"


"우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마에 닿은 세나의 손길 때문에, 뇌에 잠들어 있던 

이성 장치들이 하나씩 회로가 꼬여가기 시작했다. 



"왜 벗고 있는 거야!?" 

"옷 입으라고, 옷――――!!!!!" 


"아, 그게 말 입니다만..." 

"여분의 간호복만 가져온지라, 사복이 딱히 없습니다." 


"그럼 간호복이라도 입으면 되는 거잖아!!!" 


"... 너무 더워서 그만." 


"내 옷 줄 테니까!!!" 

"일단, 옷부터 입고 머리도 말려, 빨리――――!!"





「8월 25일」

오후 6 : 47 - 704호실



'휘이이잉――――――' 


나는 헤어드라이어를 오른손에 쥐고서, 

뒤돌아 앉아있는 세나의 머리를 말리고 있었다. 


호텔에 있는 침대는 앉아있는 느낌을 주면서도, 

계속해서 포근한 느낌을 강하게 주고 있었다. 


그렇게 침대에 앉아있는 채로, 

바닥에 앉아있는 세나의 머리카락을 왼손으로 휘말리고 있었다. 


머리카락을 살포시 잡을 때마다 튀겨 나오는 미지근한 물들을 

느끼고서, 세나는 젖은 채로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이 상태로 

방에 있었는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17살이나 되는 3학년이라는 녀석이... 

헤어드라이어를 사용할 줄 모른다니, 세나도 은근히 허당이구나? 



"... 방금, 뭔가 기분이 무척이나 더러웠습니다." 


"... 하하, 저는 머리를 말리고 있었을 뿐." 

"저도 잘 모르겠네용...!" 



간의 크기가 줄어드는 듯한 살기를 느낀 나는, 

더욱 열심히 세나의 머리를 말리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이 녀석은 나 싫어하지 않나? 

불가항력인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가만히 있는 건가? 



"... 따뜻하군요." 


"내가 머리는 잘 말리는 편이야." 


"그만큼 많은 여자를 꼬셨다는 거겠죠." 


"대체 왜 그렇게 되는 건데...!" 

"애초에 여자의 머리는 처음 말려보거든!?" 


"... 처음 말인가요." 



이 녀석도 누가 키보토스의 학생이 아니랄까 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의식의 대화만 이어가고 있잖아...! 


... 그래도, 이런 대화라고 해도 조금은 기뻤다. 

감사 인사는 아직까지도 못 했지만, 세나와 농담 삼아서 하는 

이런 평범한 대화는 알고 나서 처음으로 해보니깐... 


감사 인사... 말인가. 


아까 시로코에게도 감사함을 표현한 것처럼, 

이것도 어찌 보면 세나에게 감사함을 표현하기 좋은 기회.


나는 헤어드라이어의 작동을 멈추고서, 

세나의 머리가 무겁지 않도록, 손을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 선생님?" 


"... 고마워, 세나. 


"... 네?" 


"나도 말이야... 줄 곧 얘기하고 싶었어." 


".........." 


"도와줘서 고마웠어, 총에 맞았을 때." 


"............." 



세나는 그대로 꿋꿋이 침묵만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저택에서도... 정신 차리게 해 줘서 고마워." 

"... 만약에 세나가 없었더라면, 

지금처럼, 이렇게 머리를 말리지도 못한 채로 있었겠지." 


"... 그런가요." 


"... 저기, 세나." 

"너는 왜, 내가 싫은 거야?" 


"........." 



「싫어한다.」 그 말은 결국 상대방을 

신용하지도, 믿을 가치를 매기지도 못한다는 낙인의 단어.


히나는 분명히 나에게 말했었다. 

무언가의 표현이 없기에 얼음공주라는 별명이 붙은 거라고. 


그렇지만, 나는 최소한 세나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감사했습니다.', '솔직히 기쁩니다.' 

라고... 저택에서의 세나는 그렇게 전했었다. 


싫은 티를 팍팍 내면서 까지... 

자신이 싫어한다는 말을 직접 전할 정도로, 

선생님에게는 「싫어한다.」라는 감정이 박혀있을 텐데 말이야. 


즉... 이 말은, '히무로 세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정도 일려나. 

정말 내가 싫었다면, 아무런 이유 없이 오게 된 「합동 합숙」에 

관해서 엄청나게 묻고 따졌을게 확실하겠지. 


내가 직접 세나의 머리를 말린 거에다가...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이 순간까지... 

내 생각은 옳게 된 생각이라고 확정 지어 버린 것. 


정말로 싫어한다면 말조차도 섞지 않았겠지. 

그렇기에... 세나가 나를 싫어하는 것은 거짓말이 확실하다.



"... 그렇게 티 났나요?" 

"조금은 노력한 것 같은데 말이죠." 


"...... 응." 

"조금... 이유만 말해줄 수 있을까?" 


".........." 

"... 선생님께서는 말씀하셨죠." 

"사람의 목숨이 우습냐고... 말이죠." 


".........." 


"그렇기에 싫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그렇지만, 진짜로 싫어한 것도 아니잖아." 


"... 기각." 

"저는 지금도 선생님을 싫어합니다." 


"...... 푸핫..." 



나는 작은 웃음소리를 입 밖으로 소리 내었다. 

세나는 자기 자신이 조금 부끄러웠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로 내 웃음소리를 동조한 듯했다. 


기껏 나를 싫어한 이유가, 

겨우 그런 이유라는 게 조금은 웃음이 나왔다. 

아니면, 정말로 다른 이유가 있었기 때문일까... 


그렇기에 나는 더 이상 웃지 않았다. 

그녀는 계속해서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기에... 


그래서인지, 나는 세나의 머리를 잔뜩 쓰다듬기 시작했다. 



"ㅁ, 뭐하시는 겁니까!?" 


"그냥! 귀여워서!" 


"ㄱ, 귀엽다니...!" 

"이거 놓으십시오, 저는 선생님이 싫단말입니다!" 


"싫다는 녀석이, 남의 티셔츠를 입고서 할 소린가?" 


"그렇다면 지금 당장 벗겠습니다." 


"야, 야――!!" 

"어이, 가슴――!! 가슴 보인 다고―――!!!" 



자기 알몸 보이는 건 부끄러워하지도 않으면서, 

머리 쓰다듬는 건 부끄러워한다니... 참 이상한 녀석이네. 


그래도 말이지... 얼떨결에 알아버렸어. 

이유는 모르겠지만, 세나는 나를 싫어하는 게 아니란 걸. 


역시 히후미에게 가르쳐준 용기는, 아마 틀리지 않은 걸 지도.





「8월 25일」

오후 7 : 14 - 1층의 식사룸



"..........." 


"어서 식기 전에 먹지 그래?" 



나는 확실히 배를 어느 정도 채우고 온 것은 사실이다. 

아까 횟집에서 시리코와 함께 연어를 먹었으니까. 



"아, 혹시 양이 부족한 거야?" 


"아니, 그런 건 아닌데..." 



분위기를 구하는 듯한 촛불이 있는 식탁. 

그리고, 그 호화로운 분위기 속 어울리는 갈색빛의 스테이크. 



".........." 



미카가 스테이크를 한입 크기로 

썰어 먹을 때, 나는 메뉴판을 열어 가격을 확인했다. 


'Fullblood Wagyu Tenderloin - 295 Dollar' 


모든 혈의... 와규 텐더로인? 그리고... 295달러라면, 

1달러마다 1,227원이니까...... 362,186만 원!? 


이 작은 조각 하나에 36만 원이라니 장난하냐!? 

지방 쪽의 빌라 월세도 이렇게는 안 받는다고!! 


미카는 내 표정을 읽은 뒤,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렇구나? 선생님은 어른만의 호화로움을 지키는 거구나?" 

"자연스레 분위기를 잡은 뒤 먹는 게 최고의 스테이크니까." 

"역시 선생님이야! 식사마저도 평점심을 잃지 않는 어른의 긍지!" 



아... 미카는 아직 모르겠구나. 

20년 동안 선생님의 일을 해야만 하는 내 눈높이가 

어느 정도인지 말이야... 그래도, 이 녀석... 꽤 부자인가? 


미카와 내 것까지만 해도 72만 원... 

무슨 생각으로 원래 예약해놨던 호텔 조식은 다 때려치우고, 

여기까지 와서, 왜 이런 큰돈을 소비하는 거지...? 


아무리 그래도, 이미 시킨 건 어쩔 수 없고... 

저번처럼 먹튀는 하지 않겠지? 물론, 이런 건 어른이 해결 

해야만 하는 모범적이면서도 대표되는 행동이겠지만...



"자, 자!" 

"내 앞에서는, 그런 행동 안 보여도 되니까 말이지!" 

"얼른 먹어! 얼른!" 


"... 잘 먹겠습니다." 



그나저나, 나기사는 아무 말도 안 하려나... 

미카의 행동을 봐서는, 나기사 성격으론 가만히 있진 않을 텐데. 


지난번, 하루나에게서 배운 '스테이크 써는 법' 그대로 

나이프를 들고서 부드럽게... 스테이크를 썰어냈다. 

그리고서, 육즙이 흐르는 한입 크기의 스테이크를 입에 넣었다. 


확실히 36만 원의 값어치는 제대로구나... 

내 요리실력으로도 뭐가 들어갔는지 파악 못할 정도야... 



"후! 다 먹었다!" 

"선생님, 소화시킬 겸 산책 가자!" 


"... 응?" 

"나 이제 먹기 시작했는데?" 


"그런 거야, 나중에 또 사주면 되잖아!" 

"자, 자! 빨리빨리!" 


"자, 잠깐...! 36만 원이!!" 



미카는 내 팔을 잡고서, 밖을 향해 뛰어나갔다. 

접시에 남겨진 스테이크는... 많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미카와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걷고만 있었다. 


미카는 기분이 매우 좋았는지, 

'흐음~ 흐으음~'같은 콧노래 소리를 내고서 걷고 있었다.


시간은 「7시 37분」. 

저녁을 해결한 뒤에는 자유시간의 일정이 가득했다. 

그래서인지, 미카는 아주 여유롭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평소와 같은 하얀색 소매의 로브가 아닌, 

정말 평밤하다고 말할 정도의 청바지에 하얀색 와이셔츠 패션. 


너무나 다르게 보였던 미카의 인상은 

걸음걸이의 옆에서 흘러넘치고 있는 파도 바람처럼 아름다웠다.



"...... 그래서, 그냥 산책인 거야?" 


"응! 그냥 산책!" 

"선생님이랑 조금 걷고 싶어서!" 


".........." 



미카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여러모로 바쁘다. 

하얀색 수첩의 주인을 찾아야만 하니까 말이지. 

그리고, 조금 있다 약속도 있고 말이야... 



"선생님!" 



때 마침, 내 생각이 그대로 전달된 건지. 

신기하게도 미카는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기분이 좋아 보이는 미카의 부름에 나는 올곧게 대답했다. 



"응." 


"나 말이지... 사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어느 때보다 신나 있는 목소리가 아닌, 조금 다른 차분한 목소리. 

그 목소리에 나는 의문이 섞인 듯한 대답을 미카에게 전했다.



"응?" 


"'인어의 수평선'이라는 동화 알아?" 


"... 분명, 한 남자가 인어에게 반한 이야기였나?" 

"자세히는 모르는데..." 


"... 응." 

"한 남자와 한 인어가 운명처럼 만나고서, 

계속 보던 감정이 쌓여버려서 결국 서로가 반한 이야기야." 

"한 남자는 인어와 이어질 수 없다는 걸 알고서, 

'난 사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라고 인어에게 말해버렸지." 

"그러자, 인어는... 바다의 수평선의 길이처럼, 

그 남자의 마음도 수평선이 있다는 걸 알고서 이해해줬어." 

"쌓아왔던 이야기가 마치 거짓말처럼, 아무 말도 없이 말이야." 


".........." 


"여기서 말하는 수평선이라는 건... 도대체 뭘까?" 

"그저... 마음으로만 통하는 암호였을까?" 



마음으로만 통하는 암호라... 정말로 로맨티스트한 이야기네. 

나는 미카의 질문에 내가 느낀 것들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 조금은 다른 의미이지 않을까?" 


"다른 의미라니?" 


"바다의 수평선 길이처럼...이라." 

"마음의 수평선이 있다는 건, 한 없이 넓다는 뜻 아닐까?" 


"......." 


"인어도 그 남자의 솔직한 심정에 대답해준 거지." 

"마지막까지 자신을 이해해주는 듯한 말을 납득하고서, 

자신도 아무 말 없이 그 남자의 마지막 감정을 이해해주고자 

쌓아온 추억이 정말로 좋은 기억에만 남을 수 있도록, 

아무 말하지 않은 게 아닐까? 서로가 사랑하는 사이니까." 


"... 후훗, 역시 선생님이야." 

"정답이네." 



미카는 자신의 미소를 계속해서 유지했다. 

억지로 미소를 띤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뭔가 

기다리고만 있는 것처럼... 계속해서 나를 응시했다.



"... 있지 선생님." 

"선생님은 여자의 사랑을 어떻게 생각해?" 


"... 어?" 


"... 순수하지는 못하지만, 조금은 피가 묻어있지만... 

그럼에도 한 사람만 바라본다는 각오를 한 소녀의 사랑 말이야."



미카의 질문에서는 쉽사리 대답할 수 없었다. 

그야, 나는 여자의 사랑... 그런 건 나한테 어려우니까. 


그래도 어째서인지 말해야만 하는 느낌이 들었다. 

저 눈빛은 원하는 것을 말해 돌라는 눈빛. 

미카의 저런 눈빛은 처음 보니까 말이야. 


... 그저, 슬프게 바라보고 있는 미카의 표정 때문일까. 


무언가 내 뒤에서 몰려오는 긴장감이, 

내가 대답을 잘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주게끔 만들었다. 



"어쨌든... 사랑이잖아." 


"응?" 


"... 순수하거나, 피가 묻어도 돼." 

"사랑은 적당한 이유 따위도 없는 거니까." 


"........." 


"아무리 나쁘고 못 돼먹어도 말이야." 

"최소한 사랑한다는 감정... 그것만 있어도 살아갈 수 있어." 

"오늘은 그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다라던가, 오늘은 그 사람과 

예쁘고 멋진 곳을 가고 싶다라던가. 뭐, 그런 로망 말이야." 


"... 응." 


"... 약간 웃긴 녀석에게 알려준 말이긴 하지만." 

"'음식은 평등하다.'라고 알려준 적 있어." 

"버림을 받든, 미움을 받든, 음식은 절대로 차별하지 않지." 

"사랑도 어느 정도 똑같다고 생각해." 

"사람은 나쁘고, 못 돼먹어도 사랑은 빠질 수 있다고 생각해." 

"뭐, 그 뒤에 앞으로 나아가는 건 자기 몫이겠지만." 


"... 뭔가 간사하네." 


"어쨌든 말이지... 그 정도면 된 거야." 

"그저, 한 순간 사랑에 빠졌다면... 

사랑을 빠진 상대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그게 여자든 남자든... 한 '사람'의 사랑 아닐까?" 

"미카, 네가 말한 소녀의 사랑 말이야." 


"... 역시, 선생님다워." 

"100점이야, 응!" 


"........."



진심으로 물어보는 말에만 대답했을 뿐인데... 

뭐냐? 이렇게, 미카 녀석에게 이용당한 느낌은...? 

아까부터 시험 점수를 매기는 것 마냥 말하고 있잖아? 



"... 그럼 말이야 선생님." 

"수평선이 없는 소녀의 한 마음도 받아주려나?" 


"... 응?" 



밤바다에는 달의 빛만이 가득 비추고만 있었다. 

가로등의 불이 약한 이곳에서도, 미카의 얼굴이 다 보일 

정도의 빛들이 천천히 미카를 푸른색으로 삼키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나는 넋이 나간 채 바라보고 있었다. 


미카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발걸음을 내 쪽으로 향해 

옮기며, 보름달처럼 예쁜 그 노란빛의 눈동자가 가까워질 때쯤. 

나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은 채, 그 예쁜 눈동자를 계속해서 

응시했더니, 미카는 흐뭇한 표정을 짓고서 내 볼에 입을 맞췄다. 


나는 놀라지도, 당황하지도 않았다. 

여태까지 느껴본 감정들과는 달리, 정말로 애틋하고 간절한 

감정들만 모여서 만들어진 볼 키스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 미카."


"한순간...... 너무나도 울고 싶었어." 

"그래도 말이지, 선생님의 괜찮냐는 말에도 참아냈어." 


"........" 



미카는 내 가슴에 손을 올리고서, 

보름달과 흡사한 두 눈동자로 나를 응시하면서 계속 말했다. 


슬픈 이야기라던가, 기쁜 이야기라던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계속해서 응석 부리는 듯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으니까. 



"있지... 게헨나가 그렇게 싫은 것도 아니었어." 

"그렇지만... 세이아 쨩이 죽었다는 소리를 듣고, 

너무 화가 나서 말이야... 진짜 머리가 터질 듯이..." 


"응." 



나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미카의 목소리를 다시 한번 

부여잡듯이, 미카의 끊어진 말에도 간신히 대답을 보냈다. 


미카도 그런 자신의 상태를 알았는지... 

어느새 내 두 손을 마주 잡고서, 용기를 낸 다음 이어 말했다. 



"그래서... 말이야." 

"중간에 서있는 내가 무척이나 싫었어." 

"그런 이유였는지, 선생님에게 어리광 부리고 말았어." 

"다시... 세이아 쨩과 나기 쨩이 보고 싶다고 말이지." 


"응." 


"... 그리고, 정말로 구해줬어." 

"아즈사 쨩도 함께 말이야." 


"다행이네."


"... 고마워." 


"별말씀을."


"...... 너무 반응이 고전적인 거 아니야!?" 

"평소처럼 해주던 그 귀여운 반응들은 다 어디 간 거야!" 


"귀엽다니... 넌 나를 뭘로 보는 거야?" 


"뿌우우우우우우우우!" 


"..........."



오늘은 무척, 고맙다는 말이 평소보다 많은 것 같다. 

학생들에게 부여받은 용기는, 행복한 감정보다도 감사한 것 같다.



"그나저나, 선생님!" 

"그래서~ 그래서~ 어쩔 건데에~?" 


"... 그래서 어쩔 거냐니?" 


"벌써 까먹은 거야?" 

"수평선이 없는 한 소녀의 마음 말이야!" 


"... 무슨 말이야?" 


"나는 마음이 작아서 말이지!" 

"인어처럼 남자를 이해해주거나, 그런 여자는 아니란 말이야?" 


"그래서?" 


"나 미소노 미카는 쪼잔하다, 이 말이지!" 

"그러니까 거절한다 해도 놓을 생각은 없어!" 


"...... 대체 무슨 말이야?" 


"... 엥? 진짜 모르는 거야?" 



수평선의 인어 이야기를 언급하는 걸 보면, 

그 동화만의 키워드로 나한테 전달한 거라는 소린데... 


그러고 보니, 그 동화 속의 한 내용 중에서... 


「그 남자가 살고 있는 나라에서의 

볼 키스는 '영원히 당신만을 바라보겠다'라는 문화가...」 



"하, 하아!? 미카, 너어어어―――!?" 


"헤헤, 이제 안거야?" 

"눈치가 느리구나, 선생님은!" 

"에잇!" 


"ㅁ, 뭐해!? 안기지 마!" 


"난 인어와는 다르게 마음이 쪼잔하니까!" 

"절대 놓칠 생각 없어!" 



나도 아마, 세이아와 나기사... 미카 중에 

한 명만 없었다고 해도 많이 슬펐을 거야. 


너무나도 맑은 꽃들이라서, 

한 명이라도 없어진다면 남아 있는 꽃들도 시들어버릴 테니까. 


우리의 이야기는... 정해진 동화랑은 다르니까 말이지.





「8월 25일」

오후 9 : 14 - 바닷가



나는 이 시간쯤에 약속을 한 장소로 이동 중이었다. 

힘차게 시원한 소리를 내는 바닷소리를 들으면서 

'서벅――','서벅――' 거리는 모래 밟는 소리도 

어느덧 익숙해진 채, 앞을 향해 걷고 있었다. 


그때, 시로코가 나를 향해서 손을 흔들었다. 



"... 수영복 차림이네." 



나무 장작으로만 피워진 불꽃들 주변에서는, 

얼음이 가득 차 있는 아이스 박스 옆에서 꼬치구이를 

굽고 있는 세리카와, 그 옆에서 '으헤~' 소리를 내고 

있을 것 같은 호시노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런 두 명의 앞에서는 아야네와 노노미가 박격포의 조준을 

끝마치고서, 시로코의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자. 

내가 왔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건지, 여길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나는, 그런 녀석들의 모습에 걸음을 성급하게 내디뎠다. 



"와줬구나, 선생님." 


"이번에야 말로 안 지키면, 진짜 삐질 것 같았으니까..." 


"... 응." 


"응응! 약속 지켜주셨네요! ☆" 



노노미도 내가 온 사실에 기뻤는지, 

대화 속에서 왠지 모를 별표 모양이 보였다. 



"... 저 박격포는 뭐야?" 


"불꽃놀이를 위한 폭죽이에요." 

"아비도스의 마지막 여름을 위해서 말이죠." 



옆에 있던 아야네도 나에게 다가와 

인사하는 듯, 박격포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그냥 평범하게 해도 되지 않나...?" 


"선생님은 낭만을 모르는구나." 

"박격포로 쏴야, 비로소 추억은 완성되는 거야." 



... 그러니까, 그렇게 설명해도 모른다니까? 

그거냐? 히후미처럼 크루세이더 탱크를 타고 바다를 가는? 


너희들의 낭만은 기준점이 대체 얼마나 높은 거야?



"으헤~ 선생." 


"오, 호시노." 

"수영복 귀엽네." 


"이런 빈약한 몸을 가진 아저씨의 수영복을 좋아하다니." 

"선생은 무조건 사형이야~" 


"칭찬을 한 거 같은데..." 


"저는 어때요, 선생님?" 



노노미도 나에게 팔짱을 끼고서 수영복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은근 괜찮은데?" 

"노노미도 수영복이랑 잘 어울리는구나." 


"후훗☆" 


"..........." 



시로코도 쉴 틈 없이 나를 쳐다보는 게, 칭찬을 원하는 것 같았다. 



"... 시로코는 역시 몸매가 좋네." 

"역시 초 S라인이야." 


"... 응." 


"저기, 선생님~ 왔으면 왔다고 말을 하지 그래?" 


"오..." 



세리카도 마침 나에게 인사를 하러 다가온 듯했다. 



"세리카... 엄청 예쁘네." 


"ㅁ, 뭐!? 죽어! 변태 어른!" 


"사실 좋으면서." 


"솔직하지 못하지 못하네요! ☆" 


"으헤~ 세리카 쨩은 선생님이랑 있는 게 싫은 거야?" 


"다, 당연하지! 저런 변태 어른이랑 어떻게...―――" 


"그럼, 세리카 쨩, 아웃!" 


"뭐어―――――?!"



호시노와 세리카의 모습을 보자, 

모두는 그 장면을 위한 작은 웃음을 선사했다. 

화목한 분위기에 이끌린 건지... 나도 모르게 웃고 있었다. 


한참이 지나고서, 아야네는 박격포에 다가 간뒤, 말했다. 



"그럼, 점화하겠습니다!" 



피어오르는 불꽃들이 아비도스에게는 큰 의미를 주는 것 같았다. 

아직 그 '일'로부터 1년도 지나지 않았지만... 무언가 한 해를 

보낸 것처럼, 아비도스의 모두는 불꽃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때 시로코는 자연스럽게 내 손을 잡았다. 

나는 고개를 돌리지는 않았다, 불꽃이 흐르는 저 하늘을 

모두와 함께 잊히지 않도록 눈에 새기는 중이었으니까. 


손의 온기가 천천히... 저 하늘의 불꽃들처럼, 

시로코의 진심이 전해지는 것처럼... 천천히 느껴지고 있었다.


밤하늘에 흐르고 있는 빛이 나는 별들을 따라서 

함께 빛나고 있는 불꽃들이... 점점 손을 뻗는 것 같았다. 


그 시절 처음 봤던 아비도스의 녀석들처럼, 

잡히지 않을 정도로 멀이 뻗어있는 별빛과 불꽃들. 


깊이 잠들어질 시간에 이래도 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그래 왔던 것처럼, 조용하게 잠들어 있는 것들을 

모두 깨워낼 것처럼, 불꽃은 모두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시로코는 더욱... 강하게 내 손을 꼭 잡았다. 

나는 아무 말하지 않은 채, 하늘만을 바라봤다. 


손을 뻗어, 겨우 닿게 만들었던 아비도스의 추억들은... 

여기서 별빛들과 불꽃들처럼 다시 한번 흘러내려가고 있었다.


―――― 아마, 선생님 덕분이야... 모두. 


이 세상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더 외로워하는 우리들에게,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더 괴로운 것을 짊어져있는 우리들에게. 

추억을 모아줄 수 있도록, 이 밤하늘의 별빛과 불꽃을... 

한눈에 새길 수 있도록... 여기까지 달려와준 단 한 사람. 


그 한 사람 덕분에... 너무 행복해. 


눈동자에서 뺨을 타고 흘러내렸던 눈물들이 거짓말처럼, 

내 눈에는 지금... 세상에서 제일 상냥한 사람이 곁에 있어주었다. 


그러니까, 선생님... 맹세할게. 

꼭... 이 은혜는... 잊지 않겠다고 말이지.







==============


▣ 에필로그. 


「무대」





「8월 25일」

오후 10 : 11 - 길거리



나는 아비도스의 아이들과 함께 불꽃놀이를 본 뒤, 

같이 짐 정리를 해주고서 다시 숙소로 향하는 중이었다. 


낮에 봤던 조개껍데기로 되었던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오늘 왜 이리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지..." 



확실히, 눈이 아플 정도로 피곤한 상태였다. 

너무 진지한 이야기를 많이 해서 그런가... 


오늘은 그저 감사한 마음을 주고받은 날이네... 


그때, 멀리 있는 곳에서 익숙한 티셔츠가 보였다. 



"저건..." 



그 거리까지는 2분 정도 걸렸을까, 

가만히 서있는 채로 바닥을 보고 있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뭐해?" 


"... 선생님이군요." 



바로 세나 녀석이었다. 

... 그나저나 10시가 넘은 시간 동안 뭘 하는 거지? 



"옛날 일을 회상하고 있었습니다." 


"... 옛날?" 


"네." 


"... 세나의 옛날은 어땠는데?" 


"네." 


"........." 


"네." 


"아니, 아무 말도 안 했거든!?" 



세나는 깊은 한숨을 쉰 뒤, 이어 말하기 시작했다. 



"... 하아." 

"옛날의 저... 말인가요." 

"똑같았습니다, 지금이나 옛날이나."


"... 그래?" 


"변한 게 있다면..." 

"좀 더 겁쟁이가 되었다고 할까요." 


".......?" 



그러고 보니, 나와 세나의 앞에 있는 건물은 자세히 보니, 

커다란 아파트이면서도... 폐허였다. 



"... 제가 선생님에게 말씀드렸었죠." 

"지킬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하라고." 


"응, 그랬었지." 


"... 선생님은 말입니다." 

"학생... 그 누구라도 해도... 지킬 건가요?" 


"........" 


"... 정말, 쌩판 남인 학생들에게도 말이죠." 


"...... 뭐, 그거야 당연하지." 


"... 네?" 


"여태까지도 말이야... 계속 몸을 던져왔어." 

"나는 말만 해대는 녀석이니까 말이지." 


"........." 


"내가 만약, 힘이 있는 

선생이었다고 해도, 계속해서 몸을 던졌을 거야." 

"나를 너무나 싫어하시는 구급의학부장이라고 해도 말이지." 


"........." 


"필요하면 말만 해." 

"언제든지 도와줄게." 


"......... 그 대답... 이루시길 바랍니다." 


"... 바란다고?" 


"지키지 못한다고 해도 말이죠..." 

"...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 만약 시간을 돌린다면." 

"... 다시 한번... 나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 그 장면이 눈앞에 놓인다면..." 

"그때는 정말로 지킬 수 있느냐... 그게 중요한 겁니다." 


"..........." 


"... 그래도 바뀌지 않는다면... 운명인 거겠죠.







「8월 25일」

오후 11 : 07 - 이에구사 섬의 공항



"으음, 여기쯤인가." 

"트리아 녀석, 여기서 기다린다고 했는데..." 


'달그락―――', '달그락―――' 


"...!" 

"네 녀석이 여기에 있을 줄이야..." 


"기다렸다... 사냥꾼." 


"... 그 이름은 뭔가 오글거리는데." 

"뭐, 상관없나..." 

"「마에스트로」, 네 녀석이 왜 여기에 있는 거냐?" 

"의뢰자가 여기에 있다라... 나를 못 믿는다는 행위인 건가?" 


"... 직접 눈으로 보기 위해서다." 

"내가 만든 악보... 「세상」을." 


"... 변태 같은 녀석." 

"그래서 여기가 확실한 거야?" 


'달그락―――', '달그락―――' 


"트리아의 말한 대로면... 

오류의 「적합자」가 여기에 있다고 하더군." 

"그리고... 너의 옛 친구까지 말이지."


"아즈사 녀석... 쫓아온 건가?" 

"이건 예상 못한 전개인데..." 


"... 천천히 가도록 할까." 

"아, 그리고 말이지... 반가운 얼굴이 있을 거라네." 

"「키사라기 나나코」여..." 


"반가운 얼굴?" 


"드디어 찾은 「생존자」도 있다고 하더군." 


"..........." 

"... 하핫... 하하하하하하하하핫!" 

"우비아에게는 오지 말라고 한 게 역시 다행이네." 

"... 실수로 살아남은 적합자가 한 명, 생존자가 한 명... 

그리고, 나까지... 2년 전의 주요 인물이 다 모인 거잖아?"

"이거야 원, 진짜로 골치 아픈 게 펼쳐지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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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복되는 부분 있으면 지적 부탁 드립니다.

후기랑 해석은 에피소드 끝나고 할 예정.


요새 문맥이랑 형식 공부한다고 맞춤법 이슈가 너무 많은 듯;;

찾고, 수정하는 시간만 2시간 걸린 것 같음;

다시 마뜜법 공부 해야 할지도


오늘 유독 에피소드가 이벤트 씬이 많았는데,

앞에 나올 내용들 때문에 인물 관계를 정리할 필요가 있었음.


앞에 나올 내용이 뭐냐고? 그건...


난 멸망전 보러 간다잇

다음 편은 일요일~ 슈우우우웃~



+좀 늦을듯? 과제 갑자기 많아져서;;

중간고사 이슈도 있어서 수욜날 9시에 올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