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필자는 이공계열 전공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제대로 된 공부도 시작 못한 일개 학부생 저학년따리임을 밝힘. 필자의 과학적/수학적 지식은 좋게 말해도 나무위키보다 뛰어나지 못함

이 글은 그냥 학문을 좋아하는 수학 덕후의 입장에서 썰푼거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음


괴짜, 하지만 비범한 천재


밀레니엄의 해커 동아리 베리타스의 막내인 코누리 마키쟝의 취미이자 아이덴티티는 뜬금없게도 그래피티이다. 다른 베리타스의 부원들이 정보 보안 또는 탈취 등의 일을 주로 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마키는 베리타스에서도 가장 독특한 존재가 아닐 수가 없다.

 

이는 인게임 내에서도 드러나는데, 현재까지 실장된 베리타스 부원 중 마키를 제외한 다른 모든 부원은 ‘스페셜’이지만 마키 혼자 ‘스트라이커’인 점이 독특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밀레니엄 내부에서도 독보적인 천재집단으로 묘사되는 베리타스의 일원답게, 마키 또한 비범한 면모를 보인다. 마키의 인연 스토리를 보면, 편의점의 키오스크를 해킹해서 둠을 포팅하거나, 문학 시험을 어려워하는 마키를 위해 선생님이 정리해준 노트의 제원까지 외우는 등, 키보토스의 여타 여고생들이 그렇듯 절대로 평범하지 않은 행적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마키는 어째서 베리타스에 들어왔는가? 단순히 그래피티가 취미인 학생이라면 밀레니엄 미술부(그런 동아리의 존재가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야구부도 있으니 미술부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같은 동아리에 들어가도 좋을 것이다.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마키의 모티브가 [4색 정리]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4색 정리

수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4색 정리에 대해 한번쯤 들어본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수학을 싫어하는 블붕이들이 충분히 많을 테니, 간략하게나마 4색 정리에 대해 설명해보겠다. 이미 알고 있다면 그냥 건너뛰어도 무방하다.

위키백과를 보면, 4색 정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다:

4색 정리(四色定理) 또는 4색 문제(四色問題)는 평면을 유한 개의 부분으로 나누어 각 부분에 색을 칠할 때, 서로 맞닿은 부분을 다른 색으로 칠한다면 네 가지 색으로 충분하다는 정리이다. 이 문제는 지도에서 서로 맞닿은 지역에 다른 색을 칠한다는 것에서 착안해 만들어졌다.

뭐라는지 잘 이해 안 가는 블붕이가 있을 거다. 예시를 들어 설명하겠다. 다음과 같은 지도가 있다고 해보자. 필자가 그림판으로 열심히 그렸다

위 지도는 전부 하얀색으로만 되어 있어 각 지역을 구분하기 어렵다. 지도의 각 지역에 색깔을 칠해서 지역을 구분해보자.

위 그림처럼 바로 옆에 있는 지역을 같은 빨간색으로 칠한다면, 각 지역을 구분한다는 우리의 목적은 달성되기 어려울 것이다. 서로 인접해 있는 지역은 다른 색으로 칠해야 각 지역을 구분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아래와 같은 지도는 어떨까?

인접한 지역에 다른 색을 써 각 지역을 구분한다는 우리의 목표에 부합하는 좋은 지도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지역은 총 4개 있지만, 사용한 색깔의 종류는 빨간색, 초록색, 파란색 총 3종류의 색깔만을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서 4색 정리가 시작된다.


‘지역의 개수보다 사용하는 색깔의 종류의 수가 적을 수 있다면, 한정된 색깔만 가지고도 모든 지도를 칠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 ‘한정된 색깔의 종류의 수’는 얼마일까? 일단 3개는 아니다. 예를 들어, 아래와 같은 지도는 최소 4개의 색깔로만 칠할 수 있다.

의도한 건 아닌데, 왜인지 구글 크롬 아이콘하고 비슷한 모양의 지도가 나왔다. 여하튼, 이 지도를 딱 3개의 색깔로 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걸 블붕이들은 곧 깨달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정된 색깔의 종류의 수’는 4개인걸까? 4개로만은 칠할 수 없고 5개, 6개로만 칠할 수밖에 없는 지도는 없는걸까? 이것이 바로 4색 정리이다.

 

비호감 증명

현재 4색 정리는 증명되었다. 실제로 모든 지도는 단 4개의 색깔만 있다면 칠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증명되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4색 정리는 ‘컴퓨터’가 증명했다.

증명의 아이디어는 간단하다. 가능한 모든 지도를 직접 칠해보면 된다.


“아니, 가능한 모든 지도의 수는 무한히 많은 거 아니냐?”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두 그림을 보자.

이 두 개 지도의 차이점이 무엇인가? 왼쪽 게 좀 각지게 생겼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이 두 개 지도는 사실상 다른 점이 하나도 없다. 독일의 헤쉬라는 수학자는 이렇게 가능한 지도의 종류를 약 9000여개로 분류했고, 미국의 하켄과 아펠이라는 수학자가 지도의 종류를 약 1936개까지 줄여서 문제를 단순화했다. 남은 것은 이제 1936개의 지도를 하나하나 조사하는 일뿐이었다.


물론 이것을 사람이 하나하나 조사하는 것은 더없이 끔찍한 중노동이었다. 하켄과 아펠을, 여기에서 컴퓨터를 썼다. 두 대의 컴퓨터를 50일 가량 밤낮으로 돌린 끝에, 모든 지도가 단 4종류의 색만 있으면 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냈다고 한다.

 

드디어 증명된 4색 정리에 수학계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난제가 또 하나 증명되었으니 환호했을까? 수학계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했다. 그 이유는 바로, ‘증명이 아름답지 못해서’다.

 

4색 정리의 증명은, 말 그대로 ‘노가다’ 그 자체였다.  이런 증명을 쉽게 비유하자면, ‘1부터 100까지의 자연수를 모두 더하시오.’라는 질문에 ‘1+2=3, 3+3=6, 6+4=10, 10+5=15, …... 답 : 5050’이라고 적어내는 꼴과 다를 바가 없다. 답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저따구로 답안지에 적어내면 교무실로 불려갈 것이 분명한 풀이다.

 

4색 정리의 증명에 냉담했던 또 다른 이유는, ‘4색 정리는 아무런 수학적 지식도 산출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수학은 누군가 난제를 제시하고, 다른 누군가 그 난제를 풀어내는 과정 속에 발전해왔다.

 

수학사 최대의 떡밥이었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예로 들자면, 이 문제 하나를 하나를 해결하려고 ‘허수’ 개념을 조기 도입하거나, 많은 sub-therem이 개발되는 등의 많은 성과를 냈다. 걸출한 수학자 힐베르트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두고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평하는 등, 이 난제 수학사에 끼친 영향은 결코 적지 않다. 그런데 4색 정리에는 이런 성과가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마키는 분명히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낸다. 그러나 그것은 ‘그래피티’라는 많은 경우 민폐가 되고, 불법적인, 즉 비호감의 그림을 그려낸다. 마키의 인연 스토리를 보면 이런 마키의 취미가 많은 사람에게 민폐가 될 수 있는지를 여실없이 드러낸다.

 

공책의 제원까지 모조리 외워버리는 마키의 모습은 마치 ‘비호감 증명’을 해내는 하켄과 아펠의 모습을 연상케한다. 그 노가다를 다른 무엇도 아닌 ‘컴퓨터’로 해난다는 점에서는 마키가 베리타스의 일원이 될, 충분한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번외 : 비호감 증명들

4색 정리를 증명한 방식은, 앞서 말했지만 컴퓨터를 통한 노가다이다. 그렇다면, 이런 비호감 증명은 정말로 쓸데가 없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대표적인 예시로, ‘골드바흐의 약한 추측’을 들 수 있다.

 

수학을 좋아하는 블붕이라면 ‘골드바흐의 추측’이 무엇인지 들어 봤을 것이다. 하지만 골드바흐의 ‘약한’ 추측은 금시초문인 블붕이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간략히 설명하자면 이렇다.

“5보다 큰 모든 홀수는 세 소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

예를 들어, 7=2+2+3으로 나타낼 수 있고, 9=2+2+5로 나타낼 수 있다. 골드바흐의 약한 추측의 증명을 간략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 러시아의 수학자 이반 마트베예비치 비노그라노프가 충분히 효율적인 수 이상의 모든 홀수에 대해 골드바흐의 약한 추측이 성립함을 증명했다.
  2. 엘프고트라는 수학자가 10^30 이상의 수에 대해서 비노그라노프의 증명이 유효함을 증명했다. 10^30까지의 숫자는 컴퓨터로 노가다 뛰었다.

 

골드바흐의 약한 추측은 2013년에 최종적으로 증명되었다. 4색 정리가 증명된 1976년에 비해서 컴퓨터가 비약적으로 발전된 시대였다.

 

앞서 언급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의 증명도 사실 비호감 증명이었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350년동안 수학계 전체에 어그로를 끌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아닌 페르마 본인이 남긴 글귀, ‘나는 놀라운 증명을 해냈으나 여백이 부족해 적지 않는다’ 때문이었는데, 현대적인 증명은 페르마 시대의 수학으로는 해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쉽게 설명하자면, 세종대왕님이 태어나기도 전에 한글 소설을 쓰는 이야기와 비슷하다.

 

그래서, 지금의 수학계에도 아직 ‘페르마의 증명’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수학자들이 존재한다. 아직까지는 현대적인 증명이 유일한 증명이지만, 언젠가는 페르마가 말한 ‘놀라운 증명’을 찾아낼지도 모른다.


p.s. 밀레니엄의 모티브로 매우 유력한 밀레니엄 문제는 페르마의 마지막 증명을 한 앤드류 와일즈가 출제에 관여했다. 이유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증명된 이후 할 게 없어진 수학자들이 난제를 던져 ‘줘’라고 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