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방용 짤



오늘의 주인공

존나 섹스하고 이쁜 학생이 선생 좋다고 달라붙는것도 좋고 다 좋지만

진짜 주인공은 이 뇌관(퍼커션 캡)이 달린 머스킷, 혹은 프랑스에선 퓨질이라 불리는 총기다

보통 머스킷 하면 다들 전열보병이 생각나고,

전열보병 하면 병신같이 횡대대형 갖추고 다 기립 상태로 맞아주면서 싸우다 뒤지는데 왜 저렇게 싸우냐 라고 한번쯤은 생각해 봤을 것이다

왜 저렇게 싸우냐?

바로 부족한 화력을 최대한 밀집시키기 위해서이다

머스킷이 명중률이 개병신이란 소리가 유튜브같은 곳에서 정설마냥 떠돌아다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숙련된 병사라면 50~60미터 거리에서 대가리를 뚜따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화약의 원료가 되는 초석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에 인도로부터 초석을 가져오는 영국을 제외한 유럽 대다수의 군대들은

훈련시에 실탄 사격이 아니라 해머에 끼운 부싯돌(황철석)을 제거하고 나무토막 따위를 끼워 약식으로 사격"했다 치고"를 반복했기 때문에 명중률은 낮아질수밖에 없었다


나머지 이유론 현대전마냥 병사들이 다 산개하거나 엎드려서 싸우다간 전장식 총기 특성상 장전이 매우 느려졌고

"섹스 기병 기병도에 보병 모가지쪽에 너어서 보병은 앙 이라고하고 보병들 다 뒤짐 섹스  기병도 ㅈㄴ셈"

거리면서 다가온 기병들을 저지하지 못해 대가리가 뚜따당하거나

밀집한채 전열을 형성하고 돌격해오는 적 보병들의 충격력에 버틸만한 화력과 저지력이 없었다

포병은 기병이 카운터치고, 기병은 보병 방진에 막히고, 보병은 포병에게 썰리는 턴제 전투가 강요되는 전장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산병전(유격전)을 통해 적을 괴롭힐수 있는 상황이라면 일반 보병들도 산개해 저격질을 하며 적들을 괴롭혔으며

나폴레옹 시기 프랑스 제국군이 이 산병전을 특히나 잘했다

그래서 더 쉽게 이해하자면 전열보병은 중세의 창병이 60미터 정도의 긴 창을 들고 싸우는 정도로 보면 된다

사실상 창병의 연장선인 것이었으며 수많은 전장에서 그 살상력과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이 플린트락 머스킷은 한계가 명확했다

1.날씨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비가 내리는 날엔 그날은 불발률이 급증하고 화약 접시 내로 들어온 물을 다 제거하기 전까진 제대로 된 교전을 벌이기 힘들었기에 병사들은 비가 올때마다 저 화약접시 부분을 천으로 둘둘 말아서 다녔다


2. 아무리 엄격한 품질관리를 했어도 황철석(부싯돌)의 상태에 따라 불발이 나는 경우가 꽤나 있었고

이 부싯돌은 30~40회 정도 사용하면 갈아줘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었다


장전 역시 복잡했는데

1.화약접시를 연다

2. 아가리에 종이탄포를 물고 찢어서 내장된 화약 일부를 화약접시에 채우고 화약접시를 닫아 팬을 세운다

3. 총구 내 압력을 높히기 위해 종이탄포를 포함한 나머지 화약과 내용물들을 꼬질대를 이용해 총구에 쑤셔박고 해머를 젖힌다

4. 공이에 물린 부싯돌이 팬을 때리며 발싸!


여기까지 숙련된 사수라면 분당 3발 정도의 속사를 할수 있었으며 저정도면 굉장히 빠른 편에 속한다

이후 머스킷은 강선을 깎아 정확도를 높힌  라이플로 발전했고, 라이플 전용 탄도 개발해 내며 천천히 진화의 길을 걷게 되는데...

그 진화 과정에서 튀어나온게 바로

1807년 개발된 퍼커션 캡 머스킷이다

기존의 플린트락 형태의 총기와는 다르게 화약 접시가 사라졌으며,

위의 번거로운 장전방식 대신 이 일회용 뇌관 캡을 끼우고 총구에 탄과 화약만 쑤셔박은채 격발하면 되었다

장전&격발에 걸리는 속도도 확연히 줄었으며 불발율 역시 확연히 줄었다

결정적으로 격발부가 밀폐되었기에 살상력이 크게 증가했으며 날씨의 영향을 덜 받는다는 메리트도 있었다

기존의 머스킷이나 라이플을 조금만 개수하면 퍼거션 캡 머스킷&라이플이 완성되었기에 군의 입장에선 양산에 용이했기에 쌍수들고 환영할 일이었다

개발시기보단 늦게 도입되었으며, 1833년경 미군이 이 퍼거션 캡 방식을 도입했으며 영국군 역시도 1842년에 이것을 도입했다


그리고 이 결정은

1861년 남북전쟁에서 수많은 시체들을 양산해냈다

강선과 밀폐된 격발부로 인해 높아진 탄속과 살상력과 사거리는 기존의 전열 전투 방식을 채택해 싸우던 남군과 북군 모두에게 치명적이었다

개씹창이 난 전장 속에서 북군의 존 세지윅이란 장군은 남군의 저격에 북군의 병사들이 겁을 먹자 앞에 서서 저격에 맞을 가능성이 없다는걸 증명하려 했으며

'이 거리에선 코끼리여도 못 맞춰.'

라며 한마디 꺼낸 순간 머리통에 시원하게 바람구멍이 났고 그 장면을 본 북군 병사들은 모랄빵이 터져서 도주하기도 했다

당시 그가 저격당한 거리는 800m를 조금 넘는 거리였다

라이플의 유효 사거리가 3~500m쯤이니 재수 없었기도 했지만 그만큼 획기적인 총기 발전이 있었음을 증명한 일화이기도 하다

이 획기적인 총기는 남.북군 37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당시 시찰하러 왔던 유럽의 고문관들은 사상자의 규모를 보고 기술의 발전이 전술의 발전을 뛰어넘었으며

기존의 교리로 싸우다간 다같이 손에 손잡고 뒤지자는 것과 다름없단 교훈을 얻고 돌아가게 되었다

물론 유럽은 이전까지만 해도 엄청난 효율을 보여줬던 전열 전투 방식을 완전히 버리진 못했지만


곧 유럽 대륙 전체에 역대급 개지랄이 터지는걸 실시간으로 감상하고, 네크로필리아 세나가 좋아하는 시체를 양산해가자 기존의 전열 전투 방식을 완전히 사장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