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라면 언제든지 방문하셔도 좋지만


오시기 전엔 꼭 연락을 달라고했던 하루카의 당부를 무시한채



깜짝 선물을 주려고 연락없이 양손에 식물한테 좋은 영양제와 새 흙을 잔뜩 싸들고


조심스래 하루카가 잡초를 관리하는 낡은 아지트에 들어갔는데



주위에 들리는 소리라곤 바깥에서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뿐인 조용한 폐건물에서


비닐봉투가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바닥에 아무렇게나 흩뿌려진 유리조각을 밟는 소리를 듣고 이미 누군가 들어왔다는걸 눈치챈 하루카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침입자에 대한 두려움 반


자신만의 공간에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이 발을 들였다는 분노 반으로



화분을 가꾸는 동안 잠시 내려두었던 샷건을 집어들고


손을 떨며 출입문쪽을 정조준하고 있다가


인기척이 나는 순간 들어온 이가 누구인지 확인조차 하지않고 무서울 정도의 기세로 샷건을 난사하는데



한 차례 총알세례를 퍼부운 뒤 거친 호흡을 몰아쉬면서 조금 진정한듯한 하루카가


키보토스의 주민이라면 고작 이 정도의 사격에 맞고 흘릴 리 없는 비정상적인 양의 검붉은 피를 보고 이질감을 느끼기 시작할 무렵



익숙한 목소리가 신음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그제서야 상황파악이 돼서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닫고


머릿속이 새하얗게 돼 들고있던 샷건도 놓치고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리고는



그럴 리가 없는데


오늘 선생님이 오신다는 연락은 분명 없었는데 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현실을 부정하는 듯 혼잣말을 중얼거리다가




양팔로 온몸을 질질 끌듯 기어가서


벌집이 되어버린 침입자를 살펴보는데



머릿속으로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던 최악의 광경을 눈앞에 마주해버리고


선생을 부르짖으며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피를 멎게 하려고 고사리같은 손으로 필사적으로 상처 부위를 누르다가



총알을 맞은 가슴이며 팔과 어깨에서


입에서 피를 잔뜩 흘리는 와중에도


자신은 괜찮다며 애써 하루카를 안심시키고


병원에 데려다 주지 않겠느냐는 말과 함께 입에서 피를 쏟아내는 선생을


사색이 된 얼굴로 곧장 들쳐업고는



눈물인지 빗방울인지 모를 물기로 범벅이 된 창백한 얼굴로 


온 몸이 선생의 피로 뒤덮인 채 빗속을 미친듯이 달려나가는 하루카가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