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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목 月雪ミヤコ SRT、偽装します。

원본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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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토끼공원 앞 역을 뛰쳐나와 숨을 헐떡이며 필사적으로 달렸다.


심장이 격렬하게 두근거리며 온몸에 피를 흘려보낸다. 호흡이 거칠어지고 입안이 바싹 말라 피맛이 난다.


매일 업무가 바쁘다는 핑계로 운동을 게을리 한 대가가 돌아온 것이다. 몸이 급격한 산소 소비를 견디지 못하는 듯 했다.


"하아... 하아...! 미야코... 사키... 하아, 케흑, 모에... 미유...!"


가쁜 숨을 몰아쉬며 행인들이 놀라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기토끼공원으로 서둘러 향했다.

해는 동쪽에 떠 있고 아직 아침을 조금 넘긴 시간대였지만 쨍쨍한 햇살에 몸에는 땀이 흥건했다.



『긴급사태입니다, 선생님. 지금 당장 아기토끼공원으로 와 주세요.』



십여 분 전 미야코가 보낸 모모톡에는 그저 그렇게만 적혀 있었다.


그 이후 몇 번이나 모모톡을 보내 연락을 시도했지만 그녀로부터 아무런 답장이 없었다.


RABBIT소대 모두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틀림없다.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오늘 일정을 전부 취소하고 샬레를 뛰쳐나왔다.


린에게 다시 폐를 끼칠지도 모른다.

마음 속으로 떨떠름한 표정의 수석행정관 및 총학생회장 대리에게 사과하면서도 조마조마했다.


그녀들은 폼으로 특수부대를 전문으로 육성하는 SRT특수학교에 입학한 것이 아니다.

전투에 관해서라면 이 키보토스에서도 최고 수준의 실력을 자랑할 것이다.

그 실력은 그녀들의 전투를 가까이서 지켜본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런 RABBIT소대의 소대장 미야코로부터 『긴급사태』이라는 연락만 받고 그 뒤 아무 반응도 없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예삿일이 아니었다.


아기토끼공원 정문에 도착해 수풀이 우거진 샛길로 들어간다.

그녀들이 알려준 침입자용 함정이 설치되지 않은 길 중 하나다. 그 중에서도 최단 경로를 선택해 달렸다.


그리 크지 않은 자연공원이지만 지금은 이 공원의 거의 전부가 그녀들의 영토가 되어가고 있었다.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평범한 공원이지만 그녀들이 훈련 등으로 외출할 때면 곳곳에 함정이 놓여 있다.


경로를 벗어난 길로 가면 순식간에 함정에 빠지거나 발이 묶여 공중에 매달리기도 한다. 악의를 품고 침입한 자에게는 가차없는 제재가 기다리고 있다.


이제 이 길도 익숙해졌구나, 속으로 생각하며 서둘러 야영지로 향했다.


풀을 헤치고 짐승의 길과 다름없는 곳을 뚫고 나아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무 틈 사이로 그녀들의 야영지가 20미터 정도 눈앞에 보였다.


은발머리 소녀 한 명이 캠핑용 아웃도어 의자에 앉은 모습이 멀리서 보였다.


"미야코!! 어떻게 된 거야?! 다들 무사해?! 대체 무슨 일이 있었어?!"


"꺅...?! 서, 선생님?!"


정작 모모톡을 보낸 미야코는 갑자기 뛰어든 나를 보고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작은 입을 뻐끔거리고 있었다.


"하아... 하아... 어... 어라...? 미야코? 무, 무슨 일 있던 거 아니야...?"


"음... 그...? 서, 선생님? 그... 일단 진정하세요... 저는 괜찮으니까..."


"하아, 하아..."


미야코가 내 곁으로 달려와 등을 토닥이고 쓰다듬었다.


그런 그녀의 침착한 표정과 태도, 나와 미야코의 온도차에 팽팽했던 긴장의 끈이 급히 풀리며 피로가 온몸으로 와르르 쏟아졌다.


이렇게 미야코의 『긴급사태』 사건은 절박했던 내 속내와는 달리 맥빠질 정도로 차분하게 시작되었다.



🐇🐇🐇



"... 죄송합니다, 선생님. 확실히 급한 일이라서 『긴급사태』라고 연락한 것은 맞지만 오해를 부를 수 있는 표현이었어요..."


"아니, 사과할 필요는 없어. 미야코 소대에 무슨 일이 있던 것이 아니라 정말 다행이야. 안심했어."


고개를 푹 숙이는 미야코를 달래며 부드럽게 말을 건넨다.

아무래도 모두에게 위험이 닥친 것은 아닌 것 같다. 한숨을 푹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미야코의 정면, 평소에는 사키가 앉아 있는 아웃도어 의자에 앉아 "신경쓰지 마."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 그래서 무슨 일로 부른 거야...? 그리고 그 옷차림은...?"


미야코는 평소의 복장이 아니었다.

남색 원피스에 얇고 하얀 반팔 카디건을 걸치고 손에는 작은 핸드백을 들고 있다.

발은 흰색 운동화로 캐주얼했지만 대체적으로 어른스러운 분위기로 품위 있는 옷차림이 그녀에게 잘 어울렸다.


"으음... 그, 어떤가요."


"엄청 잘 어울려. 어른스럽고 멋지네."


"그, 그런가요... 에헤헤..."


"저, 저기? 미야코...?"


"아...! 그, 그랬죠. 죄송합니다."


뺨에 손을 얹고 기뻐하는 미야코에게 말을 걸자 미야코는 흠칫 놀라며 헛기침을 한 번 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선생님께서... 그... 저의 『가족』이 되어주셨으면 합니다."


"... 응?!"


예상치 못한 말에 나도 모르게 사레가 들리고 이상한 목소리를 냈다.


얼굴을 보니 미야코의 흰 뺨이 주홍빛으로 물들고 수줍은 듯 몸을 쭈뼛거리고 있다. 잘못 들은 것은 아닌 듯 했다.


"가, 가족이라... 어, 음... 갑자기 무슨 소리야...?"


"네, 실은 오늘 아침 달리기를 하다가 이런 것을 주웠는데..."


"이건... 전단지...?"


미야코가 A3 크기 정도의 큰 종이를 건네준다. 조금 구겨져 있었지만 읽는 데 지장은 없었다.

구겨진 부분을 펴면서 내용을 살핀다.

아무래도 상가의 전단지인 듯 했다.


"... 『가족 손님 대환영』?"


상가 창립 30주년 감사제! 라고 크고 노란 팝글씨로 쓰여진 전단지 뒷면 부모와 자녀 그림 옆에 그렇게 적혀 있었다.


"네, 내용을 보니 혼자서도 싸게 살 수 있어보이지만 아무래도 가족을 타겟으로 하는 할인이 많아 보여서요... 보시면 여기 가게도..."


"... 『한 가족당 한 팩에 98엔』 계란이라, 최근 운송비 등으로 계속 가격이 오르고 있는데 상당히 싸네..."


"네, 그렇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식재료나 일상생활에서 쓰는 물건들을 싸게 파는 것 같아서..."


"... 화장품에 약, 잡화까지... 이건 확실히 엄청나네... 아, 그런데 이것도 가족끼리 가야 싸게 살 수 있는 건가..."


조건이 있다고는 하지만 상가도 적자가 아닐까 할 정도의 가격이었다.

그 외의 상품들도 대부분 이 주변 시세를 감안하면 놀라울 정도로 저렴했다.


"아시다시피 선생님의 지원 덕분에 저희는 굶어죽지 않고 생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진지한 얼굴로 미야코가 말을 시작했다.

입술을 일자로 다문 얼굴은 진지함 그 자체였다.


"하지만 아직 금전적으로나 식량적으로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모에가 필요없게 된 총기나 사용하지 않는 전자기기의 부품을 팔거나, 마을의 주민 분들을 도우며 가끔 받는 상품권 등으로 물건을 구입하고 있습니다만 줄일 수 있는 지출은 어떻게든 줄이고 싶어서..."


"그렇구나... 그래서 가족을..."


"네, 정확히는 『척』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 미야코는 성실한 아이네."


"아, 아뇨... 그런 건... 크, 크흠. 아무튼 그, 부탁드려도 될까요...?"


확실히 이런 이유라면 그녀가 말하는 『가족』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으음, 생각해보니까 그렇다면 RABBIT소대 모두가 가족인 척 하는 게 좋지 않을까...? 다 같이 있으면 더 많이 싸게 살 수 있을 텐데?"


"그것도 생각했습니다만... 공교롭게도 오늘은 아침부터 모두 외출해서요. 사키는 근처 산으로 체력 단련, 모에는 단골 무기상에게 새로운 중무기가 들어왔다며 아침부터 구경하러 갔고, 미유는 강가에 낚시 겸 조약돌을 찾으러 가서..."


"아아, 그렇구나..."


아무래도 타이밍 나쁘게 우연히 다들 일정이 있던 모양이다.

조금 풀이 죽은 표정의 미야코가 마치 버려진 새끼 토끼처럼 애처로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그런 거라면 알겠어. 내가 미야코의 가족인 척 하면 되는 거지?"


"네...! 감사합니다...!"


"좋아, 맡겨줘!"


아마 내가 미야코와 남매인 척이라도 하는 것이겠지. 그 정도라면 쉽다.

동료애가 강하고 착실하고 귀여운 소대장을 위해서라도 여기서는 발 벗고 나서자.


"그러면 작전 전에 상황 점검과 브리핑을 진행하겠습니다."


기쁜 듯 미소짓던 미야코가 헛기침과 한숨을 한 번 하고 다시 진지한 얼굴로 돌아왔다.

루틴처럼 항상 임무 전에 하는 작전회의일까. 미야코의 말에 의식을 집중한다.

눈썹을 치켜뜬 그녀의 얼굴을 보는 이쪽도 저절로 기합이 들어가는 듯 했다.


"저희 RABBIT소대는 선생님의 도움으로 폐기 도시락 등을 구할 수 있어 굶주림은 어떻게든 면했지만, 아직 근본적인 식량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기토끼공원 앞 역에서 세 정거장 떨어진 상가에서 저희의 남은 자금을 사용해 효율적으로 식료품 및 생필품을 구입할 예정입니다."


"응."


"선생님께서는 여기서 홍보하는 한 가족당 한 팩에 98엔이라는 놀라운 가격의 계란을 포함해 그 외 할인중인 상품 구매를 도와주셔야 합니다. 즉, 저와 선생님이 가족으로 위장하는 것이죠. 그럼 지금부터 제가 알려드리는 설정을 기억해 주세요."


"응... 응?"


설정을 외운다.


쇼핑할 뿐인데 그런 것이 필요한가 조금 당황했지만, 일단은 얌전히 미야코의 말에 다시 귀를 기울였다.


"작전명은 『알콩달콩 부부 쇼핑 작전』. 선생님은 제 남편으로 저와는 오래전부터 옆집에 살던 소꿉친구였습니다. 철이 들었을 때부터 저희는 줄곧 함께했고 어느새 둘이 같이 있는 것이 당연해지고 둘이서 장래를 함께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정도입니다."


"... 어, 그... 저기, 미야코?"


"작전명은 『알콩달콩 부부 쇼핑 작전』입니다. 선생님은 제..."


"앗, 어, 미안. 내 귀가 이상한가 싶었는데 아무래도 제대로 들은 거 맞구나."


"정말, 집중해 주세요, 선생님."


"으응... 죄송합니다...?"


내가 사과해야 하는 걸까?

왜 혼나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일단 사과했다.


왠지 분위기가 조금, 아니 꽤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은 『남매』로서 가족을 위장하는 것이었는데.

그런데 미야코의 이야기는 왠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 하다.


"계속하겠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늘 함께하던 연상의 선생님에게 동경에 가까운 연모의 감정을 품고 있었고, 성장한 뒤에도 줄곧 선생님의 뒤를 쫓고 있었습니다. 집이 바로 옆이라 매일 아침마다 제가 선생님을 깨우러 갔고 선생님의 어머니도 『미야코, 우리 애를 잘 부탁한다』라고 말할 정도로 공인된 사이여서..."


"저, 미야..."


"지금 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조용히 해주세요."


"어, 어..."


태클을 걸 새도 없이 단칼에 묵살당한다.


아마 내가 오기 전까지 이 설정을 계속 고민하던 걸까.

자세히 보니 미야코의 의자 뒤편에 그녀가 참고한 것으로 보이는 연애소설이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그렇다면 내 연락을 눈치채지 못한 것도 이해가 간다. 집중하는 미야코, 정확히는 본인만의 세계에 빠진 미야코는 한 마디로 주변이 보이지 않게 되니까, 이번에도 그랬을 것이다.


미야코가 평소와 다르게 갈아입은 이유도 설명이 된다.

학생 복장으로는 『결혼했다』는 전제 자체의 신빙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어른스러워 보이는 복장을 하고 있는 걸까.


"저기, 미야코. 이런 거라면 그, 『남매』라던지 하는 걸로 위장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네,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와 선생님은 외모의 공통점이 너무 적습니다."


"앗, 아아... 과연... 확실히 그렇네..."


듣고 보니 확실히 그렇다.

은발에 옅은 연분홍 눈동자를 가진 미야코는 나와 외모가 그다지 닮지 않았다. 게다가 나이 차이도 꽤나 난다.


"따라서 이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저희가 부부로 위장하는 것이 제일 좋다고 판단했습니다. 아, 결혼반지는 제가 가진 액세서리를 사용합니다. 은색의 심플한 반지라서 주변에서 보면 결혼반지로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선생님의 손가락에 맞지 않을 수 있다는 건데... 그렇네요, 선생님, 조금 숙여주시겠어요?"


"어, 응..."


"감사합니다... 네, 그 정도면 충분해요."


그녀의 눈높이까지 몸을 숙이자 미야코가 거의 껴안는 자세로 내 목에 무언가를 건다.

주변 공기에 달콤한 소녀 특유의 향과 사춘기 여학생임을 상징하는 상쾌한 데오드란트 향이 섞인다.

다시 말해 미야코의 냄새가 코를 간질여 나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만다.


"미, 미야코... 조금 가까운데..."


"... 후훗, 선생님의 몸은 역시 크네요. 그대로 조금만 더 있어주세요..."


예상치 못한 갑작스러운 접근에 당황하는 목소리가 새어나오지만 미야코는 아랑곳하지 않고 작업을 이어나갔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목 뒤에서 딸깍하는 금속음이 나고 가슴 앞으로 은반지가 나타난다.

반지를 목걸이로 만들었다고 깨달은 것은 미야코가 내 앞에서 멀어진 뒤였다.


"음... 이거라면 괜찮겠죠. 『평소에는 일에 방해되기 때문에 목걸이로 하고 있다』라는 설정으로 한다면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공사에 엄격한 사람은 왠지 멋지기도 하고요."


"... 그게 미야코의 취향이구나."


"... 자, 이제 슬슬 출발하지 않으면 행사가 시작될 거에요. 목적지는 세 정거장 앞 상가, 마음 단단히 먹고 출발하죠."


기분 탓인지 말이 조금 빨라지고 시선을 피하는 미야코가 출발을 재촉한다.

정곡인걸까.


"... 뭐, 미야코가 좋다면... 괜찮겠지..."


이렇게 나이에 걸맞게 들뜬 미야코의 모습은 좀처럼 볼 수 없다.


"... 후훗, 후후후..."


본인의 약지에 낀 반지를 아름다운 보석이라도 만지는 것처럼 애지중지하는 그녀를 보며 어쩔 수 없다고 각오하고 뺨을 긁적거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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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행사가 진행되는 상가는 휴일도 겹쳐서인지 꽤나 북적였다.

발 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는 아니지만 대형 마트나 쇼핑몰이 들어서는 요즘같은 시대에 이정도로 성황하는 것은 꽤나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우와, 사람이 많네요..."


미야코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지막히 중얼거린다.

아기토끼공원 근처에도 그녀들이 자주 도움을 주는 상가가 있지만 이 정도로 활기찬 상가는 아니기에 비교해서 조금 놀라는 걸까.


"응, 그렇네. 엄청 붐비네."


"... 이렇게 사람이 많으면 조금 서둘러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빨리 목적지로..."


"으음~ 뭐, 괜찮지 않을까? 전단지를 보면 행사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고... 그보다 점심시간이라 배도 고픈데 어때, 미야코? 저기 식당에서 점심이나 먹자. 돈은 내가 낼 테니까 안심해."


"그... 그치만..."


"괜찮아. 미야코도 그 돈은 모두를 위해 쓰고 싶잖아? 미야코는 노력하고 있으니까 혼자 점심 정도는 먹을 자격이 있어."


"... 감사합니다."


"아하하, 천만에. 그것보다..."


힐끗 옆을 걷는 그녀를 바라본다.


그냥 옆을 걷는 정도가 아니라 사이에 발 하나 들어올 공간조차 없을 정도로 바로 옆에 꼭 붙어 있었다.

미야코는 내 팔짱을 끼고 빈틈 하나 없이 밀착한 채 붙어서 걷고 있다.


"미, 미야코... 조금 걷기 힘든데..."


"... 그런가요. 그렇다면 죄송하지만 익숙해져 주세요. 부부란 이렇게 팔짱을 끼고 다니는 것이니까요."


"나는 이렇게 걷는 부부를 본 적이 없는데."


"그래요? 요즘 부부는 꽤나 식었네요."


"아마 우리가 이상한 거라고 생각해."


"다른 집은 다른 집이고 우린 우리죠, 『여보』. 게다가 얼마 전 어촌에서도 아침부터 손을 잡고 둘이 같이 걸었잖아요."


그말대로 얼마 전 RABBIT소대와 함께 야토우라 마을에 조사하러 갔을 때 아침 바다를 헤엄치던 미야코와 우연히 만나 손을 잡고 아침을 먹으러 갔다.


"뭐 그때는 사람도 없었고..."


"그랬죠. 하지만 지금 저희는 그때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관계입니다. 그러니 이 거리감에 익숙해져 주세요."


여전히 내 옆은 양보할 생각이 없는 듯 하다. 그녀는 나를 이끌듯 팔을 잡아당기며 걸었다.


솔직히 미야코의 외모는 눈에 띈다.

은빛 비단같은 길고 고운 머리카락, 설국에서 자란 듯한 하얀 피부, 반듯한 이목구비와 매일의 훈련으로 단련된 날씬하고 탄력있는 몸.

활기찬 상가를 걷는 것 조차도 어딘가 어색할 정도다.


게다가 지금은 그녀의 매력을 돋보이게 하는 옷차림까지 더해져 양가 아가씨같은 분위기가 났다.

편애 없이 모델들과 비교해도 미야코가 더 아름답고 예쁘다고 확신을 갖고 말할 자신이 있다.


그런 그녀가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달라붙으면 조금 부끄러워진다.

이 지역에는 별로 와본 적이 없어서 아는 사람이 없는 것이 다행이다.


하지만 오가는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흐뭇하게 바라보는 눈빛이 아무래도 조금은 신경쓰인다.


이래서야 미야코가 말하는 부부라기보다도 오히려 갓 사귄 커플이나 굉장히 사이좋은 남매에 가깝다. 주위의 시선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사키도 모에도 미유도 없을 때의 미야코는, 평소 소대원들 앞에서는 똑부러지는 모습을 보이는 만큼 나와 단둘이 되면 이렇게 어리광을 부리는 경우가 많다.


나로서도 미야코가 그렇게 솔직하게 어리광 부리는 것이 싫지 않고 오히려 기쁘기까지 하지만, 그건 다른 문제다.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부끄러움을 도저히 어찌할 수 없었다.


"... 그러고 보니, 그거 알아, 미야코? 여기 근처에서 최근에 무슨 사건이 있었다던데..."


부끄러움을 모면하기 위해 미야코에게 새로운 화제를 꺼냈다.

움찔, 미야코가 작은 동물처럼 반응했다.


아까부터 행인들의 이야기를 흘려듣고 있으면 며칠 전 이 상가 부근에서 학생들에 의한 소동이 있었다고 한다.

아무래도 서로 다른 두 집단의 학생들이 영역 다툼을 벌이느라 약간의 소란이 벌어졌다고 한다.

더군다나 소란을 피운 학생들 전부 아직 발키리에 잡히지 않았다, 그러한 이야기였다.


뭐 키보토스에서는 흔한 일이다.

싸움과 총성과 폭발은 키보토스의 일상.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놀랐지만 지금은 완전히 익숙해졌다.

이 정도의 시끄러움이 키보토스에서는 딱 좋을지도 모른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선생님을 더 가까이에서 지켜야겠네요."


미야코가 껴안은 팔에 조금 더 힘을 준다.


"하하하... 그때는 의지할게, 미야코."


"후후후, 맡겨주세요. 여보."


미소짓는 그녀에 대한 신뢰와 역시나 익숙해지지 않는 『여보』라는 호칭, 주위의 시선의 부끄러움이 뒤섞인다.


쓴웃음을 지으며 점심을 먹기 위해 근처 식당으로 미야코의 팔짱은 풀어지지 않은 채 향했다.



🐇🐇🐇



식당 안에는 잔잔한 보사노바풍 음악이 흘러나오고 점원과 손님이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따뜻한 색상의 조명이 가게를 은은하게 비추고 향긋한 커피 향이 가게를 부드럽게 감싼다.


책상과 의자의 인테리어도 마음에 든다.

나뭇결이 느껴지는 클래식한 가구의 자리로 안내받았는데 의자에 앉았을 때 부드러운 쿠션에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나왔다.


걷다가 무심코 눈에 띄여 들어온 식당이긴 했지만 아무래도 『명소』인 듯 했다. 분위기가 굉장히 좋다.


얼음이 떠다니는 물을 천천히 입에 머금는다. 살짝 달아오른 몸에 차가운 수분이 스며드는 것을 느낀다.


"... 그래서 어때, 미야코. 결정했어?"


"... 죄송합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그 와중에 부드럽고 잔잔한 기류가 흐르는 카페 안에서 단 한 사람, 미야코는 그 분위기와 맞서듯 심각한 얼굴로 메뉴판과 눈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으응... 어쩌죠... 하지만..."


이런저런 중대한 작전이라도 세우는 것처럼 미야코는 중얼중얼 혼잣말을 계속하며 입가에 손을 얹고 때때로 눈을 감으며 생각에 잠긴다.

이미 한동안은 이런 상태였다.


들어갔을때만 해도 미야코와 멋진 카페네, 그렇네요, 라고 화목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메뉴판의 『커플 한정 세트』라는 글자를 본 뒤 그녀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렇네요... 이 한정 세트는 둘이서 먹는 것을 전제해서 그런지 양도 많고 가격도 저렴해요... 저로서는 선생님에게 얻어먹는 입장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가격을 낮추고 싶은데..."


"너무 신경쓰지 않아도 괜찮아? 미야코가 먹고 싶은 걸 먹으면 되는데..."


"... 그렇다면 역시 이 한정 세트네요. 이 하트 모양의 오므라이스는 매우 귀엽고 맛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저희는 지금 부부라서..."


부부라면 커플은 성립하지 않는다.

커플이라면 부부는 성립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그렇게 생각하는 듯 했다.


그렇게 메뉴판과 눈싸움한지 15분 째.

애초에 『부부』를 위장하기 위해 이곳에 왔을 텐데 고지식한 그녀의 비상한 머리는 『부부이면서도 커플』이라는 선문답같은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미간을 찌푸리고 눈썹에 힘을 준 진지한 그 표정은 과거 이들의 선배인 FOX소대와 대치했을 때를 떠올리게 할 정도였다.


"... 딱히 지금만 커플이라고 해도 상관없지 않을까..."


"아뇨, 그럴 순 없어요. 앞으로 비슷한 행사가 열려 사러 왔을 때 『저 두 사람, 카페에선 커플이었는데』라는 식의 소문이 돌면 이 상가에 오기 어려워집니다."


"사람들은 그렇게까지 생각 안 할거야."


그보다도 비슷한 기회가 있으면 또 나와 둘이서 올 생각일까.


얼마 지나지 않아 끙끙거리며 고민하던 미야코가 마음을 먹은 듯 고개를 들었다.


"... 정했습니다. 저는 이 『몽실몽실 계란 오므라이스』로 주문하겠습니다."


"어라, 그래도 괜찮아?"


"네... 어쩔 수 없습니다. 단기적인 이익보다 장기적인 계획이 더 중요하니까요. 조금 아쉽지만..."


"... 그렇구나. 유감이네."


손을 들고 점원을 부른다.

허리 높이의 앞치마를 두른 사람 좋아 보이는 고양이 점원이 이쪽으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네,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저는 이 미트소스 파스타 하나랑... 여기 이 오므라이스. 죄송하지만 이쪽 한정 메뉴의 하트 모양으로 해주실 수 있나요? 아내가 메뉴판 사진을 보고 굉장히 마음에 들어한 모양이라..."


"선...! 여, 여보...!"


미야코는 평소처럼 나를 부르려다가 황급히 입을 막고 부부같은 호칭으로 다시 불렀다.

점원은 그다지 꺼려하는 기색 없이, 오히려 조금 기쁜 듯 나를 바라보고 있다.

다행이도 왠지 가능할 것 같다.


"여기 오므라이스 모양 말인가요? 네, 당연히 됩니다."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싱글벙글 웃으며 대응하는 점원이 안쪽 주방에 메뉴를 전하러 간 것을 보고, 미야코를 보며 웃는다.


"... 어때, 미야코."


"... 교활해요, 선생님."


"설정이 무너지고 있어."


볼을 잔뜩 부풀린 미야코가 부끄러운 듯 눈을 가늘게 뜨고 이쪽을 노려본다.


"... 한정 메뉴라면 그 조건대로 주문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녀는 조금 삐진 듯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아마 본인이 생각했던 방법과 다른 방법으로, 그것도 꼼수같은 방법으로 주문할 수 있던 것이 조금 억울했던 걸까.


아니면 본인만 커플용 메뉴를 보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이 부끄러운 걸까.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른다.


"만드는 방법은 다 같을 테니까. 게다가 『마음에 든다, 멋있다고 생각했다』라고 점원에게 솔직하게 전하면 부탁을 들어 줄 수도 있어."


"어디까지나 가게의 대답에 달려 있으니 항상 그렇지는 않겠지만."라고 덧붙이며 미야코 쪽으로 돌아섰다.


"... 선생님은 무엇을 보고 그렇게 생각하셨나요?"


"음... 가게의 분위기라든가... 일하는 사람들의 분위기라든가, 그리고 지금 그렇게 바쁘지 않아 보인다든가, 그런 것들."


주위를 둘러보며 그녀에게 대답한다.

이 가게에 들어왔을 때부터 점원이나 분위기가 밝다는 것은 느끼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부탁한다면 분명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건 경험이 제일 중요하다.

미야코에게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감각인 듯 하다.


"... 역시 선생님은 교활해요. 게다가 갑자기 저를 『아내』라고 부르다니..."


"미야코가 기뻐한다면 난 뭐든 좋아. 게다가 『가족』이 되어달라고 말한 건 미야코지?"


"그, 그건... 그렇지만..."


꼼지락꼼지락 불편한 듯 몸을 꼬고 입을 우물우물거리며 작게 중얼거린다.

미야코는 본인이 꺼냈던 말을 새삼 떠올렸는지 볼이 조금 붉어졌다.


"... 선생님, 놀리는 건가요?"


"응~? 어째서?"


"... 눈빛이 수상해요. 싫은 느낌이 들어요."


"웃으면서 미야코를 보고 있을 뿐인데?"


"무우..."


"아하하하, 천천히 경험하면서 성장해주면 된다고, 미야코?"


"... 그 여유로워 보이는 태도, 역시 싫어요."


고개를 홱 돌리는 미야코를 보며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를 떠올린다.

처음에는 그녀에게 미움받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리운 추억이다.


미안하다고 웃으며 사과하고 있는데 문득 멀리서 점원이 음식을 옮기는 모습이 보였다.


"앗... 음식이 온 것 같아."


"에... 와아...! 감사합니다...!"


고양이 점원이 정중한 손놀림으로 음식을 테이블로 옮긴다.


흰 접시에 폭신한 하트 모양 오므라이스가 미야코의 눈앞으로 옮겨진다.

그녀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감탄사를 내뱉고 있다. 확실히 훌륭한 모양새다.


그야말로 보는 사람도 기분이 좋아지는 미소를 짓고 있다.

이렇게 기뻐하는 얼굴을 볼 수 있다면 미야코에게 미움받으면서도 부탁한 보람이 있다.


"내 건 아직인 것 같으니 미야코 먼저 먹어. 아마 곧 오겠지."


"... 하지만 이렇게 귀여워서는 먹기도 조금 망설여지네요..."


"마음을 이해하지만 따뜻할 때 먹어야지. 만든 사람도 제일 맛있을 때 먹어야 기뻐할테고."


"그렇죠..."


대답을 하면서도 오른쪽에서, 왼쪽에서, 여러 각도에서 오므라이스를 바라보며 갈 곳을 잃은 숟가락은 허공을 떠다니고 있다.


"... 아, 그렇지. 사진을 찍어도 될까요?"


문득 묘안이 떠오른 듯 미야코는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든다.

이왕이면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걸까.


"어, 뭐, 응. 괜찮지 않아?"


"감사합니다...! 그럼 조금 숙여서 사진에 나오게 해 주세요."


"에, 나도 찍는 거야...?"


"당연하죠. 저도 같이 찍을게요... 자, 치즈~"


"자, 잠깐만."


급하게 포즈를 취하려 하지만 자세가 제대로 나오지 않고 미야코의 스마트폰은 무심하게도 찰칵 소리를 내며 사진을 찍는다.


"... 후훗, 보내드릴게요."


모모톡으로 미야코가 보낸 사진이 도착한다.

하트 모양 오므라이스를 중심으로 해맑은 얼굴로 귀엽게 피스를 하며 사진에 담긴 미야코의 얼굴과 급하게 카메라에 찍히려는 이상한 얼굴로 이상한 자세를 한 남자의 모습이 있었다.


"풉... 아하하... 엄청 웃기게 찍혔네요?"


"그, 그야 그렇게 갑자기 찍으니까..."


"후후후... 어떡할까요. 이 사진 표정이 너무 좋은데 배경화면으로 할까요? 부인을 놀리는 남편에게는 딱 좋지 않나요?"


"노, 놀려서 죄송합니다... 그것만큼은... 어떻게든... 부끄러우니까..."


평소에는 진지하고 성실해서 좀처럼 볼 수 없는 미야코의 장난기 가득한 시선에 책상에 손을 얹고 투료하는 자세를 취한다.

그런 내 모습을 본 미야코는 다시 참을 수 없다는 듯 웃었다.

이렇게 웃는 그녀를 보는 것은 어쩌면 처음일지도 모른다.


"아하하... 농담이에요. 그래도 이렇게 둘이서 사진을 찍을 수 있어서 왠지 엄청 기뻐요."


"... 얼마든지 같이 찍어줄 테니까 좀 더 제대로 된 포즈로 찍어도..."


"후훗, 안 돼요... 선생님의 이 얼굴은 분명 저밖에 모르겠죠. 자, 이제 잘 먹겠습니다."


예의 바르게 손을 모은 뒤 미야코는 오므라이스를 한 숟갈 입에 넣었다.


"음... 맛있어...!"


미야코는 환한 얼굴로 웃다가 조금 부끄러워하더니 무언가 생각난 듯 나를 바라본다.


"그러고 보니 감사 인사를 하지 않았네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역시 보기 귀엽고 폭신폭신한 만큼 매우 맛있어요."


"잘 됐네. 미야코가 좋아하니 나도 기뻐."


"... 그, 저기... 괜찮다면 선생님도 한 입 드실래요? 그게, 엄청 맛있으니까..."


미야코가 오므라이스를 한 숟갈 떠서 조심스럽게 나에게 내민다.

이른바 『아앙』이라고 하는 것이다.


"... 괜찮아?"


"... 네, 그, 선생님도 드셨으면 좋겠어요."


머뭇거리며 말하는 미야코에게 더 물을 필요는 없다 싶어 그녀의 오므라이스를 한 입 맛본다.

계란은 폭신폭신해서 부드럽고, 조금 달콤한 양념이 되어 있고, 거기에 치킨라이스의 감칠맛이 어우러져 굉장히 맛있다.


"... 후훗, 맛있네, 미야코."


"그, 그렇죠... 후후훗."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지고 미야코도 그런 나를 보며 웃었다.

그것 뿐이지만 왠지 몸이 간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분명 미야코가 부끄러워하는 탓이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



식당에서의 점심을 마치고 본래 목적인 쇼핑을 계속했는데 미야코가 미리 계획을 세워 상가를 돌아다닌 덕분인지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상할 수 있는 식료품은 마지막에 사기로 하고 우선 일상생활에 필요한 생필품이나 훈련에 쓸 탄약, 앞으로 햇빛이 더 강해지면서 필요해질 자외선 차단제를 포함한 화장품 등을 구입했는데, 다른 곳에서 사면 이렇게 싸게 살 수 있었을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보다도 이렇게까지 요령 있게 돌아다니는 미야코의 계획성에 감탄했다.

시간대나 유동 인구를 보고 어느 가게가 한산한지 정확하게 판단하고 그때마다 계획을 수정해 효율적으로 가게를 돌고 있다.


좀 더 허둥지둥 가게를 돌아다닐 줄 알았지만 어느새 나는 그녀의 계획에 맞춰 행동하고 지시를 기다리는 짐꾼이 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다.

덕분에 오른쪽 어깨의 쇼핑백 무게가 늘어날 때마다 성취감을 느낀다.

이렇게 그녀들의 생활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니 여기 와서 미야코를 돕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무게운 것을 드는 건 이른바 『남편』의 몫이다.


키보토스에서는 오히려 그녀들이 강하기 때문에 어떨지 모르겠지만 대개는 그렇다.


이런 일을 그녀가 맡겨주니 왠지 기쁘고 자랑스러운 그런 기분이 든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미야코에게 『부부』같은 편안함을 느끼며 혼잡한 가운데 능숙하게 발걸음을 옮기는 그녀의 든든한 뒷모습을 본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그 발걸음에 역시 SRT특수학원이구나 하는 생각을 멍하니 하며 그녀의 다음 지시를 기다린다.


"미야코, 다음은 어디로 가?"


"네, 다음엔 펫숍에 가려고요. 깡총이 간식도 떨어지고 케이지 청소용 도구 등도 낡아서 슬슬 사러 가야겠다고 생각한 참이라..."


"알았어. 맡겨 줘."


"후훗, 부탁드려요. 앗..."


그렇게 다음 목적지로 향하던 도중 미야코가 걸음을 멈췄다.


갑자기 멈춰선 그녀와 부딪히지 않도록 나도 급정지를 했다.


"어이쿠... 왜 그래? 미야코?"


"죄, 죄송합니다."


나에게 사과하면서도 그녀의 시선은 돌아가지 않은 채였다.


"아, 그게, 잠깐 넋을 잃고 보느라..."


"넋을 잃고...? 아, 이 구두...?"


미야코의 시선 끝에는 양화점의 유리 쇼윈도가 있었다.

여러 종류의 구두가 예쁘게 진열되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유난히 눈에 띄는 신발이 있었다.


작은 흰색의 여성용 로퍼 가죽 구두.


장식 없는 심플한 구두지만 그만큼 어른스럽고 소재가 우수하다는 것이 느껴지는 구두였다.

한눈에 이 구두에 시선이 팔렸다고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예쁜 구두다.


"... 네, 맞아요."


그녀는 푹 빠진 눈으로 진열장 앞에 무릎을 감싸고 쪼그려 앉았다.

한눈에 반한 것이 틀림없다.


조명을 받은 그 구두는 햇살 아래 첫눈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 굉장히 멋진 구두네요."


한숨을 내쉬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앉아 얼굴을 들여다본다.

마치 동화 속 유리구두를 꿈꾸는 소녀같은 눈동자로 미야코는 신발을 바라보고 있다.


"네, 정말로... 어른스러운데도 너무 귀여워서..."


"... 미야코는 이런 구두 좋아해?"


"그렇네요... SRT를 나올 때도 일상적인 옷이나 장비는 들고 나왔지만... 이렇게 예쁘고 어른스러운 구두는 입학 전에도 없었어요... 동경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죠..."


『멋쟁이는 발끝부터』라는 말도 있다. 미야코 정도 나이의 여자아이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법한 말이다.

어른스러운 그녀의 성격 때문에 잊기 쉽지만 그녀도 한창 때의 여자아이다. 15살의 여자아이다.

이런 어른스러운 아이템을 지니고 싶은 시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은 식료품이나 생필품을 사는 것이 목적입니다. 훈련용 신발이라면 몰라도 이런 신발은 만약 SRT가 부흥하더라도 아마 제가 학생인 동안은 오지 않겠죠... 무엇보다도 이 돈은 저 혼자만의 것이 아니니까요."


그렇지만 미야코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눈을 감고 고개를 저으며 나를 바라봤다.


분명 이러한 것을 동경하고 있을 텐데, 원래는 조금 더 욕심을 부려도 용서받을 나이일 텐데도 말이다.


그런데도 미야코는 입술을 조금 깨물고 참았다. 스스로 그렇게 선택한 길이라는 듯 마음속으로 무시하고 있었다.


가격표를 힐끔 살펴본다.

예상대로 무리한 정도의 가격은 아니었다.


"...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갈까요, 여보?"


잡념을 떨쳐버리고 내가 아무 말도 못하게 하려는 듯 미야코는 그렇게 단언하고 다음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그렇게 말한다면 더 이상 내가 할 말은 없었다.


"... 알았어, 미야코."


앞서 걷는 미야코의 뒤를 따라 걷는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그녀가 아쉬운 듯 구두를 흘깃 쳐다보는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



낮을 지나 저녁에 가까워지자 쨍쨍한 태양빛은 조금 약해지고 바람이 불면 기분좋을 정도로 시원해졌다.


멈춰 서서 손바닥으로 작렬하는 석양을 막는다.

눈부시지만 오늘 아침 아기토끼공원에 갔을 때만큼은 아니다.


"스읍... 후우..."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여름 내음이 물씬 풍기는 공기를 폐에 가득 삼킨다. 상가에 깔린 건조한 콘크리트 냄새가 사람들의 삶의 냄새와 섞인다.

뜨겁고 생명의 냄새가 난다. 여름이었다.


결국 미야코와의 쇼핑은 무사히 끝났다.


그녀가 쇼핑하기로 한 가게는 모두 돌았고 RABBIT소대가 필요로 하는 물건들은 대부분 구입할 수 있었다.


"휴우, 감사합니다 선생님. 덕분에 오늘 필요한 물건은 전부 구입했습니다."


그렇게 감사 인사를 하는 그녀는 한 손에는 쇼핑백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전단지를 보며 놓친 것은 없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조금 피곤해 보이기도 했다.

하루 종일 긴장한 채 돌아다녔기 때문일까.


"그거 다행이네. 미야코에게 도움이 되었다니 기뻐."


"후후훗, 감사합니다."


"... 그렇지, 조금 쉬었다 가지 않을래? 여기 상가 조금 떨어진 곳에 공원이 있대. 나도 이제 진이 다 빠졌어."


"그러네요, 오늘은 하루종일 걷기만 했으니 쉬었다 갈까요."


"아, 미야코는 먼저 가 있어. 나는 음료수도 사올 겸 개인적으로 사고싶은 게 있어서 잠깐 다녀올게."


"어...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그럼 먼저 가 있을게요."


"응, 이따 봐."


그리고 미야코와 헤어져 내가 목표로 한 물건을 구입한다.


"...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어...!"


손목시계를 보니 이미 미야코에게 공원으로 돌아가겠다고 전한 시간은 가볍게 넘어 있었다.


오른손에 든 큼직한 종이봉투가 바스락거리며 흔들린다.

문제없이 원하는 물건은 살 수 있었지만 그녀를 기다리게 해서 걱정시키면 미안하다.


터벅터벅 구두 소리를 내며 인파 속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그녀의 곁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 어라?"


문득 공원에 가까워질수록 조금씩 인적이 뜸해지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고 보니 상가에서 미야코와 함께 걸을 때 들었던 『싸움이 있던 장소』가 분명 이 근처였을 것이다.


사건은 며칠 전 끝났다고 알고 있지만 그래도 왠지 모를 긴박한 분위기가 거리 곳곳에서 흐른다.

자세히 살펴보면 주변 사람들도 외지인인 나를 힐끔힐끔 훔쳐보는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 조금 서두를까."


누가 듣는 것도 아닌데 나직이 혼잣말이 새어나온다.


주변 시선과 움직임에 여느 때보다 주의하며 초녹이 우거진 공원에 발을 들인다. 그녀가 기다리고 있는데 실랑이에 휘말릴 수는 없었다.


공원 구조는 아기토끼공원과 비슷했다. 허리 높이의 문이 있는 입구와 가운데 놀이기구가 몰려 있는 이른바 『지구공원』의 구조다. 왠지 오늘 아침 미야코를 찾아갔을 때가 떠올랐다.


그렇지만 자연공원인 아기토끼공원만큼 부지가 넓지는 않다. 들어가자마자 벤치 앞에 앉은 미야코의 모습이 보여 손을 흔들어 그녀에게 말을 걸려고 한 순간──


"──그러니까 저는 당신들이 말하는...!"


"... 그렇지만... 믿기 힘드네요..."


그리고 뭔가 다투는 듯한 소리가 들려 나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목소리가 들린 그녀 쪽을 자세히 살피자 미야코는 세 명의 로봇 남성에게 둘러싸여 있다.

왠지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였다.


"그럼 왜 이런 곳에 혼자 계시는 거죠?"


"그건... 남편과 쇼핑하러 온 거에요. 지금은 여기서 볼일이 있는 남편을 기다리고 있고..."


"하아. 당신처럼 젊은 분이 말이죠..."


"... 네, 그렇습니다만 뭔가 문제라도?"


"..."


대화 전문을 듣고 상황을 파악하니 아무래도 미야코가 얼마 전 소란을 일으킨 학생 중 하나가 아닐까 의심하는 눈치였다.

키가 조금 크고 정장을 입은 남자들의 팔을 자세히 보니 『상가자치대』라고 적힌 완장을 달고 있었다.


미야코는 계속 부정하고 있지만 남자들은 그녀의 말을 그다지 믿을 수 없는지 때때로 얼굴을 맞대고 고개를 기울이며 무언가를 상의한다.


『며칠 전 사건이 일어난 사건 현장에 홀로 있는 학생』

그들에게는 그 상황만으로도 수상해 보일 것이다.


이윽고 한 남자가 그녀의 앞에 한 발을 내딛는다.


미야코가 몸을 조금 굽혀 한쪽 다리를 뒤로 빼고 휴대하던 핸드백에 손을 넣는다.


──좋지 않다.

그렇게 생각했을 땐 이미 몸이 움직이고 있었다.


"... 최근 이 근처에서 사건이 발생한 것은 알고 계십니까? 이야기를 들어도 역시 신용하기가 힘드네요. 죄송하지만 신변을 보증할 수 있는 분이 나타날 때까지 가까운 초소로 저희와 함께 해 주시죠."


"실례합니다. 제 집사람에게 무슨 볼일이시죠?"


손을 뻗는 남자에게서 미야코를 떼어내듯 황급히 미야코에게 달려가 어깨를 감싸고 남자를 바라본다.


"당신은...?"


"여보...?!"


미야코는 움찔하며 어깨를 들썩이고 놀란 표정으로 나를 올려보았지만 이내 안도한 듯 숨을 삼키며 내 팔을 잡았다.

로봇 머리의 양복 남자들은 갑자기 난입한 나를 의아하고 의심하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집사람』...? 이라는 것은..."


"네, 제가 남편입니다. 다시 한 번 묻습니다만 집사람에게 무슨 볼일이신가요?"


상대방을 자극하지 않도록 담담하게, 하지만 단호하게 대답한다.

불편한 침묵이 잠시동안 우리를 감싼다.

서로를 노려보는 가운데 미야코는 경계를 늦출 생각이 없다. 그것은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윽고 입가에 손을 얹고 생각에 잠겨 있던 그들 중 리더격으로 보이는, 미야코에게 다가섰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저희는 상가에서 자치대를 하고 있습니다만 부인께서 젊으셔서 여기서 소란을 일으킨 학생이 아닐까 외형만으로 판단해버렸습니다. 배우자분이 계시다면 사건에 가담한 학생은 아니겠죠. 거듭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남자는 내 말을 듣고 고개를 숙인 채 생각에 잠겨있었지만 그래도 납득했는지 이쪽을 보며 사과했다.


"아, 아뇨, 오해가 풀렸다면 저희도 다행입니다. 사는 동네에서 사건이 일어났으니 걱정하는 마음은 이해합니다."


애초에 미야코도 학생이고 우리는 결혼한 적도 없지만.


속으로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들고 어깨힘이 빠지고 긴장이 풀려 사과하는 그 남자를 말렸다.


"... 걱정 감사합니다."


그들은 다시 한 번 깊이 고개를 숙이고 발길을 돌렸다.

자치대원들의 뒷모습이 공원을 떠나 멀어져 간다.

크게 한숨을 내쉬며 벤치에 앉았다.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오늘 아침보다 기온은 낮아졌는데도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미야코도 나를 따라 옆자리에 앉으며 "괜찮으신가요?"라고 물으며 내 얼굴을 들여다본다.


"후우... 고마워, 미야코도 괜찮아?"


"네... 선생님이 와주신 덕분에요. 지금 휴대하고 있던 건 권총 뿐이라서 상대가 셋인 상황에서 제압할 수 있을지 몰랐으니까요."


"... 그렇지. 겉으로만 봐도 임전 태세였으니까."


그녀의 말을 듣고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만약 그 자리에서 전투가 벌어져 소란을 일으켰다면 이번에야말로 그녀가 사건을 일으킨 범인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그녀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 역시 그것은 피하고 싶었다.


사실 그들의 말대로 미야코는 아직 학생이기 때문에 그들의 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아하하, 마른 웃음을 흘리며 손등으로 땀을 닦는다.


"뭐, 아무 일도 없어서 다행이야. 미야코도, 저 사람들도."


"... 죄송합니다, 걱정을 끼쳐드렸네요."


"괜찮아. 솔직히 말해서 그 사람들의 안전을 더 걱정했으니까."


"... 왠지 그건 그것대로 복잡한 기분이네요."


"혼자서 세 사람을 제압하려던 건 미야코잖아?"


반쯤은 진심인 농담을 그녀에게 장난치듯 말하자, 본인의 실력을 신뢰했기에 기쁜 것인지, 아니면 걱정해주길 바랬는지,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미야코가 미소지었다.


"... 그래도 미야코의 신변에 위험한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다행이야. 목소리를 듣고 걱정했던 것은 사실이니까."


"...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뻤어요."


"천만에. 평소에는 미야코에게 지켜지기만 하니까."


벤치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켠다.

긴장이 풀린 근육이 삐걱거리고 온몸에서 소리를 내며 굳어진 몸을 풀고 있었다.


"... 자, 그럼 돌아갈까, 미야코."


미야코 쪽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말을 걸어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 미야코?"


"... 네? 무, 무슨 일이신가요? 선생님...?"


"아니, 돌아가자고 말했는데..."


"아... 죄, 죄송합니다. 조금 생각하느라..."


"... 혹시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 거야?"


"아, 아뇨,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니지만..."


미야코는 왠지 나에게 말하기 꺼리는 듯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나에게 말하기 힘든 고민일까.


"... 저기, 미야코. 말하고 싶지 않다면 말하지 않아도 좋아. 하지만, 지금의 나는 미야코의 『남편』이니까."


"아으..."


"가능하다면 미야코의 고민도 함께 짊어지고 싶어. 그러니까 미야코만 괜찮다면 고민을 들려줄 수 있을까?"


"... 선생님은 항상 그런 식이죠... 저희들을 계속 지켜보고 고민이 있거나 힘들 땐 말을 걸어주시고..."


"아하하, 『선생님』이니까. 그게 내 장점이고."


그렇게 말하고 그녀의 앞에서 몸을 숙여 같은 눈높이에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본다. 옅은 연보라색 눈동자가 망설이는 마음을 반영하듯 흔들린다.


항상 너무 성실해서 때때로 혼자 짊어질 때가 있는 그녀가 뭔가 고민한다면 어떻게든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그 마음 뿐이었다.


미야코는 여전히 무언가를 망설이는 듯 몇 번 입을 열려다가 다물었고, 이윽고 결심했는지 눈을 뜨고 쭈뼛쭈뼛 말을 꺼냈다.


"... 뭐라 할까, 오늘 선생님과 같이 걸으면서 왠지 『나는 아직도 어린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린애 같다, 미야코가.


실수하기도 착각하기도 하지만 평소에는 어른스럽고 야무진 그녀의 입에서 나온 고민에 『전혀 그렇지 않아』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입을 다물고 계속 들었다.


미야코의 고민이 그것이라면 그녀의 고민을 무조건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

무릎 위에 올려둔 양손을 바라보며 미야코는 띄엄띄엄 이야기를 계속했다.


"저는 SRT에 입학하고 폐쇄된 환경에서 훈련을 해왔기 때문에 세상을 잘 몰랐어요. 주변에도 또래들 뿐이어서 지금까지 제가 어린지 아닌지 생각해 본 적도 없었어요."


"... 저는 카페에서의 선생님처럼 통찰력 있는 시야도 없고, 최대한 어른스러운 복장을 하고 있어도 혼자 있으면 아까처럼 학생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이 눈치채버리고. 결국 선생님이 오지 않았다면 대화로는 해결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과 부부 역할을 하고 있으면 이제와서 그런 것들이 생각나 버려서..."


"... 조금 들떠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오늘 아침 달리기를 하다가 상가 전단지를 발견했을 때 선생님과 쇼핑하러 갈 구실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선생님과 단둘이 외출할 수 있다고. 스스로도 좋은 구실을 찾았다고... 지금 생각하면 그런 점도 어린애같아서..."


"선생님과 비록 위장이라고 해도 『부부』 역할을 할 수 있어서, 왠지 선생님과 특별한 관계가 된 것 같아서...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니... 마음에 안개가 낀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저는 어디까지나 어린애이고, 선생님은 어른이라고 생각하니 왠지 닿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그녀는 불안한 듯 원피스 밑단을 꽉 움켜쥐었다.

미야코의 몸이, 목소리가, 눈동자가 떨리고 있었다.


"... 조금 괴로워서..."


뚝, 뚝, 움켜진 그녀의 손등에 물방울이 떨어진다.


"... 선생님, 역시 가짜라도 이 부부의 시간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고... 죄송해요, 꾹 참고 싶었는데... 오늘 둘이서 와서 즐거웠는데, 마음이 답답해져서, 당신과 이대로 이런 시간을 계속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그치만 저는... 저는 어린애라서..."


"... 그 간극이 괴로워요, 선생님... 적어도 조금만 더, 조금만 일찍 태어나 만났다면 저와 선생님은 어떻게 되었을까 해서..."


"똑같이 옆을 걷고, 똑같이 선생님과 얘기하고, 똑같이 혼자 있어도, 분명 주변에서는 다르게 보였을 거에요... 지금과는 다르게 진짜 부부처럼 보이지는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니까... 괴로워서..."


그렇게 말하고서 미야코는 마치 죄를 지은 것을 고백한 것처럼 고개를 숙인 채 입을 다물었다.

『말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마음속에 간직했어야 했는데』라고 후회하는 것처럼 그녀의 몸이 떨리고 있었다.


"... 미야코."


"... 네."


"너에게 주고싶은 게 있어."


손에 들고 있던, 계속 그녀에게 주고 싶었던 종이봉투를 건넨다. 망설이는 손에 억지로 손잡이를 쥐어줬다.


전해받은 쇼핑백에 당황하는 미야코에게 열어보라고 말하자 그녀는 내 얼굴과 쇼핑백을 몇 번 번갈아 보더니 그제서야 바스락거리며 봉투를 열고 내용물을 확인했다.


"이 구두는...!"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며 숨을 들이마신다.


쇼핑백 안에서 상품을 보호하던 골판지 상자.

그리고 그 안에는 그녀가 동경하던 쇼윈도의 흰 구두가 들어 있었다.


"서, 선생님... 그치만... 분명 이 신발은 어른스럽고... 게다가 사이즈도 조금 커서 저에겐 어울리지 않을 거에요. 모처럼 이런 걸 받아도..."


목소리를 억누르며 미안한 듯 그녀는 구두를 상자 안에 되돌렸다.

알고 있었다. 어렴풋이 그녀의 발에는 클 것이라고, 이 구두는 어른용이라는 것을 양화점에서 받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 맞아. 그래도 나는 미야코에게 선물하고 싶었어."


그렇다 해도 구두를 바라보던 그 반짝반짝 빛나는 동경하는 그녀의 눈빛을 떠올리면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이성적으로 생각한 것이 아닌, 진심으로 그녀에게 이 구두를 전하고 싶었다. 그뿐이었다.


"... 고맙, 습니다..."


"... 미야코, 미야코는 좀 더 일찍 만났다면 좋았을 거라고 말했지만, 그랬다면 아마 이렇게 둘이서만 외출하는 일은 없었을 거라고 생각해."


종이봉투를 꼭 쥐고 있는, 소중한 인형을 껴안은 아이같은 그녀에게 상냥하게 말을 걸었다.


"그건..."


"그뿐만이 아니야. 미야코와도, 사키, 미유, 모에와도 사이가 좋지 않았을지도 몰라. 애초에 우리가 만나지 않았을지도 몰라."


"..."


"... 미야코, 어른과 아이의 차이가 뭐라고 생각해?"


"... 차이요?"


"응, 차이."


"...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난 말이지... 『잘 모르겠다』, 라고 할까."


"... 네, 네에...?"


두 팔을 벌리고 익살맞게 웃는 나를 보며 미야코는 어떻게 반응할 지 모르겠다는 듯 당황하고 있었다.

그대로 그녀에게 이야기를 계속한다.


어렸을 땐 그저 주변 어른들을 보고 『언젠가 나도 크면 제대로 된 어른이 될까』라고 생각했어. 커서 어른이 된다면 뭐든 더 잘할 테고.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고."


"하지만 10살이 되고, 미야코와 같은 15살이 되고, 20살이 넘어 어른이 되어도 속으로는 조금도 성장한 것 같지 않았어."


"어제 밥은 만들기 귀찮아서 편의점 도시락이랑 컵라면으로 때웠고, 지금도 간식은 많이 먹고, 로봇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도 엄청 좋아하고, 다음날 일해야 하는데도 게임하고 밤을 새워. 난 왠지 어린아이의 모습 그대로 몸만 커졌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미야코가 더 어른스럽지 않아?"


자신이 어렸을 때를 떠올리며 그녀에게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그 때는 『어른이 되면 뭔가 달라지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며 어른이 되는 것을 기다렸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어떨까. 내 안에서 달라진 것도 있겠지만 내가 어른이 되어서도 어렸을 때와 똑같은 일을 하고 결국 성장했다는 느낌은 솔직히 그다지 받지 못했다.


"... 저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저에게 선생님은 누구보다 신뢰할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이에요."


"아하하, 미야코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구나. 하지만 나로서는 『아~ 어른이 되었어도 딱히 변한 건 없구나』라는 느낌이야."


자조섞인 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바라본다.


"... 그러니까 말이야, 미야코도 분명 그대로의 모습으로 괜찮아."


잠시 숨을 고르고 그녀를 보며 말을 계속한다.


"조급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대로의 너로, 천천히, 멋진 너로 어른이 되어가면 돼. 미야코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시간이 너를 어른으로 만들어 줄 거야."


"여러가지 경험을 하다 보면 주변이 더 잘 보이게 될지도 몰라.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져도 냉정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될지도 몰라. 애초에 미야코는 임무에서는 대개 그렇게 할 수 있는 학생이니까."


"괜찮아. 미야코는 멋진 어른이 될 거야. 내가 보증할게. 게다가 그 신발도 지금의 미야코가 신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결코 어린애 취급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은 미야코를 어루만지고 싶었다.


"네가 자신을 갖고 신을 수 있게 될 때까지 내가 곁에 있을게. 계속 곁에서, 어른이 되는 것을 지켜볼게. 약속할 수 있어."


"그러니까 조급해 하지 마. 걱정하지 마."라고 말을 덧붙인다.

미야코는 미야코답게 천천히 시간을 보냈으면 했다.

그리고 그 근처에서 그녀를 지켜봐 주고 싶었다.


"... 선생님."


"응?"


미야코가 툭 쓰러지듯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그녀의 팔이 등에 감기고 몸이 밀착한다.

달콤한 그녀의 향기가 비강에 전해진다. 아침에 목걸이를 걸어줄 때 느꼈던 향기보다 아주 조금 더 진해진 그녀의 향기가 난다.


그녀의 가슴이 내 가슴에 겹친다. 부드러운 감촉과 두근두근, 빠르게 울리는 그녀의 심장 박동이 전해져 온다. 호흡도 얕고 빠르다.

부드럽게 은빛 머리를 빗어주듯 쓰다듬자 그제야 미야코의 호흡이 안정되었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 여전히 가슴 속에서 요동치는 그녀의 심장 박동은 가라앉지 않았지만 미야코는 나밖에 들리지 않을 정도의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기다려 주세요."


"... 응."


"분명 이 구두가 잘 어울리는 그런 어른이 될게요."


"..."


"당신 옆에 자신 있게 설 수 있을 때까지."


"... 응."


"네, 가능하다면, 제가 어른이 된다면, 그 시간의 연속을 선생님과 함께하고 싶어요."


"..."


"저의 정의를 떠올리고 해주고, 이끌어주고, 많은 감정을 깨닫게 해준 당신에게. 제 마음과 모든 것을, 당신에게 바치고 싶어요. 당신이 아니면 싫어요."


포옹을 풀고 어깨에 손을 얹고 몸을 뗀다. 미야코는 내 눈을 올곧게 쳐다본다.

얼굴은 붉고 눈가는 아직 눈물로 촉촉하다. 그럼에도 그녀가 자신의 정의를 찾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 눈빛에서는 확고한 그녀의 의지가 느껴졌다.


"그러니까 그때까지 쭉, 부디 제 곁에 있어주세요. 저는 당신의 곁을 떠날 생각도, 선생님의 옆을 걷는 것을 아무에게도, 혹여나 RABBIT소대의 누군가라고 하더라도 양보할 생각도 없어요... 간절히 부탁드려요."


사라질 듯한 목소리로, 하지만 확실하게.

미야코는 본인의 생각을 말했다.


"... 미야코가 그걸 원한다면, 나는 네 옆에 있을게. 네가 구두를 신을 수 있을 때까지 옆에 있을게. 약속할게."


"... 감사합니다."


다시 한 번 그녀가 가까워진다. 꼭 껴안고 그녀를 느낀다.


그리고 미야코와 잠시, 아니 어쩌면 오랜 시간동안 그대로 있었다.


어쨌든 우리는 시간감각마저 희미해질 정도로 서로의 호흡을, 심음을, 체온을 열중하며 확인하고 있었다.


"... 후훗."


팔 안에서 미야코가 미소지었다. 후회하는 듯한 얼굴로 울던 그녀는 이미 없고, 언제나와 같은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 고민은 이제 해결했어?"


"... 네, 덕분에."


"그럼 다행이야."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웃고 있으면, 이윽고 상가 쪽에서 저녁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슬슬 전철이 올 것이다. RABBIT소대가 기다리는 아기토끼공원으로 돌아가야 한다.


"... 그럼 이만 가볼까, 미야코."


"후훗, 네, 『여보』... 돌아가기 전까지 저희는 『부부』니까요..."


미야코가 미소지으며 손을 내민다.

하얗고 가녀린 손가락이 말없이 『같이 돌아가자』고 호소하고 있다.


대답하듯 손을 잡자 손가락이 스르륵 엉켰다. 부드럽고 작은 손가락이다.

마찬가지로 그녀의 손을 움켜쥐었다. 부드러운 감촉이 손바닥을 통해 전해져 왔다.


그녀와 함께 공원을 나서 상가로 돌아간다.

상가는 낮보다 사람이 뜸해졌지만 그래도 인근 사람들이 장을 보러 왔는지 여전히 활기찼다.


번화한 거리를 둘이서 나란히 걸었다.


"아, 맞다. 언젠가 부부의 연을 맺을 때까지 편향된 식생활은 하지 않도록 할테니까요. 매일 뭘 먹었는지 보고해 주세요."


"... 네?"


"당연한 거죠...? 남편이 오래도록 건강했으면 하니까."


"하지만 미야코도 지금 편의점 도시락만 먹고 있잖아..."


"저희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까요. 선생님도 아시잖아요... 아, 낭비도 안 돼요. 취미는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적당히 해 주세요?"


"... 아뿔사, 너무 많이 말해버린 것 같은데."


"... 후후훗."


"... 왠지 꽉 잡혀 살게될 것 같은데..."


"후훗, 부부생활은 제가 이끌 거에요?"


그렇게 말하고서 미야코는 내 손을 부드럽게 잡아당겼다.

노을을 뒤로하고 돌아선 그녀는 그림자 때문인지 조금 어른스러워 보였다.

그리고 얼굴도 조금 붉어진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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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선생님. 잘 와줬어."


"사키, 무슨 일이야? 『지금 당장 와줘.』라고 평소답지 않은 초조한 메시지까지 보내고."


미야코와 쇼핑을 마친 다음 날 사키가 모모톡으로 연락해서 다시 아기토끼공원에 와 있었다.

사키는 나를 발견하자 손을 흔들고 웃으며 반겼다.


"아아, 응... 그게... 말이지... 여, 여기 이 전단지를 봐줬으면 하는데..."


"응... 응...?"


왜인지 말을 흐리는 사키에게서 전단지를 한 장 받는다.


본 적 있는 상가에 본 적 있는 마크.

본 적 있는 전단지 레이아웃에 본 적 있는 『상가 창립 30주년 감사제!』라고 적힌 노란색 팝글씨.


그건 틀림없이 미야코와 갔던──











"시, 실은 선생님. 여기서 유명한 레토르트 카레가 있는데, 많은 학원에서 급식으로 쓸 정도로 보존성도 좋고 게다가 맛도 좋아. 우리들도 『가능하다면 확보하고 싶다』고 입을 모아 말할 정도야. 그, 그래서 그 레토르트 카레가 말인데, 실은 이 공원 근처 역에서 세 정거장 떨어진 상가에서 싸게 팔고 있어서 말이야... 근데 조건이 조금 있어서... 가족끼리 가야만 싸게 살 수 있다고 하더라... 그, 그래서 선생님... 나, 나랑, 그, 가족인 척을... 어... 그게... 나, 남매! 그래! 남매인 척을 하면... 어떨까 싶은데... 왜, 왜 그래?! 머리를 싸매고... 에, 『죄송합니다... 용서해주세요...』라니, 뭐, 뭘 사과하는 거야, 선생님?! 『아무리 그래도... 어제 오늘 이틀은...』이라니...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선생님?! 영문을 모르겠어! 제대로 설명해 달라고, 선생님?! 응...? 미, 미야코?! 대체 언제부터 거기에...? 아, 아니... 이 전단지는... 뭐, 뭐야 그 눈빛은?! 마치 뭔가를 알아차린 듯한 그 눈빛은?! 팔짱 끼고 이쪽을 보지 마!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지 마! 『토끼는 독점욕이 강한 생물입니다... RABBIT소대원이라고 해도... 아무에게도 양보할 생각은 없으니까요...』라니, 무서운 소리를 낮은 목소리로 말하지 마! 으르렁거리며 위협하지 마! 원망섞인 눈으로 쳐다보지 마! 아앗! 진짜! 대체 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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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21147자

원제목 月雪ミヤコ SRT、偽装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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