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밑에 세줄 요약 있음



일판으로는 妾(わらわ), 한국어로 치면 대충 아래와 같은 뜻을 가진 범상치 않은 1인칭 덕분에 키사키가 어떤 1인칭을 사용할지에 대해서는 꽤나 의견이 분분했었다.


키사키가 나오는 2차 창작의 핫산들은 이걸 문자 그대로 '첩'으로 번역할 때도 있었고,

중국 삼합회 보스 같은 느낌에서 비롯하여 흔히들 높은 자리에 있는 무협풍 여성들이 그러하듯 '본녀'로 번역하는 경우도 있었고,

그 밖에도 '이 몸'이라던가 이런저런 호칭들이 많이 쓰였었다.

그러나, 적어도 본인 기억으로는 '나'라는 1인칭은 본 적 없었던 것 같다.


정작 한국판(원본)에서 나타난 1인칭은 특별할 것도 없이 지극히 평범한 '나'였지만.



~느니라, ~일지니, ~일게다 등등 암만 봐도 어디 사극에서 나올 법한 말투를 지닌 키사키인터라 조금 어색한 느낌이 드는 걸 어찌할 수 없었다.

물론, 이쪽이 원본이고 일판은 요스타가 번역을 해서 내는 것이다 보니 세이아 때처럼 요스타가 찐빠를 낸게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내부의 사정, 아마도 요스타의 번역 찐빠로 한국 및 글섭과의 성대와 실제 내용 상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 때문에 적어도 한섭 풀더빙 전까지는 벙어리일 걸로 추정되는 세이아)



사실 본인 역시 처음에는 그렇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생각해볼수록 그럴 것 같지 않았다. 세이아야 일섭에서 먼저 출시해버렸으니 그렇다고 쳐도 이미 세이아에서 한 번 찐빠가 나버린 걸 키사키에서도 그런다고?

심지어 키사키는 처음 3컷 등장한 것만으로 당일 실장되던 페스캐 미카를 픽시브 투고수에서 밀어버릴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누리게 된 캐릭터인데?


MX스튜디오가 암만 게임 콘텐츠 면이나 최적화 면에서는 코딩뭉치 저리가라할 성의를 보여준다고는 하지만, 개발트리아의 인터뷰에서 드러나듯 캐릭터 조형과 관리에 있어서 만큼은 진심인 회사다.

그러니 상식적으로 같은 실수를 두 번 할 거 같지는 않다.



그래서 나온 결론이 뭐냐면 '의도한 어색함'이라는 것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키사키는 고작 첫 등장인 거짓된 성소 공략 전에서 이 세 마디 출현하는 게 전부였다. 

그런 주제에 그 세 컷만 가지고 미카 매미라고 불릴 정도로 충성심 높은 팬층을 지닌 미카를 픽시브 투고수에서 밀어버린다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키사키가 이런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당연히 캐릭터 디자인이 잘 뽑힌 이유도 있었고,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고 원작자가 경고 먹을 정도로 열심히 장작을 넣어준 덕도 상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아래 콘에서 익히 짐작할 수 있다시피 갭모에 때문이었다.




세상 다 산 것 같은 시크한 표정으로 어른스럽게 행동하는 베일에 감싸인 캐릭터가

사실은 작은 키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집에서 애들이나 할 법한 키 크기 체조를 하고 있다?


에덴 조약에서 히나가 수많은 선생들의 딸로 입적했던 바로 그 방법이다.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캐릭터에게 본인에게는 들키면 부끄럽지만 주변에서는 의외의 모습에 호감을 느끼게 되는 '갭 모에'가 키사키의 인기를 견인한 일등공신이었다.



그러니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키사키의 저 어색한 1인칭 역시 이러한 갭 모에를 부각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었나 하는 것이 본인의 생각이다.


이미 이번 용무동주에서도 키사키는 자신이 무엇을 장점으로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는 사람답게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모습으로 선생 등에 업히는 이벤트를 통해 다시금 픽시브를 뜨겁게 달군 바가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장면이 있던 때의 키사키의 대사에 따르면, 키사키는 루미를 믿고 있는 본심과는 별개로 '현룡문'이라는 집단의 입장에서 그야말로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현룡문의 입장에서 진상이 밝혀지든 아니든 현무상회를 굴복시킬 수 있는 꽃놀이패였기에 키사키는 집단의 수장으로서 그녀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

산해경 전체를 책임져야 하는 현룡문의 문주이기에 자신의 소중한 친구인 루미를 죄과에 따라 가차없이 처내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런 집단의 수장이 아닌 학생 류우게 키사키로서는 상황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그녀는 애써 변장까지 해가며 선생을 만나러 왔었다.

현룡문 문주가 아닌 류우게 키사키라는 개인의 입장으로서.

물론 이 와중에도 공적으로 현장의 내밀한 사정을 보러 왔다는 핑계를 준비한 점은 참으로 그녀 다운 충실한 모습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개인적 용무를 가지고 왔기에, 그녀는 에덴조약에서 자신의 직함과 빚을 내세워 선생을 조종하려 했던 나기사와는 달리 현룡문이 아닌 한 사람의 학생의 입장에서 선생에게 부탁을 한 것이다.

그것이 공과 사를 철저하게 구분해야하는 공인으로서의 바람직한 자세니까.


그리고 이것이 바로 키사키의 어색한 1인칭이 갭 모에를 만드는 시점이다.



그녀는 개인적으로 현룡문 문주의 자리를 썩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개인의 호오와는 별개로 어른스럽게 자신을 죽이고 사람들이 바라는 '자신'을 능숙하게 연기해냄으로써 기대에 부응해왔다.

그것이 그녀가 사랑하는 산해경의 평화와 안녕을 위한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녀 역시 본질은 미숙하고 하고 싶은 것이 많은 꽃다운 고등학생이다.

히나가 그러했듯 적당히 일선에서 물러나 여유를 즐기며 여느 학생들처럼 친구들과 어울리며 살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키사키는 1인칭과 종결어미를 분리해냈다.

개인으로서의 학생 류우게 키사키라는 존재와 공인으로서의 현룡문 문주 류우게 키사키가 서로 다른 존재임을 한 문장 안에 담아낸 것이다. 


개인과 공인으로서의 자신을 각각 분리해낸 높은 자리에 위치하여 만인의 경의를 사는 소녀 가장.

어쩐지 무척이나 익숙한 맛이지 않은가?




세줄 요약.

1. 키사키가 고풍스러운 사극체 말투를 쓰는 것과 달리 1인칭이 평범한 나인 것은, 공인으로서의 삶을 우선시하는 키사키가 사실은 개인적 삶을 찾고 싶다는 욕망의 발로일지도 모른다.

2. 요컨대, 히나 때처럼 키사키 역시 갭 모에를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조금은 어색한 1인칭 '나'를 사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3. 어쩌면 우리는 머지않아 다 때려칠래 잠옷을 입은 키사키를 보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