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성으로 부르는 선생님에게 참을 수 없게 된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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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목 名字で呼んでくる先生に我慢が効かなくなった生徒たち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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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에 깊이 새기기 위해 구태여 말을 하자면, 사람의 학습능력 따위는 믿을 수 없다.

라는 것을 얼마 전 학습했다. 학습능력을 믿을 수 없다는 학습을 했다니 말장난 같지만 전혀 농담할 얘기가 아니므로 내 마음 속에 봉인해두려고 한다.


하지만 그냥 봉인하는 것도 그러니 그 전에 왜 이런 바보같은 교훈을 얻게 되었는지 다시 되돌아볼 생각이다.


사건의 시작은 지난 주, 지독한 여름의 더위도 완전히 지나고 편안한 가을도 건너뛰고 눈치 없이 살을 에는 겨울의 추위가 찾아온 그런 저녁 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문으로 보이는 석양이 무기질적인 샬레의 사무실을 주홍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드물게도 빨리 끝나 쌓인 인증된 서류는 나를 축복하는 듯 했고 그림자들이 창밖으로 보이는 빌딩가처럼 절묘해서 묘하게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한 가지 걱정이 있었다. 오늘 업무는 이례적으로 빨리 끝나고 일 자체도 순조로웠지만 왜인지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었다. 사소한 오타나 계산 실수. 그럴 때마다 옆에 있던 유우카에게 잔소리를 들었고 실수가 너무 반복되는 바람에 종반에 이르러서는 잔소리가 걱정으로 바뀌고 있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이후 내가 저지르는 실수에 대한 큰 복선이었던 것 같다.


서류 그림자를 그늘 삼아 소파에 누워 무료해진 나는 인터넷 서핑으로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강한 블루라이트를 받으며 무기질적인 문자의 나열을 상하좌우로 훑어본다. 수상한 소문에 크로노스 신문의 진위가 불확실한 인터넷 기사, 기사 아래 연계 기사를 둘러보다 보면 볼 것도 점점 줄어들고 시간 때우기도 한계일 무렵 하나의 기사에 시선이 멈추고 얼마 전 일이 떠올라 입꼬리가 올라간다.


『경칭을 생략하면 안 되는 이성의 특징 15가지!!!』


그런 제목 아래에는 안 되는 특징과 이유가 나열되어 있고 내용은 전에 봤던 잡지와 큰 차이가 없었다. 수 개월 전과 비슷한 상황에 그 때 일이 어제처럼 떠오른다. 만약 이 기사를 예전의 내가 보고 있었다면 전부 그대로 받아들이고 학생을 상처입혔을 것이다.

그리움을 느끼며 기사를 아래로 내려나간다. 이전과 거의 다를 바 없는 게으른 대학생의 리포트같은 늘어놓은 글을 보다가 마지막 특징에서 시선이 멈췄다.


『・빈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


이전의 잡지에는 없던 항목에 침을 삼키는 소리가 조용한 집무실에 울려 퍼졌다. 그 항목 아래 내용은 『겉치레나 농담, 배려를 그대로 받아들여 곤란하다』라고 쓰여 있다. 나는 세 학생을 떠올렸다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녀들이 그럴 리가 없다. 하지만 부정적인 상상은 한 번 퍼져나가면 아무리 막으려 해도 넘쳐 버려서 그녀들도 역시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은 싫어하는 게 아닐까, 머릿속에서 사고가 소용돌이친다.


쓸데없이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가 완전히 돌아가지 않을 때까지 고심한 결과 나는 하나의 결론에 이르렀다. 아니, 이르고 말았다.


마침 내일부터 사흘 동안 내가 매번 신세를 지는 세 학생이 각각 당번을 맡게 되었다. 그녀들을 우선 성으로 불러보고 예의상 하는 말... 즉 이름으로 불러도 괜찮다는 말에 반응하지 않기로 한다. 그래서 상대가 진심으로 싫어한다면 진심으로 사과하고 관둔다.

실험 같은 짓을 해서 그녀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아량이 넓은 그녀들이라면 이전만큼 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나는 그릇된 믿음을 가졌다. 게다가 그녀들이 내심 이름으로 부르는 것을 싫어하고 있었다면 피차 좋은 일이 될 것이라고 나는 내심 자만하고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판단은 근본부터 잘못되어서, 지금의 내가 보고 있었다면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서 때릴 생각조차 들지 않아 큰 한숨을 쉬고 서류의 산을 쓰러트린 뒤 돌아갈 것이다.


왜냐하면 앞으로 일어날 일은 전부 어디까지나 나의 자업자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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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카나시 호시노의 경우】



시각은 오후 한 때, 태양은 중천에서 조금 내려와 사막의 모래가 반짝반짝 빛을 반사하고 있다. 이런 낮잠 자기 절호의 날씨에 평상시의 나였다면 이미 낮잠을 자고 있었을 것이다. 그 증거로 지금 나는 하품으로 눈물이 맺힌 눈을 문지르고 있었다. 잠에 들지 못하는 것은 기쁘지 않지만 이 인내의 시간도 내일의 행복을 위해서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홀가분하다.


내일은 2주 만의 샬레 당번, 선생님과 조금이라도 같이 이야기하고 싶고 조금이라도 그의 모습을 눈에 담고 싶어서 수면 시간을 희생하다니 그를 만나기 전 나였다면 생각도 못할 일이다.

만약 내일 잠든다 해도 선생님과 함께라면 그것으로 좋고, 오히려 함께가 아니라면 싫을 정도다.

당장이라고 감길 듯한 눈꺼풀 뒤로 다음 날 나와 선생님의 모습을 떠올리며 칠칠치 못하게 풀어진 입에서 『으헤에~』 소리가 새어 나온다.


야무지지 못하게 새어나간 소리를 신호로 이성을 조금 되찾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바보같다. 하지만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은 다름아닌 선생님으로 책망은 하지 않지만 언젠가 책임을 지게 만들겠다는 생각에 헤실거리는 뺨이 더욱 헤실헤실해진다.


그의 좋은 점을 나열하면 불경 수준으로 길어지겠지만 굳이 하나를 꼽자면 그가 내 이름을 부를 때 표정이다. 믿음과 안심, 그리고 깊은 애정이 느껴지는 표정으로 이름을 불릴 때마다 나는 내 이름이 『호시노』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써 눈을 비비며 잠들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얼빠진 소리를 내는 나를 보며 모두들 이유를 짐작했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나에게 향하는 묘하게 미지근한 시선이 부끄러워서 나잇값도 못하고 순진한 소녀처럼 얼굴을 붉히며 햇빛에 조금 따뜻해진 책상에 얼굴을 묻었다.


그날 저녁 나는 선생님에게 받은 고래 다키마쿠라를 보물처럼 껴안고 내일을 향한 말로 못다 할 기대와 희망을 가슴에 품고 의식을 깊은 바다로 가라앉혔다.


다음날 창문으로 들어오는 따스한 햇빛에 눈을 뜬다. 이렇게 기분 좋은 기상은 인생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다. 이렇게 기분 좋게 일어날 수 있다면 앞으로도 낮잠을 조금 참아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준비를 마친 나는 샬레로 향했다.




커튼 틈새로 새어나오는 빛을 스포트라이트 삼아 개운하게 일어난다. 팔을 하늘로 크게 뻗으면 평소 쌓인 피로가 온몸에서 뚜두둑 경쾌한 불만의 소리를 낸다.

머리맡에 자리잡은 바인더를 열면 한 달치 당번 일정이 적혀 있다. 물론 이런 것을 보지 않아도 일주일의 당번 스케줄은 기억하지만 이곳에 온 뒤 몇 년간 계속했던 일이라 버릇처럼 보고 있었다.


집무실로 향해 데스크탑 전원을 켜면 팬 소리와 기동음이 나를 업무 모드로 전환한다.

뺨을 가볍게 두드리고 의욕적으로 키보드에 손을 뻗으려는 순간 내객을 알리는 문소리가 들려 멈췄다.



정시에 나타난 소녀는 방금 지나친 문의 무기질적인 분위기와 상반되는 화려한 치유의 오라를 한껏 뿜어내고 있다. 매일 그런 분위기이므로 언젠가 그 치유의 오라가 고갈되지 않을까 걱정한 적도 있지만 여전히 건재하다. 도자기처럼 아름답고 건강한 피부이면서도 촉감은 탱탱해서 사람을 글러먹게 만드는 쿠션도 이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한다. 오늘은 평소와 달리 머리카락을 뒤로 묶고 있어 움직일 때마다 포니테일도 살랑살랑 흔들린다. 그런 모습이 그녀의 귀여움은 몇 배는 끌어올리는 듯 했다. 하늘하늘한 분홍색 머리카락이 칙칙한 집무실에 피어난 한 떨기 꽃 같았다.


"좋은 아침 선생~ 오늘도 춥네~"


그리고 그 소녀, 타카나시 호시노는 바깥의 싸늘한 공기와 함께 집무실에 들어왔다.


"좋은 아침! 오늘은 평소와 헤어스타일이 다르네! 귀여워!"


"으, 으헤에... 선생은 또 그런 말이나 하고... 아저씨가 아니였으면 착각했을 거라구~?"


그녀는 칭찬이 부끄러운지 사과처럼 새빨개진 얼굴을 숙이고 상기된 목소리로 쑥스러움을 감추고 있었다.

그 모습이 몹시 귀여워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면 한계에 다다른 그녀가 억지로 내 눈을 가렸다. 그 손이 유난히 따뜻했기에 나는 이렇게 말했다.


"와, 손이 따뜻하네! 혹시... 감기걸린 건 아니지?"


"아저씨는 체온이 높으니까~ 원한다면 잘 때 손으로 눈이라도 가려줄까? 아저씨 특제 핸드 아이마스크~ 라, 랄까나... 으헤에..."


스스로 말해놓고선 부끄러워졌는지 그녀는 다시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그럼 다행이네. 최근 추우니까 감기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


"걱정 고마워, 선생. 바깥에 비해 샬레 난방은 변함없이 최고네~ 연중 낮잠자기 좋은 장소야... 선생은 어때? 오늘 같이 낮잠 자버릴까? 지금이라면 아저씨 아이마스크도 따라온다구~?"


그녀는 매혹적인 표정으로 나를 휴식으로 유혹한다. 그 제안은 하루종일 굶은 뒤 먹는 소고기만큼 매력적이었지만 여기서 끝내지 않으면 고생하는 사람은 내일의 나와 당번 학생이므로 꾹 참고 거절했다. 하지만 그 제안에 흔들리는 것이 표정에 나왔는지 그녀는 놀리듯 웃었다.


그런 대화에 기시감을 느껴 기억을 더듬으면 얼마 전 게헨나의 전차장 이로하와 비슷한 대화를 나눈 것을 떠올려 무심코 입꼬리가 올라갔다. 분명 이로하와 그녀는 마음이 맞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그녀를 바라보니 아까와 달리 왠지 꽁해진 느낌이 들었다. 불만이 있는 표정으로 지그시 노려보고 있는데, 본인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런 모습도 귀여울 뿐이다.


"선생, 방금 다른 여자애 생각했지~? 다 보인다고? 아저씨 울어버려..."


삐졌다는 듯 그녀는 능청스레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우는 시늉을 한다. 전반적으로 유쾌한 분위기가 있어 정말 귀엽지만 방의 기온이 떨어진 듯한 느낌은 기분 탓일까?


그리고 여전히 얼굴을 가린 그녀는 머리를 노골적으로 이쪽을 향해 내밀고 있다. 그녀와 만날 때마다 머리나 뺨을 쓰다듬다 보니 언제부턴가 이렇게 머리를 내밀고 쓰다듬는 것을 기다리곤 하는데 방금 전 촌극도 쓰다듬을 위한 포석이라고 생각하면 아귀가 맞는다. 그렇게 이해한 나는 형식적인 사과를 하며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미안, 타카나시."


순간 공기가 빠직 소리를 내며 얼어붙었다. 공기가 소리를 낸다는 비유는 자주 들어봤지만 실제로 겪으면 정말 무섭다.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소리가 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단숨에 분위기가 바뀌었다. 이렇게 긴박한 분위기를 느끼는 것은 진지하게 에덴 조약 이후 처음인 것 같다.


"선생, 그 농담은 재미없는데~?"


지금 그녀의 머리에 놓인 손을 치우려 시도했지만 힘들 것 같다. 왜냐하면 그녀가 단단히 팔을 붙잡고 있어서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귀여운 학생에게는 부적절한 표현이지만 배고픈 불곰 우리에 손을 집어넣은 느낌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녀가 성으로 불린 것에 화를 내는지 아니면 아까의 촌극에서 내가 무언가를 저질러 화를 내는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조금 흐린 머리로 그녀가 무엇에 화가 났는지 생각한다. 머리가 끓을 것 같았다. 그리고 끙끙거리는 나를 보며 비로소 그녀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렇게 거리를 두면 아저씨 울어버릴지도."


처음 추측이 맞은 듯 했다.


"그러면 안 돼, 선생? 갑자기 그렇게 불리면 미움받았다고 착각해버린다고~? 농담으로 넘어가 줄 테니까 다시 평소처럼 불러?"


답이 정해진 느낌이다. 농담으로 넘어가 준다기보다는 『농담으로 넘어가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의미처럼 느껴졌다.


바깥은 평소처럼 시끄러울 텐데 이 집무실에는 나와 그녀의 숨소리와 심박만 메아리처럼 크게 들렸다.


하지만 여기서 그만두면 이전과 같으므로 나는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게다가 그녀도 사실은 이름으로 불리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바가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여기까지 와서 물러설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여기서 물러서는 것이 쌍방 행복했을 것이다.


"그치만 타카나시 "하아?"


이름으로 부르는 건 싫지? 라고 하려던 나의 말을 그녀의 칼처럼 날카로운 목소리가 잘라냈다. 순식간에 조용해진 집무실에 나와 그녀의 숨소리가 방금 전보다 더욱 시끄럽게 울리고 긴장감이 이 장소를 가득 채우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숨결의 변화를 민첩하게 감지할 수 있었다.


코를 훌쩍이는 소리, 그리고 흐느끼는 소리가 이상할 정도로 고요한 집무실을 채웠다. 어깨를 떨며 고개를 숙인 그녀의 울먹이는 소리가 심정과 상태를 여실히 나타내고 있었다.


어느새 나는 그녀를 껴안고 있었다. 스스로 뿌린 씨앗을 수습하는 방법이 이것이라니 어처구니가 없다. 애초에 이것도 미움받을지도 모르는데 이것밖에 떠오르지 않은 스스로에게 짜증조차 난다. 그렇지만 만약 그녀가 이것으로 울기보다 나를 미워한다면 그걸로 좋았다. 그 정도로 그녀의 눈물은 보고 싶지 않았다.


"미안해 선생... 나, 뭔가 잘못했어...? 잘못한 게 있으면 전부 고칠게... 시, 싫어하지 말아줘..."


눈물을 참으려 숨을 끊으며 울면서 매달리며 간청하는 모습은 그녀의 작은 체구보다도 더 어려 보였다. 그녀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와 매달리느라 옷깃이 스치는 소리는 나의 알량한 죄책감을 빙수기처럼 깎아냈다.


평소 그녀는 그 몸으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고 다부져서 자기 자신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작정하고 말해서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런 그녀가 이렇게 우는 모습이 자신이 저지른 짓의 경중을 강조해 공간 전체가 나를 조르는 느낌이 들었다. 평소보다 많은 위액이 나오는지 속이 쓰리고 입 안이 시큼했다.


"미안해 호시노... 섬세하지 못했어. 내가 호시노를 싫어할 일은 없어, 절대로."


그녀의 상태에 대한 사과로서는 너무나도 가벼웠지만 그녀에게 사과하는 것보다 오해를 푸는 것이 더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진심이 담긴 사과지만 내가 저지른 짓과 그 결과를 생각하면 깃털처럼 가볍다. 그녀는 내 말에 눈을 비비며 나를 쳐다보고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행동에 몹시 안심했다.


"그, 그치만 선생... 방금 전 내 말도 무시하고 두 번이나... 거리를 두는 게 아니면 뭐야...?"


그녀는 촉촉하게 젖은 눈동자로 추궁하는 듯한, 혹은 안도와 의심과 희미한 분노가 섞인 눈빛으로 쳐다봤다. 너무 울었는지 때때로 코를 훌쩍거리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그런 그녀를 보며 귀엽다는 감정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이런 상황에 그런 생각을 하면 안되니 고개를 돌리려 했는데 양 뺨을 잡혔다. 아무래도 가벼운 도피조차 지금의 그녀는 용납할 수 없는 모양이다.


나는 보충수업부를 가르칠 때보다 상냥하고 자세하게 설명했다. 너무 자세하게 설명하려다 보니 말하지 않아도 되는 자기 변명이나 개인적인 이야기가 많이 섞였다. 절대 정상 참작을 노렸다거나 총명한 그녀라면 내가 잘 표현하지 못한 내면도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신에게 맹세코 그런 일은 없다.


그녀는 조용하고도 진지하게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리고 설명이 끝나자 그 자리에 축 늘어지며 "다행이다..."라고 안도한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흉한 모습을 보여서 미안해, 그치만 착각하게 만든 선생도 나쁜 거야~?"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눈물 자국을 비비고 평소처럼 행동했다. 상대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행동이 그녀가 강한 동시에 약하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그것을 언급하기는 쉬웠지만 그녀 나름의 배려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응, 정말로 미안해. 사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게."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생각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몇 분에 걸친 고민 끝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정말 이걸로 괜찮아?"


"으헤~ 벌써 5번째로 묻는 건데 또 물어보면 나 화낼 거야?"


며칠 뒤 우리는 수족관에 와 있었다. 수조에서 비치는 은은한 빛이 지면에 반사되어 물결친다. 해저 터널은 그야말로 바닷속을 방불케 해 사방으로 자유롭게 헤엄치는 물고기가 호시노의 예쁜 눈을 보석보다 빛나게 했다.

때때로 나오는 그녀의 물고기 잡학은 재미있어서 보기만 해도 즐거운 수족관을 한층 더 즐겁게 만들었다.


손을 잡고 수족관에 가고 싶다, 그것이 그녀의 요구였다. 그래서 지금도 그녀는 내 손을 잡고 놓지 않고 있다. 게다가 연인끼리 할 법한 손깍지를 끼고 있어 조금, 아니 많이 부끄럽다. 인파에 치이지 않도록 한가한 평일 시간대를 선택했지만 다른 의미로도 정답이었던 것 같다.


"그치만 호시노에게 사과해야 하는데 나까지 즐거워져 버려서."


내가 다시금 감사와 사과의 뜻을 전하자 호시노는 귀엽게 볼을 부풀리며 말했다.


"내가 선생과 즐기고 싶었으니까 괜찮아. 나는 선생의 시간을 받고, 선생은 나와 함께 있는 동안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없고, 응? 제대로 된 사과잖아?"


"하하... 확실히 더할 나위 없는 사과네."


"... 응."


그녀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몸을 이쪽으로 기댔다.

『좋아하는 일』이라는 단어가 비꼬는 투였던 것은 최근 일 때문에 신경 써주지 못한 것에 대한 그녀 나름의 항의인 듯 해서 몹시 귀여웠기 때문에 쓰다듬기 딱 좋은 위치였던 그녀의 머리를 정성스럽게 빗어주듯 쓰다듬었다.

그러자 그녀는 만족스럽게 눈을 가늘게 뜨고 흥얼거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정답이었던 것 같다. 쑥스러운 듯 옷자락을 잡고 단추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선생, 사과하는 김에 부탁 하나 더 들어줄래?"


"응, 뭐든지."


"그럼 조금만 숙여줄래?"


새빨개진 얼굴로 그녀가 쭈뼛거리며 말했다. 나는 그 말대로 몸을 굽혔다. 갑자기 그녀는 내 넥타이를 잡아당겨 억지로 내 얼굴이 그녀의 얼굴 높이까지 오도록 만들었다.


그런 다음 그녀는 본인의 입술을 내 입술에 부닥쳤다. 몇 초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나에게는 수십 초로 느껴졌다. 천천히 입술을 떼어 놓은 뒤에도 나는 그녀의 촉촉한 입술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하아앗...! 선생, 뭐든지 하겠다는 말을 그렇게 쉽게 하면 안 된다고~? 이번 일에 대한 사과는 이 정도로 용서할게."


그리고 그녀는 내 귓가에 다가와 속삭였다.


"이제 더는 사양하지 않을게."


"우으... 으헤~ 그럼 오늘은 이만! 다음에 또 봐, 선생!!!"


속삭인 뒤 바로 뒷걸음질치고 그녀는 그렇게 말한 뒤 도망치듯 떠났다. 도망치는 그녀의 귀는 새빨갛게 물들어서 지금까지 본 어떤 붉은살 생선보다도 붉었다.


남아있는 것은 그녀와 마찬가지로 얼굴이 새빨개진 성인 남성 뿐이다. 수조 배경에 비하면 너무나도 초라한 모습이었다.


앞으로의 일, 그녀에 대한 생각 등 다양한 감정이 물고기 떼처럼 소용돌이쳤다. 수조 속에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유유히 헤엄치는 물고기는 이쪽에서 일어난 사건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고 있다.

개의치 않는 물고기 무리 사이에서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은 왠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둘러싼 물고기를 보면 자연스럽게 그녀가 말한 잡학과 그것을 말하는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런 생각을 하면 또 그녀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지고 말았다. 귀엽고, 평소보다 말이 조금 빠르고, 눈을 반짝이며, 조금 자랑스럽게 떠드는 모습은 어떤 물고기보다도 좋은 볼거리였다.


이전 그녀와 함께 간 바다를 떠올린다. 저녁 노을이 환상적인 바다를 등지고 웃는 그녀, 물고기를 보며 진심으로 기뻐하고 들뜬 모습, 그 모습을 떠올리며 나는 다음에 그녀와 함께 가고 싶은 장소를 정했다.


"... 다음에 또 같이 바다에 갈까..."


나는 해저 터널에서 혼자 그 말을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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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노 미카의 경우】



어질러진 방에서 나, 미소노 미카는 생각한다. 내일 무슨 옷을 입고 나가야 할까.


아무리 낡은 방이여도 석양은 평등하게 모든 것을 오렌지 빛으로 물들인다. 창문으로 따뜻한 빛이 내리쬐어 이런 방이라도 편안함이 어느 정도 느껴졌다. 그런 와중 나는 마지막까지 남은 두 옷을 들고 끙끙거리고 있었다.


한쪽은 평소처럼 흰색을 기조로 한 옷으로 프릴이 많이 달린 드레스 같은 스커트가 내 취향이다. 다른 하나 역시 흰색을 기조로 했지만 전자와 비교해 노출이 많아 조금 자극적으로 보인다.


나는 몇 시간동안 고심한 결과 전자를 선택했다. 후자를 선택하지 못한 겁쟁이같은 나를 나기짱이나 세이아짱은 비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껏 노출이 많은 옷을 입고 가도 『감기 걸려』라며 겉옷을 입혀줄 것 같아서 이 선택이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내일은 오랜만의 당번날. 가뜩이나 선생님은 바빠서 만날 시간이 없으니 만날 때마다 최선을 다해 어필해야 한다. 물론 그 사람은 부르면 바로 오겠지만 더 이상 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다.


다음날 아침, 어제 고른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선다. 빙글 돌며 등 쪽까지 꼼꼼하게 체크한다. 살랑살랑 흔들리는 스커트가 내 들뜬 마음을 대변하는 듯 했다. 두근거림과 설렘를 나타내듯 바쁘게 움직이는 날개를 손으로 가볍게 잡고 액세서리로 정성스럽게 장식한다. 마지막으로 날개를 가볍게 파닥파닥 움직이며 떨어지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총총걸음으로 역으로 가는 길, 아직 시각은 새벽에 가깝고 전체적으로 안개가 낀 거리 모습은 환상적이다. 인적이 드문 것도 더해 마치 내가 주인공인 무대 같아서 지금만큼은 무슨 어리광을 부려도 용서될 듯한 기분이다. 짧은 영화를 마치고 기차역에 도착해 다시 현실로 돌아가면 개찰구의 기계음과 왕래하는 사람들에서 판타지 요소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렇게 나는 D.U.행 전차에 타고 사랑하는 왕자님의 곁으로 향했다.




만약 집의 정의를 『매일 숙박하는 장소』라고 정의한다면 내 집은 샬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밋밋한 색깔의 바닥과 천장, 비슷한 색의 가구, 난잡하게 어질러진 도시락과 컵라면 쓰레기, 덕지덕지 붙어 있는 냉장고에서 생활감에 묘한 대비가 느껴진다. 숙직실은 훨씬 생활감이 넘치지만 이것에 대해 얘기하면 기능미에 대한 집착을 장황하게 설명해야 하므로 생략한다.


넘쳐나는 쓰레기를 보면 식생활에 엄격한 학생들의 질책이 떠오른다. 최근에는 특히 바빠서 그런 학생들에게 미안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런 식사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오늘 당번인 그녀도 이런 식사를 계속하는 것에 대해 한 소리 했던 기억이 난다. 이 광경을 보이면 또 쓸데없는 걱정을 끼칠 것이라 생각한 나는 쓰레기 봉투를 정리하고 은폐하기로 했다.


그런 나의 노력도 부질없이 무정하게 문이 열렸다.


"좋은 아침! 선생님, 쓰레기 정리야? 나도 도울게!"


"아! 그건..."


도시락과 컵라면 용기로 가득한 쓰레기 봉투를 눈앞에 두고 멈춘 그녀는 몇 초 동안 조용히 상황을 파악했고 나는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선~ 생~ 님~???"


팔짱을 끼고 귀엽게 볼을 부풀리는 그녀. 흰색 프릴이 많은 드레스같은 옷과 분홍색 머리카락이 칙칙한 샬레에 꽃을 피운다. 반짝거리는 액세서리가 달린 날개를 파닥거리며 항의의 표시를 하고 있다. 생각보다 움직이는 범위가 넓은 날개는 깃털도 감촉도 최고급 융단 같아서 그녀가 평소에 날개 관리를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는 바보라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머리에 떠오른 헤일로는 성운을 연상시켜 밤하늘에 수놓은 아름다운 별을 떠오르게 한다. 그런 밤하늘만큼 아름다운 그녀, 미소노 미카는 쓰레기 봉투를 과장되게 손가락으로 찌르며 나에게 전신으로 항의하고 있다.


"선생님, 이런 건 그만 먹으라고 말했잖아? 학생의 걱정을 무시하는 건 어떨까 싶은데~?"


손가락을 하늘로 향해 빙글빙글 돌리며 그녀가 말했다. 솔직하게 화내는 것보다 책망하는 듯한 말투가 나에게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체득한 모양이다. 실제로 『학생의 걱정을 무시』했다는 말은 나에게 효과적이었다.


"게다가 말이야? 선생님 주변에는 여자애들도 많으니까 도시락 정도는 부탁하면 만들어 줄지도?"


고개를 돌리며 입술을 삐죽 내민다. 그녀의 귀여운 토라진 표정을 볼 수 있다면 혼나는 보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미안, 최근 바빠서 그만... 내일부터는 제대로 먹을게."


"흐응~ 어떨까나~"


이미 두 번 정도 약속을 어겼기 때문인지 그녀는 의심의 눈초리를 향하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는 의미를 가득 담아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미소노는 걱정도 팔자라니까."


집무실이 조용해진다. 방금 전 웃음꽃이 가득한 소란은 여행이라도 간 듯 사라졌다. 가뜩이나 쌀쌀한 기온이 이제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차가워지고 있었다. 내가 방금 전까지 대화하던 그녀를 다시 보자, 눈이 마주친 그녀의 눈은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뭐... 아... 응...? 자, 잘못 들었어, 선생님...?"


한 박자 늦게 그녀가 반응했다. 눈에는 검은 안개가 소용돌이치는 듯 해서 에덴 조약 때 질리도록 보았던 눈과 비슷했다.


"저기, 잘못 들은 거 맞지? 선생님, 응...?"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이때 나는 희대의 멍청이였다. 소녀의 마음을 이해하기 이전에 인간의 마음이 결여되어 있는 수준이다. 무슨 말이냐면, 이때 나는 『어라? 잘 못 들었다고?』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으니 내가 할 말은 했던 말의 반복이었다.


"... 괜찮아, 미소노는 걱정도 팔자라니까...?"


그녀가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조용한 집무실에 울려 퍼진다. 평소 그녀는 말이 많은 편이다. 동요했을 때, 뭔가 생각할 때 감정 그대로 말을 내뱉는다. 평소에도 와글와글한 그녀의 뇌가 산출한 결과가 무슨 말이나 행동이 아니라 침묵이라는 것이 지금 무엇보다도 두려웠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가 입을 열었다.


"아... 아으... 미안, 선생님... 오늘은 돌아갈게... 정말 미안..."


내가 그 말을 이해하고 대답하기도 전에 그녀는 뛰기 시작했다. 곧바로 뒤쫓았지만 키보토스인을 내가 따라잡을 리도 없고 그녀는 순식간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떠났다. 이대로 그녀를 보내면 영원히 후회할 일이 생각다는 직감에 나는 곧바로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도망치는 그녀는 울고 있었다.




──미움받아 버린 것 같았다.

『같았다』라고 스스로의 마음이 부서지지 않도록 단어를 골랐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미움받았다』라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최근 선생님에게 한 일을 떠올릴 때마다 과거에 내가 저지른 과오가 뇌를 플래시백하고 미움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회와 깊은 자기 혐오, 그리고 실현되지 못한 연정이 뒤죽박죽 섞여 그로스테크한 혼합물을 만들어 간다.

바삐 움직이던 날개는 힘없이 바람의 영향으로 뒤로 흔들리고, 눈물도 뒤로 날아간다. 달리고, 울고, 스스로도 지금 무엇을 하는지 모를 정도였다.


무엇보다 도망쳐 버린 것이 자기 혐오를 더욱 증폭시켜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었다. 그때 세이아에게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도망쳐 버린 나 자신의 전혀 성장하지 않은 모습이 몹시 한심했다.


가로수길과 트리니티 교복을 입은 학생, 평소에는 두근거리는 쇼윈도조차 눈길도 주지 않고 후회만 품은 채 계속 도망쳤다. 그렇게 도망치다 보니 어느새 나는 쓸쓸한 내 방으로 돌아와 있었다.


평소라면 이 쓸쓸한 자취방에 이제 와서는 아무 감정도 없었지만 지금은 이 방이 내가 지금까지 해온 일을 총구처럼 들이대는 듯 해서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끄윽, 목구멍에서 공기가 새는 듯한, 기관지에 두꺼운 필터가 깔린 듯한 답답함을 억누르듯 나는 침대에 엎어졌고 이 방에서 처음으로 소리 높여 울었다. 타인이 보면 절규와도 같을 그 울음에는 나의 생각과 후회, 모든 것이 담겨 있었고 울면 울수록 과거 행적이 더욱 무겁게 나를 짓눌렀다.


그때 마녀라고까지 불리던 나를 평범한 학생으로 되돌려 주는 것도 모자라 공주님이라고까지 불러준 선생님에게마저 미움받아 버리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마녀도 학생도 아니게 된 나는 대체 어디에서 무엇이 되어야 하는 걸까.

미소노라는 거룩한 성이 지금은 원망스러웠다.

혼자서 영원하다고 느껴질 만큼의 시간을 생각에 잠겨 있었다. 앞으로의 일, 선생님의 일, 이루어지지 못한 연심은 눈물과 함께 씻겨나가지 못하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사고는 점점 부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갔다.


자신에게 쏟아진 수많은 비난이, 상처입힌 친구의 얼굴이, 또다시 나를 비난하는 환청에 시달리며, 눈물로 메말라 버려 모든 것을 끝내려고 휘청휘청 일어선 순간 낡은 문에서 마음이 망가질 만큼 상냥한 노크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똑똑, 그녀의 마음을 달래듯 문을 두드린다. 잠시 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것을 긍정으로 받아들이고 문을 열었다. 부정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나는 그녀를 만나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삐걱거리며 문이 열린다. 내가 처음 발견한 것은 방 한가운데 서 있는 한 소녀였다. 쓸쓸한 실내에서 분홍색 머리카락이 살랑거리고 황야에 현현한 천사를 방불케 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이 그녀의 반신을 환하게 비춰 그녀의 옷차림과 함께 신비함과 아름다움을 증폭시켰다. 그것이 그녀의 눈동자에 내려앉은 깊은 어둠을 더욱 강조하고 있었다.

블랙홀처럼 깊고 어둡게 모든 것을 빨아들일 듯한 눈동자에는 비장과 절망이 덩어리 째 뭉친 듯 했다. 눈물의 흔적은 은하수 같았다.


"미, 미카..."


나는 그런 죽은 별 같은 소녀의 이름을 불렀다. 눈이 마주치고 있지만 초점이 맞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뭐하러 왔어?"


방금 전까지 목을 혹사시켰는지 그녀의 목소리는 조금 쉬어 있었다. 쉬어 있다고 해도 원래의 미성을 잃지 않은 것이 대단했다.


"미카, 미안해... 내 생각이 짧았어. 오해 살 짓을 해서 정말 미안해..."


"오해라니 뭐가? 선생님은 나를 싫어하는 거잖아?"


뒤늦게 나는 그녀의 오해가 얼마나 치명적이고 컸는지 깨달았다. 싫어한다는 노골적인 감정을 그녀에게 드러낸 적은 없지만 그렇게 느낀 그녀의 심경은 얼마나 착잡했을까. 나처럼 미련하기 짝이 없는 인간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다시 그녀의 앞에 서서 그녀의 호박처럼 맑은 눈동자를 응시했다. 몇 초의 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고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켰다.


"미카, 전부 내 잘못이야... 그러니까 내 말을 들어줘."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분홍색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나는 어제 저녁 했던 생각과 그 생각이 지금 상황을 초래했다는 것을 최선을 다해 설명했고 마지막에는 깊고 깊은 우주의 어둠과도 같은 눈동자보다도 깊게 사과하는 마음을 담아 그녀에게 고개를 숙였다.


설명을 마치고 면목없다는 듯 그녀를 힐끔 쳐다보는 순간 방에 울릴 정도로 커다란 한숨 소리가 들렸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진심으로 질렸다는 표정과 안심하는 표정이 뒤섞인 소녀에게서 나온 소리였다.


"하아~ 울어버린 내가 바보같아..."


한참을 이야기한 끝에 지금 나는 그녀에게 추궁받고 있었다. 그녀의 손은 내 손을 기억하려는 듯 바쁘게 움직이며 손을 살짝 잡기도 놓기도 손가락을 살짝 꼬집기도 놓기도 하고 있었다.


"정말로... 잘못했습니다..."


"아아~ 평범한 사과로는 용서할 수 없을지도~"


그녀는 노골적으로 부자연스러운 국어책 읽기로 말했다. 용서할 수 없다는 말에 비해 그녀의 얼굴에는 희색이 가득했다. 방금 전까지 나에게 몸을 기대어 비비던 그녀에게는 꽃향기가 은은하게 감돌아 우아하고 사랑스러운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


"뭐든 들어줄 테니 용서해주세요..."


고심 끝에 할 수 있는 가장 진심어린 사과를 했다. 그 말을 들은 그녀의 눈빛이 수상쩍게 빛나고 곧바로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내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고 그녀는 턱을 괴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철회한다면 그녀의 기분이 적어도 한 달은 나빠지는 것이 확정이여서 나는 현명하게 입을 다물기로 했다.


"선생님... 정말로 『뭐든』 괜찮은거지?"




뭐든 괜찮냐는 말에 나는 분명 황금 참치를 혼자 잡아오라거나 트리니티 상층부가 모인 회의에서 알몸으로 춤을 추라는 등 불가능에 가까운 난제를 강요받을 줄 알았지만 그녀의 소망은 소박한 것으로, 일주일 간 샬레에 머물고 싶다는 것이었다. 마음과 짐을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그녀가 온 것은 그 요구 일주일 뒤로 학원을 마치고 짐을 적당히 정리한 뒤 내가 밀린 업무를 도왔다. 나는 당연히 그녀가 샬레 거주구에 묵을 거라고 생각해서 저녁에 작별 인사를 하자 귀엽게 이해하지 못한 표정을 지었다.


같은 침대를 쓸 수는 없다, 나는 소파에서 잘 테니 미카가 침대에서 자라, 라는 부탁은 『뭐든 들어준다』라는 말 하나로 파훼되었다. 제한을 두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그리고 당연한 결과로 지금 내 옆에는 내 팔을 베개 삼아 나를 지그시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그렇게 쳐다보면 부끄러워서 잘 수가 없는데..."


"미안, 하지만 이것도 다 선생님 때문이거든~?"


그 말에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사실 지금 내가 침대에 누워있는 것도 밤 늦게까지 일하려던 나를 그녀가 억지로 침대로 데려왔기 때문이다.


"알면 됐어. 자, 선생님... 좀 더 이쪽으로 와줘?"


슬금슬금 그녀 쪽으로 이동하며 충분히 왔다고 생각할 즈음 그녀의 팔이 나를 더 가까이 잡아당겼다.


"미카?!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안 돼, 뭐든 하겠다고 했잖아."


고요한 밤이 사이를 가득 채운다. 스스로 껴안았으면서 그녀의 심박은 요동치고 있고 방이 조용해서 더욱 잘 들린다. 그녀도 자각하고 있는지 얼굴이 점점 붉여졌다.


"정말로 괴로웠어..."


얼마 뒤 그녀는 작게 중얼거렸다.

나는 마음을 다잡고 그녀의 등에 손을 둘렀고 그녀는 잠시 움찔했지만 곧 마찬가지로 나를 더 강하게 끌어안았다.


"선생님, 내일부터 내가 점심 만들어줄게."


"... 기쁘지만... 미안하니까 괜찮아."


그녀의 제안은 매우 매력적이었지만 그녀의 생활에 지장이 가는 것은 원하지 않았기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침에 선생님이 쓰레기 봉투를 숨기려던 거 아직 안 잊었다구~?"


말문이 막히는 반론에 나는 조용히 항복하고 절충안으로 같이 도시락을 만들기로 했다. 이야기 중 왠지 묘하게 그녀의 얼굴이 붉어지는 것이 의아했지만 그녀도 같이 만들자고 했을 때 더 기뻐하는 것처럼 보여서 괜찮다고 생각했다.


창밖에서 비치는 달빛이 그녀의 윤곽을 어렴풋하게 비춰서 반짝반짝 빛나는 헤일로를 포함한 이 실내가 밤하늘처럼 느껴졌다. 흔들리는 그녀의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실없는 하품 소리가 새어나왔다.


"선생님, 졸려?"


"응, 미안하지만 먼저 잘게..."


"으응, 전혀 미안할 필요 없어!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 그럼 잘 자, 선생님."


"잘 자, 미카."


그 말을 신호로 희미하게 뜨고 있던 눈을 완전히 감아버리고, 의식도 서서히 희미해져 몇 분 만에 나의 의식은 어둠에 빠졌다.




"잠들었나...?"


옆에서는 사랑스러운 그가 새근새근 규칙적인 숨소리를 내고 있다. 나는 부서지기 쉬운 보물이라도 취급하듯 그의 머리를 쓸어넘기며 쓰다듬었다. 여자의 머리카락과 다르게 찰랑거리지 않고 군데군데 거친 부분이 있지만 그조차도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예전에 그런 일을 저지른 학생 앞에서 깊게 잠든 것은 경계심이 없는 걸까, 나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걸까. 후자라면 기쁠 것이다.


하지만 지금부터 그런 선생님의 신뢰를 배신한다는 것이 마음이 아프다. 달빛이 비치는 실내에 내 심박만 울리고 있다. 지금부터 할 행위를 보는 것도 밤하늘의 별님 뿐이다. 나는 각오를 다지고 천천히 깨지 않도록 그의 뺨에 얼굴을 가까이 했다.

희미한 물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진다. 이미 겨울이 가까워졌는데 한여름처럼 얼굴이 뜨겁다. 불이 날 정도로 뜨거워진 얼굴을 선생님의 가슴팍에 묻었다.


"... 선생님은, 속은 거야."


아무도 듣지 못할 정도로 작게 중얼거린 뒤 나는 선생님을 꼭 껴안고 마지막으로 그에게 밤 인사를 한 뒤 잠에 들었다.






~~~~~~~~~~






【소라사키 히나의 경우】



한숨이 하얗게 하늘로 퍼져나간다. 손을 마주하고 조금씩 문지르면 서서히 따뜻해져서 추위가 조금 누그러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화려하게 반짝이는 일루미네이션이 어두운 밤 속 나무의 형상을 선명하게 비추는 것을 보며 "벌써 그런 계절인가..."라고 혼자 중얼거렸다.


이곳 학생들은 모두 계절 행사를 좋아하는지 행사 때마다 장식이 넘치는 거리가 매번 계절감을 연출하고 있다. 저번 할로윈 일주일 전에는 온 시내가 잭오랜턴 투성이여서 당일 일어날 수많은 사고를 생각하며 머리를 부여잡은 기억이 있다.


오늘도 평소처럼 만마전에서 억지로 보낸 대량의 서류를 처리하며 하루의 대부분을 소요하고 지금은 순찰을 마친 뒤 방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연이은 격무로 몸은 비명을 지르고 있지만 마음은 들떴다. 오늘 하루를 버틴 것도 내일 일정 때문이다.


전구투성이 가로등과 여전히 밝은 건물로 가득한 도시는 밤에도 불구하고 전혀 어둡지 않다. 이렇게 밤길을 걷고 있으면 예전에 선생님과 밤에 자주 만나던 것을 떠올린다. 그런 일도 있었기 때문인지 내게 밤이라는 시간은 특별해서 이런 날 밤에는 언제나 그의 생각으로 가득했다.


유난히 길게 느껴지는 계단을 올라 간신히 내 방 앞까지 온 나는 힘없이 문을 열고 곧바로 답답한 장식이 가득한 교복을 벗고 애용하는 파자마로 갈아입었다. 노란 가운이 사람의 피부처럼 따뜻해서 기분이 좋았다.


찬장에서 예전에 선생님과 같이 산 커플 머그컵을 꺼낸다. 걸을 때마다 가운이 팔랑거리며 내 기분을 나타내듯 부드럽게 흔들렸다.

별로 채워지지 않은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컵에 붓는다. 쪼르륵 소리가 졸음을 유발한다. 무기질적인 전자레인지에 컵을 넣고 스위치를 두르면 삑 하는 크고 귀여운 전자음이 울렸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일은 하지 않았겠지만 선생님의 권유로 자기 전 따뜻한 우유를 마시고 있다. 효과가 있는지 최근에는 잘 잠들 수 있고 아침에 상쾌하게 기상하고 있다. 커플 머그컵에 그가 추천한 핫밀크, 생활의 일부가 그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 왠지 행복해서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종료를 알리는 소리가 울려 내 사고를 중단했다. 따뜻한 컵이 차가운 손을 상냥하게 녹여주는 것이 마치 선생님이 손을 잡아주는 듯 하단 생각을 해버린 것이 부끄러웠다.


컵을 들고 천천히 마신다. 안쪽부터 온몸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끼며 오늘 밤 숙면도 성공적일 것이라는 확신에 마음 속으로 승리의 포즈를 취한다. 컵을 적당히 내려놓자 그것을 신호로 하품이 새어나왔다. 흘러내리는 가운을 적당히 고쳐 입고 침대로 몸을 던졌다. 잠들기 직전까지 그를 생각하고 있었다.




창문으로 보이는 빌딩가 불빛이 마치 별빛 같아서 이 집무실이 별의 바다를 헤엄치는 듯 했다.

시곗바늘은 이미 꼭대기를 찍고 내려온지 오래고 내가 유리구두를 신고 있었다면 이미 마법이 풀려 끈적거리는 슬라임에 둘러쌓여 있었을 것이다.


내일을 위해 오늘 끝낸 서류의 산이 내 노력과 근성을 칭송하고 있다. 내일 오는 학생, 소라사키 히나는 자신의 의사로 쉬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 대부분의 일을 끝내고 내일은 그녀와 느긋하게 쉴 심산이었다.


최근 숙직실이 집이 된 나는 수면에 관심이 생겨 온갖 수면법을 시험하고 있었다.

침구를 새로 장만하고, 자기 전 뜨거운 우유를 마시고, 조금 비싼 USB형 아이마스크까지 구매했다. 그 덕분인지 요즘은 푹 잘 수 있고 아침에 찌뿌둥한 것도 줄어들었다. 참고로 수면 시간은 그대로다.


이튿날 아침 평소처럼 기분 좋게 눈을 뜬 나는 아침 준비를 마치자마자 데스크에 도달했다. 출퇴근 시간 0분 거리의 힘이다. 어젯밤 대부분의 일을 끝냈다고는 해도 아직 사소한 일은 산더미처럼 남아 있다. 어젯밤 끝낸 것은 우선도가 높은 일로 지금부터 할 일은 우선순위가 낮은 승인만 하면 되는 일 뿐이다. 서류 한 장 한 장을 넘길 때마다 학생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보람찼다.


업무 내용도 생각 이상으로 간단해서 상상한 것의 몇 배는 빨리 끝나 마무리로 기지개를 크게 켜며 천장을 올려다보면 전등이 매우 눈부셔서 눈을 찌푸렸다. 그리고 때마침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보기만 해도 푹신푹신함이 느껴질 정도로 부드럽고 윤기 나는 흰 머리카락이 햇빛을 반사하며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귀여운 체격과 상반되게 머리 위에서 빛나는 헤일로는 뿔처럼 보라색으로 빛나는 왕관이다. 제대로 착용한 제복에는 위엄과 위압이 느껴지면서도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와 뛰어왔는지 조금 붉은 얼굴에서는 앳된 귀여움과 여성스러움이 느껴지는데 완벽하게 섞여서 공존하고 있었다. 자유자재로 조절이 가능한 날개는 지금은 접혀 있고 작게 펄럭이는 모습이 그녀의 귀여움을 한껏 부각시켰다.


"좋은 아침, 선생님."


그녀는 조용하면서도 귀여움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인사했다.


"좋은 아침. 오늘도 귀엽네."


그녀는 더 붉어진 얼굴을 조금 숙이며 말했다.


"매번 그런 말을 해주는 건 기쁘지만 부끄러우니까 적당히 해줘."


그 모습에 귀여움이 더욱 느껴져서 나는 그녀의 푹신푹신한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감촉은 겉보기처럼 푹신푹신해서 고급 이불 같고 질감은 실크에 견주어도 지지 않을 정도였다.

처음 그녀는 무덤덤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서서히 눈을 가늘게 뜨다가 손을 떼었을 땐 아쉬운 듯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다시 쓰다듬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너무 그러는 것도 그녀에게 미안하니 참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사실 오늘 업무는 거의 끝났거든. 그러니까 같이 태평하게 쉬자?"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며 산더미같은 서류와 내 눈가의 희미한 다크서클을 확인하고 대강 파악한 듯 한숨을 크게 쉬었다.


"선생... 마음은 고맙고 나도 이번에는 따르겠지만... 다음부터는 나도 일을 돕게 해줘? 나도 선생님의 도움이 되고 싶으니까..."


헌신적인 그녀의 모습에 감동을 느낀다. 나는 그녀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며 평소부터 항상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기분이 좋아졌는지 그녀의 얼굴이 환해졌고 집무실에 훈훈한 기운이 감돌았다. 나는 방금 다짐을 구석으로 치워버리고 그녀의 머리를 아까보다 더 자상하게 쓰다듬었다.


"고마워, 소라사키. 다시 말하지만 소라사키에게는 만났을 때부터 도움을 받고 있고... 오히려 나야말로 소라사키의 도움이 되고 싶어..."


순간 그녀가 움찔 반응하는 것을 느꼈지만 기분 탓이라고 생각하며 계속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뒤로도 나는 그녀와 함께 태평하게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무릎 위에 앉히거나 근황을 듣거나, 다양한 상황이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목소리는 목이 멘 듯한 소리고 몸도 갓 태어난 새끼 사슴처럼 떠는 듯 했다. 걱정하는 말을 하기도 했지만 소용없었고 몸이 걱정되어 얼굴이 파랗게 질린 그녀를 게헨나까지 배웅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이런 인간이 어떻게 선생이 되었는지 의문스러울 정도다. 누가 봐도 현재진행형이었던 참담한 실패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실시간으로 쌓아가는 우둔한 모습이 어처구니가 없다. 내가 쌓아가는 것이 실패가 아니라 돌이었다면 분명 세상에서 가장 높은 탑으로 기네스북에 올랐을 것이다.


요컨대 이때 내 심정은 한 마디로 『히나를 성으로 부르는 것은 대성공이었다』라는 것이었다.


이 바보같은 생각을 옹호할 마음은 없지만 지금까지 내가 학생을 성으로 불렀을 때 즉각적으로 반응했기 때문에 내심 반응이 없다는 것을 싫지 않다는 것으로 오역하고 있던 것이다.


내가 이 쌓이고 쌓인 대실패를 눈치챈 것은 4일이 지난 뒤였다.




나는 그 날도 격무를 마치고 지칠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침대로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 달빛이 내 격무의 끝을 축하하듯 나를 비추고 있었고 옆에는 핫밀크의 김이 흔들리며 반투명한 솜사탕이 구름처럼 떠다니는 듯 했다.


그런 나의 조촐하고 환상적인 평온을 휴대전화 알림음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현실적인 소리가 찢어놓았다.


발신자를 보면 『아마우 아코』라고 쓰여 있었다. 그렇게 급한 용건일까 생각하며 의구심을 가지며 통화 시작 버튼을 눌렀다.


순간 들린 것은 고함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선생님! 히나 부장이 위급합니다! 빨리 와주세요!"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위급한지 물어볼 수도 있었겠지만 이때 나는 그럴 여유도 없이 최소한의 채비를 하고 곧바로 게헨나로 향했다.






나는 휴대전화를 꼭 쥐고 부장님의 모습을 보며 고민에 빠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장님의 상태가 이상해진 것은 3일 전부터였다.


그날 히나 부장님은 평소보다도 안색이 나빴다. 연이은 격무나 수면 부족 등 안색이 나빠지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안색이 나쁜 적은 처음인 것 같다.


"부장님... 슬슬 쉬시는 게 어떤가요? 평소보다 안색이 나빠요...?"


나는 서류를 거꾸로 든 채 공허한 눈으로 정리하는 부장님에게 말한다. 평소에는 푹신푹신한 머리도 오늘은 중력을 따라 힘없이 축 늘어진 듯 했다. 제복도 왠지 주름져 있어 어젯밤 제복을 그대로 입고 잠든 것을 알 수 있다. 눈 밑 다크서클이 그녀의 눈가를 완전히 뒤엎고 있다.


부장님은 한 번 쳐다보더니 "그런가"라고 말하고선 힘없이 휘청거리며 돌아갔다. 서류더미가 완벽하게 처리된 것은 강한 책임감이 만들어낸 결과일 것이다.


다음 날도 부장님의 상태는 변함없고 오히려 악화된 듯 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휘청거리기만 했던 걸음이 오늘은 아예 천장에 끈으로 매달린 듯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 같을 만큼 덧없이 느껴졌다. 나는 그녀의 몸을 진심으로 걱정하며 휴식을 몇 번이나 권했지만 그녀는 절대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서류의 산이 쓰러지는 것도 신경쓰지 않고 서류를 그 자리에 놓아두는 부장님의 모습은 보고 싶지 않은 것으로부터 필사적으로 눈을 돌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오늘 저녁. 엊그제부터 이어진 안색은 오늘도 악화되어 그저께가 파란색, 어제가 보라색이라고 한다면 오늘은 검은색에 가까운 보라색이었다. 부장님의 안색이 이렇게 나쁜 것은 처음 본다.

그녀를 천장에 매단 실타래도 끊어지기 시작했는지 몸을 움직일 때도 팔다리를 힘껏 아무렇게나 내던지면서 간신히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그녀가 업무를 계속하고 학원의 치안을 유지하는 것은 그녀의 책임감 때문인지, 아니면 보고 싶지 않은 것이 있기 때문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일을 계속하고 있으니 당연히 실타래가 완전히 끊어지고 갑자기 쓰러져 버렸다. 공황에 빠진 내 옆에서 응급의학부와 치나츠가 그녀를 조심히 침대로 옮겼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로서, 그녀가 잠꼬대처럼 부르는 선생님에게 연락했다. 움켜쥔 휴대전화가 내 속처럼 뒤틀리는 소리를 내는 기분이 들었다.




앞만 보고 달린다. 머릿속에서는 다양한 생각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가장 큰 생각은 왜 그녀가 나를 의지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책임하기 그지없지만 그때 나는 정답을 도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달빛이 가늘게 내 그림자를 비추고, 달리는 내 그림자는 몹시 초라해서 무력한 자신의 상황과 겹쳐 분노가 치밀었다.

길가의 가로등은 깜빡거리고 그 옆 트리의 일루미네이션은 묘하게 눈부셔 그 대비의 우스운 모습에 머리가 조금이나마 냉정해졌다.


복도를 뛰지 말라고 가르친 내가 복도를 전속력으로 뛰고 있었다. 초등학생 때 우리들에게 달리면 안 된다고 외친 선생님이 복도를 뛰는 모습에 큰 불합리함을 느꼈지만 어쩌면 그때의 선생님도 학생을 위해 달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반쯤은 현실 도피에 가까운 생각을 하며 목적지를 향해 달려갔다.

드디어 도착한 문은 심히 무겁게 보였다. 평소 가볍게 여는 문이 이렇게나 무거워 보일 수 있다는 것은 배운 적 있을까.


아코의 말에 따르면 그녀의 상태가 이상해지기 시작한 것은 3일 전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전날 나는 히나를 만났다. 아마 이 일은 내 탓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학생을 상처 입혔으면서 전혀 짚이는 구석이 없다. 그런 자신에게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를 대할 면목이 없어서 문을 열려고 하기만 해도 손이 떨렸다.


각오하고 떨지 않도록 손을 누르고 문을 연다. 문은 소리도 없이 쉽게 열렸다. 침대 옆에는 예쁜 웨이브의 하늘색 머리의 소녀가 있었다. 사파이어 같은 눈동자가 슬프게 흔들린다. 아코다.


"미안 늦었지... 뒷일은 내게 맡기고 아코는 쉬어, 히나의 일을 의지해 줘서 정말 고마워."


그녀는 나를 쳐다보고 고개를 숙였다. 몇 초 뒤 그녀는 조용히 일어섰다.


"부장님을 부탁드립니다."


단 한 마디였지만 그 말에는 그녀의 히나에 대한 헌신이 묻어났다. 왠지 모르게 등골이 오싹한 것은 내가 아직 배움이 부족한 몸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가 앉아 있던 의자에 나도 조용히 앉았다. 침대에는 시든 식물처럼 초췌한 모습의 그녀가 누워 있었다. 잠꼬대처럼 내 이름을 부르고 있다. 나는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럴 땐 어떻게 했는지 떠올렸다. 그녀의 작지만 의지가 되는 손을 나는 조용히, 하지만 힘껏 쥐었다.


다크서클이 짙게 내린 그녀의 눈이 가늘게 뜨인다. 흐릿한 눈동자가 나를 포착하자 더 크게 떠진다.


"안녕, 히나."


나는 그녀에게 무슨 표정을 지을지 고민하다가 결국 미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잠깐의 고요함 뒤 나는 강하게 끌어당겨져 그녀의 옆에서 눈이 마주쳤다. 눈앞의 그녀의 입술은 의미하게 떨리고 내 얼굴을 만지는 손도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얼굴, 팔, 가슴 순으로 만지고선 겨우 내가 진짜라고 확인했는지 여전히 떨리는 손으로 나를 껴안았다.

그녀는 비눗방울처럼 깨지기 쉬운 것을 다루듯 섬세하게 나를 만지고 있었다.

나도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한 그녀의 가는 허리를 껴안았다. 등을 상냥하게 두드리자 안심했는지 그녀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진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쌓인 감정이 마침내 터져버렸는지 그녀의 연보라빛 눈동자에서 눈물이 넘쳐 흘렀다.


"으으... 흑... 선생님... 선생님...!"


그녀의 오열이 강해질수록 껴안는 힘도 강해졌다. 창밖에서 빛나는 별이 그녀의 촉촉한 눈동자에 반사되어 빛나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별을 보며 떠오른 그녀와의 추억을 회상했다. 처음에 밤에만 만났던 일, 바다에서 해질녘까지 함께 수영했던 일, 그녀는 조용히 들으며 때때로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 선생님에게 미움받았다고... 계속... 계속 괴로워서..."


"역시 그때 지키지 못한 나는... 미움받는 게 당연하니까..."


어리석기 짝이 없는 말이지만 나는 그녀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을 이제야 간신히 깨달았다. 나는 한층 더 강하게 그녀를 껴안았다. 요 며칠간 식사도 거른 탓인지 더욱 앙상해진 그녀의 등을 유리 공예품처럼 섬세하게 쓰다듬었다. 머리카락도 평소보다 윤기가 없지만 하프처럼 부드럽고 탄력이 느껴진다. 한 올 한 올이 전부 그녀의 삶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듯 했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상냥하게 손으로 빗으며 이런 참극의 원인은 모두 내 탓이라고 사과하며 모든 것을 설명했다. 설명할수록 내 어리석음을 다시 깨닫게 되어 점점 말꼬리가 흐려졌다.


대조적으로 그녀의 안색에는 안도감이 가득했다. 하지만 충분히 안도감을 표출한 뒤 그녀는 정색하는 표정으로 내 가슴에 머리를 문질렀다.


"당신은 선생인데 그런 기사에 휘둘리지 않도록 가르쳐야 하는 입장 아니야?"


"나는 나흘 동안 근심 걱정에 빠졌는데... 선생이 어떻게 책임져야 할까?"


그녀는 장난스럽게 내게 물었다. 왠지 머리카락도 윤기를 되찾고 공허했던 눈동자도 다시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물론이지, 가능한 일은 뭐든 할게."


뭐든이라고 쉽게 말했지만 아무리 미안함을 담아도 부족할 것이라는 생각에 소거법으로 확실하게 행동으로 보이기로 했다. 그녀는 그 말을 듣자 마치 이미 예상했다는 듯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선생님, 오늘은 이대로 같이 있어 줄래? 오늘은 전력으로 어리광부릴 테니까."




그녀의 사랑스러운 부탁에 나는 당황했다. 업무는 그녀 밖에 할 수 없는 일이 있으니 무리라고 해도 그 밖의 잡무나 허드렛일, 심지어는 미식연구회나 온천개발부의 고삐를 일주일 간 붙잡으라는 무모한 부탁을 받을 각오도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지금 그녀의 고양이나 고급 모피에 버금가는 푹신푹신한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있다. 이런 것으로 괜찮은지 솔직히 의문이지만 그녀는 만족스러워 보인다.


"저기 히나, 이런 걸로 괜찮아?"


"나는 충분히 만족하고 있어. 아, 쓰다듬는 손이 멈췄어."


그녀의 재촉에 나는 다시 머리를 좌우로 쓰다듬는다.

우리는 사흘의 공백을 메우듯 여러 이야기를 했다. 별을 보며 별자리 이야기를 하고, 바다에 갔을 때의 추억을 장황하게 이야기했다.

한참이 지나 그녀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눈 밑의 다크서클을 보면 수면 부족은 당연해 보이고 오히려 이렇게 오래 수다를 떤 것 자체가 대단한 수준이다.


"히나, 이제 잘까."


"그치만... 아직 선생님하고 얘기하고 싶어..."


그녀는 졸린 듯 눈을 비비며 말했다. 잠들기 전 이야기책을 계속 듣고 싶어하는 아이 같아서 몹시 귀여웠다.


"괜찮아. 내일이든 모레든 히나가 원한다면 키보토스 끝에서 끝이라도 갈게."


"후훗, 진짜 이상한 사람... 나는 그렇게 말해주는 선생님이 정말 좋아."


그녀의 얼굴이 불쑥 다가왔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는 것은 멋없는 일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레몬 맛은 나지 않고 핫밀크처럼 달콤한 맛이 났다.


"히, 히나?!"


나는 꼴사납게 얼굴을 붉히며 그녀를 불렀지만 그때는 도망친 사람이 승자라는 듯 그녀는 이제껏 본 적 없는 평온한 얼굴로 규칙적인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었다.

내 기분은 전혀 모르는 채 그녀는 혼자서 꿈의 세계로 떠나 버렸다.

나도 한동안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있었지만 그녀를 일으킬까봐 적어도 겉으로는 냉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옆에서 잠든 그녀의 머리를 물레에서 실크를 자아내듯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잘 자, 히나."


그렇게 나는 두 명은 조금 비좁은 침대에서 그녀와 몸을 맞대고 잠을 청했다.




다음날 제대로 자지 못한 내 눈 밑에는 선명하게 다크서클이 떠올랐고 어젯밤 일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히나가 여간 걱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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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목 名字で呼んでくる先生に我慢が効かなくなった生徒たち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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