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속보

  “어, 어째서 얘, 얘가 제 가슴을 만지고 같은 침대에서 잔거지요? 얘는 남자잖아요!”

  “음? 동료잖나. 아아, 별로 대화를 나누지 못해서 그런가? 다시 소개하지. 모나시다.”

  “모나시입니다.”

  “그, 그런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여자는 되는데 남자는 안된다? 그건 인간차별적인 생각이 아닌가? 노아 교리 법전에는 틀림없이 모든 인류는 동등한 인격과 권리를...”

  “아무튼 안되욧!”


  아에사는 발갛게 변한 얼굴로 침대에 있는 이불을 확 끌어당겨 어깨까지 두르고 모나시를 쏘아보았다. 아까 아에사가 비명을 지르자 다프네는 그야말로 순식간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 속도로 배게 밑에 있던 검을 뽑아들고 침대위에 올라섰다. 얼마나 빠르게 일어섰는지 옷이 펄럭이며 풍압을 일으켰다. 그러나 아에사가 당황한 표정으로 모나시를 가리키며 따지자 다프네는 그럴 수도 있다는 태도로 무마시켰다. 이유는? 동료니까.


  어제는 조라 때문에 별로 신경쓰지 않았는데 백발의 모나시는 뭐랄까, 참 계집애같이 생긴애였다. 여자인 아에사가 뭐라고 하기에도 좀 그렇지만 정말 모나시는 성별을 잘못 타고났다고 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 그런 아름다운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항구에서 자란 듯 피부는 가무잡잡하지만 몇 해만 가리면 금방 흰 피부를 되찾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가무잡잡한 피부마저도 단발의 백발머리와 부드럽게 어울려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다프네가 남자라고 소개시켜 주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여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모나시는 아침 햇살 속에서 앞으로 흘러내린 단발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며 가지런하게 정돈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묘하게 색기가 있어 아에사는 얼굴이 발갛게 변해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돌아본 곳에는 역시 모나시보다 아름다우면 아름다웠지 못하지 않은 다프네가 옷입는 태도마저 당당한 자세로 흰 웨딩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그 당당함에서 아에사는 그녀의 외모 말고도 또 다른 매력을 읽을 수 있었다. 닿기 힘든 정도로 높은 곳에 있는 사과이기에 더 맛있어 보인 달까. 그런 의미에서 자신은 어떻게 보일지 아에사는 곰곰이 생각해봤다.


  섬에서야 가장 아름다운 미녀로 곱힐 정도의 미소녀였다. 하지만 대륙에 오고나서 하루만에 이런 굉장한 미인들을 만나자 아에사는 주눅이 들었다.


  ‘왜 나한테는 미인들만 꼬이지?’


  물론 이제는 얼굴도 기억 못하는 깡패라든가 개새끼인 도리스 같은 놈들도 있었지만 어째 그런 놈들은 전부 잘생긴 얼굴은 아니었다.


  ‘외모는 곧 정의의 법칙인가?’


  그 순간 아에사의 머릿속에 뭔가가 개입되었다. 


  [닥치33.]


  그리고 아에사는 이 황당한 설정에 그냥 입을 다물기로 했다. 뭔가 오싹한 기운이 좀 더 파고 들어가면 아주 무서운 것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 대신 아에사는 다른 것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때 쿵쿵, 하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모나시가 나가서 문을 열어주었다. 여관의 주인이었다.


  “밑에 있는 저 사람 좀...”

  “......조라?”




  아에사가 황급히 계단 밑으로 내려가자 다프네와 모나시가 뒤따라왔다. 계단 밑에는 여전히 왼손에 칼을 꽂은 채 무릎 꿇고 있는 조라가 있었다. 주변에는 피가 흥건했지만 조라는 기절한 건지 죽은 건지 모를 자세로 고개를 푹 숙인 채 있었다. 어제와 같은 모습이었지만 아에사는 그 모습에서 뜻 모를 슬픔을 느꼈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이 사람은 내가 없어서는 안된다. 내가 이대로 떠나버린다면, 그 뼈마저 이곳에 뉘일 사람이다. 어제와 다른 점은 검이 어제보다 더 깊이 들어가 검신은 완전히 박히고 가드까지만 보였다.


  “어제 보다 못한 사람들이 칼을 뽑으려다가 더 깊이 박아버려서... 당신이 아니면 아무도 못 뽑는다고 하더군요.”


  주인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왜 나를 따라오려는 건가요? 나를 팔아넘기고, 배신하고, 외면하고, 방관했으면서. 아에사는 슬펐지만 동시에 분노했다. 내가 다루지 못하는, 제멋대로인 인간.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슬픈 모습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지. 아에사는 조용히 그에게 다가가 여전히 손잡이를 쥐고 있는 손을 쥐었다. 손이 찼다. 하지만 아직 죽지는 않은 것 같았다.


  아에사는 손을 꼭 붙잡고 잡아당겼지만 검은 빠지지 않았다. 조라가 몽롱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아에사는 울고 있었다.


  “...이것 좀 빼봐.”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이것 좀 빼보라고. 몇 번이고 나를 울리는 구나.”

  “감사... 합니다...”


  조라는 몇 번이고 감사하다고 말하다가 그녀의 손 위에 손을 올려놓고 옆으로 풀썩 쓰러졌다. 깜짝 놀란 아에사가 그에게 다가가 코 밑에 손을 대보자 다행히 숨은 쉬고 있었다. 하지만 칼을 뽑아야 위로 데려가 치료고 뭐고 할 수 있다. 아에사는 빨리 검을 뽑으려 했지만 도무지 검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때 다프네가 다가와 그녀의 손을 짚었다. 그리고 함께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검은 이때까지와 달리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뽑혀 나왔다. 


  아에사는 검을 뽑고 조라의 한쪽 팔을 받쳐들어 그를 지탱했다. 모나시가 달려와 조라의 다른 팔을 잡았다. 아에사는 주춤주춤하면서도 계단 위로 향했다. 다프네는 피로 젖은 바닥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주저앉아 그 피를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조라를 침대에 눕혀놓은 아에사는 그의 손을 황급히 붕대로 감았다. 하지만 어제 밤새도록 손에 칼을 꽂아놓았는데 이미 손을 못 쓸 정도로 괴사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조라는 멍한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 눈 때문에 아에사는 좀 더 우울해졌다. 모나시는 조라의 손가락을 잡고 이리저리 흔들다가 말했다.


  “뼈는 완전히 잘렸고, 근육도 다시 붙을지 모르겠군요. 확실한 건 파상풍에 걸리지 않으면 기적이고 파상풍에 걸리지 않아서 잘라내지 않아도 된다면 엄지손가락만 움직일 수 있을겁니다.”


  아에사는 훌쩍이며 말했다.


  “네가 그런 걸 어떻게 알아?”

  “처음 보는 상처는 아니니까요.”

  “뭐?”

  “아아, 자세히 알지 못하는게 나아요. 저는 당신처럼 편안하게 살아온 건 아니니까. 이 사람처럼 자의는 아니더라도 뼈랑 근육 끊어지는 일은 많이 봤죠.”


  모나시는 너무 길게 말했다는 듯 입을 다물어 버렸고 아에사는 의아한 눈길로 그를 바라봤다. 하지만 여전히 피가 배어나오는 조라의 손에 붕대를 감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렇게 많은 피를 흘리고도 어떻게 아직도 피가 나올 수가 있지? 모나시가 중얼거렸다.


  “어제 좋았어요.”


  등 뒤가 오싹했다. 무슨 말이지?


  “생각보다 음란하더군요. 뭐, 복장보고 예상했지만.”

  “무, 무슨. 어제 일이라면...”

  “처녀도 아니잖아요. 예절이나 걷는 법보고 귀족인가 했는데. 뭐, 어딘가의 고급 창녀라든가? 확실히 아에사씨는 냄새가 좋아요. 누구라도 배 위에 둘 수 있을 것 같아.”


  치밀어오른 분노와 달리, 머릿속은 오히려 싸늘해졌다.


  “나를 능멸하려는 건가? 너 같은 녀석이 어떻게 다프네 씨를 따라다닐 수 있는 거지?”

  “아아, 주인님 말이죠. 생각보다 순진한 사람이에요. 아에사씨도 예상했듯이. 나를 노예상인에게서 구해줬을 때, 그 강한 힘에 반해버렸죠. 그리고 생각했어요. 아, 이 사람을 내 밑에 깔아뭉개고 마음껏 더럽히고 싶다. 그래서 그를 따라갔죠. 그는 사람을 대할 때는 배타적이지만 동료로 여기고 나면 놀라울 정도로 가깝게 대해요.”


  모나시는 이죽거리며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더불어, 이런 말을 주인님에게 얘기한다고 해도 그녀는 저를 의심하지 않을 거에요. 이때까지처럼, 이름을 부르라느니 주인님이라고 부르겠다느니 하는 사소한 다툼을 유지하는 관계를 가질 테니까. 내 배 밑에 깔아버릴 때까지.”


  아에사는 그가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왜지? 단지 관계가 갈라서지 않을 자신이 있어서 그런건가? 아니, 그러면 아예 그런 말을 안하는게 나았다.


  “나한테 왜 이런 말을 꺼낸거지?”

  “다프네에게서 떨어지라는 말이지요. 당신 냄새가 매혹적이긴 하지만... 제가 관심있는 건 그녀뿐이니까. 짐이 하나라도 더 있으면 안되거든요. 단 둘이 계속 간다면 얼마든지 기회가 있겠죠.”

  “......너, 네가 그 노예상을 불러들였군.”


  모나시는 그저 웃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억눌렀다. 그러나 모나시가 경멸하듯 중얼거리는 말에 미노타 대거를 한 손에 쥐고 벌떡 일어서고 말았다.


  “네 몸이나 잘 챙겨, 걸레야.”

  “이게!”

  “둘이 뭐하는건가?”


  갑작스럽게 들린 다프네의 목소리에 아에사는 깜짝 놀라 휘청했다. 아에사의 미노타 대거에 반사적으로 숨겨둔 단검에 손이 갔던 모나시도 슬쩍 손을 떼었다. 다프네는 둘이 싸워서 분노한 게 아니라 진심으로 뭘 하고 있었냐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렇게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던 방안은 다시 움직인 다프네의 걸음으로 깨졌다. 다프네는 걸어와 조라의 손에 상처를 훑어보았다. 그리고 선언하듯 중얼거렸다.


  “이 자는 죽지 않아.”

  “예?”

  

  다프네는 조금 경멸하는 듯 하지만 아에사의 지인이라서 참겠다는 태도로 차갑게 중얼거렸다.


  “마족, 아니. 인큐버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