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속보

  조라는 뭔지 모를 세계에서 꿈을 꾸고 있었다. 그곳은 온통 구름뿐인 곳으로 일전에 다프네가 보았던 곳과 유사했다. 조라는 이 공간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이터널 플레인(Eternal Plane), 영원한 공간. 고유명사는 천공요새 엘릭시온. 그가 정상적인 삶의 최후를 맞은 곳이다. 이곳에서 그는 그녀를 죽이고...


  ㅈㅇㅇㅇㅇㅗㅇㄹㅇㅇㅇㅇㅇㅇㅇㅇㅇㅏ?


  목소리가 개입되었다. 알 수 없는 흥얼거림? 혹은 폭포수의 소리? 조라는 뜻 모를 ㅇㅇ의 소리 때문에 목소리를 자세히 들을 수 없었다. 조라는 인상을 찡그리고 귀를 막았다. ㅇㅇ소리는 외부에서, 목소리는 내부에서 울려 그나마 좀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ㅇㅎㅇㅇㅇㅎㅇ

  ㅈㅗㄹㅏ?


  목소리가 오버랩되었다. 아에사의 목소리였다.

  그렇다면 가야지. 내 죄를 사하여 줄 유일한 여인에게.


  조라는 눈을 떴다. 아에사는 그의 상처입은 손을 쥐고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린 채로 그를 보고 있었다. 그게 자신으로 인해 누군가가 죽는 다는 것의 두려움에서 발현된 것인지 혹은 조라를 진심으로 걱정해서 그런건지 조라는 알 수 없었지만 그 눈을 보자 어쩐지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행복하게 해주자, 그래서 그녀를 꿈을 꾸게 해주자.


  “조라 윈드넬”


  머리맡에서 어떤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조라는 눈을 돌려 그쪽을 바라봤다. 흰 드레스를 입은 한 여성이 검을 뽑아든 채 서있었다.


  “인큐버스, 맞지?”

  “아...... 성기사시군. 피맛을 봤습니까? 그렇다면 부정해봤자 소용없을테니, 예, 맞습니다. 대공동 나라카(大空洞 Naraka)의 1급 인큐버스 나이트메어 급입니다. 어때요, 거물인가요? 제 목을 지금 치실 겁니까?”

  “지금은 아니고, 언젠가. 잠시 후가 될 수도 있고 헤어질 때가 될 수도 있지. 우선 설명을 해줘야겠어. 아에사를 따라가야 하는 이유는 뭐지?”


  조라는 입을 다물었다. 차가운 자신의 손과 달리 아에사의 손의 온기가 따뜻해서 그대로 눈을 감고 자고 싶었다. 그러나 다프네가 다시 한번 말했다.


  “아에사를 따라갈 정당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면 잠시 후라는 건 지금이 될 거야.”

  “조라. 정말로 날 먹이로 삼기 위해 따라온거야? 그러려고 동정을 사기 위해 죽음을 각오한 척 하고 나를 또 한번 속인거야?”


  아에사가 울먹이며 말했다. 조라는 손을 들어 아에사의 눈가를 스다듬었다. 울지 말아요. 


  “......이야기가 길텐데. 괜찮습니까?”

  “시간은 많아.”

  “예. 되도록 간략하게 추려서 이야기하지요.”


  조라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150년 전의 일입니다. 예, 당신들 할아버지조차도 태어나기 전이죠. 그때 저는 인간이었습니다. 아니... 저라기 보단 그라고 해야겠군요. 그 기사는 어느 날 아주 큰 죄를 저질렀습니다. 신을 죽였지요. 신을 죽임으로서 그녀의 피를 온통 뒤집어 쓴 그는 인간들 사이에서 영웅이 되었지요. 그러나 그를 죽임으로서 지은 죄는 용서되지 않았습니다. 인간들은 모두 그를 용서하고 떠받들었지만 죽은 신은 그를 용서하지 않았죠.


  신의 피를 부음받은 그는 절대로 죽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에도 어떤 결투에서도 패배한 일이 없었고 설사 창에 찔리더라도 상처 하나 나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신을 죽이고 여섯 밤을 한 번도 자지 않고 축제를 즐기던 그가 잠시 눈을 붙이기 위해 이상한 것을 느꼈지요.


  누울 수가 없는 겁니다. 땅이 그를 거부하듯 밀어내고 있었어요. 죽음을 부정당한 그는 대지에 몸을 뉘일 수 없게 된겁니다. 그리고 당황한 그는 황제의 딸과도 결혼을 거부한 채 자신의 영지로 도망가고 말았어요. 절대로 죽지 않는 다는 축복에는 그에 합당한 저주가 뒤따르는 겁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계속 선채로 살았지요. 다리가 아파오고 등은 끝없이 고통을 호소했지만 그는 누울 수 없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피로가 누적된 그의 심장이 멈춰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아까 안 죽는다고 했었죠? 예. 그는 죽지 않았습니다. 피가 순환을 멈추고 온몸에 고인 채 썩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주위에는 시체가 썩는 고약한 냄새가 나고 그의 얼굴은 흉하게 썩어버렸죠. 산채로 썩어가는 고통을 아십니까? 결국 그는 온 몸이 썩어 뼈만 남았지요. 


  ...그런데 그때까지도 그는 살아있는 겁니다. 뼈는 푸석푸석해져 부서지고 붕괴되는데도 고통도 감각도 없는 그는 여지껏 살아있었죠. 그러다가 그는 자신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자신이 쓰던 세 검에 분신을 만들어 속죄토록 했습니다. 그의 어둠을 담아간 귀허검은 마족이 되었지요. 그의 밝은 부분을 담아간 부러진 창검 패러독스(Paradox)는 숲의 엘프가 되었고, 그의 ‘인간’적인 부분을 담아간 불의 검 라바슈타드는 인간이 되어 갔지요. 모두는 신을 부활시키기 위해, 부활시켜 죽인 죄를 속죄하기 위해 각자의 임무를 띄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간략하게 이야기 했지만 이 안에 얼마나 많은 슬픔과 고통이 당겨있는 지는 부활할 신만이 알고 있을 겁니다.”


  그 긴 이야기를 들은 다프네는 침묵을 지키다가 주저하며 입을 열었다.


  “그럼...”

  “예, 제가 귀허검의 인큐버스 나이트메어 조라 윈드넬입니다. 그리고 제가 죽지않는 이유는 인큐버스라서가 아니라 그 기사의 잔재이기 때문입니다.”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은...”


  신을 죽인 사람. 그 이야기는 역사서적에서 아에사도 읽은 적이 있었다.


  “계시록의 기사, 갓 슬레이어 니체.”

  “그가 저의 전생입니다.”


  계시록의 기사의 영지는 영주가 실종된지 100년이 넘게 지났음에도 여전히 영주가 공석으로 있기로 유명하다. 본래 자손을 남기지 않고 영주가 사망하면 황제에게 그 영주권이 돌아와야 한다. 영지를 아직 남겨두는 이유는 황제가 그의 업적을 기리게 하기 위해서라느니 원체 사막뿐이니 쓸모가 없어서라느니 이유는 분분하지만 진실은 단 하나였다. 영주가 아직 죽지 않았으니 황제에게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아에사를 따라오는 이유는?”

  “저는 온 차원 곳곳으로 흩어져버린 신의 정신을 한곳으로 모아야 합니다. 엘프는 온 세계로 흩어진 그의 혼을, 인간은 그것을 담을 그릇을 준비해야 하지요. 아에사가...”


  조라는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쥐고 말했다.


  “제 죄를 속죄해 줄 유일한 열쇠입니다. 이 세상에 남겨진 정신의 한조각이지요.”

  “에? 무, 무슨 말을 하는거야.”

  “당황하실 거라는 것, 압니다. 저는 그것을 배에서 확신할 수 있었어요. 처음에 당신을 만났을 때 나는 그냥 평범한 소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저 악몽을 먹으려는 생각에서... 죄송합니다. 당신을 밑바닥까지 몰아넣었음에도 당신은 꿈을 꾸지 않았어요. 저는 인큐버스인 동시에 나이트메어이기 때문에 그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신의 정신은 꿈을 꾸지 않아요. 신의 꿈은 곧 우주의 의지니까.”

  “꾸, 꿈을 꾸지 않는 사람은 많아. 게다가 나는 꿈을 한번 꿨다고. 배에서, 구름 한가운데 있는 꿈을...”

  “그들은 꿈을 꾸지 않는 게 아니라 기억을 못하는 겁니다. 생각해보세요, 아에사. 당신은 꿈을 한 번도 안 꿔보셨을 겁니다. 그 구름은 다른 차원-이터널 플레인-에 흩어진 당신의 정신의 일부입니다. 당신의 정신이 밑바닥에 이르고서야 다른 정신을 볼 수 있었던 거지요.”


  아에사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눈동자를 떨었다. 조라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저는 당신을 행복하게 해서 꿈을 꾸게해야 합니다. 그러면 정신은 당신에게 모여들고, 그릇에 담을 수 있게 되지요.”

  “잠깐. 신의 정신이 모이면 인간인 아에사는 견딜 수 없는게 아닌가?”

  “다릅니다. 정신만 있을 뿐, 원동력인 혼은 없으니까요.”


  침묵이 이어졌다. 침묵을 깬것은 아에사였다.


  “결국...”

  “......”

  “나를 또 한번 이용하겠다는거네?”

  “아... 그건.”


  아에사는 조라의 손에서 손을 떼었다. 그녀는 울지 않았다. 앞으로도 울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 다짐했다. 가슴속은 더없이 차가워지고, 머리는 또렷이 떠오르는 단어들을 배열하고 있었다.


  “따라와도 좋아. 하지만 뭐든 하겠다고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