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속보

아리야발마는 신라 사람이다. 정관(貞觀) 연간(627~ 649)에 장안(長安)의 광협(廣脇)【왕성(王城)의 산 이름이다.】을 떠나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추구하며, 성스러운 유적을 몸소 순례하였다. 나란타사에 머물면서 율(律)과 논(論)을 많이 익히고, 중경(衆經)을 간추려 베꼈다. 하지만 돌아올 마음은 있었으나 끝내 이루지 못하였으니 애달프기 짝이 없다. 아리야발마 스님은 동쪽 경계인 계귀(雞貴)에서 나와 서쪽 끝인 용천(龍泉)에서 돌아가셨다. 즉 이 절에서 세상을 떠났으니, 나이가 70여 세였다.【계귀(鷄貴)는 범어로 구구타예설라(矩矩吒翳說羅, Kukuṭeśvara)이다. ‘구구라’는 닭(鷄)이고, ‘예설라’는 귀하다(貴)라는 뜻이니, 즉 고려국(高麗國)이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 나라에서는 닭의 신을 받들어 모시기에 그 깃털을 뽑아 장식한다고 한다. 나란타사에 못[池]이 있는데, 이를 용천(龍泉)이라고 부른다. 인도에서는 고려를 ‘구구타예설라(矩矩吒翳說羅)’라고 부른다.


『대당서역구법고승전』 1권




참고로 본문 사료에선 아리야발마가 신라 사람이라고 언급하는데 해당 책의 저자인 당나라 승려 의정이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인 690년경에 작성한 거라 신라 사람이라 적은 거고 실제로는 고구려 승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