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속보

"리아, 누가 뭐라 해도 넌 내 사랑스러운 여동생이야."


항상 듣던 오빠의 말을 마지막으로 꿈에서 깼다.


"에헤헤... 오빠아..."


일어나 멍하니 앞을 바라보기를 5초.


평소와 같이 내게 주어진 망상의 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


오빠는 모든 면에서 모자란 나와는 달리 특별한 존재다.


모든 과목에서 우수, 마법은 물론 무기술도 뛰어나며, 성격과 교우관계도 좋은 선망의 대상.


남녀 할 것 없이 모두가 오빠와 친해지는 것을 바랄 정도로, 나 같은 것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우습게도 내가 매일 아침 꾸는 꿈은 오빠와 함께 행복한 날을 보내는 꿈.


평범한 가정집에서 서로 하하호호 웃으며 말 그대로 단둘이 살아가는 그런 꿈이다.


때로는 식탁에서 같이 밥을 먹으며 칠칠찮게 입가에 묻은 밥풀을 오빠가 떼어 준다.


당연히 내 자리는 오빠의 무릎 위. 다리 사이라 표현하는 게 맞는지 모를 자리를 지정석으로 둬, 배시시 웃으며 볼을 붉힌다.


적당히 시간이 흐르면 함께 욕실에 들어가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나는 오빠의 등을, 오빠는 내 몸을 전부 씻겨주며 즐거움에 서로를 꼬옥 끌어안는다.


항상 꿈의 마무리는 같은 침대에서 잠이 드는 것이다.


신난 마음에 들떠, 제대로 마르지 않은 머리를 휘적거리며 내가 먼저 침대로 다이빙한다.


날 붙잡는 것에 실패한 오빠는 허무한 듯 드라이기를 손에 들고 오면서도, 곧 내 미소에 못 이기는 척 침대로 올라온다.


"그러면 안 돼. 리아는 아직 어리니까 오늘까지만 봐주는 거야."


라고 이야기하며 내 활기찬 대답을 받은 오빠는 자상하게 웃는다.


그러고는 언제나의 쓰다듬을 받으며 멀어지는 의식.


잠의 흐린 경계에서 깨기 전, 오빠는 또렷한 말을 되새겨주었다.


"글로리아 님, 좋은 아침입니다."


"으헤...헤..."


"글로리아 님!"


"아얏...!"


여전히 정신을 놓고 있으니 곧 날아드는 딱밤.


이마에 강렬한 충격을 남긴 나리는, 자신의 검지를 후후 불었다.


꼭 책에서 보던 영웅이 총을 후후 불듯이.


"뭐 하는 거야앗! 아프잖아!"


"글로리아 님이 망상 속에 빠져서 제 말을 무시한 게 나쁜 거예요!"


"으으... 소꿉친구라 해도 너무한 거 아냐?! 난 귀족이란 말이야!"


"귀족이니까 좀 더 제대로 하란 말이에요!"


열받은 김에 항의를 해 보지만, 내게 돌아오는 것은 위칫값을 하라는 잔소리뿐.


고작 몇 초 동안 멍때렸을 뿐인데!


자기 전속 메이드에게 딱밤을 맞으며 혼나는 생활은 바라던 것이 아니었다.


"우씨... 어차피 나 찾는 사람도 없는데 왜 항상 강제로 깨우는 거야..."


나리가 나간 방문을 강하게 째려보았다.


빨갛게 달아오른 이마를 매만지고 있으니, 곧 드레스 거치대를 끌고 오는 나리.


거기엔 내가 입을 수 있는 사이즈의 옷들이 걸려 있었다.


"...그새 못 보던 옷들이 늘었는데?"


"글로리아 님은 옷을 사러 가시질 않으니까요. 무릇 귀족이라 함은, 몸가짐을 단정히 하는 법이라고요."


"그렇게 잘 알면 나리가 귀족 하지 그래? 난 그런 거 관심도 없는데... 치."


"정말. 떼를 쓰셔도 소용없어요. 대신 제가 항상 붙어서 도와드리고 있잖아요?"


어디에서 꺼낸 것인지 모를 빗들과 브러쉬로 능숙하게 머릿결을 손질해 주는 나리.


상대를 안심시키는 부드러운 손길.


정성스레 대접하는 섬세함이 돋보여, 무심코 헤벌쭉한 표정을 지었다.


그야말로 사랑받는 대형견이 된 듯한 기분.


"이렇게 매번 글로리아 님을 보살피고 있으면, 글로리아 님이 거대한 강아지로 보이기도 하네요."


"...그거 굳이 말로 해야 했어?"


"사실이잖아요. 저 없으면 밤에 혼자서 화장실도 못 가시는 주제에 말이 많아요."


"아, 아니거든! 그건 내가 열한 살 때 얘기고! 열두 살 되고 나서부터는..."


"아직 1월인데 그런 변명은 좀 뻔뻔하지 않나요? 한 달 전만 해도 제 침실에 쳐들어와서 같이 안 가주면 여기서 지려버리겠다고 협박을..."


"아, 아아아아아! 안 들려! 안 들려!!"


치사하게 과거의 일을 꺼내오며 정신 공격을 가하는 나리.


필사적으로 귀를 막으며 눈을 꼬옥 감고는 소리쳤다.


이걸로 나리가 무슨 말을 해도 들리지 않아! 무슨 행동을 해도 보이지 않아!


그야말로 절대 무적의 전략이었다.


그렇게 1분쯤 소리를 내지르니, 머릿결의 정리가 끝났다.


눈을 뜨면, 나리가 날 어이없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뭐, 뭔데!"


"참... 자기보다 두 살은 어린 여자애 상대로 그러고 싶어요? 제발 철 좀 드는 게 어때요?"


"이익! 네가 뭘 안다고 잔소리야! 이게 귀족의 방식이거든?! 어른의 전략이거든!"


"그딴 게 귀족의 방식이라니... 아버님께서 들으시면 눈물을 흘리시겠어요."


"거기서 아빠가 왜 나왓!"


반격을 해 줄 기세로 나리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나리는 씨익 웃더니 빙글 돌아 돌진을 피해냈고...


침대 끝으로 날아간 내 몸은 바닥에 처박히...


"괜찮아요? 글로리아 님."


"으, 으으... 흐에엥..."


기 직전에 목덜미를 잡히며 나리에게 구해졌다.


이마를 박는다는 무서움에 무심코 울음을 터트렸다.


우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나리의 품에 얼굴을 들이밀자, 내 머리를 꼬옥 안아주는 나리.


"우으으..."


"미안해요. 제가 잘못했어요. 장난이 심했죠? 착하다 착하다."


등을 상냥하게 어루만지며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이 따스하다.


정수리가 간지러워, 수분만 충분하다면 머리에서 꽃이 피어날 것 같은 감각.


쉽게 말해 부끄러움을 느끼며 마음을 추슬렀다.


"이제 화해도 했으니까 뚝 해요 뚝! 저번에 아스틸 님이 눈물 많은 여자는 싫다고 했거든요."


"정말...? 아스틸 오빠가? 아, 안 울어! 운 적 없거든!"


"제 가슴을 적시는 것부터 그만하고 거짓말을 하는 게 어때요? 열두 살이나 돼서 뭐 하는 거예요?"


"안 운다니까! 크으응...! 증거 있어?!"


"으아아악?! 지금 코 푼 거예요? 제 옷에...? 미쳤어요?!"


"어차피 리본 쓰지도 않으면서... 주인님이 휴지로 써 주면 감사하다 해야지!"


창피함에 되지도 않는 헛소리를 늘어놓았다.


평정심을 유지하던 나리도 아끼는 리본이 휴지가 되어버린 것에 분노한 것인지 곧 내 머리 위로 충격이 가해졌다.


딱밤... 보다도 훨씬 강렬한 충격.


내가 어지러워하는 동안 몸을 뒤로 쓰윽 빼낸 나리는, 리본을 해제하고 날 죽일 듯 노려보았다.


"주, 주먹으로 때리는 게 어딨어! 치사해! 그리고 내가 언니인데..."


"언니면 언니답게 좀 해요! 이 리본... 열 살까지 잘해 주었다고 주인님께 선물 받은 거였는데...!"


"누가 들으면 다른 사람이 준 줄 알겠다?! 그까짓 거 하나 더 사주면 되잖아!"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요! 다음번엔 그냥 바닥에 떨어지게 내버려둘 거예요?!"


참 의미 없는 말싸움.


언제나 한 쪽이 마음이 상하면 서로 어린 치기를 부딪치며 이렇게 싸워댔다.


주로 원인제공은 내 역할이었지만...


그래도 억울한 건 어쩔 수 없는걸!


나리도 매번 폭력부터 휘두르고... 너무하잖아!


"으... 됐어요. 어린애도 아니고 이게 뭐 하는 거예요. 제가 먼저 사과할게요. 때려서 미안해요. 됐죠?"


"흐, 흥! 누가 사과 받아준대? 리아 언니, 잘못했어요. 하면 봐줄게!"


"...기껏 사과했더니 뭐요? 글로리아 님, 드디어 미치신 거죠? 그렇죠? 네?"


"히익... 포, 폭력반대!"


또다시 주먹을 꺼내 드는 나리와 방어 자세를 취하는 나.


나리는 당장이라도 날 칠 것 같이 위협하다 주먹을 집어넣었다.


"왜 항상 매를 버는 건가요 대체... 아스틸 님의 반이라도 본받는 게 어때요?"


"메롱이다! 나리는 바보! 똥멍청이!"


가볍게 메롱을 날리며 우다다 달려 방문을 나섰다.


비록 나리가 나보다 힘도 세지만... 도망치는 나는 무적이다!


"거기 서요! 또, 똥멍청이라 했죠?! 잡히면 가만 안 둬요! 꿀밤을 다섯 대는 먹여 드릴 거예요!"


급히 뒤쫓아 나오지만, 거리는 이미 5... 아니, 7마신!


"끄엑?!"


걸릴 것 없이 복도를 질주하다 곧 의미불명의 지진에 의해 바닥에 엎어졌다.


나만 느낀 것은 아니었는지 제자리에 멈춰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나리.


"꺄아아아아악!!"


곧 멀지 않은 곳에서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창문 너머로 들렸으니 반드시 위치는 정원이 분명했다.


"...글로리아 님. 지금은 우선 다녀오겠습니다. 뭔가 낌새가 이상해서... 글로리아 님은 방에서 기다려 주세요."


창밖을 보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계단으로 달려 정원으로 내려가는 나리.


그 얼굴에서 읽히는 표정엔 여유라곤 없는 긴박함이 서려 있었다.


평소답지 않게 심각한 모습으로 달리는 것으로 보아, 확실히 문제가 생긴 모양.


나보다 두 살은 어린 나리가 책임을 다하는데 나만 놀고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나리를 따라 내려갔다.


급히 중앙계단을 돌아 내려간다.


아직 실내복인 탓에 치맛자락이 걸려, 손으로 치마를 살짝 들며 1층에 도착했다.


정원으로 뛰어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풍경은 붉게 물든 하늘.


"으, 으아...?"


끈적한 피가 사방으로 흩뿌려지며 바닥을 적신다.


무섭다는 말로는 표현이 어려울 정도의 이상한 풍경.


정원 한가운데의 손님맞이용 탁자는 무성한 덩굴로 덮여 있었다.


다양한 꽃이 예쁘게 피어있던 정원에는 오로지 한 종류의 꽃뿐.


나팔꽃. 그 외의 모든 꽃은 시들어 바닥을 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나팔꽃 덩굴의 근원지를 홀린 듯 따라가다 보면, 사람이 한 명 보였다.


온몸이 꿰뚫려 온갖 부위로 덩굴을 뻗어대는... 피투성이의 여자.


그녀의 정체는 몇 번이나 날 저주받았다 비난했던 오빠의 사용인 중 한 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