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속보

"으허엉... 그래서 말이죠... 학장님이 결국 올해도오..."

"... 조금... 진정하시고..."

"하기 싫다고오! 그렇게 말했는데에! 왜 강제 참여라는 건데에! 딸꾹..."


상담실. 내 맞은편에 앉은 현 교수가 울면서 웅얼거렸다. 내 책상 위에는 어느새 맥주잔만 몇 개가 놓여 있었다.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계속 아카데미 학장님의 욕을 하는 현 교수. 사정은 이러했다.

작년, 그러니까 게임 속 시점 때 아카데미 학장의 아이디어로 교수와 학생 간의 섹스 배틀 이벤트가 있었다. 섹스 아카데미의 교수는 무력이든, 성이든 최정상에 서 있는 존재. 그런 존재와 성으로 겨뤄볼 기회가 주어진다는 사실에 신전 소속을 제외한 수많은 학생들이 열광했던 이벤트이기도 했다.

해당 이벤트에 참여했던 교수는 현, 데크, 오르카. 이렇게 셋이었다. 가빈 교수는 어중이떠중이를 상대하기 싫어서, 콜리 교수는 어려서, 리븐 교수는 이미 결혼했다는 이유로 참여하지 않았고 데크 교수는 루카 말고는 집을 몰라서 참여하지 못한 탓에 실질적인 진행자는 오르카 교수와 현 교수. 이렇게 둘이었다.

심지어 그 당시에도 루카와 연애하던 현은 루카의 애교 섞인 질투와 수많은 학생들의 공세로 인해 지쳐서 다시는 그딴 이벤트 안 하겠다고 선언까지 했는데 학장님은 그걸 무시하고 강제로 참여하라고 한 탓에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다.


"딸꾹... 학장님... 저주한다아..."

"그만 진정하시고... 수업 들어가셔야죠... 이렇게 취하신 상태에서는 수업 진행도 못하겠지만..."

"... 크허어... 코오..."

"... 잠들었어?!"


나는 잠들어버린 현 교수를 보며 당황해서 현 교수를 흔들어 깨웠지만 술에 어지간히도 취한 건지 현 교수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나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걸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든 힘을 쥐어짜 현 교수를 침대에 눕히는데 성공한 나는 비틀비틀 상담실 의자에 주저앉았다. 오늘이 일요일이라 망정이지 월요일이었으면 어쩔 뻔했는지...

내가 상담실 책상에 엎드려 한숨을 푹 내쉬고 있자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인가 싶어 고개를 들자 천천히 열리는 상담소의 문. 그 상대를 본 순간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 어, 아, 안녕하세요. 처음 보는 학생이네요."

'얘가! 여기서! 왜 나와!'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샴 고양이 수인이었다. 나를 바라보며 싱긋 웃는 그. 그 미소를 보며 나는 바짝 굳을 수밖에 없었다. 페로. 그의 이름이었다.

나는 학생 리스트를 빠르게 넘겨 페로의 리스트가 나오자 멈춰 그 리스트를 읽는 척 했다.


"음... 이름은 페로... 현재... 2학년 B반이네요? 무슨 일로 오셨나요?"

"네? 아, 별거 아니에요~ 어제 콜로세움에 있었거든요. 마지막 이벤트 경기 보고 흥미가 생겨서 찾아왔다고 할까요?"

"아... 그 경기 말이군요."


페로의 말에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왜 하필 그 경기를 보고 찾아온 거란 말인가. 안 그래도 무서운데 그 경기까지 거론하니 더 무서워졌다.

내가 살짝 긴장한 채로 리스트에만 시선을 박아놓고 있자 페로가 내 맞은 편에 앉았다. 그냥 경기 보고 찾아온 거면 빨리 가버렸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가뜩이나 어제 그런 특성이 붙어버린 탓에...


"흐음~ 선생님의 몸에서 좋은 냄새가 나네요. 좋은 향수라도 쓰세요?"

"네? 아... 향수는 딱히 안 써요. 그것보다 술 냄새가 더 진할 텐데..."

"술... 아, 확실히 맥주 냄새가 나긴 하네요. 이 냄새면... 현 교수님 계시나 보네요?"

"네, 지금 침대에 쓰러져 계세요. 하하..."

"흐응~ 그렇구나~"


내 말에 어쩐지 재밌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는 페로. 내가 살짝 시선을 피하며 리스트를 덮고 있자 페로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드디어 떠나려는 것일까 싶어 속으로 안도하던 찰나, 갑자기 페로가 얼굴을 불쑥 들이밀자 나는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까, 깜짝이야... 뭐, 뭐예요? 갑자기..."

"... 선생님~ 알고 있었죠? 저에 대해서."

"에? 그게 갑자기 무슨..."


갑자기 소름이 끼치는 미소를 지으며 묻는 페로. 그에 내가 당황하며 되묻자 페로는 손가락으로 내 뒤편을 가리켰다. 그에 뒤쪽을 바라보자 내 꼬리는 언제부터인지 펑 터져 있었다.


"제가 들어온 순간부터 줄곧 저 상태였는데~"

"아, 그, 그건... 졸고 있었어서 그래요. 하하... 갑자기 노크 소리가 들린 탓에 깜짝 놀라서..."

"흐음... 그렇구나~ 그건 그럴 수 있죠~"

"아하하... 그렇죠? 그러니까..."

"그렇지만 선생님, 그것만으로는 줄곧 저를 경계하고 있는 이유가 설명이 안 되는데 말이죠~"

"......"


나는 페로의 말에 눈을 굴리며 변명거리를 찾았다.

페로, 겉으로는 모범생을 연기하는 학생이지만 실상은 조금 달랐다. 플레이어블 캐릭터 중 밤의 황제라는 포지션의 캐릭터로 세계를 아우르는 사창가의 주인이다. 대략 사창가의 크기가 제국의 몇 배는 되기에 제국의 황제보다도 높은 위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존재.

그런 존재인데다 잔혹성까지 갖추고 있는 존재다 보니 실제로 보니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심지어 지금의 샴 고양이 수인의 모습은 실제로 작년 입학생 중 한 명이었던 페로라는 이름의 샴 고양이 수인을 죽여 몸과 이름을 빼앗아 쓰고 있는 거였다.

어떤 변명을 할지 머리를 마구 굴리던 도중, 팔이 내 목에 휘감긴다. 어느새 내 뒤에 서서 내게 목에 팔을 감아 매달려 있는 페로. 깜짝 놀라 굳어버리자 페로가 키득키득 웃으며 내 귀에 속삭였다.


"너무 그렇게 굳지 않아도 괜찮아~ 죽일 일은 없으니까."

"...!"

"그냥 간단히 대화만 하러 온 거인 걸? 그러니까 조용히... 알겠지?"


페로의 사근사근한 협박에 나는 덜덜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싱긋 웃으며 나를 풀어주는 페로. 아까같이 천진난만한 미소를 짓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공포를 떨쳐내지 못한 채 눈치를 살폈다.


"그나저나 대회 때는 깜짝 놀랐어요. 분명 겉 보기엔 약해 보였는데 말이죠... 마지막 순간에는 엄청 놀랐어요! 꼭... 수인 사냥꾼을 본 느낌이랄까..."

"... 에?"

"아하하, 너무 신경 쓰지는 마세요. 선생님한테서는 피 냄새가 나지는 않으니까. 동정의 풋풋한 냄새라면 몰라도."

"...!"


페로의 말에 당혹스러워하던 나는 뒤이은 페로의 장난기 어린 한 마디에 얼굴을 붉혔다. 거기서 갑자기 그 말이 왜 나온단 말인가. 그래도... 페로의 말은 약간 정곡을 찌르는 말이긴 했다. 내가 살던 곳은 생각보다 위험한 일이 많았으니까. 자연스레 그런 때는 자기암시에 의존하게 되고 죽이지만 않았지 제압은 여러 번 해봤기 때문에 마냥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렇게 애써 진정하고 있던 나는 문득 페로와 눈이 마주쳤다. 나를 놀리려는 목적인지 씩 웃으며 입가를 혀로 훑는 페로. 그에 나는 얼굴을 더 새빨갛게 물들이며 소리쳤다.


"나가!!!"

"아하하! 알겠어요, 알겠어요~ 이제 그만 놀릴게요~ 그럼 선생님, 다음엔... 기대해요?"


키득키득 웃고는 혀를 내밀며 한 번 더 골리며 나가는 페로. 나는 책상 아래, 꼿꼿하게 발기 되어 있는 자지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럴 때는 현실 내성이 없는 나 자신이 미웠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단말기를 꺼내 들었다. 페로가 갑자기 왜 저러는지 이유를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이름: 페로]

[종족: 고양이]

[성향: 악, 혼돈, 색욕, 불신]

[체력: 4, 인내: 5, 마법: 4, 지혜: 5, 연금술: 5, 성 기술: 5, 성 지식: 5]

[명성: 당신은 뒷세계의 황제이자 타락의 주인으로 이름이 제국 전역에 퍼져 있다.(밤의 황제라는 사실이 발각될 시 선, 질서, 신앙 성향 캐릭터의 호감도 -5 보정, 악, 혼돈, 색욕, 불신 성향 캐릭터의 호감도 +5 보정)]

[밤의 황제]: 당신은 뒷세계의 황제이다. 사창가 입장 절대 권한이 주어진다. 매춘 및 유혹이 가능하며 매력 행동에 보너스가 부여된다. 사창가의 물건을 자유자재로 반입할 수 있다. 섹스 배틀 중 절대 굴복하지 않는다.

[타락]: 당신은 타락의 힘을 지니고 있다. 성 기술로 굴복시킨 상대를 자신의 것으로 타락시킬 수 있다. 타락시킨 상대를 매일 밤 자신의 방에 불러올 수 있다.

[밤의 방랑자]: 당신은 잠을 자지 않는다. 밤에도 자유행동이 가능하며 밤중에 당신의 모습을 목격당해도 당신이 누구인지 구별할 수 없다.

[변덕쟁이]: 당신은 이런저런 변덕이 심하다. 선 성향 행동에 제약이 걸리지 않는다.

[사창가의 주인]: 당신은 전설로만 전해 내려오는 뒷세계의 주인이다. 원하는 대상에게 사창가의 입장 권한을 부여할 수 있다.

[공존]: 당신은 세계와의 공존을 택했다. 타락의 힘이 그 힘을 잃었다.

[성 경험 여부: 동정]


"... 역시 색욕 성향이 문제였나..."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단말기를 꺼 허리춤에 걸었다. 사창가의 주인 아니랄까 봐 색욕 성향을 달고 있는 게 문제였다. 사실상 세계관 최강자라 해도 과언이 아닌 능력치. 그런 존재에게 찍혔다 생각하니 눈앞이 막막하다. 그나마 최후의 선택에서 수인과의 공존을 택했기에 타락할 일이 없어서 망정이지 나는 페로에게 잠시 흥미로운 장난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 그러고 보니 페로도 엄연히 패배 히로인 포지션이었나... 쟤하고 엮이면 무조건 사망이다 보니 히로인이 맞긴 하나 싶지만..."


페로는 데크 교수처럼 루카 플레이 때만 공략이 가능한 캐릭터였다. 단지 루카가 용으로서 각성하기 전에 공략을 시도하면 드론이 돼서 오체분시를 당해 죽고 용으로서 각성한 이후로도 타락의 힘에 침식당해 결국 엔딩 시점에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 그렇기에 페로는 데크 교수처럼 외면당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였다.


"으으... 머리야..."


그때, 현 교수가 막 깨어난 듯 머리를 움켜쥔 채 걸어 나왔다. 하도 술을 들이킨 탓에 어지러운 듯 비틀거리고 있었다.


"아, 현 교수님. 정신 차리셨어요?"

"네... 어찌저찌... 민폐 끼쳐서 죄송... 합니다..."


머리를 꾹꾹 누르며 사과를 건네 오는 현 교수. 그에 나는 옅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페로에 비하면 현 교수의 추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비틀거리며 내 맞은 편에 걸터앉는 현 교수. 그는 자신의 뺨을 한 번 세게 치더니 금방 멀쩡해진 모습으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이런 추태를 보이려고 찾아온 게 아닌데 말이죠..."

"아하하... 괜찮습니다. 그래서, 찾아온 이유가 뭔가요?"

"아, 아까 추태 부리며 말한 것 같은데... 섹스 배틀 이벤트에 참여를..."

"안 합니다."

"... 아니, 그..."

"안 해요."


나는 싱긋 웃으며 거절 의사를 내비쳤다. 내성은 커녕 제대로 해본 적도 없는데 무슨 섹스 배틀이란 말인가. 학생들한테 노예로 부려질 일 있나.

내 완고한 거절 의사에 현 교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설득할 수 없다고 판단한 듯 현 교수는 내 이름 옆에 엑스 표시를 했다.


"뭐, 어쩔 수 없죠. 민 선생의 의사는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봬요."

"네, 다음에 봬요 교수님."


나는 현 교수에게 인사를 한 뒤 현 교수가 나가자마자 책상에 풀썩 엎어졌다. 지친다... 취객 상대에 거물 상대까지 하니 내 정신력이 소모되는 정도가 무척 심했다. 그냥... 좀 쉬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