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마법학원에서의 성장기

(삽화는 소설과 직접적인 관련성은 없음)


(주의!) 찌몸크, 팽유, 백합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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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에서 마법은 여성만이 사용할 수 있다. 왜냐하면 가슴만이 마력을 저장할 수 있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이상한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는 엄연한 사실이자 세계를 지배하는 자연의 법칙이다. 


불과 몇 세기 전 마법의 존재가 밝혀지고 세계의 질서는 완전히 뒤바뀌었다. 잘 훈련된 군대도 단 한 명의 마법사 앞에서 무력하다. 이른바 비대칭전력인 것이다. 아카이아 제국은 마법사들의 힘을 이용해 세계의 패권을 장악하고 마법의 원리로 돌아가는 사회를 만들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도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여성들의 권력은 강해지고,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남성들의 권력은 약해졌다. 아무리 마법사가 아닌 여성이라도 일상적인 마법은 사용할 수 있다. 남성이 아무리 몸을 단련하더라도 평범한 여성조차 이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사회에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남성들은 그저 여성들에게 애완동물처럼 길러지며 마법 문명의 혜택을 누리며 무임 승차하는 처지에 만족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장군님, 정찰대가 무사히 복귀했습니다.”


“음, 보고하라.”


“네, 북쪽 산맥을 우회하여 해안선을 따라 진군하던 적군의 군단이 갑작스럽게 회군하여 마날른으로 향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본대를 이끌고 이 요새를 치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던 건가? 도대체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 것이냐, 아카이아…”


장군이 근심에 빠져 있던 바로 그때, 또 다른 병사 한 명이 다급하게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장군님! 비상입니다! 현재 상공에… 상공에…!”


“…!”


창밖을 내다본 장군을 경악을 금치 못했다. 조금 전만 해도 푸르렀던 하늘은 어느새 소름 끼치는 연분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병사들은 갑작스러운 이상 현상 때문에 겁을 먹고 공황에 빠졌지만, 장군은 그것의 정체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아니, 애써 부정하고 싶었다.


“아크메이지… 설마 이곳에…!”


[콰과과과과광!!!]


그 단말마와 동시에서 하늘에서 수많은 백색 섬광이 쏟아져 내렸다. 장군과 그가 이끌던 군대는 그들이 주둔하고 있던 요새와 함께 그대로 소멸해버렸다. 제국을 건국하는데 지대한 기여를 하고 현재까지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하이 테이블’의 여섯 가문, 그리고 각각의 가문에서 가장 강력한 마법사를 일컫는 ‘아크메이지’는 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마법의 힘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아카이아 제국은 국력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마법사들을 육성하는데 관심이 아주 많다. 이곳 황립 마법학원에서는 전 세계에서 수많은 어린 소녀들을 모아 마법을 익히고 마력의 저장소인 가슴의 성장을 촉진하는 다양한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기숙형 명문 여학교의 교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신분의 귀천이나 빈부에 상관없이, 심지어는 적국의 국민이라고 하더라도 누구든지 받아들인다. 한 해 평균 1만 명의 소녀들이 황립 마법학원의 자랑스러운 정문을 통과해 입학한다. 그리고 그 정문 앞에서 한 소녀가 목놓아 울고 있었다.


“제발 문 좀 열어주세요…! 너무 춥고… 배가 고파요……”


꾀죄죄한 넝마를 걸친 소녀가 눈보라가 몰아치는 광장에서 한참이나 눈물을 흘리며 애원하건만 황립 마법학원의 육중한 정문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정문을 지키고 있는 사람도 없고 길을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다. 바닥에 닿을 정도로 덥수룩하게 긴 갈색 머리칼이 꽁꽁 얼어붙고, 토파즈 색 눈동자는 생기를 잃어가고, 눈꺼풀이 점점 감겨오는 그때, 저 멀리서 노랗게 빛나는 등불이 일렁이며 다가왔다. 등불이 소녀에게 점점 더 가까워지고 등불을 든 여인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괜찮은 거니 아이야?”


“……”


등불이 소녀에게 다가왔을 때는 이미 의식이 끊어진 뒤였다. 여인은 소녀를 조심스럽게 품에 안고서는 눈보라를 해치고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소녀의 얼어붙은 눈꺼풀 사이로 밝게 타오르는 등불만이 보였다. 온몸이 얼어붙어 이미 추워할 수조차 없건만 등불만은 소녀를 따뜻하게 비춰줬다. 등불은 점점 가까워져 마침내 소녀의 눈꺼풀에 입을 맞췄다. 얼어붙었던 눈꺼풀이 녹자 소녀가 여태까지 바라보던 등불, 아니 벽난로가 뚜렷하게 보였다. 


“…?”


“드디어 일어났구나.”


“…!”


소녀는 잔뜩 겁을 먹고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흑발의 여인은 느긋하게 홍차를 마시며 향을 음미할 뿐이었다. 은은한 홍차 향과 벽난로의 따스한 온기가 방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여인은 마시던 찻잔을 내려놓고 새 찻잔에 홍차를 부었다. 설탕을 녹이고 스푼으로 젓는 동안에도 소녀는 얼어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마침내 홍차 한 잔이 알맞게 준비되자 여인은 빵 한 조각과 찻잔을 들고 소녀에게 다가갔다.


“홍차는 좋아하니?”


“…”


소녀는 아무 말 없이 찻잔을 받아 들었다. 순백의 도자기 위에 형형색색의 자수가 새겨진 찻잔, 생전 맡아본 적 없는 향과 색을 가진 홍차, 어떤 동물의 것인지도 모를 모피 양탄자가 깔린 마룻바닥, 알아보지도 못할 문자가 쓰인 책들로 빼곡하게 채워진 책장, 이 모든 것들이 소녀에게는 너무나 낯설었다.


“식기 전에 어서 마셔 보려무나.”


여인은 온화한, 그렇지만 무게감 있는 웃음을 띤 채 소녀를 바라보았다. 소녀의 입술에 홍차가 스며들었다. 쓰다, 따뜻하다, 시다, 떫다, 씁쓸하다, 달콤하다, 향기롭다, 맛있다, 기쁘다, 슬프다, 외롭다, 괴롭다, 도저히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의 격류가 소녀의 미뢰를 스쳐 갔다. 소녀의 눈물이 찻잔에 떨어져 짠맛을 더했다.


“그래. 그것이 너의 감상이구나.”


여인은 소녀가 빵을 다 먹고 홍차를 다 마실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따뜻한 홍차 한 잔에 소녀의 경계심은 한결 풀어진 듯 보였다. 소녀는 찻잔을 내려놓은 뒤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저는… 마법학원에 들어가야만 해요.”


“생명의 은인에게 이름이라도 알려줄 생각은 없는 거니?”


“…마리…에요…”


“피엔나란다.”


통성명을 마친 마리와 피엔나 사이에는 아직 어색함이 감돌았다. 마리는 불안감에 휩싸여 안절부절못하고 있었지만 피엔나의 자수정 빛 눈동자는 조용히 마리를 응시할 뿐이었다.


“행색이 말이 아니구나. 우선 좀 씻는 편이 좋겠구나. 따뜻한 물로 목욕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으면 기분이 한결 좋아질 게다”


피엔나는 마리를 욕실로 데려갔다. 넝마를 벗기자 아직 성장 중인 풋풋한 소녀의 알몸이 드러났다. 마리는 조금 부끄러운지 손으로 가슴과 음부를 가리려 애썼다. 이어서 피엔나가 옷을 벗자 두꺼운 외투에 감춰줘 있던 고급스러운 검은색 레이스로 장식된 브래지어에 감싸진 거유가 출렁거리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 크기만 보더라도 평범한 여인은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당신은…”


“그래, 마법사란다.”


피엔나는 속옷을 마저 벗으며 마리의 몸을 살펴보았다. 이제 겨우 몽우리가 잡히는 아담한 가슴은 초라해 보이면서도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품고 있었다. 


“입학한다면 1학년에 배정받겠구나. 아마 1학년 중에서도 작은 편이겠지.”


“마… 마법학원은 나이에 따라서 학년이 정해지지 않는 건가요?”


마리는 자기 몸을 훑어보는 시선에 더욱 움츠러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피엔나는 마리를 씻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람마다 알을 깨고 나오는 시기가 다른 법이란다. 나이란 실로 숫자에 불과한 것이야. 특히 마법의 힘으로 장생하는 마법사들에게는 더더욱 그렇지. 그래서 마법학원은 각자의 능력과 가능성에 따라 학년을 배정한단다.”


“저에게는… 아직 너무 이른 건가요…?”


마리는 자기 가슴을 내려다보며 읊조렸다. 발등까지 훤히 보이는 광경이 여간 허전한 것이 아니었다. 


“이리 와서 앉아 보려무나.”


마리는 피엔나 앞에 놓인 의자에 등을 보이고 앉았다. 피엔나가 마리의 머리 위에 물을 뿌리자 갈색 머리칼이 따뜻한 물에 촉촉하게 적셔져 갔다.


“마법학원에서는 제 시기에 진급하지 못하면 퇴학당한단다. 게다가 일단 퇴학당하고 나면 다시는 학원의 땅을 밟을 수 없게 되지. 허나…”


피엔나의 뇌리에 정문 앞에서 울부짖던 마리의 목소리가 스쳐 지나갔다.


“… 분명히 그럴 만한 사정이 있는 거겠지… 그렇지 않니?”


“……”


마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노란 눈동자는 우울의 바다 밑으로 침잠하는 듯했다. 머리를 적신 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렇다면 망설이지 마려무나. 가슴 속에 의지를 품은 인간의 힘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강하단다.”


마리의 정수리에서부터 머리칼, 목덜미를 거쳐 점점 아래로 비누 거품이 뒤덮어갔다. 피엔나의 손이 마리의 가슴에 닿았을 때, 마리는 등에서 푹신한 감촉을 느낄 수 있었다. 


“후훗, 내 어렸을 적 추억이 떠오르는구나.”


[몰캉♥]


“아앗…”


그저 비누를 칠할 뿐임에도 마리의 가슴에는 기묘한 감각이 느껴졌다. 모든 힘이 가슴으로 모여들어 그대로 분출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슥슥슥슥슥슥♥]


“그래, 그 느낌을 받아들이려무나.”


“…으읏!♥


온몸을 누비는 피엔나의 손길에 마리는 마치 하늘에 둥둥 떠 있는 것처럼 몽롱한 기운에 취해갔다. 서로의 가슴이 맞닿자 피엔나의 가슴이 마리의 상반신 전체를 뒤덮었다.


[푸릉♥]


“하아… 하아… 너무 부드러워요…”


“꼼꼼하게 씻겨줄 테니 잠시만 기다리려무나.”


피엔나는 비누 하나를 가슴골 사이로 밀어 넣고는 가볍게 주물렀다. 장미 꽃잎을 갈아 만들어 연한 분홍빛을 띠던 비누는 거대한 골짜기 사이에서 압도적인 유압에 짓이겨져 금세 은은한 장미 향을 풍기는 거품이 되어버렸다. 마리는 그 광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해졌다.


[미끌♥미끌♥]


“아프지 않게 살살 해줄 테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피엔나는 가슴으로 마리의 몸 구석구석을 꼼꼼하게 문질렀다. 비누 거품 때문에 미끌미끌한 가슴골은 그 무엇이든 빨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은은한 장미꽃 향기가 전신을 뒤덮자 마리는 마치 꽃밭에 누워있는 듯했다. 꿈을 꾸는 듯한 시간이 지나가자 어느새 마리는 수건을 덮고 벽난로 앞에서 몸을 말리며 과자를 먹고 있었다.


“너에게 어울릴 만한 옷을 골라봤단다.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구나.”


피엔나는 마리에게 하얀색 프릴로 장식된 갈색 드레스를 건네주었다. 고급스러우면서도 그다지 튀지 않는 수수한 드레스였다. 마리가 직접 입어보자 방금 까지만 해도 눈보라 속에서 꾀죄죄한 넝마를 걸치고 있던 소녀라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런 옷은… 처음 입어봐요…”


“잘 어울리는구나. 마음에 드니?”


“네…”


마리의 얼굴에 처음으로 미소가 지어졌다. 피엔나는 흐뭇한 표정으로 새로 단장한 마리를 바라보았다.


“아직은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구나. 오늘 밤은 여기서 자고 가렴. 내일이면 길을 떠날 수 있을 거란다.”


피엔나는 마리를 침실로 안내했다. 침실은 손님맞이용으로 단출하게 꾸며져 있었다. 침대는 포근하고 온기를 머금고 있었다. 마리는 침대에 눕자마자 피로에 지쳐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자 눈보라가 그치고 상쾌한 아침 햇살이 마리를 맞아주었다. 침실 밖에서는 피엔나는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 쓰던 종이를 편지 봉투 안에 넣고 봉인을 찍고는 마리를 불렀다.


“이 추천서를 들고 가면 아마 문제없을 거란다. 물론 추천서가 없더라도 마법학원은 신입생을 받는데 개방적이지만, 아무래도 내가 도울 수 있는 만큼은 돕는 편이 좋을 것 같구나.”


“왜 저를 위해 이렇게까지…”


“글쎄… 그건 네 좋을 데로 여기려무나.”


피엔나는 언제나 그러했듯 온화한 표정으로 마리를 바라볼 뿐이었다. 마리는 추천서를 받아 들고는 길을 나설 채비를 했다. 편지 봉투는 꽤 두툼한 것이 여러 장의 종이가 들어있는 듯했다.


“정말 고마웠어요…”


“언젠가 또다시 만나자꾸나.”


마리가 문을 열고 나가자 황립 마법학원 바로 앞의 광장이 보였다. 갑자기 문이 닫혀 뒤를 돌아보자 문은 온데간데없고 회색 벽돌담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마리가 당황하여 어리둥절한 와중에도 아카이아 제국의 수도 마날른의 아침은 바쁘게 흘러갔다.


“신선한 모유 사세요~ 마나가 가득 담긴 갓 짠 모유에요~”


“자네 그 소식 들었나? 지난주에 루티암 가에서 있었던 결투 때문에 주택 한 채가 통째로 박살이 났었다는 소문이 있어.”


“에잉, 그러니까 결투는 인적이 드문 외곽지역에서만 해야 한다니까… 보나 마나 성질 급한 젊은이들이 즉석에서 싸움을 벌였거나 구경꾼들을 끌어모아서 관람료를 걷으려는 장사치들이 벌인 짓이겠지!”


“허허, 마법으로 복구만 제대로 한다면 아무렴 상관없지 않겠나? 결투는 중대 사항이니 말일세.”


광장은 상인들과 행인들의 말소리로 가득했다. 마리는 정신을 가다듬고 황립 마법학원을 향해 걸어갔다. 정문은 허무할 정도로 활짝 열려 있어 수많은 인파가 드나들고 있었다. 정문 너머로 조금 걸어가자 ‘입학처’라는 간판이 붙어있는 건물이 보였다.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건물 밖으로도 줄이 이어질 정도로 많은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부분은 어머니와 짝을 이룬 신입생들이었다. 


소녀다운 풋풋한 티가 나는 딸, 자기 딸만큼은 마법사의 길을 걷길 바라는 어머니, 작은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조숙한 딸, 고급스러운 드레스와 액세서리로 치장한 어머니, 다른 마법학원에서 전학하러 온 딸, 마법사 혈통의 대를 잇고자 하는 어머니 등 수많은 딸과 어머니의 행렬이 이어졌다. 그 행렬 가운데 홀로 서 있는 것은 마리밖에 없었다. 마리는 꽉 움켜쥔 손아귀에 편지 봉투가 구겨지지 않게 조심해야만 했다.


“다음!”


어느새 대기 줄이 줄어들어 차례가 다가오자 마리는 창구 앞으로 향했다. 접수원은 사무적으로 서류를 요청했다. 마리는 손에 꼭 쥐고 있던 편지 봉투를 접수원에게 건네었다. 접수원은 편지 봉투에 찍힌 봉인을 알아보고는 눈썹을 살짝 들썩였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편지 봉투를 뜯은 접수원은 서류를 훑어보며 업무를 처리했다. 마리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초조한 눈빛으로 접수원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마침내 접수원이 뒤쪽의 문을 향해 손짓하며 입을 열었다.


“출구로 나가서 안내원을 따라가시면 됩니다.”


“다 끝난 건가요?”


“예, 필요한 서류 전부 제출하셨고 바로 기숙사에 입소하시면 됩니다.”


접수원은 귀찮다는 듯 퉁명스럽게 대답하며 마치 빨리 나가라고 재촉하는 것처럼 손짓을 반복했다. 마리가 문밖으로 나서자 교수로 보이는 안내원이 엄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단정한 회색 단발의 교수는 붉게 빛나는 눈동자로 마리의 모습을 훑어보았다.


“흠, 꽤 멀쩡하게 복장을 갖춘 학생이 당일 입소라니, 별일이군.”


“이런 경우가 흔치 않은 건가요?”


“학기 중 전학도 아닌데 굳이 바로 기숙사에 들어가야만 한다면 달리 오갈 곳이 없거나 무언가 사정이 있다는 뜻이겠지.”


“……”


“걱정하지 마라. 학생의 사생활을 캐내는 악취미는 없으니. 대신 이름은 좀 알아 두고 싶군.”


“마리라고 해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네리아 교수다. 앞으로 자주 만나게 될 거다. 학기마다 신입생들을 위한 교양 필수 강의를 개설하고 있으니 말이다.”


마리와 네리아 교수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둘은 어느새 작은 건물 앞에 도착했다.


“이곳이 네가 지낼 임시 숙소다. 일주일 뒤에 있을 개학식에서 학년과 기숙사를 정식으로 배정받을 예정이니 다른 인원들과 문제 일으키지 말고 얌전히 지내도록.”


“네…”


임시 숙소 안은 침대와 서랍만 나란히 놓여있는 단출한 구성이었다. 마리의 자리는 구석의 빈자리로 정해졌다.


“다른 인원들은 다들 나가서 캠퍼스를 구경하고 있는 모양이군. 기본적인 물품은 서랍 안에 준비되어 있을 거다. 가져온 짐은 달리 없는 건가?”


“네…”


“그렇다면 짐을 정리할 시간은 필요 없겠군. 따라와라. 지금 당장 생활하는 데에 필요한 만큼은 캠퍼스에 대해 안내해주겠다.”


임시 숙소에서 나와 언덕을 따라 조금 올라가자 거대한 동상과 분수대가 놓인 중앙광장이 보였다. 아직 학기 중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생이 광장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대부분 강의실은 이 중앙광장을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다. 자세한 위치는 개학하고 수업을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겠지.”


“저 동상은…”


광장 중심을 장식하고 있는 거대한 동상이 마리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거대한 가슴을 가진 여성의 동상이 유두에서 물줄기를 뿜어내는 모습은 자칫 우스워 보일 수 있지만 기묘하게도 경외심을 불러일으켰다.


“마유의 여제, 아카이아 제국을 건국하고 마법의 극치에 도달하여 승천했다고 전해지는 아카시아 여제님의 동상이다. 황립 마법학원에 여제님을 기리는 동상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내 강의에서는 제국의 역사에 대해서도 가르칠 예정이다. 아마 수업 중에 더 자세하게 얘기할 기회가 생기겠군.”


네리아 교수는 동상을 바라보며 경건한 자세로 성호를 그었다. 그러고는 걸음을 재촉하여 다음 장소로 곧장 향하였다. 광장 바로 앞에 있는 거대한 건물에 들어서자 수많은 학생이 식당 끝에서 끝까지 길게 이어진 식탁에 둘러앉아 점심을 먹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다양한 요리들과 식기들이 공중을 날아다니는 모습은 가히 압권이었다. 


“뷔페식이지. 아직 조금 이른 시간이지만 원하는 것이 있다면 마음껏 먹어봐도 좋다.”


“그렇다면 저는…”


마리는 잠시 고민하더니 눈앞에 다가온 홍차 찻잔을 선택했다.


“호오, 꽤 고급스러운 취향이군. 그럼 잠시 티타임을 즐겨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마리 네리아 교수는 잠시의 홍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2학년부터 12학년까지 다양한 학생들이 식당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만큼 학생들의 가슴 크기도 제각각 달랐다. 하지만 대부분 학생은 머리보다 조금 더 큰 크기일 뿐 그보다 더 큰 가슴은 보이지 않았다.


“뭔가… 가슴이 큰 사람들의 크기는 다 비슷비슷한 것 같아요.”


“아, 모르는 건가? 하긴 신입생이니 모르는 것이 당연하지. 오히려 날카로운 통찰력을 칭찬해줘야 마땅하겠군.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건 ‘마력 압축’이라는 기술 때문이다.”


“마력… 압축… 이요?”


“말 그대로 마력을 압축해서 가슴을 작게 만드는 것이다. 마법사의 가슴은 축적하고 있는 마력의 양에 비례해서 커진다. 하지만 한도 끝도 없이 계속 마력을 축적하다 보면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가슴이 커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마력 압축이 필요하지. 그리고 마력 압축은 결투에서 그 진정한 묘미가 드러나는 법이다.”


“결투는 마법으로 싸우는 것 아닌가요? 가슴 크기를 줄이는 거랑 결투가 도대체 무슨 연관이 있는지…” 


네리아 교수는 식당 중앙에 걸린 거대한 시계를 슬쩍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침 적절한 예시를 볼 수 있겠군. 따라와라.”


식당 밖으로 나가자 광장은 관중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빽빽했다. 그 중앙에는 두 마법사가 서로를 바라보며 서 있었고, 그 사이에서 황실 근위대 제복과 비슷한 검은색 가운을 차려입은 사람이 회중시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검은색 컬 머리는 단정하게 정리되어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해가 머리 꼭대기에 떠오르자 마침내 회중시계를 들여다보던 사람이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결투자 쌍방이 진행하는 결투에 대한 입회를 시작한다. 결투자, 소네트 에버그린과 락티아 마키세. 입회인, 알비아 나우어. 시간, 2월 22일 정오. 장소, 황립 마법학원 중앙광장. 규칙, 한쪽이 속행 의사를 밝히지 않을 때까지.”


입회인이 물러서자 두 결투자가 서로를 향해 다가갔다. 뾰족한 귀와 어깨까지 내려오며 바람에 따라 찰랑거리는 금발이 인상적인 마법사는 사파이어색 눈동자로 상대를 경멸하듯 노려봤다. 하얀 레이스와 각양각색의 보석들이 잔뜩 달린 호화스러운 드레스는 입고 있는 사람의 지위와 도저히 숨길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가슴을 더욱 부각하고 있었다.


“변방에서 온 신입생 주제에 먼저 결투를 신청하다니 굉장히 의외였다고? 명예로운 결투가 되길.”


불꽃처럼 타오르는 듯한 붉은 머리카락을 포니테일로 묶은 마법사는 상대의 건방진 말투에 자극받았는지 루비색 눈동자로 상대를 날카롭게 째려봤다. 대부분 면적이 사슬 망사로 이루어진 이국적인 복장은 당장이라도 끊어질 것처럼 팽팽하게 살결을 압박하고 있었다. 외투로 걸치고 있는 가죽 재킷은 그 외설스러운 형상을 전부 숨기기에는 너무 작았다.


“적당히 하다 물러서는 것이 명예라면 네가 먼저 애원하게 해주마!”


마리는 결투를 구경하기 위해 까치발을 세우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엄청 까칠하게 말하네요…”


“결투에서는 기선제압이 중요하다. 대화를 통해 상대의 기세를 꺾는 것도 충분히 유효한 전술이 될 수 있지. 하지만 결국은 본격적인 결투에 앞선 유흥에 불과하다.”


네리아 교수가 대답하는 사이 입회인이 결투 개시를 선언했다.


“결투 개시!”


[찌지지지지직!!!!!!♥♥♥]


결투가 시작되자마자 두 결투자의 가슴이 옷을 가볍게 찢어버리며 팽창했다.


“봐라. 저게 바로 우리 학원에 교복이 없는 이유다. 아무리 황실의 직접적인 재정 지원을 받는다고 해도 교복만큼은 감당할 수 없을 거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학생 개개인이 사비로 마련하거나 마법으로 해결하게 하는 거지.”


“바…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마력 압축을 해제한 것이다. 저렇게 거대한 가슴을 평소에는 마력 압축으로 작게 유지하는 것이지. 마력은 작은 가슴에서 큰 가슴으로 흐른다. 결투에서는 마력 압축을 해제하는 페이스 조절이 가장 큰 관건이다.”


마력 압축을 어느 정도 해제하자 두 결투가 사이의 우열이 가려지기 시작했다.


“후훗, 소문에 비하면 영 부족한걸? 혜성처럼 등장한 루키라고 해서 꽤 기대했는데 말이야.”


“뭐, 소문에는 항상 거짓이 섞이는 법이지.”


“그렇다면 소문의 루키, 맛있게 먹어 치워줄게♥


[푸릉♥]


금발의 결투자가 가슴골을 벌려 적발의 결투자를 통째로 집어삼켰다. 강력한 유압을 젖을 쥐어짜자 두 결투자의 젖꼭지에서 모유가 뿜어져 나왔다. 두 결투자의 모유가 사방으로 튀며 관중들을 달콤한 냄새로 적셨다.


[푸쉬이이이익!!!♥♥♥]


“가… 가슴으로 사람을 통째로 집어삼켰어요!”


“샌드위치는 결투에서 기초적인 기술 중 하나다. 저 학생의 원래 실력을 고려한다면 저건 몸풀기조차 되지 않을 거다. 오랜만에 재능 있는 편입생이 들어왔나 싶었더니 개학도 하기 전에 마력을 전부 빼앗기게 생겼군.”


[꿀렁♥꿀렁♥꿀렁♥꿀렁♥]


결착이 났다고 생각되던 바로 그 순간에 가슴골 사이에서 엄청나게 강력한 진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궁!!!!!!♥♥♥]


“꺄아아아아악!!!”


“도… 도망쳐!!! 이러다 젖가슴에 깔리고 말 거야!!!”


적발의 결투자가 가슴을 급격히 팽창시키며 샌드위치 사이에서 튕겨 나왔다. 땅으로 떨어지는 그 충격은 마치 지진과도 같았다. 결투를 지켜보던 관중들은 짜릿한 역전극에 전율하면서도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되었다.


“이… 이건…!”


“12학년에 수석으로 진급한 우등생이라고 해서 기대했더니 소문에 비하면 영 부족한 것 같은데? 역시 소문에는 거짓이 섞이는 법이네.”


갑작스러운 역전에 금발의 결투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 표정은 패배를 직감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저… 저건 너무 많이 차이 나는 거 아닌가요?”


“이쪽이나 저쪽이나 전력을 다하지 않고 있다. 최대 크기까지 많은 여유가 남아 있기 때문에 저런 급팽창이 가능한 것이다. 그나저나 중앙광장에서 이렇게 큰 결투를 벌이다니, 뒷정리가 꽤 난감하겠군.”


마리는 생전 처음 보는 거대한 규모의 결투에 압도되었지만, 네리아 교수는 별것 아니라는 듯이 여유롭게 반응할 뿐이었다.


“자… 그래서, 계속하겠나?”


“아니, 난 여기까지~”


“…뭐?”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결투 진행을 위해 잠시 자리를 비켜주었던 입회인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결투자 소네트 에버그린의 중단 의사 표시, 속행 의사를 밝히지 않았으므로 현 시간부로 결투를 종료한다. 이상!”


“아니 잠깐, 잠깐! 여기서 갑자기 끊으면 어떡해! 최소한 내 마력을 빨아먹은 만큼은 돌려줘야 할 거 아냐!”


“호호호, 규칙은 규칙이니까 말이야~ 정 그렇게 억울하면 내가 나중에 밀크 포션으로 되돌려 줄게♥ 그러니 앞으로도 잘 부탁해, 락티아?”


“…흥.”


결투가 끝나자 두 결투자의 가슴은 금세 원래대로 수축했고, 관중들은 흩어져 일상으로 돌아갔다. 파손된 분수대의 수리도 마법을 통해 순식간에 끝났다.


“그나저나… 저 둘은 왜 싸운 걸까요? 둘 다 전력을 다한 것도 아니라면 아직 결판이 나지 않은 것 아닌가요?”


“결투는 일반적으로 제한된 무력의 사용을 통해 각자의 의지를 관철하는 의식이다. 결투에서 중요한 것은 이기냐 지느냐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각자의 명예를 위해 투쟁했다는 사실이지. 그러므로 결투가 꼭 죽거나 죽이는 싸움이 될 필요는 없다. 저 둘이 싸운 이유는… 뭐, 당사자들만 알겠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저 둘이 명예롭게 싸웠다는 것뿐이다.”


“흠… 뭔가 어렵네요…”


마리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골똘히 생각해봤지만 명료하게 이해할 수는 없었다. 마리와 네리아 교수가 다음으로 향한 곳은 식당 뒤편의 기숙사 단지였다. 개성 넘치는 건물들이 늘어서 마치 하나의 마을처럼 꾸며져 있었다.


“너도 정식으로 입학하고 나면 이 기숙사 단지에서 생활하게 될 것이다. 오랫동안 지낼 곳이니 금방 익숙해지는 편이 좋다.”


“기숙사라고 하기에는 꽤 자유분방한 분위기인 것 같아요…”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졸업하거나 퇴학당할 때까지 한 곳에서 생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개인의 취향이나 개성이 묻어나오게 되지.”


기숙사 단지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하늘 높이 솟은 굴뚝으로 증기를 내뿜고 있는 거대한 규모의 건물이었다. 그 안에 들어서자마자 마리는 건물의 용도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여긴… 목욕탕인가요?”


“대욕탕이지. 황립 마법학원 최고의 복지 시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국 내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수준 높은 시설을 갖추고 있으니 말이다. 찾아온 김에 직접 이용해보는 편이 좋겠군. 어서 따라 들어와라.”


옷을 벗고 내부로 들어가자 가지각색의 아로마와 빛깔을 뽐내는 여러 온천에서 증기가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었다. 욕탕 안에 몸을 누이고 피로를 풀고 있는 마법사들의 가슴은 물 위에 풍선처럼 떠 있었다.


“뛰어난 마법사는 위생에도 신경 쓴다. 물론 미용 목적도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지. 그래서인지 가슴 마사지는 항상 인기가 좋다.”


“어서 오세요, 네리아 교수님~ 이쪽은 새로운 손님인가요?”


마사지 침대를 청소하고 있던 여성은 네리아 교수와 눈을 마주치고는 반갑게 인사했다. 활발한 몸동작에 주황색 단발머리가 찰랑거렸고, 연두색 눈동자가 번뜩였다.


“신입생이다. 네 실력을 한번 보여줘라.”


“물론이죠! 꼬마 손님을 위한 발육 마사지도 준비되어 있다고요! 혹시 성함을 여쭤봐도 될까요, 손님?”


마리는 조금 당황한 듯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마, 마리라고 해요! 잘 부탁드려요...”


“네, 마리 고객님! 프로페셔널한 테라피스트 그웬돌린 파커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요!”


마리는 안절부절못하며 네리아 교수와 그웬돌린을 번갈아 쳐다봤다.


“혹… 혹시, 값을 치러야 하는 건가요?”


“어?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우린 에스테틱부 소속으로 동아리 활동을 하는 중이거든!”


“동아리요…?”


“수업을 잘 듣는 것만큼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혹시 마사지에 관심이 있다면 우리 동아리에 가입해보는 게 어때?”


“생각해보도록 할게요…”


마리가 마사지 침대 위에 올라가 눕자 그웬돌린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마리의 가슴을 주물렀다. 유두는 건들이지 않고 유륜 주변만 자극하는 것이 마치 애를 태우는 것 같은 야릇한 손동작이었다.


[슥슥슥슥슥슥♥]


“하하하, 간지러워요!”


“어이쿠, 그렇게 움직이면 제대로 마사지를 못 한다고!”


하지만 어제 겪었던 목욕에 비하면 이런 마사지는 마리에게 간지럼에 불과했다. 마사지라기보단 마치 어린 동생을 간지럽히며 놀아주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나는 온천에 몸을 좀 담그고 있겠다. 마사지가 끝나면 내 쪽으로 보내주도록.”


“네, 본부대로 하겠습니다요~”


마리의 웃음소리를 뒤로하고 네리아 교수는 중앙 스파로 향했다. 마리와 네리아 교수가 목욕을 마치고 대욕탕을 빠져나왔을 때는 시간이 꽤 흐른 뒤였다.


“이 정도면 필요한 만큼은 안내해 준 것 같군. 취침 시간만 준수하면 그 외의 시간에는 어떤 활동을 하든지 자유다. 그럼 나중에 다시 만나도록 하지.”


네리아 교수는 그 말을 끝으로 순간이동 마법을 사용해 사라졌다. 다시 혼자가 된 마리는 왔던 길을 되짚어가며 천천히 숙소로 되돌아갔다. 식당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광장에서 사람들이 오고 가는 모습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해가 저물어갔다. 마침내 숙소 앞에 도착했을 때는 취침 시간이 거의 다 되어 갔다. 숙소 안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고 말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누군가 안에 있는 듯했다.


“젠장, ‘잘 부탁해’라고? 웃기고 있네! 그년은 애초부터 나를 놀려먹을 작정이었던 것이 분명해! 나를 구차한 좀생이로 만들어 버렸다고! 나는 그 가증스러운 년을 완전히 짓밟을 수도 있었단 말이야! 그런데 그년이 겁쟁이처럼 도망쳐서 내 명예까지 더럽혀진 거야! 이런 모유 한 병 따위는 차라리 내다 버리는 편이 나아!”


“엥? 버릴 거라면 차라리 내가 마시면 안 돼?”


“안돼, 어린애들이 마시면 분명 배탈이 날걸?”


“저기…”


두 신입생이 대화하던 와중에 마리가 숙소 안으로 들어왔다. 붉은 머리의 신입생은 억지로 분을 삭였고 분홍색 머리칼을 양갈래로 땋은 신입생은 핑크빛 눈동자를 반짝이며 마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와~ 네가 새로운 룸메이트구나? 반가워! 나는 니아라고 해! 너는?”


“마리… 내 이름은 마리야.”


“반가워, 마리! 이쪽은 락티아 언니! 언니는 옆 나라에서 엄~청 유명한 마법사였데!”


“참나… 그걸 유명하다고 해도 되는 건지는 모르겠다… 거의 쫓겨나듯이 떠나온 처지인데 뭘…”


“락티아…? 혹시 오늘 정오에 중앙광장에서…”


“어, 봤냐? 이거야 원 벌써 유명 인사가 다 됐네…”


락티아는 더 화낼 기력도 없다는 듯이 모유가 담긴 병을 탁자 위에 내려놓고는 침대에 드러누웠다. 니아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병을 집어 들고는 눈치를 봤다.


“정말 마시면 안 돼?”


“마셔도 네가 기대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몸이 감당할 수 없는 마나는 그대로 몸 밖으로 배출되거든. 네 몸만 상하고 좋을 건 하나도 없어.”


“그럼 맛만 보면 안 돼?”


“맘대로 해. 어차피 내가 뭐라고 하던 마시고 싶은 거 같은데.”


“야호!”


니아는 그대로 병에다 입을 대고는 모유를 한 모금 들이켰다. 어찌나 진한 맛이 나는지 씹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꿀꺽♥꿀꺽♥]


“우와 이거 진짜 달다! 마리, 너도 한 모금 마셔봐!”


“나… 나도?”


마리는 마지못해 병을 건네받았다. 잠시 마음속에서 갈등하던 마리는 결국 모유를 한 모금 머금었다. 한 방울이 혀에 닿자마자 입안 가득 느끼한 버터 같은 향이 퍼져 나갔다. 어찌나 기름지고 풍부한 맛인지 목구멍 너머로 삼키기 어려울 정도였다.


[츄르릅♥]


“이런 맛이었구나…”


“으음…”


마리에게 모유가 담긴 병을 떠넘긴 니아는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자기 가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니아의 가슴은 조금도 부풀어 오르지 않았다.


“푸흡, 그러게, 내가 뭐랬어?”


“이이익…!”


[탁!]


“어어, 그걸 전부 마셔버리면…!”


락티아의 비웃음에 자존심이 상한 니아는 마리가 들고 있던 병을 낚아채서 남은 모유를 한입에 털어 넣었다. 마리는 안절부절못하며 락티아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꿀꺽♥꿀꺽♥꿀꺽♥꿀꺽♥꿀꺽♥꿀꺽♥]


“어이쿠, 저러다 진짜 배탈 나겠는데 이를 어쩌나?”


[꾸륵♥꾸륵♥꾸르륵♥]


“으윽… 벌써 속이 매스꺼운 것 같아…”


“괜찮은 거야, 니아...?”


“난 분명히 경고했다.~”


락티아는 귀찮다는 듯이 이불을 뒤집어썼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어느새 취침 시간이 다가왔다. 


“끄으응… 벌써 잘 시간이네? 그럼 잘 자, 마리!”


니아는 거북한 배를 움켜쥔 채로 등불을 끄고는 자신의 침대에 누웠다. 마리도 외투를 벗어 두고 침대에 누웠다.


“응… 잘 자, 니아.”


황립 마법학원에서의 첫 하루가 이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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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arca.live/b/dekapai/106054596


야짤 하나 보고 별 생각 없이 배설한 망상글이 


터무니 없을 정도의 개추폭격을 맞아버리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서 진짜 소설로 써와봤음...


첫 화는 대충 이런 느낌이다 보여주는 맛보기 같은 느낌이고


최대한 인플레 억제하면서 오래오래 유기 안하고 연재하도록 노력해보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