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는 이 세상은 어떤 곳인가? 볼테르(1694~1778)는 문제투성이 불지옥이라고 답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고통 속에서 산다. 정치 조직이나 교회, 사회 제도나 풍습 등 모든 것이 부조리하여 사람을 괴롭힌다. 여태 그래 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단기간에 인간 사회가 개선될 가능성은 없으며, 모든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면 체념하고 살라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사회의 문제를 조금씩 개선하며 다소나마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계몽주의의 사조이다. 

사회의 부조리를 이성의 힘으로 해결하자는 계몽주의 사조는 정부, 사법, 경제, 도덕 등에서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계몽주의 사상가 가운데 가장 특출한 인물이 볼테르이다. 당시 사람들이 이미 자신의 시대를 볼테르의 시대라고 표현할 정도로 그는 찬미의 대상이었으며 사상계의 슈퍼스타였다. 

그가 쓴 수많은 책 가운데 지금까지도 널리 읽히는 대표작이 1759년에 출판된 캉디드이다. 이 철학적 우화소설은 고통스럽고 모순에 찬 세계에서 우리가 어떻게 적응해서 살며 또 어떻게 이곳을 개선할 것인가를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그렇지만 캉디드는 전통적인 유토피아주의 경향의 작품과 결이 매우 다르다. 볼테르는 구체적인 이상 국가 계획안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작품 내에서 이상향 이야기는 엘도라도라고 불리는 아메리카 대륙 내 허구의 나라를 소개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야말로 아주 희미한 그림을 그렸을 뿐이다. 

볼테르의 생각에 단번에 이상 국가를 건설하는 혁명적 아이디어 같은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차라리 눈을 낮추어 우리 사는 이곳에서 행복의 가능성을 조금씩이라도 확대해나가는 것이 최선의 길이다. 엘도라도는 그런 여정에서 일종의 길잡이 역할을 하면 족하다. 이처럼 어깨에 힘을 완전히 빼고 눈높이를 대폭 낮춘 유토피아주의 작품이 역설적으로 현실 세계에 지극히 큰 영향을 끼쳤다.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교수 주경철, 어떻게 이상 국가를 만들까?, 78~7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