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근처에서 우연히 발견한 숙소에서 트레이시와 아르셰는 걱정에 비해 편하게 쉬고 있었다. 인적이 드문 장소치고는 꽤 화려한 장식이 가득해, 창문에는 분홍색 커튼이 달려있어 햇빛과 함께 화사한 빛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묶이지 않은 트레이시의 옆머리를 아르셰가 뒤에서 빗질하며 머리를 손질했다.


" 방을 구해서 다행이다. 그치? "


" 응. "


걱정이 가득했던 조금 전과는 다르게 생긋 웃으며 트레이시가 말했다.


" 그치만 공짜는 아니었잖아. "


" 괜찮아, 괜찮아~ "


당연히 공짜는 아니었다. 돈 한 푼도 없이 방을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당연하게도 잡무를 떠맡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루 이틀 정도 하는 것쯤은 별것도 아니라고 생각해 덥석 받아들였다.


" 슬슬 시간이야, 가자. "


" 벌써? 조금만 더 있다 가도 괜찮지 않을까? "


시간에 맞춰 가려는 아르셰의 팔을 트레이시가 살짝 잡아당겼다.


" 원한다면 그렇게 해도 괜찮지만... "


" 알았어~ 알았어~ 가자. "


아르셰의 본심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트레이시는 마지못해 자신에게 건넨 아르셰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묵고 있던 2층 방에서 나와, 계단을 내려와 1층으로 왔다. 가게는 종업원용 의상 같은 걸 준비한 적은 없었기에 입고 있던 복장 그대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트레이시가 빗자루를 들고 오래된 나무로 만들어진 바닥을 쓸어 먼지를 밖으로 털어냈다. 흙과 먼지가 섞여 문 밖으로 서서히 날아간다. 아르셰는 그 뒤를 이어 물걸레로 바닥을 닦아낸다.


" 열심히들 하는구만, 그렇게 열심히 안해도 괜찮은데. "


그런 둘 보다도 한참 늦게 가게 주인이 나타났다. 나이 든 노인의 남성, 그러나 팔과 어깨에는 잔근육이 있어 평소의 몸 관리가 철저한 듯 보인다. 머리는 시원하게 벗겨져 흰색의 수염만이 턱에서 길게 늘어져 목을 가릴 정도다.


" 그런데, 어르신은 왜 여기서 여관을 하고 계세요? 사람도 잘 다니지 않는데. "


바닥을 걸레질하며 허리를 숙인 채로 아르셰가 물었다.


" 물려받았거든. 숙청당한 아들한테. "


" 황제인가요. "


노인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그렇지만 아들놈이 할 때도 그렇게 사람이 많지는 않았어. 지금과 별반 다를 게 없었지. "


" 이런 구석까지 찾아올 사람은 없으니까요. "


" 뭐, 다행인 건 유지비는 딱히 없다는 점이겠지. 가끔 축제나 투기장에 손님이 몰리면 숙소를 잡지 못한 사람 몇 명 오는 정도거든. 그래서 사람도 없으니 심심해서 너희들을 그냥 들여보내 준거란다. "


" 방은 깨끗이 쓰겠습니다. 아, 걸레 다시 빨아 올게요. "


" 천천히 해~ "


화장실로 향한 아르셰와 접시를 정리하는 노인에게는 관심도 주지 않고, 트레이시는 빗자루질을 끝내 원래 있던 장소에 돌려놓았다. 그러나 이미 나무가 오래된 상태라 먼지와 흙을 털어내도 별로 달라 보이지는 않았다.


" 어째선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무로 된 집은 물로 닦으면 안 되는 거 아닌가? "


기억 속에서 어렴풋이 떠오르는 말을 트레이시가 중얼거렸다. 노인도 그 말을 들었는지 허탈하게 웃으며 깨끗하게 닦은 접시를 찬장에 올려놓았다. 다시 아르셰가 도착하고 바닥을 닦고, 두 번 정도 반복했을 때였다.


" 읏! "


그때와 같은 감각이 트레이시의 가슴을 옥죄여왔다. 그와 동시에 가게의 문이 열려 문에 달린 종소리가 딸랑 하고 울렸다.


" 어서오세요. "


가게로 들어온 이는 노인의 대답을 무시하고 뚜벅뚜벅 걸어와 트레이시의 앞으로 향했다.


" 투기장에는 나오지도 않은거네? "


프레이야 란셀은 차가운 눈으로 트레이시를 노려보고 있었다. 황급히 아르셰가 지팡이를 들고 전투를 준비했다.


" 적어도 품위 있게 죽여 주려고 했는데. "


" 여기서 싸울 셈이야? "


" 무슨 상관이야? "


트레이시의 질문에 프레이야는 냉소적으로 답했다.


" 내가 굳이 투기장에서 조용히 지냈던 이유는 너같은 칠드런을 찾아내기 위해서지 내가 착해빠졌기 때문이 아니거든. "


" 저, 저기... 손님이랑은 아는... "


" <관통빙탄> "


프레이야가 손을 들어 올렸다. 손끝에서 얼음의 송곳이 나타나 여관의 주인에게로 날아들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반응하지 못하고, 날아가는 얼음이 꽂히기 전까지 트레이시는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얼음의 송곳은 노인의 몸과 머리를 관통해 그대로 벽에 꽂혔다. 참혹한 시체만이 여관의 바닥에 피를 흩뿌렸다.


" 아는 사이였다면 좋겠네, 기분 더 나쁠테니까. "


" 딱히, 인간이 죽든 말든 상관은 안하거든! "





트레이시가 황급히 아인즈에게 받았던 간이 인벤토리에서 할버드를 꺼냈다. 무게는 없다시피 하지만 연습용으로 받아둔 물건이기에 마법이 부여된 장비는 아니었다. 그 할버드의 손잡이를 길게 잡아 한 손으로 프레이야에게 휘둘렀다. 트레이시는 투기장에서 딱히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기에 프레이야의 눈에는 그녀가 순수한 전사직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근처 어디에도 무기가 존재하지 않아 방심했던 찰나에 공격받아 프레이야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 어디서!? "


레벨차이가 있었기에 본래의 육체 능력이라면 딱히 맞지 않았겠으나 방심한 결과로 할버드는 그녀의 머리를 스쳐 상처를 낼 수 있었다. 머리는 치명적인 부위, 치명타를 허용하는 부위기에 프레이야의 상처는 가벼우면서도 매우 컸다.


" <뇌격>!!! "


뒤로 물러난 프레이야를 향해 아르셰가 뇌격을 날렸다. 번개가 날아들어 프레이야에게 닿았지만 프레이야가 팔을 휘두르자 마치 그녀의 옷깃에 빨려 들어가는 듯 번개가 사라진다.


" 무슨...! "


" <프로스트 오라>!!! "


프레이야의 근처에서부터 냉기가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과거 트레이시가 보았던 코퀴토스의 스킬과 똑같았지만, 냉기가 퍼져나가는 속도와 범위는 코퀴토스 보다는 한참 아래였다. 트레이시는 리자드맨의 말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떠올리며 프레이야에게 달려가던 것을 멈추고 급하게 뒤로 물러섰다.


" 고작 20레벨 대면서 상처를 입히다니 평범한 장비는 아니네... 네 플레이어는 어디에 있지! "


" 너 같으면 말 하겠어? "


" 있긴 있나 봐? <경상치유> "


" 치료하게 놔둘 것 같아! <마법 화살>!!! "


머리에 손을 올려 치유 마법을 발동한 프레이야를 향해 할버드를 들지 않은 손으로 트레이시가 마법 화살을 발동했다. 6개의 화살이 날아가 프레이야를 방해해 치유 마법을 끊을 수 있었다. 프로스트 오라의 효과가 끝남과 동시에 트레이시가 달려가 할버드를 크게 들어 올려 힘차게 내리찍었다. 그러나 프레이야는 그것을 가볍게 팔을 휘둘러 쳐내며 트레이시의 중심을 크게 흔들었다.


" 뭐!? "


" 매직 캐스터잖아!? "


아르셰 또한 크게 놀라 황급히 다시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 네 플레이어는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은 모양이지? 흥! "


할버드를 놓친 트레이시를 프레이야가 공중에서 붙잡아 힘으로 내동댕이 쳤다.


" 레벨에 따른 기본 능력치 차이가 다르다고! 너랑은! "


" 크아악! "


내동댕이쳐진 고통에 트레이시의 입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방어구로 데미지를 감소시키기는 했으나 몸 내부는 절반 정도 만신창이였다. 바닥에 누운 트레이시를 프레이야가 발을 굴려 밟지만 밟히기 직전 트레이시가 몸을 굴려 빠져나온다. 프레이야에 의해 놓친 할버드 근처까지 굴러 다급히 할버드를 잡아 휘두른다. 프레이야는 그것을 간단하게 점프로 피한다.


" <화염구>!!! "


그러나 마치 그것을 노렸다는 듯이 아르셰가 점프한 프레이야를 향해 화염구를 쏘았다. 화염구는 프레이야에게 날아가 커다란 폭발과 함께 그녀의 몸을 태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간단한 화염 정도로는 전혀 피해가 없다는 듯 프레이야는 다시 한번 팔을 휘둘러 화염을 순식간에 일소시켰다.


' 뭐지? 아까부터 마법을 없애고 있어... 마법 화살은 없애지 못했으면서 왜 내가 쏜 뇌격과 화염구만...? '


폭발과 싸움의 여파로 인해 주변의 건물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 소음은 사람이 없는 골목이라 할지라도 주의를 끌기엔 충분했다. 옆 건물에서 사람이 튀어나와 싸움이 일어난 것을 목격한다. 그러나 프레이야는 그것을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신경 쓰지 않고 트레이시에게로 달려 나갔다.


" <눈폭풍>! "


제 5위계 마법인 <눈 폭풍『blizzard』> 이 여관의 안쪽에서 불어닥치기 시작했다. 강한 눈보라가 불어 순식간에 주변에 눈이 쌓이기 시작했다. 가구가 없었다면 이곳이 내부인지 외부인지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눈이 쌓여 어느샌가 발의 3분의 1까지 눈이 덮였다.


" <화염구>!!! "


아르셰의 화염구가 다시 한번 프레이야에게 향하지만 눈 폭풍 속에서 그 위력은 줄어 금세 사그라들고 만다.


" 하아... 하아... "


순식간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마법을 3번이나 사용했기에 아르셰는 MP를 모두 소모한 채로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것이 불어닥치는 눈 폭풍에 의한 추위 때문이라고 아르셰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MP 때문임을 눈치채는 것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 왜... 왜 날 죽이려 드는거야? "


" 난 칠드런이니까, 그리고 네가 칠드런이니까. "


" 이해할 수 없어! "


" 이해할 필요 없어! 하아아압! "


트레이시를 향해 달려와 프레이야는 손을 일자로 세워 마치 기와를 깨는 듯이 손날로 내리찍었다.


" <유수가속>!!! "


느려진 이동속도를 커버하기 위해, 트레이시는 무투기 유수가속을 발동해 종이 한 장의 차이로 그 공격을 피했다. 그리고 피한 자리는 마치 칼로 벤 듯이 눈이 잘려 나무로 된 마룻바닥을 드러냈다.


" 네 플레이어는 칠드런이 위험한데도 널 구하러 오지도 않네! 참 어리석어! "


" 큭! 아버지를 욕하지마! "


" 멍청한 녀석을 멍청하다고 하는게 어때서! 하아아압! "


프레이야의 머리를 향해 할버드를 내던지며 트레이시가 다시 자세를 잡았다. 그것을 아주 간단하게 손날로 쳐내며 튕겨낸다. 할버드는 빙글 돌아 눈에 내리꽂혔다.


" 무기를 내 던지다니 항복이냐! 그럼 죽어라! "


" 흥! "


' 맞다! 이 녀석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무기를 꺼냈었어...! "





할버드를 내던져 시야를 가린 순간에 트레이시는 인벤토리에서 카타나를 꺼내고 있었다. 이미 프레이야가 가까이에 다가온 사이, 트레이시는 카운터 일섬을 먹이기 위해 발도 자세를 취했다.


" 아버지를... 욕하지 마!!! "


내리찍는 손날보다 빠르게, 트레이시의 발도가 프레이야를 베었다.


" 그런...! "


그러나 카타나는 팔에 막히고 있었다.


" 흥, 역시 별것도 아니야. "


가볍게 팔을 휘둘러 자신을 베려던 검을 떨쳐내고 프레이야가 트레이시를 발로 찬다.


" 크학! "


압도적인 능력치 차이에서 오는 충격에 트레이시의 몸이 바닥에 박힌다.


" 트레이시! 앗! 큭! "


프레이야를 향해 달려와 지팡이를 휘두른 아르셰를 프레이야가 가볍게 쳐내 밀쳐낸다.


" 난 칠드런만 죽이면 돼. "


" 하우읏... "


" 어떻게, 얼음송곳을 솟아오르게 해서 한 번에 죽여줄까? 그러면 적어도 고통은 덜할 테니까. "





트레이시의 몸을 밟고 프레이야가 손을 들어올렸다.


" 유언이 있다면 빨리 말해. 그 정도는 들어줄게. "


" 유... 언... 같은거 할 거 같아...? "


" 그래, 없다면야. <관통빙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