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속보

내가 도시와 멀리 떨어진 낙후된 지역에 아버지의 좌천으로 반강제로 끌려가듯 내려간 시골에서 처음으로 마주했던 감정은, 공교롭게도 사랑이었다.


꽃밭에서 홀로 피어난 곧은 소나무처럼 이상하리만치 딱딱히 굳어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그 이상하고 바보 같은 몸짓 하나하나를 보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나오는 이 미소가 바보 같은 모습에서 나오는 내 짓궂은 마음이리라 여겼다.


그러나 내 감정은 사랑이었다.
감히 사랑이었다.
하필, 사랑이었다.


결국 난 아버지에 대한 상부의 오해로 오게 된 지역을 곧 떠나리라는 걸 알면서도 처음 느껴보는 이 아름다움에, 이 반짝임에 나방처럼 날아들어 버렸다.


그러나 그 소나무는 내게 너무나도 올곧게 대꾸했다.
내가 심술궂게 당황할만한 장난과 말을 내뱉으면, 감정을 숨기지도 못한채 부끄러움과 당혹을 얼굴에 모두 내비쳤다.


내 말 하나하나를 모두 자신에게 주워담아 고이 간직하기라도 하듯이 전날에 내가 말한 말과 장난, 심술을 내 진심이라 여기며 의기소침해 했다.


내 바보 같은 속내를 전혀 알아채지도 못하고, 숫기없이 얼굴만 붉혀가며 내게 서서히 자신의 허리를 굽히고 얼굴을 숙이며 벼처럼 내 곁에서 익어갔다. 그를 볼 때마다 그런 게 아니라 해명하려 노력했다.


..아니, 오히려 더 심술궂게 대했다.

바보같이 내 맘을 몰라주는 그가 야속하기만 했었기에.

바보 같은 건 나였음을 모른 채로 나는 익다 못해 썩어가는 너라도 붙잡으려 어떻게든 아름다운 자기에 흠집을 말로 만들어가며 거짓만을 뱉었다. 돌아갈 때는 정말 이르게 찾아왔다.


아버지가 오랜만에 밖에서 술을 잔뜩 드시고 오시며 고주망태가 된 채 내게 자랑스레 외치셨던, 선선해지기 시작하던 여름의 끝자락.


그때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가.


어째서인지 이제 새 장식을 뭐든 간에 사주겠다며 호언장담하시던 아버지의 말은 이상하리만치 귀에 들려오지도 않고 흩어졌다.


하지만 내심 기쁜지 그날 따라 열심히 일을 도우며 집 갈 채비를 돕던 그의 모습만이 눈에 박혔다.


왜, 왜 너는 그리 기뻐 보이는 가?


내가 그리도 싫던가?


눈에 담겨오는 그 미움과 원망이 형태 없이 나를 찔러왔다.


내가 온 후로, 아니 우리가 만난 후로 처음 본 활짝 갠 미소.


새하얗고 고른 이가 더 눈부셔지는 시원스러운 미소.

답답하게 끼어있던 짐이 빠지기라도 한듯, 칙칙하게 껴있던 습한 안개가 새벽녘과 함께 달과 함께 흩어지기라도 한 듯, 맑게 갠 미소.


나는 그에게 서둘러 다가가 당장 내 방에 따라 들어오라 말했다.


머뭇거리며 싫은 티를 내는 그가 더더욱 미워져 평소보다 더 억쎈 목소리를 격양시켜 내며 빨리 오라 재촉했다.


마지못해 날 따르는 어기적거리는 발소리를 들으며 한걸음 한걸음에 미련을 담아 힘차게 걸었다.


이 미련이 여기에 조금이라도 더 선명히 찍히도록.


내 방에 도착하자 무슨 일이냐며 내게 머뭇머뭇 용건을 묻는 그에게 나는 말없이 얼마전에 아버지 몰래 장터에서 샀던 작은 귀걸이 한짝중 하나를 내밀었다. 그리고 말없이 그에게 더 가까이 오라 손짓했다.


경계하듯 슬그머니 다가오는 그에게 주었던 귀걸이를 뺐어들고 귀를 살짝 잡아 이미 뚫려있던 구멍에 든 귀걸이를 빼고 내가 산 귀걸이를 조심히 걸었다. 그리고 보란듯이 남은 하나를 뚫은지 얼마되지않아 붉게 부은 내 귓볼에 걸어두었다.


그는 당황하며 놀래다가 드디어 내가 갈때가 되어서야 내 여태까지의 행동의 내막을 안듯 전과는 비교도 안되게 흐드러지게 피어난 동백꽃처럼 달아오르는 얼굴을 내게 이별 선물로 건넸다.


나는 입을 열었다.


그러나 다시 닫았다.


그러나 다시 입을 열었다.


마음을 다잡고 연 입에서 목소리가 나오도록 목에 힘을 주었다.


"잘지내렴. 귀걸이는 항상 이것만 끼고 있어. 내가 없는 동안 여인이랑 사랑을 맺든 조약을 맺든, 이것만 껴준다면 미련없이 이 괴롭힘도 접을게. 그러니까 이것만 간직해줘. 여태껏 미안했어."


벙찐 표정을 더 보고 싶지가 않아 서둘러 방쪽에 목석처럼 서있던 그를 마당으로 밀어냈다.


나는 그가 어어, 하며 어리둥절하게 내 손에 밀리는 걸 보며 힘을 더 손에 세게 싫고 그를 밀쳤다.


"난 이제 자수 놓으면서 쉴거니까 밥이든 뭐든 용건 있어도 문 열지 마, 물론 말도 걸지 말고"


난 그가 정신을 차릴세랴 후다닥 방으로 뛰어들었다.

내 여름이 끝나가며 끝을 맺은, 내 짓궂고 어리숙한 첫사랑.


여전히 내 귀에 꽂혀있는 그 첫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