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속보

세상에 게이트가 열리고, 몬스터들이 활개 치고, 헌터들이 활약한다... 라고는 하지만 나와는 크게 관련 없는 이야기였다.

게이트가 열리고 한참이 지나도 각성을 하지 못해 평범한 일생을 살고, 노력하고 또 노력하며 살아온 끝에 찾아온 것이라고는 불치병으로 인한 병원 신세였다.


"... 형아, 몸은 좀 어때?"

"글쎄. 뭐, 평소랑 같아. 온몸이 쑤실 듯이 아프고, 머리는 어지럽고. 의사 선생님이 글쎄 오늘을 못 넘길 거라고 하지 뭐야? 하하."

"웃을 얘기가 아니잖아!"


나를 향해 버럭 소리를 지르는 금발의 청년. 녀석의 이름은 강현우. 내 하나뿐인 동생이다. 나와는 달리 뛰어난 헌터로 각성해 활약하고 있는 영웅.

그리고 내가 불치병으로 입원한 이후로는 매일같이 나를 보러 와주고 있었다.


"어째서... 형아마저... 나를 떠나는 건데... 왜..."

"운명인가 봐. 게이트가 열린 날, 부모님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희생하시고, 나는 마나 과다증으로 죽다니. 참 우습지도 않은 운명이네."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죽는 건 상관 없었다. 하지만 현우를 혼자 내버려 두는 것은 마음에 걸렸다. 아직 16살 밖에 되지 않은 꼬맹이였으니까. 무력으로는 현우가 더 강할 지 몰라도 나이가 많은 내가 현우를 지켜줘야만 했는데 내가 이런 꼴이 되어버렸다.

마나 과다증. 게이트가 생긴 이후로 생겨난 불치병이다. 몸 속에 마나가 과도하게 쌓여 그걸 빼내야 하는 병. 헌터의 경우 스킬을 사용해 어떻게 소모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나 같은 일반인은 죽을 수밖에 없는 끔찍한 병이었다.


"가지 마... 제발... 제발 나으란 말이야..."


내가 누워있는 침대에 다가와 내 팔을 붙잡으며 우는 현우. 현우가 붙잡은 팔에서 따스한 기운이 옮겨져 왔다. 현우가 각성한 능력은 치유였다. 아군의 상처를 치유하고 사기를 북돋는 일명 귀족. 하지만 지금만큼은 현우의 능력이 빛을 발할 수 없었다.

현우가 매일같이 찾아와 나를 치유해주어도 결말은 항상 같았다. 헛된 노력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나를 치유하는 현우의 집념에는 이제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나는 힘겹게 손을 들어 올려 현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현우의 금발은 원래부터 금발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검은색에 가까운 갈색이었지만 능력을 각성한 이후로 금발로 변해갔다. 어릴 때는 하도 관리를 안 해서 푸석푸석하던 머릿결은 무척 부드럽게만 느껴졌다.


"제발... 떠나지 말아줘... 형아..."

"... 현우야, 네가 사제라고 했잖아."

"...! 응! 맞아! 내가 해줄 거라도 있어? 응?"


삐이이-

이명이 들린다. 내 육체는 슬슬 한계였다. 어지러움을 어떻게든 누르며 말을 전하는 것도 슬슬 한계라는 게 느껴졌다.


"... 오늘이 마지막인 거... 축복 좀 해줄 수 있어...?"

"... 그러지 마... 꼭 떠날 준비가 된 사람처럼 말하지 마..."

"이 형의 마지막이자 첫 부탁이다. 그냥... 다음 생에는 튼튼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게 해달라고 축복해줘. 그거면 됐어..."


나는 희미하게 웃으며 부탁했다. 시야가 흐릿해진다. 이제 현우의 얼굴을 눈에 담는 것조차 힘들었다. 현우가 울먹거리고 있다는 것만 희미하게 알 수 있을 뿐이었다.


"... 윽... 흑... 신이시여... 당신의 종이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부디... 저의 형이... 다음 생에는... 다음 생에는..."


차마 말을 끝마치지 못한 채 흐느끼는 현우. 그것만으로 좋았다. 굳이 자세히 축복을 해주지 않더라도 내 다음 생을 축복해준 것만으로도 좋았다.


"... 미안... 형이 못나서..."

"... 흑... 늦잖아... 진작에 사과하란 말이야... 왜... 왜 떠날 때가 되서야... 으아아!"


내가 누운 침대에 얼굴을 파묻으며 오열하는 현우. 나는 쓰게 웃으며 눈을 감았다. 슬슬 피곤했다. 의식이 점차 심연 속으로 가라앉을 때, 무언가 알림음이 들린 듯한, 그런 기분이 들었다.


[각성하였습니다.]


*


'... 음... 윽... 머리야...'


뚝, 뚝.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딱딱한 바닥에 머리를 대고 있던 탓에 뒤통수가 욱신거린다. 바닥에 굴러떨어지기라도 했나 불평하며 눈을 뜬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깨어난 곳은 병원이 아니었다. 웬 축축한 동굴. 그 한복판에 버려져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큰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병원이 나를 죽었다고 오인해 동굴 같은 곳에 버려버린 걸까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내가 입원한 병원은 상당히 큰 병원이었다. 화장을 시켰으면 시켰지 시체를 버리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무엇보다, 나는 몸이 아프지 않았다.

대체 무슨 상황이 일어난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아 고개를 갸웃하던 때, 한 통로에서 들려오는 발소리.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쪽을 바라보자 무구를 갖춘 4명이 통로를 통해 이쪽으로 걸어들어오고 있었다. 외형으로 봐서는 나와 같은 한국인인 것 같았다.

이곳이 어디인지 저들은 알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들에게 다가가려는 순간, 나를 발견한 그들이 곧장 무기를 갖춰 들었다.


"전방에 마물 발견! 다들 경계 태세!"

"... 그런데 저거, 왠지 색이 특별하지 않아요?"

"잡아가면 꽤 값을 쳐줄 것 같은데..."

"좋아! 최대한 상처입히지 않게 해치운다!"

"캥?!"


뜬금없이 나에게 무기를 겨누며 달려드는 4인방. 나는 기겁하며 반대편의 통로로 도망쳤다. 갑자기 왜 나를 노리는 건지 모른다. 하지만 가만히 있다간 죽는다. 그것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도망친다!"

"도망치지 말고 얌전히 잡혀라!"

"다들 조금 진정해! 안에 뭐가 있을 줄 알고 뛰어 들어가는 거야!"

"깨갱...!"


나는 필사적으로 달렸다. 하지만 뒤에서 쫓아오는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이대로면 잡힌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강인한 다리(D) 스킬의  LV이 2로 올랐습니다.]


"캥?"

"뭐야? 갑자기 빨라졌어...!"

"추격 중지! 중지! 어차피 공략 계속하면 만나게 될 거야! 무리해서 쫓지 마!"


귓가에 들리는 의문이 알림 소리. 그와 함께 몸이 조금 가벼워진 느낌이 들자 내가 의아해하던 때였다. 다행히 뒤쪽에서 더는 나를 쫓지 말라는 명령이 내려온 탓인지 나를 쫓는 것을 포기한 추격자. 나는 그 뒤로 한참 달려 빈 공터에 도착한 후에야 조금 숨을 돌릴 수 있었다.


'... 방금 뭐였지...?'


나는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아까의 현상을 떠올렸다. 의문의 알림 소리와 함께 가벼워진 몸. 그리고 알림의 내용이 마치 헌터의 그것 같이 느껴졌다.

그런 생각을 한 찰나, 내 눈앞에 푸른색의 네모난 창이 생겨났다.


[강인한 다리(D) LV: 2]

[축복 받은 다리가 신체를 보조한다. 이동속도와 다리 부위의 방어력이 상승한다. LV에 비례하여 상승량이 증가한다.]


'이건...'


헌터들이 갖고 있다는 스킬의 정보창. 이게 왜 눈앞에 떠오른 것인지는 굳이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각성. 나는 각성했다. 어째서 이런 동굴 속에 버려진 것인지는 모르지만 새로운 힘을 얻었다. 내가 각성을 한 데다 건강해지기까지 한 것을 알게 되면 현우가 무척 기뻐할 게 분명했다.

나는 양 주먹을 꽉 쥐며 속으로 환호를 내질렀다. 현우의 웃는 표정을 한시라도 빨리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 전에 나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잘 알아야 했다. 아까 그 사람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내 능력을 파악하는 편이 좋았으니까.

나는 속으로 상태창을 불러냈다. 분명 헌터들은 상태창을 이용해서 자신의 정보를 체크한다고 현우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이름: 불명]

[종족: 최하급 잡종 코볼트]

[LV: 1]

[생명: D] [마나: F]

[근력: E] [내구: C] [민첩: D]

[마력: F] [정신: E] [재주: F]

[보유 스킬]

[액티브]: [스크래치(F) LV: 1]

[패시브]: [성장 증폭(S) LV: MAX], [강인한 다리(D) LV: 2], [금강불괴(D) LV: 1]


"... 캥...?"


현우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 헌터들이 그렇듯이 나 또한 상태창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한 점이 있었다. 내 이름이 기입되어 있어야 할 이름 칸에는 아무런 이름도 적혀 있지 않았고 종족 또한 무언가 이상했다. 코볼트라니. 그럴 리 없었다. 나는 인간이다. 분명 뭔가 오해가 있는 게 분명했다.


'그래그래, 내가 방금 막 깨어나서 잘못 본 거네. 응응, 그렇고 말고.'

"캥, 캥캥. 캥..."


분명 아까 막 깨어난 데다가 갑자기 쫓긴 탓에 피곤해서 잘못 본 것일 거라고 생각하던 것도 잠시. 나는 또 다른 이상한 점들을 인지했다. 첫째로는 나를 쫓던 이들이 나를 보고 마물이라 지칭한 것, 둘째로는 아까부터 손바닥이 복슬복슬하다는 것이며, 셋째로는 아까부터 입에서 말을 하면 개소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게 이상했다.

혼란스러워하며 주위를 둘러보던 나는 때마침 옆에 있는 샘물에 다가가 보았다. 고개를 살짝 내밀어 내 얼굴을 확인하자 샘물에 비치는 푸른색의 개 머리. 헌터 생활을 해보지는 못했지만 이게 코볼트 머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 캥?!?!?!"


이제는 부정할 수도 없다. 나는 무릎을 꿇은 채 복슬복슬해진 손바닥을 내려다보며 절망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