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속보

-안녕.


이 메시지를 보내고 편의점을 나왔다.

그래, 이 정도가 적당하지.


그리고 편의점 문 앞에 종이를 붙였다.

잠시 자리를 비웁니다.


내 머리도 잠시 자리를 비울 예정이었다.

그래서 나는 품에서 담배를 꺼내 들었다.


대충 쪼그려 앉은 다음 세상 다 산 사람처럼 담배를 물었다.


"...이제 뭐하냐."

나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헤어지면 편해질 줄 알았는데 편해지지 않고 되려 공허했다.


"고작 한 달 사귄 건데."

사귄 거라 말하기도 부끄러운 관계였다.

그냥 스파크가 튀었고 나는 그거에 감전된 듯 몸을 맡겼을 뿐이었다.


그러다 일주일부터 집요해졌고,

내게 걱정이라는 이름으로 귀찮게 굴었다.


사실 걱정을 해주는 게 맞긴 했다.

새벽에 일어나서 대충 시간 때우다 아침에 자는 게 일상이었으니 말이다.


"인생 개 박살 났네."

진즉에 박살나긴 했다.


"여기서 뭐해."

"담배 좀 피고 있었습니다. 점장님."

나는 대충 둘러댔다.

그리고 능청스럽게 편의점 문에 붙여 두었던 잠시 자리를 비우겠습니다 종이를 떼어 내려 했다.


"또 헤어졌냐."

"아, 예."

나는 대충 대꾸하고 다시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점장이 따라 붙었다.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자유로운 연애 같은 건가."

"아마도요."


점장의 질문에 나는 귀찮다는 듯 대꾸했다.

이에 점장도 이해했다는 듯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편의점 내부는 조용했다.

침묵만 감돌 뿐이었다.


점장은 돈을 세고 나는 퇴근할 준비를 할 뿐이었다.


"가는 길에 데려다 줄까?"

"좋죠. 인수인계 받을 사람만 제 때 오면요."

그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다급한 표정의 여인은 미안하다는 듯 내게 말을 건넸다.


"언니! 미안해요!"

"어, 그래."

"정말 죄송해요. 오는데 버스가..."

"그래."


나는 이런 말을 하며 그녀에게 종이를 건넸다.

이걸 받은 그녀는 고개를 갸웃했다.


"오후 9 시에 도착한 물품들 다 정리해 뒀다."

"고마워요 언니..."

"난 간다."

"다음에 마실 거 사드릴게요! 기분 푸세요!"

"그래."

나는 이 말을 끝으로 점장을 바라보았다.

점장은 어깨를 으쓱한 뒤 날 뒤따라 나섰다.


그렇게 편의점 앞에 도착하자 흐리멍덩한 느낌의 SUV가 놓여져 있었다.

자동차도 주인을 닮나 싶은 마음이었다.


"오늘은 바로 집에 가는 거지? 저번처럼 술집 가는 거 아니고."


"안 가요. 집가서 마실 거에요."

"집에 술 사놓은 거야?"

"너무 개인적인 질문 같은데요."


내가 선을 긋자 점장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를 뒤로한 채 보조석에 자리를 잡았다.


"아, 미안. 정리를 안해서 말이야."

보조석에는 온갖 서류들이 놓여져 있었다.

그는 대충 서류를 뒤좌석에 옮겨 치웠다.


그렇게 자리가 생기자 나는 보조석에 앉을 수 있었다.


"휴."

"오래 서 있어서 다리 아프지?"

"그렇네요."

남자였을 때도 힘들었는데 여자 몸으로 오래 서 있으려니 고역이었다.

거기다 가슴도 커져서 그런지 더 무겁게 느껴지고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앉으니 좀 살 거 같았다.

오늘은 집에 가서 맥주나 마시고 쉬어야겠다 하며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보조석에 앉았는데 핸드폰을 꺼내는 건 너무 한 거 아니야?"

"수다라도 떨길 바라세요?"

"당연하지."

"우리가 얼마나 친하다고."

"2 년 정도 같이 일했으면 친한 거 아니야?"

점장의 너스레에 나는 핸드폰을 내린 뒤 점장을 바라보았다.

나보다 다섯 살 많은 인간이었다. 그런데 아저씨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안경 좀 바꾸고 머리 좀 다듬으면 젊어 보일텐데 말이지.


"안경 안 바꾼다."

"아, 네."

눈치도 빨라.

그러니까 점장을 하지.


"점장은 좀 어때요."

"나?"

"저번에 맞선 나간다면서요."

"뭐 부모님이 만드신 자리니까. 그냥 간 거지 뭐."

"차였네."

"꼭 그렇게 말해야겠냐?"

"뭐 그런 건 아닌데...사실을 말했을 뿐이에요."

"너 T지?"

"아뇨 엔프피인데요."

"말도 안돼."

"제가 여자가 된 것도 말도 안되는 일이었어요."

내 말에 점장은 떪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고친 점장은 내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아무튼 아까 봤는데 너 이제 혼자 된 거야?"

"왜요? 저랑 사귀고 싶으세요?"

내 말에 점장은 난색을...


"응."

"미쳤네. 제가 방금 전에 원래 남자였다고 말하지 않았나요?"

"그건 2 년 전에 이력서 봤을 때부터 알았어."

"하."

"아무튼 그래서 어떻게 생각해?"

"제가 남자랑 사귄다고요? 미쳤어요? 지금까지 사귄 인간들 전부다 여자들인데?"


원래 남자였던 내 입장에서 남자랑 사귀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육체적으로도 여자끼리 사귀는 게 정상은 아니었다.


말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아무튼 내 머리 속에 혼선이 생겼다.

나는 그런 혼선으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냈고 그 힘든 시간을 파트너, 그것도 여성과 사귀면서 달랬었다.


그런 내게 남자와 사귀는 건 말도 안됐다.


"물론 힘든 거 알아. 그런데 날 생각해서 한 번만 고려 해 주라."

"점장 님이랑 제가 무슨 사이인데요?"

"2 년 동안 같이 일한 사이."

"아니 뭔 말도 안되는..."

"부모님께서 이번 맞선 파토 낸 거 뭐라고 하셨어."

"제가 그걸 알아야 하는 이유가 있나요?"

"당연히 알아야지. 직장 상사의 고민이잖아."

"저 여기서 내릴 게요."

나는 이대로 내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점장은 날 놓아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시간당 오만원 줄게."

"제가 뭔 창녀에요? 사귀는데 오만원을 준다니."

"십만원."

"언제부터 하면 돼죠?"

돈을 많이 주면 해야지.


시간당 10 만원?
이거면 사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다사도 남겠다.


"바로 오늘부터."

"네?"

"지금 바로 우리 부모님 만나러 갈 거거든."

점장이 말에 나는 멍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 * *




로맨스 코미디가 끌리는 날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