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밀레니엄 엔지니어부의 부원. 이름을 밝힐 것도 없는 평범한 학생이다.

 

“키키킥! 이 몸의 위엄이 아주 잘 드러나는군. 역시 밀레니엄다운 퀄리티다!”

“칭찬 감사합니다.”

 

주로 하는 일은 동아리에서 만든 제품의 납품.

택배로 보내도 되는 사소한 것이나, 반대로 기술자들이 직접 출장 와서 설치해야하는 정도의 물건이 아니라면, 종종 이런 식으로 완성품을 직접 배달해주곤 한다.

 

이번에 납품한 것은 홀로그램 동상. 촬영한 물체를 5m 사이즈까지 확대 투영 가능한 홀로그램 장치다.

납품처는 게헨나 학원의 학생회인 만마전. 정확히는 한자로 만마전이라고 쓰고 판데모니움 소사이어티라고 읽는 모양이다. 로망이 느껴지긴 하지만, 조금 귀찮은 표기법인걸.

 

“홀로그램을 재촬영하고 싶으시면 아까 알려드린 대로 이 버튼을 눌러 모델을 다시 촬영하면 됩니다. 움직임까지 재현 가능하니까, 동상 같은 느낌을 내시려면 움직이면 안 되고요. 촬영 데이터는 합쳐서 100시간 분량, 파일 255개까지 저장 가능합니다.”

“좋아! 그렇다면 당장 이 마코토 님의 위엄을 느낄 수 있는 포즈를 255개 촬영하면 되겠군!”

“그 외에 기능이나 주의 사항은…….”

“아니, 설명은 충분하다! 이 현실적인 홀로그램이라면 확실히 건방진 선도부 놈들의 콧대를 누를 수 있겠군! 키키킥!”

 

만마전의 의장은 날카로운 인상과는 딴판인, 호쾌하고 정열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시원시원한 면모가 있어서 납품 과정도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이런 의장에게 미운털이 박힌 게헨나의 선도부는 대체 어떤 인물들일지, 감도 안 잡히지만.

 

“하아. 나머지 설명은 제가 듣도록 하죠.”

 

그때, 곱슬머리 장발의 의원이 대놓고 큰 한숨을 내면서 대화를 이어받아주었다.

 

“아뇨, 말로 설명 드릴 건 사실 더 없긴 해요. 자세한 사항은 이 매뉴얼을 참고해주시면 됩니다.”

“……뭔가요, 이 두께? 매뉴얼이 아니라 백과사전 수준인데요?”

“설명 드린 홀로그램 촬영 및 투영 기능 외에도 음악 재생 기능이나 CCTV 기능, 자폭 기능 등등 넣을 수 있는 기능은 다 넣어두었으니까요.”

“발주할 때는 분명 홀로그램 투영 기능에 대해서만 요청 드렸는데요.”

“비용에 대해선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추가 기능들은 어디까지나 우리 엔지니어들이 넣을 수 있으니까 넣고 싶어서 넣은, 덤 같은 것들이니까요.”

 

기능을 너무 과도하게 넣어서 단가가 안 맞게 되는 점은, 엔지니어부에선 종종 있는 일이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기술력이 되는데 하지 않는다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나 뭐라나.

그래도 그런 추가 기능에 대한 추가 비용을 청구하지 않으면, 납품처 쪽에선 그럭저럭 넘어가는 편이다.

물론 그렇게 발생하는 적자로 동아리 예산을 까먹는 경우도 많긴 하지만……. 세미나에게 잔소리를 듣는 건 내가 아니니까.

 

“원래 기능만 제대로 작동하면 저야 상관없긴 하지만요. 그런데 자폭 기능은 대체 왜 있는 거죠?”

“자폭은 로망이니까요?”

“……네?”

 

그러나 이것에 대해선 역시 이 곱슬머리 의원님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니. 다른 건 다 몰라도 자폭 기능은 필수 중의 필수, 로망 중의 로망 아닌가? 왜 다들 이걸 이해 못하지?

 

“하아, 어쨌든 잘못 건드리지만 않으면 문제는 없는 거죠?”

“네. 매뉴얼만 잘 읽어주시면 됩니다. 우리 부원이 아주 상세하게 적어둔 거라, 그것만 보셔도 충분할 거예요.”

“알겠습니다. 청구하신 금액은 오늘 일과 시간 중에 입금해드릴게요.”

“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수고하세요.”

 

어쨌든 인사까지 나누고 만마전 의사당을 나섰다.

모모톡으로 우타하 부장에게 간단하게 보고를 하면서 시간을 확인해보니, 오후 1시가 거의 다 되어가고 있었다.

밀레니엄행 열차 출발은 오후 3시쯤. 시간 여유가 많이 남기도 했지만…….

 

“배가, 고파졌다.”

 

악마들의 배움터 한가운데서, 보잘것없는 엔지니어 1명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좋아, 점심 먹을 식당을 찾아보자.

기왕 타 학교에 온 김에 맛집을 찾아보고 싶어졌다. 관광 온 기분까진 아니더라도, 조금은 들떠도 되겠지.

 

“팬케이크 같은 것도 좋지만, 오늘은 묵직한 게 당기는걸.”

 

지도 앱을 통해 평점이 높은 식당들을 둘러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나도 모르게 입이 달싹이는 걸 알고 있지만, 의식해서 참을 생각은 없다.

제품을 개발하거나 발명할 시간을 할애하면서까지, 내가 이렇게 타 학교까지 배달을 다니는 이유는 한 가지. 엔지니어링만큼이나 미식도 좋아하기 때문이다.

 

물론 미식이라고 해도, 비싼 식당에서 비싼 식재료로 만든 요리를 즐기는 부류는 아니다.

어디까지나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생활 맛집을 찾아다니는 정도. 물론 맛을 따지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가격이나 양 같은 가성비를 같이 따지는 편이다.

 

“정통 슈니첼이라. 먹어본 적 없긴 하지.”

 

문득 눈에 들어온 높은 평점의 가게.

리뷰 사진에는 큼지막하게 펼쳐진, 빵가루를 입혀 튀긴 고기가 나와 있었다. 분명 돈가스와 비슷한 요리지만, 엄밀히는 다른 요리라고 하지.

마침 위치도 가까운 곳이니 당장 찾아가보기로 했다.

 

“대기 시간은 1시간 반 정도입니다.”

“네? 아, 네…….”

 

그리고 도착한 식당에서 번호표와 함께 받은 안내멘트가 저거였다.

높은 평점만큼이나 많은 손님. 그리고 정반대로 좁은 규모의 식당. 줄이 길게 늘어설 만도 했다.

이 정도로 장사가 잘 되면 가게를 확장해도 되지 않나 싶긴 하지만, 그건 가게 사정에 따라 다른 거겠지.

 

“아직도 1시간이나 기다리는 게 말이 되냐고?”

“그러니까 내가 다른 데 가자고 했잖아.”

“하지만 오늘이야말로 슈니첼을 먹어보고 싶었다고! 앞에서 기다리는 놈들 날려버리면 좀 일찍 못 들어가려나?”

 

그렇다고 해도 1시간 반은 너무 오래 걸린다. 자칫하면 열차 시간을 놓칠 수도 있다.

다른 식당을 알아봐야하나? 아니면 앞쪽의 불량배들이 말하는 것처럼, 누군가 앞줄을 날려버리기라도 한다면…….

 

“우아악?!”

“뭐, 뭐야? 폭발!?”

 

앞에 줄 선 손님들이 아닌, 식당이 폭발로 날아가 버렸다.

 

“……뭐?”

“아아, 또 녀석들이겠네.”

“텄다, 텄어. 다른데 가자.”

 

느닷없는 상황에 얼이 빠진 사이에, 몇몇 게헨나 학생들은 이런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리를 떠났다.

뭐야? 이런 게 게헨나는 일상이야? 아무리 바이올런스하고 와일드한 학교라지만, 이런 게?

그보다 ‘녀석들’이라니?

 

“정말이지 실망스럽군요.”

 

그때, 벽이 박살난 식당에서 연기를 헤치고 나타나는 그림자가 있었다.

 

“슈니첼은 얇게 펴서 튀기는 것. 이렇게 두꺼워서야 그냥 커틀릿에 불과하죠.”

“맞아! 이래선 평범한 돈가스랑 다를 게 없잖아!”

“비너 슈니첼은 소고기를 쓰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비프가스겠지만 말이죠~”

“레몬즙이 아니라 시판 소스가 나오기도 했지. 나는 그렇게 먹어도 맛있긴 하지만!”

 

악마 날개와 꼬리를 가진 은발의 학생과, 그 뒤를 따라 나오는 뿔 달린 학생 3명. 누가 봐도 이 폭발 사고의 범인이 분명했다.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이런 짓을 벌인 거 같은데…….

 

“그렇지만 그렇게 만들어 팔면 학생들 사이엔 인기가 없다고! 젊은 놈들은 두툼한 고기를 좋아한단 말이야!”

“그럴 거면 ‘정통’이라는 타이틀은 뗐어야죠. 안 그래요?”

“고객이 원하는 정통이 그 두꺼운 고기라고! 그게 현실이야! 미식만 추구하는 너희들 미식연구회가 뭘 알아?”

 

식당 주인인 듯한 로봇 남성이 ‘미식연구회’라는 학생들에게 울분을 터뜨리는 것을 보니 조금은 동정심이 느껴졌다.

원치 않게 타협해야만 하는 것이 현실.

엔지니어로서도 항상 최선을 다하는 게 정말 최선이 아니라는 현실을 자주 마주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었다.

 

“저기…….”

“하지만 이 식당의 거짓말은, 그게 끝이 아니죠.”

 

그래서 나도 모르게 끼어들 뻔한 순간, 은발 학생의 반론이 이어졌다.

 

“메뉴에는 분명 송아지 고기를 사용한다고 쓰여 있었지만, 실제로는 늙어서 도축된 젖소의 고기를 사용했죠? 값싸다는 이유만으로.”

“그, 그걸 어떻게!?”

“미식가를 얕보면 곤란하죠. 아카리 씨.”

“장전 완료! 스페셜한 일격, 갑니다!”

“아, 안 돼!”

 

지시를 받은 금발 학생이 발사한 유탄에, 이미 반파되었던 식당은 완전히 초토화되어버렸다.

그렇지만 뭐……. 식품 위장은 당해도 싸지. 생명활동과 연계된 음식으로 사기 치는 건 죄악이라고.

우리 엔지니어부도 조금 위험한 기능을 많이 넣긴 하더라도, 그런 기능이 없다고 거짓말 하지는 않는다.

 

“미안한데 비켜줄래?”

“아, 죄송합니다.”

 

등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몸을 피한 것은 그때였다.

작은 체구에 반비례하는 흉흉한 뿔과 압도적인 위압감.

내가 비키자마자, 거의 자신의 몸만한 크기의 기관총을 겨눈 그녀는 가차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으아앗?!”

“이, 이건 히나 선도부장!?”

 

살벌한 기관총 탄막을 온몸으로 맞은 미식연구회는 비명을 질렀다.

아무래도 내 옆에 있는 무표정한 인물이, 바로 그 만마전 의장이 이를 가는 선도부의 부장인 모양이었다.

 

“역시 또 너희였구나. 귀찮게 하지 말고 얌전히 투항하도록 해.”

“어머, 히나 씨가 직접 나설 줄이야. 이거 영광이군요.”

“그런 말 듣는다고 누가 정말로 얌전히 잡혀줄 거 같아?”

“뭐, 반항하면 벌집이 되는 건 우리겠지만 말이죠.”

“벌집은 먹고 싶어도 벌집이 되는 건 싫어! 빨리 도망치자!”

 

그런 선도부장을 상대로 여유로운 건지 아닌지, 미식연구회는 만담 같은 소리를 하며 골목 구석에 세워진 트럭으로 뛰어갔다.

어째선지 트럭에는 ‘급양부’라고 써있는 거 같지만.

 

“하아. 나한테서 벗어날 수 없는 걸 알면서도 이런단 말이지.”

“우왓!?”

 

트럭이 달리는 걸 보고 한숨을 내쉰 선도부장은, 그 트럭에 맞먹는 속도로 내달리며 추격하기 시작했다.

바로 옆에 있던 나는 달릴 때의 돌풍에 반사적으로 놀라고, 순식간에 벌어진 일련의 소동에 한동안 멍하니 서있었다.

방금 전까지 내 옆에 서있던 게 엄청나게 무시무시한 사람이었다는 걸 새삼 떠올리니 소름이 돋았다.

 

“오늘은 미식연구회가 도망칠 수 있을까?”

“잡힐지 안 잡힐지 내기할래?”

“선도부장이 직접 나섰는데 무슨 내기야. 몇 분 만에 잡힐지 내기하면 모를까.”

 

반면 게헨나 학생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저마다 이야기하며 흩어지기 시작했다.

……역시 여기선 이런 일이 일상인 모양이었다.

 

“다른 가게나 찾아봐야겠네.”

 

나도 정신을 차리고 다시 점심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지도 앱으로 이런 저런 가게를 살펴봐도 썩 눈에 들어오는 게 없었다. 아까 고기 요리를 먹기로 결심한 것 때문에 선택의 폭이 좁아진 느낌이었다.

 

“점심 급식 반찬이 미니 돈가스……. 평점이 왜 이래?”

 

도중에 게헨나 급식실의 리뷰도 눈에 들어오긴 했지만, 어째선지 리뷰 평점들이 굉장히 극과 극으로 오락가락 하고 있었다.

미식이 어쩌고 하는 건 아까 그 연구회의 짓이라고 쳐도……. 우엉볶음이 도망쳤다는 0점짜리 리뷰는 대체 뭐지?

 

“아니, 굳이 급식을 얻어먹는 건 아니지.”

 

기왕 발품을 파는 거라면 제대로 된 식당을 찾고 싶다고.

 

“……응?”

 

그렇게 아무렇게나 걸어 다니며 지도 앱을 들여다보던 중, 스마트폰 화면이 아닌 다른 것이 나의 시선을 붙잡았다.

작고 허름한 경양식당. 지도 앱에서도 위치 정보만 나오고 리뷰는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간판에서부터 느껴지는 연륜과 은은히 풍겨 나오는 음식 냄새는 나의 직감을 자극하고 있었다.

이곳은 분명히 숨겨진 맛집이라고.

 

“어서 오세요. 혼자신가요?”

“아, 네.”

 

가게에 들어서자 나이 지긋한 고양이 수인 웨이터가 맞아주었다.

올드 하지만 정갈한 인테리어. 나이 든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거의 만석인 내부. 바깥에서 맡던 것보다 훨씬 식욕을 자극하는 음식 냄새들.

당첨을 고른 게 분명하였다.

 

“4인용 테이블만 하나 남았는데, 괜찮으실까요?”

“괜찮습니다.”

“그럼 이쪽으로.”

 

자리에 앉고 보니 꽤나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없던 어릴 적의 추억마저 느껴질 정도라고 할까.

 

“메뉴는 여기 있습니다.”

“으음……. 오므라이스 돈가스 디럭스 세트로 주세요.”

“디럭스 세트는 양이 좀 많은데 괜찮으시겠어요?”

“네, 지금은 배가 좀 많이 고프네요.”

“알겠습니다. 국은 스프와 된장국이 있는데, 어느 쪽으로 드릴까요?”

“된장국으로 주세요.”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후우…….”

 

주문을 받은 웨이터가 물러가고 나서, 나는 한숨을 내쉬며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더운 날 걸어다니면서 올라간 체온은 그래도 쉽게 내려가지 않아, 셔츠의 가장 위의 단추도 하나 풀어버렸다. 어차피 구석 자리라 누가 볼 일도 없을 거고.

 

확실히 사진으로 본 디럭스 세트는 내가 평소에 먹던 양보다는 많은 편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오래 걸어다닌데다 음식 냄새로 식욕을 자극당한 탓인지, 지금이라면 그 정도는 전부 먹어치울 수 있을 거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 지금의 나는 육식이 하고 싶은 기분으로 충만한 상태. 밥 배와 고기 배는 따로 있다고 선언할 수 있을 정도였다.

 

“죄송합니다, 손님. 혹시 다른 분과 합석하셔도 괜찮으실까요?”

“네?”

 

그때, 웨이터로부터 예상치 못한 질문을 들었다.

 

“지금 오신 분도 1명이시라는데, 싫으시다면…….”

“아뇨, 괜찮아요. 어쩔 수 없죠.”

 

솔직히 말하자면 내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합석을 받아들였다.

혼자 조용히 먹는 게 취향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4인용 테이블을 혼자 차지하고 있는 상황.

나처럼 미식에 이끌려 찾아온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쌀쌀맞게 내칠 수가 없었다.

 

“이쪽에 앉으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찾아온 것은 말쑥한 제복 차림의 어른.

수인도 로봇도 아니지만 헤일로도 없는 별난 어른이었다.

 

“나폴리탄 스파게티. 그리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

 

맞은편 손님의 주문을 받은 웨이터가 떠나자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빨리 내가 시킨 음식이나 나왔으면 좋겠는데…….

 

“날이 많이 덥지?”

“네? 아, 네. 그러네요.”

 

설마 하던 상대방 쪽에서의 선제공격!

생긴 것과는 다르게 의외로 사교적인 성격의 인싸인 건가?

사무적인 것을 빼곤 낯선 사람과의 대화가 서투른 나로서는 곤란한 상대였다.

 

“이런데서 학생을 만날 줄은 몰랐네. 아저씨들 취향의 식당이라고 들었거든. 혹시 단골이라던가?”

“아뇨, 저는 그냥 지나가던 길에 들른 거예요. 애초에 게헨나 학생도 아니고.”

“그래?”

 

왜 굳이 그런 걸 묻는 거지, 이 어른은?

일단 아무렇지도 않은 척 대답하고 있긴 했지만, 벌써부터 속에서 거부반응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어째서 나 같은 선량한 아싸에게 이런 시련이 내려지는 거야? 나는 그저 조용히 혼자 밥을 먹고 싶었을 뿐인데.

 

“아, 참. 자기소개가 늦었네. 나는 샬레의 선생이라고 해.”

“아, 네. 저는 밀레니엄 엔지니어부의…… 서, 선생님이요!?”

 

예상치도 못한 상대의 정체에 나는 화들짝 놀라, 하마터면 제자리에서 펄쩍 뛸 뻔했다.

학교 간의 경계를 초월하여 학생들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연방수사 동아리 샬레의 선생님이라니!

그런 거물을 눈앞에 두고 식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위장이 쪼그라드는 거 같은 기분이었다.

 

“하하, 미안. 놀라게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아뇨, 아뇨. 저야말로……. 우타하 부장이랑 다른 부원들한테서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선생님과 다르게, 나는 아직 당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앗……!”

 

오히려 더위 때문에 앞섶을 풀어헤치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눈치 채서, 당황스러움 이상의 부끄러움이 물밀듯이 몰려오고 있었다.

설마 아까 날씨가 덥다고 말씀 하신 게, 이거 때문이었다면……?

황급히 단추를 잠그는 동안 심장이 터질듯이 뛰었다.

 

“괜찮니? 얼굴이 빨간데.”

“괘, 괜찮아요. 그냥, 날이 좀 더워서.”

 

더위 이상으로 맥박이 치솟아 죽을 지경이라, 그 대답은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나의 치태가 드러나는 것은 아직 끝나지 않았었다.

 

“주문하신 오므라이스 돈가스 디럭스 세트입니다.”

“우와…….”

 

먼저 주문한 내 음식이 나오자, 나는 반사적으로 소리를 내었다.

혼자였다면 감탄하는 소리가 나왔겠지만, 웨이터에겐 죄송스럽게도 경악에 가까운 소리였다.

명백하게 사진보다 훨씬 많은, 2인분은 거뜬히 넘는 양이었던 것이었다.

 

“나폴리탄과 아메리카노도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음식은, 평범한 1인분.

그러나 그것이 산처럼 쌓인 내 음식과 비교되면서, 내 음식이 범상치 않은 분량이라는 것을 확인사살 시켜주고 있었다.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선생님에게 ‘많이 먹는 여자’라는 첫 인상이 박히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주문한 음식을 남기는 추태를 부리고 싶지도 않았다.

 

“크윽……!”

 

무엇보다, 맛있다!

포근한 반숙 계란으로 뒤덮인 케첩라이스와 진한 데미그라스 소스의 조화!

두툼하고 육즙이 가득한 돈가스와 느끼함을 잡아주는 머스타드 소스!

 

딱 예상했던 대로의 맛이지만, 예상했던 대로 엄청나게 맛있잖아! 남기기 아까울 정도로 맛있다고!

이럴 때 어떤 음식이라도 갓 만든 상태 포장할 수 있는 우타하 부장의 발명품이라도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뭐, 그건 결국 진공포장 기능 오작동으로 폭발한 실패작이었지만.

 

“…….”

 

어쨌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도 이걸 남겨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해결되지 않는 고민이 나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음식을 먹으며 맛에만 집중하고 있지만……. 다 먹고 나서 고개를 들었을 때 선생님이 어떤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을지, 상상하기조차 두려웠다.

 

“혹시 미안한데.”

“에?”

 

그래서 입에 밥을 한가득 물고 있을 때, 여태 말없이 식사하던 선생님이 다시 말을 건 것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혹시 돈가스랑 오므라이스 좀 나눠 먹을 수 있을까? 사실 뭘 먹을까 고민하던 중에 나폴리탄을 고르긴 했는데, 역시 돈가스랑 오므라이스도 먹고 싶어져서.”

 

순간, 나의 머릿속에 전류가 흘렀다.

선생님이 나눠먹으면 그만큼 내가 먹는 양이 줄어들잖아?

그러면 이 많은 걸 다 먹어치우는 대식가라는 인상이 새겨질 일도 없는 거 아닌가?

게다가 음식을 남겨서 이 고귀한 식당에게 죄송할 일도 없다. 그야말로 일석이조……!

 

“그럼요! 얼마든지 가져가세요!”

“고마워. 그럼 일단 돈가스 한 조각…….”

“두 조각, 세 조각도 괜찮아요! 저, 사실 그렇게 많이 먹는 편은 아니라!”

“하하, 알겠어. 그래도 어른이 학생이 먹는 걸 다 뺏어먹을 수는 없으니까.”

 

그렇게 절반 가까이를 선생님에게 드리고 나니 마음이 너무 편해졌다. 음식이 꿀떡꿀떡 잘 넘어가는 건 물론, 선생님과의 대화도 술술 풀릴 정도였다.

밀레니엄에 대한 이야기, 다른 학교에 대한 이야기, 선생님이나 나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까지도.

혼자 밥 먹는 걸 선호하는 나로서는 정말 드물게, 화기애애한 이야기꽃을 피우며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잘 먹었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얻어먹은 게 있으니까, 계산은 선생님이 할게.”

“네? 아니에요! 제가 먹은 건 제가 내야 맞죠.”

“처음 만난 기념으로 쏘는 거라고 생각해. 이럴 때 아니어도, 학생이라면 얼마든지 한끼 대접해줄 수 있지만.”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헤헤.”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아직 그래도 열차 출발 시간까진 약간 여유가 있긴 했다.

 

“선생님, 혹시 괜찮으시면 디저트는 제가 사도 될까요? 간단하게 아이스크림이라도…….”

“미안, 지금은 배가 많이 불러서. 바로 업무 보러 가야하는 것도 있으니까, 다음 기회에 부탁할게.”

“네. 그럼 다음 기회에 봐요.”

 

그렇게 선생님과 헤어지고 나서, 편의점에 들러 아이스크림 하나를 샀다. 디저트 배를 따로 만들지 않아도 뱃속으로 들어갈만한 가벼운 것으로.

 

“하긴, 선생님은 이것도 안 들어갈지도 모르겠네.”

 

내가 시킨 것의 반 정도를 선생님이 드셨으니, 나는 거의 1인분을 먹은 반면 선생님은 2인분을 드신 셈이었다.

일이 많은 어른이라 많이 드시는 건가 싶었지만, 아까의 반응을 생각하면 역시 평소보다 과식하신 느낌이었다.

 

“혹시…….”

 

곱씹을 것도 없는 아이스크림을 입속에서 굴리며 떠올린 결론은 하나였다.

선생님이 음식을 너무 많이 시켜 부끄러워하는 나를 배려해주신 게 아닐까.

 

“…….”

 

결국 선생님에게 속마음을 읽혔다는 것을 깨닫자, 다시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아까처럼 단순히 수치스러운 기분만 드는 것은 아니었다. 조금은 다른, 가슴이 가려운 듯한 기분도 섞여있었다.

 

“선생님, 다음엔 엔지니어부에 안 오시려나……..”

 

나는 나답지 않은 혼잣말을 하며, 다시금 기차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