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에 요약 있음)



일본에서 얼마 전 ‘월요일의 타와와’란 작품이 신문에 연재되기 시작했다. 해당 작품은 성인물은 아니지만 교복을 입은 여성이란 점 탓에 일본 안팎의 페미들이 성적대상화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이 사건은 정치권에 흘러들 정도로 커졌고 4월 15일 허핑턴포스트에 따르면 UN Women에서 해당 만화가 개제된 신문에 항의했단 내용이 나온다.


사실 이렇게 일본 서브컬처 문화가 비난을 받은 건 새로운 게 아니다.  일례로 2015년에도 아래와 같은 기사가 쓰인 적도 있었다.


유엔 특별보고관이 아동을 성적 대상화한 일본의 만화나 미성년자 성 상품화가 심각하다고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2일 파악됐다.

 

모드 더부르 부퀴키오(71·여) 유엔 아동 인신·성매매 문제 담당 특별보고관은 최근 교도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세계적으로 예를 찾기 어려운 과격한 아동 포르노 만화가 일본에서 유통되고 있다며 이를 금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부퀴키오 특별보고관은 일본의 아동 성매매이나 포르노에 관해 "피해자 지원 시설 등을 방문해 알게 된 것은 아동에 대한 성적 착취에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후략)

연합뉴스, 유엔 특별보고관 '日 아동음란만화·성 상품화' 우려 표명

https://www.yna.co.kr/view/AKR20151102203400073 


이게 의미하는 바는 간단하다. 아청법 논란은 국내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며, 일본 역시 조금 자유로울 뿐 절대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일례로 트위터에선 ‘fanpol(fandom + police)’란 유저들이 아청법 논리를 들이밀며 작가를 린치하는 사례가 보고되고, 창작물 후원 사이트 페트리온은 비슷한 논리로 아예 운영진들이 직접 작가를 제재하기 시작했다. 네덜란드도 19년에 법이 바뀌었고, 성인 만화 사이트 E-Hentai가 결국 서버를 옮겼다. 

 

가끔 필자는 비관적인 전망을 종종 한다. 언젠가 이러한 추세가 심해져서, 그들 논리대로 일본식 만화 그림체 자체가 아동 포르노처럼 낙인찍히는 무서운 현실 말이다. 그리하여 미국 등도 이런 그림체를 검열하는 법을 만들거나, 구글 등이 솔선수범해서 이들을 단속해, 만화 애니메이션 문화가 완전히 죽는 것이다. 쓸 때 없는 걱정일지 모르나, 항상 주시하고 대비할 필요가 있다. 언제 우려가 현실이 될지 모르니 말이다. 



그래도 일본 쪽은 그렇게 쉽게 무너지진 않아 보인다. 이미 2010년대에 일본판 아청법인 일명 ‘비실재 청소년’법이 강한 반발에 부딪혀서 대폭 수정된 적이 있다. 당시 중견만화가들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일제히 반대 목소리를 내었고, 이를 따라 젊은 만화가들과 시민단체들도 합세해 결국 성공적으로 저지하였다. 


최근에도 다시 만들려는 움직임이 보이지만 쉽게 통과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현 사건에선 오타쿠 문화를 지키는데 관심이 있는 현직 의원인 야마다 다로가 위와 같은 내용을 올렸고, 만화가 출신 정치인이자 일본만화가협회 소속인 아카마츠 켄 역시 성명을 내는 등 적극 대처를 하고 있다.


이런 일본을 보며 가장 답답함을 느낄 사람들은 우리일 터다. 한국도 2012년부터 반발이 생겨났지만 아청법 조항에 ‘명백히’라는 말만 들어갔을 뿐 ‘표현물’이 빠지지 않았고, 13년 후에도 토론회를 여는 등 노력을 했지만 별 성과가 없었다. 15년도에 헌재에서도 합헌 판결이 났고, 5년 뒤엔 N번방 사태로 벌금형조차 사라졌다. 문제가 뭐였을까.


일단 국내법에 표현물이 들어간 건 2011년 9월이었지만 당시 누구도 이를 공론화하지 않았다. 법은 국회 의결을 거치기 전에 내용이 대중에게 공개되지만, 그 누구도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그러다 12년에 단속 강화 소식이 들리고서야 부랴부랴 개정 여론이 일었다. 또한 16년 '클로저스 성우 사건'에서 많은 만화가들이 레디컬 페미니즘에 동조하고 있음이 밝혀진다. 레디컬 페미니즘은 기본적으로 성적대상화를 빌미로 검열을 옹호하는 사상이다. 즉, 13년까지 적극적인 반대 목소리를 내던 그들이 자기 신념을 뒤집은 셈이다. 여기에 법 개정을 공개적으로 가장 강하게 촉구한 남성연대 대표 성재기는 13년에 사망하기까지 하였다. 종합하면 대응이 늦었고, 반대 여론의 구심점이 사라졌으며, 반대를 외쳐야 할 사람들이 알량한 사상에 물들어 찬성표를 던지기 시작했다. 일본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길을 걸은 것이다.


환경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일본은 이전부터 데즈카 오사무나 나가이고 같은 작가들이 만화를 탄압하려는 세력에 맞선 덕에 만화계가 나름 파워가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만화 시장이 작고 2010년대 초반 노컷 운동을 빼면 검열 기관의 횡포에 당하기만 하였다.


이래저래 검열의 철폐는 산 너머 산이다. 가장 확실한 건 우리가 직접 각종 활동을 벌이는 것일 게다. 하지만 누구도 섣불리 나서질 못한다. 그런 것에 시간을 부을 여유는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안티포르노 페미니즘의 나라에서, 마녀사냥을 당할 각오는 더욱 없다. 하지만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창당이나 선거 출마 같은 거창한 것까진 아니더라도, 우리 스스로 조금이나마 어떻게든 문제 해결에 힘 쓸 필요가 있을 것이다.

 

- 요약 -

  1. 아청법 관련 논란은 사실 해외에서도 똑같이 진행 중
  2. 노파심이지만, 최악의 경우 모에 그림체 자체가 금기시될 수 있음
  3. 일본에선 이미 한 번 막은 적 있어서, 쉽게 휩쓸리지 않을 거라 전망
  4. 한국은 일본이랑 사정이 완전히 달라서 행복회로 굴리면 안 됨
  5. 힘들더라도, 모두 미래 재난에 뭉쳐서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