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속보

“락 밴드해볼래?”

 

어느 화창한 목요일 낮이었다. 교실에서 책을 읽던 내게 아영은 뜬금없는 말을 내뱉었다. 

 

“갑자기?”

“응, 너 기타칠 줄 알잖아.”

 

이게 웬 헛소린가 하고 생각해보다가 최근 아영이 락에 빠졌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 밴드 이름이 옐로 데이였던가. 

 

“넌 악기 못 다루잖아. 처음부터 배우게?”

“응. 난 보컬하고 넌 기타치고. 드럼은 사람 구하면 되겠다.”

 

원래부터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던 녀석이었는데 오늘은 그 강도가 더 심했다. 드디어 망상증이 왔나.

 

“연습장은 학교 밴드부실을 빌리면 되고, 곡은 쉬운 것부터 천천히...”

“난 아직 한다고 말 안 했어.”

“하라면 그냥 해.”

 

아영은 내 옆구리를 콕콕 찔러댔다. 내가 부탁을 차마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인걸 알고선 일부러 저러는 것이었다. 

 

“하, 연습은 어떻게 하게? 부실은 말만한다고 빌려주니? 그리고 드럼 공고는 낸다고 바로 오니? 그리고 기타가 보통 비싼 게 아닌데 부모님이 사주실까?”

 

하나하나 그녀의 의견에 반박했지만 그녀는 ‘그건 알아서 되겠지.’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공무원 뺨치는 탁상공론에 벌써부터 불안감이 몰려왔다. 

 

“연습은 다음주 어때?”

“네가 알아서 다 준비하면 고려해볼게.”

 

아영은 알았다고만 했다. 그렇게 우리 밴드는 결성되었다.

 

** 

 

다음 주 그녀는 어디서 구했는지 빨간 전자 기타를 하나 구해왔다. 듣는 바로는 중고로 싸게 구했다고. 현을 치자 뭉툭한 소리가 났다. 무언가 이상했다. 내가 OOOTUBE에서 본 전자기타와 달리 소리가 너무나 작고 대충 기타줄 퉁기는 소리만 났다.

 

“내가 듣던 전자 기타는 이런 소리가 아니었는데?”

“기분탓이겠지.”

 

그렇게 한 10분정도 치고 나서야 전자 기타는 엠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아영은 절망했다. 

 

“됐어 그럼 부실은 어떻게 됐는데?”

“아, 그게...”

 

아영은 머쓱하게 웃을 뿐이었다. 

 

“안된대.”

“왜?”

“다른 사람들이 이미 쓰고 있다고.”

 

아무튼 하나하나 손 많이 가는 타입이었다. 일은 벌려 놓고 수습은 안 하는 녀석. 내가 알던 그대로였다. 

 

“괜찮아. 분명 부탁하면 언젠간 부실도 구하고 그렇겠지.”

“그러다 늙어 죽겠다.”

 

나는 그녀의 손에서 기타를 낚아챘다. 

 

“가자.”

“어디로?”

“부실이 안 되면 스튜디오라도 빌려야지 뭐.”

 

나는 기타를 등에 멘 채 복도를 걸어갔다. 은근히 무게감이 있었다. 

 

“어디로 가게?”

“글세. 교무실이랑 교무실은 다 들러보지 뭐.”

“정말?”

 

아영의 얼굴에 화색이 띠었다. 단순한 녀석이었다. 

 

“나 아니면 어떡하려고 그러냐.”

“폼 잡기는.”

 

뭐가 폼 잡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싸우기 귀찮아서 그러려니했다.

 

** 

 

“그래서 부실 하나를 빌리고 싶다고?”

 

대체로 선생님들은 이런 반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짜고짜 찾아와 교실 하나를 빌려달라고 해도 나라도 저런 반응이었을 것이다. 그건 지금 우리를 대면한 1학년 담당 선생님도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그것도 밴드한다고 교실 하나를 통째로 빌린다고?”

“네.”

“하아.”

 

선생은 머리에 손을 얹었다. 얼굴엔 귀찮다는 티를 팍팍 내면서.

 

“아무리 그래도 다른 공부하는 애들한테 방해되지 않겠니?” 

“최대한 방해되지 않게 할게요!”

 

아영이 끼어들었다. 쓸데없는 행동이었다. 

 

“방해 안 될 리가 없잖니? 학교에 갑자기 밴드부실을 마련해주긴 힘들어. 이제 가라.”

 

이걸로 4번째 거절이었다. 충분히 예상한 일이었다. 다만 아영은 이 사태를 받아들이지 못한 듯했다.

 

“선생님 제발 부탁해요.”

 

아영은 허리를 푹 숙였다. 쓸데없이 열정만 넘쳤다. 빈다고 다 해결되면 세상에 법이 어딨겠는가. 선생은 그런 아영을 두고 나를 보며 얘기했다.

 

“아마 우리 학교 어디를 가도 교실 빌려주는 사람은 없을텐데.”

“괜찮아요. 한 10명 정도 돌다 보면 한 분쯤은 해주시겠죠.”

“너도 참 막무가내인 점이 있구나.” 

 

뭔가 처리하기 어려운 물건 바라보는 식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선생이었다. 

 

“김선생님, 걔네들은 누구에요?”

 

그때 교무실 문이 열리고 풍채가 큰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체급을 보아하니 아마 체육 선생인 듯 했다.

 

“갑자기 와서는 부실을 빌려달라고 하더라구요.”

“부실? 어떤 부실이요?”

“밴드부실을 원한다고.”

“아.”

 

상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정선생님이 어떻게 해주실래요?”

“밴드부실이라...”

 

정선생은 좀 고민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체육물품 넣어두는 창고 있잖아요. 그거 좀만 비워두면 밴드해도 좋을 거 같은데?”

“어? 정선생님. 정말 부실 마련해주게요?”

“좋잖아요. 이럴 때 아니면 누가 밴드해.”

 

아마 정선생님이 말한 이럴 때라는 건 우리가 아직 고3이 아니란걸 가정하고 말하는 거겠지. 실제로 우리는 고2가 맞고.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그렇다고 하겠다는 사람 말릴 수는 없잖아?”

 

무언가 일이 잘 풀리고 있었다. 

 

“애들아. 체육 구비실은 에어컨도 없고 습한데 괜찮겠니?”

“좋아요!”

 

아영이 외쳤다. 하여튼 대답만 잘하는 녀석이었다.

 

“일단 그럼 학교에 동아리 개설 신청하고 구비실 청소도 좀 해라.”

“언제부터 사용 가능한가요?”

“아마 다음 주부터 쓸 수 있게 해두마.”

“네, 감사합니다.”

 

우리는 허리 숙여 감사의 표시를 전했다. 마침 아영의 학원도 다음주 쉰다고 했으니 시기도 적절했다. 

 

밴드 결성 5일째. 부실을 얻었다.

 

** 

 

밴드 부실이 결정된 그 주 토요일. 나는 집에서 통기타를 쳤다. 코드와 코드를 옮겨가는 손가락이 매끄럽게 이어졌다. 아직 실력은 녹슬지 않은 모양이었다. 다만 구석에 좀 오래 둬서 그런지 소리가 약간 어긋난 느낌이었다. 아마 습기를 머금어서 판이 휜 모양이었다. 

 

그래도 연주는 계속됐다. 

 

그렇게 계속 기타를 치던 와중 핸드폰이 울렸다. 확인해보니 역시나 아영이었다.

 

[너 기타 연습중이지?]

 

뭔가 겉보기엔 단순한데 감은 좋았다. 나는 정성스레 답변을 달아주었다.

 

[아니.]

[지랄하말고 사실만 말해라.]

 

왜 그렇게 남의 일에 관심이 많은 건지. 가끔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열정만 넘치는 녀석이었다. 

 

[남이야 기타를 치든 말든.]

[기타 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데 그래도 구라까네 ㅋㅋ,]

 

소름이 돋았다. 

 

띵동.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진짜 죽여버릴까.

 

문을 열어주자 해골 모양이 그려진 모자를 쓴 아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난 그대로 문을 닫았다.

 

“야 싯팔 문 열어.”

“미안한데 그 모자 좀 벗어라.”

“아 알았어 알았어.”

 

조금 뒤 다시 문을 열자 아영이 몸을 던지듯 우리집으로 밀고 들어왔다. 모자는 벗지 않았다. 

 

“찾아올거면 페XX톡 보내야지.”

“깜짝 놀래키려고했지.”

“어디가?”

 

그녀의 전신을 훑어보았다. 아마 저 모자를 뜻하는 거겠지?

 

“어때?”

“엄청 구려가지고 너랑 잘 어울린다 야.”

“아 진짜.”

 

정말 단단히 락에 빠졌나보다. 

 

“이 모자 고르라고 어제 하루를 날렸어.”

“대체 어느 부분에서?”

“해골이지만 귀엽잖아? 전혀 마이너한 감성이 아닌 해골 문양을 찾은 거라고.” 

“그래도 해골인데?”

 

아무튼 저 녀석의 생각은 도통이지 읽어낼 수가 없었다. 

“참고로 해골 문양은 우리 빌X X XXXX오빠가 좋아한대.”

“그것도 락 밴드야?”

“응.”

 

아무튼 락 대가리다. 진짜로 머리가 rock으로 된 놈. 

 

“아무튼 무슨 일인데?”

“엠프 왔는데 같이 연습하려고 왔지.”

“아아. 벌써 왔어?”

“응, 택배가 빨리 왔더라.”

 

아영은 가방에서 엠프를 꺼냈다. 크기가 성인 남자 주먹 두 개쯤 되는 엠프였다. 

 

“딱봐도 싸 보이네.”

“어쩔 수 없지. 내 용돈으로는 이게 한계였어.”

“아무리 그래도 좀 커야지 소리가 나지 않으려나?”

 

조금 못 마땅했지만 아직 소리를 들은 건 아니었기에 잠자코있기로 했다. 

 

“후훗, 나 XXXTUBE보고 연습도 했거든. 아마 깜짝 놀랄 거야.”

 

저렇게 자신만만하니 나로서도 그저 예예 하고 받아주는 수밖에. 

 

“일단 엠프부터 켜.”

“알았어, 알았다니까.”

 

아영은 엠프에 기타 줄을 연결했다. 약간의 잡음과 함께 전원이 들어왔다. 아영은 기타 줄을 뜯어보았다. 완전히 깨끗한 소리는 아니었지만 나름 들을만 했다. 기타 줄도 말끔하게 펴지고 상판에 빛이 나는 게 나름 기대감이 올라오기도 했다.

 

“친다?”

 

아영은 조심스럽게 기타에 손가락을 쥐어 잡았다. 그 뒤 천천히 코드를 쳐내려가기 시작했다. 

 

지지징.

 

처음 코드는 매끄럽게 지나갔다. 하지만 두 번쨰 코드부터는 듣기 싫은 전자음 소리가 났다. 세 번째로 옮기자 아예 균형이 무너져 무슨 코드를 치는 지도 알 수 없게 되었다.

 

“야, 그만 그만해봐.”

 

아여이 연주를 멈추자 나는 참았던 얘기를 꺼냈다. 

 

“연습 한 번도 안 했지 너?”

“아냐, 했어. 한 시간 정도.”

“답답하다 답답해.”

 

이게 과연 밴드를 이끌어갈 보컬이란 말인가. 나는 이 밴드에 내 고등학교 생활을 맡겨도 되는 것인가. 온갖 걱정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이러다 나도 rock대가리가 될 것만 같았다. 

 

“일단 기본적인 코드부터 연습해야지.”

“그랬어!”

“전혀 안 그런거 같은데?”

 

이 실력은 한 시간은커녕 30분도 연습을 안 한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C코드 하나 제대로 잡지 못하는 게 아니다.

 

“정말 밴드할 마음은 있는거야?”

“그야 당연히... 아!”

 

그때 아영은 무언가 깨달은 듯 내게 가까이 다가오더니 내 손에 전자 기타를 쥐어 주었다. 

 

“네가 알려주면 되겠네.”

“교습비 100만원.”

“아, 좀.”

 

모름지기 기타란건 정성을 가지고 오랜 시간동안 공들여 연습하는 것만이 답이거늘 누군가한테 배운다고 실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하는 것도 아니었다. 특히 아영 저녀석은 좀 시행착오를 겪어야할 필요가 있었다.

 

“하... 일단 C코드부터 잡고 시작해봐. 소리를 낸다는 느낌으로다가.”

“오 알려주는 거야?”

“일단 나도 하기로 했으니까.”

 

나는 일단 전자 기타 C코드를 잡아보았다. 통기타랑 달라서 소리내기가 힘들 줄 알았는데 의외로 간단하게 소리가 났다. 이참에 F코드로도 손을 옮겨보았다. 손놀림이 부드러웠다. 손가락은 마치 제자리를 찾듯 코드 자리에 정확히 안착했다. 이참에 기교도 조금 부려봤다. 신명나는 기타 소리에 뇌가 녹아내릴듯한 쾌락이 몰려왔다. 

 

이게 기타지.

 

아무래도 나도 글러 먹은 음악 중독자인 모양이었다. 연주를 하는 것만으로 무언가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기타에 빠져들어 점점 나를 잊어가곤했다. 그건 연주가 절정에 이르기에 따라 더욱 커졌다.

 

“와...”

 

아영은 말을 잃었다. 내 기타 실력이 좋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반대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가 전자 기타를 내려놓자 또 속사포로 말을 내뱉었다.

 

“뭐야, 기타 좀 친다면서 좀이 아닌데?”

“기타 대체 얼마나 연습한 거야?”

“나도 좀 가르쳐줘.”

 

그런 시시콜콜한 얘기들이 오가고 나는 코드 잡는 법만 대충 알려주었다. 그게 기본이었다고 난 생각했으니까. 더 이상의 교육은 이쪽에서도 사양이었다. 나머진 밴드까지 만들어가며 기타를 치는 저 녀석이 알아서 할 일이었다.

 

“이렇게 쳐?”

 

아영은 내가 알려준대로 코드를 잡았다. 현을 긁자 아까보다는 나은 소리가 났다. 

 

“방금 들었어?”

“네, 들었습니다.”

“쩔지?”

“뭐, 그렇네.”

“아싸!”

 

뭐가 그리 좋은지 손을 위로 들어 그대로 현을 내리 긁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그 상태로 두 시간은 내리 기타를 쳐댔다.

 

** 

 

월요일이 되자마자 우리는 6시 반에 만나 등교했다. 장선생이 아침 일찍 와서 구비실을 치워달라고 해서였다. 구비실 문을 두드리자 잠시 뒤 장선생이 우리를 맞이했다. 

 

“일로 와.”

 

장선생은 캐비닛을 구석으로 몰아세우고 있었다. 우리는 구비실 바닥에 떨어진 공과 체육 기구를 수거해 정리하는 일을 맡았다. 

 

물건이 그렇게 많기 않았기에 좀만 정리하자 금방 밴드 하나 정도는 들어갈 자리가 났다. 장선생님은 어디서 구했는지 선풍기 하나를 마련해주셨다. 에어컨 없는 곳에서 고생 좀 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우리는 밴드부실이 된 구비실을 둘러보았다. 오래된 학교라 그런지 여기저기 페인트칠이 벗겨지고 구석구석 거미줄이 쳐져있는 것만 빼면 나름 살만한 곳이었다. 

 

“진짜 믿기지 않는다. 우리가 부실을 얻다니.”

“거의 내가 다 했거든?”

“아무렴 어때.”

 

더 할 말은 많았지만 들뜬 아영을 보자니 그런 소리도 함부로 못할 거 같았다. 원래 모르는 게 약이라고 좋은 꿈꾸게 내버려뒀다.

 

“자! 이제 악기 세팅하고 연습부터 하자.”

“근데 최소 3명은 있어야하는 거 아냐?”

“아.”

 

기타만 두 명이었다. 최소 드럼까지 셋이 있어야하는 사실을 그녀는 까맣게 잊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떡하지?”

“뭘 어떡해 구해야지.”

“어떻게?”

“하아.”

 

이런 거까지 하나하나 구해줘야하는가. 솔직히 아무리 아영이라도 홍보물을 학교 게시판에 붙일 생각은 하지도 못했나말인가. 

 

“괜찮아! 드럼 오기전까지도 충분히 연습할 수 있어.”

“일단 홍보지부터 만들어. 연습은 그 다음이다.”

“알겠어.”

 

이런 간단한 생각조차 대신 해줘야한다는 사실에 앞날이 심히 걱정되었다. 

 

아영은 가방에서 노트를 꺼냈다. 그 노트 위쪽에 큼지막하게 글씨를 써내려갔다.

 

[밴드부 모집!]

[드럼이 비어서 모집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그래도 말은 잘 따라주네.’

 

아영은 신이난 듯 형광펜까지 꺼내가며 홍보지 만들기에 열심이었다. 뒤에서 보니까 나름 디자인 센스가 있었다. 내가 봐도 예쁘게 잘 되었다. 

 

“이 정도면 어때?” 

“충분한데?”

“좋아.”

 

이제 남은 건 홍보지를 붙이고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야 아영.”

“왜?”

“이제 연습하자.”

 

그리고 연습도 해야할 일이었다.

 

** 

 

구비실을 빌린지 일주일이 지났다. 아영은 아예 집에서 홍보지를 만들어왔다. 나 또한 음악실에서 드럼을 빌려왔다. 그렇게 질이 좋은 건 아니었지만 없는 것보다야 100배 나았다. 

 

“기타 OK 드럼 OK 밴드실 OK 연주자 OK. 좋아.”

 

아영은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물건들을 가리키며 흡족해했다. 

 

“연주자는 아직도 두 명인데?”

“곧 오겠지 뭐.”

 

그 말만 몇 번 반복하는지 세는 것도 귀찮다. 한 30번 쯤에서 그만두었던 거 같다. 

 

“여차하면 2인밴드로 가자.”

“기타 두 개로 가능한가?”

“가능하지!”

 

평소와 똑같이 아무 생각이 없는 그녀였다. 

 

똑똑.

 

그때 부실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문과 가까운 내가 열어주려했지만 아영이 총알같이 뛰어나가서 먼저 문을 열어주었다. 

 

“안녕하세요. 밴드 모집 보고 왔는데요.”

“아! 잘 왔어요!”

 

손님은 흑발 머리를 뒤로 땋은 여자였다. 무언가 엄청 소심해보이는 여자였다. 우리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땅만 쳐다보고 있었다. 아영은 재빨리 그녀를 자리로 안내했다. 자리라고 해봤자 대충 플라스틱 의자 깔아둔 게 다였지만 아영은 그런거따윈 괘념치 않은 듯했다. 

 

“드럼 빈다고 해서.”

“오!!”

 

아영은 다짜고짜 그 여자의 손을 잡고 대차게 흔들어댔다. 내가 봐도 딱 싫어하는 티가 나는데 아무튼 열심이다.

 

“학년은요?”

“1학년이요.”

“이름은?”

“최얀순이요.”

“좋아하는 락 밴드가 뭐죠?”

“옐로 데이요.”

“와!”

 

좋아하는 락 밴드 부분에서만 신나게 말을 잇는 하는 여자였다. 아영과 비슷한 부류의 느낌이 풀풀 났다.

 

“전 옐로데이 팬이에요!”

“정말요?”

“환영해요.”

 

뒤에서 보자니 둘이 아주 쿵짝이 잘 맞았다. 바보랑 덕후 콤비인가? 뭐, 나도 아영을 도와 밴드를 하고 있으니 뭐라 할만한 처지는 아니지만.

 

“밴드는 얼마나 치세요?”

“그게...”

 

얀순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한달이요.”

“오! 한달씩이나 하셨구나!”

 

한 사람은 얼굴을 붉히고, 한 사람은 아무 생각이 없고.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대환장 파티인가. 실제로 보니 퍽 볼만했다. 아마 이보다 재밌는 구경거리는 내 인생에 흔치 않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저도 기타 배운지 2주 밖에 안 됐어요. 우리 잘 해봐요.”

 

아영이 손을 내밀었다. 얀순은 슬며시 손을 잡았다. 면접 1분만에 협상이 체결되었다. 

 

“여기는 내 친구 얀붕이에요.”

“안녕하세요.”

 

난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얀순이도 나의 행동을 똑같이 따라했다. 

 

“뭘 그리 어색해해?”

“아니, 어색한 건 아니고.”

“미안해요. 우리 얀붕이가 좀 낯을 가려서.”

 

쓸데없는 말까지 덧붙이는 솜씨가 아주 나날이 늘었다 참.

 

“그럼 한 번 쳐보실래요?”

“네?”

“드럼이요.”

 

얀순은 망설이다가 아영의 등살에 떠밀려 드럼 앞에 앉았다. 스틱을 쥐는 두 손이 떨리고 있었다. 

 

“야, 처음 오는 애한테 너무 무리한 부탁 아니냐?”

“그런가? 부담스러우면 안 쳐도 되요.”

 

그러나 얀순은 드럼 앞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녀의 눈을 보았는데 오로지 드럼에 집중하고 있었다. 

 

“저기.”

“야.”

 

난 얀순에게 다가가려는 아영의 어깨를 잡았다. 

 

“그냥 냅둬 봐.”

 

아영은 순순히 내 말을 따라주었다. 

 

얀순이 허공에 스틱을 든 뒤 그대로 드럼을 내리쳤다. 처음엔 가볍게 스네어를 가볍게 후리더니 이내 8비트 박자에 들어섰다.

 

두둥탁둥 두둥탁둥 

 

안정적인 드럼 소리에 맞춰 킥도 잘 들어가고 있었다. 나와 아영은 멍하니 그 장면을 지켜봤다. 

 

잘한다.

 

이 소리로밖에는 설명할 수 밖에 없었다. 한달 배웠다고는 믿지 못할 실력이었다. 물론 우리 둘이 음악에 대해 무지한 것도 있지만 그래도 좋았다. 

 

드럼 연주가 끝나고 우리는 얀순이에게 박수갈채를 보냈다. 

 

“대단하다. 정말 한 달 배운 거 맞아?”

 

어느새 아영은 반말을 쓰고 있었다. 그만큼 짜릿한 연주였다는 뜻이었겠지. 

 

“대단하다. 우리 밴드에 반드시 들어와 줘. 그리고 우리 세계 최고의 밴드가 되고 또.”

“헛소리 그만해.”

 

나는 손날로 가볍게 아영의 머리를 쳤다. 아무튼 좀만 놔두면 튀기 일쑤였다. 

 

“얀순이라고 했지? 우리 밴드 보는 대로 부실도 열악하고 인원도 적은데 괜찮겠어?”

“아, 상관없어요.”

 

기타 두 명에 드럼 하나. 베이스와 키보드가 아쉬웠지만 절대 밴드 하기에 모자른 인원은 아니었다. 드디어 밴드다운 밴드 하나가 탄생한 건가. 조금 감탄스러웠다. 이 밴드 수장은 아영이었지만 뒤에서 내가 다 해줬으니 내가 몸담는 밴드이기도 했다.

 

“그럼 밴드 이름 정해볼까?”

“그냥 대충 지어.”

“넌 낭만이 없냐 낭만이?”

 

낭만이 없다느니 뭐라느니. 밴드 이름 하나 짓는데 온갖 호들갑을 다 떠는 놈한테서 듣고 싶은 말은 아니었다. 

 

“어웨이 어때? 내가 어제 진지하게 고민한 이름이야.”

“어디 떠나냐? 웬 놈의 어웨이는 어웨이야.”

“오케이 넌 찬성 얀순이는 어때?”

“네?”

 

내 반대 의사를 찬성으로 알아먹는 저 탁월한 지능과 센스에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건 얀순이도 마찬가지겠지. 

 

“어, 전 지금 처음 왔는데요?”

“그럼 만장일치로 어웨이로 한다.”

 

우리 의견은 거의 묵살시피한 작명 결정에 난 강제로 어웨이 밴드의 일원이 됐다. 

 

그것이 어웨이 밴드의 시작이었다.

 

** 

 

연습은 일주일에 3번하기로 했다. 그때 동안은 집에서 각자도생이었다. 나는 통기타를 수리해서 간간이 치곤 했다. 그 둘이 나만큼 연습을 해줄지 말지는 의문이었지만 나라도 해야 아무래도 체면이 살테니까. 

 

어쨌든 편안한 일요일 낮에 난 집에서 편안하게 기타를 치고 있었다. 그 녀석이 문자를 보내기 전까진 말이다.

 

[야, 어웨이 밴드 연습할테니까 나와.]

 

이게 뭔 개소린가싶어 ‘?’를 보냈더니 답장이 바로 왔다.

 

[00스튜디오로 와.]

 

이 녀석이 웬일로 행동력을 보였다. 아무래도 어웨이 밴드에 꽤나 책임감이 들었나보다. 

 

[안 간다면?]

[네가 안 올리 없지 ㅋ]

 

무언가 화나는데 이미 난 외출용 옷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호구가 몸에 배면 무섭다고. 가끔은 나도 내가 두려울 정도였다.

 

[밖임 나오삼.]

 

아무튼 근처 산다고 보채기는 엄청 보챈다. 문을 열자 간단한 캐쥬얼복을 입은 아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늘 보는 풍경이었지만 오늘은 다른 점이 있었다. 바로 옆에 얀순이가 서 있던 것이었다. 

 

“뭐야? 둘이 언제 만났어?”

“내가 불러냈지.”

“안...안녕하세요.”

 

얀순이가 고개 숙여 인사했다. 나 또한 손을 들어 인사했다. 

 

“마침 얀순이도 근처 살더라 운이 좋았어.”

“그래도 이렇게 불러내도 되냐?”

“본인이 허락했어.”

“떠밀려서 억지로 나온 건 아니고?”

“아니에요. 전 괜찮아요.”

 

얀순이가 손을 가로저었다. 심히 상황이 의심스러웠지만 아무튼 본인이 아니라고하니 이쯤에서 넘어가기로 했다.

 

“근데 오늘도 그 모자냐?”

 

물론 저놈의 해골 모자는 제외였다. 

 

“뭐 어때서.”

“같이 다니는 사람 생각도 해주라.”

“같이 다니는 호구라서 괜찮아.”

“죽는다.”

 

아무튼 쓸데 없는 부분에서 신나가지고 혼자서 막 나간다. 모자는 좀 친구를 위해서라도 가려줬으면 하는 바람이었지만 아영은 그 모자에 이미 푹 빠진 모양이었다.

 

“얀순이 너도 저 모자 촌스럽지않냐?”

 

나는 슬쩍 얀순이에게 떠보았다. 머릿수로 밀어붙이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얀순이는 땅만 바라보고 있었다.

 

“내 모자가 어디가 촌스러워?”

“모자 주인께서는 빠져계시고요,” 

 

얀순이는 고개만 이리저리 흔들어댔다. 저렇게 격하게 표현 안 해도 되는데 보는 내가 미안할 정도였다. 하나 콕 집어 말하기 힘든 모양이었다. 생각해보니 모자가 좋다고 하면 나랑 척을지고 반대면 또 반대대로 문제니 답하기 어려운 문제이기도 했다. 

 

“에이 얀순아 괜찮아. 이 모자 좋으면 좋다고 말해. 저놈 호구라서 찍소리도 못 해.”

“얀순아, 대답하지 마.”

“호구는 좀 빠져있어.”

“자꾸 호구 호구거린다 너?”

 

이내 아영과 내 사이엔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아영은 저게 문제였다. 조금만 상대해주면 기분 좋아서 기어오르러든다. 흔히 말하는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줄 아는 녀석이었다. 

 

“어쩌라고 호구~.”

“싯8 나랑 진짜 맞짱 뜰래?”

“잠깐만요.”

 

그때 얀순이가 우리 사이에 끼어들었다. 

 

“싸우지 말아요. 오늘 연습이잖아요. 자꾸 이러면 될 연습도 안돼요.”

“아.”

“아.”

 

얀순이 덕에 큰 싸움으로 번지진 않았다. 역시 아영과 있을 때엔 중재자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꼈다. 물론 그 전에 할 말은 있었다.

 

“스튜디오비는 네가 내라.”

“무슨 개소리임?”

“네가 불러냈으니까.”

 

사나이 김얀붕 할 말은 하고 산다.

 

** 

 

스튜디오는 버스를 타고 2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3층짜리 건물 지하에 마련된 작은 단칸방이 스튜디오였다. 3인 밴드가 들어가면 꽉 찰 듯한 크기에 한번 놀라고 시간당 20000원이라는 이용비에 다시 한번 놀랐다. 세상이 이렇게 무섭구나.

 

뭐 난 아무래도 좋았다. 스튜디오 대여실비를 내는 건 내가 아닌 ‘누군가’였으니까. 

 

“딱 세 명 들어가겠다. 좋아. 연습해보자.”

 

아영은 각자 악기를 세팅했다. 나한테는 스튜디오에서 빌리는 전자 기타가 주어졌다. 얀순이는 미리 세팅된 드럼을 치면 됐고, 아연 본인은 저번에 산 빨간 전자기타를 들었다.

 

기타 두 개와 드럼 하나. 

 

“둘 다 자리 잡고 연습곡부터 시작하자.”

 

아영은 책가방에서 악보책 두 개를 꺼내 우리에게 건넸다. 음악이라기보단 밴드로서 합을 맞추는 연습곡들이었다. 열정만 가득하던 아영치고는 준비성이 좋았다. 길어봤자 일주일 가려니했던거 치고도 꽤 오래 버티고 말이다. 

 

“자, 하나 둘 셋 넷.”

 

넷 소리가 끝나자마자 우리는 악보에 맞춰 악기를 연주했다. 처음엔 얀순이의 드럼 소리에 맞춰 잘 가다가 3마디쯤 가자 아영의 기타 소리가 따로 놀기 시작했다. 그에 맞춰 나도 말려들어갔고 그렇게 첫 번째 시도는 실패하고 말았다. 

 

“자자 다시 하나 둘 셋 넷.”

 

두 번째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드럼부터 연주가 시작됐다. 두둥탁, 두둥탁 드럼 소리에 맞춰 천천히 해보니 처음보다야 나았다. 하지만 4마디 내내 각자가 따로 노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아영의 기타 소리가 지나치게 커서 소리 밸런스가 안 맞는 느낌이었다. 그걸 어떻게든 드럼이 멱살 잡고 끌고 가는 모양새였다. 그래서인지 최대 5마디를 넘기지 못하고 연주는 빵꾸 나기 일 쑤 였다. 그 간단한 악보조차 치지 못하는 상황에 그저 웃음만 나왔다. 

 

“자자, 다시.”

 

그렇게 다시를 반복하던 아영도 한 시간동안 연습하더니 기어코 뻗어버리고 말았다. 정말이지 쿵짝이 하나도 맞지 않는 엉터리 밴드였다. 말로하기는 그랬지만 얀순이 빼고는 제대로 된 게 없었다. 

 

“자, 다시.”

“그만하고 이제 좀 쉬자.”

“아냐 두 시간 빌렸단 말이야. 뽕은 뽑아야지.”

“이 상태로 연습이 되겠냐?”

 

내 말에 수긍했는지 아영도 순순히 기타를 내려놓았다. 하지만 두 눈만은 날 잡아먹을 듯 날카로웠다. 나 또한 짜증이나 살짝 말을 내뱉었다.

 

“얀순이 말고는 다 엉망이네.”

“말 다했냐?”

“사실인걸 어떡하라고.”

 

나는 얀순이 쪽을 슬쩍 훑어봤다. 드럼 스틱을 만지작거리며 우리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튼 귀한 4만원까지 내가면서 연습하는데 기본기조차 없이 한다는 건 심각하지 않은가? 좀 더 부실에서 연습하고 왔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저, 싸우지 말고 천천히 해요.”

“아, 미안 우리 싸우는 거 아냐. 원래 아영이가 말이 좀 험해서 그래.”

“내가 왜 말이 험해.”

“하, 또 이런다.”

“아 몰라 나 물 마시고 올 거야.” 

 

아영이 나가고 나서 나는 의자에 앉아 머리를 좀 식혔다. 솔직히 내가 좀 실수한 면도 없잖아 있었다. 아영도 맘대로 맘대로 안 되니까 초조한 거겠지. 거기다 대고 평소처럼 대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좀 자극이 됐나보다. 밴드라는 게 이리도 어려운 거였다니. 아영은 알고나 있었을까. 이럴 때 내가 치던 통기타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저기.”

 

그때 얀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어느새 내 곁으로 다가온 채였다.

 

“아영 언니 괜찮아요?”

“어, 괜찮을 거야. 얘가 성격이 급해서 그래.”

“그래요?”

 

그새 걱정한 건가. 착한 친구였다. 아영이 보고 배웠으면 할 정도였다. 실력으로만 보면 실질적 리더자리인데 말이다. 

 

“얀순이는 이 밴드 어때? 어디 불편하진 않아?”

“괜찮아요. 재밌는데요.”

“넌 참 태평한 면도 있네.”

 

아무튼 아영이 돌아오면 사과하고 다시 연습해야겠다. 연습도 좀 힘 빼고 천천히 하라는 말도 해줘야겠고. 

 

“저기 얀붕 선배.”

“응? 왜?”

“선배랑 아영 언니는 소꿉친구에요?”

“그렇긴한데.”

“몇 살때부터요?”

“어... 유치원때부터.”

“정말요?”

 

얀순은 놀랍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소꿉친구는 처음 봐서 신기해요.”

“별로 신기할 것도 없는데.” 

 

방금까지 소심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우리 사이에 대해서 물어보는 얀순이었다. 여자애라서 그런가 소꿉친구라든가 그런 거에 관심이 많나 보다. 

 

“혹시 둘이 사겨요?”

“응? 아니. 우린 그저 친구야.”

 

조금 당황스러운 질문이었지만 납득은 갔다. 우리는 종종 너무 사이가 가깝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커플로 오해받곤 했다. 설명하기 귀찮을 정도로 많이 들어본 질문이었다. 

 

“그렇구나.”

 

왠지 가슴을 쓸어내리는 얀순이의 모습에 괜스레 미안해진다. 다음부터는 아영이랑 좀 싸우지 않도록 주의해야겠다. 

 

“근데 얀순아. 너 정말 드럼 한달만 배운 거야? 너무 잘 치는데?”

“아, 학원다닌 건 한달이에요.”

“그럼 전에도 했다는 말이네.”

“네.”

 

그렇구나. 역시 한 달만에 드럼을 저 수준으로 칠 수 있다는 건 많이 힘든 일이었다. 역시 기초가 다져진 친구였다.

 

“네가 와서 다행이다. 덕분에 밴드는 굴러가겠네.” 

“아...”

 

고개를 홱 돌린다. 귀여운 친구였다.

 

잠시 뒤 아영이 돌아왔다. 한 시간 더 충전했다고 했다.

 

**

 

밴드부실은 널널했다. 아침 7시. 아직 학생들도 학교에 등교하지 않은 때다. 나는 어깨에 맨 기타 가방에서 통기타를 꺼냈다. 현을 긁어보기도 하고 상판을 손톱으로 툭툭 치기도 했다. 날 것 그대로의 아날로그 소리가 들려왔다. 마음이 편해지는 소리였다. 내게는 역시 통기타가 제격이었다. 

 

내가 이렇게 혼자서 연습하는 이유는 전자음 소리에서 잠깐이나 멀어지고 싶어서였다. 아영에겐 미안하지만 아영은 전자 기타를 더럽게도 못 쳤다. 마냥 듣기 싫은 거 까진 아니었지만 그래도 전자 기타 소리는 너무 시끄러웠다. 지금은 이렇게 통기타 소리에 녹아들고만 싶었다. 

 

그래도 제법 손가락이 따라와주니 나도 흥이 나서 더욱 힘차게 기타를 칠 수 있었다. 단순한 코드 진행을 16비트로 때로는 8비트로 옮겨가며 아르페지오라느니 타발렛이라는 기타 연주법도 이어나갔다. 제대로 된 곡은 아니었지만 이런 주법만으로도 기분은 충분히 흥분되었다. 그렇게 몇 마디를 치고 고개를 든 나는 깜짝 놀라고야 말았다. 어느새 얀순이가 내게 다가와 있었다.

 

“뭐야 너 언제부터 있었어?” 

“방금요.”

 

약간 창피한 기분이 들었다. 남에게 들려줄 실력도 아니고 말이다. 그저 기분따라 이런저런 주법을 섞었기에 난잡하기도 했고.

 

“선배는 통기타가 어울리네요.”

“어? 그래?”

“네.”

 

실제로 통기타를 더 좋아하니 맞는 말인가. 어떻게 이 사실을 간파해냈는지는 모르지만 몰려오는 칭찬을 부정하진 않았다. 

 

“너도 연습하려고 온 거야? 부지런하네.”

“선배보다는 늦었는데요 뭐.”

 

늦었다기엔 7시 반이었다. 둘 다 아침부터 부실을 찾은 거 보면 정상은 아니었다. 정작 밴드를 꾸리자고한 녀석은 보이지도 않고 말이다. 

 

“온 김에 같이 연습이나 하자.”

 

나는 통기타를 들었다. 

 

** 

 

아침 연습을 끝내고 다시 교실로 돌아왔다. 밴드 부실에서 나와 학교 생활로 돌아오면 언제나 똑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늘 보던 책상, 늘 보던 얼굴들, 늘 보던 선생님들. 따분하기도 하지만 내가 속해있는 곳. 마음이 편했다. 아영은 다른 반이었다. 가끔은 이렇게 혼자 있는 것도 마음이 편하다.

 

이럴 때 난 생각을 정리하곤 한다. 선생이 칠판에 글씨를 쓰고 잠시 숨을 고를 때가 타이밍이었다. 평소엔 공부 생각으로 꽉 차 있는데 오늘은 유달리 밴드에 대해서 생각했다. 나도 참 밴드가 그렇게나 맘에 들었나보다. 얀순이를 떠올려서도 그럴 수 있었다. 걔를 생각할때마다 기특한 마음이 한가득이었다. 

 

쉬는 시간 종이 울릴 때까지 난 그 짓을 반복했다. 생각하다가 몇몇 필기를 놓치기도 했지만 이 부분은 아영이 보여주기에 상관없었다. 그렇게 책가방을 정리하던 도중,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야, 아영....?”

 

당연히 아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얀순이었다. 

 

“선배.”

“어? 왜 왔어?”

 

얀순은 대답 대신 내 손목을 잡아끌었다. 무언가 급한 일인가 싶어 순순히 복도까지 따라가주었다.

 

“선배, 혹시 점심시간에도 연습할래요?”

“어? 연습은 방과후잖아.”

“그냥 더 연습하고 싶어서요.” 

“아영이는 괜찮으려나.”

 

그러자 얀순은 불쑥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영 언니한테도 한대요.”

“아영이 걔가?”

“네.”

 

얀순은 점점더 내 손목을 세게 옥죄었다. 솔직히 거절하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았다. 하지만 얀순의 진지한 태도를 보니 또 그럴 수도 없었다.

 

“알았어. 하자.”

“고마워요.”

 

그 말을 남기곤 얀순은 복도끝으로 사라져갔다. 

 

무슨 일이 있어서 저렇게 여기까지 온 줄은 몰랐다. 연습이 마음에 들었나보다. 이렇게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점심을 일찍 먹고 나는 곧바로 밴드부실로 향했다. 부실에 들어서자 잘 정돈된 드럼과 아영의 전자 기타가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혼자인 모양이었다. 나는 부실에 비치된 전자 기타에 엠프를 꽂고 조심스레 손가락을 움직였다. 나름 소리가 좋아지긴 했다. 통기타라도 계속 연습한 보람이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입으로 출처도 불분명한 노래를 흥얼거렸다. 

 

“선배 왔어요?”

 

그때 부실문이 열리고 얀순이가 들어왔다. 나는 손을 가볍게 들어 인사했다. 얀순이도 고개 숙여 화답했다. 

 

“일찍 오셨네요?”

“어, 뭐 그렇지.”

 

얀순이는 자연스럽게 드럼 앞에 자리잡았다. 

 

“자 연습 시작하죠.” 

 

얀순이는 스틱을 높이 들었다. 

 

“잠깐만 아영이가 아직 안 왔는데?”

“아영 언니 늦는 거 같은데 둘이서 하죠.”

“야, 아무리 그래도.”

 

그때 째지는 심벌 소리가 났다. 얼마나 소리가 컸는지 귀가 먹먹할 정도였다.

 

“우리 둘이 하죠.”

“뭐, 어. 그래.”

 

무언가 엄청 찝찝했지만 어쨌든 둘이서 하는 연습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에 나는 기타를 들었다. 어쨌든 아영도 올테니까말이다.

 

“자 처음부터 하죠 하나 둘.”

 

얀순이 드럼을 치고 나는 거기 맞춰 기타를 연주했다. 꽤나 안정적이었다. 확실히 셋이서 할 때보다는 둘이 더 쉬웠다. 곡은 10마디 12마디를 넘어서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클라이막스 부분에선 얀순의 화려한 드럼 실력으로 나 또한 자극을 받아 손이 점점 더 빨라졌다. 평소엔 엄두도 못 냈던 파트를 아무렇지 않게 소화해내고 있었다. 전자 기타로 이렇게 듣기 좋은 연주가 나온 건 근래 최초였다. 얀순은 박자가 부분에 힘을 주어 연주했다. 아마 내가 맞추기 편하게 하라는 뜻일 터였다. 

 

“선배 대단해요.”

“그렇네, 너 덕분이다.”

 

오가는 덕담 속에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실제로 여름날 냉방도 안되는 창고에서 격하게 연주했더니 이마엔 땀이 맺혔다. 나는 달아오른 숨을 고르기에 급급했다. 우리는 그렇게 5번 정도 연습곡을 더 반복했다. 참을 수 없는 더위가 온몸을 휘감았다. 그건 얀순도 마찬가지였는지 그녀도 얼굴에 땀이 흥건했다. 하지만 연주가 절정에 달할 때마다 그 짜릿한 쾌감은 멈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10번째 곡이 끝나고 우리는 정선생이 가져다 둔 선풍기 앞에 집결했다. 흘러가는 바람을 조금이라도 맞기 위해 우리는 서로 가까이 붙었다. 

 

“하아, 선배 방금 연주 진짜 죽이지 않았어요?”

“어, 진짜 쩔더라.”

 

그리고 문득 얀순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한여름 더위는 얀순의 뺨에 홍조를 남겼다.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일 터였다. 

 

“이대로라면 금방 공연도 할 수 있을거에요.”

“공연만이겠냐. 전국 투어도 가능하겠다 야.”

 

이성적인 판단은 이미 녹아버린 뇌 때문에 불가능했다. 오직 머릿속에는 연주만이 가득차 있었다. 

 

“이러고 유명해지고 결혼도 하고.”

“결혼?”

“아, 그게.”

 

얀순은 고개를 뒤로 돌렸다.

 

“음악! 음악과 결혼하는 거죠!”

 

뭔가 앞뒤가 맞지 않았지만 그러려니했다. 지금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음악과 결혼한다는 말은 나에게 꽤나 괜찮은 소리로 들려왔다. 음악은 멋있으니까 괜찮을 듯 했다.

 

“선배.” 

“어?”

“제 드럼 실력 어때요?”

“어? 그야 최고지. 그건 왜?”

 

그 순간 얀순의 두 뺨에 더욱 붉어졌다. 그건 더위 때문이라는 말로 가릴 수 없을만한 그 무언가였다. 

 

“선배.”

“어?”

“혹시 저희 둘이서 밴드할 생각 있어요?”

 

둘이라니. 그 말은 즉 아영을 배신하라는 말이 아닌가. 나는 대답을 머뭇거렸다. 그때 얀순이 점점 내 쪽으로 다가오더니 이내 내 손을 꼭 쥐었다. 그녀의 두 입술에서 피어나오는 더운 입김이 그대로 내 피부에 와닿았다.

 

“같이 해요.”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부실을 뛰쳐나왔다.

 

** 

 

그날 집으로 돌아가며 얀순이 남긴 말을 떠올렸다. 

 

‘같이 밴드해요.’ 

 

그 말 뜻이 무엇인지 난 알지 못했다. 정확히 어떤 이유에서 튀어나온 말인지 모른다는 뜻이다. 떠오르는 건 가까이서 본 얀순의 입술 뿐. 그 의외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잘 있는 3인밴드를 그만두고 2인밴드를 한다니 그건 있을 수 없었다. 아영이 시작하기로한 밴드였다. 밴드의 끝도 그녀에게 달린 일이었다. 하지만 뭐랄까. 그때 내게 보였던 그 홍조는 무언가를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건 진심이라고 보면 될까. 

 

나라고 2인밴드를 무작정 반대하는 건 아니었다. 실제로 얀순과 나는 죽이 잘 맞았다. 노래 한 곡은 거뜬히 해내었다. 하지만 이게 그녀와 합이 맞아서인지 일방적으로 얀순이 잘 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중요치 않았다. 그냥 연주가 됐다는 것에 기뻐하면 될 터였다. 하지만 무언가 가슴속에서 무언가 꿈틀대고 있었다.

 

“야 호구!”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꾸 호구 거릴래?”

“네 이름이 부르기 껄끄러운걸 어떡하라고.”

 

아무튼 처음 밴드를 구성할 때도 그렇고 준비도 안 됐는데 막상 찾아 온다. 

 

“어찌 연습은 잘 돼가냐?”

“뭐... 그럭저럭?”

 

아영은 또 서두르는 눈치였다. 이 밴드에 대해서 뭐가 그렇게 미련이 있는지 말이다. 이참에 물어볼까. 고민이 됐다. 만약 내가 얀순과 2인 밴드를 결성했으니 넌 필요 없어라고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역시 연습만이 답이야 그렇지 않냐?”

 

구태여 저런 얼굴에 대고 어떻게 2인 밴드를 결성했으니 나가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인간 된 도리로서 해야할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어느새 아영의 눈을 직시하고 있었다.

 

“야, 나 밴드 나갈게.”

“그게 뭔데...”

 

순간 아영의 표정이 구겨졌다. 엄청난 두려움이 몰려왔다. 그러나 동시에 해방감도 느꼈다.

 

“그렇게 알아.”

 

나는 아영을 지나쳐 뛰어나갔다.

 

** 

 

집에 돌아와서도 떠올랐다.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이. 얀순이와 둘이서 드럼을 쳤던 일부터 아영과 대화한 내용. 참으로 격한 하루였다. 기타를 칠 여력도 남아있지 않았다. 저녁을 입에 대고 바로 침대에 녹다운이다. 

 

그렇게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았다. 밴드를 나간 건 용기 없는 짓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어쩔 도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나는 밴드를 나갔고 이제 얀순과 2인 밴드를 결성하면 될 일이었다. 내 마음을 옥죄는 죄책감따위 무시해버리면 그만이었다. 

 

나는 핸드폰에 저장된 플레이리스트를 돌려봤다. 대부분 락 밴드 노래였다. 아영이 공유해준 것이었다. 나는 그 중 하나의 노래를 틀었다. Letterbomb. 편지 폭탄이라니. 이름도 웃기다. 아영은 이런걸 좋아한단 말인가. 평소엔 관심도 없던 영어가사에 하나하나 자신을 대입해갔다. 노래가 넘어감에 따라 머릿속에 한 명이 떠올랐다.

 

얀순. 

 

그녀와 이런 노래를 연주하는 건가. 아영을 버리고? 생각이 깊어졌다. 새벽이라 그런지 괜스레 죄책감은 마음을 찔러댔다. 내가 잘못 선택한 건가. 괜히 나온다고 했나. 그런 생각이 머리를 쿡쿡 찔러대는 것 같았다.

 

띠링.

 

그때 핸드폰에서 알람이 울렸다. 들여다보니 아영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밴드 다시 생각해보면 안돼?] 

 

나는 멍하니 그 메시지를 바라보았다. 충격으로 다가올 법도 하지만 왠지 가슴만 애려왔다.

 

[혹시 내가 잘못한 점이 있다면 미안해. 제발 밴드를 떠나지 말아줘.]

 

나는 답을 달 수 없었다. 그저 읽음 표시가 나지 않게 알람으로 뜬 메시지만 볼 뿐이었다.

 

[선배.]

 

그때 또 다른 문자가 왔다. 얀순이었다. 

 

[방금 아영언니한테서 전화왔어요.]

 

아영이 전화가? 

 

나는 가만히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았다. 

 

[밴드 나왔다면서요? 저랑 2인 밴드해주실려고 그런거죠?]

 

나는 조금 고민하다가 얀순에게만 메시지를 보냈다.

 

[어.]

 

이것이 나의 진심이라니. 웃기지도 않았다. 

 

[기뻐요. 이제부터 우리 열심히 해봐요.]

 

이 문자만 보면 죄책감이 좀 덜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읽지 않은 아영의 메시지가 마음에 걸렸다.

 

[아영 언니는 걱정마세요. 제가 손 봤으니까요.]

[손 보다니?]

[선배는 몰라도 돼요.]

[뭐라고?]

[그 쌍년 저한테 엄청 욕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한 마디 해줬을 뿐이에요.]

 

쌍년이라니. 아무리 그래도 어엿한 내 친구였다. 그런 말은 아영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맨날 선배한테 빌붙어서 사는 게 빈대 같아서 저도 좀 짜증났어요.]

[그런 말 마.]

[선배는 너무 착해서 탈이에요. 그 언니 얼마나 박쥐같았는데]

 

물론 아영이 내게 무언가 요구를 많이 하기는 했다. 그렇다고 욕을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사실 선배의 기타 소리가 마음에 들었어요. 매일 아침 연습하는 모습도 보기 좋았어요. 날 위해 칭찬해주는 점도 좋았어요. 그러니...]

 

문자는 여기서 끊겼다. 

 

띵동.

 

순간 소름이 돋았다. 생각해보니 초인종이 울린 거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향해 걸어갔다. 누군지, 이 밤중에 온 사람이 누군지 난 알 거 같았다. 어웨이 밴드에서 드럼을 맡은 사람, 나랑 2인 밴드를 구성할 사람. 

 

띠링

 

메시지가 또 왔다. 나는 천천히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선배. 생각 잘 했어요. 그러니 문 좀 열어주실래요?]

[알았어.]

 

나는 떨리는 손으로 현관문 손잡이를 돌렸다. 그러자 천천히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피가 흥건한 해골 문양의 모자를 쓴 채.

 

“얀순...아?”

“선배, 마중 나왔어요.”

 

그 소름끼치는 모습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 모자... 뭐야?”

“전리품이죠.”

“전리품?” 

“아영 언니가 주더라고요.”

“정말 준 거 맞아?”

“아. 그건 걱정마세요.”

 

아영은 살며시 내 손을 잡아 끌었다.

 

“오늘부터 우리 밴드는 1일이니까요.” 



얀데레 채널에 올리려고한 글인데 여기에도 올려봅니다. 혹시 좋은 점이나 재밌는 점, 또는 이해가 안 되거나 보기 불편한 점이 있으면 말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