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하디 흔한 어느 뒷골목.

 

-퍼억.

 

“허억!”

 

상대방의 복부에 나의 주먹이 쑥 파고드는 감각.

지금까지 살면서 겪어온 것 중, 이만큼 잡념을 떨쳐내기 좋은 감각도 드물었다.

주먹을 맞은 상대가 숨을 내뱉으며 눈을 뒤집더니 그대로 바닥에 무너졌다.

 

“……제대로 꽂혔군. 혹시 죽은 건가?”

“…….”

“어이.”

 

쓰러진 상대를 발로 툭툭 쳤지만, 상대는 미동도 없었다.

문득 두려움이 밀려왔다. 이 두려움은 외부가 아닌, 나의 내면에서 비롯된 것이다.

죽은 걸까. 만약 죽은 거라면…….

……아무리 그래도, 겨우 주먹에 죽었을 리는 없겠지.

애써 그런 가능성을 부정한 나는 쩝, 입맛을 다시고는 뒤돌아섰다.

이제 다음은 어디일까. 내가 가야 하는 곳은…….

사실 고민하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다. 살인자의 아들이 어딜 가서 뭘 하겠어. 그냥 이렇게, 싸움질이나 하면서.

하루하루 버리며 사는 거지.

 

“으윽.”

 

뒤에서 신음소리가 들린다. 살아는 있나 보네. 다행인가…….

 

“……쯧.”

 

나는 내 몸을 내려다보고는 혀를 찼다. 교복이 찢어졌다.

교복은 기본적으로 비싼 옷이다. 이런 뒷골목 싸움판에 입고 오기에는 지나치게 사치스러운 옷. 기분이 나쁘긴 하지만…… 학교를 갈 일이 없으니 상관없나.

흥분이 좀 가라앉자, 얼굴의 상처가 이제야 쓰라렸다.

 

***

 

“어이, 장현우. 정신 차려.”

“……아파. 때리지 마.”

“네가 불침번 설 차례야. 시간 되면 혜진 누나 알아서 깨우고.”

“하아. 벌써 내 차례냐, 아직 졸립구만…….”

“나라고 안 졸린 줄 알아?”

“아, 됐어, 됐어. 안 한다는 거 아니잖아. 그냥 귀찮을 뿐이라고.”

“하아, 이상 생기면 나부터 깨워.”

 

천막 밖으로 나오자, 아이솔은 내가 나온 천막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아이솔이 들어간 천막 안에는 혜진이 함께 있다. 바깥에서였다면 남녀가 한 텐트를 쓴다는 상황에서 온갖 저열한 상상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곳에서 그딴 건 사치다. 천막이 남아돌아서 남녀를 구별해 만드나. 살아남기 바쁜데.

……살아남는다, 라. 내가 언제부터 이런 목표의식을 가진 인간이었던 거지.

 

-부릉…….

 

환청인가. 바이크 소리가 들리는데.

아무래도 피곤한 것 같……?

 

-타다당!

-탕, 탕!

 

‘……환청이 아니라 총소리였나?’

 

음…….

……잠깐, 총소리?

나는 앉은 자리에서 반사적으로 일어서며 외쳤다.

 

“아이솔!”

“들었어!”

 

아직 잠들지는 않았던 건지, 아이솔은 금세 천막에서 빠져나오며 소리쳤다. 이미 소총과 쌍안경을 장비한 채였다.

 

“상황 보고 올 테니까, 혜진 누나 깨워서 아지트 정리하고 있어. 금방 돌아올게.”

“그래. 죽지 말고.”

 

아이솔은 근처에 설치되어 있던 트랩들을 곁눈질로 살피더니, “주변에 트랩이 많으니까 준비가 끝나도 여길 벗어나지는 마. 아마 그 전에 돌아오겠지만.”이라고 당부하고는 소리가 난 방향으로 빠르게 사라져 갔다.

나는 잠시 그쪽을 바라보다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한시가 급했다. 나는 혜진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

 

“혜진. 일어나.”

“으음…… 현우 님이시군요. 아이솔 님은 어디 가셨나요?”

“총소리가 들려서 정찰 나갔어. 곧 돌아올 거야.”

“이런 밤에도 끝나가는 생이 있는 거군요…….”

“미안하지만 운명 타령 할 시간은 없겠어. 전투 소리가 꽤 가까웠거든. 천막은 내가 정리할 테니, 주변의 흔적을 지워 줘. 트랩 조심하고.”

“아이솔 님이 설치한 트랩의 위치는 전부 기억하고 있답니다.”

“뭐…… 알아서 해. 하여간 신기하다니까, 그런 걸 다 어떻게 기억하는 건지. 금지구역 외우는 것도 어려워 죽겠구만…….”

“현재 금지구역으로 지정된 곳은 항구, 양궁장, 학교…….”

“아, 됐어. 안 알려줘도 돼. 아직까진 기억하고 있으니까.”

“후훗, 네.”

 

……사실 제대로 기억 안 나는데. 이따가 아이솔에게 슬쩍 물어볼 작정이다.

나는 손을 뻗어서 천막을 걷어냈다.

 

***

 

어릴 적이었다.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 아버지는 일생일대의 큰 실수를 했었다. 보증이었다.

아버지가 빚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우리 집은 한순간에 망했다. 엄마는 나도 모르는 남자와 바람이 났고, 아버지는 홧김에 상대를 죽이고는 감옥에 가 버렸다.

남겨진 나는 엇나가기 시작했다. 이는 나 또한 자각하고 있는 사실이다. 살인자의 아들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질 나쁜 녀석들과 어울리고, 뒷골목에서 싸움을 하고, 바이크를 타고 달렸다.

내 인생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심정을 이해한다. 사람을 죽여버렸을 정도의 그 당시의 분노와 그 심정을 이해한다. 다만 머리로만 이해할 뿐이다.

그는 과연 누구를 죽였단 말인가?

아버지, 당신이 죽인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당신은 내가 내 인생을 살지 못하도록 죽여 버린 것이다. 죽여 버리고 만 것이다. 당신의 자식을, 고작 홧김에.

결국 나는 당신의 분노보다 후순위였던 거겠지.

 

***

 

어느덧 천막의 해체가 슬슬 끝났을 때쯤, 혜진이 배낭들을 가져와서는 말했다.

 

“현우 님, 이 쪽은 끝났어요.”

“그래? 수고했어. 이것도 거의 끝나 가.”

“도와드릴 건.”

“됐어. 아이솔이 곧 돌아올…… 왔네.”

 

수풀 속에서 작게 사박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동시에 그 사이로 어렴풋한 인형이 보였다.

아이솔이라는 것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른다는 생각으로 전투 태세를 갖추었다. 그래 봤자 주먹다짐 준비 자세지만. 내 뒤에 서 있던 혜진은 활을 치켜들었다. 그나마 제대로 된 무기다. 내가 만들어 준 것이지만, 정작 나는 활을 쏠 줄 모른다. 그냥 당기면 되는 줄 알았다가 큰코다친 적이 있지.

 

“왔어.”

“왔냐. 준비는 거의 다 됐어. 천막 정리만 하면 돼.”

“정리 속도가 꽤 빨라졌군.”

 

수풀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역시 아이솔이었다. 총소리는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멀어지는 듯 했다.

아이솔은 내가 한쪽에 흩어 둔 나무 지지대들을 모아 챙기며 말했다.

 

“재키와 자히르 팀, 그리고…… 로지 팀이다. 우린 상황을 지켜보다가 재키 쪽을 노리는 게 좋아 보여.”

“재키? 로지 쪽을 노리는 게 낫지 않아? 재키 쪽은 두 명인데.”

“로지 팀은 그녀를 제외한 동맹원이 이미 전부 당한 것 같더군. 구출한 후 동맹으로 영입할 생각이야.”

“……뭐, 나쁘지는 않겠네.”

“로지 님과 동맹을 맺는 건 저는 처음입니다.”

“유능한 사람이야. 그나저나…….”

 

천막을 접어서 가방에 욱여넣은 나는 총소리가 들리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기 반대쪽에서 오토바이 소리가 들린 거 같았는데.”

“매그너스 쪽이겠지. 셀린이 만들어 줬다던가.”

“너는 그 아저씨가 여자랑 동맹을 맺을 거 같냐? 피오라라면 몰라도.”

“저번에 제니랑도 동맹 맺었었잖아. 기억 안 나냐?”

“……그런가?”

 

그랬었지. 맞다.

 

“하여간, 재키와 자히르. 두 명 뿐이야?”

“그래. 다른 한 명은 이미 뻗었어. 지체 말고 가자.”

 

-철걱.

 

아이솔이 야전삽을 펴 들며 앞장섰다.

 

***

 

섬에 들어오기 전, 나는 혼자 밥을 차려먹을 때가 잦았다. 아니, 거의 매 끼니를 그랬다.

평범한 고등학생이 싼 값에 가장 든든하게 끼니를 때울 수 있는 수단은…….

 

“……또 라면인가.”

 

역시 라면이었다.

혼자 먹는 식사도, 이런 싸구려 인스턴트 음식도 익숙했다.

다만…… 인스턴트가 너무 쉽게 물린다는 게 문제다. 하다 못해 계란이라도, 아니 마늘. ……마늘?

시선 끝에 뜬금없이 놓인 마늘이 생각을 어지럽혔다.

 

“…….”

 

끓고 있는 라면을 슬쩍 본 나는 대충 시간을 계산했다.

스프를 5초쯤 전에 넣었으니…….

그리고는 마늘을 가져와서 빠르게 껍질을 벗겼다.

 

‘……겨우 라면 끓이는데 칼씩이나 쓰다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게 뭐라고 웃긴 건지.

마늘을 빠르게 편으로 썰어 라면에 넣은 후, 라면이 익기를 기다렸다가 불을 끄고 냄비를 식탁으로 가져온 나는 한 젓가락을 크게 집어 입 안에 넣었다.

 

‘……기분 탓인가.’

 

뭔가 건강해지는 느낌인데 이거.

맛은 괜찮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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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유니버스 웹툰을 본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난 이 장면을 쓴 직후에 친구한테 "야 나 블서 팬픽 쓰고있음ㅋㅋㅋㅋ"했다가 그 친구에 의해서 웹툰의 존재를 알게 됐음

그거 보고 수정한 부분도 꽤 있다.

안 읽어본 사람들은 아빠겜 스토리 웹툰이니까 한 번 쯤 보면 재밌음.

운영논란 떄문이었는지 뭐 중간에 연재중단된건 아쉽긴 한데 여튼.

https://www.comica.com/webtoon/episode/101088


참고로 뒷골목 싸움하는 파트에서 눈치챘을지도 모르겠지만 인게임 대사들도 좀 우려먹었음.

쓰면서 재밌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