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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아 섬.

나는 이곳이 어디인지 모른다. 솔직히 지구에 존재하는 곳이 맞기는 한 건지도 의심스럽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곳은 실험장이라는 것이다.

나를 비롯한 이곳의 실험체들은 주기적으로 섬에서 살인 게임을 한다. 최후의 승자 한 명만이 남을 때까지 서로 죽고 죽이는 것이다. 이를 강제하기 위해 금지구역이라는 시스템도 있는데, 뭐 별 건 아니고 그냥 들어가면 죽는 구역을 설정하는 거다. 최후의 1인이 남을 때까지, 섬을 전부 덮을 때까지 시간에 따라 주기적으로 계속 늘어난다. 만약 그곳에 들어가거나, 금지구역으로 지정될 때 까지 그곳에서 벗어나지 않게 되면 즉사한다.

하여간 금지구역이라던지, 살인 게임이라던지를 위해 실험체들은 손목에 팔찌를 하나씩 차게 된다. 팔찌는 손목을 관통하는 나사로 고정되어 있어 뺄 수 없는데, 이 팔찌는 금지구역 진입 시 폭발하는 것을 비롯해 여러 기능이 있다. 그중 하나는 신체능력의 강화다. 살아만 있다면 어디 팔 한 쪽이 날아가도 재생이 가능한 수준으로 회복 능력이 높아진다. 또한 근력이나 내구력 등 전반적인 신체 스펙이 강화되는데, 이것이 어느 정도 수준이냐면.

내가 땅을 세게 밟으면, ‘쾅’하는 소리가 나며 콘트리트가 부서질 정도이다.

 

“밟는다?”

 

그리고 재키를 습격한 나는 딱 그 정도의 힘을 실어서 재키의 발을 힘껏 밟았다.

와득, 하고 뼈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앞에 상처투성이로 쓰러져 있던 로지는 이미 빈사 상태로 보였지만, 팔찌에 불은 들어와 있었다. 살아만 있으면 회복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 뭐야, 너는! 한창 재미있던 참인데!”

 

부웅-.

 

전기톱이 휘둘러지는 소리가 위협적이다.

동시에 발밑에서 빛나는 차크람의 문양이 마법진처럼 떠올랐다. 자히르의 VF다.

 

“퍼져라!”

“쳇.”

 

차크람을 피해 급히 뒤로 물러서자, 재키가 곧바로 돌진해왔다.

가히 위협적인 몸짓이었으나, 내가 밟은 것의 반대쪽 발에 무게중심을 싣느라 자세가 흐트러져 엉망이었다. 전기톱이 휘둘러지는 궤도가 뻔히 보였다.

관성을 실은 탓에 속도가 워낙 빨라 피하기는 힘들 것 같지만, 정면 돌파로 한 방 먹이는 것은 가능할 것 같았다.

그 순간, 저 건너편에서 아이솔이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자신의 위치에 트랩 설치가 끝났다는 신호다.

 

‘나이스 타이밍.’

 

나는 재키를 향해 마주 달려들었다.

 

“어디 한번 공격해 봐!”

“빠르게…… 큭!”

 

달려오는 재키를 그대로 들이받은 나는 횡대로 휘둘러지는 전기톱을 피해 가까스로 고개를 숙였다.

전기톱이 등 쪽의 살덩이를 통째로 베어내는 감각이 들었다. 아찔하게 아프긴 하지만 어찌어찌 견딜만은 하다. 통각을 어느 정도 차단하는 것, 이것도 팔찌의 기능 중 하나다.

자히르가 뒤쪽에서 나를 향해 달려오다가 급히 방향을 트는 것이 보였다. 아이솔은 방금 반대쪽에서 트랩 설치 신호를 보내고 사라졌으니, 아마도 혜진의 지원사격인 듯 했다. 이제 더 신경쓸 것은 없다.

나는 즉시 건너편으로 몸을 던져서 굴렀다. 등의 부상이 땅에 부딪히며 통증에 머릿속이 아득해졌지만, 미친 듯이 분출되는 아드레날린이 정신을 붙잡았다. 그 사이 재키는 전기톱을 나에게 내리꽂고 있었다. 바닥에 누운 채 몸을 한 바퀴 더 굴려 전기톱을 피해낸 나는 그 반동 그대로 일어서서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최대한 거리를 벌려 도망친다기보다는, 꼬리를 흔들며 유인한다. 아이솔의 트랩 쪽으로.

뒤에서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재키의 발소리다. 열 걸음 정도 앞에 있는 저 수풀이 방금 아이솔이 내게 신호한 장소다. 땅바닥을 자세히 보자니, 아이솔이 그려 둔 표지들이 보인다. 세 개의 가로줄을 따라 설치된 트랩들의 위치를 표시한 것이다. 대략 스무 개, 함정 지대는 이제 한 걸음 앞.

 

-휙.

 

나는 표지들을 요리조리 피해 땅을 밟으며, 그러나 뒤따라오는 재키가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하게끔 최대한 자연스럽게 달려 함정 지대를 건넜다.

슬쩍 뒤돌아보자, 재키는 막 두 번째 줄에 있는 트랩 표지를 밟는 중이었다.

 

퍼엉-!

 

뒤이어 눈앞에서 작은 폭음이 울리고, 지반이 얕게 내려앉으며 재키가 비틀거리다 넘어졌다. 나는 오른팔을 빙빙 돌리며 그곳으로 뛰어들었다. 결정타를 먹일 심산이었다.

뒷골목에서 싸울 때도 마무리 용도로 자주 사용하던, 내 나름의 필살기다.

비틀거리며 일어서려 하는 재키의 뒤편에 미끄러지듯이 선 나는 오른쪽 발뒤꿈치를 땅에 박고, 왼쪽 발을 앞으로 내밀었다. 몸의 무게중심을 뒤쪽으로 한 채 오른손은 주먹을 말아 쥐었다. 왼팔은 전방을 향해 쭉 뻗고, 온 몸의 무게를 허리에서부터 회전시켜 올려서 주먹에 담아 내지른다.

그 사이 재키가 가까스로 일어서서는 이쪽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 주먹을 피하기 위해 급히 몸을 틀려는 것이 보였지만, 이미 늦었다.

핵 펀치.

 

“피해보던가!”

“……!”

 

빠악-.

 

주먹이 재키의 안면에 제대로 꽂혀들며 시원한 타격음이 났다. 재키는 그대로 뒤로 넘어가 쓰러졌다. 이 정도로 죽지는 않겠지만 뭐, 충분하겠지. 한참 동안은 못 일어날 거다. 총소리를 듣고 다른 누가 올 때 까지 기절해있을 수도 있고.

위력만 따진다면, 아마 섬 밖의 일반인이 맞았다면 일격에 죽어버렸을 정도라고 자신한다.

 

-뿌득.

 

“으으…….”

 

온 힘을 다해 내지른 스트레이트다 보니 근육이 삐걱거린다. 등 쪽의 부상도 거슬리지만, 어찌 됐건 간질거리는 감각이 드는 것이 재생되고 있는 것 같았다.

 

‘휴식은 좀 이르고…… 일단은 상황 정리를 좀 도와야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혜진 쪽을 도와주러 가려는데, 갑자기 낮익은 오토바이 소리가 들렸다.

나는 무심코 뒤를 돌아보고는 그대로 사고회로가 정지되고 말았다.

 

-부릉.

 

“매그너스 님이 나가신다!”

“……어, 시발.”

 

지금 몸 상태로 저기 치이면 백 퍼센트 사망인데.

이거 아무래도 좆 됐다…… 라고 생각하던 찰나,

 

휘익-

 

“언제 터질지 궁금해?”

 

뒤쪽에서 무언가 날아와 나를 지나쳐 가서는 매그너스의 오토바이에 달라붙었다.

 

-척.

 

“누구도 내 앞에선 못 달린…… 응?”

 

-삑. 삑.

 

빠른 속도로 투척되어 오토바이의 몸체에 달라붙은 그것은 위에 달린 무언가가 초 단위로 돌아가고 있었는데, 그때마다 삑삑거리는 소리가 났다.

 

“……?”

“어이, 장현우, 고개 숙여! 맞으면 책임 안 진다!”

 

이 목소리…… 아이솔?

반사적으로 고개를 푹 숙이자, 곧 총성이 들렸다.

 

-타앙.

펑-!

 

“크악!”

 

총성으로부터 시작된 연쇄 반응은 그 총알이 오토바이에 점착된 폭탄을 꿰뚫어 터뜨리고, 그렇게 매그너스를 리타이어시킨 후 반파된 오토바이가 제어를 잃어버리고 내게 돌진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키이이이익-.

 

“……어?”

 

오토바이같은 거…… 보통 영화 같은 데서는 저렇게 망가져서 연기 나면 조금 있다가 폭발하던데.

주인을 내버린 채 혼자 미끄러져 오는 반파 상태의 오토바이를 본 나는 이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지난 삶을 되돌아봐야 하나, 순간 진지하게 고민했다.

 

“야, 이 멍청아! 뭘 멍때리고 있어! 정신 차리고 이리로 빠져!”

“현우 님! 이쪽으로!”

 

아이솔과 혜진이 소리지르는 것이 들렸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나는 냅다 뛰기 시작했다.

잠깐만, 이쪽으로 가면 방금 재키와 싸울 때 발동했던 함정 지대인데?

 

“우와악!”

 

쓰러진 재키를 피하려다 무너져 내린 땅을 밟고 넘어질 뻔 한 나는 가까스로 중심을 잡은 채 계속 달렸다.

 

‘……어, 그러고 보니.’

 

안 달려도 되겠는데? 어차피 저기 걸려서 멈출 거잖아.

뒤를 돌아보자, 마침 무너진 땅 조각에 걸려 넘어지면서 쓰러진 재키를 덮치는 오토바이가 보였다.

 

콰앙-!

 

“으악!”

 

곧이어 오토바이가 장렬하게 폭발했다.

너무 가까이 있었던지, 나는 폭발의 여파에 그대로 튕겨 나가 아이솔과 혜진의 발밑에 엎어졌다.

 

“혀, 현우 님. 괜찮으세요?”

“……으으, 좀 어지럽기는 한데 괜찮아. 그나저나 매그너스는 갑자기 어디서, 아니. 그건 그렇다 치고, 오토바이가 원래 이렇게 크게 폭발해? 저거 맞냐?”

“……셀린이 개조한 건가?”

“어쨌든 무사해서 다행이네요. 수고하셨어요.”

“아참, 자히르는? 처리했어?”

“혜진 누나가 활로 싸우고 있길래, 저쪽 트랩 설치 끝나고 곧바로 저격했지.”

“하아, 끝났구나. 진 빠지네.”

 

뭐가 이렇게 피곤하냐…….

동료 하나 영입하겠다고 별 고생을 다 하는구만.

아. 그러고 보니 동료가 목적이었지?

 

“로지는?”

“회복 중이야. 곧 깨어날 것 같더군.”

 

한쪽에 정자세로 눕혀져 있는 로지를 가리키며 아이솔이 말했다. 천막 천을 바닥에 깔아둔 채였다.

나는 그쪽으로 다가가 로지의 상처들을 살펴보며 아이솔에게 물었다.

 

“음…… 골절같은 건 없는거지?”

“아마도. 사실 있었어도 이쯤이면 거의 회복될 시간이기는 하지. 다만 출혈량이 커서 깨어나려면 한두 시간은…… 뭐 하냐?”

“엇차.”

 

나는 천막 천의 양 끝을 들어서 로지를 말듯이 덮은 후, 그녀를 어깨에 받쳐서 들쳐 맸다. 생각보다는 가벼웠다.

 

“방금 매그너스 오는 거 봤잖아. 다른 팀들도 오기 전에 빨리 자리 뜨자고.”

“……하.”

 

아이솔이 피식 웃었다.

 

“좋아. 드디어 슬슬 생각이란 걸 하기 시작한 모양이지?”

“뭐 이 새끼야?”

“혜진 누나, 쟤랑 먼저 가고 계세요. 곧 따라갈게요.”

“네.”

“…….”

 

먼저 가고 있으라는 아이솔을 뒤로하고 혜진과 잠시 걷고 있자니, 뒤편에서 총 소리가 들려왔다.

예상했던 아이솔의 총성이었다.

이미 죽은 시체를 몇 번이고 다시 쏘아서 기어코 고깃덩어리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진짜 저 습관 어떻게 못 고치나. 은근히 짜증나는데. 이해도 안 되고 말이야.”

“……아이솔 님도.”

“그래 뭐, 사정이 있겠지…… 망할.”

“…….”

 

나보다도 어린 녀석이, 아무리 이런 곳이라지만.

인간성은 도대체 어디다 팔아 처먹고 온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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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전투씬 처음 써 봤음.

어색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참고로 저 싸움난 지역은 숲임.

동선이라던지 지리라던지 하는건 이터널 리턴 인게임 실제 맵 생각하면서 봐주면 됨.

현우가 아이솔 트랩으로 재키 잡은 곳은 보안콘솔-생나 사이 부쉬고

매그가 부릉타고 달려오다가 셈텍스폭탄 맞고 죽은건 고주에서 들어와서 생나 앞쪽으로 지나가는 그 길이고 뭐 그런식임